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닭장처럼 생긴 사각형의 네모난 틀에서 빽빽하게 들어차 살고 있는 우리들에겐 이런 이웃간의 정을 느낄 여유같은 것은 없을 것이다. 여기서 '나'라는 화자는 진희, 어머니가 죽고 할머니와 삼촌 이모와 함께 살고 있다. 열두 살의 어린 나이라고 하지만 삶에 대한 통찰력은 이모보다 그리고 나보다 깊다.

 

이 책의 주인공은 그 시대를 살다간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진희의 이모라고 말하고 싶다.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은 이모의 이야기를 많이 풀어내고 있어 그런 생각이 드는가 보다. 철 없고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툭툭 뱉어내는 그녀를 진희가 보기엔 자신보다 덜 이지적인 이모의 모습이다. 그런 마음이 허석이라는 삼촌의 서울 하숙집 아들을 놓고 삼각관계를 형성하기도 하지만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진희에겐 딸인 이모와 손녀인 '나'를 두고 할머니의 선택을 받는 평생에 한번 있을까말까한 일을 겪고 싶지는 않다. 지금이야 진희가 할머니의 이쁨을 받지만 평소 가벼운 말을 하는 이모 영옥을 '오살년'이라고 욕하는 할머니지만 막내의 귀여움과 자식이라는 혈연으로 인해 철없는 딸의 모습을 가슴아프게 바라보는 할머니에겐 자신은 아무래도 그저 손녀딸이기 때문이다. 이모처럼 할머니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싶지만 그런 모습을 상상도 할 수 없는 진희의 마음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엄마가 목 매어 자살한)으로 인해 겪는 고통을 내 삶을 거리밖에서 바라보며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분리시켜 남이 저를 보고 수근거리며 관찰해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터득할 정도로 이미 마음은 어른이다.

 

마음은 어른이라고 자부하는 진희는 때에 따라 아이의 천진한 모습을 가장하여 어른들의 비밀을 함께 공유한다. 그네들이야 "아이니까..."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진희가 있어도 없는 듯 생각하지만 진희의 눈으로 바라본 사람들의 비밀은 사실 대놓고 말하지 않는다 뿐이지 쉬쉬하면서 다들 알고 있는 일들이다. 순수하지만 잠자리의 날개를 떼어내는 잔인함도 함께 가지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은 진희에게도 있어 장군이를 똥통에 빠뜨리는 계략도 세우기에 어린애라고 만만하게 볼 것은 아니다. "어쩜 저렇게 영악할까. 애가 애 답지가않다"라며 호들갑을 떨수도 있겠지만 더 어렸을적 기둥에 저를 묶어두고 집을 나가는 엄마를 보는 일을 겪으면서 그 나이때의 순수함을 가지기엔 너무 큰 사건을 겪어낸게 아닐지. 이제 세상은 90년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60년대의 열두살 이었을 때와 똑같이 흘러간다. 열두 살 이후 성장할 필요가 없다는 진희의 독백은 몸은 아이였으나 이미 그때 마음이 다 커버렸던 것이다. 

 

마을에 유지공장인 비누를 만드는 공장이 들어서고 농촌도 예전같지 않아 서울로 서울로 사람들이 몰려만 가던 그 시절에 이모 영옥은 군에 있는 이형렬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워가고 오로지 '현모양처'라는 꿈을 들먹이며 부잣집 아들에게 시집갈 생각에 설레어 한다. 난 이미 그녀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고 있지만 그 사랑이 너무 순수해 보여서 그저 많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친구인 경자가 애인을 뺏아가고 유지공장에 불이 나서 자신 대신 그 곳에 취직한 경자의 죽음을 겪으면서 마음의 상처를 딛고 한층 성숙한 모습의 이모는 이형렬이라는 사람은 잊은채 또 다른 사랑에 마음을 맡긴다. 그러나 이 또한 가망없는 사랑인가 보다. 잠깐씩 머무르고 떠나는 이에게 차마 임신했다는 말은 못하고 진희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하는 그녀의 모습은 수동적으로 살아왔던 인생을 이제는 능동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꾸려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인것도 같아 마음이 짠하면서도 대견하게 느껴진다.

 

남편을 하늘같이 떠받들며 모진 구타를 받으면서도 묵묵히 살아가는 광진테라 아줌마, 최선생님, 이선생님, 장군이 가족, 혜자언니, 미스 리 등은 그 시대를 일궈낸 역전의 용사들이며 현재의 안락함을 제공한 주인공들이다. 삶의 고단함을 우물가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풀어낸 그들의 인생은 진희의 회상으로 되살아나는데 한권의 책이 16부작 드라마를 보는 듯 흥미진진하고 그 때 그시절 사람사이의 정을 느낄 수 있어 자꾸 빨려들어가게 된다. 쿡쿡 웃음짓게 하는 부분도 있지만 진희가 바라본 어른들의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사는 것은 다 똑같구나"하고 한숨짓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인생을 잘못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그때는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야 밥을 먹을 수 있었고 지금은 오히려 그때보다 삶은 더 윤택해졌지만 따뜻한 정을 느낄새도 없이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가기에 나는 지금 그녀가 살고 있는 60년, 90년대를 넘어 2000년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 시절을 그리워 하게 된다. 소위 푸세식이라는 화장실을 어린시절 겪어 본 나는 그것만 빼면 그곳에서 진희와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마도 그저 이렇게 추억하며 육체는 편한 이 곳에서 살아가는 것을 더 좋아하기에 그저 말뿐이라 그렇게 말해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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