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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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점 한 켠에 켜켜이 쌓여 있는 책 표지를 무심히 보았다. 소설 코너에 있지 않았다면 만화로 착각할뻔 했다. 거기에는 한 소년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이 소년은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옆에 작게 쓰여져 있는 제목이 보였다. 아몬드. 


"나에겐 아몬드가 있다. 

당신에게도 있다. 
당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거나 가장 저주하는 누군가도 그것을 가졌다. 
아무도 그것을 느낄 수는 없다. 
그저 그것이 있음을 알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의 프롤로그는 이렇게 시작을 하고 있다. 물론, 아몬드가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다 읽고 나서도 아몬드가 가리키는 은유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겠다. 주인공인 윤재에게 이상이 있는 딱 그만한 크기의 '편도체'를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절대 깨지지 않는 딱딱한 질감의 그 무엇(본성, 고집, 특징 같은 것)을 말하는지. 프롤로그의 아몬드를 '편도체'로 치환해 읽으니 조금 웃긴다. 그래서 딱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각자가 고유하게 간직하고 있는 '그 무엇'이라고 여겨본다. 

성장소설이지만 마냥 따뜻하고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다. 서두에 등장하는 사건을 담담히 묘사하고 결국 홀로 남겨진 윤재를 대할 때는 마치 <7년의 밤>의 서원을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둘은 달랐다. 한 사람은 피해자의 자식이고, 다른 한 사람은 가해자의 자식이다. 한 사람은 선천적으로 '일렉시티미아'라고 하는 감정표현불능증에 걸린 소년이고, 다른 한 사람은 트라우마에 의해 세상과의 문을 닫아버린 소년이다. 공교롭게도 읽다보니 이야기 속에 윤재와 대비되는 곤이가 등장한다. 버려졌다고 생각하기에 강해져야 한다는 강박으로 사는 그 아이는 윤재가 성장하여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여는 또다른 계기가 된다.


생각해보니, 아몬드를 '일렉시티미아'로 치환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겐 왜 그런지 알 수 없는 선천적인 감정의 씨가 있다. 더러는 말랑말랑한 씨를 갖고 있어서 그것이 금방 떠지고 싹을 틔우지만, 어떤 이는 아주 딱딱한 것을 갖고 있어서 전혀 싹이 트지 않거나 싹을 틔우기에는 아주 많은 인고(忍苦)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의 존재를 느낄 수는 없다. 그것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채 순간순간에 반응하며 즉시적으로 살아갈 뿐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과 행동은 결국 내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아주 작은 씨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고립된 자아, 내면의 표출, 외부와의 갈등, 자신의 본성에 대한 탐구, 조화로운 자아의 형성은 성장소설에서 살펴볼 수 있는 소재들이다. 아이가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들은 누구도 피할 수 없으며, 무엇도 정답이 아닌 무수한 갈래 길의 하나일 뿐이다. 그것이 선천적/후천적으로 보다 분명해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희미하게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방황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런 방황과 그것을 직면했을 때의 내 몸부림들이 지금의 나를 키운 것이다. 성장소설의 좋은 점은 이제는 잊혀진 내 무언가를 한번쯤 무심코 더듬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데 있는 것도 같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 간다.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 부모는 자식에게 많은 걸 바란단다. 그러다 안 되면 평범함을 바라지. 그게 기본적인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말이다, 평범하다는 건 사실 가장 이루기 어려운 가치란다. - 90쪽

사람들은 계절의 여왕이 5월이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어려운 건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거다. 언 땅이 녹고 움이 트고 죽어 있는 가지마다 총천연색 꽃이 피어나는 것. 힘겨운 건 그런 거다. 여름은 그저 봄의 동력을 받아 앞으로 몇 걸음 옮기기만 하면 온다.
그래서 나는 5월이 한 해 중 가장 나태한 달이라고 생각했다. 한 것에 비해 너무 값지다고 평가받는 달. 세상과 내가 가장 다르다고 생각되는 달이 5월이기도 했다. 세상 모든 게 움직이고 빛난다. 나와 누워 있는 엄마만이 영원한 1월처럼 딱딱하고 잿빛이었다. - 152쪽

- 그 사람은 내 인생에 시멘트를 쫙 들이붓고 그 위에 자기가 설계한 새 건물을 지을 생각만 해. 난 그런 애가 아닌데... - 167쪽

삶이 장난을 걸어올 때마다 곤이는 자주 생각했다고 한다. 인생이란, 손을 잡아 주던 엄마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잡으려 해도 결국 자기는 버림받을 거라고. - 168쪽

