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게 길을 물으니 네 멋대로 가라 한다 - 허허당 그림 잠언집
허허당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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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기쁨

밤은 밤이어서 좋고 새벽은 새벽이어서 좋다
너는 너여서 좋고 나는 나여서 좋다
무엇을 탓하는가
일체를 품고 제 존재의 기쁨을 만끽하라

시인은 시를 쓰고 화가는 그림을 그린다
농부는 농사를 짓고 세일즈맨은 세일을 한다
무엇이 더 좋은가
무엇을 하든
그대 존재를 즐기는 것이
가장 좋고 아름답다

생명 있는 모든 것은
존재 그 자체로 온전하다

- 16쪽

넘어 넘어서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언어도
언어 그 자체가 진리인 경우는 없다
말씀에 머물면 말씀의 노예가 되고
부처에 머물렴 부처의 노예가 된다

언어가 있기 전에는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었다
머물지 마라
언어에 머문 그 어떤 것도
참된 진리가 아니다

부처나 신의 이름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대 마음을 보라
바람은 바람이라 말하지 않아도
물은 물이라 말하지 않아도
잘도 불고 잘도 흐른다

가라! 그 어떤 곳에도 머물지 말고
넘어 넘어서

- 44쪽

떠나 있어라

신을 알려면 신을 떠나야 하고
부처를 알려면 부처를 떠나야 한다
매일같이 신을 이야기하는 사람
신을 알 리 없고
매일같이 부처를 이야기하는 사람
부처를 알 리 없다

자신을 알려면 자신을 떠나야 한다

- 45쪽

자유롭다는 것은

아무리 좋은 것도
없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알면
그대는 이미 자유인

자유인의 영혼은
세상 그 어떤 것에도 머물지 않는다
천당이나 극락에도

참 자유인은
외로움도 자유, 고독도 자유다
그에게
외로움은 새의 날개와 같고
고독은 멀리 보는 눈과 같다

자유롭다는 것은
모든 것을 벗어나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품고도 걸림 없는 것을 말한다

- 54쪽

고요히 자신을 보라

고요히 자신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남의 얘기를 함부로 하지 않고
함부로 듣지 않는다

고요히 자신을 내려다보는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남에게 묻지 않고
스스로 깨달음에 귀 기울인다

고요히 자신으 사는 사람은
심호흡으로 숨을 고른다
헐떡이는 숨은 오래가지 못하고
사물을 온전히 바라볼 수 없다
귀가 있어도 눈이 있어도

삶이란 한 숨 한 숨 내쉬는 것
고요히 자신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 56쪽

어떠랴! 한 점 바람이면

오늘은 길 잃은 나그네의 슬픔으로
비에 젖은 아카시아 꽃향기로 서 있고 싶다
내일은 산불에 몸살 앓은 작은 소나무로 서서
노승의 기침 소리에 편지를 써야겠다

너는 태어났다
아무런 부족함 없이
너는 온전했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어떠랴! 한 점 바람이면
잠시 스쳐 지나갈 세상

- 60쪽

본래 인생은

어떤 분이 찾아와
나름 인생 열심히 살았는데
인생 남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그게 정답이라고 했다
본래 인생은
남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고
허망하다고 했다
그런 줄 알면
앞으로의 인생은 아무것도 안 남아도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 76쪽

정직하면 편안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연과의 대화는
언제나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롭다
만물은 있는 그래도 정직하게 반응한다
사람도 정직하면 편안하다

인간의 비극은
아는 것을 모른다 하고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기 때문이다
모든 비극은 여기서 비롯된다

- 77쪽

차라리 홀로

외로운 게 좋겠다
고독한 게 좋겠다
차라리 눈 덮인 소나무 가지처럼
무겁게 휘어져도
지금 세상은
거짓이 진실을 삼켜버리는 시대

외로운 게 좋겠다
고독한 게 좋겠다
차라리 홀로
눈밭에 쓰러져 죽어도

- 83쪽

하나를 전부라 생각하지 마라

무엇이든
하나를 놓고 전부라 생각하지 마라
그것이 무엇이든
사랑, 이별, 혹은 진리일지라도
그것을 전부라고 생각하면
반드시 마음에 상처를 받는다

- 89쪽

네가 만약

시인이 되기 위해 시를 쓴다면
시가 너를 비웃을 것이요
화가가 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면
그림이 너를 배반할 것이다

네가 만약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면
네 삶이 시가 되고
그림이 되게 하라

- 117쪽

순간이 영원이 되게 하라

삶을 수단으로 살지 않고
목적 그 자체로 산다면
미련도 후회도 없을 것이다

삶은 끊임이 없이 변하고 변하는 것
쫓아버려라. 먼 훗날의 생각일랑
지금 무조건 행복하라

인생의 목표를
지금 살아 있는 그 순간에 두어라
순간이 영원이 되게 하라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언제 행복할 수 있으랴

- 146쪽

미련 없이 떠나기

여름의 끝자락에서 울어 대는 매미 소리가
왠지 좀 서글프다
그러나 그 소리가 더욱 더 아름다운 것은
미련 없이 떠날 줄 알기 때문이리
무엇이든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은
더 큰 여운을 남긴다

- 153쪽

아무리 좋은 것도

단비가 단 것은
잠시 스쳐 지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것도
오래 잡고 있으면 괴로움이다.

- 155쪽

아름다운 분노

사람이 분노할 때
자신의 출세나 이익을 위해 분노하는 것은
더없이 추하고, 자신보다 공동의 삶,
대의를 위해 분노하는 것은 더없이 아름답다
진정한 분노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과 자비에서 나온다

모든 성인은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혁명가요, 이단자였다
종교란 맹탕 사랑과 자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아픔을 통철하게 깨닫고
그 아픔을 함께하는 것이다.

- 181쪽

홀연히 떠나는 자

무엇이든 그대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고
칭찬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비난과 칭찬에도 머물지 마라
무엇이든 홀연히 떠나는 자에겐
늘 새로운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 201쪽

너에게 배운다

산중 생활은 비가 오나 눈이 오면
끝없는 상상의 세계에 빠진다
무엇보다 생명의 근원에 대해 자연은
일체 생명이 둘 아님을 보여준다

무심히 피었다 지는 꽃이여
너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기쁘게 했나

그러고도 아무 말 없이 지는 꽃이여
너에게 배운다
세상에 자랑할 만한 것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 244쪽

선인장과 수행자

선인장과 수행자는 닮은 점이 있다
사막에 외롭게 홀로 있는 선인장이
붉은 꽃을 피울 때 사막 전체가 붉듯이
수행자도 고독하게 홀로 있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그 싸늘한 눈빛이

선인장과 수행자는
무리를 이루면 빛을 잃는다

- 2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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