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 - 냉전시대 경제학 교류의 숨겨진 역사
조하나 보크만 지음, 홍기빈 옮김 / 글항아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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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가 사회주의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신고전파 경제학의 창시자들은 전체 경제를 다룬 수리 모델들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서 자유로운 경쟁적 시장은 생산, 분배, 소비에 있어 최적의 결과들을 낳게 되어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 그런데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지만, 1890년대가 되면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또한 경쟁적 시장경제가 중앙계획경제와 수학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경제학자들은 새로운 신고전파 이론과 분석 도구를 개발하기 위해 "중앙계획당국과 생산수단의 국가 소유가 실현되는 모종의 '사회주의국가' 모델들을 발전시켰다. 그 결과 순수한 시장경제와 중앙계획 사회주의가 신고전파 경제학의 중심에 나란히 존재하게 된다. 물론 이는 경제학자 개인의 정치적 입장과는 무관한 일이다."(29-30)


"둘째, 신고전파 경제학의 방법론에서 사회주의가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주의 동구권과 자본주의 서방의 경제학자들은 몇십 년에 걸쳐 사회주의와 시장에 대한 대화를 진행할 수가 있었다." 경제학계의 여러 지도적 인사들이 참여한 이러한 "초국가적 대화는 신고전파 경제학에 근본적 중요성을 갖는 여러 기여를 가져왔고, 이렇게 해서 발전하게 된 신고전파 경제학은 신자유주의의 모습을 만들어나가게 된다. 셋째, 신자유주의는 이렇게 초국가적으로 벌어졌던, 경쟁적 시장을 지지하는 사회주의 논의를 자신의 일부로 통합했으나, 정치적·경제적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사회주의자들의 외침은 들어내버리고 그 자리에 위계적 제도들을 요구하는 자본주의적 주장을 가져다 놓았다."(33-5) 한마디로 "신자유주의의 가장 분명한 특징은 자유롭고 아무 구속이 없는 경쟁적 시장을 옹호한다는 점, 즉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말을 빌자면 그 '시장 근본주의'에 있다."(24)


영국의 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부와 소득의 분배에 대한 연구를 포괄하는 정치경제학으로의 전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부가 생산되는 조건과 법칙들은 물리학적 진리의 성격을 함유하고 있다. (그러나) 부의 분배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이는 오로지 인간 세상의 제도가 어떻게 짜여 있느냐의 문제다." 무수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사회주의자들이 퍼붓는 비난에 대응하여 여러 경제학자 또한 그들 직종이 전통적으로 보여왔던 자유방임에 대한 지지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신고전파 경제학자들 중에 이렇게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에 동조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들도 지적인 차원에서 마르크스주의에 동조할 수는 없었다. 그 으뜸가는 이유는 마르크스가 노동가치론을 신봉했기 때문이다.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고전파 경제학과 노동가치론에 대한 비판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이론은 물론 정체성까지도 구축했다."(53) 신고전파 이론의 핵심은 경제적 법칙의 '물리학적 진리의 성격'이었다.


발라가 개발한 "일반 균형 모델은 전체 경제를 일련의 방정식들로 묘사하며, 이를 통해 이 경제가 어떻게 수요와 공급의 최적의 균형 지점인 균형 상태에 도달하며 또 거기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자유로운 경쟁이 이루어지는 경제에서는 기업들이나 개인들이나 모두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취하는 균형가격을 향해 움직이게 되어 있다는 것으로, 이 과정을 발라는 '탐색tatonnement'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분석에서 참으로 흥미롭고도 중요한 부분은, 발라가 이 과정을 매개하는 존재로서 모종의 경매자를 상상했다는 점이다. 이 경매자가 여러 상품의 가격을 공표하고 또 그 가격을 변화시켜서 수요와 공급이 균형에 달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발라의 일반 균형 모델에서 기업들은 한계비용에 근거하여 시장에서 경쟁하고 균형가격을 받아들임으로써, "사회의 만족을 극대화시키면서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최소화한다."(55)


