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메이커 - 우리가 몰랐던 선거전의 비밀
EBS 킹메이커 제작팀 지음 / 김영사on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선거철(대선이 아닌 총선이긴 하지만)이 다가오자 약간의 피로감이 온다. 그리 살기 좋은 동네는 아닌 우리 동네를 거닐면서 이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매번 왜 새누리당에 투표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떠올렸다. 찾아보니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라는 제목의 책이 이미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 책을 읽어볼까 하다가 연관되어 있는  책 중에 <킹메이커>가 있어 제목이 주는 임팩트 때문에 이것을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킹메이커'는 과연 국민인가, 아니면 유권자들을 프레임에 가두어 움직이게 하는 다른 세력인가, 라는 의문과 함께.

우리 부모님을 비롯한 노년층은 자신들이 살아온 경험을 '안다'라고 인식하고 있고, 이와 반대로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은 아직 인생을, 정치를, 세계를 잘 '모른다'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는 정치 신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노년층의 인식일 터이다. 자신들이 인지하지 않은 인물에 대한 거부감과 비신뢰.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후보자들이 대통령 옆에서 사진을 찍고, 유력한 대권 후보자 옆에서 사진을 찍어, 이를 자신의 홍보수단으로 삼는 것이 아니겠는가. '저는 당신이 아는 이분들과 함께 해온 사람입니다.' 라고 어필하며.
게다가 노년층에게 있어 그들이 경험해온 굴곡진 한국사는 누구나 경험할 수 없는 극적인 스토리임에 틀림 없다. 그런데 이제 와서 살만해졌다고 과거를 비난하거나 지우려하는 것은 어찌보면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부정'과 도 같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에는 지긋지긋했을지 모를 박정희를 아직도 마음속에서 털어내지 못하며, 그래도 그때는 괜찮았다는 회고적 환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너희들이 뭘 알아?' 혹은 '그때가 좋았다'는 회고적 성격은 정치 영역에서는 확고한 보수적 지지 기반으로 탈바꿈 된다.

노년층이야 그렇다고 치고, 젊은 유권자들의 정치성향은 왜 보수화되는 것일까, 라는 것이 내 또 다른 궁금증이었다. 그런데 미국 (그리고 소련) 대통령 선거에 대한 분석을 통해 프레임을 분석하는 이 책을 읽고 다소 의문이 풀렸다. 결국 지난 2번의 대선에서 야당은 프레임 전쟁에서 패배했었던 것이다. 몇 가지를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네거티브는 효과가 있다. 점잖은 척 무대응을 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비난을 묵인하는 것이 된다. 네거티브에 부정적인 유권자들도 결국 네거티브의 내용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네거티브는 기본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의 형태를 갖고 있기 때문에 네거티브가 난무하게 되는 순간부터 정책 이슈는 사라지고 만다. 결국 승리한 측에서도 선거 승리 이후 별다른 정책 아젠다를 제시하지 못하며, 그 피해는 정치권과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다. 부시 진영의 리 애드워터가 임종을 앞두고 그가 네거티브 전략으로 부시를 당선시킴으로써 미국 정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 것에 반성하며, '내가 만든 청사진을 따라가지 말라, 치워버려라,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자.

2. 프레임에 대한 대응은 자신의 언어로 해야 한다. 예컨대 '4대강 살리기'라는 아젠다를 제시한 새누리당에 대해서 '그것은 4대강 살리기가 아니라 4대강 죽이기다'라며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선점한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기만의 언어를 사용했어야 했다. 그나마 최근 프레임 대응은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다. '테러방지법'에 대하여서 자신들만의 용어로 변조하여 대응하면서 프레임 선점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전략이 (법안 통과라는 결과는 별론으로 하고) 국민들에게 어필했던 것 같다.


3. 중도파는 허상이다. 그것은 평균값이지 실체가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어떤 면에서는 진보적일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보수적일 수 있다. 여러 가지 항목을 늘어놓고 진보와 보수에 체크를 해 평균을 낸 값이 나를 '중도'라고 칭할 수는 있을 것이지만, 나는 원자력 발전에 반대하고, 재생에너지에 찬성하고, 경제성장보다는 분배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하면, 인권 못지 않게 동물권도 중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국방, 치안이나 안전을 비롯한 그 밖의 다른 사안들에 대해서는 보수적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어느 정당이 나와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포섭하기 위하여 정책을 바꾸어 국방 강화, 성범죄자 형량 강화, 사형제 존치 등의 정책을 제안한다고 해서 표를 얻을 수 있을까? 다양한 성향을 맞추기 위하여 노선을 수정하는 것보다는 자신들의 정책을 보다 세밀하게 검토하여 정립하고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방안이라는 것이다.


