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분 인생 - 진짜 나답게 살기 위한 우석훈의 액션大로망
우석훈 지음 / 상상너머 / 2012년 2월
품절


누구를 만나는가, 누구와 우정을 나누는가, 그런 게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의 생각과 삶 그리고 영혼의 무게를 결정한다. 그건 진짜 맞는 말이다. 대체적으로 마흔쯤에 사람은 누구와 생의 후반부를 같이 지낼 것인가, 한 번은 그런 것을 결정하게 된다.-26쪽

두 가지의 길이 있을 때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더 낮은 곳, 더 낯선 곳, 그걸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나이가 마흔쯤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때에도 위로 올라가려 하고, 더 신분을 높이려 하고, 더 동질적인 끼리끼리의 삶을 추구한다면, 결국에는 한나라당에 투표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 한국의 주류 사회는 사람들에게 '더 높은 곳으로, 좁게 그리고 끼리끼리', 그렇게 지내라고 한다. 그게 명박 세대의 사람들이 우리에게 펼쳐 보여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27쪽

프랭크 허버트의 기념비적인 SF소설 <듄Dune>에서는 악마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린다. "악마란 자신의 기억 안에 있는 어떤 특정한 존재가 자신을 완전히 지배하는 것." 좋은 사람이건 나쁜 사람이건, 무엇인가 혹은 어떤 사상이 자신을 100퍼센트 설명할 수 있게 되면, 그게 바로 악마라는 얘기다.
인간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는 누구인가?', 그 질문을 시작하면서 더욱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때때로 사악하고, 때때로 고결하고, 때때로 순진하며, 대체적으로는 생각을 귀찮아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24시간 내내 악마의 속성만을 가지고 있지는 못한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24시간 내내 순수함만 가지고 있지도 못한다. 그러나 어느 한 극단에 사로잡히면 악마가 되거나 미치거나, 그러다 보면 주위 사람들이 너무너무 피곤해해서 같이 있는 걸 꺼려할 것이고, 결국 그는 외롭게 고립된다. 삶이 원래 그런 것이다.-32-33쪽

조선시대의 선비들이나 했던 생각을 내가 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난 우리 사회가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학문'처럼 학문 자체가 너무 직업이 되어버린 경향이 좀 안타깝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니까 뭔가 배웠으면 그걸로 돈을 버는 게 당연하다, 이렇게들 생각하는 것 같다. 하긴 돈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학자들만큼 다루기 편해지는 집단도 없다. 길들이기 참 편한 집단이다. -116-117쪽

어쩌면 학자에게 가난은 실체가 아니라, 가난으로부터 생겨나는 초조함이 그 실체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한다.-148쪽

지금 즐겁지 못한 삶이 언젠가 즐거울 수 있을까?
이 얘기가 내가 10대들에게 정말 해주고 싶은 얘기다. 지금 즐거운 사람이 나중에 즐겁게 공부할 수 있고, 또 즐거운 일들로 자신의 삶을 채울 수 있을 것 같다.-237쪽

앞으로 사람들과는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이런 관계로 만나지 않고 그 누구를 막론하고 파트너라는 수평적 상태로 만나려고 한다. 내가 누구에게도 머리 숙이고 싶지 않은 것처럼, 누구도 내 앞에서 머리 숙여야 하는 상황을 절대로 만들고 싶지 않다. -249-250쪽

하여간 자기계발서는 읽을 때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정신적 일탈과 같은 것에 불과하다.-315쪽

이청준 선생이 말하지 않았던가. "살아서 동상을 세우지 말라." 가끔은 굶더라도 대체로 입에 세 끼 밥이 들어오고, 남들한테 갚지 못할 빚을 남기지 않고 가는 삶, 그런 거면 충분치 않을까 싶다. 때때로 작은 소망이 생기는 거야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지만, 간절히 원하는 것을 만들지 않는 삶, 그런 삶을 40대가 되면서 배운 것 같다. -318쪽

1950년대에 전쟁이 끝나고 경기고 등 좋은 엘리트 고등학교를 나온 할아버지들이 꼭 하는 말이 있다. 당시에 자신은 집이 가난해서, 고등학교 때는 이미 과외를 하면서 자수성가했다... 그런 분들에게 난 꼭 이렇게 얘기한다.
"그런데 왜 지금의 고등학생은 그렇게 할 수 없는 세상을 만드셨어요?"-325쪽

한국의 보수들이 정신세계 구축에 실패한 것은 그들이 북한에 대한 증오 위에 그들의 정신을 세우려 했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레드콤플렉스 아닌가? 증오 위에 한국을 세우려 했지만 그건 영원히 지속될 순 없는 시스템이다. 돈과 권력, 이런 걸 보수들이 전부 쥐고 있고 지금은 대학까지 확실하게 틀어쥐고 있지만 그래도 두 번이나 정권을 빼앗겼다. 증오는 힘을 주지만, 지속성을 주지는 못한다.-3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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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해사고력 : 그림으로 그리는 생각정리 기술
나가타 도요시 지음, 정지영 옮김 / 스펙트럼북스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회의시간 내내 단어 몇 개를 수첩에 끄적이긴 했지만, 나중에 다시 보았을 때 그 내용을 되짚어보기는 수월치 않았다. 도해를 통하여 이해를 쉽게하고, 논의를 단순화하면서, 정리와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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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와 수수께끼 - 실리콘밸리 기업가의 성공하는 삶을 위한 아주 특별한 가르침
랜디 코미사 지음, 신철호 옮김 / 럭스미디어 / 2012년 2월
구판절판


