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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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려면 기득권과 더불어 살면서도 그 달콤함과 안일함에 젖지 말아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불의와 타협하거나 악에 가담하지 않고 살려면 강력한 내면의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 것 없이도 나를 지킬 수 있는, 고생은 되지만 마음은 편한 방법을 선택했다. 그것은 아예 기득권 근처에 가지 않는 것이다. 법학과 진학과 사법시험을 포기한 것은 악과 싸워 세상을 바꾸기 위한 결단이라기보다는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내 자신을 확실하게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성인은 못 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도 나름 의미 있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35쪽

'닥치는 대로' 산 것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다른 사람이나 세상을 원망할 수 없다. 세상은 제 갈 길을 가고, 사람들은 또 저마다 자기 삶을 살 뿐이다. 세상이, 다른 사람이 내 생각과 소망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해준다면 고맙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세상을 비난하고 남을 원망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소극적 선택도 선택인 만큼, 성공이든 실패든 내 인생은 내 책임이다. 그 책임을 타인과 세상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 삶의 존엄과 인생의 품격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죄악과 비천함에서 자기를 지키는 것만으로는 훌륭한 삶을 살 수 없다. 악당이나 괴물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훌륭한 것은 아니다. 무엇이 되든, 무엇을 이루든, '자기 결정권' 또는 '자유의지'를 적극적으로 행사해 기쁨과 자부심을 느끼는 인생을 살아야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36쪽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표현을 가져다 쓰자.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방식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다"-36쪽

하루의 삶은 하루만큼의 죽음이다. 어떻게 생각하든 이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새날이 밝으면 한 걸음 더 죽음에 다가선다. 그런데도 우리는 때로 그 무엇엔가 가슴 설레어 잠들지 못한 채 새벽이 쉬이 밝지 않음을 한탄한다.-47쪽

삶은 좋다. 죽음은 좋지 않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삶이 죽음보다 좋은 건 아니다. 삶이 더 견디기 힘들어서, 또는 계속해서 살아야 할 의미를 찾을 수 없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숱하게 많다. 그럴 때 흔히들 이렇게 말한다. "죽을 용기가 있다면 그걸로 살아볼 일이지!" 그러나 자살을 용기로만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삶도 용기만 있다고 해서 마냥 잘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사는 데도 죽는 데도 다른 것이 있어야 한다. 삶의 그리고 죽음의 의미에 대한 확신이다. 그것이 없으면 삶도 죽음도 주체적 선택일 수 없다. 삶은 습관이고 죽음은 패배일 뿐이다.-82쪽

공부의 출발은 호기심이지만 그 과정은 의심이다. 공부한 모든 사상을 다 받아들인다면 누구도 특정한 '주의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김정일의 <주체사상에 대하여>를 읽었지만 '주사파'가 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치였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거대하고 열정적이었던 이상주의 운동이었던 사회주의가 실패로 끝난 것은 애석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할 일이 달라질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들은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어서 유학을 떠났다. 이게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만두고 돌아왔다.-88쪽

나는 유물론이 공부할 가치가 있는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유물론은 인간 정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의 정신과는 무관하게 물질세계가 존재하며, 정신 역시 물질의 운동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주장할 뿐이다. 또 유물론자라고 해서 반드시 종교를 거부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유물론은 자연과 사회의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하는 데 다른 어떤 철학 못지않게 유익하다. 내가 관념론보다 유물론을 더 선호하는 것은 삶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데 유물론이 더 큰 도움을 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죽음에 대한 관념이다. 죽음을 유물론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삶이 크게 일그러질 수 있다. -92쪽

'나는 어떤 사람일까? 도대체 왜 이렇게 살아온 것일까? 계속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 걸까' 긴 시간 내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누구를 사랑하는지 잘 안다. 내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할 수 있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나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든다. 내 스스로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내 선택이 아니었던 것이 있을까 생각해본다. 분명하지가 않다. 나는 종종 내가 나를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몸이 거부할 때가 있고, 다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107-108쪽

