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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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태오와 은수를 이어주지 않는지 마음이 찌르르 아파온다. 7살 연하인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탄탄한 직업을 가지지 못한 그이지만 마음이 따뜻한 사람인데 32살이라는 나이는 안정적인 삶만이 제대로된 길이라고 인식하는가 보다. 나? 물론 제 3자의 입장이기에 쉽게 이야기하면서 태오와의 사랑에 올인하지 않는 그녀에게 냉랭한 시선을 던져본다. 태오가 보내고 있는 내가 겪은 25살이란 나이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컸었던 것 같다. 나도 물론 30대가 되면 감정이 무엇이든 명확하게 보일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은수처럼 지금 32살을 보내면서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하다.

 

재인, 유희, 은수의 모습은 나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시작도 하기전에 움츠러들고 '결혼'이 인생의 끝인양 목매게 되는 그런 현상을 오롯이 겪고 있다.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이야기는 가상의 스토리일 뿐이다. 현실은 아주 냉혹하다. 한가지를 움켜잡으면 나머지는 버리게 되는, 내가 잡은 그 한가지조차 불확실하여 놔 버려야 하지 않는지 갈등하게 만드는 것이 인생인 것이다. 32살의 나이에 잘나가던 직장을 팽개치고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유희의 모습이 참으로 낯설다고 느끼는건 세상살이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안정된 직업을 버리는 행위는 미친짓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나 자신의 생각이라기 보다 사회가 그렇지 않냐고 변명이라도 해 볼까 보다. 지금 내가 하루 하루 보내는 시간들이 그녀들이 부러워 하는 삶이라는 것을 알지만 나도 내가 가지 않는 길에 대한 동경을 늘 품고 있기에 불완전한 인생을 살아간다는 느낌을 버리기 쉽지 않다. 늘 똑같은 일요일 같은 삶을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까. 전업주부라고 하기엔 불성실한 내 모습에 당당하게 소리칠수도 없다. 어정쩡한 모습의 난 그녀들을 통해 작은 위안을 받을 수 있을까. 유희와 재인이 은수에게 꼬집어서 말하는 모든 말들이 내 가슴에 와 박히기에 책장을 넘기면서 작은 위안조차 바라지 않게 된다.

 

잘난 사람들만 있지 않은 이 곳에는 상처를 한가지씩 안고 사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과연 달콤한 나의 도시는 어디에 있을까. 내가 머무는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도 그런 달콤한 나의 도시는 아닌 것 같다. 인생의 단계를 하나씩 밟아가면서 세월을 거스른다는 느낌은 아마도 좀 더 열정적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육체가 그 열정을 따라가지 못해 부서지는 모든 것들이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기에 울컥 심사가 뒤틀리게 된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사랑'이라는 단어를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는 것 같다. 태오와 은수의 사랑, 은수와 유준의 우정, 은수에게 녹록치 않은 인생의 무게를 알려준 김영수와의 사랑은 달콤한 나의 도시 안에는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이다. 각박한 서울안에서는 무시로 만날 수 있는 일상이지만 한사람을 보낼때마다 적응이 안되어 늘 가슴이 아프다. 실연의 아픔을 겪어내는 예방주사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도 '결혼'을 하게 되면 사랑에 더이상 가슴아파하지 않아도 되니까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하게 되는게 아닐까. 은수의 부모님을 보면 결코 이것이 끝이 아님을 알지만, 아니 누가 가르쳐준것도 아닌데 끝이 아닌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은수가 발없는 지느러미가 있는 인어가 아닌 이 땅에서 당당하게 발을 디디고 서 있었음 좋겠다. 한층 성숙한 모습의 은수가 태오를 만날때 내 마음도 아팠지만 자신의 진심을 숨기고 아무렇지 않게 만나려고 애쓰는 모습은 그저 속물이라고 생각되기 보다 "못났다. 못났어"라며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고 싶다. 열정적인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그 상대가 단지 안정되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고 어정쩡한 상태로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보아야 하는가. 늘 숨기만 하는 은수의 마음은 인간 '김영수'를 이해하는 드넓은 마음도 있건만 왜 자신의 삶은 그렇게 되지 않는지 속에 있는 것을 다 털어내보라고 이야기 해 주고 싶다. 32살은 사랑에 올인하면 안된다는 법이 어디 있기라도 한가. 그저 마음가는대로 움직여 보는것이 42살 되었을때 후회하지 않게 될텐데 아직은 많은 감정들을 다스려내지 못하는 은수의 모습이 내 모습과도 겹쳐져 마음이 아파온다. 인생은 아마도 달콤한 나의 도시, 편안하게 내 몸을 뉘일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이겠지. 평생을 찾아도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나이가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 더 두렵다. 내 손을 잡고 함께 따스함을 찾아 떠날 수 있는 사람을 빨리 만나게 되어 좀 더 편안한 은수의 모습을 보면 좋겠다. 은수의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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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7-09-29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김선우 시인의 말이 떠오르네요
"일흔 일곱살이 되어서도 나는 연애중일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