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세 편의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이 책 한권이 모두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중간쯤에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이야기가 끝나고 등장하는 '시체도둑'과 '오랄라'를 보며 잠시 멍~한 기분이 들었다. 혹 이어지는 내용인가 싶어 계속 넘겨보지만 아쉽게도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이야기는 짧게 끝이 나고 만다. 한 사람이 두 가지의 자아를 가진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간의 마음을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화학약품을 먹고 생김새는 물론 키까지 작아지며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는 모습은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다. 지금의 모습과 전혀 다른 낯선, 다른 사람으로 변신이 가능하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하이드처럼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분출시키며 거리낌없이 살인도 저지를 수 있을까. 지금 내 안에는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하고 아직은 선이 악을 누르고 있기에 "그래선 안된다"고 마음속에서 속삭인다. 하지만 어떤 행동을 하든 지킬 박사의 몸으로 숨을 수만 있다면 하이드처럼 하지 못하리라 장담하진 못하겠다. 지킬 박사의 오랜 친구인 변호사 어터슨은 지킬 박사가 작성한 유언장을 보며 불안한 마음을 느낀다. 실종되거나 사망시 하이드에게 재산을 넘긴다니, 도대체 이것이 무슨 말인가. 혹 하이드란 사람에게 협박을 당하기라도 하는 것인지 걱정이 된다. 하이드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그를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악의 기운에 기분이 나빠지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 안에 있는 악의 기운이 하이드에게서 나오는 그 비숫한 기운과 만나 나의 깊은 속마음을 들킨 듯 불편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약물로 자유자재로 변신이 가능한 지킬 박사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버린다. 하이드로 변신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잦은 약물의 사용으로 이제는 하이드에게 자신의 몸을 잠식당하고 지킬 박사로써 지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 급기야는 자기 전에 지킬 박사였으나 일어났을 때 하이드로 변해있을 때도 있다. 이 모습을 직접 보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누가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지킬 박사의 친구 래니언 박사는 인류가 있어온 이래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이 현상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게 되니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하이드의 말에 넘어가 그가 변하는 모습을 보게 된 래니언 박사는 이후로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하이드가 가진 악의 단편적인 모습이지만 이 상황은 참으로 섬뜩하다. 지킬 박사를 완전히 장악하는 하이드, 이제 이 세상에서 지킬 박사는 사라졌다. 헨리 지킬의 삶에 종지부를 찍은 그는 하이드를 막는 유일한 방법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몸에서 악이 사라지게 만든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많은 사람들의 입으로 회자되는 이 이야기는 약물에 의해 변신하는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선과 악의 모습을 직접 대면하게 함으로써 내 안에 있는 '악'의 실체의 모습을 끊임없이 드러나게 만든다. 하이드의 모습은 또 다른 나의 모습이기에 지킬 박사를 더욱 가련하게 생각하게 된다. 이성이 존재할 때 우리는 밝은 햇살아래 충분히 악을 누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질까. 