빅 퀘스천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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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내 나이 45세, 중년이 된 지 5년이나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삶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있었고, 좀처럼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했다. 그 무렵 나는 인생에서 배우게 되는 여러 가지 교훈들 중 비로소 한 가지를 깨달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절망, 낙심, 비극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식이었다. 절망, 낙심, 비극은 살아가는 동안 반드시 치러야만 하는 통과의례라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대개 커다란 시련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고 깊게 트인다. 사람은 상실, 재난, 아픔, 슬픔 따위를 겪고 나서야 비로소 삶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13, 14쪽

스위스의 비 오는 날 저녁, 조르주 심농이 1946년에 쓴 소설 <뉴욕의 매그레>를 읽으며 내 상황을 소설에 대입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다음 구절은 특히 내 처지를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머리통 형태 그대로 눌려 있는 베개, 잠 못 들고 몸을 심하게 뒤척이다 구겨진 시트, 파자마, 슬리퍼, 의자에 널브러진 옷가지, 탁자 위에 펼쳐진 책 옆에는 먹고 남은 저녁음식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외로운 남자의 끔찍한 음식... 불현듯 그는 자신이 도망쳐 온 모든 것들을 떠올렸다. 그는 입구에 서서 고개극 숙인 채 움직이기 두려워 얼어 붙어 있었다.` - 16, 17쪽

사람들은 왜 책을 읽을까? 혹시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이 혼돈의 세상에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닐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 17쪽

매일이다시피 그 날 할 일 목록을 메모해두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늘 끝없이 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할 일을 끝내고 나면 또 다른 일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 일을 다 끝내면 또...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일상의 복잡함이라니?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빼고 나면 내 삶은 점점 더 지리멸렬해지고 있었고, 생에 대한 의구심만 커져갔다. 스키를 타고 달리는 동안 생이 가져다주는 온통 부조리한 현상들을 잊을 수 있어 좋았다. 점점 더 짙어지는 눈송이들이 삶에 대한 온갖 의심과 물안을 하얗게 씻어 내주고 있었다. - 21, 22쪽

물론 내 인생이 괴롭기만 했던 건 아니지만 결코 `행복`하지도 않았다. 내가 인생의 여러 가지 복잡다단한 문제 때문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의 감정사전에는 `행복`
이라는 단어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어 `즐거워할 수는 있지만 행복할 수는 없어.`라고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시점이 있다. 그 시점을 지나고 나서부터는 갑자기 행복과 마주친다는 생각만으로도 당황하게 된다. 행복, 그 심오하고 모순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를 입 밖으로 끄집어내어 말할 때 우리는 과연 어떤 의미를 전하고 싶어 한 것일까? - 23쪽

행복은 사랑과 비슷한 개념이다. 우리는 사랑과 행복을 간절히 소망하지만 스스로 장애물을 만들어가며 앞을 가로막기도 한다.
우리는 과연 행복해지길 원할까? 우리는 혹시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근원적인 결핍을 끌어안고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건 아닐까? 오히려 우리에게 불편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자초하며 사는 건 아닐까? 우리는 삶에 만족을 주는 조건들을 스스로 밀어내는 행위를 하며 사는 건 아닐까? - 24쪽

내가 삶에 대해 갖게 된 새로운 시각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갖가지 질문에 대해 흑백의 대답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질문들은 회색지대로 우리를 이끌게 된다. 불확실하고 양면적이며 영원한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그 회색지대야말로 우리의 삶에서 가장 흥미로운 공간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비로소 삶을 열린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다른 모두의 삶과 마찬가지로 나의 삶 역시 정답이 없는 질문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러하기에 내 삶은 더욱 경이롭고 흥미롭고 신비로울 수 있다.
우리는 `진실은 ~(이)다`라는 표현을 흔히 쓰지만 진실은 자연의 인과법칙을 제외한 다른 상황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다른 해석이 존재할 뿐이다.
`삶은 뒤로 돌아갈 수 없으며, 지나간 뒤에야 삶을 이해할 수 있다.`
삶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양성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다양성이란 단순한 인정이나 타협을 뜻하는 게 아니다. 삶이란 정답 없는 심오한 의문과 끊임없이 조우하는 일이다. 삶에 대한 정답을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애써야 하는 건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이다. - 28, 29쪽