발라가 보기에 "사회주의란 자유경쟁과 사회 정의가 실현되는 데 필요한 여러 제도를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사회주의가 성립하면 토지와 천연자원에 대한 국가 소유가 나타날 것이며 소득세는 폐지될 것이다. 그 다음엔 국가가 토지와 천연자원의 소유자로서 이를 무수한 개인 및 집단들에 임대해줄 것이며, 이로써 여러 독점체가 제거되고 자유경쟁이 가능해진다. 토지와 천연자원의 임대를 통해 국가는 충분한 수입을 얻게 되므로 소득세는 불필요하며, 노동자들은 자신의 저축을 투자로 돌리는 것이 가능해지고 이로써 '계속해서 노동자이기는 하겠으나 그와 동시에 소유자 혹은 자본가'가 될 수 있다. 발라에게 "완전경쟁, 사회주의, 신고전파 경제학, 수학 등은 단순히 서로를 보완하는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하나가 없다면 다른 것도 있을 수 없는 필수불가결의 관계에 있었다."(56) 신고전파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사회주의는 자유경쟁 경제를 창출하는 도구적 개념인 셈이다.


파레토는 모종의 '사회주의 국가'를 사용하여 "신고전파 경제학을 좀더 일반적으로 이론화하고 있다. 파레토에 따르면, 사회주의 국가는 모든 생산을 안배하며, 생산수단의 집단적 소유권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 안의 모든 개개인에게 안녕─혹은 효용─을 극대화할 것을 추구한다다. 이렇게 사회적 효용을 극대화해주는, 따라서 파레토 최적이라 할 수 있는 안배 상태로부터 무슨 변동이라도 있을 경우, 그 덕분에 누군가는 더 잘 살게 될지 모르지만 또 동시에 다른 누군가는 더 못살게 될 것이다. 파레토는 '생산 전담부Ministry of Production'라는 것을 상상해내어 이것으로 발라의 경매자 개념을 대체한다. 이 '생산 전담부'란 곧 발라가 완전경쟁 경제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했던 여러 방정식을 풀어주어 균형가격을 계산해내며, 그 다음에는 이 가격을 사용하여 사회적 후생을 극대화하게 된다."(59-60)


"폴라니는 국가가 아니라 생산자 결사체들과 소비자 결사체들이 생산과 가격에 관련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폴라니는 마르크스주의와는 대조적으로, "모종의 '시장'을 갖추고 있는 사회주의의 '현실적인 경제 학설positive economic doctrine'을 추구했고, '사회주의 이행 경제의 한 유형'을 발전시켰다. 폴라니가 지지했던 것은 케인스주의의 정신에 입각한 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이나 혼합경제가 아니었다. 그가 옹호했던 것은 경쟁적인 시장과 여기에 탈중앙화된 민주적인 여러 노동자들의 제도가 곁들여져 있는 것으로서, 이는 널리 퍼져 있었던 신고전파의 관점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시장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에 대한 모종의 새로운 신고전파 모델을 창조한 셈이다. 이 시장사회주의는 권위주의적인 중앙 국가를 넘어서서 급진적인 경제 및 정치 제도들을 갖춘 사회민주주의에 더욱 적합한 모델로 개발된 것이었다."(64-5)


반면, 미제스는 사회주의 경제란 "사적 소유와 시장가격을 뿌리 뽑고서 그 자리에 중앙계획의 현물교환을 가져다 놓는 것이라고 이해했으며, 그 점에서 노이라트와 같은 견해였다. 미제스가 보기에 노이라트의 문제는 그러한 과정에 어떤 난점들이 숨어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었다. 시장, 사적 소유, 시장가격 등이 없다면 경제에서 합리적인 행동의 결정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주의와 시장이란 서로를 배제하는 범주들이라고 여겼다. 따라서 미제스에 따르자면 사회주의─중앙계획경제로 이해된다면─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미제스와 시장사회주의자들은 모두 "신고전파 경제학을 공유하고 있었지만 정치적인 견해는 달랐고 경제학 자체에 대해서도 견해가 달랐다. 마르크스주의자들 또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이해했던 점에서 미제스는 (오히려) 시장사회주의자들보다는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더 많은 점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68-9)


