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소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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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웃음이 묻어나는 책을 읽었다. 그렇다고 모든 단편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스토크 입문"에서 결국 터져나오고야 만 웃음이다. 추리소설을 많이 쓰는 작가라 지레짐작하여 이 책도 그런 책이겠거니 했는데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웃음을 선사하는 책일줄이야. 글 잘 쓰는것도 부러운데 이렇게 나의 마음을 알아주다니 조금 우울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읽어보라 권해주고 싶어진다. 우울한 기분을 달래고자 아니면 타인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자 정보가 필요해서 읽는 유머집에 실린 억지 웃음을 주는 것이 아닌 생활속에 잔잔히 녹아있는 웃음을 글을 빌어 선사하는 것이니 괜찮은 것 같다.

 

여러 단편들로 꾸며져 있지만 '규에이샤'라는 출판사에 관계된 이야기가 몇 편 등장하고 있어 이 이야기들이 서로 연결된 듯한 느낌이 든다. 사람들의 심리묘사가 참으로 탁월하다고 해야할까. 너무나 적나라게 뱉어내는 언어들을 보고 있자면 '어쩌면 이렇게 잘 표현했을까' 잠시 머릿속이 멍해진다. 신일본소설가협회에서 주는 상을 앞에 두고 서로가 속에 담고 있는 심리 묘사가 너무나 직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인간의 욕망에 대한 솔직한 모습? 아마도. 그래서인지 '사랑의 스프레이'나 '웃지 않는 남자' 등은 오히려 가볍게 읽어지는 것 같다. 

 

쭉쭉빵빵의 몸매를 선호하는것은 남자들 못지 않게 여성들이 더 갈망하는 바일텐데 '거대유방 망상증후군'에 걸린 주인공을 보고 있자면 사회풍속도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어 해학적인 면과 반대로 씁쓸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뚱뚱하지도 않는데 열심히 다이어트를 한다든지 거식증에 걸린 사람들을 보면 이와 다르게 남성들도 맘속에 병을 얻는 것을 보니 휘파람을 불며 몸매 이쁜 사람들을 쳐다보는 행동에 조금 고소한 생각도 들긴 하지만 예전에는 없었던 신종병들이 생겨나는 것에 묵과할수는 없으리라.

 

어릴때부터 '신데렐라' 이야기를 들으면 자라온 나에겐 자라면서 삶을 대하는게 아주 현실적으로 변했는지 '신데렐라 백야행'을 읽으면서 작가가 생각하는 것이 진실일지도 모른다고 제대로 표현했다는 생각을 했다. 유리구두, 아마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를 신고자 하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그것이 누가 신어도 늘어나지 않는, 신데렐라만 신을 수 있는 맞춤 신발일줄이야. 이 유리구두에 대해 한치의 의심도 없었거늘 그럴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계모를 아버지와 결혼시키고 또한 이혼을 권유하는 것까지 모두다 신데렐라의 계략이다? 너무 황당하다고? 아마 책을 읽으면 맹렬하게 비난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신데렐라도 세월이 변하면서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왕자님과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이 과연 세월이 흘렀을때도 그렇게 결말이 났을 것인가. 의심이 드니 내가 너무 속물인 것인가.

 

작금의 세태를 콕콕 찝어내는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감동도 있다. '기적의 사진 한장'이 그렇다. 웃음을 주다가 뜨끔하는 마음을 감출수 없게 만들고 어루만지며 잔잔한 여운도 주는 것이다. 실로 나는 작가의 의도대로 울다가 웃다가 인생을 보았다고 해야할까. 시종일관 유쾌하지만은 않은 이 이야기들에 가슴이 아려온다. '흑소소설'은 그래 인생이 녹아있다. 세상이 보인다. 그런 느낌이 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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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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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먼다는 것은 과연 죽은자와 같다. 사람의 감정은 눈을 통해 나타나니 눈을 뜨고 있으되 볼 수가 없다면 그것은 정말 죽은 삶이라 볼 수 있다. 지금 이 생각을 처음부터 했던 것은 아니다. 책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밑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 전기나 물이 끊겨 조금의 불편한 생활보다 치명적인 사람의 존엄성마저 파괴해 버리는 '눈'에 대해서 다시 생각 해 보게 되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도움을 줘서 생활이 가능했다는 논리는 펴고 싶지가 않다. 정말 얼마나 바닥까지 내려가야 하는가. 세상이 어두컴컴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유바다에 있는 듯 백색으로 보인다니 이런일이 생긴다는게 가능한 것인지 두렵다. 진정 두렵다.