삶은 욕망色과 규범戒의 충돌이라는 말에도 나는 공감한다. 나는 주로 규범의 세계에서 살면서 남들한테 욕을 먹지 않을 만큼만 욕망의 세계를 넘나들었다. 이러면 안될 텐데, 늘 자책하면서. 그렇게 산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남은 삶을 어떻게 사느냐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해서 계속 지금까지 살았던 것처럼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114쪽

인생의 성공은 멀리 있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그것을 남들만큼 잘하고, 그 일을 해서 밥을 먹고살면 최소한 절반은 성공한 인생이다. 돈 때문에, 남의 눈을 의식해서,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서, 또는 사회의 평판 때문에 즐겁지 않은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다면 그 인생은 처음부터 절반 실패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꼭 즐겁지 않더라도 최소한 괴롭지 않은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 -166쪽

인생은 소망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냉혹한 과정인지 모른다. 원대한 꿈과 낭만적 열정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170쪽

직업을 잘 선택하려면 열등감을 극복해야 한다.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 어디를 가든 나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다. 원하는 사람이 적은 직업도 있고,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직업도 있다. 남들이 어떤 직업을 선호하는지 의식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고려면 된다. 남들이 좋아하지 않는 직업을 선택했다고 해서 열등감을 가질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러나 만약 내가 좋아서 선택한 그 직업이 다른 사람들도 많이들 좋아하는 것이라면 부득이 경쟁을 해야 한다. 그렇게 경쟁해서 그 직업을 가지는 데 성공했다고 해서 만사가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거기서 더 잘하기 위해서 또 경쟁해야 한다. 이 경쟁에서 뒤떨어지면 열등감으 느끼게 된다.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으로 보이고, 삶이 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 악물고 있는 힘을 다해 이기는 게 정답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즐기는 게 아니라 이기기 위해 일하게 되면, 이겨도 남는 게 없고 지면 최악이 된다.-171쪽

좋은 혁신 아이디어와 제도 개선책을 만든다고 해서 혁신을 성공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층의 저항을 극복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우고 혁신의 동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옳은 개혁도 실패한다. -182쪽

갑작스럽게 찾아든 영원한 이별에 대한 상상은 사랑이라는 감정의 색깔과 맛을 확인하는 좋은 방법이다. 그럴 때 사랑은 싹 난 감자처럼 아린 맛으로 다가온다. 누군가와의 영원한 작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아리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깊게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205쪽

사랑의 대상은 제한이 없지만 가장 깊고 황홀한 사랑은 '성적性的 교감을 토대로 한 사랑'이라고 나는 믿는다. 성적 교감 위에서 존재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껴안고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동반자가 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절대고독을 벗어날 수 있다.-206쪽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려면 함께 살아봐야 한다. 그러나 짝짓기를 하기 전에는 같이 살 수가 없다. 짝짓기와 관련된 제도와 관습, 문화가 그렇게 되어 있다. 우리는 보통 살아보지도 않고서 평생 함께 살겠다고 공개 서약을 한다. 실망과 배신, 갈등과 결별의 씨앗은 바로 이 모순의 틈새에서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린다. 숫총각 숫처녀가 한번 자보지도 않고 결혼하는 것은 가장 위험한 짝짓기 행동이다. 마음이 움직이면 먼저 함께 살아보고, 상대방에 대해서 확신을 가졌을 때 혼인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207-208쪽

어쨌든 나는 글쓰기가 좋다. 그것은 무엇보다 그 일 자체가 주는 기쁨과 만족감 때문이다. 무엇인든 쓰려먼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고, 내 머리로 생각하고, 스스로 느껴야 한다. 쓰는 일은 비우는 동시에 채우는 작업이다. 배움과 깨달음이 따라온다. 가지고 있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거나 모르고 있던 것을 새로 알게 되었을 때, 좋은 문장 하나를 쓰고 혼자 감탄하면서 싱글벙글할 때, 나의 뇌에서는 도파민이나 세로토닌이 대량 분비되는 것 같다. -236쪽

