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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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 답지 않게 요즘 트렌드에 맞게 제목을 잘 뽑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일본 원제는 <逆境からの仕事学>, 굳이 번역하자면 '역경으로부터의 일에 대한 학(문)'이된다. 그러면 그렇지. 제목 자체에 눈이 가도록 수정한 역자나 편집자의 역량이 돋보이는 부분이기는 하다. 역자는 뜻을 정확히 하려는지 仕事가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일'보다는 범위가 좁은 공적 영역에서의 일을 의미하므로 이를 그냥 '시고토(학)'이라고 해설하고 있는데, 뭔가 좀 어색하다. 제목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에서의 '일'을 직업으로서의 일로 좁혀보면 될 것 같다. (띠지에는 '인생 철학으로서의 직업론'이라고 보다 적절한 제목이 달려 있다.) 


나를 지키며 일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즉각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고 싶어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그리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저자의 성향대로 보다 근본적이고 기초적인 고민으로부터 자신과 일에 관한 접근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금과 같이 불확실한 시대에 학력사회의 모델마저 붕괴하고 있는 시점에서는 일에 관한 세 가지 관점을 유지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그 세 가지란 바로 일의 의미를 생각해볼 것’, ‘다양한 시점을 가질 것’, ‘인문학을 배울 것’이다. 이는 '나다움'과 '쓸모없음'의 효용, '고전'과 '역사'로부터의 학습이라는 말로도 치환된다.


"그래서, 결론은 또 인문학이냐?"라고 반문하거나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겠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이와 다른 차원에서 각주 하나 없이 이렇게 스스로 문답하며 글을 써내려가는 저자의 박식함과 사회를 바라보는 일관된 스스로의 관점을 정립한 것에는 고개를 숙이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이들이 한결같이 기본을 강조하고 인문을 강조하고 고전을 강조하는 것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책을 다 읽고도 정말 그래도 될 것인지, 혹은 다른 방식을 찾고 싶은 마음에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아 주저하고 있는 내 자신의 모습만 남게될 뿐.

저는 일이란 ‘나다움’이나 인생 그 자체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을 일에 쏟고 있으며 직장 동료들은 개인의 인격이나 사고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일에서 얻는 기쁨과 행복은 삶의 보람이기도 할 터입니다. 또 일을 통한 자신의 성장 역시 기대할 수 있겠지요.
오늘날처럼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일을 그저 생계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내 삶의 방식을 만드는 어떤 것’으로 받아들일 기회가 늘어날 것입니다. 일에 임할 때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이 일을 통해 나는 어떻게 변화하고 싶은지, 또 사회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매일매일 원점으로 돌아가 진지하게 질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18, 19쪽

다양한 관점에서 사물을 본다는 것은 편견 없이 대상을 본다는 뜻이며, 이는 곧 객관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뜻입니다. 당연하게도 우리의 눈은 두 개뿐입니다. 이 두 개의 눈은 주관적인 눈입니다.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세 번째 눈, 네 번째 눈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쉽지 않지만 세 번째, 네 번째 눈을 가지려 노력하는 일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21, 22쪽

우리는 일을 통해 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을 얻습니다. 단지 입장권을 얻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면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상관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을 통해서 ‘나다움’도 표현하고자 하기 때문에 어려워지는 것이지요. - 41쪽

그렇다면 이런 중압감에 짓눌리지 않기 위한 처방전은 없을까요? 있습니다. 그 처방전은 바로 하나의 영역에 자신을 100퍼센트 맡기지 않겠다는 태도입니다. 일에 임하는 자세도 그렇고, 삶의 방식도 그렇습니다. 하나의 일에 전부를 쏟아 붓지 않는 것, 스스로를 궁지로 내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 47쪽

‘선택과 집중’은 기업 활동에서 자주 거론되는 말입니다.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선택과 집중’의 배후에 실은 더욱 근원적이며 쓸모없는 것을 포함한 중층적인 부분이 넓게 퍼져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대학에서 공부할 때도 전공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교양 수업을 먼저 들어 폭넓은 지식을 쌓습니다. 이처럼 쓸모없어 보이는 것을 포함한 토대가 생긴 다음에야 비로소 무언가를 선택하고, 무언가에 집중하는 다음 단계로 걸음을 옮길 수 있습니다. - 99쪽