4. 마지막은 소통이다. 이것은 SNS 계정을 만들었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많은 팔로워나 친구를 가졌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많은 유권자들의 의견을 검토하고 분석하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 팩트(fact)가 아닌 것에 대해서는 수정하고 설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난 대선에서 댓글의 영향을 이미 확인하지 않았던가.


<킹메이커>는 유권자들이 휩쓸리지 않고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선거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이기도 하지만, 정치인들에게는 선거에 대한 '전략'을 제시하는 책일 수도 있다. (정치인이 아닌) 나는 이 책을 통하여 몇 년사이 급격히 퇴보한 한국 정치와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가늠해보고, 정당들의 뻔한 전략을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되는 유권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랐다. 이 책을 덮으면서는 처음 책을 펼쳤을 때의 질문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킹메이커'는 과연 국민인가? 나는, 우리는 '킹메이커'가 될 수 있을까?

네거티브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은 1978년 맥도널드 햄버거를 둘러싼 논란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78년 당시 미국에서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괴소문이 돌았다. 바로 맥도널드 햄버거 고기의 원료가 지렁이 고기라는 소문이었다.
맥도널드 측은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즉각 반박했다. 그리고 `우리 햄버거에는 지렁이 고기가 들어있지 않습니다`라고 매장에 써 놓기까지 했지만 매출은 오히려 떨어졌다. 맥도널드의 해명은 소비자들에게 오히려 지렁이에 대한 연상 작용을 강화시킬 뿐이었다. 막대한 손실을 입은 맥도널드는 집중적인 연구를 통해 두 가지 해결책을 찾았다.
하나는 고급 레스토랑 스테이크에서도 지렁이 고기를 봤다는 헛소문을 내는 것이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더 큰 충격을 받아서 값싼 패스트푸드인 맥도널드와 지렁이의 연관성을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맥도널드는 햄버거에 대한 관심을 돌리기 위해 다른 쟁점을 제시했다. 밀크쉐이크와 감자튀김을 집중적으로 홍보하면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햄버거에서 돌렸다. 그러면서 맥도널드는 괴소문 때문에 받은 타격에서 서서히 벗어날 수 있었다. - 37쪽

"가장 최악의 대응은 그 공격을 반복하면서 방어하는 것입니다. 그 공격을 반복하는 게 문제죠. 이것은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상대방을 돕는 셈이에요. 프레임을 부인하려고 할수록 오히려 프레임을 활성화시키는 거죠. `코끼리를 생각하지마라`는 말을 들으면 코끼리를 먼저 떠올리게 되듯이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면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대의 공격을 반복하는 대신 자신의 견해를 말해야 합니다. 자신의 도덕적 입장과 신념, 그리고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야 하죠. 나아가 이에 반대되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야 해요. 그냥 방어하는 거죠. 자신의 신념을 말함으로써 자신의 도덕 시스템을 활성화할 수 있어요." - 조지 레이코프(버클리대 언어학과 교수, <프레임 전쟁> 저자) - 37, 38쪽

듀카키스가 1988년 대선에서 패배한 이유 중 하나는 부시가 일으킨 공격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하리라 생각했다. 부시의 공격이 잘못된 것이고 부적절한 공격임을 유권자들이 자연스레 알게 되리라 여겼다.
하지만 듀카키스가 대응하지 않자 대중은 부시의 공격 내용을 오히려 믿게 되었다. 대중은 뭔가 잘못되었다면 듀카키스가 진실을 말할 것이라고 추측했는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상대 후보의 공격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반격해서 논의의 중심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 39쪽

