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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백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행복했던 기억만 나고 그래서 눈물나고 외롭고 쓸쓸하나요. 뭘 먹어도 맛이 없고 거리에서 손 꼭 잡고 다니는 연인들을 보는 것이 힘드나요. 이제는 혼자서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이 나를 더 외롭게 만들고 헤어진지 얼마쯤 되었는지 헤아리며 잠못 드는 밤을 보내고 있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실연' 당한 것이 맞습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잠든 깊은 밤, 다른 사람들이 눈 뜨지 않은 이른 아침 인터넷 세상을 배회하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을 발견하고 관심을 가지게 될지도 몰라요. '나 말고도 이 세상에 실연의 아픔을 가지고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구나' 처음에는 이런 작은 위안을 가지고 관심을 가지다 헤어진 사람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정리할 수 있다는 글에 결심을 하게 되겠죠.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에 참석하자고. 그러다 깨닫게 되겠지요. 이런 과정이 없다면 새로운 삶을, 새로운 사랑을, 새로운 기회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요.
그러나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이 미도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순수함을 잃게 되면서 조금은 불쾌한 기분이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모임이든 그 '실연'의 본질은 바뀌지 않을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이 모임을 통해 위로를 받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 것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미도에게도 실연의 아픔은 있었다. 그녀에게 사그러진 사랑에 대해 들었음에도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에 나타나 밝게 인사하는 것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해 보인다. 결코 이곳에서 어울리지 않는 사람, 사강은 지훈이 실연 당한 사람이 아니여서 이곳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에겐 미도가 그랬다. 사랑과 이별, 아픔 같은 것이 사치로 느껴질만큼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했다고 말한다 해도 미도에게는 지훈과 사강이 앓고 있는 아픔은 없어 보였다. 미도에게는 사랑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타인의 아픔도 이용할 수 있는 냉정함이 어울린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으로 인해 지훈과 사강의 삶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다가서고 서로의 아픔을 이야기하게 되지만 그 아픔과 상처는 오롯이 홀로 감내해야 할 몫이다. 이 모임으로 삶이 크게 변한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미도였다. 이 모임이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어떻게 삶을 바꿔줄 수 있을지 그녀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현정과 지훈의 사랑이 이별을 맞은 이유는 그저 평범한 연인이 오랜시간을 함께 한 권태기 때문이었을까. 또 다른 이유가 있을테지만 어떤 이유가 있는지 짐작만 할 뿐이다. 지훈의 마음 속에 아픔이 되어 남아 있는 가족들의 이야기, 이것이 현정과의 사랑에도 관계가 있었지 않을까. 사강이 정수를 떠나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사강에게 사랑은 처음부터 잘못 끼워 넣은 단추처럼 불편해 보였고 두 사람이 꼭 닮아 있는 서로의 상처를 향해 다가선 것이 사랑의 시작이었으므로 그 사랑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미 사랑이 끝난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핑크빛 사랑 이야기가 아닌 추억들과 아픔들 뿐이었다. 그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이야기들은 편린처럼 조각조각 나버려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 수조차 없었다. 그저 아픔과 슬픔만이 선명하게 보일 뿐 사랑은 추억속에서 희미해지고 있었다. 모든 조각들을 이어 붙인다면 지훈과 현정, 사강과 정수의 이야기가 로맨스 소설로 다시 만들어질 수 있을까. 추억속에 의존하여 내뱉어지는 이야기들이 멋진 사랑이야기로 만들어진다면 그들의 사랑도 빛나 보일 수 있을까. 로맨스 소설로 다시 만들어진다 하여도 지훈의 상처가, 사강의 상처가 낫지 않는다면 여전히 슬픈 이야기가 될 것이다. 가족의 상실을 느끼는 이들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면 과거와 같은 사랑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핑크빛 같은 사랑은 아니라도 서로 온전히 다가서고 서로에게 오롯이 몰두하며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랑이기를 바란다. '사강'이라는 이름을 쓸 때면 '사랑'으로 써 버릴 때가 많다. 사강 사랑과 닮아 있는 이름처럼 그녀에게 행복해질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