진보주의는 만인의 것이다. 누구든 유전적으로 무관한 타인의 복지를 위해 사적 자원을 기꺼이 내놓는 자발성을 발휘한다면 그 사람이 진보주의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260쪽

사람은 그 무엇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누구도 타인에게 어떤 이념이나 공동선을 실현하는 도구가 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느끼는 만큼, 그리고 자기가 할 수 있고 또 옳다고 생각하는 방시긍로 참여하면 된다고 생각한다.-262쪽

정치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는 사업이다. 스스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할지라도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강제할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의 신념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확신의 바탕 위에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쓸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소위 '진리의 정치'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인생에도 정치에도 확정된 진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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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를 좇다 세상 아름다운 풍경들을 지나치다 - 박광수 감성사진 일기 두 번째
박광수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2월
품절


내가 가끔 몰래 숨어서라도 당신을 보고 가는 건
물고기가 수면 위로 가끔 얼굴을 내밀고 산소를 마시는 것과 같다.
내가 당신을 보고 가는 것.
물고기가 수면 위로 가끔 얼굴을 내미는 것.
다 생존 문제다.
그래야 살 수 있다.-36쪽

햇볕이 너무 좋은 날,
그 햇볕을 보고 있노라면
어두운 그늘을 벗어나
햇볕에 나가
선탠을 하고 싶어요.
내 나이 서른 넷.
이제 많이
너덜너덜해져버린
제 영혼을
선탠하고 싶어요.-60쪽

그녀가 너무 힘들겠다싶어 그녀를 잊기로 했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그녀를 다시 추억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잊혀지는 건 그간의 고통이고 남는 건 정제된 그리움뿐이다.-88쪽

그녀가 내게 당부했다. 난 그렇게 하겠노라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내게 또다시 거듭 당부했다.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재차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하겠노라 다시 한번 다짐했다. 그녀는 못 미더운 얼굴로 내게서 떠나갔다. 언덕 너머로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그렇게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언덕 너머로 사라지고 한참 후 나는 내게 말했다.
"이제 울어도 돼?"-178쪽

그리움은 화석이 되어 있다.-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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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공감 - 김형경 심리 치유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구판절판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 - 괴테-36쪽

치유의 핵심은 '직면하기'에 있습니다. 상사의 모습이 곧 아버지의 모습이며 또한 자신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바로 보고 인정할 수 있을 때 심리적 문제의 많은 부분이 해결됩니다. 내면과 직면하여 자신의 부정적인 측면을 인정하게 되면 마음의 힘이 강해지는 것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자신의 내면을 외부르 투사하는 행위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상사들에게서 같은 모습을 보더라도 더 이상 감정적인 불편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41쪽

만일 당신이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당신은 그 사람 안에서 당신의 일부인 그 어떤 점을 발견하고 미워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일부가 아닌 것은 아무것도 우리를 괴롭힐 수 없다. - 헤르만 헤세-43쪽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준 우리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거부함으로써만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다. - 장 폴 사르트르-50쪽

"애지중지 키운 아들은 불효자 되고, 천덕꾸러기로 키운 아들은 효자 된다"는 세간의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심리적 진실은, 충분히 사랑받은 자식들은 부모에게서 완전하게 독립된 인격체로서 주도적 삶을 살아가지만, 사랑을 덜 받은 자식은 여전히 부모의 인정과 지지를 기대하고 사랑받기를 원하면서 부모에게 돈과 시간과 헌신을 바친다는 뜻에 닿아 있습니다.-55쪽

의존, 간섭, 지배, 통제 등은 가장 대표적으로 '사랑처럼 보이는 것'에 속합니다.-56쪽

우리는 죽는 날까지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동시에 죽는 법도 배워야 한다. - 스콧 펙-85쪽