하이에크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완전히 분리하여, 오늘날 우리가 흔히 받아들이는 신자유주의 개념을 정립한 장본인이다. 1931년 런던정경대학LSE에 도착한 하이에크는 자유시장과 사회주의를 동시에 신봉하는 당대의 학생들에 맞서 "1920년대의 미제스, 1902년의 피르손이 쓴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문과 게오르게 할음과 하이에크 그리고 엔리코 바로네가 1908년에 제시했던 사회주의 수리 모델 등을 게재했다. 사회주의를 놓고 벌어졌던 논쟁에서 이렇게 여러 다른 시대에 쓰인 저작들을 하나로 묶음으로써 하이에크는 이 저작들을 그 역사적 상황과 논쟁의 맥락으로부터 탈각시켜버렸다. 그는 사회주의를 탈역사화시켜, 그 정의를 오직 국가 소유 및 모든 물적 생산자원의 중앙계획만을 뜻하는 것으로 좁혀버렸다. 하이에크는 이렇게 함으로써 사회주의와 시장을 날카롭게 구별해버린 미제스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했다."(73)


1930년대 이후 경제 성장은 국가의 자기정당성의 기초가 되었고, 군부는 "신고전파 경제학이 병참학적 계획에 쓸모가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순수 시장 모델과 중앙계획 사회주의 모델을 자유롭게 오고 갔었던 바, 중앙계획으로 조직되는 군부야말로 신고전파 경제학에 밀접한 연관을 가진 곳이었다."(109) 1951년 애로는 권위주의적 경제계획을 거부하고 "투표와 시장이 최적으로 또 민주적으로 기능하도록 해줄 여러 제도를 옹호"했지만,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치는 당대의 분위기는 "노동자의 생산 통제 혹은 경제적 민주주의 등과 같은 제도들"을 논의할 수 있는 통로를 막아버렸다. "서방에서나 동유럽에서나 좀 더 권위주의적인 정치 및 군부 엘리트들은 기존의 위계적 제도들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여 그들의 권력을 지탱해주는 협소한 형태의 신고전파 경제학만을 지지했던 것이다."(119)


사회주의 자주 노선을 주창하여 어려움에 처한 "유고슬라비아 지도부는 소련의 국가사회주의와 미국의 국가자본주의 모두가 절망적으로 관료적·독점적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이들은 유고슬라비아의 나아갈 길은 국가의 사멸을 진전시킴으로써 공산주의에 더욱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유고슬라비아를 오랫동안 관찰했던 한 연구자는 이 체제를 '자유방임 사회주의'라고 부른다. "유고슬라비아 지도부는 국가의 여러 임무를 산하의 공화국들 그리고 기업 수준으로 내려 보냄으로써 국가의 탈집중화와 해체를 꾀했다. 첫째, 개별 공화국들은 중앙정부로부터 전력, 광산, 농업, 임업, 경공업, 공공근로 등의 감독 등과 같은 많은 행정 임무를 넘겨받았다. 둘째, 기업에 대한 국가의 개입 대신에 노동자 평의회가 공장들의 통제권을 쥐고 작업장 내에서의 경제민주주의를 실현하도록 되어 있었으니, 이것이 노동자 자주관리worker self-management라고 불린 것이다."(157-8)