이후에 이어지는 '시체도둑', '오랄라' 단편들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 비해 몰입하게 하는 힘은 약하지만 충분히 재미를 선사한다. 해부에 사용되는 시체들이 살해되어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묵인하는 페츠는 맥팔레인과 그레이의 죽음에 공범이 되어 버린다. 물론 그레이를 죽인 사람은 맥팔레인지만 돈으로 매수당해 이 일을 함구해 버린다. 그날 이후 해부학에 쓰일 시체를 구하기 위해 도굴해온 여자시체를 담은 자루에서 오래전에 죽어 해부당한 그레이와 마주하게 되는 페츠와 맥팔레인. 초자연적인 현상인 이 사건은, 그 상황을 상상하면 끔찍하지만 그레이의 한 맺힌 마음을 충분히 들여다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맥팔레인은 그 후로 런던에서 유명한 의사가 되어 그 이상 벌을 받은 것 같지 않아 아쉽긴 하지만, 페츠는 죄책감에 점점 망가진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같다. 단편 '오랄라'는 현대에 살고 있는 내가 이해하기엔 조금 어렵게 다가온다. 흡혈귀와 저주 받은 가문의 이야기라 그 인과관계에 현실성이 없어 책 속에 빠져들기가 쉽지 않아 많이 아쉬웠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세 편의 단편들은 선과 악,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제시함으로써 나를 오롯이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 주어 마음속의 악을 보이지 않도록 숨기게 만드는 힘을 가진 것 같다.
"키다리 아저씨"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나의 마음속에도 키다리 아저씨에 대한 동경이 자리잡고 있었나 보다.이 책을 읽으면서 주디가 되어 보고 싶었다. 고아원에 있는 제루샤 애벗의 대학 등록금을 후원하겠다는 이사님이 한 분 계시단다. 그런데 그분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잠깐 스치듯이 본 키가 아주 컸다는 것 뿐, 그래서 제루샤는 그 분을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른다. 키다리 아저씨에게 한달에 한번 편지로 자신의 학업상황, 근황에 대해 알리는 의무가 있는 제루샤, 그녀는 자신의 애칭을 '주디'로 정하고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답장 한번 보내지 않는 키다리 아저씨. 어떻게 참을 수 있었을까. 발랄한 주디의 유쾌한 편지를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풋~하고 웃음이 터져나오고 그녀와 편지를 주고 받고 싶어지는데 말이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주디, 고아원에서의 생활을 적은 '우울한 수요일' 작문이 이사님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읽혀지고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키다리 아저씨의 도움으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편지를 보면 '우울한 수요일' 작문을 어떻게 적었을지 대충 짐작해 볼 수가 있다. 편지 중간 중간에 그림으로 자신의 상황을 설명할 땐 어찌나 귀엽게 그리는지 주디를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된다. 키다리 아저씨의 책을 읽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대충 알고 있는 내용임에도 "정말 키다리 아저씨가 누구지?"하며 관심을 쏟게 된다. 주디도 나만큼이나 무딘 감각으로 가까이에 있는 키다리 아저씨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오히려 더 큰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 같다. 훗날 키다리 아저씨를 직접 만났을 때 주디의 놀라는 모습을 보고 싶으니까. 주디에게 관심을 보이는 저비 도련님, 그녀와 자주 시간을 갖게 되는데 이쯤되면 대충 눈치를 채게 된다. 다른 남자와 시간을 보내는게 못마땅하여 록윌로 농원으로 가길 원하는 모습에서 남자로서 주디를 생각하는 저비 도련님의 마음이 느껴진다. 혹자는 주디를 신데렐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고아로 태어나 한 자산가의 도움으로 대학에 들어가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해 하는 모습에서 질투심을 느낄 수도 있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작가가 되고 도움 받은 돈을 갚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전혀 우리가 생각하던 이미지와 다르다. 