‘날 것’이란 방금 말한 ‘말린 것’의 반대로 지금 유행하는 현상이나 최신의 사상, 리얼 타임으로 움직이는 정보 등을 다루는 책이며 ‘탄력적인 독서’에서 말한 세 번째 그룹에 해당합니다. 오늘날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신조어가 등장하므로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날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날 것’은 먹거리의 경우를 떠올려보면 알 수 있듯이 ‘제철음식’이니 당연히 맛은 있지만 익히지 않았으므로 가끔 먹고 배탈이 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안전성과 영양가라는 면에서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비해 ‘말린 것’은 안전성이 검증된 몸에 좋은 것입니다. 신선하지 않고 자극도 없지만 물기기 다 빠져 더 이상 부패할 걱정도 배탈이 날 염려도 없습니다. 소화하기 쉽고 몸에 양분이 되어 먹는 것만으로도 몸에 좋습니다. - 120, 121쪽

따라서 지성의 건강이라는 측면에서 멀리 내다본다면 기초가 되는 부분은 ‘말린 것’을 통해 견실하게 취하는 것이 좋겠지요. 그런 후에 필요에 따라 ‘날 것’을 받아들이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몇 번이고 말씀드리지만 특히 지금 이 시대는 바로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조차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인 만큼 더욱 의식적으로 ‘말린 것’을 취하는 데 신경을 쓰고 착실하게 고전에서 예지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통해 배운다’는 훌륭한 말이 있습니다. 그 이상의 견실한 지성은 없을 것입니다. - 121쪽

이 책에는 "‘내가 인생에 아직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를 묻지 않습니다. 지금에서야 ‘인생은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라고 물을 뿐입니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내 인생의 불우함을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과제를 스스로 묻고 그것에 대답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이 바로 삶이라는 뜻이지요.
삶을 통해 주어진 과제의 내용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이 책에는 자기 일은 시시해서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말하는, 양복점에서 일하는 한 청년의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프랭클은 이에 관해 "중요한 것은 자신의 위치, 자신의 활동 영역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일 뿐입니다. 활동 범위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략) 개인의 구체적인 활동 범위 안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다른 누군가로 대체될 수 없습니다. 누구든 그러합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직업에는 각각 커다란 책임이 부여된 것이지요. 이를 깨달은 사람은 그 책임의 크기를 두려워하면서도 그 안에서 어떤 종료의 기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125, 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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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세계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살림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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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편의점 인간>에서 전체의 일부, '부품'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현대인의 세계관을 표현한 무라타 사야카의 새로운 책을 읽었다. <편의점 인간>이 사회(직장)와 개인이라는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소멸세계> 전작의 연장선상에서 가족과 개인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렇게 작가의 세계관은 작품을 통해 계속 연결되고 있는 것 같다.

  

작가는 이 책에서 현재 우리가 유지하고 있는 연애, , 결혼, 출산과 같은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의 삶의 방식이나 상황이 전혀 다른 형태로 유지되는 또 다른 세계 - 그러나 머지 않은 미래에 점차 현실이 될 것 같은 세계 - 를 묘사한다. 부부로서 지위는 유지하지만 부부가 아닌 타인과 각각 연애를 하고, 부부끼리의 섹스는 근친상간으로 인식되고, 임신과 출산은 인공수정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남자도 몸에 자궁을 달아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한 아이들은 가족이 아닌 정부차원에서 관리되는 사회. 암울한 미래를 그린 많은 소설과 영화들에서 한번쯤은 보았을 법한 규칙적이고 획일적인 '관계'이다.