어딘가를 걸을 때 엄마가 내 손을 꽉 잡았던 걸 기억한다. 엄마는 절대로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가끔은 아파서 내가 슬며시 힘을 뺄 때면 엄마는 눈을 흘기며 얼른 꽉 잡으라고 했다. 우린 가족이니까 손을 잡고 걸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반대쪽 손은 할멈에게 쥐여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서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없었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 171, 172쪽

그러니까 내가 이해하는 한 사랑이라는 건, 어떤 극한의 개념이었다. 규정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간신히 단어 안에 가둬 놓은 것. 그런데 그 단어가 너무 자주 쓰이고 있었다. 그저 기분이 좀 좋다거나 고맙다는 뜻으로 아무렇지 않게들 사랑을 입 밖에 냈다. - 176쪽

너무 멀리 있는 불행은 내 불행이 아니라고, 엄마는 그렇게 말했었다. - 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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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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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는 시들지언정 사라지지 않는 나이듦의 예찬 같은 것이 아닐까, 라는 단순한 추측을 했다. 그러나 읽고 보니 정말 죽지 않는 현상 그대로의 이야기를 기묘하게 적어 놓은 동일한 제목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었다. 타인의 생명을 흡입하여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는 할머니의 삶을 통하여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그것은 자기보다 약한 자들로부터의 착취를 통해 부(富)를 연장해가는 이 시대의 기득권 세력일 수도 있고, 사라질듯 사라질듯 하면서도 결코 근절되지 않는 사회악일 수도 있으며, 재산분배를 위하여 내심 할머니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의 속물적 근성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총 5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일과 양육(월춘 장구), 존재의 죽음과 그를 둘러싼 관계(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현재의 자아와 태생의 근본(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종교와 본성 그리고 삶(부활 무렵), 국가적 이념과 개인의 삶(맨발로 글목을 돌다)과 같이, 이 단편들을 통해 작가가 제시하는 소재는 매우 넓고 다양하다. 


그 중 1, 3, 5번째 수록되어 있는 '월춘 장구',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맨발로 글목을 돌다'는 에세이 같은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각 소설에는 소설가인 공지영이 등장하며 현실의 자신과 관련 있을 것 같은 상황(글을 쓰다가 아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로 달려가는 엄마의 이야기, 자신이 예전에 잃어버린 친동생이 소설가 공지영 같다며 확인하려고 찾아온 여인에 대한 이야기, 일본에서 책을 출간하게 된 공지영이 만난 특이한 이력의 번역가 H에 대한 이야기)이 전개된다. '이런 것도 소설일까?'라는 물음을 통해 작가는 어쩌면 '소설=픽션'이라는 관념으로부터의 탈피를 시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2, 4번째 수록되어 있는 것이 나 또는 독자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소설이라는 것'에 가까운 내용일 것인데, 내가 이 두 편이 그래도 소설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되짚어보니, 그건 단지 다른 단편들처럼 '공지영'이라는 소설가가 등장하지 않고 내가 이미 알고 있던 작가와 관련된 배경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뚜렷한 형식적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떠한 것은 에세이 같고 어떠한 것은 소설같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저 내 고정적인 생각 때문일까. 하지만 내가 갖는 이런 혼란에 대하여 작가는 그것이 그리 낯선 시선이 아니라고 다독이는 듯 하다. 한 검사의 말을 통해 작가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불투명해지고 점점 흐트러지는 경계에 대하여, 어쩌면 그런 생각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말이지요. 자신이 있었어요. 이건 이 죄고, 저건 저 죄목이고, 너는 범인이고 너는 아니고……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그게 힘들어요. 점점 더 말이지요. 힘들고, 또 무서워요.”