여론조사를 보면 유권자들은 네거티브 선거운동이 나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면서도 왜 유권자들은 이에 반응하고, 어째서 이것은 효과가 있는 걸까? 네거티브 선거운동의 내용과 진실 사이에는 아주 미세한 차이가 있다. 일종의 균형잡기 같은 것이다. 효과적인 네거티브 선거운동은 거짓이 아니거나 잘못된 정보라는 것을 간단히 증명하기 어렵다. 네거티브 선거운동은 많은 경우 내용의 사실을 조작한다. 반만 진실을 말하도록 숫자를 조작하는 경우도 있다. 깊이 조사하지 않거나,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따져서 오류를 찾아내지 않으면 이러한 네거티브 선거운도으이 내용은 매우 그럴듯해 보이기 쉽다. 개인의 이력이나 공식발표와 같은 쉽게 증명할 수 있는 정보를 이용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그래서 결국 설문조사 당시 유권자들이 네거티브 선거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답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 53, 54쪽

대통령이 좋은 업적을 남기를 위해서는 선거 과정에서 자신의 정책을 유권자들에게 설득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선거를 통해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생기고 취임 이후 정책을 집행할 추진력이 생긴다. 성공한 대통령이었던 루스벨트나 레이건 등은 모두 선거 과정에서 자신의 정책에 대한 국민의 동의를 얻었고 강력한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직 네거티브에만 집중하는 선거는 이런 기회를 빼앗아 버린다. 유권자들은 당선자가 어떤 정책을 집행할지 알 수가 없다. 그럴 경우 유권자들은 오직 누구누구가 싫어서 그 사람을 뽑았을 뿐인 상황에 처하게 된다. 결국 네거티브 선거는 낙선자뿐 아니라 당선자에게도 상처를 입히는 셈이다. - 82, 83쪽

결국 실험 참가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모순에 대해서는 감정적으로 접근해 관용의 자세를 취하고, 반대 후보의 모순에 대해서는 이성적으로 접근해 원칙의 자세를 취한 셈이다. 모순을 파악할 때에는 이성을 움직여야 하는데 왜 감정적인 영역이 작동하는 것일까?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장 조장희 박사에 따르면, 가족이나 주위의 사람들이 오랫동안 어떤 당 혹은 그 당의 후보를 지지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를 긍정하는 편견과 그를 지지하는 습관을 갖게 된다고 한다. 거기에 자기 이익이 결부되면 그 편견과 관습은 더욱 공고해진다. 이 경우 우리 뇌는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정보를 찾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외면하거나 잘못되었다고 간주하는 동기화된 추론을 하게 된다. 그로인해 우리는 지지하는 당이나 후보에 관한 정보를 접하면 이성적으로 판단하기보다 감정적으로 처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 114, 115쪽

실험팀은 이 실험의 교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선거운동에서 보수와 진보, 양 진영에 있는 30퍼센트 내외인 상대편 지지자들에 잘 보이려고 한발 다가가는 전략을 내놓을 필요는 없다. 어떤 경우에도 그들은 당신을 지지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 115쪽

조지 레이코프 교수는 중도적인 전략으로 중간에 위치한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중도파를 위한 이데올로기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중도파의 신념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중도파는 사안에 따라 진보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조합인 셈이다. - 121, 122쪽

레이코프 교수는 중도 성향의 사람들을 이끌어 다수당이 되기 위해 중도화 노선을 취하는 것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말하며, 특히 기계적으로 중간으로 이동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사회적으로 어떤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는데 이 쟁점에 대해 중간 위치를 지키려면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거나,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이야기가 바뀌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936년, 대선에서 루스벨트와 맞섰던 알프레드 렌든(1936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이 그런 실수를 했다. 랜든은 루스벨트의 뉴딜에 대항한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나왔지만 뉴딜을 직접 공격하기 어려웠다. 여러 전략을 펼쳤지만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하던 그는 급기야 뉴딜정책에 동조하는 발언과 반대하는 발언을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 136, 137쪽

득표를 위해 중간으로 이동하는 태도는 선거에서 아무런 효과가 없다. 애초에 그런 입장을 가진 유권자가 없으니 아무도 설득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이런 태도는 유권자들에게 후보자의 진정선을 의심하게 만든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원래의 신념을 버리고 정치적 이해에 따라 왔다 갔다 한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도 성향의 유권자는 중도가 아닌 자신의 도덕적 가치에 부합하는 보수 혹은 진보를 선택하는 것이다. 결국 후보자는 자신의 도덕적 가치에 부합하는 유권자들을 찾아 모으는 것이 유리하고, 자신의 도덕적 가치로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셈이다. 후보자가 더 많은 유권자들과 도덕적 가치를 함께 할 수 있을 때, 후보자와 유권자 사이의 유대감이 단단해지고 후보자는 당선자, 나아가 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다. - 141, 142쪽

