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을 번개같이 해치우고 영화관에 갔습니다.
시내 나가는 길에 해야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커피메이커 AS(이런 영어는 없지요, 하지만 통용되니까) 맡기고, 삼성 똑딱이 AS 맡긴 것 찾기, 남편의 구두 수선하기, 도서관에 책 반납하기, 주말에 군대간 아들이 온다니 장보기.
무료티켓이 있지만 조조니까 그건 나중에 쓰기로 하고 그래도 거금을 들여 <써니>를 보았습니다.
삼사백 좌석이었지만 관객은 저 혼자였습니다.
학창시절 개교기념일에 학교에 간다고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고 친구들과 부산 태종대에 사진 찍으러 간 일 외에, 아니 또 있구나 개봉관을 빠지지 않고 순례한 것 외에 거의 '범생이'로 살아온 저의 눈에 그녀들의 일탈에 전적인 공감이 가는 건 아니지만, 몇 년 전 친한 친구를 암으로 먼저 보낸 경험을 갖고 있던 저로서는 혼자 울고 웃고 했습니다.
해피엔드도 너무 교과서적이지만, 그래도 저는 해피엔딩이 좋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때로 그런 행운을 만나는 것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초여름의 태양이 바로 머리 위에 떠있었습니다.
그 생소함이라니.
까뮈가 떠올랐지만 여러가지 볼일들을 잘 마치고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무사히 귀가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수십 대의 탱크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저녁시간 뉴스를 보니 옆 바다에서 무슨 훈련인가 했다더군요.
어나운서는 안심하고 살아도 된다는 듯 확신에 찬 목소리였습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칼'로 망하지 않습니다.
심난할 때가 좀 빈번한 아줌마이지만 '이방인'은 아닌 듯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