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브 데이즈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3년 11월
절판


사람이 타고난 성격과 반대로 직장에서 가면을 쓰고 오래도록 생활해야 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너무 오래 쓴 가면이 늘어져 맞지 않게 되고, 그토록 애써 감춰온 본모습을 사람들이 보게 될까봐 두려워질까?-20쪽

그때 나는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바다를 목전에 두고 있으면 삶에 아무런 한계도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인간은 바다를 바라보는 동안 끝없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죠."
크리스털이 말을 덧붙였다.
"그 가능성들 중에서 가장 비중이 큰 건 아마도 탈출 가능성일 거에요."
크리스털이 내 마음을 읽었던 걸까? 나는 이곳에 나와 대서양을 마주할 때마다 탈출을 꿈꾸는 게 아닐까?
바다를 볼 때에는 내 모든 인생이 등 뒤에 있었다. 망망대해 앞에 서면 나는 다른 어떤 세상이든 꿈꿀 수 있었다.-31쪽

순진한 젊은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특권들이 있다. 인생의 가능성이 얼마든지 열려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젊은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스스로 인생의 한계를 정하는데 일조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젊음의 특권은 끝난다.-55쪽

'삶은 후회와 끝없이 싸우는 거야'
어느 노래 가사였나? 아니면 아버지가 70번째 생일에 지나가는 말로 나에게 탄식하듯 던진 말이었나?
자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때가 많다는 사실을 점점 더 크게 깨닫는 것, 그것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치러야 하는 대가일까? 결국 우리는 자신에게 가장 적절한 삶의 자리를 찾아내 안주하게 되는 것일까?-61쪽

"사람들은 자기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왜 원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하게 되는지, 왜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원하지 않는 역할을 맡게 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해. 왜 자기 자신이 절망에 빠져 사그러져야 하는 건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비틀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거야. <부활절 퍼레이드>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소설이라 내게는 대단히 흥미로웠어. 소설 끝부분에 에밀리가 조카사위에게 말하잖아. '이제 쉰 살이 다 됐는데도 내 평생 어느 것 하나 이해할 수 있는 게 없어.' 그 말이 이 소설의 흐름을 관통하는 진실이야. 우리의 삶에는 사실 어떤 해결책도 없는 것이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혼돈과 수수께끼뿐..."-90쪽

"아버지는 늘 그러셨어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모른다'라는 세 글자라고요."-142-143쪽

젊은 시절에는 절대로 깨닫지 못하죠.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흐르는지. 그 시절에는 '우연'을 너무 가볍게 보죠. 살면서 피할 수 없이 마주치게 되는 '우연'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불러올지 미처 깨닫지 못하죠.-283쪽

"수많은 우연들이 겹치면서 우리는 한 자리에 있게 되었어. 우리가 선택하지 않을 경우 우연은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가 선택해야만 우연은 비로소 인연으로 바뀌지."-330쪽

"누구나 그런 환상을 갖게 되잖아. 벤은 한 번 무너졌다가 일어나면서 우리의 생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을 깨달았어. 누구나 혼자고 자신의 행복을 책임져줄 사람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을 결코 대신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거야."-333쪽

엊그제, 전혀 뜻밖에 벌어진 일 때문에 나는 여태껏 생각하지 않은 진리 하나를 깨달았다. 스스로 달라질 각오만 있다면 인생은 언제나 경이를 드러내며 열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일깨운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건 경이를 스스로 껴안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구나 경이로울 수 있다는 걸 망각하고 살아왔다. 변화를 두려워해 능력을 매몰시켰다. 우리들의 삶에 찾아드는 온갖 걱정 사이에서 사랑이 가져다주는 기쁨을 잊고 산다면 계절은 메트로놈처럼 오갈 뿐이리라.-357-358쪽

벤은 사랑에 빠진 자기감정을 사랑했다.-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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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 지승호가 묻고 강신주가 답하다
강신주.지승호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5월
품절


모든 인문학은 '고유명사'의 학문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인문학자가 지향하는 것은 자신의 학문을 만드는 거에요. 강신주가 철학자라면 강신주의 철학을 만드는 거에요. 니체Friedrich Nietzsche가 니체의 철학을 만들었듯이. 어떻게 육박해 들어갈 것인가가 고민이죠. 이건 굉장히 중요한 거에요. 모든 인문학과 문화 예술의 핵심은 고유명사거든요. 소설가가 원하는 것도 그거죠. 제목을 안 보고 이름을 안 봐도 내 소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의 문체를 작품에서 이뤄냈는가? 철학자도 마찬가지에요. 강신주는 그렇게 돼야 한다고요. 표지가 뜯겨 나간 책을 봐도 '아, 강신주 글이다', 옆 사람이 책을 줘도 '강신주 새 책 냈네' 이 정도 되면 제 문체를 만드는 데 성공한 거죠. 그러면 저는 잊히지 않아요, 고유명사로서.-24-25쪽

