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번엔 사랑과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까? 어릴적 엄마의 립스틱을 몰래 삐죽삐죽 튀어나오게 바르며 얼굴전체 알록달록 물들인 기억이 떠오른다. 아마 그땐 그렇게나 어른이 되고 싶었나 보다. 10대 때는 술집에 드나드는것이 어른이라도 되는양 막아서는 사람없이 당당하게 드나들고 싶었고 20대 때는 꿈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며 직장에서 자리잡지 못해 마음 고생이 많았고 30대인 지금은 그저 20대로 보이고 싶어 조바심을 친다. 누가 "아줌마~`"라고 부를까봐 겁을 엄청 내면서 말이다. "거기 아줌마~~"라며 누군가 부르면 가슴에 대못을 박는 행동이라는 것을 각인시켜줄까 보다. 아빠의 큰 구두를 신고 아이들에게 자랑할때만 해도 아마 어른이 된다는 것이 참아야할 것도 많고 아이때처럼 힘들다고 투정부릴 수 있는 나이란 것을 알았을때 아빠의 구두를 신었던 기억이 떠올랐을까. 내가 엄마의 빨간 하이힐을 신고 싶었던 어린시절도 함께 떠오른다. 신데렐라, 백설공주 이야기를 듣고 자라면서 멋진 사랑을 꿈꿔온 시절이 있다. 소녀적 감성이라고 해도 좋다. 지금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바뀌어 그런 사랑이 세상에 있기나 한건지 의심을 가지고 있지만 주는 기쁨을 가졌던 그때가 좋다. 준만큼 나도 받고자 했을때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바꾸고 싶었을때 이미 난 '사랑'을 한 것이 아니라 내 이기심으로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세월이 지나 깨닫게 된다. 좀 더 일찍 알았다면 나에 대한 기억을 더 좋게 만들어 줄 수 있었을까.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면서 늘 상처투성이인 마음은 이런 아픔으로 좀 더 성숙해진다고 위안삼기엔 그땐 마음이 너무 어렸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지금 마음의 키가 쑥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는 말도 못하지만. 아름다운 동화이야기를 듣는 듯 소근소근 내게 전해주는 다정다감한 목소리, 파페포포는 지금 내게 그런 느낌을 선물한다. 차가운 세상에 맞서 싸우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나무에 물을 줘 가꿔줄 수 있는 감성을 내가 태어났을때 행복해했을 부모님을 떠올리길 바라는 것이다. 짜증내고 화내고 약한 모습의 부모님이 아닌 젊은 시절의 내 아이적 늘 강한 모습으로 날 지켜주시던 그 모습을 추억하게 한다. 생각나지 않는다고 있지 않은 일이 되는것은 아니니까.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란 따스한 체온을 통해 이어나갈 수 있음을 알게 해 주는 따뜻한 책이다. 이기심에 떠나보냈던 많은 이들이 떠오른다. 그들의 인생에 난 잠시 스쳐가는 단역일 것이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니까. 한컷을 맡은 단역일지라도 그 사람의 기억속에 좋은 사람으로 각인되고 싶다. 이 책을 음미하며 자주 자주 읽다보면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련한 추억속에 잠기며 아둥바둥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 시간을 잠시나마 벗어버릴 수 있어 참 좋다. 나도 어릴때 꿈이 있었다는 것이 다시 떠오르니 삶에 대한 원망보단 내가 선택하며 살아온 이 인생도 내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나하나 쌓아서 만든 내 인생도 아름다울수 있음을 추억하며 옛 기억에 잠겨보고자 한다.
