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평점 :
전작 <아몬드>를 재미있게 읽었기에, 작가의 이름만으로 구매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집중할 수 없는 산만함이 들기 시작했다. 요즘 젊은 세대의 고민을 담아내는 트렌드가 잘 반영되었다는 생각은 든다. 한 줄로 하면 <82년생 김지영>의 평범함을 상징하는 김지혜가 <88만원 세대>가 되어 이 부조리한 사회의 구조 속에서 살아가다가 <69>과 같은 "놀이를 통한 균열. 균열을 통한 변화"를 시도 했지만... 이라고 정리하련다.
지상에서 자동차를 타거나 빠른 걸음으로 걷는 사람들 중 자신들의 발밑에 요란한 전동차가 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할 사람이 오늘 하루 몇이나 될까. 알면서도 모두들 알지 못한다. 혹은 잊고 산다. - 24쪽
말문이 막혔다. 어쩌면, 애 안 낳아본 것들이랑은 말이 안 통한다는 그녀의 입버릇에조차 내가 헤아릴 수 없는 진심이 담겨 있는 건 아닐까. 그녀가 원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도록 강요하는 시스템이 문제일 수도 있다. 입바른 말 한번 했다가 미운털이 박히고, 궃은일을 맡게 되고 견딜 수 없게 되고 밥줄이 끊긴다... -72쪽
"그랬군요. 그런데 사실 난 가끔 궁금해요. 우리가 욕하고 한심하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데 똑같은 입장에 놓였을 때 나는 그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비판하는 건 쉬워요.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성, 상식을 잣대 삼으면 되거든요. 그런데 인간이 이기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순간에 놓이면 존엄성과 도덕, 상식을 지키는 건 소수의 몫이 돼요. 내가 그런 환경과 역사를 통과했다면 똑같이 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결국 뭔가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어떤 노력이요?" "적어도 내 몫을 위해서만 싸우지는 않겠다고 자꾸자꾸 다짐하는 노력이요. 마음에 기름이 끼면 끝이니까. 정답이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요. 더 나은 어떤 것을 향해 차츰 다가가고 있기만을 바랄 뿐이죠." - 80, 81쪽
그때 나 홀로 결심했었다. 모두가 함께 모여 있을 때 혼자였던 순간을 잊지 않겠다고. 특별히 그 결심에서 무슨 이름을 붙여주고 싶진 않다. 집단의 기억이 아니라 온전히 내 가슴에만 새겨진 외롭고 아름다운 그림 조각이다. 거기서 나는 조금 슬픈 예감을 했다. 모두가 오늘을 잊어버리고 말 거라고. 지금의 열기는 곧 사그라질 불꽃같은 거라고 말이다. - 90쪽
없는 사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뭔가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 없는 사람이다. 늘 소리치고 있는데도 없는 사람이다. 수면 위에 올라있지 않으면 없는 사람이다. 반지하방에 살면 없는 사람이고, 문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없는 사람이고, 인생과의 게임에서 지면 없는 사람이다. 가슴이 아팠다. 나는 그동안 대체 무얼 한 걸까. 이들과 어울리는 내내 나는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서만 발버둥쳤다. - 202쪽
"나름의 애정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행운을 빌어. 살다 보면 알게 될거야. 누구나 마음속 깊은 데엔 겹도 모양도 다른 사람이 끝없이 들어있다는 걸." - 220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