생의 어느 시기든 그 시절에 더 중요하고 긴박한 일을 선택해서 온 힘을 기울일 수 있는 능력, 그것이 생을 결정짓는 변수입니다. -109쪽

소중한 일들이 사소한 일들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 괴테-110쪽

그런 이들은 내면 환상에 가득 차서 외부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상대방이 구조적으로 촘촘히 짜여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자 한 사람의 사회인이어서 그/그녀에게 연애는 그저 가벼운(혹은 무겁더라도) 일탈이나 위안거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지 못합니다. 상대방이 배우자보다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한다고 믿으며("아빠는 엄마보다 나를 더 사랑해" 같은 감정의 연장입니다), 그/그녀가 사랑하지도 않는 배우자와 불가항력적인 결혼 관계에 억지로 매여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리하여 그/그녀가 충실한 가장, 좋은 부모라는 증거와 만날 때마다 충격적인 상실감과 맞닥뜨립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그/그녀가 이혼한 후 자신과 결합할 거라는 환상에 빠져 있습니다.-184쪽

우리는 누구도 타인에게 그토록 잔인할 권리가 없다. - 빅터 프랭클-214쪽

성적 욕망이 인간을 주체로 만든다. - 자크 라캉-221쪽

욕망이 본질적으로 충족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정신분석학자도 있습니다. 아기가 요구하는 것(사랑, 보살핌)과 충족되는 것(젖, 기저귀) 사이에는 어쩔 수 없이 틈이 생기는데, 그 결핍과 불만족의 느낌이 '욕망'이 된다는 주장입니다. 성인인 우리의 내면에도 유아기부터 만들어진 욕망이 들어 있습니다. 그 욕망은 "헤어지면 보고 싶고, 만나보면 시들하고"라고 노래하게 하고,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고 말하게 하고, 섹스 후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허탈감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충족될 수 없는 욕망의 본질을 모른 채 우리는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위험을 무릅씁니다. 욕망의 충족될 수 없는 속성을 알고 그것을 처리하는 방법으로는 '승화'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리비도를 좀 더 가치 있는 사회적 문화적 행위로 전환시키는 일입니다. 승화 이외에 또 한 가지 욕망을 조절하는 방법이 '환상'일 것입니다. -224쪽

간혹 남성들을 위한 포르노그래피가 여성을 물화시키거나 굴복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어 모욕감을 느낀다는 여성을 만납니다. 그것 역시 남성의 환상 때문입니다. 남성들은 여성을 힘으로 지배할 수 있어야만 섹스가 가능하다고 믿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포르노그래피의 환상 속에서나마 성적 자신감을 고취시키고 페니스를 안심시키기 위한 장치라고 보시면 됩니다. 반대로 남성들은 멜로드라마가 만들어내는 '백마 탄 왕자'를 부담스러워합니다. 양쪽 성은 서로에게 실현 불가능한 판다지를 품고 있다는 뜻입니다. -226쪽

그런 다음, 남성과 여성이 성에 대해 인식하는 방식이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두셨으면 합니다. 남성들을 사랑할 때 성적 욕망을 정서적 친밀감과 통합시키는 문제를 아주 어려워합니다. 그 말은 남성은 성욕을 먼저 느끼고, 성욕이 만족스러울 때 비로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여성은 반대입니다. 애착과 친밀감, 즉 사랑의 감정이 충분히 인식되고 믿어져야만 그 다음 단계로 섹스가 가능합니다. 사랑의 감정은 느끼겠는데 어떻게 관계를 침대로 가져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여성을 만나기도 합니다.
남성과 여성의 사랑 행위를 인식하는 데 이처럼 차이가 납니다. 그리하여 남성의 삶은 성적 욕망에 고착되어 있는 듯 보이고, 여성의 삶은 로맨스에 고착되어 있는 듯 보입니다. 남성은 자주 성적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까봐 염려하는 거세 불안에 시달리고, 여성은 자주 애착의 감정을 박탈당할지도 모른다는 분리 불안에 시달립니다. 남성들이 룸살롱 같은 곳에서 에피소드적이고 일회적인 성경험을 추구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성적 능력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는 해석도 있습니다.-232쪽

