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굴장으로 - 제139회 나오키상 수상작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권남희 옮김 / 시공사 / 2009년 3월
품절


남편과 산 지 어느덧 4년이 지나서 남편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다. 그의 버릇, 몸짓이 나타내는 의미, 그를 기쁘게 하는 것과 우울하게 하는 것 등등. 물론 모르는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만나기 전, 도쿄에서 지낸 그의 생활에 대해 전부 다 들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내가 모르는 것은 아는 것을 더욱 돋보이게 할 뿐이다.
지금 남편은 내 사람이고 나는 남편의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지. 지난 4년간의 1분 1초는 그 이전의 1분 1초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을 텐데.
혹은 남편과 살고 나서부터, 내 위를 흐르는 세월은 그때까지와는 다른 무엇이 된 건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도 생각해본다. 그러자 역시 신기해진다. 그런 것이 내게 찾아왔다는 사실이...-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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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5구의 여인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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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대한 내 꿈에는 늘 수잔과 메건이 포함돼 있었다. 수잔과 나는 대학교에서 함께 프랑스어 수업을 듣고 하루에 한 시간씩 회화 연습도 했다. 수잔도 파리에서 살고 싶다는 내꿈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돈이 조금 모이면 낡은 주방을 수리해야 했다. 그 다음은 전기배선을 새로 손봐야 했다.
결국 수잔은 우리 둘 다 대학교에서 교수가 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다. 마침내 내가 교수 자리를 얻자 수잔은 안식년을 기다리자고 했다. 좀 더 시간이 흐르자 성장기에 있는 메건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하기 위해 적당한 때를 기다리자고 했다.
수잔은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딱 맞는 시기'가 언제인지 저울질 했다. 문제는 모든 게 수잔의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도약을 앞두고 늘 발목을 잡는 일이 발생했다. 수잔은 지난 5년 동안 '일 년 반 뒤에'라고 말하다가 끝내 프랑스어 수업을 포기했다.-33쪽

"상투적인 생각은 기본적으로 진실이다."
"조지 오웰."-130쪽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군요?"
"쇼핑은 절망에서 나온 행동이니까."
"그건 좀 지나친 표현 아닌가요?"
마지트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되물었다.
"하지만 사실이잖아요. 사람들은 시간만 나면 쇼핑을 해요. 쇼핑은 이 시대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문화가 됐어요. 쇼핑은 사람들의 생활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확인시켜주는 증거죠."
나는 조금 어색하게 웃었다.
"자, 나도 '절망에서 나온 행동'으로 이걸 가져왔어요."-146쪽

"적어도 프랑스 사람들은 두 가지의 다른 세계가 공존한다는 걸 인정하지. 이를테면 가정에 대한 책임감과 자유로운 생활이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며 균형을 유지해가는 거야. 뒤마도 말했어. '결혼의 사슬이란 너무 무거워 여러 사람이 운반해야 한다'라고. 하지만 가정에 대한 책임감과 개인의 자유가 수시로 부딪쳐서는 곤란하겠지. 둘 사이에 팽팽한 균형을 유지해야 하니까."-177쪽

"정말 이상하지 않아? 우리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을 가끔 몹시 심하게 비난하고 나서 후회하지. 그 비난은 사실상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인데도..."-180쪽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또한 그러하기에 모든 게 다 중요하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중요하다는 믿음을 갖고 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망에 빠져 '죽으면 다 소용없는데 왜들 이렇게 애를 쓰나? 내 삶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 것들, 분노, 야망, 사랑, 후회, 실수, 행복의 추구 따위도 내가 죽으면 결국 아무것도 아닐텐데'라는 생각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죽음이 끝이 아니라면?-3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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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을 가다 - 복지국가 여행기 우리시대의 논리 16
박선민 지음 / 후마니타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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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까지 진보 진영이 특정 사안이나 정부의 정책 집행에 반대하는, 이른바 '대정부 투쟁'방식으로 활동해 왔다면, 원내에 진출한 이후에는 문제를 제기하는 동시에 대안도 제시해야 했다. '원칙'을 말하면 '현실'이 되돌아왔다. 원외 투쟁은 목표를 향한 '가치 지향'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원내 투쟁은 현실 정치이기에 더욱더 탄탄하고 정교한 논리가 필요했다. 사실, 많은 경우 집권 여당의 일방적인 강행 처리에 맞서 국회 안에서도 강력한 '행동'이 반대 의견과 동반되었지만 어느 순간에도 논리적으로 우위에 있어야 했다. 전문가 못지않게 정책에 정통해야 했으며 중요한 사안에 대해 순간마다 판단을 내려야 했다. 우리의 실수가, 또는 무능력이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신경을 바싹바싹 타들어 가게 했다.-18쪽