유고슬라비아의 시장사회주의는 오스카르 랑게의 이론과 유사하다. "랑게의 모델에서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직업과 소비 품목을 스스로 선택하며, 이것들의 가격 혹은 임금은 경쟁적 시장에서 결정된다. 생산 활동 혹은 자본에 대해서는 시장이 존재하지 않으며, 대신 중앙계획 이사회가 최초의 가격(혹은 이자율)을 임의로 정한다. 랑게에 따르면, 그후에는 경쟁적 시장이 스스로를 교정하면서 과도한 공급 혹은 수요에 대응하여 가격(혹은 이자율)이 변동하게 된다. 기업들은 이윤 극대화가 아니라 다음 두 가지 규칙을 따른다. 첫째, (평균)생산비용을 최소화할 것. 둘째, 가격과 (한계)생산비용을 일치시킬 것. 이 모델은 국가가 자본 및 천연자원을 포함한 생산수단을 소유한다는 점에서도 사회주의이지만, 피고용자들이 자기들 소득에 덧붙여서 자본과 천연자원에서 발생하는 몫의 일부를 사회적 배당금으로(이는 자본주의에서는 주주들에게 돌아가는 몫이다) 수취한다는 점에서도 사회주의이다."(166-7)


헝가리의 당-국가는 "1968년 1월 1일 신경제메커니즘NEM을 도입했다. 이 NEM은 헝가리의 사회주의 실천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NEM 하에서는 국가가 생산수단의 공공소유를 갖지만, 소련식 중앙계획에서 본질적인 부분이었던 기업에 대한 의무적 생산 목표가 폐지되었다. NEM은 국가의 계획을 오직 국민경제의 주된 목표들을 정하는 것과 또 경제 발전의 주요한 여러 사항들의 비례에 대한 것으로만 제한했다. 경제계획가들은 강제적인 행정 수단 대신 간접적인 금융적 혹은 경제적 수단들을 사용하여 기업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짜놓은 계획을 실행하도록 만들 수 있었다. 랑게의 시장사회주의 모델 그리고 신고전파 경제학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기업들은 정부가 방향을 지휘하는 큰 투자들 이외에는 자율적으로 움직이도록 되어 있었고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도록 상정되었던바, 이윤 극대화가 기업을 움직이는 인센티브로 대두되었다."(246-7)


1950년대 초·중반에 "새로운 사회적 운동과 사회적 행위자들이 나타났으며 미국에서는 메카시즘에 대해, 소련에서는 스탈린주의에 대해 반작용이 생겨났다. 여러 집단이 서방 자본주의와 소련의 국가사회주의를 모두 비판하고 CESES(밀라노의 경제 및 사회문제 연구센터)와 같은 새로운 기관들을 만들어 두 체제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적 형태들을 토론하면서 이 냉전의 양대 축 내부와 사이와 그 너머에 간극적 공간을 확장했다."(257) "간극적 공간이 이탈리아에서 나타났던 이유는 다름 아닌 이탈리아에 강력한 공산당이 있었기 때문이다."(262) 이탈리아 공산당을 거부한 "전직 공산당원들이 만들어낸 공간은 이탈리아 내부에 이미 존재하던, 소수의 반소련 사회주의 문화와 연계를 맺게 된다. 이탈리아는 파시즘과 냉전 때문에 가로막힌 상이한 여러 형태의 민주적 사회주의를 창출하려는 오랜 노력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264)


1960년대 미국과 여타 지역의 소련학 학자들은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공격 이후 "정태적인 전체주의 모델의 단점들을 인정하고 동유럽 블록에서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이론적 도구들을 찾아 헤맸다."(271) 이념적으로 안전한 소련학을 동원하여 좌파를 무찌르고 우익의 신봉자들을 길러내고자 했던 우익 헤게모니 프로젝트는 한때 "냉전 지형의 변동, 현실 사회주의의 변화, 소련학 혁명, 초국가적으로 연결된 간극적 공간의 이질적 성격 등으로 인해 잠식당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 이념적으로 좀더 안정된 시대가 오자 "우익들은 CESES와 같은 간극적 공간들을 서방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냐 끝장나버린 소련 사회주의냐라는 이분법에 억지로 끼워 맞추고 그 틀 안에 넣어버림으로써 자기들 멋대로 써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간극적 공간으로부터 나온 지식이 서방 자본주의 헤게모니의 핵심을 유지하면서도 서방 자본주의를 바꾸어버리는 일이 벌어졌다."(294-5)