고아라는 조건속에 불행하게 자랄수도 있지만 늘 밝은 모습을 보이는 주디, 그녀는 자신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렇기에 복을 받은게 아닌가 생각되어 여느 동화책속의 주인공처럼 그녀가 행복해지길 바라게 된다. 이 이야기가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는 이런 로맨스에 열광하게 된다. 그들의 순수한 사랑이 부럽다. 주디가 늘 지금 이 모습을 간직하고 더 이상 불행한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삶에 때론 시련이 찾아와도 잘 극복하여 그녀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백가흠의 소설을 읽은 사람들의 평을 보니 충격적이고 읽는 것이 편하지가 않다는 글들이 많아서 내심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그리 정신적인 충격이 큰 내용은 없었던 것 같다. 단지 마음이 아프다고 할까. 이런 종류의 글들을 읽으면 "세상에, 말도 안돼. 설마 이런 일이" 하며 반응을 나타내야 하건만 워낙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책속의 일들보다 더 끔찍하기에 그냥 큰 충격없이 책장을 넘기게 되어 오히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9편의 단편들 중에 왜 "조대리의 트렁크"를 책 제목으로 내세웠을까. 아이를 버려두고 다른 남자에게 간 엄마의 비정한 마음을 보여주는 "웰컴, 마미!", 아기를 납치하는 대머리와 스포츠형은 아이를 방에다 가둬 둔 순미와 무관하지 않은 사이다. 같은 경찰서에서 만난 스포츠형을 보며 자식을 죽게했다고 스포츠형에게 욕을 하며 몸부림친다. 고물들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할아버지는 가출소녀 연주를 매일 기다리며 가족이 생겼다는 기쁨을 가진다. 이 "매일 기다려" 단편을 읽으면 왜 속절없이 애들에게 당하고만 있는지 자신의 것을 다 내어주는 모습에 가슴이 아프고 끝내 등을 보이고 할아버지를 떠나는 연주의 뒷모습이 뇌리에 박혀 떠나질 않는다. 사람들로 인해 생긴 상처를 다루는 단편들 중에 유독 "조대리의 트렁크"가 가장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되기에 책 제목으로 정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따뜻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여기에서도 대리운전을 하는 조용순은 저수지에 시체를 버리려는 사람의 차를 운전함으로써 살인사건과 전혀 무관하지 않게 된다. 장영수라고 자신이 조용순과 동창이라고 밝히는 이 남자, 조대리는 나중에야 동창이 아님을 알게 된다. 왜 그랬을까. 마지막 가는 길 친구라면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기때문이 아니었을까. 동창이라면 가족을 믿고 맡길 수도 있었을테니까. 동창은 아니더라도 장영수라는 사람이 이 곳에 살았던 것 같다. 병들어 누워있는 어머니를 돌봐주는 조용순을 보며 장영수는 차는 물론 전재산을 그에게 준다. 차를 맡아달라는 장영수, 그 차의 트렁크에 웬 노파가 있는 것을 보며 그제야 장영수가 조대리에게 무엇을 부탁했는지 깨닫게 되면서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로망의 법칙", " 사랑의 후방낙법" 등 세상일에서 분명 있을법한 일들을 그려내기에 읽는 마음이 불편하긴 하지만 뉴스에서 보는 사건사고와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 사람냄새가 나기 때문일 것이다. 삶이 아무리 고단하고 밑바닥까지 떨어져 내리는 고통을 겪어도 살아낼 수 있는 힘이 나는 것은 따뜻한 마음뿐 아니라 더불어 살고 있다는 그런 느낌 때문일테니까. 나를 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또 다시 살아갈 힘을 전해 준다. 맞은편 집의 욕실을 훔쳐보며 얼굴은 보이지 않고 장빗빛 발톱만을 보게 되는 '나'는 라면을 사기 위해 동전을 가지고 나가는 신세지만 그의 모습에서 달동네에서 살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나와 다르게 살아가는 K를 로망으로 생각하는 이제는 중년의 친구들, "로망의 법칙"은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 그들이 이상을 버리고 어떻게 현실에 맞춰 살아가는지 그 열정이 어떻게 사라지게 되는지 보여주기에 한 사람, 한 사람 역사가 아닌 자들이 없다. 여자를 소유하기 위해 끔찍한 폭행과 협박을 일삼는 "굿바이 투 로맨스". 분명 이런 단편들을 읽으면서 세상이 무섭다고 느끼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기에 애써 괜찮을 거라고 말하며 나는 마지막 책장에서 머뭇거린다. 이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 적나라하게 보여진 사람들의 어두운 마음들이 사라질까.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건드린 백가흠의 소설은 기억속에서 잘 지워지지 않아 한동안 조금 힘들 것 같다.
