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적립금...티끌모아 태산(?)
사건의 발단이 된 나의 알라딘 적립금
예수쟁이인 저는 교회에서 하는 일이 있습니다.
교회에 새가족이 들어오면 그들을 ‘교육’ 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목사님께 가기 전에 조금 매만지는 그런 수준입니다.
여느 교회랑 좀 다른 부분은 제일 먼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영혼’에 대해서 이아기 합니다.
내 속에 영혼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예수를 믿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좀 거부감이 많은 부분인 ‘죄인’에 대해서 말합니다.
신앙의 첫걸음은 내가 예수님 앞에서 죄인인 것을 고백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 성령 하나님, 성령님이 이끄시는 삶, 교회란 무엇인가, 예수 믿으세요. 이런 순서로 교육을 합니다.
새가족에게 교육을 할 때 ‘영혼’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저는 집의 비유를 씁니다.
우리는 다 집에서 살고 집이 쾌적하고 좋아야 한다.
그러나 집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사는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는 육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이 있다.
말하자면 집은 우리 몸이고 영혼은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공기는 엄연히 존재하고 그것이 없으면 우리는 잠시도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영혼을 잊어버리고 살아서는 안된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지요.
오늘의 이야기의 주제는 ‘예수님’이 아닙니다.
글을 올리다가 얼핏 보니 알라딘 적립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얼마 전에 만구천 원인가를 찾아 썼는데 다시 거금 만사천 원이 쌓였군요.
그동안 제가 책을 사 모은 건 생각지도 않고 그저 생긴 돈처럼 즐거웠어요.
기쁜 마음에 남편에게 소리를 쳤지요.
“여보, 알라딘에 적립금이 쌓였네. 티끌모아 태산이야.”
그랬더니 간 큰 남자가 이렇게 대꾸를 해 옵니다.
“티끌을 모으면 먼지가 된다네. 이 사람아!”
좀 더 넓고 볕이 잘 드는 새집으로 이사를 와도 그 안에서 사는 사람은 여전히 헌 사람들입니다.
그래요. 사람은 잘 변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쟁이들은 예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자녀는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한 예수쟁이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별로 상관없이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편이나 저도 좀 골수 예수쟁이인데도 살아가는 모습이 이렇습니다.
좀 긍정적으로 맞장구를 쳐주면 좀 좋아요?
이삿짐 정리하고, 내일 한 오십 명분 밥 하려고 갈비 어마어마하게 사왔어요.
다 손질해서 양념에 재워야 하는데 머릿속은 어떻게 복수를 하나 싶어서 쥐가 날 지경입니다.
정말 예수쟁이면 너그럽게 용서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복수의 칼을 갈고 있는 저는...내일 교회에 가서 예수님께 잘못했다고 빌어야겠어요.
그래도 복수는 해야겠지요.
오늘 밤 안으로 손질해서 양념해야 하는 갈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