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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드레스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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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피가 가는 곳에는 오직 죽음뿐이었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 그녀는 살인자가 되어 있었고 어린 레오가 죽어 있는 것을 봤을 땐 최소한의 인간으로 살아가는 삶조차 꿈 꿀 수 없게 되었다. 새로운 이름을 얻기 위해 소피가 할 수 있는 일들이란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 일 뿐이었다. 이렇게 수많은 위험속에서도 근원적인 자신의 모습을 잊지 않고 지키고 있는 소피에게 새로운 삶을 준 프란츠는 지금 소피에게 유일한 보호자이며 소피가 그와의 결혼생활이 행복해질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게 하는 유일한 존재다. 그러나, 소피가 가는 곳마다 죽음들 뿐인 이유, 무슨 이유로 살인을 저지르는지 알지 못했던 나는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에서 다룬 전반부는 온통 죽음뿐인 암흑속에서 소피를 따라다니는 것조차 내게는 힘겨운 시간들이었으며 그녀가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벌을 받지 않고 새로운 삶을 가지게 된 것에 대해 자신의 죽음이든 그 어떤 것이든 죄에 대한 댓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피에르 르메트르의 작품 '알렉스'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소피에 대한 시선이 바뀌게 된 것은 프란츠가 쓰고 있는 일기때문이었다. "왜 알렉스여야 했을까?"에 이어 "왜 소피여야 했을까?"란 의문은 피에르 르메트르가 전혀 다른 소재를 다루고 있는 두 작품을 비슷하게 이끌어가고 있기때문이지만 알렉스와 소피 두 주인공이 타인에 의해 파괴된 자신의 삶의 결과를 어떻게 바꾸는지는 완전하게 상반된 결과를 보인다. 알렉스는 자신의 상처와 아픔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했지만 감히 자신의 행복을 꿈꾸지 못했고 소피는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남아 있는 삶을 선택하게 된다. 너무나 많은 불행한 일들이 있었지만 이를 바로잡기 보다는 안정된 삶을 원했던 소피가 알렉스처럼 행동했다면 어땠을까. 소피가 겪은 불행과 아픔만큼 그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은 또 다른 끔찍한 사건을 만들어낼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과 같은 결말은 뭔가 부족해 보인다.

 

소피가 자신의 삶이 뒤틀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꼈을 때 바로잡을 수는 없었을까. 누군가의 시선이 계속 따라다니는 것을 느꼈을 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을까. 소피는 몇 번이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속수무책으로 놓아둘 수 밖에 없었으며 결국엔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되었다. 소피의 일상이 타인에 의해 파괴되지 않고 평범한 삶을 살아갔다면 아이를 낳고 뱅상과 함께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인데 이제는 그녀의 행복이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타인에 의해 철저하게 삶이 파괴된 사람은 소피가 아닌 그 누구나 될 수 있었지만 꼭 소피여야만 했다. 이것이 너무나 끔찍해서 타인의 집 안까지 훤히 바라다 보이는 아파트에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공포심을 느끼게 되고 내밀한 사생활이 세상에 드러나고 살인이 이렇게 손쉽게 행해질 수 있다는 것이 무섭다. 우리가 살아가는 그 어느 곳에도 안전지대는 없다.

 

경찰이 등장하여 소피를 쫓고 또 다른 축으로 그녀와 프란츠의 이야기를 풀어갔다면 지금과 다른 느낌의 소설이 만들어졌을 것인데 무척이나 아쉽다. 그랬다면 지금보다 좀 더 긴박감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며 법의 테두리 안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결말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미 '알렉스'에서 카미유에 의해 해결된 사건을 봤기에 경찰이 등장하여 소피를 쫓게 되었을 때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가 '알렉스'와 다른 소설로 차별화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카미유가 등장하지 않은 아쉬움은 쉽게 달래지지 않는다. 카미유가 등장했다면 그에 의해 모든 진실이 드러났을 것이다. 누구의 손에 의해 진실이 드러난들 무슨 상관이냐만은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나는 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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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동물원]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굿바이 동물원 -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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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그만두게 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게 된 가장의 삶은 그동안 자신이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들도 함께 불투명한 미래, 행복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불행한 시간만을 보내게 된다. 그나마 김영수는 돼지엄마의 소개로 부업이라도 하면서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꿈 꿀 수 있는 기회를 얻지만 마늘을 까면서 마음껏 눈물을 흘리고 곰인형 눈 붙이기를 하며 본드를 흡입해 자신이 원하는 현실을 환상으로 보는 시간을 거쳐서야 세렝게티 동물원에서 근무하는 자신의 모습 볼 수 있게 된다. 동물들을 돌보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동물의 탈을 뒤집어 쓰고 우리에 갇혀 근무해야 하는 삶이란, 동물원 우리에 갇힌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수 밖에 없다.

