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의 집
다시 타임머신을 타고 갑니다.
자주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아마 얼마 전, 오정희의 소설 <파로호>를 너무 꼼꼼하게 읽은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별로 바람직하지는 않아 보이지만 나름 지금까지 너무 바람직하게만 살려고 애써온 저 자신에 대한 ‘자기 반항’ 정도가 아닐런지요?
며칠 전에 대구에 가는 길에 초등학교 시절에 살았던 집 근처에 갔습니다.
우리 집은 대로변에 있어서 찾기가 쉬운데 큰 이모, 작은 이모 댁은 쉽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집이었던 자리엔 오륙 년 전에 기와집을 헐고 5층 건물을 지었습니다.
우리 이웃 동네의 이모 댁은 당시에도 꼬불꼬불 미로였습니다.
어른들은 농담 삼아 “이 동네는 비오는 날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산다.” 고 말씀하시곤 했지요.
지금은 온통 아파트 천지였습니다.
기억 속에 남아있던 중학교를 기점으로 더듬더듬 길 찾기에 나섰습니다.
저녁밥을 먹고 나면 으레 우리는 이모 댁에 갔습니다.
우리만 떨어져 살고 둘째 이모와 막내 이모는 바로 두어 집 건너에 살았어요.
그래서 우리가 움직이면 세 자매가 함께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지요.
엄마를 따라 이모 댁에 가는 이유가 있었어요.
늦게까지 놀다보면 으레 밤참을 먹게 되지요.
오빠나 저의 목적은 그거였어요.
사촌들과 어울려 놀다가 밤이 깊어지면 만두나, 찐빵, 호떡을 사러 갑니다.
서로 가기 싫어서 술래를 뽑는데도 오래 걸렸어요.
그 시간 쯤 되면 무대에 등장하는 것이 또 있어요.
“메밀묵 사려~~”
“찹살 떠어억~~”
그리고 언니들 틈에 끼여 연속극을 듣곤 했어요.
아, 어른들의 사랑이라니.
라디오를 통해서 들려오는 사랑과 애증과 갈등과 비극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어요.
어른이 되면 저렇게 살아야 하나. 막연한 두려움이 일기도 했지요.
아파트 숲을 헤치고 들어서니 그 세월을 훌쩍 건너서 아직도 그 모습인 꼬불고불한 미로가 있는 동네가 나타났어요.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은 두 시간 남짓이고 더 이상 들어가다가는 미로에 갇힐 것 같았어요.
자동차를 세워둔 곳과 멀어지는 것도 두려웠어요.
내가 왜 여기 있나?
왜 이곳에 오고 싶어했을까?
내가 찾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의문이 들기 시작했어요.
이모 댁은 어디인지 가늠조차 하기 어려웠고, 그 시절의 모습을 간직한 동네에서는 사람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어요.
오래되고, 가난하고, 남루한 동네이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흔적을 발견했어요.
이 두 장의 사진입니다.
초여름 어느 한 낮, 단발머리 어린 계집아이가 팔랑팔랑 걸어다녔을 그 길을 되돌아 나오며 민감이 교차하는 가슴이 되었드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