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기행문선
윤석달, 이남호 엮음 / 작가정신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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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일은 일요일이라 늘어지게 자빠져 주무시다가, 지난 밤 늦게까지 먹은 술로 머리가 또갈라지는 듯이 아프고 속이 또한 몹시도 쓰려 방구석에서 띠굴띠굴 구부르며 용을 쓰다가 간신히 꿈지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었는데, 담배 하나를 꼬나 물고 화장실에 쪼그리고 앉아 간밤의 주연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참 한심한 생각이 들더란 말입니다. 토요일날 어스름이 지는 저넉에 후배 두 넘하고 조촐한 주연을 벌였던 것인디, 후배 한 넘이, 자기는 지난 주에 음주운전으로 적발되었고 거기다가 설상가상밥상으로 회사에서는 무슨 사고를 쳤는지 감사가 뜬다 어쩐다 하며 눈물을 찔찔 째리며 뭐 도대체가 되는 일이 없다고, 죽고 싶다고, 죽고 싶은데 어데 좋은 데 없냐고, 똥 매려운 강아지 마냥 낑낑꿍꿍거리길래...

그래, 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뒈질려면 쥐도 새도 모르게 방구석에서 조용히 죽어자빠지든지, 소리소문도 없이 어데 인적없는 산구석에 구덩이라도 하나 깊숙하니 파서 기어들어가든지 할것이지 좋은 데는 왜 찾냐?고 했더니, 이 후배 왈, 사람이 죽을 때 죽더라도 멋진 곳에서 폼나게 죽어야 할 것 아니냐, 인생의 대미를 우아하게 장식해야 할 것이 아니냐며 가당찮은 소리를 지끼고 있더란 말입니다. 다른 후배 한 넘은 그래도 동기 위로한답시로 태종대를 추천하며 자기가 여비정도는 마련해 줄 수도 있고 잘하면 따라가 줄 수도 있다고 무시기 큰 선심이나 쓰듯이 자비적선 베풀 듯이 혀 꼬부라진 소리로 비맞은 중대가리 마냥 군시렁군시렁 거리더란 말입니다. 에라이 한심한 탱구리야, 차비 줄 돈 있으면 술이나 더 처먹겠다.

뒷간에 앉아 이런 생각을 하느라고 말입니다. 담배를 한 대 다 태울때까지 똥떵거리를 한 덩거리도 뽑아내지를 못했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설날 떡가래 뽑아내듯이 길고 굵은 한 덩어리를 밀어내어 볼려고 얼굴을 벌거니 해가지고 단전에 온 힘을 집중했더랬는데, 이런 니미럴!! 푸웅~ 뿡뿡뿡~~ 뿌웅~ 푸드덕~~ 웬 배달의 기수에 자주 등장하는 피아간의 총격전 소음 비슷한 소리가 터지더란 말입니다. 그 의문의 총성이 끝나고 주위가 돌연 적막해지는 순간. 아!!! 무시기 바보 도 터지듯이 문득, 불현듯, 죽고 산다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 기쁘고 슬픈 모든 일상들이, 내가 이렇게 똥간에 주저앉아 용을 쓰며 쓸데없이 방귀만 뀌고 있는 이런 일들이 다 헛되고 또 허망하고, 쓸쓸하다는 고런 생각이 들더란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딩때 배운 정비석 산정무한 중 거덜난 나라의 가출 태자 관련 구절을 생각해내게 된 소이인데요. '.....유구한 영겁으로 보면 천년도 수유던가....'하는 구절은 생각해 내었는데 그 앞뒤 구절이 도저히 도무지 기억되지 않더란 말입니다. 흐음.....호옹.... 한참을 생각하다가, 머리 나쁜 넘이 너무 과도하게 머리를 쓰다가는 머리털이 빠진다는 그런 경구를 문득 한심하게도 생각해내고는 아쉽지만 머리털을 보존키 위해 결국 포기를 하고, 떡가래 밀어내는 작업도 이제는 기운이 빠지고 다리에 쥐가 날려고 해서 그만 작파를 하고 말았던 것이 어제 정오를 전후하여 진행되었던 일인 것입니다.

'천 년 사직이 남가일몽이었고, 태자 가신 지 또다시 천 년이 지났으니, 유구(悠久)한 영겁(永劫)으로 보면 천년도 수유(須臾)던가! 고작 칠십 생애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角逐)하다가 한움큼 부토(腐土)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 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히 수수(愁愁)롭다'

서가에서 이 책 <금강산기행문선>을 찾아 뒤적여보니, 옳거니!!!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더란 말입니다. 과연 명문이로고!! 어차피 인생이란 것은 나그네 길이고, 나그네는 길에서도쉬지 않는 법이려니, 그 마음이 어찌 암연히 수수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말입니다요. 언제쯤에나 호구에 발목잡히지 않고 출근 걱정에 아침 단잠 깨지않는 그런 태평세월을 구가하게 될 것인가. 생각하니 한심한 한숨이 절로 풍선에서 바람빠지듯 피시시~~ 허파에서 새어나오더만요. 로또만이 희망이자 또 절망인 까닭되겄습니다.금강산에나 한 번 다녀와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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