 

제일 처음 눈이 멀어버린 사람은 차를 운전하다 신호등에 멈춰서고 출발을 하지 못한채 눈이 멀어버렸다. 얼마나 막막했을까. 눈이 약해진다는 전조도 없이 그냥 텔레비전의 화면이 하얗게 되며 전파 장애가 일어나듯 그렇게 세상은 하얗게 변해버렸다. 이때까지만해도 그저 이 한사람의 안타까운 일로만 생각되었으나 그와 접촉한 사람들은 다 눈먼자들이 되어 버린다. 가까이 있었는데 그 전염 속도는 빨라 이들을 격리수용하기에 이르고 이들을 감시하는 군인들조차 하나씩 실명되기에 이른다. 실명은 보이지 않는 것이니 이것은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강렬한 빛에 의해 사물이 보이지 않는 상태? 아마도 그러할 것이다.

 

여기에서 단 한사람 눈 멀지 않은 이가 있었으니 첫번째로 눈이 먼 사내가 찾아간 안과에 의사의 아내이다. 남편을 따라 정신병원에 함께 가면서 눈먼자처럼 행동하나 내일쯤 눈이 멀거라 생각하고 기다리던 그녀에겐 그저 그들이 생활하는 모습과 비인간적인 행동들을 눈뜨고 봐야하는 잔혹한 고문들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이름이 없다. 보이지 않으니 이름이 무슨 소용일까. 목소리도 구분하기 쉽지 않기에 눈이 보이는 의사의 아내가 보이는 대로 첫번째로 눈이 먼 사내, 검은색안경을 쓴 여자, 사팔뜨기 소년 등으로 지칭할 뿐이다.

 

급하게 수용되었는지라 체계도 관리도 엉망이다. 포로들보다 더 못한 대접을 받고 눈먼자들에게 옮을까 보아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설라치면 총을 쏘는 군인들의 모습은 전쟁중이라는 생각이라도 하는 것인지 살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화장실을 찾지 못해 아무데서나 용변을 보는 사람들, 그 곳을 신을 신지 않은채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 비위도 강하지 못해 구역질이 나오려고 하고 인상까지 찌푸려지게 된다. 어딜가나 조직의 필요성을 느끼고 대표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여기서도 예외는 없는지라 아마 이 사람들을 이끌 사람이 더 필요한지도 모르지만 단합도 되지 않고 가장 기본적인 생존권에 대한 권리만 주장하는지라 무엇이든 쉽지가 않다. 힘이 있는 깡패들이 이 곳에 들어와 조직적으로 먹을 것을 강탈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선 귀중품을 가져오고 여자까지 원하게 되니 아~정말 처참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의사의 아내가 가위를 휘둘러 사람을 죽인들 어떻게 비난할 수가 있을 것인가. 사람들의 노예가 될까 보아 눈이 보인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이제 문제도 되지 않는다. 차라리 눈이 멀어버렸으면 하고 바라게 되니 그 참상이 눈에 그린듯 다가온다.

 