새롭게 등장한 이 '실험도시'를 유토피아라고 불러야 할지 디스토피아라고 불러야 할지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주인공 아마네의 고민은 어머니와의 갈등을 통해 극대화 된다. 남편과의 섹스를 통해 자기를 임신하고 출산한 어머니로부터 강조되어 온 예전 사람들이 살아왔던 '정상적인 삶'에 대한 의문과 반감은 커져만 가고, 섹스를 통해 '사랑의 도피'를 완성한 어머니와 달리 실험도시에 입주해 인공으로 아이를 갖고 그 아이를 정부가 아닌 자신이 키우려는 계획을 통해 사랑의 도피를 완성하려 한다. 이를 단순히 구 세대 vs 신세대의 충돌로 보아야 할 것은 아니다. 방법은 다르지만 어머니도 아마네도 각자가 사회가 인정하는 '정상'에 대한 균열을 추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계획했던 출산과 육아의 실패로 그가 추구하였던 이상은 좌절되지만, 그는 다른 방식의 금기를 실행한다. 정상을 강요하는 어머니를 계획도시로 유인.감금하여 비정상에 적응시키는 한편, 획일적으로 양육되고 있는 '아가'와의 섹스를 통해 자신을 새로운 균열로 연결한다. 프롤로그 한 장에 담긴 금단의 열매를 먹고 낙원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의 후예들이 다시 낙원으로 돌아간다면, 낙원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섹스를 한 사람들이 인류의 아담과 이브로 남게 될 것이라는 말이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우리 사회의 미래는 낙원으로 변모해가고 있는가, 아니면 점차 소멸하고 있는 것인가. 낙원이든 소멸세계든 그 변모의 마지막 단계에서 나는 기꺼이 아담과 이브가 되고자 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안전한 발정 같은 건 없다니까. 인간은 점점 진화를 거듭해서 영혼의 형태며 본능도 바뀌어가잖아. 완성된 동물 같은 건 이 세상에 없으니 완성된 본능도 존재하지 않지. 누구나 진화의 과정에 있는 동물일 뿐이야. 그러니까 세상의 상식과 부합하든 하지 않든 그건 우연에 불과하고, 다음 순간에는 무엇이 옳은지 판단할 수 없어지는 거지."
"......"
"우리는 진화의 순간을 살아가는 거야. 언제나 그 길을 가는 ‘도중’이라고."
"잘... 모르겠어. 그럼 인간은 언제 완성되는데?"
"완성은 없어. 크로마뇽인이었을 때는 그게 완성형이라 여겼을 테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였던 시절에도 그랬겠지. 두개골과 장기의 형태도 손발의 길이도 계속 바뀌었잖아. 그에 수반하는 영혼이나 뇌 같은 건 그보다 더 쉽게 변화한다고. 올바르다는 개념 자체가 환영이야. 끝없이 추구해도 결코 따라잡을 수 없을걸." - 107, 108쪽

엄마가 믿는 ‘올바른’ 세상도 이 세상으로 이어지는 그러데이션의 ‘도중’이었을 뿐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우리는 언제나 ‘도중’에 있다. 어떤 세상에 세뇌되더라도 그것으로 누군가를 심판할 권리 같은 건 없는 것이다. - 158쪽

정상이라는 것만큼 소름 끼치는 광기는 없다. 이미 미쳐있는데도 이렇게 올바르다니. -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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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사랑하면 철학자가 된다 - 만남부터 이별까지,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
이원영 지음, 봉현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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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동물의 권리나 동물복지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터라, 이런 생각들의 철학적 배경이 궁금했다. 그래서 "철학도에서 수의사가 된"이라는 띠지 카피를 보고, 동물을 철학적으로 수의학적으로 대하는 저자의 생각을 엿보고 싶어졌다.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상적인 생활에서 한 치 더 깊게 들어간 고민을 원했는데, 수의사로서 제공해줄 수 있는 반려동물에 대한 생활밀접형 정보나 주의사항, 반려동물에 대한 감성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구매의도와는 맞지 않는 독서가 되어버렸다. 반려동물을 입양할 예정이거나 막연히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면 일독해볼 필요는 있겠다. 