"사실상 통화주의자들과 케인스주의자들은 신고전파 경제학 방법을 공유하며, 이 방법은 경쟁적 시장과 중앙계획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여러 비판과 논쟁의 원인은 시장이냐 국가냐 따위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1960년대에 걸쳐서 "시카고 신고전파 경제학은 보수 세력들에게 오래도록 꼭 맞게 되는 협소한 버전의 신고전파 경제학을 더욱 더 발전시킨다. 다른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접근에 반대했다." 프리드먼 등은 신고전파 경제학을 "개개인들이 완전히 합리적이며 시장들이 완전히 경쟁적이라고 가정하는 아주 편리한 허구로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프리드먼의 논리에는 "사적 소유권을 법으로 강제하는 강력한 국가라는 전제가 깔려 있을 뿐만 아니라, 초기의 시카고 학파 전통과 달리 경쟁을 잠식하는 대기업들 사이와 그 내부의 중앙집중화된 권력의 문제는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323-5)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련 공산당의 총서기가 되었다. 1987년에는 사회주의를 쇄신하는 방법으로서 페레스트로이카(재구조화) 그리고 글라스노스트(개방)를 실현하기 위해 고안된 여러 개혁 조치를 실행에 옮겼다. 고르바초프에 따르면, 페레스트로이카는 전체주의 체제를 종식시키고 민주적 개혁과 자유, 다원주의적 경제(사유화, 자유 기업, 주식 소유를 포함한 여러 형태의 소유권) 그리고 자유시장경제 등을 도입하는 것을 뜻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는 꼭 자본주의처럼 들리지만, 당시에는 이것이 동유럽에서나 서방에서나 경제학자들 사이에 가장 진보된 사회주의 이해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런 것들은 초국가적으로 사회주의경제학에서의 최상의 예라고 여겨졌던 것들이다. 여러 동유럽 사회주의자가 보기에는 드디어 소련도 다른 동유럽 나라들을 따라잡기 시작한 것이었다."(340)


"1989년 이후의 기간에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지형과 선택지가 근본적으로 바뀌어버리고 말았다. 마이클 부라보이와 캐서린 버더리가 주장하듯이, 당-국가의 몰락은 '거시구조들macrostructures'을 무너뜨렸고 새로운 규칙들과 한계 내에서 '미세세계들microworlds'과 지역적인 임기응변의 변화를 위한 공간을 열어젖혔다."(356) 제프리 색스와 조지프 스티글리츠 같은 신고전파 경제학자들 간에 벌어진 논쟁은 "시장에 대해 모든 족쇄를 풀어줄 것이냐 아니면 경제에 국가가 개입해야 하느냐를 놓고 싸움을 벌인 것이 아니었고, 시장을 단단히 박아 넣을 것이냐 뽑아낼 것이냐를 놓고 싸운 것도 아니었다. 이들의 차이점은 시장이 필요로 하는 제도들이 권위적인 것이냐 민주적인 것이냐에 있었다."(358-9) "1990년 1월 1일, 폴란드는 동유럽 블록에서 최초로 충격요법을 실행에 옮겼고, 1991년에는 체코슬로바키아와 불가리아가, 1992년에는 에스토니아가, 1993년에는 라트비아가 그 뒤를 따랐다."(360)


"립턴과 색스는 필연적으로 나타날 '포퓰리즘' 혹은 여타 정치적 저항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정책들을 재빨리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들은 국가가 후퇴하면 시장이 출현하여 자신에게 필요한 제도들을 스스로 창조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렇게 국가와 시장을 마치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말하는 언어는, 이러한 경제학자들이 다른 한편으로 주장하는 바 시장이 번성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국가와 기업 제도들이 필요하다는 아주 명쾌한 주장을 애매모호하게 만든다."(360-1) 이들의 이행 전략은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구사했던 자유주의적인 수사학과 정반대로 강력한 권위주의적인 국가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동유럽 경제학자들이 "소련식 국가사회주의를 비판하고 탈중앙집권화를 요구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이들은 포퓰리즘적 저항을 묵살하고 충격요법을 실행하는 일은 오로지 강력한 정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천명한다."(363-4)


