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으로 거느린 행복 ... 헝겊인형 ‘소닉’
지난 봄, 이사를 앞두고 살림살이들을 좀 찬찬히 정리를 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이렇게 많은 물건들이 필요한가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이들은 오래 전에 학업 때문에 집을 떠나고 우리 부부만 있는데도 집안 구석구석 살림살이들이 넘쳐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무게가 느는 것만큼이나 살림살이가 느는 것도 부담스럽다.
오래 입지 않은 옷은 잘 매만져서 꼭 필요한 곳에 보내고,
쓰지 않는 살림살이도 이웃에 나눠주려고 따로 챙겨두었다.
책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의 서재는 삼면에 꽉 들어차 있는 책장으로도 수납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책들이 있다.
그것들도 이제 좀 정리를 해서 꼭 갖고 있어야 하지 않는 책이면 좀 간추려서
근처 도서관에라도 기증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이렇게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다가 이 녀석을 발견했다.
기숙고등학교에 진학하느라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떠난 아들의 것이다.
아들은 어느 듯 자라서 이 녀석을 가지고 놀 나이가 지났지만
아들의 책장 한쪽에서 우리 부부와 지내오고 있었다.
다섯 살 때 집안이 전소되는 화재를 만났는데 자칫하면 가슴에 묻을 뻔 한 아들이다.
큰 화상은 입지는 않았지만 많이 놀란 터라 병원에 입원을 시켜놓고
무엇으로 이 아들을 기쁘게 해 줄 수 있을까
우리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생각을 해서 사준 인형이다.
‘소닉’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 녀석은
당시에 텔레비전에서 상영하던 만화영화의 캐릭터였다.
불길에 그을린 귀 땜에 쓰라렸을 텐데
인형을 보고 환하게 웃던 아들의 모습이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남편이 하던 일을 그만두고 자리를 바꿔 앉는 바람에 우리 가족은 숱하게 이사를 다녔다.
우리 아들은 초등학교를 네 곳, 중학교를 세 곳을 거쳐서 졸업을 했다.
어느 날, 축구 이야기를 하는 중에 아들은 학교 축구팀 부주장이라고 했다.
내가 “축구는 네가 제일 잘한다며?” 물었다.
그랬더니 아들의 대답이 전학을 온 얘는 아무리 축구를 잘해도 주장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아이들 세계에도 텃세가 있나보다 치부해 버리기에는 너무 가슴이 아팠다.
그날 밤 베갯머리를 적시며 혼자 소리 죽여 울었다.
그래서 고등학교는 아예 기숙사가 있는 곳으로 보냈다.
집에 오려면 차를 다섯 번이나 갈아타야 하고 공부하기도 벅찬 학교였다.
그런 결정을 내리면서 어미인 나는 참 많은 고민을 했다.
이제 집을 떠나면 언제 다시 아들을 품에 둘 수 있을까 싶었다.
대학을 가고, 군대에 가고 직장에 다니고 결혼을 하면
집에서 지낼 시간은 별로 없을 것 같았다.
봄날의 어느 한 나절, 손때 묻은 작은 인형 하나로
사랑하는 내 아들과의 추억에 오래도록 젖을 수가 있었다.
아들은 어미의 바람대로 아름다운 청년으로 성장을 했다.
이 년 동안 호주 워킹을 갔다가 복학하여 이제 사학년이다.
내년이면 졸업을 하고 ROTC 장교로 임관을 할 터이다.
식물도 자주 옮겨 다니면 몸살을 하고 뿌리내리기가 어려운데
그렇게 숱하게 옮겨 다니고도 제대로 자기의 몫을 잘 감당해준 아들이 고맙고 대견스럽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안으로 거느린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