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물건 - 김정운이 제안하는 존재확인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2월
품절


한국 사회의 문제는 불안한 한국 남자들의 문제다. 존재 확인이 안되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존재로 인한 심리적 불안은 적을 분명히 하면 쉽게 해결된다. 적에 대한 적개심, 분노를 통해 내 존재를 아주 명확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된 방법이다. 불안한 정치세력은 적을 분명히 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하려 한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자꾸 적을 만들어야 내 불안함이 사라진다.-7쪽

또 다른 존재 확인의 방식이 있다. 이야기다. 내 존재는 내가 하는 이야기를 통해 확인된다. 사실 문명사에서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불과 얼마 전 일이다. 비트겐슈타인 이후의 이야기다. 이를 일컬어 '내러티브 전환narrative turn'이라고 한다. '인간은 생각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문명이 가능했다는 거다. 우리가 그림을 그리고, 영화를 보고, 축구를 보는 것도 다 나중에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다. 아침마다 신문을 들추며 '쯧쯧'거리고, 뉴스를 보며 주먹을 불끈불끈 하는 이유도 다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다.-7-8쪽

개인도 마찬가지다. 자기 이야기가 풍요로워야 행복한 존재다. 할 이야기가 많아야 불안하지 않다. 한국 남자들의 존재 불안은 할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모여서 하는 이야기리고는 정치인 욕하기가 전부다.
사회적 지위가 그럴듯할 때는 그래도 버틸 만하다. 자신의 지위에서 비롯되는 몇 가지 이야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지위가 사라지는 순간 그 이야기도 끝이다. 남자가 나이 들수록 불안하고 힘든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도무지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8쪽

그는 남녀 차이를 '상자'와 '책상'으로 비교해 설명한다. 여자의 물건은 대부분 '상자'다. 상자는 여자의 자궁 같은 것이다. 생명을 잉태해 시간을 소유하는 것처럼, 여자는 상자 안에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보석을 담는다.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남자는 시간을 소유하는 대신 공간을 정복하려 한다. 그래서 옛날 남자들은 달리는 말에 그토록 집착했다.-164쪽

한국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이런 불일치의 기원을 신영복은 서구에서 강제로 유입된 '근대성'에서 찾는다. 특히 지식인은 바로 이 근대성의 문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형식이 내용을 정확하게 담을 수 있는 '탈근대'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구 근대성의 핵심은 '주체' '자아'의 구성에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주체와 자아가 사회적 맥락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신영복은 지적한다. 인간의 상호관계에서는 서로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서구의 근대는 주체와 대상이라는 타자화의 과정을 거치며 상호 이해의 부재, 공감 부재와 같은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관계와 맥락으로부터 고립된 주체는 필연적으로 내용과 형식의 불일치를 겪게 된다. -184쪽

어렸을 때 노트를 쓰다가 글씨가 마음에 안 들면 그 장을 뜯어내고, 또 새로 쓰지만 몇 장 못 가서 노트가 또 마음에 들지 않아 또 뜯어내고, 앞장을 뜯어내면 뒷장의 멀쩡한 노트가 떨어져나가요. 그래서 '처음처럼'이라는 게 뜯어내는 게 아니고, 뭔가 그 다음 장을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쓰는 것, 그래서 글씨가 좀 잘못되었더라도 뜯어내지 않고 다시 시작함으로써 결국 두꺼운 노트를 갖게 되는 그런 마음이 필요하다.
산다는 것은, 인생이라는 것은 결코 뜯어낼 수 없는 거다. 늘 이제 다시 시작하는 마음처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추운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뭐 이런 뜻으로 시작된 거에요.-189-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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