"이 기간에는 '이행'이라는 생각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의미들을 가지게 된다. 사회주의자들은 수십 년 간 '이행'을 옹호해왔다.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이든 국가사회주의에서 노동자 자주관리 사회주의로의 이행이든 아니면 국가사회주의에서 사회주의 체제 내 시장경제로의 이행이든 말이다. 그런데 세계은행이 1980년대 말에 이 말을 이해했던 방식은 바로 마지막 의미로서였다. 사회주의자들은 이 이행이라는 용어를 오래도록 사용해왔지만, 정치 지도자들은 이제 이 '이행'이라는 말을 모든 종류의 사회주의로부터 멀어지면서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자본주의라는 뜻으로 이해되는 모종의 시장경제를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서 다시 해석했다." 이렇게 경제적 개념들이 "여러 가지의 이해 방식을 동시에 가지게 된 것은 또한 시장으로의 이행을 이전에 있던 여러 시장개혁의 연속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했다."(380-1)


"신자유주의란 경쟁적 시장, 더 작고 권위주의적인 국가, 위계적인 기업, 경영진, 소유자들 그리고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한 묶음의 사상과 그와 연결된 정책들이다. 신고전파 경제학의 세계에서 시장이란 자본주의를 도울 수도 또 사회주의를 도울 수도 있다. 게다가 시장은 사적 소유와 동일시되지 않으며 오히려 다양한 소유 구조를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하비에 따르면, 시장의 이름으로 국가의 종식을 요구하는 신자유주의 프로젝트는 유토피아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이는 1970년대 초 경제위기와 사회주의의 대안 및 프로그램이 정치적으로 성공을 거둘 가능성 등에 맞서서 "자본 축적의 조건을 다시 확립하고 경제 엘리트의 권력을 회복"하는 목적으로 국가를 변혁하고 동원한다는 정치적인 프로젝트로서의 현실을 은폐하는 기능을 한다."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은 "노동자 소유의 재국유화, 임금 동결, 노동자 대량 해고, 자주관리의 근절, 민주주의의 협소화 등과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388-9)


1970년대 보수주의 정치가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던 협소한 버전의 신고전파 경제학은, "사회적 맥락에서 뽑혀져 나온 경제학으로서, 경쟁적 시장 혹은 효과적 중앙계획을 위해 필요한 제도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현실 세계에서는 현재의 권력 배분 상태에 존재하는 위계적 제도들과 이 지도자들의 권력을 유지해주는 경제학이다." 급격하게 뒤바뀐 정치적 지형 위에서, 구엘리트와 신엘리트가 국제 자본주의 기관들과 동맹을 맺자 "사회주의 체제 내에서 '진정한 시장'과 급진적인 경제민주주의 및 정치민주주의를 창출하려고 했던 시장 이행은 자본주의 그리고 대의제 민주주의로의 이행으로 변형되어버렸다."(407-8) 신자유주의의 승리는 "민주적 시장사회주의의 여러 모델을 개발하여 1989년 이후의 기간에 이를 실행에 옮기기를 희망했던 경제학자들이 있었기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가 승리하고 만 것이었다."(409)


# 신고전파 경제학의 한계

1. 사회적 가치나 비용 같은 개인의 경제적 효용 계산으로 환원할 수 없는 종류의 경제적 계산에 대해 무력하다. 