김수영은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죄와 벌>)고 했어요. 우린 남의 눈치를 봐서 자기를 더 아끼는 거죠. -33쪽

그래서 인문학을 고유명사의 학문이라고 하는 거에요. 인문학의 정수는 자기 이름에 걸맞는 글을 써내는 데 있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은 혁명적인 것이고 권력 편을 들 수는 없는 거에요. 인문학은 개인 편을 들고 자유의 편을 들어요. 한국 사회에서도 독재에 저항했던 이들은 문인이었다는 점을 잊으면 안 돼요.-44쪽

결국 인문학 고전을 읽는다는 건 나의 삶이 어떤 철학자나 인문학자에 육박해 들어가는 건데, 내가 시를 못 읽어내고 영화를 제대로 못 보고 철학 책을 제대로 못 읽는다는 건 그만큼 내 삶이 심화되지 않았다는 거에요. 조금 경험하고 조금 고통스러운 인간이 어떻게 알아요? 그래서 자신의 삶을 심화시켜야 해요. 인문학적 보편성은 거기서 오거든요. 책을 못 읽는 것은 비겁하게 자신의 삶을 심화하지 않고 검열하며 조심조심 살아서 그래요. 적어도 마흔이 넘으면 세계문학전집이 쉽게 읽힐 정도로 살았어야 하는데, 사랑도 제대로 못 했고 권력과도 제대로 한번 부딪쳐보지 못했으니 그게 어떻게 읽히겠어요?-55쪽

단순한 공식인데 경쟁, 분리가 인간 사회에 일어나면 체제가 이기는 거고 반反경쟁, 사랑, 공존 쪽으로 가면 체제가 붕괴돼요. 이건 그냥 공식이에요.(웃음) 서로 사랑하지 않게 하고, 서로 경쟁하게 하는 것이 체제고요. 우리가 자유로워진다고 하는 것은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데서 나오는 거죠. 체제를 극복한다고 해서 신뢰가 찾아오지는 않아요. 이미 불신하고 있잖아요. 우리가 사랑하면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어요. 이것은 하나의 인문학적 공식이에요. 우리의 사랑을 막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면 비판적 지식인이 돼요. 이 공식을 잊어버리고 인문학자가 분리와 의심, 불신 쪽으로 담론을 펴면 자기도 모르게 체제에 놀아나게 되는 거죠. 체제는 인간의 불신을 먹고 자랍니다. 불신 안 하면 돼요.-63쪽

'우리'로 들어가면 이미 사회과학으로 들어간 거에요. 인문학이 아니에요. 인문학은 '나'에요. 각자 각자의 나. 그리고 각자 각자의 '나'들이 공명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인문학의 궁극적인 그림이 민주주의죠. 절대적인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내 생각은 있어요, 절대적으로. 그리고 모든 사람이 100퍼센트 같지는 않지만, 디테일은 다르지만, 공명할 수 있다는 보편성. 그것이 인문학의 가능성이고 민주주의의 기초죠.-81-82쪽

사랑할 때 사람은 고독해져요. 왜나햐면 저 사람이 내 뜻대로 안 되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위대한 건 나 말고 타인도 자유롭다는 것을 자각하기 때문이에요. 반대로 사랑은 상대방에게 자유가 없다고 느껴질 때 붕괴되는 거에요. 내가 그렇게 판단 내릴 때, 완전히 내가 소유했다고 여길 때 상대방에게 자유는 없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가 진짜 좋아했던 것은 그 사람의 자유였던 거에요. 결혼 후에 사랑이 식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결혼 제도는 소유의 제도에요. 배타적 성적 소유에서 재산의 소유까지.-90쪽

그러니까 나이 드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젊음을 어떻게 유지하고, 날카로움을 어떻게 유지하느냐의 문제죠. 세계를 용서하면 안 돼요. 나쁜 놈들이 있기 때문에 세계랑 화해하면 안 돼요. 나쁜 놈들은 나쁜 놈들이고, 도와줄 사람은 도와줘야죠. 세상은 이분법적이에요. 그걸 초월하는 순간 고상한 책이 나오고 보수적인 책이 나오는 거예요. 저는 죽을 때까지 이분법적이었으면 좋겠어요. 나쁜 놈은 나쁜 놈이라고 하고. 50, 60대에 썼는데 30대에 쓴 것처럼 읽히는, 날카로움을 가진, 칼이 무뎌지지 않은 인문학자가 돼야죠. 칼이 무뎌지면 글쓰기를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105쪽

