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1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에우리피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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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아드메토스
행위 : 자신의 죽음을 아내 알케스티스에게 떠넘김
운명 : 선량한 그를 위해 헤라클레스가 저승에서 아내를 구출해 옴


(아내가 죽었다 하여)
손님이 찾아왔을 때 그를 집과 도시에서
내쫓았으면 그대는 나를 오히려 칭찬했을까요?
천만에. 내 불행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나만 손님에게 불친절한 사람이 될 뿐이오.
그러면 불행에 불행이 겹치는 꼴이 될 것이오.
내 집은 손님들에게 적대적이라는 소문이 날 테니까요.
(알케스티스 553행)

(코러스)
아드메토스, 그대는 왜 죽음을 두려워하시나요.
당신이 한번 연기한 그 자리는 수레바퀴처럼 굴러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 분명한데,
그대는 왜 부질없이 죽음을 미루셨나요.

아내의 죽음 앞에서 무수히 눈물 흘리는 그대여.
상중(喪中)에 찾아온 손님을 외면하지 못하는 그대여.
이웃과 벗들에게 언제나 다정다감한 그대여.
그러나 그대는 자신에게 가장 다정하군요.

그대의 사랑은 씨 없는 과일처럼 물렁해요.
비록 혀를 기쁘게 하고 허기를 달래주지만,
아무리 먹어도 갈증은 채워지지 않아요.
당신이 건네주는 과일은 물기가 없답니다.

알케스티스가 보여준 고귀한 헌신을
생(生)에 대한 집착으로 되갚은 그대여.
당신의 한숨, 당신의 눈물, 당신의 선함은
텅 빈 눈동자에서 비롯하기에 공감이 없답니다.

늘 선하다고 일컬어지는 당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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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소포클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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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크레온
지위 : 오이디푸스의 뒤를 이은 테바이의 지도자
운명 : 국법을 어기고 신법(神法)을 내세운 안티고네를 징죄(그러나 자신 또한 넘어짐)


하오니 앞으로는 아버지 말씀만 옳고 다른 것은 다
틀렸다는 한 가지 생각만 마음속에 품지 마세요.
……
한 사람만의 국가는 국가가 아니지요.
(안티고네 705행)


그렇소이다. 나는 인간이 신의 품에 안기면
예측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사실을 외면했소.
예외 없는 원칙으로 모두를 구속하려 했소.
그렇소이다. 나의 파멸은 나의 오만 탓이오.

그러나, 나는 법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내 오만의 장대한 날갯깃을 꺾었으며
내 고집의 강성함을 회의(懷疑) 아래 묻었소이다.
나는 부득이하게 양보했고, 물러났소이다.

그 결심이 너무 늦었다면, 그것은
나의 판단이 너무 느린 탓이 아니라
신의 판결이 너무 빠른 탓일 것이오.
나의 눈꺼풀은 합리성에 짓눌려 있었소.

그러하니, 후세 사람들이여!
검은 백조를 못 미더워한 나를 비웃지 마시오.
절벽에서 심연으로 떨어진 자는, 최소한
자신의 두 팔로 그 절벽을 오른 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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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아이스퀼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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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클뤼타이메스트라
가족 : 아가멤논(남편) / 이피게네이아(딸), 엘렉트라(딸), 크뤼소테미스(딸), 오레스테스(아들)
운명 : 남편 살해(이후 오레스테스에게 죽임을 당함)


그가 자신의 운명을 피하거나 막지 못하도록
나는 이렇게 해치웠고 부인하고 싶지 않소.
(아가멤논 1380행)


(사후 변론)
내 남편의 심장을 가른 비수의 무정함을 탓하려면
아비에 대한 사랑만을 내세우며 나의 명줄을 끊은
오레스테스의 편협함은 어느 신에게 물어야 하는가.

그는 아폴론의 은총으로 피 묻은 손을 씻어 냈고,
아테네의 판결로 친족살해의 멍에를 벗었으며,
저주의 여신들을 자비의 여신으로 정화했다네.

그가 신의 명령을 아무 고민 없이 받든 것과 달리
한낱 여인네에 불과한 나의 의지와 내 손의 민활함이
내 무덤을 달구는 폄훼의 불쏘시개로 쓰인다면

나는, 기꺼이 그 짐을 짊어질 것이며,
그때가 다시 오더라도 망설임 없이
나를 둘러싼 운명의 사슬을 끊어버릴 것이오.

이피게네이아가 제 아비의 속임수의 덫에 걸려
제단에 올라 가련한 희생양으로 산화하는 순간
나는 이미 복수의 화신으로 거듭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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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 -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영화의 시대, 개정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백낙청 외 옮김 / 창비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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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특히 1830년 이후)가 되면 가장 혁명적인 분출로 근대를 마련한 자본주의가 자연과학과 함께 사회의 토대에 단단히 자리를 잡게 된다. 이때부터 사람이 사람을 위해서 만든 체제가 자아를 의식하게 된 안드로이드처럼 스스로 성장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비타협성과 비인격화의 반주를 곁들인 풍요와 빈곤의 합창을 듣고서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사회는 정밀하게 계산된 질서에 따라 재구성되어 갔지만 인간의 의식은 그 속도에 보조를 맞추지 못한 채 지체양상을 보였다. 이 뒤떨어짐은 근대의 또 다른 산물인 개인주의와 더불어 각자가 자신만이 거대한 시대의 흐름에서 소외되었다는 불안을 낳기에 충분하였다. 차분하게 흐르는 시간에 몸을 내맡기던 사람들이 이제는 사방으로 달려나가는 시간의 옷자락을 붙잡아 한올 한올의 최소단위로 분해하는 반복작업에 시달렸다.