권력앞에서는 '혈육의 정'도 필요없는 것일까. 왕좌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독살되고 죽임을 당해야만 했던 걸까. 내밀한 궁궐안에서 벌어지는 암투로 국운마저 바람 앞에 촛불처럼 위태로웠던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건만 "소현세자"를 읽으며 탁상공론을 일삼았던 임금과 신하들을 보니 한숨부터 나온다. 인조와 세자가 삼전도의 수항단에서 청 황제 앞에 삼배구고두를 행하며 뼛속깊이 약소한 나라의 사정을 오래도록 헤아렸다면 소현세자가 그리 헛되이 죽지 않았을 것을, 참으로 원통하다. 세자는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으면서 조선을 이끌어가기 위해 미래를 보았지만 인조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청나라와 조선의 중간에서 외교에 힘쓴 세자의 충심을 후궁 조씨의 간사한 말로 더이상 믿지 않는 인조는 세자를 청나라와 똑같이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래도 자식인데 어쩌면 이럴 수 있나 화를 내려니 이런 행동을 한 왕이 인조 하나만이 아니기에 그저 헛웃음만 나올뿐이다. 춘궁기에 죽어나가는 백성들을 보살필 생각은 하지 않고 오로지 왕좌만 지키기에 급급한 인조.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을 일으셨을 때만해도 가슴속에 누구 못지 않은 열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다른 임금과 다를바 없었고 남한산성에 들어가서조차 백성들의 안위보다 일신의 안위를 더 챙기는 모습을 보인다. 그와 다르게 세자는 스스로 나서서 볼모를 자청하고 백성들의 고통을 하루라도 덜어주려고 노력하지 않았던가. 청나라에서 볼모로 잡혀 몇년을 고생하다 조선으로 돌아온 세자는 백성들에게 영웅이었다. 아마 이것이 인조의 마음을 건드렸을 것이다. 세자빈 강씨 또한 인조의 후궁 조씨를 너무 강하게 대한 것이 훗날 인조가 세자를 버리는데 일조를 하게 된다. 소현세자가 왕좌에 올랐다면 조선을 바뀌었을 것인가. 광해군을 폐했을때 조선의 사정을 생각지 않은 결과로 청나라의 말발굽 아래 백성들만 죽어나갔다. 인조는 자식들이 많았기에 세자가 죽는다고 해서 마음조차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 같다. 자신이 청나라에 당한 치욕을 소현세자 탓으로 생각하고 참으로 매정하게 대하지 않았던가. 오로지 자신의 왕좌만 중요했으니까. 세자의 독살. 이 책이 어느정도까지 진실을 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자의 말대로 충분히 근거가 있는 말인것 같다. 명확하게 "그렇다"라고 말하진 못하지만 갑작스러운 죽음에 의혹을 품을만 하다. 끝까지 당당함을 잃지 않았던 세자빈 강씨. 세자의 감환을 박군이 이형익의 계략대로 학질이라고 말했을 때 이 불행은 예견되었을 것이다. 아니,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면서 조선에서 청나라의 거리만큼 인조와 세자의 마음거리 또한 멀어졌기에 세자의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부모 자식간의 유대는 왕좌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을, 세자이기에 그 자리를 버릴 수 없었던 그의 마음이 절절하게 와 닿는다. 그 순간만큼은 일개 백성으로 살고 싶지 않았을까. 눈 감으며 세자빈 강씨, 원손이 눈에 밟혀 저승가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겠다. 다음 보위마저 보장받지 못한채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사약을 받은 세자빈 강씨가 인조가 있는 궁궐을 향해 절을 하는 모습이 눈 앞에 선하게 그려지는 것 같다. 참으로 원통한 내 나라 역사가 아닌가.