 

세렝게티에 근무하는 동물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신에게 끊임없이 되묻는다. 바나나를 던지며 "물어" 지시하는 김영수의 행동에 폭발하는 대장 만딩고, 조풍년, 앤의 행동은 그런 의문을 담고 있는 것이다. 김영수도 끊임없이 자신에게 되묻는 의문이기도 하다. 소생이라고 말하며 상품을 팔러 동물원에 방문하는 잡상인이 이들에게 희망을 전해주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사람답게 사는 것을 버렸을 때만이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역설하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살지 않고 세렝게티 동물원에서 동물로 살아가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말하는 조풍년 씨, 내가 그에게 동물원에 오는 관람객들이 동물원에서 보게 될 동물들이 진짜 동물들이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오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면 지금의 생각을 고수할 수 있을까. 너무 잔인한 질문이 될 것이다.

 

세렝게티 동물원에서 동물로 살아가는 것은 대단히 해학적이다. 실제 삶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여겨질 정도로 비현실적이다. 세렝게티 동물원이 탈인간화를 꾀하고 있지만 그 밑바탕에는 인간적인 삶을 원하는 이들로 이루어져 있다. 과장님, 대리님 하며 직급을 붙여 이름을 부르는 것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사회와 다르지 않다. 고릴라들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오르며 한 번에 5천원의 돈을 벌어가는 것은, 진짜 동물들은 할 수 없는 이 일은 사람들이 원하고 있기에 행해져야 하는 것이며 이는 고릴라의 슬픔을 극대화 시킨다. 이렇게까지 해야하는 가에 대한 의문 또한 계속 제공한다.

 

인간보다 동물의 탈을 쓰고 살아가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사람들이 궁극적인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인간이 되기를 포기하는 길 뿐이다. 문명, 문화 등의 모든 걸 버리고 원시상태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길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여야만 가능한 행복이고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야만 하는 이들은 세렝게티 동물원에서 관람객들을 기다리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말하니 문명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이 꼭 불행하기만 할 것 같으나 자연상태로 돌아간 사람들에게도 문제는 있다. 천적들이 나타났을 땐 어떻게 되겠는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것이 쉽지 않을 터인데 그래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도 약육강식의 세상이라 위험하긴 하지만 살아남기 위하여 서로 잡아 먹는 행동은 하지 않으니 자연상태보다는 덜 위험하다. 이것 모두 쓸데없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행복을 찾아 떠난 사람에게 그 어떤 이유든 문제가 되진 않을 테니까.

 

끝까지 알 수 없었던 돼지엄마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세렝게티 동물원에 사람들을 소개해준 그녀의 존재는 신비롭기까지 하다. 요정이 아니었을까. 돼지엄마는 이제 누구에게 희망을 전해주고 있을까. 또 누군가에게 부업을 소개한 후 시에서 운영하는 거라 공무원이랑 똑같다며 세렝게티 동물원의 일을 권해주고 있을 것이다. 세렝게티 동물원에는 많은 동물들이 빠져 나간 자리에 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 관람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게 되겠지.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동물로 살아가게 되겠지만 조풍년 씨 말처럼 동물로 지내는 시간만큼은 마음이 편하다는 말을 진심으로 듣고 그들의 삶을 너무 가슴아프게 생각하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4월의 노래>를 부른 송과장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요? 살아있기는 하나요? '굿바이 동물원'에서조차 잊혀져 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슬프다. 마음이 헛헛하여 송과장의 노래를 들으며 동물의 탈을 벗은 인간들과 함께 '아무거나'를 안주삼아 '안중근 소주'를 한 잔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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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해자 1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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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일이 생기면 늘 이 행복이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누가 시샘이라도 해서 행복을 빼앗아 가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 소소한 즐거움에도 감정 표현을 드러내지 못할 때가 많다. 행복 다음에는 불행이 찾아 오지 않을까 두려운 것이다. 결코 불행은 하나만 찾아오지 않는다. 도미노처럼 순식간에 평범한 일상을 무너뜨리고 휩쓸고 가 버린다. 교코의 가족이 그러했다. 처음 교코의 가족에게 일어난 일은 작은 방화 사건으로 시작했으나 이 사건으로 점점 아이들이 웃음을 잃어버리고 내 집을 마련하여 화단을 가꾸며 소박하게 살아가고 싶은 교코의 바람마저 산산조각 내어 버린다. 모든 것은 남편 시게노리 탓이다.