이슈에 따라 진보적 입장과 보수적 입장을 넘나드는 이중개념주의자들, 즉 중도파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중개념 체계를 가진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자신의 개념 체계와 언어로 이야기 해야 한다. 왜냐하면 언어는 신경회로에 있는 프레임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정치에서는 이 프레임들이 사람들의 도덕 체계와 연결되어 있다. 보수주의자의 언어는 보수적인 도덕 시스템을 자극하고 이를 강화시킨다. 신경회로가 활성화될 때마다 더 강해진다. 그러나 상대방의 언어를 사용하면 이를 반박하거나 부인하더라도, 상대방의 프레임과 도덕 체계가 활성화되는 반면 상대적으로 자신의 프레임과 도덕 체계는 약해진다. - 148쪽

정치인의 단어 선택에 따라 유권자들의 사고 프레임이 결정되고 정책과 정당에 대한 선호가 달라진다. - 15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엘론 머스크, 대담한 도전 - “아이언맨”의 실제 모델, 미래를 바꾸는 천재 경영자
다케우치 가즈마사 지음, 이수형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

요즘 내가 가장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경영자가 바로 엘론 머스크다. 그의 이상이나 철학 못지않게 실제로 보여주는 실적과 결과는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엘론 머스크 일대기와 페이팔(온라인 결재), 테슬라(태양열 자동차), 스페이스X(재활용 로켓)와 같은 그의 사업에 대한 배경과 성과를 적절하게 정리하면서, 그가 그려나가는 궤적이 우리들에게 주는 메세지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몇 가지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1. 목표의식: 성공 이상의 무엇


엘론 머스크는 테슬라, 솔라시티, 스페이스X와 같은 굴지의 기업들을 통하여 누구나 놀랄만한 성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에는 태양광을 이용하여 지구온난화가 더이상 악화되지 않게 하고, 지구의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화성으로의 이주가 필요하다는 바탕이 깔려 있다. 일반인으로서는 바로 수긍하기 어려운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사업의 성공이나 단순한 부의 축적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자신만의 이상을 굳은 신념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래서 눈앞에 펼쳐진 장해에 굴하지 않고 수많은 실패와 복잡한 난관들을 뚝심있게 헤쳐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2. 노력과 끈기


너무나 당연한 항목이지만, 그의 천재성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노력과 끈기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가 그토록 많이 사업에 실패를 했고, 사람들의 비웃음 꺼리가 되었으며, 다른 사업자들에 의해 견제를 당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는 쉬지 않고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다. 흔히 말하는 '한 방'을 기대했다면 지금의 엘론 머스크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너무나도 쉽게 간과하는 것은, 천재도 수없이 실패하고 좌절하지만 결국 노력이 그를 구한다는 것이다. 


3. 실행


그의 천재성은 노력에 따른 산물이지만, 그의 성공은 실행과 추진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그가 실패를 손실이 아닌 경험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양한 실패는 결국 적합한 결론을 찾기 위한 경험이 되고 데이터가 되고 밑거름이 된다. 그리고 실패할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실행력을 점점 떨어뜨리는 탁상 위의 회의보다는 생각을 바로 실행하는 것을 중요시 했기 때문에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아무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그가 해낸 것이다. 

태양열은 경쟁력이 없다며 아직도 전통적인 석유 에너지를 고수하려 하는 기득권 세력, 테슬라보다 먼저 전기차를 출시했음에도 더이상의 성과나 진전이 없이 현재는 그저그런 자동차 회사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GM, 수천억 달러의 비용을 들인 장기적 프로젝트로만 우주항공 개발에 힘쓰려 하는 NASA, 여전히 고민하고 주저하고 있는 이런 거대 조직들은 엘론 머스크의 반면 교사였을 것이다.