내 경험만 봐도 '미뤄진 인생계획'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문제는 '1단계. 해야만 하는 걸 해라. 2단계. 하고 싶은 걸 해라.'라는 방식 자체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별개로 구분하고 있다는 데 있다. 왜 그런 경우가 생길까? 이 계획에서 2단계는 먼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처리하지 않는 한, 결코 존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존재할 가치도 없다. 나중에 좋은 걸 얻게 된다거나 1단계를 거쳐야 경제적인 면은 물론, 정신적인 면으로도 2단계를 즐길 여유가 생긴다는 말이다. 내 회의적인 태도에 오해하지 말기를. 희생과 타협은 인생에 있어서 필수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단순히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함이 아닌, 진실로 보람된 일을 찾아 열심히 하는 건 어떨까?-150쪽

미뤄진 인생계획을 살펴보면, 1단계에서는 자신의 본모습과 관심사와는 별 연관성 없는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즉, 겉모습과 본모습은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에 사업이라는 이름 하에 온갖 비열한 행동 역시 정당화 된다는 식이다.-150쪽

열정이란, 어떤 것에 저항조차 할 수 없이 끌려드는 걸 말한다. 반면 의욕이란 책임감 내지 해야만 한다고 생각되는 일에 떠밀려 가는 걸 말한다. 만약 스스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면, 그 차이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조금이나마 자기인식을 하고 있는 사람만이 어떤 분야에 스스로가 열정을 지녔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목표나 성과를 올리기 위한 욕구는 열정이 아니며 일정 수준의 몫이나 보너스를 받고 싶다는 바람 역시 열정이 아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성취를 따라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열정이 아니다. 그것은 의욕에 가깝다.
'미뤄진 인생계획'을 놓고 생각해 보면 1단계에서 발휘되는 건 의욕이다. 사람들은 2단계에 이르렀을 때 열정이 저절로 부활할 것으로 생각한다. 거기까지 도착하기만 하면 말이다.-151쪽

관리와 리더십은 서로 연관성이 있기는 하지만, 같은 건 아니다. 레니처럼 편협한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은 그 차이를 알 수 없다. 관리는 체계적인 과정을 말하는데, 그 목적은 정해진 시간과 예산 내에서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리더십은 인간성과 비전을 통해 다른 사람을 불가능에 도전할 수 있도록 만든다. 관리는 리더십을 보완하고 지원하지만, 리더십을 담지 못한 관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따라서 리더들은 직원들의 의혹을 해소시키는 건 물론, 불완전한 정보를 갖고도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228쪽

실리콘밸리에서 실패에 대한 관대함은 심오한 철학을 갖고 있다. '변화란 불가피한 것이며, 변화하는 세계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는 철학을 말이다. 통제 밖의 변수가 있다면 아무리 똑똑하고 근면한 사람이라도 실패의 그림자를 늘 갖고 있는 셈이다. 우리 주변에는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며 사는 사람들이 허다하겠지만 말이다.
-252-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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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물건 - 김정운이 제안하는 존재확인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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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문제는 불안한 한국 남자들의 문제다. 존재 확인이 안되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존재로 인한 심리적 불안은 적을 분명히 하면 쉽게 해결된다. 적에 대한 적개심, 분노를 통해 내 존재를 아주 명확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된 방법이다. 불안한 정치세력은 적을 분명히 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하려 한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자꾸 적을 만들어야 내 불안함이 사라진다.-7쪽

또 다른 존재 확인의 방식이 있다. 이야기다. 내 존재는 내가 하는 이야기를 통해 확인된다. 사실 문명사에서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불과 얼마 전 일이다. 비트겐슈타인 이후의 이야기다. 이를 일컬어 '내러티브 전환narrative turn'이라고 한다. '인간은 생각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문명이 가능했다는 거다. 우리가 그림을 그리고, 영화를 보고, 축구를 보는 것도 다 나중에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다. 아침마다 신문을 들추며 '쯧쯧'거리고, 뉴스를 보며 주먹을 불끈불끈 하는 이유도 다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다.-7-8쪽

개인도 마찬가지다. 자기 이야기가 풍요로워야 행복한 존재다. 할 이야기가 많아야 불안하지 않다. 한국 남자들의 존재 불안은 할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모여서 하는 이야기리고는 정치인 욕하기가 전부다.
사회적 지위가 그럴듯할 때는 그래도 버틸 만하다. 자신의 지위에서 비롯되는 몇 가지 이야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지위가 사라지는 순간 그 이야기도 끝이다. 남자가 나이 들수록 불안하고 힘든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도무지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8쪽

