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와 하이드 (반양장) 펭귄클래식 3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박찬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세 편의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이 책 한권이 모두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중간쯤에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이야기가 끝나고 등장하는 '시체도둑'과 '오랄라'를 보며 잠시 멍~한 기분이 들었다. 혹 이어지는 내용인가 싶어 계속 넘겨보지만 아쉽게도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이야기는 짧게 끝이 나고 만다. 한 사람이 두 가지의 자아를 가진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간의 마음을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화학약품을 먹고 생김새는 물론 키까지 작아지며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는 모습은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다.

 

지금의 모습과 전혀 다른 낯선, 다른 사람으로 변신이 가능하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하이드처럼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분출시키며 거리낌없이 살인도 저지를 수 있을까. 지금 내 안에는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하고 아직은 선이 악을 누르고 있기에 "그래선 안된다"고 마음속에서 속삭인다. 하지만 어떤 행동을 하든 지킬 박사의 몸으로 숨을 수만 있다면 하이드처럼 하지 못하리라 장담하진 못하겠다. 지킬 박사의 오랜 친구인 변호사 어터슨은 지킬 박사가 작성한 유언장을 보며 불안한 마음을 느낀다. 실종되거나 사망시 하이드에게 재산을 넘긴다니, 도대체 이것이 무슨 말인가. 혹 하이드란 사람에게 협박을 당하기라도 하는 것인지 걱정이 된다.

 

하이드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그를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악의 기운에 기분이 나빠지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 안에 있는 악의 기운이 하이드에게서 나오는 그 비숫한 기운과 만나 나의 깊은 속마음을 들킨 듯 불편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약물로 자유자재로 변신이 가능한 지킬 박사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버린다. 하이드로 변신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잦은 약물의 사용으로 이제는 하이드에게 자신의 몸을 잠식당하고 지킬 박사로써 지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 급기야는 자기 전에 지킬 박사였으나 일어났을 때 하이드로 변해있을 때도 있다. 이 모습을 직접 보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누가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지킬 박사의 친구 래니언 박사는 인류가 있어온 이래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이 현상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게 되니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하이드의 말에 넘어가 그가 변하는 모습을 보게 된 래니언 박사는 이후로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하이드가 가진 악의 단편적인 모습이지만 이 상황은 참으로 섬뜩하다.

 

지킬 박사를 완전히 장악하는 하이드, 이제 이 세상에서 지킬 박사는 사라졌다. 헨리 지킬의 삶에 종지부를 찍은 그는 하이드를 막는 유일한 방법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몸에서 악이 사라지게 만든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많은 사람들의 입으로 회자되는 이 이야기는 약물에 의해 변신하는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선과 악의 모습을 직접 대면하게 함으로써 내 안에 있는 '악'의 실체의 모습을 끊임없이 드러나게 만든다. 하이드의 모습은 또 다른 나의 모습이기에 지킬 박사를 더욱 가련하게 생각하게 된다. 이성이 존재할 때 우리는 밝은 햇살아래 충분히 악을 누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질까.

 

이후에 이어지는 '시체도둑', '오랄라' 단편들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 비해 몰입하게 하는 힘은 약하지만 충분히 재미를 선사한다. 해부에 사용되는 시체들이 살해되어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묵인하는 페츠는 맥팔레인과 그레이의 죽음에 공범이 되어 버린다. 물론 그레이를 죽인 사람은 맥팔레인지만 돈으로 매수당해 이 일을 함구해 버린다. 그날 이후 해부학에 쓰일 시체를 구하기 위해 도굴해온 여자시체를 담은 자루에서 오래전에 죽어 해부당한 그레이와 마주하게 되는 페츠와 맥팔레인. 초자연적인 현상인 이 사건은, 그 상황을 상상하면 끔찍하지만 그레이의 한 맺힌 마음을 충분히 들여다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맥팔레인은 그 후로 런던에서 유명한 의사가 되어 그 이상 벌을 받은 것 같지 않아 아쉽긴 하지만, 페츠는 죄책감에 점점 망가진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같다. 단편 '오랄라'는 현대에 살고 있는 내가 이해하기엔 조금 어렵게 다가온다. 흡혈귀와 저주 받은 가문의 이야기라 그 인과관계에 현실성이 없어 책 속에 빠져들기가 쉽지 않아 많이 아쉬웠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세 편의 단편들은 선과 악,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제시함으로써 나를 오롯이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 주어 마음속의 악을 보이지 않도록 숨기게 만드는 힘을 가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