 

시게노리가 자수를 하였다면 사건이 크게 번지지 않고 마무리 되었을 일을 경찰들은 이 사건에 기요카즈회를 수사한답시고 그들을 끌어들이고 시게노리가 방화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도 한 가정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할 뿐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경찰들이 감시하고 시게노리가 방화범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면서 교코는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삶에서 벗어나 폭주하기 시작한다. 교코가 마트 직원의 인권을 위해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내용은 별 필요가 없는 이야기였다. 교코가 앞으로 남편 시게노리의 잘못으로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되는지 사면초가에 고립되어 살아가는 교코가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기 위해 넣은 것이겠지만 이는 개연성이 부족하다. 밑바닥까지 내려간 교코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녀가 선택한 최악의 상황을 그려놓음으로써 평범한 가정이 얼마나 간단하게 부서질 수 있는지 보여주고자 했다면 제대로 보여준 것이 맞지만 교코의 선택에 '희망'을 담아 놓았다면 달라진 결말에 안도하며 독자들은 책 읽기의 즐거움에 빠질 수 있었을 것이다. 불행, 불행 또 불행, 이것들만 담아 놓으면 독자들이 책을 읽을 이유가 있는가. 소설이 현실과 같다면, 여기에서 아무런 희망을 찾을 수 없다면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 작가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구노 형사와 하나무라의 대립은 경찰들의 업무 특성상 발생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개인적인 복수심까지 담겨 있다. 한 여자가 얽혀 있어 하나무라는 "구노만은 용서할 수가 없다"고 부르짖고 있지만 구도에 의해 감시를 당하며 경찰직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에 몰린 부정부패의 대표격인 하나무라가 구노에게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하나무라의 복수심 덕분에 그가 가요카즈회가 손을 잡고 불량 학생들인 유스케와 요헤이까지 중요 인물로 등장시켰으니 주부인 교코, 형사 구노, 불량학생들 요헤이, 유스케, 히로키 조폭 가요카즈회까지 등장하여 작은 방화사건을 거대하게 만들어 꼭 등장할 필요가 없는 인물까지 등장시켜 교코 가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사건으로 만들어 버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교코를 힘들게 하는 시게노리에 대한 구노의 감정은 범인의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을 넘어서 교코를 죽은 아내와 동일시 하는 상황에 이르고 교코의 선택에 가장 안타까워 한다. 그가 교코의 잘못을 덮어주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역시 직업이 경찰인지라 공정하게 처리한다.

 

교코가 선택한 삶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녀는 가족을 스스로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교코가 좀 더 강한 모습을 보여줄 순 없었을까. 아이와 함께 지금의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순 없었을까. 시간을 조금만 되돌릴 수 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거라고 후회하는 그녀를 보면서 행복은 조금의 틈만 생겨도 무너질 수 있지만 이대로 무너져 버릴 것인지, 지금과 다른 삶을 살아가겠지만 견디는 것을 선택할지는 오로지 자신들의 몫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노는 교코가 '죽음'을 선택하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그나마 살아갈 의지 정도는 남아 있으니 다행한 일이다. 그것이 자신만을 위한 삶이든, 남아 있는 가족들을 위한 삶이든, 이 결정이 어떤 결말을 맞게 될지는 시간이 지나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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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백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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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던 기억만 나고 그래서 눈물나고 외롭고 쓸쓸하나요. 뭘 먹어도 맛이 없고 거리에서 손 꼭 잡고 다니는 연인들을 보는 것이 힘드나요. 이제는 혼자서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이 나를 더 외롭게 만들고 헤어진지 얼마쯤 되었는지 헤아리며 잠못 드는 밤을 보내고 있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실연' 당한 것이 맞습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잠든 깊은 밤, 다른 사람들이 눈 뜨지 않은 이른 아침 인터넷 세상을 배회하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을 발견하고 관심을 가지게 될지도 몰라요. '나 말고도 이 세상에 실연의 아픔을 가지고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구나' 처음에는 이런 작은 위안을 가지고 관심을 가지다 헤어진 사람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정리할 수 있다는 글에 결심을 하게 되겠죠.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에 참석하자고. 그러다 깨닫게 되겠지요. 이런 과정이 없다면 새로운 삶을, 새로운 사랑을, 새로운 기회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요.

