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엔 텃밭에 나가

익모초 잎을 딴다.

초막 뒤로 지는 노을

시린 팔목도 굽은 어깨도

진눈깨비에 젖어 흐르다 보면

못다한 이승의 아름다움

쑥대궁 뿌리마다 단단히 박아 두고

어즈버 내 없는 날

봄 푸른 들판 되어

꽃피고 새움이 돋듯 그렇게

다시 살았거라 두고온 것들도 수런대며

돌아와 뒤뜰 동백잎 함께 아물어갈 때

일어나 터지거라 터지고도 모자라면

또다시 누워 채마밭이 되고 새암이 되고

먼 데서 오는 한 벗 구름뿐인 고요가 되고

슬픔이 되어 내 묻힌 노지나 묘등에

땅만 보고 섰을 풀줄기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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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란 성격에 따라 3가지로 구분된다. 환도, 부처, 안치가 그것이다. 환도(還徒)란 죄인을 고향에서 천리이상 떨어진 곳으로 강제이주시키는 형벌이다. 증보문헌비고를 보면 장100에 유 2000리, 장100에 유 3000리 등의 유형으로 세분되는데(물론 장은 곤장을 말한다. 곤장을 백대나 때리고 천리밖으로 쫓아내니 그 형벌이 참으로 가혹하다 할만하다.) 좁은 조선국토에 3천리가 나올수 없으니 유배길을 구불구불 왔다갔다해서 3천리를 채우는 곡행(曲行)이라는 편법이 사용되기도 했다. 부처(付處)는 중도부처의 준말로 주로 관원들에게 내려졌던 형벌로 유배지 관내 수령에게 유배인 관리의 재량권을 일임하였다.


안치(安置)는 유배인의 거주를 제한시키는 것으로 본향안치, 절도안치, 위리안치가 있다. 본향안치(本鄕安置)는 말 그대로 유배인을 고향에 안치시키는 것으로 죄질이 가장 가벼운 사람에게 적용되었다. 유배중에 가장 가혹한 조치인 절도안치(絶島安置)는 중죄인을 원악(遠惡)한 도서에 유폐시키는 방법이다. 윤선도가 보길도에, 김만중이 남해 노도, 추사와 광해군은 제주도에, 송자라 칭송받던 송시열이 83세의 나이로 안치된 곳도 제주도였다. 조선조에 유배된 지식인이 대략 700여명이고 그중 170여명이 전라도 제주도 일대에 유배되었으니, 제주도가 49명, 진도27명, 흑산도가 15명이라 한다. 집주위에 울타리를 치거나 가시 덤불을 쌓고 그 안에 유배인을 유폐시키는 것이 위리안치(圍籬安置)인데, 이는 상징적인 조치로 실제 유배인의 행동범위가 울타리 안으로만 제한된 것은 아니었다.  - 양진건 저  <그섬에 유배된 사람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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