 

문득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소설이 자신의 배경을 기반으로 한 것이지만, 소설로 봐달라고 했던 작가의 말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이 책이 소설에 대한 소재의 확장성을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러 갈래로 흩어진 삶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평소 작가가 고민하던 바를 제시하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본질과 이질적인 것은 상흔을 남긴다. 그리고 그 상흔으로 인해, 그 이질적인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아픔의 힘으로 우리는 생의 모퉁이를 돌기도 한다. 그것이 좋은 곳으로 가는 길인지 아닌지는 나는 아직도 모른다. 블라인드 포인트, 라고 산에 오르던 친구는 말했다. 모퉁이를 돌면 그곳에 무슨 죽음과 무슨 삶이 펼쳐져 있을지 모르는 험악한 등정에서 산악인들은 언제나 그 블라인드 포인트를 돌아야 한다고. 그리고 초보자들에게 그것은 대개 죽음보다 더한 공포와 고통을 준다고. 거기서 주저앉는 사람이 참 많이도 있다고, 그러나 그 공포를 이겨낸 자에게만 산은 그 정상을 허락한다고. - 17, 18쪽

이미 저질러진 것을 우리는 인생이라고 부른다. 내가 잠 안 오는 밤 동이 틀 때까지 뒤척이며 그때는 이렇게 했다면,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거기 가지 않았더라면, 아아 정녕 그랬더라면... 수만 번 되뇌인다 한들, 혹은 내가 앞으로는 어리석게 살지 않을 거야, 정말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살겠어, 두 팔에 고개를 묻고 흐느껴 운들 마찬가지였다.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고 중요한 것은 미래도 아니며 현재는 더더욱 아닌 것이다. 나는 그저 통째로의 이 삶, 나의 어리석음과 돌이킬 수 없었던 결정들과 원하지 않았으나 내게 주어졌던 이 삶, 그러니 결국은 내 것일 수밖에 없는 온전히 내 책임인 이 삶... 찬물에 풍덩 넣어 삶아내는 통돼지고기처럼 다리도 있고 꼬리도 있고 뭉툭한 코도, 다 깎이지 않은 털도 있는 통째로의 이 삶을 나는 받아들이고 싶었다. - 112, 113쪽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 삶에서 가장 하기 힘든 일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는 일이며 우리 삶의 비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시 끝없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며 사는 것이라고. - 125쪽

"넌 운명이란 것을 믿니? 어느 날 운전면허 시험의 한 과정처럼 돌발 상황이라는 것이 생의 급브레이크를 밟게 하고, 우리가 믿었던 질서들을 뒤죽박죽으로 만들며 이성을 무력화시키고 상식을 비웃으며 단 한 번뿐인 우리 생의 모든 것을 똥창에 거꾸로 처박아버릴 수 있는 난데없고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류가 생긴 이래로 그 운명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그친 적이 없어. 여기 푸른 별 지구 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동과 서에서." - 189쪽

"운명이 생을 덮치는 경험을 했던 사람들은 안다. 그 포충망 속에 사로잡히고 나면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회전하고 있을 뿐이다. 고통을 중심으로 하여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다만 하나의 슬픔의 계절이 있을 뿐이다"라고 어느 날 갑자기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구경거리가 되어 런던 감옥에 갇혀야 했던 오스카 와일드는 썼다. - 195, 196쪽

힘이 있는 인간들은 힘이 없는 인간들을 죽게 할 방법을 천 가지쯤 가지고 있다. 가끔 정신과 물질을 모두 내게 의지하고 있는 내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권력이 얼마나 악에 물들기 쉬운 것인가를 깨닫고 소스라친다. 내가 마음먹으면 나는 아이들을 때리거나 고문하지 않고도 아이들을 정신병자로 만들거나 불구가 되게 하거나 이상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그들이 나를 사랑할수록 그들이 나를 의지할수록, 나 이외의 것에 그들이 속수무책일수록 그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 200쪽

이런 구절을 읽었어. "다만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속에는 이른바 비활성 기체라는 것이 있다. 이것들은 박식하게도 그리스어에서 따온 진기한 이름을 갖고 있는데 각각, ‘새로운 것(네온_’, ‘숨겨진 것(크립톤)’ 그리고 ‘낯선 것(제논’, ‘움직임이 없는 것(아르곤)’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들은 정말 활성이 없어서, 그러니까 자신들의 처지에 만족하고 있어서 어떤 화학반응에도 개입하지 않고 다른 원소와 결합하지도 않는다. (...) 그 가운데는 공기의 일 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상당히 많은 양이 존재하는 아르곤, 곧 ‘움직임이 없는 것’이 있는데도 말이다. 다시 말해 그 양은 이 지구상에서 생명체의 흔적이 유지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이산화탄소보다 스무 배 또는 서른 배나 많은 양이다." 신기하지 않니? 원소들이 제 처지에 만족하고 있다는 표현이라니. - 204, 205쪽.

