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
최인호 지음, 김점선 그림 / 열림원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늘 집안에 놔 두고 감상하지는 않아도 이쁜 것은 알기에 작년 '아침고요 수목원'이나 허브농원으로 꽃을 찾아 떠난 적이 있다. 여기저기 이쁜 꽃들을 보면 사진을 찍기 바빠서 제대로 감상을 하지 못하고 추한 내 모습을 옆에 두고 사진을 찍는 우를 범하긴 하였지만 마음만은 화사해지는 것이 참으로 행복하다 느꼈다. 그래서일까 최인호님의 꽃밭은 제목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해지고 어린시절을 생각나게 하며 꽃들이 만발한 그 곳에 한발을 넣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해방둥이인 저자가 인생의 어느정도의 위치에서 회고하듯이 쓴 글 같기도 하지만 잔잔한 일상을 엿볼수 있어서 좋다. 특히 아내에 대한 이야기는 꼭 이웃집에서 같이 사는 듯 속속들이 다 알진 못하더라도 왠지 지나가며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는 할 수 있을것 같은 포근함마저 느껴지니 저자도 '나처럼 사는구나'싶은 것이다. 글을 쓰시는 분들은 사회에 대한 통찰력도 깊은지라 이 책에서도 그냥 지나치진 않는다. 자신의 종교가 가톨릭이라 종교에 관련된 이야기도 많이 나오지만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의 사정에 마음이 쓰이는지 "모든 껍데기는 가라"와 "아직 오지 않는 평화"에서 중복해서 동족상잔의 비극에 대해 말하여 '앞서 읽었던 내용'이 나오는지라 다시 앞장을 들춰보게 만들기도 한다. 형은 국군, 동생은 인민군에서 서로 총을 겨누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본의 속국인 우리나라가 왜 반토막이 나야 했는지 울분을 느낀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가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살아가면서 갑자기 내 모습이 낯설게 보일때가 있는가? 누구나 한번쯤 겪는 일이겠지? 어느날 갑자기 늘 하던 일인데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퍼뜩 들면서 멍하게 멈춰 설때가 가끔 있다. 그럴땐 정신이 아득해지지만 곧 아무렇지 않게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어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하지만 바로 어제의 내 모습도 생경하게 느껴질때면 내가 살아온 인생이 거짓인지 참인지 분별조차 하기 힘들게 된다. 나도 세월이 지나 지난날을 돌이켜 보거나 주위 사람들을 떠올리며 글을 쓰게 된다면 이렇게 그리움이 뚝뚝 묻어나게 쓸 수 있을까. 얼마전에 읽은 조창인님의 '아내'라는 글보다 그저 일기같이 이렇게 담담하게 써 내려간 글이 더 가슴에 담기는 것 같다. 실제 내 곁에 있는 사람을 묘사했기에 그러하겠지. 진실만큼 중요한 것이 없을테니 말이다.

 

인생은 꽃밭을 가꾸는 것과 같을지니 과연 내 꽃밭에는 어떤 꽃들이 자라고 있을 것인가. 혹시 잡초만 무성한 것은 아닐까. 남에게 크게 해악을 끼친적은 없으나 주어진 시간을 그저 허송 세월하며 보낸 적이 많기에 가꾸지 않아 내게 주어진 꽃들이 다 말라 버렸을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늘 보살펴주고 물을 부어 시들지 않게 따뜻한 관심을 보여줘야 하거늘 그냥 알아서 자라도록 내버려둔다면 꽃밭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아직은 젊은 나이에 나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타인의 힘을 빌어 잠시 그 자리에 머물러 시간을 되돌려 봤지만 이제는 내 손끝에서 시간이 다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내 풍성한 꽃밭을 자랑하고 그 씨를 나눠 주려면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흘러 "수고했소. 이제 집으로 돌아가도 좋소"라는 말을 들을때까지는 세상에 많은 꽃들이 피어날 수 있게 나도 부단히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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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10-10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진사랑님, 글 잘 읽었습니다. ^^
저는 어떤 꽃들을 가꾸며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린 제각각의 꽃이겠지요. 함부로 꺾여서도 밟혀서도 안 될 가엾은 존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