인생에서 결단의 순간은, 언제나 가장 오지 않았으면 하는 때에 온다. -21쪽

마음이 불편했다. 보수당은 변화했고, 사민당은 안주했다. 보수당은 대안을 내세웠고, 사민당은 비난만 했다. 우파는 차이를 극복했고, 좌파는 갈등만 야기했다. 우파의 연합은 굳건했지만, 좌파의 연합은 상처만 남겼다. 보수당이 하는 것을 왜 사민당은 못했을까? 그 이유에 접근해야 사민당이 패배한 진짜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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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멘트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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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 수업시간에 루터의 경구들을 번역하고 있거든."
"그런데?"
"내가 제대로 경구를 골랐는지 말해줘."
"네가 고른 루터의 경구가 뭔지 말해봐."
"Wie bald 'nicht zetzt' 'nie' wird."
"'지금은 아니'가 '전혀'가 되기란 얼마나 순식간인가."
캔디스가 말했다.
"아빠가 생각하기에도 아주 멋진 말이지?"
"그래, 좋은 말은 진실을 담고 있지. 넌 왜 그 말을 골랐니?"
"내가 '지금은 아니'에 속하는 사람은 아닌지 염려스러워서."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빠, 나는 순간순간을 충실하게 살지 못하겠어. 그때그때 행복을 느끼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겠어."
"왜 그럴까?"
"사실은 아빠도 그러면서."
'지금은 아니'가 '전혀'가 되기란 얼마나 순식간인가.
"순간... 순간은 지나치게 과대평가되어 있어."
나는 '순간'이라는 말을 난생처음 접하는 사람처럼 말했다.
"하지만 삶이란 순간들이 모여 이루어지잖아. 오늘 이 밤, 이 대화, 이 순간. 이런 걸 빼면 뭐가 남아?"
"과거."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아빠는 과거에 얽매어 사는 사람이니까. 아빠 책을 읽어보면 그걸 알 수 있어. 아빠는 왜 그렇게 '과거'에 집작해?"
"과거가 있어야 현재도 있으니까."-12-13쪽

기억은 정말이지 감정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뜻밖의 소포가 도착하고, 과거가 한꺼번에 밀어닥친다. 추억과 그 부스러기들이 들쑥날쑥 떠오른다. 그러나 들쑥날쑥한 기억이란 애당초 없다. 그것이 기억에 대한 절대적인 진실이다. 추억과 그 부스러기들은 어떻게든 서로 연관되어 있고, 그 모두에는 사연이 깃들어 있다. 그 중 스스로 인정하는 사연 하나를 우리는 자신의 인생이라 부른다.-33쪽

인간 존재는 우연에 의해 지배된다. 우연의 힘을 절대로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우연히 어떤 때에 어떤 장소에 있게 되었다가 그 우연이 그 사람의 존재를 통째로 바꿀 수도 있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이라는 우연한 리듬에 묶인 포로다.-58쪽

사랑에 빠지게 되면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 모든 일에서 숨은 의미를 찾아내려 한다. 상대도 나를 좋아한다고 느끼며(아니 느낌은 있지만 분명한 증거는 없으며) 연애가 잘 되길 필사적으로 바라는 초창기에 우리는 의미론의 전문가가 된다. 우리는 상대와 나눈 대화 하나하나에 집착한다.-187쪽