죽고 싶었지만 신기하게도 진짜로 죽으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이상하게 운명에 대한 대결 같은 거. 그것은 맞서는 대결이 아니라 한번 껴안아보려는 그런 대결이었는데, 말하자면 풍랑을 당한 배가 그 풍랑을 이기고 가는 유일한 방법은 그 풍랑을 타고 넘어가는 것 같은 그런 종류의 대결... 내게 이것을 가르쳐준 것은 글이었는데 글은 모든 사람의 가슴에서 넘치다가 엎질러져 나오는 것이고 그렇게 엎질러져 나온 글들은 상처처럼 빨간 속살에서 터져나온 석류 알처럼 우리를 기르고 구원하니까요. - 214, 215쪽

성경을 펴니 이런 구절이 보입니다. ‘꿈에서 깬 자가 꿈을 업신여기듯...’
그제야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삶은 ‘낯선 여인숙에서 하룻밤’이었다가 ‘소란만 피우는 소리와 분노’였다가 ‘훅 하면 꺼지는 날숨’과 같다는 걸 불현 듯 깨닫습니다. 꿈에서 깨어났으면 이제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어린것들의 하루 양식을 벌어야 합니다. 이것만이 이제 제게 남은 유일한 진실입니다. 한 줌의 자기 비하도 없는 이 진실 속에는 신실한 희망이 있습니다. - 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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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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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소재로 삼음 책을 그리 즐겨 읽지는 않지만, 제목에 계속 눈이 갔다. 그런데 웬일인지 제목이 그대로 읽히지 않고, "천 개의 바람이 되어"로 바뀐 채 내 눈에 박히고 있었다. 마침 4월이었다. 3년만에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왔다고 한다. 만물이 소생하는 찬란한 봄에 나는 역설적으로 죽음을 떠올리곤 한다. 첫장을 펴니 "죽음 속에서 삶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는 자는 / 그것이 한때 숨결이었던 바람이란 걸 알게 된다"라고 쓰인 한편의 시가 적혀 있다. 무슨 뜻인지 머리로 채 이해하기도 전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내가 마시고 내쉬는 숨결이 이제 더 이상 나를 통하지 않는, 그저 허공을 떠도는 바람이 되는 순간이라니...


책은 크게 4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롤로그에서는 신경외과 의사인 그가 폐암 진단을 받게된 순간을 묘사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1부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의사가 되기까지의 생각과 성장과정을 담았다. 2부에서는 전도유망한 그가 레지던트 생활을 막 마치려 할 때 암 진단을 받게 되고, 투병생활과 의사로서의 삶을 병행하는 시간들이 담겨 있다. 결론은 이미 예상했지만, 남아 있는 페이지가 줄어들수록 호전되던 그의 상황이 점점 악화되기 시작한다.


에필로그는 아내의 몫으로 남겨졌던 것으로 보아, 10년의 삶이 남았다면 의사생활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고, 1년이 남았다면 책을 쓰고 싶다고 했던 그에게는 아마도 이 책을 끝맺을만큼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못했던 것 같다. 사랑하는 이를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사람과 홀로 남겨진 채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의 조합은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던 간에 절묘한 구성으로 각기 다른 관점에서의 감정을 자극한다. 


"나는 그의 아내이자 목격자였다"는 마지막 문장 앞에서는 참았던 감정이 그대로 주저 앉는 것을 느꼈다. 가장 사적인 친밀감이 있는 사람인 아내가 목격자로서 한자 한자 써내려간 남편의 소멸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절박한 순간이지만 격렬하지 않은 담담한 서술을 하는 것이 오히려 작가의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성숙'이란 훌륭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주어진 삶을 훌륭하게 사는 것이다. 말장난 같지만, 동일한 뜻의 단어가 형용사로 쓰여 삶을 비출 것인지, 부사로 쓰여 산다는 행위를 비출 것인지를 선택하는 순간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질 것 같다. 부스러진 희망, 애절한 사랑, 준비되지 않은 이별, 그 앞에서 모든 걸 포기해 버리거나 스스로 과열되지 않는 것, 주어진 날들을 견디어 내는 것은 슬프지만 그만큼 아름다운 일이다.