무언가에 이름 짓는 방식을 보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다. 그 대상이 동물이든 사람이든 마찬가지다. 다만 그 대상이 동물이라면 좀더 자유롭고, 좀더 무의식의 세계가 드러날 뿐이다. 이를 통해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자신이 상대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상대와 어떤 방식으로 관계 맺기를 바라는지, 자신이 끝내 이 세상에서 성취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알 수 있다. 혹은 스스로가 책임과 즐거움 중 어떤 것에 무게를 두는지, 남들에게 묵지하게 보이고 싶은지 가볍게 보이고 싶은지, 남들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은 자기만의 세계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이유도 의미도 알지 못한 채 이곳에 던져진 자신이 끝내는 어떻게 사라져가길 상상하고 있는지 잠시나마 생각해볼 수 있는 단초가 된다. - 35, 36쪽

생존의 기본 조건을 제공한다고 해서 상대를 함부로 할 수 있는 권한과 자격을 가질 수 없다는 원칙이, 어째서 인간에게만 적용되어야 할까? 당연히 동물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건전한 상식에 비추어 볼 때, 내가 나의 개,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쉴 곳을 마련해준다고 해서 그들을 내 맘대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직관적으로나 반려동물을 내 맘대로 해도 좋다는 것은 용인될 수 없는 자세다. - 69쪽

상당히 많은 반려동물들이 아주 기본적인 조건만 제공하면 놀라운 관계를 선물로 준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그들로 인해 기쁨과 행복이 저절로 생겨날 수 있다. 또한 서로의 관계가 비틀리지 않으며 즐거움, 편안함, 애틋함 등의 긍정적 감정들이 강화된다. 그들이 내 삶에 깊이 들어올수록 나 역시 그들에게 깊이 다가가게 되고, 갈수록 서로를 고양시키게 된다. 이것은 놀라운 선순환 구조다.
이렇게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서로를 고양시킬 수 있는 관계가 우리 삶에서 결코 흔치 않다. - 72쪽

개, 고양이와 나란히 누워 있거나 천천히 쓰다듬으며 고요한 분위기 속에 있다 보면, 하루 종일 자신을 둘러싸고 흔들어댔던 온갖 허울과 가식과 세속적 밀당으로부터 벗어난, 거의 완전에 가까운 자유로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지내다 보면 저절로 무장 해제가 된다. 진지하고 심각하게 매사에 의미를 추구하고, 몸과 마음이 온통 목적 지향적인 우리 평범한 인간들의 부담을 눈 녹듯 사라지게 해준다. - 97쪽

물론 개입하지 말고 그대로 두라는 식의 이러한 사상들의 문제는 현재의 선과 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묻어버린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들 사상이 이야기하고자 한 바는 현재의 모습이 이상적이므로 그대로 내버려두라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이익과 취향에 따라 남과 자신의 주변을 강제하지 말라는 것이다. 즉, 자기 자신을 비롯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함부로 대하거나, 무리하게 개입하는 행동에 대한 경고다. 각각이 가진 내재적 메커니즘을 건드리지 말고, 당신 자신도 애초에 무리하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갔더라면 현재와 같은 혼란이 야기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이제라도 자연의 순리를 따른다면 모든 것이 차차 안정적으로 흘러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 120쪽

좋은 죽음은 없다. 죽음은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 죽음이 마치 삶에 대응되는 것으로 생각하며 논의하는 경우가 많지만, 죽음의 대척점에 있는 것은 탄생이다. 삶의 처음이 탄생이고, 삶의 마지막이 죽음이다. 탄생도 죽음도 그 자체로는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 가치중립적인 용어인 셈이다. 그러므로 우리말 ‘안락사’로 번역되는 영어 ‘euthanasia’의 어원적 의미인 ‘좋은 죽음(good death)’이란 자칫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죽음이 좋다’는 의미라기보다, 삶의 마지막이 당사자는 물론이고 다른 누가 봐도 좋지 않은 고통스러운 상태였는데, 이제 고통이 없어졌다는 것일 뿐이다. 고통스러운 삶을 지속했던 당사자는 이제 고통을 느끼지 않는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며 안락할 것은 없다. 그저 삶이 끝난 것이다.
안락사의 문제는 인간의 개입으로 그 상태를 강제 종료했다는 데서 발생한다. 개입의 정당성을 어디서도 확보할 수 없는데 개입할 수 있는 힘은 가지고 있고, 개입하면 좋아지는 당사자들이 여럿 있어서 개입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는 데서 발생한다. - 152쪽