**

우리는 흔히 천재는 뛰어난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노력에 비해 탁월한 성과를 내는 특별한 사람이거나 일반인들과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상식 파괴자인 괴짜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엘론 머스크, 대담한 도전>에서 조명한 천재, 엘론 머스크는 하나의 문제에 대하여 끊임없이 생각하고,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여, 마침내 새로운 문제해결의 방식을 이끌어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문제를 풀기 시작할 때부터 가능하리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하다 보면 길이 열립니다. 가능성은 만들어지는 겁니다." - 11쪽

"설령 발전소에서 화석연료를 태워 만들어낸 전기를 전기자동차에 충전하더라도 전기자동차가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예를 들어 화력 발전소에서 화석연료를 태워 얻는 전기는 연료 대비 효율이 약 60퍼센트다. 그런데 화석연료인 가솔린을 자동차 연료로 사용할 때의 효율은 20-30퍼센트에 불과하다. 더구나 도심지를 달릴 때는 최대 출력의 10퍼센트 이하의 힘밖에 필요치 않아 그 효율이 15퍼센트 정도까지 내려간다. 그렇다면 가솔린자동차는 연료의 약 80퍼센트를 열 손실로 외부에 버리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 97, 98쪽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것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보다 백 배, 천 배 더 어렵다."
사업가의 역할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겨 제품화하고 이를 다시 소비자에게 팔아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 그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사업 혹은 비즈니스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소비자가 그 제품에 만족해 반복구매가 일어나면 그것은 성공적인 비즈니스로 성장할 수 있다.
만약 머스크가 `현실로 구현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아이디어의 사업화를 단념했다면 아마 테슬라는 지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테슬라는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아이디어를 현실화한 그 시점에 마침내 최고의 전기자동차 모델 S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 146쪽

NASA에서는 어떤 제안이 나오면 오랫동안 분석하고 검토하는 것은 물론 수차례 회의를 반복한 후에야 간신히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조직 규모 자체가 워낙 크고 수직적 구조라 빠른 의사결정이 어려운 것이다.
더욱 독특한 것은 스페이스X에서는 회의실에서만 논의가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자리에 앉아 논쟁으로 낭비할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시제품을 만들어 실험을 해보라는 게 머스크와 스페이스X가 원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서류 작업에 만전을 기하지 않으면 절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는 NASA식 관료주의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스페이스X에서는 누군가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 즉시 시제품을 만들어 실험을 한다. 만일 실험 결과가 기대치보다 나쁠 경우 그것을 실패로 생각하지 않고 `다음 실험에 도움이 될 귀중한 데이터를 얻었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 180쪽

스페이스X는 파격적인 규모의 낮은 비용으로 로켓을 만들어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머스크는 "그 성공은 혁명적인 돌파가 아니라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노력해서 이룬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우리의 비용 절감은 과감한 돌파력에서 이뤄진다"며 스페이스X의 `무기`를 자랑스럽게 강조했다. - 18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트레이얼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더글러스 케네디의 소설에는 일정한 패턴이 보인다. 주인공의 평범한 일상에 갑자기 위기가 닥치고, 주인공은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여 모든 것을 잃게 되는데, 그 밑바닥에서 새로운 영감 혹은 기회를 얻어 인생을 재기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소설을 읽는 동안 감정이입이 되면 주인공이 제발 예정된 불행의 길로 들어서지 않기를 바라며 읽게 된다. 그러나 책의 내용 중 어느 목사와의 대화에서 처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려고" 한다. 그렇기에 어떤 분위기나 정황을 감지한 책 밖의 독자가 책 안의 주인공에게 바라는 기대는 쉽사리 무너지고, 독자는 주인공과 하나가 되어 고난과 역경을 경험하고 이겨낸다.


<비트레이얼>도 마찬가지이다. 아버지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과 경제적 무능함을 어린 시절 경험했던 주인공(로빈)은, 화가로서의 재능이 매우 뛰어고 매력적이지만 자신의 재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보헤미안(폴)을 만나 결혼하는 '모순'에 빠진다. 그리고 밝혀지는 폴의 숨겨진 과거와 현재에 대해 로빈은 스스로 변화시킬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무작정 뛰어든다. 그 길에는 알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이 도사리고 있음을 예상하면서도. 어찌보면 그가 스스로 자초한 불행의 원인이 모든 것에 똑뿌러지는 결말을 원하는 그의 방식일지, 자신의 결혼을 불행하게 끝내고 싶지 않은 마음일지, 폴 (또는 아버지)에 대한 일말의 연민일지, 그에게 심하게 했던 자신에 대한 죄책감일지, 자신도 모르게 어쩔 수 없이 상황에 떠밀려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매순간 '이번 일만 처리하고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겠다'는 그의 다짐 이면에는 살면서 맞게 되는 선택 앞에서 현실적인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자신의 고집대로 일을 끌고 가는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 것도 같다.