인간은 단점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존재이다. 비교적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서구사회에서 지난 몇 십 년 동안 두려움, 분노, 절망, 증오, 후회 등의 부정적인 생각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고양시키는 정신치료가 인기를 끌게 되었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내적 갈등을 겪으며 살아간다. 스스로 만들어낸 내적 갈등이야말로 그 사람의 삶을 좌우한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부러워할 만큼 직업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라도 한 겹 벗기고 바라보면 후회와 미련으로 점철된 생을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는 누구에게나 존재하니까. - 56쪽

삶이란 결코 원하거나 꿈꾸는 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후회를 줄이고 있는 그대로의 생을 끌어안을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암울한 현실을 결코 벗어던질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깊은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 암울한 현실을 만들어낸 사람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절망감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 56쪽

잘못된 결혼생활은 감정적인 스톨홀름증후군이다. 덫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 상태를 체념적으로 받아들여 안주하게 되는 것이다. 벽을 허물기만 하면 어디로든 자유롭게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너무 오래 갇혀 살아온 나머지 빠져나갈 수 없게 된 것이다. - 57쪽

어느 누가 보더라도 권태로운 결혼생활이나 직업을 그대로 유지해간다는 건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 주변에는 그런 삶을 유지해가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덫에 갇혔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가장 불편한 진실은 그 덫을 만든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무런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직업을 선택한 것도,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을 선택한 것도, 성격에 맞지 않는 여자와 결혼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 집을 구입한 것도, 자녀를 낳은 것도, 주변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쓰는 것도 모두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다. - 72, 73쪽

시간의 흐름에는 가속도가 붙는다. 중년의 경계를 지나고 나면 일 년은 전과 다름없는 일 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나이를 먹고 나서야 세상에서 살다간 모든 사람들이 맞닥뜨렸을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인생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던 사람들은 나이가 지긋해지고 나서야 자기 자신에게 잔인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삶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때서야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 덫에 갇혀 더없이 소중한 인생을 불행에 빠뜨리고도 바꿀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진실은 여전히 유효하다.
`삶의 덫에 갇혀 더없이 소중한 인생을 불행하게 보내기로 결정한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 76쪽

우리는 누구나 떠나는 꿈을 꾼다. 자유를 얻는 대신 외로움을 덤으로 얻게 될 미지의 땅으로 모험을 떠나는 것은 어려운 결정이다. 가정이나 직업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유로워지기로 결심한다는 건 어른이되어 내릴 수 있는 결정 중에서 가장 힘들다. 그런 까닭에 나는 떠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키케로는 듣기에는 불편하지만 일리 있는 말을 했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건 대단히 위험하다. 하지만 그런 위험은 세상의 도처에서 너무 쉽게 일어난다.` - 77쪽

제라르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먼저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우리는 타인의 행복까지 책임질 수는 없다. 누구나 자기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을 뿐이다. 부당한 현실에 대해 혹은 늘 고통을 안기는 배우자에 대해 불평만 늘어놓을 뿐 변화를 모색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비상구`를 두드리고 괴로운 현실 너머 다른 가능성을 과감하게 찾아 떠나야 한다. 스스로 만든 덫에서 한시바삐 빠져 나와야 한다. - 79쪽

우리는 어떤 일이나 결과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걸 좋아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조만간 지나간 과거로 치부될 뿐이다. 누구나 자기 자신의 결정에 대해 정당성을 확보하고 싶겠지만 곧 과거로 치부될 일에 대해 지나친 분노를 쏟아 내거나 후회할 필요는 없다. - 103쪽

끔찍한 음모를 꾸민 이아고는 왜 그런 일을 벌이게 되었는지 이야기하려 들지 않는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지 자신의 주관적인 해석일 뿐이니까. 모든 이야기는 진실여부와 상관없이 주관적이니까.
모든 이야기의 본성은 주관적이다.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각자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진실일 뿐이다. 우리는 늘 상황을 합리화하기 위해, 비난의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핑계를 대거나 변명하기 위해, 그 모든 상황을 어떻게든 스스로 견딜 수 있게 하기 위해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 109, 110쪽