눈이 보이지 않게 되면 세상 사람들도 나를 보지 않는 듯 생각하게 된다. 금기시 되었던 행동들도 마음대로 하게 되니 온 세상이 눈 멀어버린 이 도시에서는 이런 자신의 모습을 직접 보게 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하게 다가올 것인가. 저자의 의도는 아마도 그런 것이리라. 첫번째로 눈이 먼 사내의 눈이 보이게 되고 하나씩 눈이 돌아오면서 과연 어떤 생각들을 하게 될 것인가.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고치려는 노력을 할 생각도 못한채 급속도로 퍼져나가 온 세상이 눈먼자들의 도시가 되고 세상은 멈춰버렸기에 이들의 행동이 날로 어찌 변화되는지 지켜보는 것은 조금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너무도 충격적인 내용이라 내가 가진 세상을 보는 눈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알게 되니 고마워해야 하는가. 내 남편이 검은색안경을 쓴 여자와 관계하는 것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되는 세상, 그저 씻을 수 있고 먹을 것이 있으면 행복함을 느끼는 이 곳에서는 과연 선과 악이 존재치 않으니 우리가 지금 바라보는 세상이 온전한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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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
최인호 지음, 김점선 그림 / 열림원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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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늘 집안에 놔 두고 감상하지는 않아도 이쁜 것은 알기에 작년 '아침고요 수목원'이나 허브농원으로 꽃을 찾아 떠난 적이 있다. 여기저기 이쁜 꽃들을 보면 사진을 찍기 바빠서 제대로 감상을 하지 못하고 추한 내 모습을 옆에 두고 사진을 찍는 우를 범하긴 하였지만 마음만은 화사해지는 것이 참으로 행복하다 느꼈다. 그래서일까 최인호님의 꽃밭은 제목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해지고 어린시절을 생각나게 하며 꽃들이 만발한 그 곳에 한발을 넣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해방둥이인 저자가 인생의 어느정도의 위치에서 회고하듯이 쓴 글 같기도 하지만 잔잔한 일상을 엿볼수 있어서 좋다. 특히 아내에 대한 이야기는 꼭 이웃집에서 같이 사는 듯 속속들이 다 알진 못하더라도 왠지 지나가며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는 할 수 있을것 같은 포근함마저 느껴지니 저자도 '나처럼 사는구나'싶은 것이다. 글을 쓰시는 분들은 사회에 대한 통찰력도 깊은지라 이 책에서도 그냥 지나치진 않는다. 자신의 종교가 가톨릭이라 종교에 관련된 이야기도 많이 나오지만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의 사정에 마음이 쓰이는지 "모든 껍데기는 가라"와 "아직 오지 않는 평화"에서 중복해서 동족상잔의 비극에 대해 말하여 '앞서 읽었던 내용'이 나오는지라 다시 앞장을 들춰보게 만들기도 한다. 형은 국군, 동생은 인민군에서 서로 총을 겨누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본의 속국인 우리나라가 왜 반토막이 나야 했는지 울분을 느낀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가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살아가면서 갑자기 내 모습이 낯설게 보일때가 있는가? 누구나 한번쯤 겪는 일이겠지? 어느날 갑자기 늘 하던 일인데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퍼뜩 들면서 멍하게 멈춰 설때가 가끔 있다. 그럴땐 정신이 아득해지지만 곧 아무렇지 않게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어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하지만 바로 어제의 내 모습도 생경하게 느껴질때면 내가 살아온 인생이 거짓인지 참인지 분별조차 하기 힘들게 된다. 나도 세월이 지나 지난날을 돌이켜 보거나 주위 사람들을 떠올리며 글을 쓰게 된다면 이렇게 그리움이 뚝뚝 묻어나게 쓸 수 있을까. 얼마전에 읽은 조창인님의 '아내'라는 글보다 그저 일기같이 이렇게 담담하게 써 내려간 글이 더 가슴에 담기는 것 같다. 실제 내 곁에 있는 사람을 묘사했기에 그러하겠지. 진실만큼 중요한 것이 없을테니 말이다.

 

인생은 꽃밭을 가꾸는 것과 같을지니 과연 내 꽃밭에는 어떤 꽃들이 자라고 있을 것인가. 혹시 잡초만 무성한 것은 아닐까. 남에게 크게 해악을 끼친적은 없으나 주어진 시간을 그저 허송 세월하며 보낸 적이 많기에 가꾸지 않아 내게 주어진 꽃들이 다 말라 버렸을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늘 보살펴주고 물을 부어 시들지 않게 따뜻한 관심을 보여줘야 하거늘 그냥 알아서 자라도록 내버려둔다면 꽃밭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아직은 젊은 나이에 나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타인의 힘을 빌어 잠시 그 자리에 머물러 시간을 되돌려 봤지만 이제는 내 손끝에서 시간이 다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내 풍성한 꽃밭을 자랑하고 그 씨를 나눠 주려면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흘러 "수고했소. 이제 집으로 돌아가도 좋소"라는 말을 들을때까지는 세상에 많은 꽃들이 피어날 수 있게 나도 부단히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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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10-10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진사랑님, 글 잘 읽었습니다. ^^
저는 어떤 꽃들을 가꾸며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린 제각각의 꽃이겠지요. 함부로 꺾여서도 밟혀서도 안 될 가엾은 존재들.
 