 

그러나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이 미도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순수함을 잃게 되면서 조금은 불쾌한 기분이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모임이든 그 '실연'의 본질은 바뀌지 않을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이 모임을 통해 위로를 받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 것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미도에게도 실연의 아픔은 있었다. 그녀에게 사그러진 사랑에 대해 들었음에도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에 나타나 밝게 인사하는 것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해 보인다. 결코 이곳에서 어울리지 않는 사람, 사강은 지훈이 실연 당한 사람이 아니여서 이곳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에겐 미도가 그랬다. 사랑과 이별, 아픔 같은 것이 사치로 느껴질만큼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했다고 말한다 해도 미도에게는 지훈과 사강이 앓고 있는 아픔은 없어 보였다. 미도에게는 사랑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타인의 아픔도 이용할 수 있는 냉정함이 어울린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으로 인해 지훈과 사강의 삶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다가서고 서로의 아픔을 이야기하게 되지만 그 아픔과 상처는 오롯이 홀로 감내해야 할 몫이다. 이 모임으로 삶이 크게 변한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미도였다. 이 모임이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어떻게 삶을 바꿔줄 수 있을지 그녀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현정과 지훈의 사랑이 이별을 맞은 이유는 그저 평범한 연인이 오랜시간을 함께 한 권태기 때문이었을까. 또 다른 이유가 있을테지만 어떤 이유가 있는지 짐작만 할 뿐이다. 지훈의 마음 속에 아픔이 되어 남아 있는 가족들의 이야기, 이것이 현정과의 사랑에도 관계가 있었지 않을까. 사강이 정수를 떠나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사강에게 사랑은 처음부터 잘못 끼워 넣은 단추처럼 불편해 보였고 두 사람이 꼭 닮아 있는 서로의 상처를 향해 다가선 것이 사랑의 시작이었으므로 그 사랑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미 사랑이 끝난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핑크빛 사랑 이야기가 아닌 추억들과 아픔들 뿐이었다. 그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이야기들은 편린처럼 조각조각 나버려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 수조차 없었다. 그저 아픔과 슬픔만이 선명하게 보일 뿐 사랑은 추억속에서 희미해지고 있었다. 모든 조각들을 이어 붙인다면 지훈과 현정, 사강과 정수의 이야기가 로맨스 소설로 다시 만들어질 수 있을까. 추억속에 의존하여 내뱉어지는 이야기들이 멋진 사랑이야기로 만들어진다면 그들의 사랑도 빛나 보일 수 있을까. 로맨스 소설로 다시 만들어진다 하여도 지훈의 상처가, 사강의 상처가 낫지 않는다면 여전히 슬픈 이야기가 될 것이다. 가족의 상실을 느끼는 이들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면 과거와 같은 사랑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핑크빛 같은 사랑은 아니라도 서로 온전히 다가서고 서로에게 오롯이 몰두하며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랑이기를 바란다. '사강'이라는 이름을 쓸 때면 '사랑'으로 써 버릴 때가 많다. 사강 사랑과 닮아 있는 이름처럼 그녀에게 행복해질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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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호텔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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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세계에서 진실한 모습을 가지고 살아간다. 잠시 머무르게 되는 호텔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사람들은 없다. 호텔문을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 일탈을 꿈꾸게 되며 잠시 무거운 삶을 벗어놓을 수 있게 된다. 업무를 위해 이곳에 잠시 머무르든, 여행을 위해 이곳에 머무르든, 결혼식을 한 첫 날밤 행복한 꿈을 꾸며 이곳에 머무르든, 자신이 걸어가게 될 삶에서 잠깐 비켜나 일탈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우리들에게 가면을 썼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매스커레이드 호텔'은 세 건의 살인사건에 대한 증거물 분석과 탐문수사, 어느 정도의 용의자 색출과정을 거치고 현장에 남겨져 있었던 숫자 메시지까지 해독을 끝낸 후 네 번째로 살인사건이 벌어지게 될 호텔 코르테시아도쿄에 잠입수사를 하면서 시작된다. 독자들이 앞서 발생한 살인 사건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방해받는 것에 대해 충분히 양보해서 독자들을 배려하는 것이라고 해도 역시 첫 번째 살인사건부터 함께 하지 못한 것은 아쉽게 느껴진다. 
 