죽을 때까지 살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나이 든' 사람들을 싫어해요. 그건 원숙함이 아니에요. 지침의 표현이죠. 지친 거에요. 젊은 애들은 산에 올라가는데 자기는 못 오르니까 '산에 올라가야만 맛이냐?'라면서 우리를 힘 빠지게 만드는 거죠. 실천하도록 하는 글,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글, 관조하지 않도록 하는 글, 삶에 직면하고 살아감에 직면하는 글을 써야 해요. 죽었다 깨어나도.-105-106쪽

억압이 존재하는 곳인데 자유에 고통이 없다면 그 자유는 허용된 자유인 거에요. 억압이 존재한다면 자유는 고통스럽기 마련이에요. 김수영에게 고통과 자유는 같은 거에요. (...) 억압이 상존하는 곳에서 자유에 고통이 없으면 허용된 자유고 길들여진 자유에요. 그런데 다 자유롭대요, 자본의 억압부터 오만 억압이 다 있는데, 알아서 다 피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김수영이 자유를 얘기했을 때 사람들이 그 자유를 잘 모르는 거죠. 자유의 이미지는 아까 말한 역동적으로 돌고 있는 팽이, 그 이미지로 봐야 해요. 그렇게 스스로 도는 것이 곧 저항이고요.-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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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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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된 목적은 인생을 간결하게 한다." 하고 사라가 말했다.
쓰쿠루는 거기에 동의했다.-32쪽

"기억을 어딘가에 잘 감추었다 해도, 깊은 곳에 잘 가라 앉혔다 해도, 거기서 비롯한 역사를 지울 수는 없어."-51쪽

질투란, 쓰쿠루가 꿈속에서 이해한 바로는,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감옥이다. 왜나햐면 그것은 죄인이 스스로를 가둔 감옥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힘으로 제압하여 집어넣은 것이 아니다. 스스로 거기게 들어가 안에서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를 철창 바깥으로 던져 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가 그곳에 유폐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물론 나가려고 자기가 결심만 한다면 거기서 나올 수 있다. 감옥은 그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그러나 그런 결심이 서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돌벽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것이야말로 질투의 본질인 것이다.-60-61쪽

"요리사는 웨이터를 증오하고, 그 둘은 손님을 증오한다. 아널드 웨스커(Arnold Wesker)의 <부엌>이라는 희곡에 나오는 말이에요. 자유를 빼앗긴 인간은 반드시 누군가를 증오하게 되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그런 삶은 살기 싫어요."-83쪽

"창의력이란 사려 깊은 모방말고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현실주의자 볼테르가 한 말이에요."-84쪽

쓰쿠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생이 아주 순조로운 것 같아."
"순조로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착실하게 전진하고 있어. 다시 말해 절대 뒤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거지." 아오는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189쪽

"우리 같은 인간이 스스로에게 정직하고 자유롭게 살아간다는 게 여기서는 간단한 일이 아니야. ... 어이, 이런거 엄청난 패러독스라는 생각 안들어? 우리는 삶의 과정에서 진실한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발견하게 돼. 그리고 발견할수록 자기 자신을 상실해 가는 거야."-244쪽

쓰쿠르는 말을 계속했다.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마치 항해하는 배의 갑판에서 밤바다 속으로 갑자기 혼자만 떠밀려 빠져 버린 듯한 기분이었어."-342쪽

가 버린 시간이 날카롭고 긴 꼬챙이가 되어 그의 심장을 꿰뚫었다. 소리 없는 은색 고통이 다가와 등골을 차갑고 딱딱한 얼음 기둥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 아픔은 언제까지고 같은 강도로 거기 머물렀다. 그는 숨을 멈추고 눈을 꼭 감은 채 가만히 아픔을 견뎌 냈다.-363쪽

내 인생은 스무 살 시점에서 실질적으로 발걸음을 멈춰버린 것 같다고 다자키 쓰쿠르는 신주쿠 역의 벤치에 앉아 생각했다. 그 이후 찾아온 나날들은 거의 무게가 없었다. 시간은 잔잔한 바람처럼 그의 주의를 조용히 불어 지나갔다. 상처도 남기지 않고 슬픔도 남기지 않고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도 않고 이렇다 할 기쁨도 추억도 남기지 않고. 그리고 이제 그는 중년의 영역으로 접어들려 했다.-4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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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나요, 내 인생
최갑수 글.사진 / 나무수 / 2010년 11월
구판절판


