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을 번개같이 해치우고 영화관에 갔습니다. 

시내 나가는 길에 해야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커피메이커 AS(이런 영어는 없지요, 하지만 통용되니까) 맡기고, 삼성 똑딱이 AS 맡긴 것 찾기, 남편의 구두 수선하기, 도서관에 책 반납하기, 주말에 군대간 아들이 온다니 장보기. 

무료티켓이 있지만 조조니까 그건 나중에 쓰기로 하고 그래도 거금을 들여 <써니>를 보았습니다. 

삼사백 좌석이었지만 관객은 저 혼자였습니다. 

학창시절 개교기념일에 학교에 간다고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고 친구들과 부산 태종대에 사진 찍으러 간 일 외에, 아니 또 있구나 개봉관을 빠지지 않고 순례한 것 외에 거의 '범생이'로 살아온 저의 눈에 그녀들의 일탈에 전적인 공감이 가는 건 아니지만, 몇 년 전 친한 친구를 암으로 먼저 보낸 경험을 갖고 있던 저로서는 혼자 울고 웃고 했습니다. 

해피엔드도 너무 교과서적이지만, 그래도 저는 해피엔딩이 좋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때로 그런 행운을 만나는 것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초여름의 태양이 바로 머리 위에 떠있었습니다. 

그 생소함이라니. 

까뮈가 떠올랐지만 여러가지 볼일들을 잘 마치고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무사히 귀가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수십 대의 탱크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저녁시간 뉴스를 보니 옆 바다에서 무슨 훈련인가 했다더군요. 

어나운서는 안심하고 살아도 된다는 듯 확신에 찬 목소리였습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칼'로 망하지 않습니다.  

심난할 때가  좀 빈번한 아줌마이지만 '이방인'은 아닌 듯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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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5-20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직장에서 나오는 데, 햇살이 따갑게 느껴지더라구요~

님의 사진엔, 프레임 안에 프레임을 두는 시선이 많으시더라구요.
아니, 프레임 밖에 프레임을 내어놓는 시선인가요?

암튼, 7층 짜리 건물의 7층에 가셨군요~^^

gimssim 2011-05-20 21:41   좋아요 0 | URL
프레임 안에 프레임을 두는 사진이 아직은 좋아요.
그게 싫어질 때까지 찍어볼 참입니다.
위의 사진들은 타인이 보면 별 의미없는 사진일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어느 한 날의 기록이지요.
제게 사진입문에 대해 물으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그에 대한 대답이 되겠군요.
일상의 기록이 사진의 시작이라구요.

프레이야 2011-05-20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설이 너무 많이 나와 나중엔 듣기가 참 별로였어요.
그것만 빼면 나쁘지 않았구요.
딱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더군요.
물론 전 칠공주는 아니었고 집과 학교밖에 몰랐던 쑥맥이었지만요.ㅋ
전 유호정의 재발견으로 좋았어요.
비현실적인 해피엔딩이었지만 정말 그런 떡이 떨어진다면 좋겠지요.ㅎㅎ

gimssim 2011-05-22 23:15   좋아요 0 | URL
나이가 드는 좋은 점도 있어요.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다는 것이요.
심한 욕설은 그저 하나의 장치라고 생각하고 그냥 통과했습니다.
그전에 <주유소 습격사건> 영화를 보고 그런 영화는 왜 만드느냐고 흥분을 했었어요.
어떤 분들은 <킹스 스피치>에 대해 말하기를 왕이 말더덤을 고쳐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전쟁에 참가하겠다'는 연설이었나구요.
물론 맞는 말이지만 저는 말더덤을 고치기까지의 과정만 감명깊게 봤더랬지요.

순오기 2011-05-25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써니를 볼까 말까 망설였는데...중전마마 페이퍼 때문에 봐야겠습니다.
저도 이런 사진 찍고 싶어서요~~~~~~^^

gimssim 2011-05-30 11:41   좋아요 0 | URL
써니도 보시고 사진도 찍으시기 바래요.
사진은...즐길수만 있다면 삶의 이면을 좀더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글을 많이 쓰시는 순오기님 같은 분께는 많이 도움이 되리라 사료됩니다만.

닷새 동안의 가출에서 돌아왔어요^*^

페크pek0501 2011-07-12 17:55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중전님, 저도 써니를 봤답니다. 재밌었어요. 웃음과 눈물이 나오게 하는 영화였어요.

제 여고시절 그때의 활력과 에너지가 그리웠어요. 물에서 갓 건져 올린 물고기 같이 팔딱거리던 그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