나는 매일이다시피 죽음을 생각한다. 몽테뉴도 살아가기 위해 매일 조금씩이나마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내가 존재하지 않아도 세상은 잘 돌아가리라 확신한다. 내가 죽으며 나와 연관되었던 사연, 실망, 성공, 좌절, 내 인생을 특징지었던 복잡한 일들 모두가 사라질 것이다. - 130쪽

블랜드 교수의 죽음은 나에게 또 다른 깨달음을 주었다. 우리가 보게 되는 타인의 겉모습은 종잇장보다 얇은 존재의 표면일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그 존재의 표면 아래에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어둠이 숨어 있다. - 130쪽

아버지는 어머니와 결혼생활을 이어오는 동안 여러 차례 외도를 했다. 어머니의 심한 신경증을 생각할 때 아버지의 외도를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어머니는 가까이 있는 사람을 들들 볶는 스타일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결혼생활을 깰 수 없었기에 불륜을 선택했다고 본다.
아버지는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 덫을 치고 살았다. 짐을 벗어던질 수 있는 일도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결정하고 고통을 감수하곤 했다. 아버지가 스스로 덫에 빠지게 된 건 지나친 자존심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감수하는 사람이었다. - 175쪽

누구나 세상에서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될 때가 온다. 우리가 갈망하고 바라던 모든 것, 성공과 좌절, 욕망과 체념, 장점과 단점 그 모든 게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때가 온다. 그런 것들은 죽음과 함께 모두 사라질 테니까.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기`가 아닌 종말이 온다. 죽음을 아무리 멋지게 포장하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하는 사실 한 가지가 있다.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끝난다는 사실이다.
나는 죽음으로 보든 게 끝난다고 믿고 있다. 죽는 순간 꺼진 생명의 스위치는 다시는 켜지지 않을 거라 믿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게 사실이다. 죽음으로부터 달아날 곳이 없다고 생각하면 때로 울적해진다. 타인의 죽음은 받아들일 수 있다. 살다보면 수없이 타인의 죽음과 마주하게 되니까. 하지만 자기 자신의 죽음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 186, 187쪽

`사랑에 빠지기는 쉽다. 사랑을 유지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 217쪽

`인생의 가장 큰 미스터리는 자기 자신이다. 우리는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절대로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알지 못한다.` - 272쪽

가장 커다란 `의심`은 자기 자신에 대해 품는 의심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을 잘 다스려 `내일에는 내일의 해가 뜬다.`는 낙관주의를 지켜갈 수 있을까?
바로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숙제가 아닐까? - 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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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지금+여기 3
오찬호 지음 / 개마고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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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실패하는 데 있어서 `노력 부족`이란 개인적 변수가 결정적이라면, 왜 그런 부족 현상이 경제력 층위별로 정확하게 구별되어 나타나느냔 말이다. 왜 집안의 `소득`과 개인의 `성공`이 탄탄하게 비례하는 지표들이 수두룩하냔 말이다. 취업 실패 이유에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다. 다만, 성공의 요인이 100% 개인적 역량 때문은 아닌 것처럼, 실패 역시 마찬가지란 얘기다. - 34쪽

바로 여기에 이십대 자기계발하기의 세번째 특징이 있다. `자기 계발에 열심이지 않은 게으른 자`와의 비교에서 자신의 현재에 대한 위안과 만족을 구한다는 점. 진솔이는 "솔직히 게으른 사람보다는 그래도 이것이 괜찮은 거잖아요"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자기계발로 둔갑한 취업준비 과정이 아무리 희생과 상처를 요구하더라도, 이것이 다른 누군가에 비해 시간을 체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면 그 자체를 기꺼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힘들다! 그렇지만 그건 내가 이렇게 체계적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잖아."라는 식으로 말이다. - 60쪽

`내가 투자한 시간`에 대한 이런 집착은 일부러 비교대상을 설정하여 `시간을 써서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무엇에다 얼만큼의 시간을 썼는지`를 따지게 한다. 그래서 그 무엇, 즉 본인에게 어떤 자기계발 결과물이 없어도 거기에 투자한 `과정`만으로도 "너는 나처럼 노력하지 않았잖아!"하는 기준을 만들어내어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다. 이는 이런 자기만족 외에는 만족을 구할 만한 그 무엇도 없다는 절박함 때문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위안을 얻지 않는다면 그 지루한 고통의 과정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 60쪽

