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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레이얼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더글러스 케네디의 소설에는 일정한 패턴이 보인다. 주인공의 평범한 일상에 갑자기 위기가 닥치고, 주인공은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여 모든 것을 잃게 되는데, 그 밑바닥에서 새로운 영감 혹은 기회를 얻어 인생을 재기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소설을 읽는 동안 감정이입이 되면 주인공이 제발 예정된 불행의 길로 들어서지 않기를 바라며 읽게 된다. 그러나 책의 내용 중 어느 목사와의 대화에서 처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려고" 한다. 그렇기에 어떤 분위기나 정황을 감지한 책 밖의 독자가 책 안의 주인공에게 바라는 기대는 쉽사리 무너지고, 독자는 주인공과 하나가 되어 고난과 역경을 경험하고 이겨낸다.
<비트레이얼>도 마찬가지이다. 아버지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과 경제적 무능함을 어린 시절 경험했던 주인공(로빈)은, 화가로서의 재능이 매우 뛰어고 매력적이지만 자신의 재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보헤미안(폴)을 만나 결혼하는 '모순'에 빠진다. 그리고 밝혀지는 폴의 숨겨진 과거와 현재에 대해 로빈은 스스로 변화시킬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무작정 뛰어든다. 그 길에는 알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이 도사리고 있음을 예상하면서도. 어찌보면 그가 스스로 자초한 불행의 원인이 모든 것에 똑뿌러지는 결말을 원하는 그의 방식일지, 자신의 결혼을 불행하게 끝내고 싶지 않은 마음일지, 폴 (또는 아버지)에 대한 일말의 연민일지, 그에게 심하게 했던 자신에 대한 죄책감일지, 자신도 모르게 어쩔 수 없이 상황에 떠밀려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매순간 '이번 일만 처리하고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겠다'는 그의 다짐 이면에는 살면서 맞게 되는 선택 앞에서 현실적인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자신의 고집대로 일을 끌고 가는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 것도 같다.
자신의 삶을 망가뜨린 상대방에게 통쾌한 복수를 하며 성공의 길로 들어서는 주인공을 그린 케네디의 기존 소설들에 비해 이 책은 폴이나 그를 곤경에 빠뜨린 벤 핫산에 대한 완벽한 복수는 그려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게 되고, 여전히 폴에 대한 연민을 간직한 채 현실에 적응하는 로빈을 그리고 있다. 폴에 대한 분노는 사라지고, 죄책감은 연민이 된 것일까. 아니면, 그의 배신과 거짓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일까. 비록 폴은 사라졌지만 그의 자리를 메워줄 아이를 통해 로빈의 모순과 불행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채색될 수 있는 것일까.
눈을 떼기 힘든 빠른 전개와 실제로 보는 듯한 다양한 묘사는 여전하지만, 작가가 제시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다소 불분명하고 부족한 것 같다.
폴이 내 손을 잡았고, 우리는 발코니 의자에 앉아 먼동이 트는 하늘을 지켜보았다. "이맘때를 뭐라고 표현하는지 알아?" "새벽?" "새벽이나 동틀 무렵 말고, 다른 말이 있어." "시적인 말이야?" "제법 시적이지. 이 무렵을 `블루 아워`라고 해." "블루 아워." 나는 잠시 그 말을 머릿속으로 되뇌며 입으로도 소리 내어 말해 보았다. "어때, 제법 시적인 말이지?" "너무 어둡지도 가볍지도 않은 말이야." "모든 사물이 평소와 다르게 보이고, 우리가 상상과 지작 사이에 갇혀 있는 때라 할 수 있지." "선명하면서도 모호한 때?" "투명과 반투명 사이." - 72쪽
나에게 행복이란 늘 순식간에 사라지곤 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시도하는 모든 일의 밑바탕에는 두려움과 불안감이 깔려 있다. 우리는 두렵고 불안한 마음을 벗어던지는 순간 행복을 느끼게 된다. 연인이나 배우자가 있을 경우 상대의 두려움과 불안감도 자신의 몫이 된다. 부부가 짊어지고 있던 짐들을 모두 내려놓을 때 비로소 배우자 덕분에 생의 축복이 내렸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매우 고귀하고 드문 순간이다. - 92쪽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문제가 분명하게 드러났음에도 보려고 하지 않죠. 상대에 대한 연민 때문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이 받게 될 상처가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그럼에도 제대로 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지요." - 294쪽
"하나님이 전지전능한 존재인지, 우리의 운명을 모두 결정짓는 존재인지에 대해 저는 알 수 없습니다. 몽테뉴가 한 말이 저의 생각을 대신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삶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말이죠." - 295쪽
꿈은 스스로 이루어야 한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 행복해지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 439쪽
누구에게나 인생의 가장 큰 장애물은 자기 자신이다. - 4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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