파페포포 투게더 - 개정판
심승현 지음 / 홍익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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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혼자 있을때면 전기세를 아끼려고 불은 다 끄지만 꼭 텔레비전은 켜둘때가 많은데 그것이 나의 외로움때문이란 것을 왜 몰랐던걸까. 사람소리가 그립고 대화할 사람이 필요할때면 난 그렇게 바보상자라고 부르는 텔레비전을 부여잡고 시간을 보내고 했었나 보다. 어릴적엔 엄마가 시간에 맞춰 드라마를 시청할때면 재밌어서 챙겨 보시는줄 알았는데 나도 세월이 흘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이 그리워서 드라마에 시선을 맞추고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면 엄마도 그땐 사람의 온기가 필요했었던가 보다. 가족이 함께였어도 왜 그렇게 외로워하셨을까. 옷이 없으면 헌옷을 꺼내입으면 되지만 마음이 아플땐 따뜻한 사람의 위안으로 치유가 되는 법 아무리 사람은 혼자 태어나 혼자 간다지만 그래도 내 옆에 필요할때 손을 잡아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도 엄마에게 손을 내밀지 못하는 무뚝뚝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니 할말이 없구나. 

 

파페포포 투게더는 함께 하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다. 외롭고 지쳐있을때 나를 위로해 주었던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느낌? 아마 조금 어릴때 첫사랑을 보내고 사랑이 변했다며 눈물로 한탄을 한 시절, 몸이 아플때 내 이마에 손을 얹어주는 따뜻한 손길의 가족들. 살아가면서 겪는 많은 일들이 그래도 내 곁에 나를 생각하고 걱정해주는 사람들에 의해 지금 조금 더 성숙한 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지 않을까. 늘 외롭다고 부르짖지만 난 이미 많은 추억을 가짐으로써 그 아련한 느낌을 다시 갖고 싶어 어리광을 부리는지도 모른다. 타인에게 선뜻 손도 내밀지 못하는 내가 외롭다고 말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란것을 알면서도 그리움에 가슴을 묻고만 싶다.

 

찬바람이 들기 시작하는 가을날 이 책은 솔직히 나의 외로움을 더 부추기는것 같아서 속상해진다. 혼자서 외로운 것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지만 둘인데도 외로운 것은 참지 못한다지. 결혼하고 나도 이말에 구구절절 공감하고 있으니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하나의 추억만을 가지고도 평생을 그리워하며 살아갈수 있다지만 나약한 나의 마음은 이 한권의 책으로 인해 잔잔한 파문이 일고 먼 곳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아마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도 나와 같은 맘일지도 모르겠다. '사랑해'라는 말로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볼까. 파페포포 시리즈를 보면서 유독 파파포포 투게더에 시선이 가는 것은 파페와 포포가 조금 성숙해진 것 같아서이다. 나에게 성숙한 모습을 보여달라고 이야기하는것도 같고 '투게더'의 함께란 말에 마음이 따뜻해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여름엔 덥고 땀이 나서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추운 겨울이 가까워오면서 온기를 그리워하게 된다. 사람의 체온은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따뜻하게 해 줄 수 있기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동안 외로웠다면 '미안하다'란 말을 하지 못해 놓친 사람이 없는지 가슴아프게 만든 이는 없는지 먼저 손을 내밀어 보는 것도 괜찮을테지. 비록 마음 먹는것이 힘들겠지만 또 더운 여름날이 가까워 오면 외로움을 덜 느끼게 되겠지만 지금 많이 외롭다면 함께하는 기쁨을 누려보는게 어떨까? 무엇보다 나에게 진지하게 하는 충고이니 한걸음 다가가는 사람에게 행복이 있을 것이란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자 지금부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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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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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처럼 생긴 사각형의 네모난 틀에서 빽빽하게 들어차 살고 있는 우리들에겐 이런 이웃간의 정을 느낄 여유같은 것은 없을 것이다. 여기서 '나'라는 화자는 진희, 어머니가 죽고 할머니와 삼촌 이모와 함께 살고 있다. 열두 살의 어린 나이라고 하지만 삶에 대한 통찰력은 이모보다 그리고 나보다 깊다.