그래서 이들의 자기계발은 매우 역설적이다. 취업되기 위해 그 힘든 자기계발을 하는 건데, 결과적으로는 취업과 상관도 없는 단순한 `상대적 비교에서 오는 자기만족`을 위해 자기계발을 하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앞서 그 자체로 만족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자기계발에 대해 말한 바 있지만, 이 경우는 결코 그것도 아니다. 남보다 위에 올라서려는 노력이 자기계발일진대, 그로 인한 성과가 없다보니 일부러 자신보다 비교우위가 `낮은` 집단을 곁에 세워둔 채 위로를 구하는 셈이다. 그러니 여기서도 결국 `자기`계발은 없다. - 60, 61쪽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이십대들의 취업준비란 게 이런 경우든 저런 경우든 다 `긍정`됨으로써 자기계발이 스스로 동력을 얻게 된다는 사실이다. 취업과 직결되든, 이와 별개의 만족감을 주든 다 긍정되니 말이다. 그래서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은, 바로 `누군가와는` 다르게 시간을 사용한다는 데서 만족감을 얻는다는 소리에 다름 아니다. 자기계발하는 이십대의 이 세번째 특징은, 취업이라는 목표로서만 의미 있는(첫번째 특징) 자기계발을 실제로는 별 성과가 없음에도 계속 해야 하는(두번째 특징) 모순의 과정으로 매우 자연스럽게 순환되도록 돕는다. - 61쪽

개인이 사회적 원인으로 고통 받는 상황이 늘고 있다는 게 현재 이십대가 처한 상황의 한 특징이라면, 이를 사회적 원인에서 비롯된 문제로 이해하지 않는 것 역시 지금 이십대가 지닌 특징의 하나로 보인다. - 90쪽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공감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은, 어쨌든 모든 건 자기 할 탓이라는 자기계발 논리에 길들여진 결과이다. 자기계발서는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측정하고자 했다. 고통이란, 한 개인이 특정한 현상에 반응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 상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자기계발서는 고통을 객관적으로 비교 가능한 것으로 해석한다. 즉, A가 아파할 때 그보다 더 심한 고통을 이겨낸 B가 있다면 A의 고통은 참아야 되고, 이겨내야 하고, 사회적 요인과 무관한 것이 되어버린다. 이를테면, 심성 여린 A가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경험한 점장의 횡포에 대한 서러움은, 늘 강한 심성을 가진 덕분에 그보다 더한 것도 참아내는 B가 있기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먹 한 대 맞은 고통은 두 대 맞은 고통보다 그저 `낮은` 순위로 이해될 뿐이다. - 91쪽

지금의 이십대들이 수행하는 `학력의 위계화된 질서`에 관한 집착은 과거의 학력주의보다 훨씬 정교해졌고 자기내면화의 강도도 훨씬 높다. 이들에게 학력에 근거한 비교와 차별은 당연한 것이 되었고, 이를 의문시 할 이유를 굳이 찾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그 결과, 티끌만틈의 의문도 없는 `학력위계주의`가 이십대들에게 내면화되고 있었다. "결과를 책임져라!"는 자기계발을 권하는 사회의 시대정신을 발판삼아서 말이다. - 108쪽

사실 이 지점에서 지금의 이십대가 어떤 모습으로서 이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지가 가장 잘 나타난다. 멸시의 피해자들은 또 어떤 지점에선 멸시의 가해자로 존재한다. 서울대생은 연고대생을, 연고대생은 서강대생을, 서강대생은 또... 그렇게 밑바닥까지 멸시의 고리는 이어진다. 그래서 멸시를 받는 쪽이라고 과연 누군가를 멸시하지 않는다는 말이냐는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대학생 집단은 없다. - 167, 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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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게 길을 물으니 네 멋대로 가라 한다 - 허허당 그림 잠언집
허허당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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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기쁨

