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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메이커 - 우리가 몰랐던 선거전의 비밀
EBS 킹메이커 제작팀 지음 / 김영사on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선거철(대선이 아닌 총선이긴 하지만)이 다가오자 약간의 피로감이 온다. 그리 살기 좋은 동네는 아닌 우리 동네를 거닐면서 이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매번 왜 새누리당에 투표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떠올렸다. 찾아보니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라는 제목의 책이 이미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 책을 읽어볼까 하다가 연관되어 있는 책 중에 <킹메이커>가 있어 제목이 주는 임팩트 때문에 이것을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킹메이커'는 과연 국민인가, 아니면 유권자들을 프레임에 가두어 움직이게 하는 다른 세력인가, 라는 의문과 함께.
우리 부모님을 비롯한 노년층은 자신들이 살아온 경험을 '안다'라고 인식하고 있고, 이와 반대로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은 아직 인생을, 정치를, 세계를 잘 '모른다'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는 정치 신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노년층의 인식일 터이다. 자신들이 인지하지 않은 인물에 대한 거부감과 비신뢰.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후보자들이 대통령 옆에서 사진을 찍고, 유력한 대권 후보자 옆에서 사진을 찍어, 이를 자신의 홍보수단으로 삼는 것이 아니겠는가. '저는 당신이 아는 이분들과 함께 해온 사람입니다.' 라고 어필하며.
게다가 노년층에게 있어 그들이 경험해온 굴곡진 한국사는 누구나 경험할 수 없는 극적인 스토리임에 틀림 없다. 그런데 이제 와서 살만해졌다고 과거를 비난하거나 지우려하는 것은 어찌보면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부정'과 도 같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에는 지긋지긋했을지 모를 박정희를 아직도 마음속에서 털어내지 못하며, 그래도 그때는 괜찮았다는 회고적 환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너희들이 뭘 알아?' 혹은 '그때가 좋았다'는 회고적 성격은 정치 영역에서는 확고한 보수적 지지 기반으로 탈바꿈 된다.
노년층이야 그렇다고 치고, 젊은 유권자들의 정치성향은 왜 보수화되는 것일까, 라는 것이 내 또 다른 궁금증이었다. 그런데 미국 (그리고 소련) 대통령 선거에 대한 분석을 통해 프레임을 분석하는 이 책을 읽고 다소 의문이 풀렸다. 결국 지난 2번의 대선에서 야당은 프레임 전쟁에서 패배했었던 것이다. 몇 가지를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네거티브는 효과가 있다. 점잖은 척 무대응을 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비난을 묵인하는 것이 된다. 네거티브에 부정적인 유권자들도 결국 네거티브의 내용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네거티브는 기본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의 형태를 갖고 있기 때문에 네거티브가 난무하게 되는 순간부터 정책 이슈는 사라지고 만다. 결국 승리한 측에서도 선거 승리 이후 별다른 정책 아젠다를 제시하지 못하며, 그 피해는 정치권과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다. 부시 진영의 리 애드워터가 임종을 앞두고 그가 네거티브 전략으로 부시를 당선시킴으로써 미국 정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 것에 반성하며, '내가 만든 청사진을 따라가지 말라, 치워버려라,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자.
2. 프레임에 대한 대응은 자신의 언어로 해야 한다. 예컨대 '4대강 살리기'라는 아젠다를 제시한 새누리당에 대해서 '그것은 4대강 살리기가 아니라 4대강 죽이기다'라며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선점한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기만의 언어를 사용했어야 했다. 그나마 최근 프레임 대응은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다. '테러방지법'에 대하여서 자신들만의 용어로 변조하여 대응하면서 프레임 선점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전략이 (법안 통과라는 결과는 별론으로 하고) 국민들에게 어필했던 것 같다.
3. 중도파는 허상이다. 그것은 평균값이지 실체가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어떤 면에서는 진보적일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보수적일 수 있다. 여러 가지 항목을 늘어놓고 진보와 보수에 체크를 해 평균을 낸 값이 나를 '중도'라고 칭할 수는 있을 것이지만, 나는 원자력 발전에 반대하고, 재생에너지에 찬성하고, 경제성장보다는 분배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하면, 인권 못지 않게 동물권도 중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국방, 치안이나 안전을 비롯한 그 밖의 다른 사안들에 대해서는 보수적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어느 정당이 나와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포섭하기 위하여 정책을 바꾸어 국방 강화, 성범죄자 형량 강화, 사형제 존치 등의 정책을 제안한다고 해서 표를 얻을 수 있을까? 다양한 성향을 맞추기 위하여 노선을 수정하는 것보다는 자신들의 정책을 보다 세밀하게 검토하여 정립하고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방안이라는 것이다.