한 사회에서 어떤 권리를 갖는다거나 배려의 대상이 되는 데는, 타고나거나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것들, 즉 그 사람이 가진 조건이나 외양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단순히 남자이기 때문에, 연장자이기 때문에, 백인이기 때문에, 돈이 많기 때문에, 높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힘이 세기 때문에, 혹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일이 편파적으로 결정되는 것은 곤란하다. 다시 말해, 성, 나이, 인종, 재산, 권력, 물리력, 개인의 기호 등에 따라 권리와 대우가 달라지는 것은 인류의 오랜 역사를 부정하는 ‘퇴행’이며 진화의 ‘역행’이라고 봐야 한다. - 173쪽

‘종’의 차이는 사실상 인간 사회의 이러한 차이 모두를 합한 것보다도 훨씬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다른 종, 인간보다 약한 종을 보호하고 배려하는 행동이 어떤 사회에서 나타난다면, 성별이나 인종, 나이와 재산 같은 외적인 모습이나 사회적 지위의 차이에 기반하여 타인에게 행해지는 무분별한 차별이나 배타적 행위는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지 않을까? 따라서 동물이 학대받거나 동물의 생명이 경시되지 않고 좋은 대우를 받는 나라는 그렇지 않은 나라에 비해 위대하다고 볼 수 있다.
간디의 말은 다름에서 오는 차이를 차별로써, 통제되지 않은 물리력으로써 행사하는 것은 야만에서 조금도 진전되지 않은 것이며, 오랜 세월 일구어온 인류의 역사와 문명과 진화의 성취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행동이니, 이제 거기서 조금 더 나아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깊은 탄식으로 들린다. - 173, 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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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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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아몬드>를 재미있게 읽었기에, 작가의 이름만으로 구매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집중할 수 없는 산만함이 들기 시작했다. 요즘 젊은 세대의 고민을 담아내는 트렌드가 잘 반영되었다는 생각은 든다. 한 줄로 하면 <82년생 김지영>의 평범함을 상징하는 김지혜가 <88만원 세대>가 되어 이 부조리한 사회의 구조 속에서 살아가다가 <69>과 같은 "놀이를 통한 균열. 균열을 통한 변화"를 시도 했지만... 이라고 정리하련다.

지상에서 자동차를 타거나 빠른 걸음으로 걷는 사람들 중 자신들의 발밑에 요란한 전동차가 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할 사람이 오늘 하루 몇이나 될까. 알면서도 모두들 알지 못한다. 혹은 잊고 산다. - 24쪽

말문이 막혔다. 어쩌면, 애 안 낳아본 것들이랑은 말이 안 통한다는 그녀의 입버릇에조차 내가 헤아릴 수 없는 진심이 담겨 있는 건 아닐까. 그녀가 원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도록 강요하는 시스템이 문제일 수도 있다. 입바른 말 한번 했다가 미운털이 박히고, 궃은일을 맡게 되고 견딜 수 없게 되고 밥줄이 끊긴다... -72쪽

"그랬군요. 그런데 사실 난 가끔 궁금해요. 우리가 욕하고 한심하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데 똑같은 입장에 놓였을 때 나는 그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비판하는 건 쉬워요.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성, 상식을 잣대 삼으면 되거든요. 그런데 인간이 이기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순간에 놓이면 존엄성과 도덕, 상식을 지키는 건 소수의 몫이 돼요. 내가 그런 환경과 역사를 통과했다면 똑같이 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결국 뭔가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어떤 노력이요?"
"적어도 내 몫을 위해서만 싸우지는 않겠다고 자꾸자꾸 다짐하는 노력이요. 마음에 기름이 끼면 끝이니까. 정답이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요. 더 나은 어떤 것을 향해 차츰 다가가고 있기만을 바랄 뿐이죠." - 80, 81쪽

그때 나 홀로 결심했었다. 모두가 함께 모여 있을 때 혼자였던 순간을 잊지 않겠다고. 특별히 그 결심에서 무슨 이름을 붙여주고 싶진 않다. 집단의 기억이 아니라 온전히 내 가슴에만 새겨진 외롭고 아름다운 그림 조각이다. 거기서 나는 조금 슬픈 예감을 했다. 모두가 오늘을 잊어버리고 말 거라고. 지금의 열기는 곧 사그라질 불꽃같은 거라고 말이다. - 90쪽