밤은 밤이어서 좋고 새벽은 새벽이어서 좋다
너는 너여서 좋고 나는 나여서 좋다
무엇을 탓하는가
일체를 품고 제 존재의 기쁨을 만끽하라

시인은 시를 쓰고 화가는 그림을 그린다
농부는 농사를 짓고 세일즈맨은 세일을 한다
무엇이 더 좋은가
무엇을 하든
그대 존재를 즐기는 것이
가장 좋고 아름답다

생명 있는 모든 것은
존재 그 자체로 온전하다

- 16쪽

넘어 넘어서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언어도
언어 그 자체가 진리인 경우는 없다
말씀에 머물면 말씀의 노예가 되고
부처에 머물렴 부처의 노예가 된다

언어가 있기 전에는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었다
머물지 마라
언어에 머문 그 어떤 것도
참된 진리가 아니다

부처나 신의 이름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대 마음을 보라
바람은 바람이라 말하지 않아도
물은 물이라 말하지 않아도
잘도 불고 잘도 흐른다

가라! 그 어떤 곳에도 머물지 말고
넘어 넘어서

- 44쪽

떠나 있어라

신을 알려면 신을 떠나야 하고
부처를 알려면 부처를 떠나야 한다
매일같이 신을 이야기하는 사람
신을 알 리 없고
매일같이 부처를 이야기하는 사람
부처를 알 리 없다

자신을 알려면 자신을 떠나야 한다

- 45쪽

자유롭다는 것은

아무리 좋은 것도
없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알면
그대는 이미 자유인

자유인의 영혼은
세상 그 어떤 것에도 머물지 않는다
천당이나 극락에도

참 자유인은
외로움도 자유, 고독도 자유다
그에게
외로움은 새의 날개와 같고
고독은 멀리 보는 눈과 같다

자유롭다는 것은
모든 것을 벗어나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품고도 걸림 없는 것을 말한다

- 54쪽

고요히 자신을 보라

고요히 자신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남의 얘기를 함부로 하지 않고
함부로 듣지 않는다

고요히 자신을 내려다보는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남에게 묻지 않고
스스로 깨달음에 귀 기울인다

고요히 자신으 사는 사람은
심호흡으로 숨을 고른다
헐떡이는 숨은 오래가지 못하고
사물을 온전히 바라볼 수 없다
귀가 있어도 눈이 있어도

삶이란 한 숨 한 숨 내쉬는 것
고요히 자신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 56쪽

어떠랴! 한 점 바람이면

오늘은 길 잃은 나그네의 슬픔으로
비에 젖은 아카시아 꽃향기로 서 있고 싶다
내일은 산불에 몸살 앓은 작은 소나무로 서서
노승의 기침 소리에 편지를 써야겠다

너는 태어났다
아무런 부족함 없이
너는 온전했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어떠랴! 한 점 바람이면
잠시 스쳐 지나갈 세상

- 60쪽

본래 인생은

어떤 분이 찾아와
나름 인생 열심히 살았는데
인생 남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그게 정답이라고 했다
본래 인생은
남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고
허망하다고 했다
그런 줄 알면
앞으로의 인생은 아무것도 안 남아도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 76쪽

정직하면 편안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연과의 대화는
언제나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롭다
만물은 있는 그래도 정직하게 반응한다
사람도 정직하면 편안하다

인간의 비극은
아는 것을 모른다 하고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기 때문이다
모든 비극은 여기서 비롯된다

- 77쪽

차라리 홀로

외로운 게 좋겠다
고독한 게 좋겠다
차라리 눈 덮인 소나무 가지처럼
무겁게 휘어져도
지금 세상은
거짓이 진실을 삼켜버리는 시대

외로운 게 좋겠다
고독한 게 좋겠다
차라리 홀로
눈밭에 쓰러져 죽어도

- 83쪽

하나를 전부라 생각하지 마라

무엇이든
하나를 놓고 전부라 생각하지 마라
그것이 무엇이든
사랑, 이별, 혹은 진리일지라도
그것을 전부라고 생각하면
반드시 마음에 상처를 받는다

- 89쪽

네가 만약

시인이 되기 위해 시를 쓴다면
시가 너를 비웃을 것이요
화가가 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면
그림이 너를 배반할 것이다