4. 마지막은 소통이다. 이것은 SNS 계정을 만들었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많은 팔로워나 친구를 가졌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많은 유권자들의 의견을 검토하고 분석하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 팩트(fact)가 아닌 것에 대해서는 수정하고 설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난 대선에서 댓글의 영향을 이미 확인하지 않았던가.
<킹메이커>는 유권자들이 휩쓸리지 않고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선거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이기도 하지만, 정치인들에게는 선거에 대한 '전략'을 제시하는 책일 수도 있다. (정치인이 아닌) 나는 이 책을 통하여 몇 년사이 급격히 퇴보한 한국 정치와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가늠해보고, 정당들의 뻔한 전략을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되는 유권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랐다. 이 책을 덮으면서는 처음 책을 펼쳤을 때의 질문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킹메이커'는 과연 국민인가? 나는, 우리는 '킹메이커'가 될 수 있을까?
네거티브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은 1978년 맥도널드 햄버거를 둘러싼 논란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78년 당시 미국에서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괴소문이 돌았다. 바로 맥도널드 햄버거 고기의 원료가 지렁이 고기라는 소문이었다. 맥도널드 측은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즉각 반박했다. 그리고 `우리 햄버거에는 지렁이 고기가 들어있지 않습니다`라고 매장에 써 놓기까지 했지만 매출은 오히려 떨어졌다. 맥도널드의 해명은 소비자들에게 오히려 지렁이에 대한 연상 작용을 강화시킬 뿐이었다. 막대한 손실을 입은 맥도널드는 집중적인 연구를 통해 두 가지 해결책을 찾았다. 하나는 고급 레스토랑 스테이크에서도 지렁이 고기를 봤다는 헛소문을 내는 것이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더 큰 충격을 받아서 값싼 패스트푸드인 맥도널드와 지렁이의 연관성을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맥도널드는 햄버거에 대한 관심을 돌리기 위해 다른 쟁점을 제시했다. 밀크쉐이크와 감자튀김을 집중적으로 홍보하면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햄버거에서 돌렸다. 그러면서 맥도널드는 괴소문 때문에 받은 타격에서 서서히 벗어날 수 있었다. - 37쪽
"가장 최악의 대응은 그 공격을 반복하면서 방어하는 것입니다. 그 공격을 반복하는 게 문제죠. 이것은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상대방을 돕는 셈이에요. 프레임을 부인하려고 할수록 오히려 프레임을 활성화시키는 거죠. `코끼리를 생각하지마라`는 말을 들으면 코끼리를 먼저 떠올리게 되듯이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면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대의 공격을 반복하는 대신 자신의 견해를 말해야 합니다. 자신의 도덕적 입장과 신념, 그리고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야 하죠. 나아가 이에 반대되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야 해요. 그냥 방어하는 거죠. 자신의 신념을 말함으로써 자신의 도덕 시스템을 활성화할 수 있어요." - 조지 레이코프(버클리대 언어학과 교수, <프레임 전쟁> 저자) - 37, 38쪽
듀카키스가 1988년 대선에서 패배한 이유 중 하나는 부시가 일으킨 공격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하리라 생각했다. 부시의 공격이 잘못된 것이고 부적절한 공격임을 유권자들이 자연스레 알게 되리라 여겼다. 하지만 듀카키스가 대응하지 않자 대중은 부시의 공격 내용을 오히려 믿게 되었다. 대중은 뭔가 잘못되었다면 듀카키스가 진실을 말할 것이라고 추측했는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상대 후보의 공격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반격해서 논의의 중심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 39쪽
여론조사를 보면 유권자들은 네거티브 선거운동이 나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면서도 왜 유권자들은 이에 반응하고, 어째서 이것은 효과가 있는 걸까? 네거티브 선거운동의 내용과 진실 사이에는 아주 미세한 차이가 있다. 일종의 균형잡기 같은 것이다. 효과적인 네거티브 선거운동은 거짓이 아니거나 잘못된 정보라는 것을 간단히 증명하기 어렵다. 네거티브 선거운동은 많은 경우 내용의 사실을 조작한다. 반만 진실을 말하도록 숫자를 조작하는 경우도 있다. 깊이 조사하지 않거나,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따져서 오류를 찾아내지 않으면 이러한 네거티브 선거운도으이 내용은 매우 그럴듯해 보이기 쉽다. 개인의 이력이나 공식발표와 같은 쉽게 증명할 수 있는 정보를 이용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그래서 결국 설문조사 당시 유권자들이 네거티브 선거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답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 53, 54쪽