자신의 삶을 망가뜨린 상대방에게 통쾌한 복수를 하며 성공의 길로 들어서는 주인공을 그린 케네디의 기존 소설들에 비해 이 책은 폴이나 그를 곤경에 빠뜨린 벤 핫산에 대한 완벽한 복수는 그려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게 되고, 여전히 폴에 대한 연민을 간직한 채 현실에 적응하는 로빈을 그리고 있다. 폴에 대한 분노는 사라지고, 죄책감은 연민이 된 것일까. 아니면, 그의 배신과 거짓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일까. 비록 폴은 사라졌지만 그의 자리를 메워줄 아이를 통해 로빈의 모순과 불행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채색될 수 있는 것일까.

 

눈을 떼기 힘든 빠른 전개와 실제로 보는 듯한 다양한 묘사는 여전하지만, 작가가 제시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다소 불분명하고 부족한 것 같다.

폴이 내 손을 잡았고, 우리는 발코니 의자에 앉아 먼동이 트는 하늘을 지켜보았다.
"이맘때를 뭐라고 표현하는지 알아?"
"새벽?"
"새벽이나 동틀 무렵 말고, 다른 말이 있어."
"시적인 말이야?"
"제법 시적이지. 이 무렵을 `블루 아워`라고 해."
"블루 아워."
나는 잠시 그 말을 머릿속으로 되뇌며 입으로도 소리 내어 말해 보았다.
"어때, 제법 시적인 말이지?"
"너무 어둡지도 가볍지도 않은 말이야."
"모든 사물이 평소와 다르게 보이고, 우리가 상상과 지작 사이에 갇혀 있는 때라 할 수 있지."
"선명하면서도 모호한 때?"
"투명과 반투명 사이." - 72쪽

나에게 행복이란 늘 순식간에 사라지곤 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시도하는 모든 일의 밑바탕에는 두려움과 불안감이 깔려 있다. 우리는 두렵고 불안한 마음을 벗어던지는 순간 행복을 느끼게 된다. 연인이나 배우자가 있을 경우 상대의 두려움과 불안감도 자신의 몫이 된다. 부부가 짊어지고 있던 짐들을 모두 내려놓을 때 비로소 배우자 덕분에 생의 축복이 내렸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매우 고귀하고 드문 순간이다. - 92쪽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문제가 분명하게 드러났음에도 보려고 하지 않죠. 상대에 대한 연민 때문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이 받게 될 상처가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그럼에도 제대로 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지요." - 294쪽

"하나님이 전지전능한 존재인지, 우리의 운명을 모두 결정짓는 존재인지에 대해 저는 알 수 없습니다. 몽테뉴가 한 말이 저의 생각을 대신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삶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말이죠." - 295쪽

꿈은 스스로 이루어야 한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 행복해지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 439쪽

누구에게나 인생의 가장 큰 장애물은 자기 자신이다. - 44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비 그리울 때 보라 - 책을 부르는 책 책과 책임 1
김탁환 지음 / 난다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평을 찾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책을 보나 하는 단순한 호기심에서부터 책 소개를 통하여 독서의 길안내를 받고 싶다는 바람, 그리고 이 사람처럼 나도 서평을 써보고 싶다는 욕심까지. 때문에 서평이 주는 느낌도 다르기 마련이다. 책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목적에 충실한 글이 있는가 하면, 책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저자의 느낌만을 열거해 놓은 글, 책 너머의 깊이 있는 배경이나 지식까지 연결해주는 글, 책의 내용과 현실의 문제점을 기막히게 엮어 현실을 반추하게 하는 글까지.


그러나 이렇게 서평을 찾는 다양한 이유와 서평의 느낌에도 불구하고 서평이라면 모름지기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이 있으니, 나는 그것을 '소개하는 책을 독자가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정적으로 말하면, 서평의 근본적 목적은 그것이 다른 글의 평가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서평을 통하여 본래의 책(원본)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서평은 나를 그 너머로 이끌기에 충분하다.


인쇄술이 발전하기 이전에 이야기는 대개는 구전(口傳)되었으며, 글을 전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원본을 필사(筆寫)하는 것뿐이었다. "아비 그리울 때 보라"며 멀리 시집간 딸에게 소설을 필사하여 선물로 주는 아버지처럼 저자는 우리에게 (필사는 아니지만) 생각의 전달이라는 방식으로 원본의 감동을 전달하려는 것 같다. 기교가 아닌 진심을 강조하는 저자의 서평을 덮으며, 이제 나는 그와의 공감을 넓히기 위해서, 또한 우리가 서로 공명할 수 있도록 여기에서 소개한 책들을 펼쳐보려 한다.