내가 이 직업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죽음을 뒤쫓아 붙잡고, 그 정체를 드러낸 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똑바로 마주보기 위해서였다. 신경외과는 뇌와 의식만큼이나 삶과 죽음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아주 매력적인 분야였다. 나는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에서 일생을 보낸다면 연민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스스로의 존재도 고양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찮은 물질주의, 쩨쩨한 자만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나 문제의 핵심, 진정으로 생사를 가르는 결정과 싸움에 뛰어들고 싶었다. 그곳에서 어떤 초월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 105, 106쪽

생물학, 도덕, 삶, 그리고 죽음의 개별적인 가닥들이 마침내 서로 엮이기 시작하는 듯했다. 완벽한 도덕 체계는 아니더라도 일관성 있는 세계관이 잡히고 그 안에 내 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긴장감 높은 분야의 의사는 삶과 정체성이 위협받고 삶이 굴절되는 가장 위급한 순간에 환자를 만나게 된다. 의사의 책무는 무엇이 환자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지 파악하고, 가능하다면 그것을 지켜주려 애쓰되 불가능하다면 평화로운 죽음을 허용해주는 것이다. 그런 책무를 감당하려면 철두철미한 책임감과 함께, 죄책감과 비난을 견디는 힘도 필요하다. - 140, 141쪽

나는 나 자신의 죽음과 아주 가까이 대면하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 나는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가 될지는 알지 못했다. 암진단을 받은 후에도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통렬하게 자각한다. 그 문제는 사실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 없는 삶이라는 건 없다. - 161쪽

그러나 일반적으로 환자가 원하는 건 의사가 숨기는 과학 지식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 찾아야 하는 실존적 진정성이다. 통계를 지나치게 파고드는 건 소금물로 갈증을 해결하려는 것과 같다.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고뇌에 빠지는 일은 생존 가능성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 164쪽

예전에 내가 맡았던 환자들처럼 나는 죽음과 마주한 채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에마의 도움이 필요했다. 나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입장이 갈린 채, 의학을 계속 파고들지 아니면 문학에서 답을 찾아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죽음과 마주하며 나는 예전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서, 아니면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서 부단히 버둥거렸다. - 169쪽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에 대한 응답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오래전 학부 시절 배웠던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I can’t go on. I’ll go on).
그날 아침 나는 결심했다. 수술실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왜냐고? 난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그게 바로 나니까.
그리고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 179, 180쪽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게 뭔지는 몰라도, 나는 히포크라테스나 마이모니데스, 오슬러도 가르쳐 주지 않은 뭔가를 배웠다.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 - 197, 198쪽

과학을 형이상학의 결정권자로 보면 세상에서 신뿐만 아니라 사랑, 증오, 의미도 함께 사라져버리고, 이런 의미가 모두 사라진 세상은 결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인생의 의미를 믿으면 반드시 신도 믿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과학이 신에 대해 어떤 근거도 제공할 수 없다면, 마찬가지로 인생의 의미에 대한 근거도 마련해주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인생 자체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결론에 다다를 것이다. 다시 말해, 실존적 주장은 아무런 무게도 지니지 못하게 되고 과학적 지식이 곧 모든 지식이 되어버리고 만다. - 201쪽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과학방법론은 인간이 만든 산물이기에 영원불변의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 우리는 세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손쉽게 조작하기 위해, 현상을 다루기 쉬운 단위들로 축속하기 위해 과학 이론을 만든다. 과학은 재현 가능성과 인위적인 객관성에 기반을 둔다. 그래서 물질과 에너지에 대한 이런저런 주장을 내세울 때는 탁월하지만, 고유하고 주관적이며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실존적이고 본능적인 성질에 과학 지식을 적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과학은 경험적이고 재현 가능한 정보를 체계화하는 데 가장 유용한 방식일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과학의 능력은 역설적으로 인생의 가장 중심적인 측면들(희망, 두려움, 사랑, 증오, 아름다움, 질투, 명예, 나약함, 부단한 노력, 고통, 미덕)을 포착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런 핵심적인 감정과 과학 이론 사이의 간극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그 어떤 사상 체계도 인간 경험을 온전하게 담을 수 없다. 형이상학은 계시(啓示)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 201, 202쪽

모든 사람이 유한성에 굴복한다. 이런 과거 완료 상태에 도달한 건 나뿐만이 아니리라. 대부분의 야망은 성취되거나 버려졌다. 어느 쪽이든 그 야망은 과거의 것이다. 미래는 이제 인생의 목표를 향해 놓인 사다리가 아니라 끊임없이 지속되는 현재가 되어버렸다. 돈, 지위, <전도서>의 설교자가 설명한 그 모든 허영이 시시해 보인다. 바람을 좇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 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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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26 1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많다고 해서 성숙한 사람이라고 보기 힘들어요. 나이에 상관없이 주어진 삶을 알차게 보내고, 타인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성숙합니다.
 