기억이란 잊고 싶어하면 잊혀질 수 있는 것일까. 1954년 테디와 처크는 외딴섬에 있는 정신병원의 환자 한 명이 사라진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이 섬으로 오게 된다. 사라진 여자 레이첼이 남긴 것은 13이라는 불길한 숫자와 67이라는 숫자다. 철저하게 감시가 되고 있는 이 곳에서 환자가 사라졌다는 것이 놀라웠다. '환자가 수술이나 실험을 통해 죽어 실종처리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지만 이것 또한 명확한 답변이 되지 못한다. 이 외딴섬에 있는 정신병원에서 환자 한명 처리하는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테니까. 예전에 "살육에 이르는 병"을 읽고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나는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책을 살펴보았는데 "살인자들의 섬"도 마지막 책장을 덮고 레스터 시핸 박사의 일기가 쓰여진 첫 장을 다시 넘겨 보았으니 두 번째인 셈이다. 책이 중반을 넘어설때까지 섬에 나타나지 않고 휴가를 떠난 것으로 설정되어 있던 시핸 박사가 테디와 처크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예상하며 읽었는데 책의 결말은 나를 충분히 혼란에 빠뜨렸고 다시 첫장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시핸 박사의 독백을 보면 분명 테디와 돌로레스, 레이첼 솔란도, 앤드루 레이디스란 이름이 등장하기에 결말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라진 환자 레이첼 솔란도. C병동의 완전히 폐쇄된 이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테디는 레이첼을 찾으러 온 임무보다 아내 돌로레스를 죽인 레이디스를 찾는게 목적이다. 비인간적인 실험을 하고 있는 이 병원에 대한 정보를 통해 레이디스가 67번째 환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테디. 사람의 눈을 통해 얼음송곳을 뇌로 집어 넣어 신경을 절단하는 수술은 생각만으로도 너무 끔찍하다. 레이디스가 애시클리프 정신병원으로 갔다는 말을 듣고 이 곳으로 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꼭 자신이어야만 했다. 혹 근무를 나가 이 병원으로 오지 못하게 될까 봐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가. 돌을 가지고 암호를 만든 표시를 봤을 때 눈치 챘어야 했는데, 레이첼이 남긴 듯한 이 돌이 너무 사건에 접근하게 하기에 도리어 의심을 하게 만들었으니까. 물론 처크가 진짜 보안관이 맞는지 총을 잘 다루지 못하는 처크를 의심함으로써 테디가 이 사건에 홀로 맞서게 되어 점점 불안해진다. 테디는 레이디스를 찾고 배를 타고 이 섬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이 병원을 탈출하여 병원 정보를 제공한 조지 노이스도 이 곳으로 다시 끌려오지 않았던가. 도대체 등대에서는 어떤 수술로 환자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일까. 이 등대로 가서 사라진 처크와 레이디스를 찾는 것이 테디의 마지막 행동이 될 것이다. 하지만 병원의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테디가 배를 타는 것을 막는 병원 사람들에 맞서 몰래 배를 타고 나가려는 테디, 드디어 애써 바라보지 않았던 등대로 향하게 된다. 등대에서 콜 박사는 테디를 이 곳의 환자로 만들려고 한다. 그들이 만든 기억을 테디에게 주입시키는 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허리케인으로 감시망이 무너진 C병동으로 레이디스를 찾으러 가는 모험보다 정상적인 사람의 기억을 다른 기억으로 세뇌시키려는 콜 박사의 행동에 나는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사람의 기억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는 것일까. 안미쳤다고 주장해봤자 "미쳤다"는 말로 들릴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무서웠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내가 생각한 것들과 달랐을줄이야. 등대에서 행해지는 끔찍한 수술을 목격하고 병원 사람들을 응징하고 테디가 이 섬을 떠났다면 이 책은 보통의 스릴러 장르와 다를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라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저자의 필력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시핸 박사의 독백은 결말의 반전에 놀랐던 내 가슴을 진정시켜준다. 그 뒤에 테디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뒤의 결말은 독자에게 숙제로 남겨진다. 처음 본 사람들과 유쾌하게 지내던 처크가 그립다. 물론 어느 것이 진짜 현실이냐에 따라 그 그리움의 정도는 달라지겠지만 테디의 긴장감을 해소시켜주던 처크의 유쾌함이 나에게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