그는 남녀 차이를 '상자'와 '책상'으로 비교해 설명한다. 여자의 물건은 대부분 '상자'다. 상자는 여자의 자궁 같은 것이다. 생명을 잉태해 시간을 소유하는 것처럼, 여자는 상자 안에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보석을 담는다.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남자는 시간을 소유하는 대신 공간을 정복하려 한다. 그래서 옛날 남자들은 달리는 말에 그토록 집착했다.-164쪽

한국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이런 불일치의 기원을 신영복은 서구에서 강제로 유입된 '근대성'에서 찾는다. 특히 지식인은 바로 이 근대성의 문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형식이 내용을 정확하게 담을 수 있는 '탈근대'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구 근대성의 핵심은 '주체' '자아'의 구성에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주체와 자아가 사회적 맥락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신영복은 지적한다. 인간의 상호관계에서는 서로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서구의 근대는 주체와 대상이라는 타자화의 과정을 거치며 상호 이해의 부재, 공감 부재와 같은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관계와 맥락으로부터 고립된 주체는 필연적으로 내용과 형식의 불일치를 겪게 된다. -184쪽

어렸을 때 노트를 쓰다가 글씨가 마음에 안 들면 그 장을 뜯어내고, 또 새로 쓰지만 몇 장 못 가서 노트가 또 마음에 들지 않아 또 뜯어내고, 앞장을 뜯어내면 뒷장의 멀쩡한 노트가 떨어져나가요. 그래서 '처음처럼'이라는 게 뜯어내는 게 아니고, 뭔가 그 다음 장을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쓰는 것, 그래서 글씨가 좀 잘못되었더라도 뜯어내지 않고 다시 시작함으로써 결국 두꺼운 노트를 갖게 되는 그런 마음이 필요하다.
산다는 것은, 인생이라는 것은 결코 뜯어낼 수 없는 거다. 늘 이제 다시 시작하는 마음처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추운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뭐 이런 뜻으로 시작된 거에요.-189-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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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우연한 시선 - 최영미의 서양미술 감상
최영미 지음 / 돌베개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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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진 그릇과 껍질이 벗겨진 레몬은 바로크 시대의 문학과 미술에 유행한 바니타스(vanitas: 인생무상을 뜻하는 라틴어)를 암시하는 주제이지요. 쾌락의 쓰디쓴 뒤끝을 폭로하기 위해 탐스러운 레몬의 껍질을 벗기어 그 시큼한 속을 보여준 겁니다. 헤다(Willem Clasez. Heda, 1594-1680)를 비롯한 17세기 네덜란드의 정물화가들은 그림을 통해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할 뿐 아니라 영혼도 고양시키고 싶었지요. 인간과의 접촉에 의해 망가진 물상들을 통해 "삶은 끝나고 죽음이 항상 우리 곁에 있음"을 환기시키려 애썼지요.-90쪽

그런데 언젠가는 시들 레몬이 왜 이리 탐스러운지 언젠가는 산산이 부서질 유리잔이 왜 이리 단단하게 빛나는지?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시지와 딴판으로 매끈한 표면에서 오히려 삶의 기쁨이 반짝입니다. 바로 그 이중성에서 17세기 네덜란드 시민사회의 단면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호화로운 은제식기와 수정잔으로 부를 과시하는 한편, 금욕적인 교훈을 담은 그림을 자신의 거실에 걸고 싶었던 부르주아들의 이율배반적인 욕망에서 매우 사실적이며 동시에 상징적인 정물화가 탄생했지요. 현실지향적인 가치와 칼뱅교의 윤리가 충돌해 레몬이 벗겨지고, 유리잔이 넘어졌지요.
삶을 통해 죽음을 환기시킨다? 참으로 유럽적인 발상입니다. 인생무상을 표현하기 위해 왜 하필이면 식탁의 정물들을 골랐을까. 일용할 양식과 그 양식을 담는 그릇들. '허무'조차도 눈에 보이는 사물들로 증명해야 했던 서양인들. 헤다의 <정물>에서 죽음의 냄새를 맡으며 저는 감각적인 서양문화의 본질을 이해하게 되었지요.-90-92쪽

무릇 인상이란 주관적인 겁니다. 우리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합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이미지의 과장이나 왜곡이 일어나지요. 모네는 시각적 인상에 충실한다는 인상파의 원칙을 가장 끝까지 밀고 간 화가입니다. 그러나 그의 희망과 달리 모네는 시각적 인상에 충실한 완벽하게 객관적인 그림만을 그릴 수는 없었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높은 하늘의 구름이 인간 여자의 얼굴에 스치듯 걸릴 수는 없지요. 그 순간에 모네가 본, 모네가 느낀 자기만의 인상을 표현한 겁니다. 여기에 그의 딜레마가 있었고 그 모순에서 현대미술이 싹트게 됩니다. 자신의 눈에만 집착하다 그는 현대회화를 주관주의로 이끌었습니다.-1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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