네가 만약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면
네 삶이 시가 되고
그림이 되게 하라

- 117쪽

순간이 영원이 되게 하라

삶을 수단으로 살지 않고
목적 그 자체로 산다면
미련도 후회도 없을 것이다

삶은 끊임이 없이 변하고 변하는 것
쫓아버려라. 먼 훗날의 생각일랑
지금 무조건 행복하라

인생의 목표를
지금 살아 있는 그 순간에 두어라
순간이 영원이 되게 하라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언제 행복할 수 있으랴

- 146쪽

미련 없이 떠나기

여름의 끝자락에서 울어 대는 매미 소리가
왠지 좀 서글프다
그러나 그 소리가 더욱 더 아름다운 것은
미련 없이 떠날 줄 알기 때문이리
무엇이든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은
더 큰 여운을 남긴다

- 153쪽

아무리 좋은 것도

단비가 단 것은
잠시 스쳐 지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것도
오래 잡고 있으면 괴로움이다.

- 155쪽

아름다운 분노

사람이 분노할 때
자신의 출세나 이익을 위해 분노하는 것은
더없이 추하고, 자신보다 공동의 삶,
대의를 위해 분노하는 것은 더없이 아름답다
진정한 분노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과 자비에서 나온다

모든 성인은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혁명가요, 이단자였다
종교란 맹탕 사랑과 자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아픔을 통철하게 깨닫고
그 아픔을 함께하는 것이다.

- 181쪽

홀연히 떠나는 자

무엇이든 그대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고
칭찬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비난과 칭찬에도 머물지 마라
무엇이든 홀연히 떠나는 자에겐
늘 새로운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 201쪽

너에게 배운다

산중 생활은 비가 오나 눈이 오면
끝없는 상상의 세계에 빠진다
무엇보다 생명의 근원에 대해 자연은
일체 생명이 둘 아님을 보여준다

무심히 피었다 지는 꽃이여
너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기쁘게 했나

그러고도 아무 말 없이 지는 꽃이여
너에게 배운다
세상에 자랑할 만한 것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 244쪽

선인장과 수행자

선인장과 수행자는 닮은 점이 있다
사막에 외롭게 홀로 있는 선인장이
붉은 꽃을 피울 때 사막 전체가 붉듯이
수행자도 고독하게 홀로 있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그 싸늘한 눈빛이

선인장과 수행자는
무리를 이루면 빛을 잃는다

- 2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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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대학교 - 기업의 노예가 된 한국 대학의 자화상
오찬호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경영 마인드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과잉`이다. 대학생들이 경영적 사고로만 무장하게 되면 그것은 개인에게도, 사회 전체에도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다. 무언가에 대한 과잉은 필연적으로 그 대척점의 가치를 외면한다. 명백한 사회구조의 문제 때문에 비판적으로 세상을 의심해야 하는 순간마다, 그리고 정치라는 제도를 발판 삼아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해야 하는 결정적인 상황마다, 자동적으로 "그러다 기업 다 죽어!" "기업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이라는 말부터 튀어나오는 끔찍한 모습을 생각해보라. 기업이 원하는 `별도 교육이 필요 없는` 인재를 대학이 만들어가면서, 이 사회는 도대체 무엇을 잃어버렸을까? - 18쪽

한쪽이 일방적으로 고개를 숙이자 자본의 폭력성은 `변화`라는 단어 속에, `창의성`이라는 애매모호한 분위기에 은폐된다. 자본의 편리함은 순간적으로는 달콤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이면의 불편함을 인지하지 못하게 착시를 일으킨다. 그로 인해 비판은 약해지고 이견에 대한 관용의 촉수는 제거된다. 비판의 파이 자체가 엄청나게 줄어드니 개인의 문제 이외의 변수를 따지는 구조가 존재할 리 없다. 그러니 `인명은 제천`이라는 공자 시대의 교훈만 맴돌 뿐이다. - 19쪽

나는 "대안이 뭔데? 없어? 그 말은 나도 한다"는 식으로 `비판적 사고` 자체의 가치를 조롱하는 프레임을 극도로 혐오한다. 지금 하는 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대안일 뿐, 무슨 이야기를 더 해달라는 말인가? 달달한 케이크를 너무 많이 먹어 건강을 해칠까봐 걱정되면, 안 먹으면 된다. 나는 사람들이 케이크의 단맛을 지나치게 신뢰하고, 그 단맛이 야기하는 부작용을 인지하지 못하는 데 대해 경고할 뿐이다. 이 책의 목적은 대안이랍시고 `경쟁보다 협력`이라는 고도로 낭만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협력이 배제된 경쟁`이 얼마나 끔찍한 모습인지를 공유하는 것이다. - 22, 23쪽

