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박준 글.사진 / 넥서스BOOKS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우선 책 표지의 사진이 눈길을 잡아끈다. 아득한 지평선 너머까지 뻗어있는 곧고 넓은 황토길, 소들이 어슬렁 거리고 다니는 저곳은 어디일까? 어디선가 한줄기 바람 불어오면 흙먼지 뿌옇게 일어날 것만 같은......그 길위에 내가 서있는 상상을 해본다. On the Road.

오래된 유행가의 가사가 아니더라도 인생은 나그네 길이고 모름지기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못하는 법이다. 함성호의 시. 사내의 발바닥에도 몇 천분의 일 지도 같은 미세한 길들이 사방으로 팔방으로 나 있었다. 필시 객사의 운명이려니… 역마살낀 자의 운명은 객사라. 어차피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는 나그네 길위에서 우왕자왕 방황하고 있으니 누구도 객사의 운명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이른바 여행자들의 천국이라는 태국의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내외국인 14인과의 여행을 주제로 한 인터뷰를 모은 것이다. 내용은 소략하고 깊이는 없다. 이제는 배낭여행이라는 것이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듯 이 책에서 특별히 얻을 것은 없다. 14편의 인터뷰가 표지 사진 한 장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헛도는 대화는 한 장의 사진 앞에서 공허하고 무력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에 이끌려

나는 긴 여행을 떠났다.

낡은 외투를 입고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이것이 터기의 옛 노래라는 것은 무라카미씨의 여행에세이 <먼북소리>를 읽고 알았다. 여행이 가지는 매력(혹자는 마력이라고 하고, 마약이라고도 한다)을 설명하기는 실로 난감하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기도 한다. 사실 삶 자체가 긴 여행이라면 우리는 지금 여행중이므로 따로 떠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여행을 원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누구나 여행을 떠나고 또 꿈꾼다. 인류가 한 곳에 정착하여 땅을 파먹고 살기 시작하면서 먹을 것을 찾아 온 천지를 떠돌아 다니던 수렵시대의 생활은 버렸지만 그 습성의 일부는 여전히 우리 유전인자에 남아 아직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어디서 이 비슷한 소리를 읽은 것 같기도 하다.)


여행에는 종류도 많다. 학교에서는 수학여행, 결혼하면 신혼여행, 이별여행, 심지어 자살여행까지, 휴가철에 잠시잠깐 쉬었다 오려고 떠다는 짧은 여행(쉬려고 갔다가 고생만 실컷하고 돌아오기 일쑤)에서부터 배낭하나 달랑 매고 수년동안 온 세상을 떠돌아 댕기는 오랜 세계 여행에 이르기까지, 멋진 유적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여행지에서의 낭만을 즐기려는 관광여행에서부터 인생의 비밀이나 삶의 진리 혹은 신을 찾아(아니면 자기 자신을 찾아) 떠나는 구도여행에 이르기까지 여행이란 실로 다양하고 천차만별인데, 대부분은 세계 이곳저곳을 떠돌아 댕기는 오랜 여행을 더 꿈꾸기 마련이다. 


길고 오랜 여행에의 꿈이 참기 힘든 냄새를 뿡뿡 풍기며 우리를 유혹하지만 현실이라는 것이 가지는 위력 또한 대략 단단한 것으로 본인같은 한심한 인사에게 이르면 대충 꿈만 꾸고 잠만 자다가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어디로도 떠나지 못한 채, 어느듯 마흔살을 넘기고 쉰살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뭐 그리 슬플 것은 없지만 그래도 뭔가 빠진 것 같은 아쉬움은 남는다. 직장문제, 주머니 사정, 자녀에 대한 문제, 양가부모의 반대......갔다 와서는 뭘 먹고 살지.......이런 것이 현실의 힘이고 위력인데, 난관이 첩첩산중인 것 같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한방에 해결할 수도 있다. 그냥 떠나면 되는 것이다. 항상 그렇지만 선택은 나의 몫이고 결정에는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또 다른 무엇인가를 버려야 한다. 공수래 공수거의 인생임에도 무엇이든 버리기는 싫고 또 어렵다.


각설하고, 이 책의 표지 사진을 보고 있자니 무슨 타잔영화를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어디 저 멀리에서, 아니면 가슴속 깊은 곳 어디에선가, 둥둥둥 심장소리인지, 둥둥둥 북소리인지 여하튼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가슴이 벌렁거리고 궁뎅이는 들썩거린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고민 좀 해봐야겠다. 결론은 항상 버킹검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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