없는 사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뭔가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 없는 사람이다. 늘 소리치고 있는데도 없는 사람이다. 수면 위에 올라있지 않으면 없는 사람이다. 반지하방에 살면 없는 사람이고, 문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없는 사람이고, 인생과의 게임에서 지면 없는 사람이다. 가슴이 아팠다. 나는 그동안 대체 무얼 한 걸까. 이들과 어울리는 내내 나는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서만 발버둥쳤다. - 202쪽

"나름의 애정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행운을 빌어. 살다 보면 알게 될거야. 누구나 마음속 깊은 데엔 겹도 모양도 다른 사람이 끝없이 들어있다는 걸." - 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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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에 다녀왔습니다
임경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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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겨울 정도로 한 곳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좋은 반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계획하며 설레어하거나 낯선 곳에서의 경험에 흥분하는 성격이 아님에도 여행서적은 꾸준히 읽어왔던 편이다. 몸으로 뛰는 것보다 눈으로 읽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다수의 다른 것들처럼 여행도 글로만 배우고 마는 성격이었으나, 몇 년 전부터는 그나마 있는 여행서적도 읽지 않고 있다. 여행을 하다보면 당연히 그 여행자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과 많은 사건 그에 따른 감상이 있기마련지만, 이러한 일련의 우연들도 '발단-전개-위기-절정'순으로 정교하게 계획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을 읽은 후부터였을 것이다. (여기서 굳이 그 책의 제목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그 책의 저자는 이후에도 장소를 바꾸어가며 3-4권의 여행기를 더 펴낸것으로 안다.) 


장장 열흘이나 되는 긴 연휴에도 불구하고 남들은 한번쯤 계획했다는 여행을 전혀 생각해보지 않고 있는 스스로에게 놀라며, 읽기에 부담스럽지 책 한 권으로 물리적 여행을 대신하고 싶었다. 마침, 임경선 작가의 여행기가 발간되었다는 광고를 보았고, 그가 다녀온 여행지 또한 언제고 한번은 가보고 싶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교토였기에 주저하지 않고 책을 골랐다. 책을 훑어보니 곳곳에 교토의 하늘이나 작은 상점들을 찍은 사진들이 눈에 띄었다. 여행기에 사진이 빠질 수는 없겠지만 사진집이 아님에도 필요 이상의 사진을 덕지덕지 붙여 놓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터라, 이 정도 수준이면 괜찮겠다는 안심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여행지에서 있을 법한 우연과 과장이 전혀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다른 여행기에 비해서는 흥미로운 요소가 떨어진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작가의 차분하고 담담한 글은 그가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교토의 정서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읽다보니 이 책에는 흔한 교토의 명소보다는 오래된 서점, 식당, 카페, 빵집과 같은 가게들에 대한 탐방과 취재가 주된 내용이었다. 작가는 몇 대째 가업을 잇는 오래된 가게, 일부러 드러나지 않게 골목에 위치한 가게, 방문객에게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가게들을 찾아다니며 교토 사람들의 습성이나 생각, 정서들을 읽어내고 있다. 


작가의 일본이나 하루키에 대한 애정을 익히 알고 있는 터라, 그가 교토의 장점이라고 꼽는 선대로부터 유지되어 온 가치의 보존, 그 가치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 그러나 그것을 무작정 드러내지는 않는 겸손함이라는 항목들에 그리 큰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교토 내 몇 곳의 특색있는 가게와 운영자들을 보여준 이 책을 다 읽은 독자들이 과연 작가가 서문에서 칭찬 일색으로 예찬하고 있는 교토와 교토인의 긍정적 덕목들 - 이를 테면 개인주의자이되 공동체의 조화를 존중하고, 물건을 소중히 하되 물질적인 것에 휘둘리지 않고, 차분하지만 단호하고, 예민하고 섬세하지만 자기만의 색을 지키고, 성실히 노력하지만 결코 무리하지 않고, 욕망보다는 절제를 겉치레보다는 본질을 선택하는 삶 - 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서문에서의 이러한 완벽과도 같은 예찬은 작가가 그리고 있는 교토의 분위기, 본문의 어조와 내용, 이 책의 전체적인 느낌을 고려했을 때 그리 잘 어울리지만은 않는 과장은 아니었을까.