눈물은 눈에 있는가 아니면 마음에 있는가. 조선 후기 문장가 심노숭(1762-1837)이 아내를 잃고 지은 <누원(淚原)>의 첫머리에 던진 질문이다. 눈에 있다면 물이 웅덩이에 고인 듯 모인 것인지, 마음에 있다면 피가 맥을 타고 돌듯 하는 것인지 고쳐 따졌다. - 33쪽
심노숭은 눈물이 마음에서도 나오고 눈에서도 나온다고 했다. 구름을 눈, 땅을 마음에 비유한다면 눈물은 비와 같다는 것이다. 비는 구름과 땅을 통하는 기(氣)의 감응에 의해 내리되, 구름에도 속하지 않고 땅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심노숭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눈물을 흘리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떤 느꺼움이다. 상(喪)을 당해 참담한 지금 이 순간은 물론이고 여러 해를 지나 흥겨운 악기들이 들어찬 자리에 머물 때, 업무를 보느라 서류가 책상에 가득할 때, 술에 취해 비틀거릴 때, 잡기를 여유롭게 즐길 때, 그러니까 눈물과 전혀 무관한 그때에도 마음이 갑자기 북받친다는 것이다. 그 느꺼움의 순간, 심노숭은 죽은 아내가 곁에 왔음을 느낀다고 적었다. - 34쪽

밥벌이와 상식이란 이름으로 당연하게 여긴 변화들을 어린 왕자는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묻고 되돌린다.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낙오될까 두려워 제 발밑만 살피고 고개 들어 뭇별들을 보지 못할 때 두려움이 아름다움을 누르고, 어린 왕자가 곁에 머물렀다는 사실마저도 잊힐 때 어른이 되는 것이다. 아직, 지금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 40쪽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물음은 두 가지 다른 빛깔을 띤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따위 짓을 하느냐는 분노의 표출이 첫번째다. 가해자들이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국가를 위해 회사를 위해 혹은 사사로운 개인의 욕심을 채우려고 피해자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분노는 폭발한다. 또다른 빛깔은 날카롭고 뜨겁진 않으나 더 오래 사라지지 않는다. 질문을 던진 이에게 끈질기게 되돌아온다. 당장 내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핑계로 이 썩어빠진 세상을 외면하진 않았던가. 끔찍한 불행이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일 수도 있었음을 실감하였으니, 나는 이제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인간이 되어야만 할까. - 43쪽

역사 속 인물에 관한 소설을 쓰려고 할 때 처음 떠오르는 단어는 틈이다. 가령 고려 말 승려 신돈에 관한 소설을 짓는다면 공화국의 국민인 나와 왕조의 백성인 그, 21세기의 나와 14세기의 그, 서울에 사는 나와 개성에 사는 그의 틈은 깊이도 넓이도 제각각이다. 시간(時間), 공간(空間), 인간(人間)이란 단어에 모두 `사이 간(間)`이 들어가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틈은 어쩌면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내내 겪게 되는 모든 문제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 틈을 최대한 메우기 위해 읽고 걷고 따져 듣는다. 그러나 결코 나는 신돈이 아니며 신돈 또한 내가 될 수 없다. 영원히 좁혀지지 않는 틈 앞에서 스스로 묻곤 한다. 이와 같은 시도는 부질없는 글 장난이 아닐까. - 46쪽

움직임은 그 상황을 경험한 이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추락은 불안이요 공포다. 떨어질 것을 알기에 선뜻 두 발을 지상에서 떠지 못한다. 그렇지만 또한 비상은 파괴요 설렘이다. 일상에 갇히지 않고, 단 한 번 짧은 순간만이라도 저 야구공처럼 저 날치처럼 중력을 거스르고 싶은 뜨거운 갈망이다. - 59쪽

삐딱함을 아낀다. 상식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의외로 공이 많이 든다. 인생을 왜 그리 어렵게 사느냐고, 세상을 너무 어둡게만 보지 말라는 충고도 뒤따른다. 그러나 단언컨대, 삐딱함이 없이는 작가도 없다. - 61쪽