진화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성적 욕망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기도 합니다. "남성은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더 많은 섹스 파트너를 가지고, 여성은 사회적 지위가 낮을수록 더 많은 섹스 파트너를 가진다." 인류사를 보면 남성들을 권력을 지면 그 힘으로 여자를 탐해왔고, 더 많은 여자를 소유하는 것을 성공의 징표로 여겼습니다. 현대 남성들도 부와 권력을 획득하려는 이유는 더 많은 여자와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라고 공공연하게 말합니다. 사실 일부일처제는 권력, 경제력, 물리적 힘이 열등해서 여자를 차지하지 못하는 남성들을 위해, 남성들이 만든 제도입니다. 여자의 소유문제를 놓고 남성들끼리 맺은 일종의 신사협정이지요. 물론 인간의 본성에 적합하지 않아 오늘날 거듭 도전을 받으며 붕괴 조짐을 보인다고 사회학자들은 진단합니다. -233쪽

너의 길을 가라. 사람들이 떠들도록 내버려두라. - 단테-324쪽

우리는 중년기가 되면 몇 가지 심리적 문제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우선 생이 온전히 자신의 책임임을 받아들여야 하며, 더 이상 부모를 이상화하거나 평가절하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부모가 우리 생에 꼭 필요했던, 다른 누구로도 대체될 수 없는 존재였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또한 자신의 역량과 창조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과도한 욕망이나 시기심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자신의 파괴적 충동이나 공격성에 대해 인식하고 잘 처리하며, 외부의 공격에 대해서도 합리적으로 맞설 수 있어야 합니다.-327쪽

조셉 켐벨은 우리 생의 본래적 소명이나 가치에 닿으려면 "너의 천복을 따르라"(Follow your bliss)고 제안합니다. 우리가 생애 초기부터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억압하고, 이성과 합리에 따라 재단하고, 사회화 문명화 속에서 방치해둔 정신의 원시적 힘의 영역을 되살리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천복을 기억하고, 삶의 억압해둔 반쪽을 되살리는 일이 진정한 자신의 삶에 닿는 일, 진정한 자기를 실현하는 일입니다.
융 학파 정신분석학자 매튜 폭스는 억압해둔 생의 반쪽을 되살리는 방법으로 "신비주의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신비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꿈, 환상, 이야기, 신화로의 회귀를 제안합니다. 그의 주장은 "너의 광기로 하여금 항상 이성을 감시하게 하라"는 라캉의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3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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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깨달음 - 하버드에서의 출가 그 후 10년
혜민 (慧敏) 지음 / 클리어마인드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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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앞뒤 보지 않고 독종이 되어서 원하는 바를 성취했다고 해서 존재를 뒤흔들 만한 깊고 오랜 행복을 느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중생심이라는 것은 하나의 성공을 이루어 내면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루어낸 것보다 조금 더 큰 성공이 또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내가 승려가 된 이유는 이렇게 한 생을 끊없이 분투만 하다 죽음을 맞이하기 싫어서였다. 무조건 성공만을 위해서 끝없는 경쟁만 하다가 나중에 죽음을 맞게 되면 얼마나 허탈할까 하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성공의 잣대에 올라가 다른 사람들에게 비칠 나의 모습을 염려하면서 그들의 기준점과 기대치를 만족시키기 위해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고 평생을 헐떡거리며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39-40쪽

우리의 삶이 소중한 만큼 언제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성공 이후의 행복을 꿈꾸기보다는 지금 내 주변을 돌아보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바로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선택하자고 나는 이야기하고 싶다.-41쪽