나는 토익 점수가 10점 오를 때마다 대기업 취업 확률이 3퍼센트 더 높아지고, 토익 점수 100점당 연봉이 170만원 더 오르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토익 점수가 높은 학생을 학교에서 우대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의무적으로 이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효율성을 위해 모두를 하나의 목적으로 내몰아버리면 그 목적 이외의 것이 존재할 기회 자체가 차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사회를 기대할 수 없다. - 115쪽

대학이 외부에 손을 벌리면 필연적으로 `무감`의 구조가 만들어진다. `무감`은 공감의 부재다. 공감은 무엇을 `알아야`만 할 수 있는 것이다. 기업에 대한 비판 자체가 봉쇄되면, 기업을 비판하는 말이 나와도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공감이 없으니 비판은 파편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외면하는 것과는 수준이 다르다. `지배당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피지배자`들은 그렇게 탄생한다. - 162, 163쪽

대학교육의 상업화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MIT의 종신교수직을 받지 못한 기술사학자 데이비드 노블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산업체의 지원을 받으면 연구자가 누릴 수 이는 자유는 상대적으로 적어진다. 이제 따라야 할 방침은 하나, 즉 돈을 아까지 않는 후원자의 방침만이 존재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를 안겨준다. 학문 자유의 미래, 토론의 탈정치화(실제로는 의사결정의 비민주화), 논쟁의 질식이 그것이다. (...) 쟁점들을 세세히 따져보는 일이 거의 없다보니 논쟁도 거의 없다. 단지 암묵적인 `줄서기`만 있을 뿐이다. (...) 그러는 동안 수지맞는 산업체와의 연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대학 당국자들은 따르기를 거부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규율하고 고립시키고 제거한다. 기업이 굳이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할 필요도 없다. - 163쪽

대학평가는 이미 `정치적`이다. 평가 자체가 대학을 `솎아내기 위한` 차원에서 그 틀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대학의 생사가 달린 문제이니 대학은 `찍히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평가 결과를 두려워한다.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대학평가는 미국의 시사주간지 `U.S. News and World Report`가 1984년부터 실시했다. 이는 2980년대의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의 한 과정이었다. 미국의 대학은 68운동 이후 과거에 비해 굉장히 좌파적으로 변했는데 정부로서는 이 눈엣가시를 정리할 수단이 바로 대학평가였다. 쉽게 말해, 대학평가는 반(反)자본주의 운동의 온상이었던 대학을 온순한 양들로 길들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의 빗장이 열리기 시작하던 1994년에 중앙일보 대학평가가 시작된 것도 이런 궤적과 무관하지 않다. - 180쪽

상대평가는 이처럼 `논리`를 구조적으로 거세할 `확률`이 높다. `답을 찾아가는 서사과정`을 어떻게 `평가`한다는 말인가? - 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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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기술 - 글쓰기, 누구나 잘할 수 있다!, 개정증보판
배상복 지음 / 씨앤아이북스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문장은 꼭 명문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글 쓰는 일을 신성시하던 것은 옛날 얘기다. 오늘날 명문이란 멋진 단어나 미사여구를 아로새긴 문장이 아니다. 자기 생각을 상대방에게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고, 읽으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글이 현대의 명문이다. 쉽고 재미있는 글이 아니면 요즘 세대는 아예 읽으려 하지 않는다. 과거와 같은 기준으로 글을 쓴다면 외면받기 십상이다. - 11쪽

접속사 `그래서` `그러나`가 문장을 부드럽게 이어 주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군더더기로 문장을 늘어지게 만든다. 접속사를 자제해야 깔끔한 문자잉 된다. 특히 일이 순서대로 진행될 때는 접속사가 글의 긴장감을 떨어뜨리므로 없애는 게 낫다. 진정한 목수는 못을 박지 않는다. -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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