타인과의 소통이란 그저 즐겁게 대화하는 것에 국한된 것일까. 하츠의 모습은 학급 아이들과 섞이지 못하고 물에 뜬 기름같이 겉도는 느낌이다. 그러나 그녀가 니나가와와는 편하게 대화를 하는 것을 보면 "낯을 가리는 것이 아닌 사람을 고르고 있다"고 하는 말에 공감을 가지게 된다. 중학교때 친한 단짝이었던 키누요가 고등학교에 와서는 다른 그룹의 아이들과 어울리고 홀로 남게 된 하츠가 생물시간에 조를 이루지 못해 남겨지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니나가와도 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아마 같은 반 아이들의 시선에는 혼자있는 모습으로 비춰지겠지만 그의 세계는 늘 올리짱과 함께 하기에 외롭지 않다. 하츠와 니나가와가 자주 어울리게 된 끈이있다면 올리짱 때문이다. 중학교 시절 시청에 사진을 찍으러온 올리짱과 만난적이 있다는 하츠의 말을 듣고 올리짱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니나가와, 올리짱만 바라보는 그가 왜이리 신경쓰이는 것일까. 어쩌면 내 마음속에 하츠와 니니가와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니나가와의 방에 같이 있지만 올리짱의 방송을 듣고 있는 니나가와와 단절된 느낌을 갖는 하츠. 고등학교에 올라와 마음이 통한 유일한 아이인데 이런 느낌이 너무 싫다 가학적인 생각을 가지게 될 정도로. '그의 등짝을 세게 차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뿐인데 나는 이미 그의 등짝을 후려치고 말았으니 왜 이런 행동을 하게 하는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게 된다. "니나가와를 좋아하는게 아니냐?"는 키누요의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을 하지만 좋아하는지 미워하는지 사랑하는지 괴롭혀주고 싶은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그저 등짝을 발로 차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뿐. 니나가와를 통해 자신의 울타리에서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하츠, 아마 니나가와에게는 올리짱의 콘서트에서 올리짱과 직접 대면하게 되는 그 시간이 자신의 밖으로 나오는 시간일게다. 하츠가 직접 만난 올리짱의 모습을 그도 느끼게 된다면 이후로도 계속 올리짱만을 바라보게 될까. 콘서트에서 올리짱만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니나가와, 그런 니나가와만을 바라보는 하츠 이들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그저 학창시절 연예인에 열광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사는 아이들로 생각해야 할까.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하츠에게 중학교땐 어떤 일이 있었기에 올리짱을 떠올리기 싫어하는 것일까. 올리짱을 생각하면 함께 떠오르는 중학교 시절의 일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가 보다. 니나가와가 원하는 올리짱과의 만남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 힘들기만 하다. 나도 학창시절 친한 친구 한 두명 외에 두루두루 사귀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생물시간에 조를 나누어 수업에 임하거나 짝지어서 뭔가를 해야한 했을때 곤혹스러움을 느끼곤 했다. 내가 생각하는 우정의 깊이가 다른 아이에겐 '나'란 존재가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눈치를 봐야만 했었기에 그 시절을 보내온 내가 하츠와 니나가와의 마음을 조금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키누요에게 조금 얄미운 느낌을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완전하게 끝나지 않은 이들의 잠시동안의 이야기들이지만 사춘기에 있는 아이들의 시간을 잠깐 훔쳐본듯 하여 나도 그 시절의 유쾌하지 않은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됨으로써 마음만 복잡해진다
왜 태오와 은수를 이어주지 않는지 마음이 찌르르 아파온다. 7살 연하인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탄탄한 직업을 가지지 못한 그이지만 마음이 따뜻한 사람인데 32살이라는 나이는 안정적인 삶만이 제대로된 길이라고 인식하는가 보다. 나? 물론 제 3자의 입장이기에 쉽게 이야기하면서 태오와의 사랑에 올인하지 않는 그녀에게 냉랭한 시선을 던져본다. 태오가 보내고 있는 내가 겪은 25살이란 나이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컸었던 것 같다. 나도 물론 30대가 되면 감정이 무엇이든 명확하게 보일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은수처럼 지금 32살을 보내면서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하다. 