대통령이 좋은 업적을 남기를 위해서는 선거 과정에서 자신의 정책을 유권자들에게 설득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선거를 통해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생기고 취임 이후 정책을 집행할 추진력이 생긴다. 성공한 대통령이었던 루스벨트나 레이건 등은 모두 선거 과정에서 자신의 정책에 대한 국민의 동의를 얻었고 강력한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직 네거티브에만 집중하는 선거는 이런 기회를 빼앗아 버린다. 유권자들은 당선자가 어떤 정책을 집행할지 알 수가 없다. 그럴 경우 유권자들은 오직 누구누구가 싫어서 그 사람을 뽑았을 뿐인 상황에 처하게 된다. 결국 네거티브 선거는 낙선자뿐 아니라 당선자에게도 상처를 입히는 셈이다. - 82, 83쪽
결국 실험 참가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모순에 대해서는 감정적으로 접근해 관용의 자세를 취하고, 반대 후보의 모순에 대해서는 이성적으로 접근해 원칙의 자세를 취한 셈이다. 모순을 파악할 때에는 이성을 움직여야 하는데 왜 감정적인 영역이 작동하는 것일까?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장 조장희 박사에 따르면, 가족이나 주위의 사람들이 오랫동안 어떤 당 혹은 그 당의 후보를 지지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를 긍정하는 편견과 그를 지지하는 습관을 갖게 된다고 한다. 거기에 자기 이익이 결부되면 그 편견과 관습은 더욱 공고해진다. 이 경우 우리 뇌는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정보를 찾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외면하거나 잘못되었다고 간주하는 동기화된 추론을 하게 된다. 그로인해 우리는 지지하는 당이나 후보에 관한 정보를 접하면 이성적으로 판단하기보다 감정적으로 처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 114, 115쪽
실험팀은 이 실험의 교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선거운동에서 보수와 진보, 양 진영에 있는 30퍼센트 내외인 상대편 지지자들에 잘 보이려고 한발 다가가는 전략을 내놓을 필요는 없다. 어떤 경우에도 그들은 당신을 지지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 115쪽
조지 레이코프 교수는 중도적인 전략으로 중간에 위치한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중도파를 위한 이데올로기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중도파의 신념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중도파는 사안에 따라 진보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조합인 셈이다. - 121, 122쪽
레이코프 교수는 중도 성향의 사람들을 이끌어 다수당이 되기 위해 중도화 노선을 취하는 것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말하며, 특히 기계적으로 중간으로 이동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사회적으로 어떤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는데 이 쟁점에 대해 중간 위치를 지키려면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거나,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이야기가 바뀌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936년, 대선에서 루스벨트와 맞섰던 알프레드 렌든(1936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이 그런 실수를 했다. 랜든은 루스벨트의 뉴딜에 대항한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나왔지만 뉴딜을 직접 공격하기 어려웠다. 여러 전략을 펼쳤지만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하던 그는 급기야 뉴딜정책에 동조하는 발언과 반대하는 발언을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 136, 137쪽
득표를 위해 중간으로 이동하는 태도는 선거에서 아무런 효과가 없다. 애초에 그런 입장을 가진 유권자가 없으니 아무도 설득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이런 태도는 유권자들에게 후보자의 진정선을 의심하게 만든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원래의 신념을 버리고 정치적 이해에 따라 왔다 갔다 한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도 성향의 유권자는 중도가 아닌 자신의 도덕적 가치에 부합하는 보수 혹은 진보를 선택하는 것이다. 결국 후보자는 자신의 도덕적 가치에 부합하는 유권자들을 찾아 모으는 것이 유리하고, 자신의 도덕적 가치로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셈이다. 후보자가 더 많은 유권자들과 도덕적 가치를 함께 할 수 있을 때, 후보자와 유권자 사이의 유대감이 단단해지고 후보자는 당선자, 나아가 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다. - 141, 142쪽
이슈에 따라 진보적 입장과 보수적 입장을 넘나드는 이중개념주의자들, 즉 중도파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중개념 체계를 가진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자신의 개념 체계와 언어로 이야기 해야 한다. 왜냐하면 언어는 신경회로에 있는 프레임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정치에서는 이 프레임들이 사람들의 도덕 체계와 연결되어 있다. 보수주의자의 언어는 보수적인 도덕 시스템을 자극하고 이를 강화시킨다. 신경회로가 활성화될 때마다 더 강해진다. 그러나 상대방의 언어를 사용하면 이를 반박하거나 부인하더라도, 상대방의 프레임과 도덕 체계가 활성화되는 반면 상대적으로 자신의 프레임과 도덕 체계는 약해진다. - 148쪽
정치인의 단어 선택에 따라 유권자들의 사고 프레임이 결정되고 정책과 정당에 대한 선호가 달라진다. - 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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