우리는 또 사랑을 나눴다. 이번에는 훨씬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서로의 몸이 하나가 되는 쾌감을 선명하게 맛보기 위해.-213쪽

"어떤 헤어짐보다 앞서라. 이렇게 시작하는 릴케의 시를 알아?"
"불길한 시네."
"하지만 시 전체를 보자면 모든 게 변한다는 진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야.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
"다 외울 수 있어?"
페트라가 나를 똑바라 바라보며 시를 낭송했다.
'어떤 헤어짐보다 앞서라. 모든 것이 시작되는 거대한 심연을 생각하라. 가장 깊은 떨림을 주는 원천을 찾아라. 그러면 이 한 번뿐인 삶을 완전히 즐길 수 있을 테니.'-232쪽

'자존심은 가장 파괴적인 힘이야. 자존심이 우리 눈을 가리지. 자존심 때문에 눈이 멀면 자신을 보호하려는 이기적인 생각밖에 못하게 돼. 그럼 우린 주위를 올바로 볼 수 없게 되지. 자존심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게 되는 거야. 진실의 소리가 들려와도 귀를 완전히 닫아버리지. 내 생애 단 한 번 뿐이었던 진정한 사랑을 만나고도 끝내 잃어버리게 된 건 그 빌어먹을 자존심 때문이었어.'-541쪽

우리가 순간을 붙잡지 못한다면 그 순간은 그저 '하나의 순간'에 불과할 뿐이야. 그런 인생은 단지 의미 없는 시간의 흐름일 뿐이라 생각해. 주어진 생명이 다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뿐인 순간들의 합.-568쪽

그동안 살면서 겪은 일들이 모여 존재하는 게 인간이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그 모두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 우리에게 결핍된 것, 간절히 바랐지만 결코 손에 넣을 수 없었던 것, 전혀 바라지 않았지만 결국 가지게 된 것, 찾아내고 잃어버린 것. 그 모두를.-573쪽

우리는 운명을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긴다. 하지만 운명을 조종하는 건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자기도 모르는 새, 자신의 바람과 달리, 우리는 자기 자신의 운명을 조종한다. 아무리 끔찍한 비극과 맞닥뜨려도 우리는 그 비극에 걸려 넘어질지 아니면 넘어서서 앞으로 나아갈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비극에 맞설지 피할지도 선택할 수 있다. 가족에게 구속될 걸 두려워하면서도 가정을 이루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영원히 오점으로 남을 결정이란 걸 알면서도 그대로 밀어붙이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사랑을 받아들일지 피할지도 선택할 수 있다.-574쪽

어쨌든 인생은 선택이다.우리는 늘 자신이 선택한 시나리오 스스로를 설득해야 하고, 앞으로 전진해야 하고,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어야 한다. 아니, 적어도 우리에게 주어진 이 길지 않은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들어야 하고, 어느 정도는 뜻대로 완성해 가야 한다.
완성.
인생에서 '완성'될 수 있는 게 과연 있을까? 아니면 그저 잃어버린 것과 우연히 마주치는 게 인생의 전부일까?-590쪽

사랑을 늘 가장 중요한 발견이다. 계속 줄어드는 인생의 시간. 그 시간의 흐름을 줄이는 사랑이 없다면, 인생이라는 머나먼 여정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 없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삶을 견딜 수 있을까?-5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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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를 팝니다 - 브래드 피트가 심은 나무는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을까
케빈 스미스 지음, 이유진.최수산 옮김 / 이매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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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상쇄 제도는 기후 행동에 관련된 무거운 책임을 전적으로 개인에게 떠넘기는 구조다. 결국 이런 구조는 사람들의 정치적인 영향력을 축소시킨다. 탄소 상쇄 제도는 기후 행동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금전적 가치를 할당해 지배적인 시장 논리에 교묘하게 흡수해버린다. 나를 대신하는 기후 행동 '전문가'를 모시려고 탄소 상쇄 기업 홈페이지를 방문한 뒤 돈을 내고 나면 애초에 기후변화를 일으킨 사회경제 구조 같은 근원적인 문제에 관한 질문은 더는 필요없게 된다.-26-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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