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과 상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199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기행산문집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일반적인 여행기와는 판이하다. 어디서 어느방향으로 바라보고 쳐다보는 풍광이 일품이라느니, 이 사탑은 이런저런 전설과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느니 하는 여행지나 유적에 대한 자상한 안내는 없다. 여행지와 관련된 문학, 역사, 예술 등 인문학적 궤적을 쫓는 산문집되겠다. 김훈의 글이 한글 산문미학의 한 경지에 도달했다는 평은 주지의 사실이겠거니와, 본인은 그 빛나는 수사와 화려한 언사에 눈이 부시고 머리가 어지러워 작가가 이야기하고자하는 의미를 정확하게 찾아내기에 조금 어려움을 느꼇던 것인데, 십분백분 당연하게도 본인의 얕은 공력탓이겠으나 무식한 놈도 나름의 핑계를 항상 준비하고 있는 법이니 하여 황송하옵게도 김훈선생께옵서 일견 수사에 골몰하시는 듯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단어 선택과 문장구성에 현학 취미내지는 낯설게 하기 의도를 다소 품고 계신듯도 하다는 혐의를 가져보았던 것이오다.

정약용의 유배지인 강진편은 정약용에 대하여 영화 <영원한 제국>에도 나오는 위풍당당하고 거칠것이 없는 그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실을 전하고 있었다. 신유사옥때 정약용이 신부 주문모를 밀고하였고 카톨릭 신자 색출방안을 관청에 건의하였으며, 또 세례받은 적이 없다고 하자 이승훈이 자기가 세례를 줬다고 하는 등 형틀에 묶인 정약용, 이승훈, 황사영 등이 살아남기 위해 서로서로를 비방하며 울부짖었다는 대목을 읽고는 조금 놀랐다. 나중에 이승훈은 서대문밖에서 효수되었고 황사영은 능지처참 되었지만 정약용, 정약전 등은 목숨을 부지해 오랜 유배를 떠나게 되었으니 다산은 18년 유배생활동안 이 치욕에 대해서는 한마디 일언반구 없었다고 한다. 무어 할 말이 있었겠는가. 삼대구족이 위태로운 유혈 낭자한 그 형장에서 과연 누가 치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겠는가

후세의 시인 정일근은 그의 시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에서 정다산의 절망과 좌절과 치욕에 대해서 대신 이야기해주고 있는 듯하다 '......우우 소울음으로 몰아치는 하늬바람에 문풍지에 숨겨둔 내 귀하나 부질없이 부질없이 서울의 기별이 그립고, 흑산도로 끌려가신 약전형님의 안부가 그립다. 저희들끼리 풀리며 쓸리어 가는 얼음장 밑 찬물 소리에도 열 손톱들이 젖어 흐느끼고 깊은 어둠의 끝을 헤치다 손톱마저 다 닳아 스러지는 적소의 밤이여, 강진의 밤은 너무 깊고 어둡구나. 목포, 해남, 광주 더 멀리 나간 마음들이 지친 봉두난발을 끌고 와 이 악문 찬 물소리와 함께 흘러가고 아득하여라, 정말 아득하여라. 처음도 끝도 찾을 수 없는 미명의 저편은 나의 눈물인가 무덤인가 등잔불 밝혀도 등뼈 자옥히 깍고 가는 바람 소리 머리 풀어 온 강진 벌판이 우는 것 같구나.....'


댓글(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안 2005-04-13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o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