이 일이 일어난 후에 내가 느낀 것은 대략 아는 것과 정확하게 아는 것 사이에는 크나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어를 아예 몰랐으면 지도를 꺼내 내가 가려는 곳을 기사에게 확인해 줌으로써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었을 텐데 어설픈 발음으로 감을 잡아서 대략 말을 하다 보니 뜻하지 않은 결과를 불러 일으킨 것이다.-76쪽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챙겨 주길 바라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본인이 원하는 것, 느끼는 것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 같이 있는 상대방을 오히려 돕는 경우가 된다. 그러한 무언 중의 요구가 계속되어도 부합되지 않았을 경우 가슴에 쌓아 두었다가 어느 날 가서 폭발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90쪽

나이가 어렸을 때는 내가 주장하는 부분이 옳다고 생각되면 상대방을 무조건 설득하려고만 들었는데 지금은 상대방의 입장을 좀 귀담아들어 보려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상대방이 어떤 입장에 처해 있기 때문에 저런 의견을 내놓는지 입장 바꿔 냉정하게 생각하면서 이해해 보려는 노력도 나이가 들면서 종종 하는 것 같다.
무슨 좋지 않은 일이라도 저지른 사람에게 어렸을 때는 쉽게 손가락질하면서 사람으로 상종도 하지 않으려 했는데 이제는 나 스스로가 완벽하지 않음을 잘 인식하고 있기에 그처럼 흑백으로 나누어 함부로 비난하는 것을 삼가게 된다.
그러고 보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161-162쪽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도움을 줄 때 우리들의 가치 기준으로 판단해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을 아무 조건 없이 그냥 도와주는 것이라고 하셨다.
보시하는 데도 자꾸 분별력을 부리다 보면 도움을 주면서도 아상我相만 늘어난다고 하셨다. 더욱이 돈을 받는 거지가 진짜 거지인지 짝퉁 거지인지를 구분해 가면서 도움을 주는 것보다는 가짜 거지일지라도 전생에 본인의 가족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면 돈 얼마 보태주는 것이 뭐 그리 억울한 일은 아니라고 하셨다.-192쪽

19세기 독일의 저명한 종교학자 막스 뮐러Max Muller가 한 말 중에 '하나만 알고 있다는 것은 그 하나도 제대로 모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나 또한 살면서 견문이 넓어지고 많이 공부하면 할수록 이 말에 정말로 크게 동감한다. 자기 자신의 것만 알고 다른 사람의 것을 모르면 사실 자기 스스로의 모습도 제대로 모르는 것이다. 나의 모습과 남과의 관계를 통해서 거울처럼 비추어졌을 때 본인의 특성이나 좋고 나쁨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일수록 항시 겸손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해서 잘 듣는 것이 아닌가 싶다.-206쪽

만일 다른 사람의 어떤 부분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아 그 사람의 흉을 보고 있다면 십중팔구 내 안에도 그 사람의 결점과 일치하는 무언가가 똑같이 진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 안에 그와 비슷한 것이 아예 없었다면 다른 사람의 잘못이 웬만해서는 내 의식의 레이더망에 잡히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내가 그것 때문에 괴롭다거나 다른 사람에게 그의 흉을 일부러 잡는다거나 하지 않는다.-2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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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굴장으로 - 제139회 나오키상 수상작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권남희 옮김 / 시공사 / 2009년 3월
품절


남편과 산 지 어느덧 4년이 지나서 남편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다. 그의 버릇, 몸짓이 나타내는 의미, 그를 기쁘게 하는 것과 우울하게 하는 것 등등. 물론 모르는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만나기 전, 도쿄에서 지낸 그의 생활에 대해 전부 다 들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내가 모르는 것은 아는 것을 더욱 돋보이게 할 뿐이다.
지금 남편은 내 사람이고 나는 남편의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지. 지난 4년간의 1분 1초는 그 이전의 1분 1초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을 텐데.
혹은 남편과 살고 나서부터, 내 위를 흐르는 세월은 그때까지와는 다른 무엇이 된 건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도 생각해본다. 그러자 역시 신기해진다. 그런 것이 내게 찾아왔다는 사실이...-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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