나는 줄곧 글을 쓰는 테크닉보다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 독자들로부터 `태도`가 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수많은 풍경 중에서 자신만의 풍경을 발견하고자 노력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자신만의 문장으로 옮기고자 분투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물론 양귀자 선생님께 배운 것이다. - 67, 68쪽

인간은 별을 우러르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족속이다. 별을 가슴에 품고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땅을 열망하며 두 발을 떼는 무모한 짐승이란 뜻이다. 바람이 분다. 날아야겠다. - 100쪽

나 역시 등단 직후엔 그랬다. 내가 쓰는 장편 소설의 성패에 예민했으며, 결과가 나온 후엔 그다음 장편소설로 곧장 달려가서 또 어떤 승부를 보려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기획하고 만드는 일에 몰두할 때, 어느 영화인으로부터 짧은 충고를 들었다. "소비되지 마시길!" - 102쪽

소설 <야간비행>(소담출판사, 2000)에서 항공우편국 책임자 리비에르는 강조했다. "법칙을 이끌어내는 건 경험입니다. 법칙을 아는 것이 결코 경험을 능가할 수 없지요." - 111쪽

인생이란 내면의 소리를 만드는 나날이 아닐까. 세상의 소리는 많지만 내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소리는 지극히 적다. 어떤 소리는 매일 찾아와도 스치듯 사라지고 어떤 소리는 일생에 단 한 번 닿더라도 심신을 온통 울려댄 후 내 안에 머무른다. 그렇게 바뀐 내면의 소리는 또 언젠가 바깥으로 흘러나가 타인의 영혼을 울리고 그 내면에 둥지를 튼다. 누구에게나 가능한, 이 신비로운 안과 밖의 공명(空鳴)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 115쪽

세상의 모든 여행기는 <열하일기>(돌베개, 2009)와 <왕오천축국전> 사이에 놓인다. 순간순간 닥쳐오는 새로움들을 다채로운 형식과 문체로 오롯이 담아낸 것이 <열하일기>라면, 그 모든 다양함에서 핵심만 뽑아내어 간명한 단 하나의 형식과 문체로 정리한 것이 <왕오천축국전>이다. 또한 혜초는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과 여행중에 전해 들은 정보들을 엄격하게 분리하여 적었다. 체험과 견문이 뒤섞여 실제 여정을 파악하기 힘든 몇몇 여행가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정직함이다. - 122쪽

같은 병을 앓고 싶다는 말보다 더 가슴 절절한 말이 있을까. 같이 `죽는` 일은 극히 짧은 `순간`이지만 같이 `앓는` 일은 서로를 품고 이해하는 제법 긴 `동안`이다. 그의 병까지 내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이 세상에 감내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으리. 흔히 사랑 이야기에 질병이 동반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병이 결핵이든 암이든, 사랑 이야기에는 궁극적으로 함께 아파하고픈 갈망과 더이상 함께 아파하지 못하는 절망이 교차한다. 마음과 마음을 잇기 위해 몸과 몸을 같은 상태로 만드는 식이다. - 177쪽

블랑쇼에 따르면 작가에게 이로운 상황이란 영원히 찾아들지 않는다. 자신의 모든 시간을 전부 바친다 해도 충분하지 않다. "자기의 시간을 글쓰는 것으로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더이상 작업도 존재하지 않는 또다른 시간 속으로 이동하는 것, 시간이 상실되는 지점, 매혹과 시간의 부재가 주는 고독 속에 돌입하는 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문제다." - 186쪽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는 것은 참으로 옳다. 때로는 스스로 용기를 내어 낯선 곳으로 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마지못해 수동적으로 이끌리기도 한다. 계기가 무엇이든, 길 위에 올라선 다음에는 과정 자체를 즐기며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예수님도 부처님도 공자님도 길 위에서 배우고 길 위에서 가르치며 길 위에서 자고 먹고 마시며 길 위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지 않았던가. 삶의 이치를 `길 도(道)`로 압축하여 표현해온 것이 예사롭지 않다. - 19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발적 복종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지음, 심영길 외 옮김 / 생각정원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현시점에 이와 같은 울림을 주는 말이 또 어디 있겠는가: 습관적이며 자발적인 복종을 멈출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인이 된다. 우리가 독재자에 대한 굴종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독재자는 스스로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