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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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 답지 않게 요즘 트렌드에 맞게 제목을 잘 뽑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일본 원제는 <逆境からの仕事学>, 굳이 번역하자면 '역경으로부터의 일에 대한 학(문)'이된다. 그러면 그렇지. 제목 자체에 눈이 가도록 수정한 역자나 편집자의 역량이 돋보이는 부분이기는 하다. 역자는 뜻을 정확히 하려는지 仕事가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일'보다는 범위가 좁은 공적 영역에서의 일을 의미하므로 이를 그냥 '시고토(학)'이라고 해설하고 있는데, 뭔가 좀 어색하다. 제목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에서의 '일'을 직업으로서의 일로 좁혀보면 될 것 같다. (띠지에는 '인생 철학으로서의 직업론'이라고 보다 적절한 제목이 달려 있다.) 


나를 지키며 일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즉각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고 싶어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그리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저자의 성향대로 보다 근본적이고 기초적인 고민으로부터 자신과 일에 관한 접근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금과 같이 불확실한 시대에 학력사회의 모델마저 붕괴하고 있는 시점에서는 일에 관한 세 가지 관점을 유지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그 세 가지란 바로 일의 의미를 생각해볼 것’, ‘다양한 시점을 가질 것’, ‘인문학을 배울 것’이다. 이는 '나다움'과 '쓸모없음'의 효용, '고전'과 '역사'로부터의 학습이라는 말로도 치환된다.


"그래서, 결론은 또 인문학이냐?"라고 반문하거나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겠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이와 다른 차원에서 각주 하나 없이 이렇게 스스로 문답하며 글을 써내려가는 저자의 박식함과 사회를 바라보는 일관된 스스로의 관점을 정립한 것에는 고개를 숙이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이들이 한결같이 기본을 강조하고 인문을 강조하고 고전을 강조하는 것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책을 다 읽고도 정말 그래도 될 것인지, 혹은 다른 방식을 찾고 싶은 마음에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아 주저하고 있는 내 자신의 모습만 남게될 뿐.

저는 일이란 ‘나다움’이나 인생 그 자체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을 일에 쏟고 있으며 직장 동료들은 개인의 인격이나 사고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일에서 얻는 기쁨과 행복은 삶의 보람이기도 할 터입니다. 또 일을 통한 자신의 성장 역시 기대할 수 있겠지요.
오늘날처럼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일을 그저 생계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내 삶의 방식을 만드는 어떤 것’으로 받아들일 기회가 늘어날 것입니다. 일에 임할 때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이 일을 통해 나는 어떻게 변화하고 싶은지, 또 사회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매일매일 원점으로 돌아가 진지하게 질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18, 19쪽

다양한 관점에서 사물을 본다는 것은 편견 없이 대상을 본다는 뜻이며, 이는 곧 객관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뜻입니다. 당연하게도 우리의 눈은 두 개뿐입니다. 이 두 개의 눈은 주관적인 눈입니다.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세 번째 눈, 네 번째 눈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쉽지 않지만 세 번째, 네 번째 눈을 가지려 노력하는 일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21, 22쪽

우리는 일을 통해 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을 얻습니다. 단지 입장권을 얻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면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상관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을 통해서 ‘나다움’도 표현하고자 하기 때문에 어려워지는 것이지요. - 41쪽

그렇다면 이런 중압감에 짓눌리지 않기 위한 처방전은 없을까요? 있습니다. 그 처방전은 바로 하나의 영역에 자신을 100퍼센트 맡기지 않겠다는 태도입니다. 일에 임하는 자세도 그렇고, 삶의 방식도 그렇습니다. 하나의 일에 전부를 쏟아 붓지 않는 것, 스스로를 궁지로 내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 47쪽

‘선택과 집중’은 기업 활동에서 자주 거론되는 말입니다.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선택과 집중’의 배후에 실은 더욱 근원적이며 쓸모없는 것을 포함한 중층적인 부분이 넓게 퍼져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대학에서 공부할 때도 전공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교양 수업을 먼저 들어 폭넓은 지식을 쌓습니다. 이처럼 쓸모없어 보이는 것을 포함한 토대가 생긴 다음에야 비로소 무언가를 선택하고, 무언가에 집중하는 다음 단계로 걸음을 옮길 수 있습니다. - 99쪽

‘날 것’이란 방금 말한 ‘말린 것’의 반대로 지금 유행하는 현상이나 최신의 사상, 리얼 타임으로 움직이는 정보 등을 다루는 책이며 ‘탄력적인 독서’에서 말한 세 번째 그룹에 해당합니다. 오늘날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신조어가 등장하므로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날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날 것’은 먹거리의 경우를 떠올려보면 알 수 있듯이 ‘제철음식’이니 당연히 맛은 있지만 익히지 않았으므로 가끔 먹고 배탈이 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안전성과 영양가라는 면에서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비해 ‘말린 것’은 안전성이 검증된 몸에 좋은 것입니다. 신선하지 않고 자극도 없지만 물기기 다 빠져 더 이상 부패할 걱정도 배탈이 날 염려도 없습니다. 소화하기 쉽고 몸에 양분이 되어 먹는 것만으로도 몸에 좋습니다. - 120, 121쪽

따라서 지성의 건강이라는 측면에서 멀리 내다본다면 기초가 되는 부분은 ‘말린 것’을 통해 견실하게 취하는 것이 좋겠지요. 그런 후에 필요에 따라 ‘날 것’을 받아들이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몇 번이고 말씀드리지만 특히 지금 이 시대는 바로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조차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인 만큼 더욱 의식적으로 ‘말린 것’을 취하는 데 신경을 쓰고 착실하게 고전에서 예지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통해 배운다’는 훌륭한 말이 있습니다. 그 이상의 견실한 지성은 없을 것입니다. - 121쪽

이 책에는 "‘내가 인생에 아직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를 묻지 않습니다. 지금에서야 ‘인생은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라고 물을 뿐입니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내 인생의 불우함을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과제를 스스로 묻고 그것에 대답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이 바로 삶이라는 뜻이지요.
삶을 통해 주어진 과제의 내용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이 책에는 자기 일은 시시해서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말하는, 양복점에서 일하는 한 청년의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프랭클은 이에 관해 "중요한 것은 자신의 위치, 자신의 활동 영역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일 뿐입니다. 활동 범위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략) 개인의 구체적인 활동 범위 안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다른 누군가로 대체될 수 없습니다. 누구든 그러합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직업에는 각각 커다란 책임이 부여된 것이지요. 이를 깨달은 사람은 그 책임의 크기를 두려워하면서도 그 안에서 어떤 종료의 기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125, 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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