 

이 책의 주인공은 그 시대를 살다간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진희의 이모라고 말하고 싶다.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은 이모의 이야기를 많이 풀어내고 있어 그런 생각이 드는가 보다. 철 없고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툭툭 뱉어내는 그녀를 진희가 보기엔 자신보다 덜 이지적인 이모의 모습이다. 그런 마음이 허석이라는 삼촌의 서울 하숙집 아들을 놓고 삼각관계를 형성하기도 하지만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진희에겐 딸인 이모와 손녀인 '나'를 두고 할머니의 선택을 받는 평생에 한번 있을까말까한 일을 겪고 싶지는 않다. 지금이야 진희가 할머니의 이쁨을 받지만 평소 가벼운 말을 하는 이모 영옥을 '오살년'이라고 욕하는 할머니지만 막내의 귀여움과 자식이라는 혈연으로 인해 철없는 딸의 모습을 가슴아프게 바라보는 할머니에겐 자신은 아무래도 그저 손녀딸이기 때문이다. 이모처럼 할머니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싶지만 그런 모습을 상상도 할 수 없는 진희의 마음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엄마가 목 매어 자살한)으로 인해 겪는 고통을 내 삶을 거리밖에서 바라보며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분리시켜 남이 저를 보고 수근거리며 관찰해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터득할 정도로 이미 마음은 어른이다.

 

마음은 어른이라고 자부하는 진희는 때에 따라 아이의 천진한 모습을 가장하여 어른들의 비밀을 함께 공유한다. 그네들이야 "아이니까..."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진희가 있어도 없는 듯 생각하지만 진희의 눈으로 바라본 사람들의 비밀은 사실 대놓고 말하지 않는다 뿐이지 쉬쉬하면서 다들 알고 있는 일들이다. 순수하지만 잠자리의 날개를 떼어내는 잔인함도 함께 가지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은 진희에게도 있어 장군이를 똥통에 빠뜨리는 계략도 세우기에 어린애라고 만만하게 볼 것은 아니다. "어쩜 저렇게 영악할까. 애가 애 답지가않다"라며 호들갑을 떨수도 있겠지만 더 어렸을적 기둥에 저를 묶어두고 집을 나가는 엄마를 보는 일을 겪으면서 그 나이때의 순수함을 가지기엔 너무 큰 사건을 겪어낸게 아닐지. 이제 세상은 90년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60년대의 열두살 이었을 때와 똑같이 흘러간다. 열두 살 이후 성장할 필요가 없다는 진희의 독백은 몸은 아이였으나 이미 그때 마음이 다 커버렸던 것이다. 

 

마을에 유지공장인 비누를 만드는 공장이 들어서고 농촌도 예전같지 않아 서울로 서울로 사람들이 몰려만 가던 그 시절에 이모 영옥은 군에 있는 이형렬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워가고 오로지 '현모양처'라는 꿈을 들먹이며 부잣집 아들에게 시집갈 생각에 설레어 한다. 난 이미 그녀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고 있지만 그 사랑이 너무 순수해 보여서 그저 많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친구인 경자가 애인을 뺏아가고 유지공장에 불이 나서 자신 대신 그 곳에 취직한 경자의 죽음을 겪으면서 마음의 상처를 딛고 한층 성숙한 모습의 이모는 이형렬이라는 사람은 잊은채 또 다른 사랑에 마음을 맡긴다. 그러나 이 또한 가망없는 사랑인가 보다. 잠깐씩 머무르고 떠나는 이에게 차마 임신했다는 말은 못하고 진희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하는 그녀의 모습은 수동적으로 살아왔던 인생을 이제는 능동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꾸려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인것도 같아 마음이 짠하면서도 대견하게 느껴진다.

 

남편을 하늘같이 떠받들며 모진 구타를 받으면서도 묵묵히 살아가는 광진테라 아줌마, 최선생님, 이선생님, 장군이 가족, 혜자언니, 미스 리 등은 그 시대를 일궈낸 역전의 용사들이며 현재의 안락함을 제공한 주인공들이다. 삶의 고단함을 우물가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풀어낸 그들의 인생은 진희의 회상으로 되살아나는데 한권의 책이 16부작 드라마를 보는 듯 흥미진진하고 그 때 그시절 사람사이의 정을 느낄 수 있어 자꾸 빨려들어가게 된다. 쿡쿡 웃음짓게 하는 부분도 있지만 진희가 바라본 어른들의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사는 것은 다 똑같구나"하고 한숨짓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인생을 잘못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그때는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야 밥을 먹을 수 있었고 지금은 오히려 그때보다 삶은 더 윤택해졌지만 따뜻한 정을 느낄새도 없이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가기에 나는 지금 그녀가 살고 있는 60년, 90년대를 넘어 2000년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 시절을 그리워 하게 된다. 소위 푸세식이라는 화장실을 어린시절 겪어 본 나는 그것만 빼면 그곳에서 진희와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마도 그저 이렇게 추억하며 육체는 편한 이 곳에서 살아가는 것을 더 좋아하기에 그저 말뿐이라 그렇게 말해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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