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살 센 노량해협이 발목을 잡는다

宣川서 돌아온지 오늘로 몇 날인가

윤삼월 젖은 흙길을

수레로 천리 뱃길로 시오리

나루는 아직 닿지 않고

석양에 비친 일몰이 눈부신데

망운산 기슭 아래 눈발만 차갑구나

 

내 이제 바다 건너 한 잎

꽃 같은 저 섬으로 가고 나면

따뜻하리라 돌아올 흙이나 뼈

땅에서 나온 모든 숨쉬는 것들 모아

화전을 만들고 밤에는

어머님을 위해 九雲夢을 엮으며

꿈결에 듣던 남해 바다

삿갓처럼 엎드린 앵강에 묻혀

다시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으리


 

------------------------------------


유배문학이라는 것이 있다. 생각해 보면 옛날의 유배라는 것이 멋이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철없는 넘의 천지를 분간하지 못하는 소리일 것이다. 아마도 우리 국문학의 대단히 아름다운 것들 중 많은 것들이 유배지에서 생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서포 김만중이 유배지에서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을 지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유배문학의 대가로는 단연코 윤선도를 들 수 있겠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어쩌구 저쩌구리하던 어부사시사가 아마도 그 유명산 보길도에서 지어졌을 것이다. 다른 문장은 기억에 가물거리는데 ‘지국총’하던 부분은 분명하게 기억난다. (그런데 지국총이 무슨 뜻이었지?) 고등학교 고문시간에 어부사시사를 배우면서, 죄를 지어 귀양간 인사가 배를 저어라, 닻을  올려라 어쩌고 저쩌구리하니 참 팔자도 좋아 늘어졌구나, 그런 귀양이라면 서로 갈려고 줄섰겠다 하는 한심한 생각도 했었다.


정약용 형제를 뺄 수 없겠다. 다산이 남해 일대를 전전하며 18년의 유배생활을 했지만 끝내는 살아 생전에 고향땅을 밟았고, 유배지에서 저술한 대단한 저작들로 그 명성이 후세에까지 자자하게 회자했으니 그 삶이 덧없었다고 할 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형 정약전은 끝내 적소 흑산도에 뼈를 묻었으니, 섬 주위에서 물고기들이나 물풀들과 벗하며 쓸쓸하게 살았을 그 삶을 생각해보면 슬프다. 후세의 한 현직 고등학교 생물교사가 <현산어보를 찾아서>라는 책을 내게 된 것은 진정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