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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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몇 권의 페미니즘 관련 도서를 읽으며, 이 사회의 남성으로서 너무 당연하게 살아왔던(젠더 감수성 없는) 나로써는 이해할 수도 없는 담론(록산 게이의 표현을 빌자면 대문자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척'하느라 피곤했었는지, 올해는 페미니즘 관련 도서는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명확히 이분된 성 대립 구조 속에서 생물학적으로 여자도 아니고 남자들의 사회적 관계에 잘 적응하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상태인 내가 과연 어느 쪽에 가까운지를 재어보는 일은 매우 피곤한 일이었다. 내가 '한남충'이거나 '꼰대'인 것은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반면, 일반적인 남자들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주장하기에는 그 근거가 매우 불충분했기 때문이었다. 단지, 이 사회 남성들의 어떤 면이 싫다고 해서, 남성보다는 여성과 대화하거나 일하는 것이 편하다고 해서, 가사 분담을 상대적으로 많이 한다고 해서, 내가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최근 몇 달간은 차라리 내가 남자이고, 아재이자, 꼰대의 길을 차근차근 밟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는 마음을 갖기 시작했다. 그게 오히려 나았다. "남자들이란..."으로 시작되는 비난에 '나는 아니'라며 손사래 치는 대신, 나라는 사람이 포함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로 했다. 몇 권의 책을 읽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여성들의 상황에 공감하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가식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기존의 책들보다는 조금 가벼운 담론을 접하고 싶었고, 마침내 적당한 책을 발견했다.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는 '남자인 너는 모른다. 그러니 배워라' 같은 논조가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거부감이나 부담을 갖지 않고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책은 결혼 후 아이를 낳아 전업주부의 생활을 하고 있는 김지영 씨의 일대기를 그렸다. 일대기라고는 했지만 1982년 출생부터 2016년 현재까지를 몇 토막으로 나누어 이 사회에서 여자로서 살아가는 그의 삶을 엿보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주인공인 82년생 김지영 씨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다. 작가가 설명하듯 82년생 중에서 가장 많은 여성의 이름을 선정한 것에는, 그만큼 이 여자의 삶이 특별하거나 독특한 것이 아닌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여성으로서의 삶임을 밝히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들은 무척이나 사실적이다. 읽다보면 이것이 소설이라기보다는 현실을 그대로 베껴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만큼 우리가 비현실적인 (혹은 소설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반증이 되는 것인지 모르지만.


태어날 때부터 성별이 무엇인지를 걱정해야 하고, 형제 중 남자가 있다면 당연히 후순위로 밀려나야 하고, 괴롭히는 남자아이가 있어도 그것이 좋다는 표현으로 여기며 감내해야 하고, 생면부지의 남자에게 위협을 받았을 때에는 오히려 자신의 행실에 대한 꾸지람을 듣고, 여자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은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왜 그리 많은지... 가부장적 제도의 정점인 결혼 이후에는 자신은 가사의 주된 존재로, 남편은 돕는 존재로 구분되어 모든 일을 당연히 처리해야 하고, 직장에서 욕을 먹지 않기 위해서는 여성성을 버린 채 악착같이 매달려야 하고, 육아를 위해서는 당연히 자신의 적성과 일을 포기해야만 하는 김지영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생의 전주기, 삶의 곳곳에 묻어 있는 여성으로서의 불리함과 차별이 이 사회에서 얼마나 당연시되어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언젠가 생각 없이 "나도 여성으로 한 번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만약 이러한 현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과연 그렇게 쉬운 말이 나왔을까 싶다. 내게는 그동안의 책 속에서 읽었던 정돈된 이론과 논리적 표현들보다도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한 여자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이 비단 한 여자에만 국한된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더 큰 울림으로 와 닿았다.

