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배

제가 사는 동해안은 계속해서 날씨가 좋지 못하여
보름도 넘게 배가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포구에 묶여있는 한 척의 배를 보았습니다.
뱃 머리는 바다로 향하고 있습니다.
구름 낀 하늘에서 잠시 태양이 얼굴을 내밀려고 합니다.
배는 바다로 나가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겠지요.
거친 바다와 싸우며 많은 물고기들을 잡는 것...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입니다.

그러나  바다에 나가기를 기다리며 잠시 포구에 몸을 내려놓고 있는 것도 괜찮아 보입니다.
배는 포구에 있을 때만 만선의 꿈을 꿀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일단 바다에 몸을 띄우고 나면 생각도 접고, 꿈도 접고 오로지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삶도, 가끔은 이 배처럼 포구에 몸을 누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무한경쟁의 속도에서 내려와, 황금만능의 가치관에서 벗어나,  
마음을 내려놓고 오래도록 깊은 꿈을 꿀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그 노인처럼 포구에 돌아와 긴 잠에 빠질 수 있는 그런 날들이 가끔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너무 빨리 돌아가느라 몸도, 마음도 어지럽습니다. 현기증에 시달립니다.
내 꿈이 무엇이었나, 무엇을 하며 살고 싶었나,
내가 이 사회에서 어떤 존재인가, 더불어 사는 사회의 유익한 일원이기는 한가.
이런 자기반성과 겸허가 없이 그냥 살아갑니다.

나는 가끔은 포구에서 쉬고 있는 한 척의 배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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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0-03-10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을 꾸고 있는 듯 보이는 배에 중전님의 생각이 덧붙이니 정말 멋진 시군요.^^

gimssim 2010-03-11 21:40   좋아요 0 | URL
한 장의 사진은 많은 말들을 합니다.
오늘 도서관에서 책 세 권을 대출했는데 모두 사진에 관한 책이었어요.
저으기 걱정되긴 하지만...

다락방 2010-03-12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구에서 (영국민요 The last rose of summer)
- 크로스오버 테너 / 임태경




가지마다 걸려 있는 은빛 달을 보았네
억새만 소슬한 밤길에 유령처럼 섰던 외로움
이어락 끊이락 다달은 추억 물진 포구 찾았네

귀에 삼삼 잠겨 드는 웃음소리 그리워
그대의 안부도 모른 채 즈믄 그날 다히 지누라

시절은 화살과 같아도 움직일 줄 모른 그리움
우리 언제 사랑했나 산협 아래 잠겼네
두고 간 눈물만 별처럼 오늘 밤도 반짝이누나
한 가닥 빛 없는 바람에 돌아 서던 발길 묶였네

가지마다 걸려 있던 은빛 달을 보았네
귀에 삼삼 잠겨 드는 웃음 소리 그리워
억새만 소슬한 밤길에 유령처럼 섰던 외로움
그대의 안부도 모른 채
즈믄 그날 다히 지누나
즈믄 그날 다히 지누나

다락방 2010-03-12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전님의 이 페이퍼를 읽으니 임태경의 이 노래가 생각났어요. 음악도 올리고 싶은데 유튜브에서도 찾을수가 없네요. 가사만이라도 감상하세요.

gimssim 2010-03-12 21:28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사진에 꼭 맞는 노래를 찾으셨네요.
'그대의 안부도 모른 채 즈믄 그날 다히 지누나'
눈물납니다.
사실 현실에서 좀 고전하고 있는데, 영혼의 군더더기를 떼어내는 듯한
책, 음악, 영화...
주문한 이어령님의 <지성에서 영성으로> 책이 왔어요.
많이 기다려왔던 책이기도 해요.
그래서 행복합니다.

비로그인 2010-03-13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시 쉬면서 들렸다가 갑니다. ^^.. 오늘 제가 잠시 읽으려는 책과도 뭔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네요. 제 생각뿐일지도 모르겠지만요 ~
날이 좀 풀렸죠? 편안한 토요일 되시길 빕니다.

gimssim 2010-03-13 21:32   좋아요 0 | URL
저는 예수쟁이라 이어령님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요.
언젠가 TV에서 잠시 봤는데 이분이 우리 시대에 사도 바울과 같이 쓰이실 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거든요.
오늘 하루종일 외출한 터라 아직 책은 서문만 잠시 봤어요.
다 읽고 리뷰를 올려볼까 합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