재인, 유희, 은수의 모습은 나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시작도 하기전에 움츠러들고 '결혼'이 인생의 끝인양 목매게 되는 그런 현상을 오롯이 겪고 있다.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이야기는 가상의 스토리일 뿐이다. 현실은 아주 냉혹하다. 한가지를 움켜잡으면 나머지는 버리게 되는, 내가 잡은 그 한가지조차 불확실하여 놔 버려야 하지 않는지 갈등하게 만드는 것이 인생인 것이다. 32살의 나이에 잘나가던 직장을 팽개치고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유희의 모습이 참으로 낯설다고 느끼는건 세상살이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안정된 직업을 버리는 행위는 미친짓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나 자신의 생각이라기 보다 사회가 그렇지 않냐고 변명이라도 해 볼까 보다. 지금 내가 하루 하루 보내는 시간들이 그녀들이 부러워 하는 삶이라는 것을 알지만 나도 내가 가지 않는 길에 대한 동경을 늘 품고 있기에 불완전한 인생을 살아간다는 느낌을 버리기 쉽지 않다. 늘 똑같은 일요일 같은 삶을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까. 전업주부라고 하기엔 불성실한 내 모습에 당당하게 소리칠수도 없다. 어정쩡한 모습의 난 그녀들을 통해 작은 위안을 받을 수 있을까. 유희와 재인이 은수에게 꼬집어서 말하는 모든 말들이 내 가슴에 와 박히기에 책장을 넘기면서 작은 위안조차 바라지 않게 된다. 잘난 사람들만 있지 않은 이 곳에는 상처를 한가지씩 안고 사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과연 달콤한 나의 도시는 어디에 있을까. 내가 머무는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도 그런 달콤한 나의 도시는 아닌 것 같다. 인생의 단계를 하나씩 밟아가면서 세월을 거스른다는 느낌은 아마도 좀 더 열정적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육체가 그 열정을 따라가지 못해 부서지는 모든 것들이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기에 울컥 심사가 뒤틀리게 된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사랑'이라는 단어를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는 것 같다. 태오와 은수의 사랑, 은수와 유준의 우정, 은수에게 녹록치 않은 인생의 무게를 알려준 김영수와의 사랑은 달콤한 나의 도시 안에는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이다. 각박한 서울안에서는 무시로 만날 수 있는 일상이지만 한사람을 보낼때마다 적응이 안되어 늘 가슴이 아프다. 실연의 아픔을 겪어내는 예방주사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도 '결혼'을 하게 되면 사랑에 더이상 가슴아파하지 않아도 되니까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하게 되는게 아닐까. 은수의 부모님을 보면 결코 이것이 끝이 아님을 알지만, 아니 누가 가르쳐준것도 아닌데 끝이 아닌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은수가 발없는 지느러미가 있는 인어가 아닌 이 땅에서 당당하게 발을 디디고 서 있었음 좋겠다. 한층 성숙한 모습의 은수가 태오를 만날때 내 마음도 아팠지만 자신의 진심을 숨기고 아무렇지 않게 만나려고 애쓰는 모습은 그저 속물이라고 생각되기 보다 "못났다. 못났어"라며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고 싶다. 열정적인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그 상대가 단지 안정되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고 어정쩡한 상태로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보아야 하는가. 늘 숨기만 하는 은수의 마음은 인간 '김영수'를 이해하는 드넓은 마음도 있건만 왜 자신의 삶은 그렇게 되지 않는지 속에 있는 것을 다 털어내보라고 이야기 해 주고 싶다. 32살은 사랑에 올인하면 안된다는 법이 어디 있기라도 한가. 그저 마음가는대로 움직여 보는것이 42살 되었을때 후회하지 않게 될텐데 아직은 많은 감정들을 다스려내지 못하는 은수의 모습이 내 모습과도 겹쳐져 마음이 아파온다. 인생은 아마도 달콤한 나의 도시, 편안하게 내 몸을 뉘일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이겠지. 평생을 찾아도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나이가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 더 두렵다. 내 손을 잡고 함께 따스함을 찾아 떠날 수 있는 사람을 빨리 만나게 되어 좀 더 편안한 은수의 모습을 보면 좋겠다. 은수의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무척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