할머니의 억양과 눈빛, 고개의 각도와 어깨의 높이, 내쉬고 들이쉬는 숨까지 모두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최대한 표현하자면, ‘감히‘ 귀한 내 손자 것에 욕심을 내? 하는 느김이었다. 남동생과 남동생의 몫은 소중하고 귀해서 아무나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되고, 김지영 씨는 그 ‘아무‘보다도 못한 존재인 듯했다. - 25쪽

"은영 아빠가 나 고생시키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 둘이 고생하는 거야.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니까 혼자 이 집안 떠메고 있는 것처럼 앓는 소리 좀 하지 마. 그러라고 한 사람도 없고, 솔직히, 그러고 있지도 않잖아." - 32쪽

"남자애들은 원래 좋아하는 여자한테 더 못되게 굴고, 괴롭히고 그래. 선생님이 잘 얘기할 테니까 이렇게 오해한 채로 짝 바구지 말고, 이번 기회에 둘이 더 친해지면 좋겠는데."
짝궁이 나를 좋아한다고? 괴롭히는 게 좋아한다는 뜻이라고? 김지영 씨는 혼란스러웠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빠르게 되짚어 봤지만 아무래도 선생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좋아한다면 더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에게도 그래야 하는 거다. 그게 여덟 살 김지영 씨도 알고 있는 상식이다. - 41, 42쪽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들의 상황은 정말 심각했다. 옷차림이나 근무 태도를 핑계로, 알바비를 담보로 접근해 오는 업주들, 돈을 내면서 상품과 함께 어린 여자를 희롱할 권리도 샀다고 착각하는 손님들이 부지기수였다. 아이들은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남자에 대한 환멸과 두려움을 가슴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아 갔다. - 64, 65쪽

세상에는 이상한 남자가 너무 많고, 자신도 많이 겪었다고, 이상한 그들이 문제지 학생은 잘못한 게 없다는 여자의 말을 듣는데 김지영 씨는 갑자기 눈물이 났다. 꺽꺽 울음을 삼키느라 아무 대답도 못하는 김지영 씨에게 전화기 너머의 여자가 덧붙였다.
"근데, 세상에는 좋은 남자가 더 많아요." - 69쪽

"그리고 내가 결혼을 할지 안 할지, 애를 낳을지 안 낳을지도 모르는데. 아니, 그 전에 죽을지도 모르는데. 왜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미래의 일에 대비하느라 지금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살아야 해?" - 72쪽

배려라고 생각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무례를 저지르는 사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항의를 해야 할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고, 괜한 말싸움을 하기도 싫어 김지영 씨는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 100, 101쪽

김은실 팀장은 여자 같지 않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회식자리에 끝까지 남았고, 야근과 출장도 늘 자원했고, 아이를 낳고도 한 달 만에 출근했다. 처음에는 자랑스러웠는데, 여자 동료와 후배들이 회사를 나갈 때마다 혼란스러웠고, 요즘은 미안하다고 했다. 회식은 사실 대부분 불필요한 자리였고, 잦은 야근과 주말 근무, 출장은 인원을 보강해야 하는 문제였다. 출산, 육아로 인한 휴가와 휴직도 당연한 것인데 후배들의 권리까지 빼앗은 꼴이 됐다. 관리직급이 된 후로 가장 먼저 불필요한 회식이나 야유회, 워크숍 등의 행사를 없앴고, 남녀 불문 출산휴가와 육아휴직도 보장했다. - 112, 113쪽

안 그래도 김지영 씨는 졸업반이 되어 취업 준비를 시작한 남자 친구에게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했다. 같은 상황일 때, 남자 친구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때를 생각하면 여전히 손끝이 저리도록 애틋했다. 하지만 김지영 씨의 일상도 전쟁이었고, 긴장을 놓으면 당장 피투성이가 될 순간순간에 다른 누군가의 안위를 살필 여유가 없었다. 서운함은 냉장고 위나 욕실 선반 위, 두 눈으로 뻔히 보면서도 계속 무심히 내버려두게 되는 먼지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두 사람 사이에 쌓여 갔다. - 119쪽

"그냥 하나 낳자. 어차피 언젠가 낳을 텐데 싫은 소리 참을 거 없이, 한 살이라도 젋었을 때 낳아서 키우자."
정대현 씨는 마치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사자, 라든가 클림트의 ‘키스‘퍼즐 액자를 걸자, 같은 말을 하는 것처럼 큰 고민 없이 가볍게 말했다. 적어도 김지영 씨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구체적인 가족계획이라든가 출산 시기를 얘기해 본 적은 없지만 정대현 씨도 김지영 씨도 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고, 정대현 씨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김지영 씨는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 135쪽