어떤 사람들에겐 가게를 연 목적이 돈을 되도록 많이 버는 것이 아니다. 가게의 몸집을 크게 키우는 것도 아니다. 많은 손님들이 들이닥치면 오히려 곤란하다. 호리베 씨는 사람이 많이 몰리다 보면 주인이 원치 않는 유형의 사람들도 와버리고 일도 번잡해져, 자신이 바라던 서점의 모습을 잃을까 봐 우려했다. 그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와서 화제의 베스트셀러나 신간을 사가는 그런 서점을 차릴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 지나다 우연히 들르는 손님보다 이 서점의 존재를 사전에 알고 일부러 찾아와주는 손님을 편애하기로 했다. 그런 손님들이 이곳에서 호리베 씨의 엄선된 책 큐레이션을 통해 자신에게 딱 맞는 책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랐다. - 39쪽

역사가 오래된 노포일수록 그 오래됨을 전면에 내세우거나 뽐내지 않는다. 한 염색집은 230년 넘게 영업했음에도 노포임을 드러내는 어떤 수식어도 간판에 내걸지 않는다. 그 호칭은 가게가 스스로 붙이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불러주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노포가 의미하는 것은 ‘신용’이다. 한눈 팔지 않고 전통을 지켜온 가게가 있고 거기에는 일편단심인 손님들이 존재했다. 손님은 선대 때부터 거래해온 가게를 꾸준히 애용하고, 가게 주인도 손님이 대대로 찾아주는 것이 고마워서 질 좋은 제품으로 보답한다. 제대로 된 노포일수록 나만 빛나면 된다, 나만 눈에 띄면 된다 하는 오만한 태도 가 없다. 내가 원조라고 주장하는 법도 없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자기 가게만의 고유한 색을 지켜나갈 뿐이다. 반짝거리는 새것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낡고 약간 녹슨 듯한 세월의 흔적, 그리고 그기서 비롯하는 향수 어린 감성을 교토는 더 가치 있게 여긴다. - 45, 46쪽

오로지 교토의 총체적인 아름다움을 위해 주민들과 기업들이 기꺼이 협조한다. 나 혼자 튀기보다 주변과 조화를 이루려는 마음, 각자가 조금씩 양보하는 그런 마음들이 모여,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변함없이 유지해나간다. - 97쪽

‘내 형편에 맞지 않는 것은 사지 않는다’가 교토인의 자연스러운 감각이다. 그들은 허세를 경계한다. 자신의 경제적 상황에 걸맞지 않게 돈을 펑펑 쓰거나 고가의 물건을 몸에 걸치고 다니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 172쪽

한편, 교토 사람들은 ‘교토’라는 단어 자체에 자랑할 만한 브랜드 가치가 있음을 내심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으로 ‘교토’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는 가게를 신뢰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가게 간판이나 노렌에 교토를 상징하는 ‘京’이 새겨져 있다면 그것은 자기 본연의 실력 대신 ‘교토’라는 상징적인 브랜드에 의지하는 ‘가짜’로 간주한다. ‘교토 요리’라고 간판에 굳이 써 붙이는 식당도 그 행위 자체로 이미 ‘요리 솜씨에 자신 엇음’을 드러낸다고 본다. - 173쪽

교토 사람들에게는 돈보다도 가치관이나 살아가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들은 자극적이고 화려한 생활보다는 심플하고 온화한 삶의 방식을 지지한다. 교토에서는 수억 연봉도, 고급 외제차도, 명품 브랜드도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교토라는 환경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근사하기에 나답게 살아가면 그것으로 족하다. 좋아하는 일을 원하는 대로 하면서 살아가기를 바라고,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나에게 깊은 충만감을 줄 수 있는지, 반면 무엇이 필요 없고 의미 없는지를 자연스럽게 깨달아간다. 그것이 ‘진짜’의 인생이니까.
‘이 삶의 방식이야말로 나한테 맞는 방식’임을 아는 것. 무리하거나 타산적이 되거나 폼 잡거나 하는 것을 멈추고 본연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 진정한 호사란 내가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그 삶의 방식을 정할 자유일 것이다. - 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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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오라 2017-10-11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엇보다도 여행지에서 있을 법한 우연과 과장이 전혀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진심이신가요? 첫10페이지까지만 읽어도 그게 느껴지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