솔직하게 인정하자.
현실은 언제나 당신이 기대하는 것보다 엉망이고, 당신이 아무리 극진하게 살아도 당신의 생은 여전히 고달프고, 게다가 나아질 기미는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떠나간 사랑이 돌아올 확률은 아파트 당첨 확률보다 낮다는 사실. 당신은 아파하고 슬퍼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이 지난한 생을 견뎌 내고, 살아 내는 까닭은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식 하나쯤은 어렵풋이나마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62쪽

당신은 봄 앞에서, 봄이 오는 것을 반가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봄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 꽃 앞에서, 꽃이 피는 것을 두근거려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는 것을 애타 하는 사람.
그래서 언제나 아픈 사람.-94쪽

어쩌면 우리는 그 무엇인가를 한 사람에게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평생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102쪽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사랑은 어렵고 힘겹고 눈물겹고, 때로는 구차하고, 때로는 비겁하다는 사실을. 사랑이 이러한 이유는 사랑이라는 말 속에 이별이라는 말이 녹아있기 때문임을.-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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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유학 이민 사용설명서 - 성공적인 영어, 유학, 그리고 이민을 위한 지침서
박지용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10년 7월
절판


서양사회에서 학벌이란 필요나 관심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특히 각 개인의 조건과 환경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사항이다. 물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그가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면 된다. 그리고 여건이 갖추어지거나 필요성이 느껴질 때 자신이 원하는 방향에 맞는 학벌을 만들면 된다. 즉 서양인들에게 행복과 만족은 학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와 선택에서 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한국에서의 학벌의식은 자신으로부터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주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집단의식에 가깝다. 이 허구적인 집단의식이 개인의 적성, 욕구, 상황보다 상위의 가치로 여겨지는데 문제가 있다. 지식이나 기술에 대한 탐구보다는 겉으로 보이는 학벌, 성적, 지위 등에 집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82쪽

창의적 사고는 얻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이런 사고를 가로 막는 것은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집단주의적 사고와 문화이다. 집단주의적 사고는 기존의 관습이나 전통, 예절, 이념, 가치 등에 대해 비판하거나 분석하는 행위 자체를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고 차단하기 쉽다. 그래서 창의적 사고도 집단의 틀에서만 이루어지도록 강요한다. 적어도 서양사회에서 창의적인 한국인으로 살고자 한다면 자신이 속한 여러 집단에 얽매여 집단에 의해 자신의 삶을 규정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로부터 의식적으로 벗어나 집단과 개인 사이에 일정한 심리적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자신과 집단을 비판하고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123쪽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한 개인이 비록 집단의 일원이라고 해도 그것은 그의 역할 또는 임무에 의하여 '참여하는 것'으로 집단 속 개인 또한 독립된 개체로 여긴다. 즉 서양사회에서 집단이란 각 개인이 모인 집합체를 의미하며, 개인이 집단 자체보다 상위 개념이다. 그래서 구체적인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정보보다 그 사람의 실질적인 능력과 경험에 대해 관심을 갖으며, 각자의 장단점을 잘 연결시켜 업무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개인의 능력을 바탕으로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고 사적으로 알아가는 것은 함께 일을 하면서 얻게 되는 부산물로 여긴다.-189쪽

그러나 동양사회에서 집단이란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 의해 종속된 것을 의미하며, 집단이 개인보다 상위 개념이다. 그래서 집단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그 관계망에 자신을 연결시키기 위해 각 구성원의 개인적인 것들에 관심을 갖으며, 나이, 직금, 가족, 수입, 학력, 지연, 혈연 등 개인적인 정보를 통해 관계적 질서를 스스로 정리한다. 심지어 집단의 요구에 자신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개인의 존재는 관계 속에서 희미해지는 대신 소속감과 안정감을 얻게 된다. 동양인이 이렇게 인간관계에 집착하는 것은 집단 또는 사회 내에서 개인의 위치를 권력의 구조로서 이해하고, 자신을 그 질서 속에 끼워 넣어 다른 구성원과의 관계를 구조화하거나 자신의 정서적, 사회적 태도와 처신을 분명히 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집단주의적 태도와 행위는 독립적인 주체로서 자주성, 자립성, 창의성을 요구하는 서양의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도 있다.-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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