특정한 장소의 성격을 지닌 호텔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일어나지만 무수히 많은 이들이 드나드는 이곳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은 살인범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지금 고객 모두가 용의자가 될 수 있으며 호텔리어가 살인범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누구를 보호해야 할 것인지, 누구를 잡아야 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이 사건의 최대 걸림돌이 된다. 가장 위험한 상황인 것이다.
 
이나가키와 관리관 오자키 등 닛타의 상사들은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져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고 장담한다. 살인범의 실체를 알 수 없기에 어떤식으로든 반드시 사건이 일어나야 하며 위험한 상황이 벌어져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 닛타는 프런트에서 자신의 임무를 다하여 불순한 의도를 가진 고객들을 찾아내는 역할에만 충실히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도대체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묻고 싶어진다. 닛타의 부탁이 있긴 했지만 호텔에 오신 고객들의 안전을 위해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에 경찰들이 잠복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림으로써 살인 사건이 벌어질 상황을 막아야 한다고 말하는 나오미의 의견이 옳은 것이 아닐까. 또 어딘가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질 수 있음을 가정한다면 호텔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의견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나오미와 대화를 나누며 그녀가 무심결에 던지는 말들을 흘려 듣지 않고 이번 수사에 이용하여 살인범의 실체에 다가가기 시작하는 닛타, 네 번째 피해자가 될 사람이 고객이 될지, 호텔 직원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프런트를 지키며 호텔리어의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일 뿐이지만 닛타의 능력을 알아본 노세와 나오미가 사건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매스커레이드 호텔'은 살인범이 나타날 때까지 이렇다 할 긴박한 사건들이 발생하지 않아 '닛타 형사의 완벽한 호텔리어 되기'의 휴먼 드라마를 보는 듯 했으나 조금씩 위험한 인물들이 나타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고객의 불만을 호텔리어인 야마기시 나오미가 깔끔하게 처리하는 모습보다 두 눈에서 레이저가 쏘아져 나오는 것이 아닐까 염려될 정도로 투숙객들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닛타가 형사의 감으로 명쾌하게 해결해 버리는 사건이 더 인상적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오미가 가르치는대로 호텔리어답게 고객 한 사람마다 마음을 다해 대하기 시작하는 닛타를 보면서 어쩌면 그가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에 잠입한 이유가 살인범을 잡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과거에 자신이 무심코 저질렀던 일에 대하여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가 아닐까 여겨질 정도였다.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음에도 이것이 나에게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이유가 되었으며 닛타가 호텔리어가 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뿌듯함을 함께 느낄 수 있게 했다.    
 
형사가 아닌 호텔리어가 되어 타인의 삶을 바라봐야 했던 닛타와 고객의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나오미 이 두 사람이 이번 사건을 통해 얻은 것이 많을 것이다. 고객의 신뢰를 얻으면 고객들은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게 될 것이며 더이상 가면을 쓰지 않게 될 것이다. 고객 뿐 아니라 호텔리어들도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호텔이 현실 속 진짜 삶 속에서 함께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그 해답은 없으나 고객들이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만으로도 호텔이 현실이 아닌 꿈의 세계에 있다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호텔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만은 모두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니 말이다.
 
유가와 교수, 가가 형사는 몇 번의 만남을 통해 조금은 친숙해졌으나 닛타 고스케 형사와는 처음 대면해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아직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그가 호텔리어 야마기시 나오미와 노세 형사와 함께 조화를 이루어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니 자신의 능력만을 내세워 출세를 위해 달려가는 인물이 아니라서 안심이 된다. 이번 사건을 유가와 교수와 가가 형사라면 어떤식으로 풀어갔을지 궁금하다. 유가와 교수의 전문적인 지식이 그리 필요하지 않은 사건이니 가가 형사와 닛타 형사가 함께 사건을 풀어갔다면 좋았을 것이다. 노세의 역할을 가가 형사가 맡았다면 정말 멋진 콤비가 되지 않았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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