시간은 삶의 동반자에서 부속품으로 위상이 바뀌었다. 예술가들이 도시적 감성으로 외부 세계를 바라보았을 때 이상은 고요한 전원에서 쫓겨났다. 미분된 시간은 정복의 대상으로 전락한 듯 보였지만 자본주의가 그러하듯이 시간도 기계적 신체를 만든 후로는 유기체의 융합성을 해체할 때까지 계속해서 자가 분열한다. 우리는 더 이상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거쳐야만 자신의 삶을 총체적으로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목적지 없이 유랑하는 지난 세기의 낭만주의는 폐기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굳건해지는 외부세계에 비례하여 미약해지는 개인의 심상이라는 모순 현상은 변함이 없었다. 과학적 실험과 관찰 방식을 도입한 자연주의나 순간의 감각에 집중한 인상주의 모두가 일회성에 대한 강박을 떨쳐 버리지 못하였다. 고정된 진리는 없으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의 약동’만이 있다는 관념은 여전히 낭만주의의 그림자 아래서 번식하였다.

부르주아의 세계의 전위에서 탈락한 지식인들이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프롤레타리아의 영웅으로 등극하는 시대 상황도 이러한 경향을 부추겼다. 지식인들은 예술을 동원하여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치고 기득권에 맞서곤 했지만 그들의 예술적 관점과 정치적 관점은 변혁의 문 앞에서 매번 순순히 맞잡은 손을 놓았다. 그것은 편견에 맞서 자유를 옹호한 자신들의 싸움을 자신마저도 믿지 않았던 숙명론자의 당연한 귀결이었다.

낙원을 향한 꿈이 짓밟힌 자리에서 피어난 현대 예술은 모든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한사코 거부한 채 눈을 가리고 달아남으로써 자신을 입증한다. 대중은 예술을 통해 현실에 대해 안도하거나 분노하지만 이 이중관념은 일시적인 대리만족에 그친다. 위선도 박애도 둘 다 대중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강제된 도주를 멈출 방법은 경제적이고 사회적으로 높이 쌓아 올려진 문화적 독점의 성채를 향해 돈키호테처럼 돌진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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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3 - 로꼬꼬, 고전주의, 낭만주의, 개정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3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백낙청 외 옮김 / 창비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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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이성에 대한 확신과 계몽에 대한 열망은 마침내 혁명을 불러왔다. 하지만 혁명은 새로운 사회와 제도 그리고 인간상에 대한 목적의식과 동경은 있을지언정, 그것들을 구현하기 위한 물질적 토대와 구체적인 전범을 갖고 있지 못하였고, 이 이상과 현실 사이의 깊은 간극에서 초래된 혼란은 사람들을 무차별적인 살육과 환멸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낭만주의는 이처럼 더 이상 균질하지도 않고 안정적이지도 않은 ‘집단의 해체’라는 사회상 속에서 과거에 의존할 수도 없고 미래에 안심할 수도 없는 한 개인이, 현재의 불투명성에 손을 대면 댈수록 커지는 불안과 두려움을 표현한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확신에 가득 차 달려가던 계몽주의의 마차는 거대한 바위에 부딪쳐 이미 산산조각 나버렸다.

따라서 낭만주의의 정신은 외부에 대한 폐쇄성을 특징으로 하며, 외적 실천이나 교육을 통해서 도달할 수 없는 오로지 천재적인 직관과 도약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근접 가능한 이상에 대한 동경을 바탕으로 한다. 그것은 현실에서 실현될 수 없는 이상이기에 낭만주의자는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국외추방자”처럼 영원히 떠도는 신세이다.

낭만주의는 목적지가 없는 방랑이면서 동시에 고향을 향한 여정이며, 찾을 수 없지만 찾아야만 하는 보물섬이다. 설사 그곳에 도달하더라도 평온이 아니라 거기로부터 벗어나야만 한다는 고독과 불안의 근원이며, 아무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것인 무한성이다. 신앙을 깨뜨리고 나온 이성이 혼란에 빠졌을 때 돌아갈 곳은 다시 믿음이었다.

물론 이때의 믿음은 더 이상 인격화 된 유일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다. 천국은 신앙의 견고함과는 상관없이 갈 수 없는 장소이다. 이 믿음은 숙명적으로 파멸을 향한 믿음이며 자기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믿음이다. 낭만주의는 철저하게 비극적이며 퇴폐적이다. 낭만주의는 자신과 타인 간의 이질감을 먹고 자라나는 나무이며 해체의 몸부림이다.

외부 세계와 내면 세계의 불합치와 이성과 비합리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는 딜레마에서 오는 갈등은 현대인의 삶의 전제조건이다. 오로지 신앙만으로 지탱하거나 물질만으로 삶을 추동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현대인일 뿐이다. 이 분열된 심연의 한가운데에서 걸어나오는 이가 바로 프로이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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