김지영 씨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 그러니까 출산 이후에도 직장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과 벌써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데에 대한 죄책감을 남편에게 열심히 설명했다. 정대현 씨는 차분히 아내의 말을 듣고 적절한 순간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지영아,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얻게 되는 걸 생각해 봐. 부모가 된다는 게 얼마나 의미 있고 감동적인 일이야. 그리고 정말 애 맡길 데가 없어서, 최악의 경우에, 네가 회사 그만두게 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책임질게. 너보고 돈 벌어 오라고 안 해."
"그래서 오빠가 잃는 건 뭔대?"
"응?"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라며. 나는 지금의 젊음도, 건강도, 직장, 동료, 친구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도, 계획도, 미래도 다 잃을지 몰라. 그래서 자꾸 잃는 걸 생각하게 돼. 근데 오빠는 뭘 잃게 돼?" - 136, 137쪽

"그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오빠 살림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왜 남의 일에 선심 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 144쪽

예전에는 일일이 환자 서류 찾아서 손으로 기록하고 처방전 쓰고 그랬는데, 요즘 의사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종이 보고서 들고 상사 찾아다니면서 결재 받고 그랬는데, 요즘 회사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손으로 모심고 낫으로 벼 베고 그랬는데, 요즘 농부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라고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는다. 어떤 분야든 기술은 발전하고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게 마련인데 유독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전업주부가 된 후, 김지영 씨는 ‘살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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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나에게 고맙다 : 가장 흔한 말, 정작 나에게 하지 못한 인사
전승환 지음 / 허밍버드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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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내가 산 책은 아닌데 책장에 이런 제목의 책이 꽂여 있는 것이 의아했다. 모르긴 몰라도 혜민 같은 이들을 좋아하는 집의 누군가가 사 놓고 구석에 박아둔 것이리라. 책장 자리도 확보할 겸 책을 빼서 한번 훑어보았다.

 

사소함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게으르게 살아도 괜찮다, 빈틈이 필요하다, 누구나 외롭다, 힘들 땐 힘들다고 해라, 진심이 통한다고 믿는다 따위의 말에 살을 붙이고 줄바꾸기를 많이 해서 서너 페이지로 편집하였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을 패러디 한 것 같은 "내가 만일 삶을 다시 살수 있다면 (...) 삶의 매 순간순간 집중하리라" 같은 구절을 시처럼 써 놓은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웃음을 뿜고 말았다. 자기 블로그에나 게시할 이야기를 이렇게 책으로 펴내다니... 게다가 누구의 사진인지도 모를 예쁜 사진들을 군데군데 배치해서 페이지 수를 늘리고 (이런 사진들을 무료로 공개하는 경우가 많으니 저작권 문제는 해결을 한 건가?), 어디서 들었을 법한 말들을 몇 줄씩 써 놓는 그런 류의 책이었다.

 

일단 책을 폈으면 끝까지 읽는다, 아무리 안 좋은 책이라도 한 대목 정도는 내게 도움이 될만한 것을 남긴다는 스스로의 원칙을 고집스럽게 지킨다는 게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은 몰랐다. 재빨리 읽고 덮어버렸다. 요즘은 어째 이런 말랑말랑한 글이 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모두 "힘내"라고 말을 건네지만
어떻게 힘을 내야 하는지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위로라고 건네는 한마디일지 몰라도
최선을 다해 힘을 낸 나에게는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나는 단지,
‘힘‘을 낼 수 있는 힘이 없어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는 건데... - 84쪽

책도 비슷하다. 낯설게 느껴지는 책도 막상 읽다 보면, 단 한 줄이라도 배울 수 있는 구절이 있고 영감을 주는 단어가 있다. 이처럼 나와 다른 사람에게도 ‘당신이라는 사람, 한번 읽어 내려가 보자‘라는 마음만 갖는다면, 적어도 알게 모르게 품고 있던 상대에 대한 선입견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 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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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03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장 수집하는 독자들이 이 책을 좋아하겠어요. 그런데 어디선가 본 문장들이 제법 많을 것 같아요. 요즘 짧은 문장이 SNS 글쓰기의 대세라고 하지만, 출처 없이 문장만 달랑 올리는 모습이 탐탁치 않습니다.

lemonakt 2017-09-18 0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느낀 바를 그대로 적어주셨네요. 정말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