2. 권력의 문제가 이론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우리는 순수한 경제적 행위자가 아니라 포괄적인 사회적 행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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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반양장) - 간략한 역사
데이비드 하비 지음, 최병두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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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이후 거의 모든 국가들에서 관찰되는 안정 조건의 하나는 "상위 계급들의 경제적 힘이 제약되면서, 경제적 파이의 훨씬 더 많은 몫을 노동자들이 갖게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소득자의 상위 1퍼센트가 갖는 국가 소득의 몫이 전쟁 전 17퍼센트에서 전쟁 직후에는 8퍼센트 이하로 떨어졌으며 거의 30년 동안 이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성장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이러한 제약이 문제되지 않았다. 파이는 계속 커져갔으므로 그 파이의 안정적인 몫을 챙기는 것으로 족했다. 그러나 1970년대 성장이 붕괴되어 실질이자율이 마이너스가 되고 매우 낮은 배당 및 이윤만을 받게 되는 생활이 일반화되자, 세계 곳곳의 상위 계급들은 위협을 느꼈다." 자산 가치(주식, 부동산, 저축) 하락으로, 20세기 전반에 걸쳐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상위 1퍼센트의 통제 권력은 급속히 약화됐고, "상위 계급들은 정치적·경제적 파멸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단호하게 행동해야만 했다."(31-3)


"1979년 10월 카터가 대통령이었을 때 연방준비은행장이었던 볼커는 미국 통화정책에 엄중한 변화를 추진했다.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적 국가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뉴딜 원칙들에 대한 집착─이는 기본 목표로서 완전고용과 결부된 케인스적 종합재정통화정책을 의미함─은 폐기되고, 고용에 대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든지 간에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고안된 정책이 선호되었다. 1970년대 두자릿수의 인플레이션 파도가 일었던 시기에 마이너스였던 실질이자율은 연방준비은행의 지시에 의해 플러스로 변했다. 명목 이자율은 밤새 인상되어, 그 후 몇 번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1981년 7월에는 20퍼센트에 가깝도록 뛰어올랐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공장을 텅 비게 하고 노조를 와해시켰으며 채무국들을 파산의 고비로 몰고 갔던 깊고 오래된 경기후퇴와 연이은 긴 구조조정기"가 시작되었다."(41)


볼커의 통화주의 정책을 계승한 레이건은 다음 단계로 노동권력에 대한 전면 공격에 나섰다. 1981년 항공관제사 노조PATCO의 파업 분쇄는 결정적인 분기점이었다. "PATCO는 일반적 노조 이상의 것이었다. 숙련된 전문직 협회 성격을 가진 백인 노조였고, 따라서 노동계급이라기보다 중산층 조합주의의 징표였다. (PATCO의 좌절이) 국경을 가로질러 노동 조건에 미친 효과는 극적이었다. 이 점은 1980년대 빈곤선과 동등한 수준이었던 연방 최저임금이 1990년에는 그 수준의 30퍼센트 이하로 떨어졌다는 사실에서 가장 잘 파악될 수 있다. 그 이후 실질임금 수준의 지속적 감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43) 노동 권력을 제압하고 나자, 석유파동으로 쌓인 오일머니의 유입과 미국이 여러 개발도상국에서 벌인 은밀한 폭력과 체제 길들이기 속에서 뉴욕 투자은행들을 통해 재순환된 유휴 기금들은 세계 전역에 파급되었다.


"1973년 이전에 미국의 해외투자 대부분은 주로 유럽이나 남아메리카에서 원료 자원(석유, 광물, 농업 생산물)의 활용이나 또는 특정한 시장(원거리 통신, 자동차 등)의 육성과 직접 관련된 것들이었다. 뉴욕의 투자은행들은 언제나 국제적으로 적극적인 자세를 견지했지만, 1973년 이후에는 (외국 정부들에 대한 자본 대출에 좀 더 초점을 두기는 했지만) 그런 성향을 훨씬 더 많이 보였다. 이 점은 국제 신용 및 금융 시장의 자유화를 필요로 했으며, 미국 정부는 1970년대 동안 이 전략을 세계적으로 촉진하고 지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대출에 목말랐던 개발도상국들은 뉴욕 은행가들에게 유리한 이자율인데도 많이 빌리도록 장려되었다. 그러나 채무는 미국 달러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미국 이자율이 급등할 때는 물론 아주 조금 인상되는 경우에도 취약한 국가들은 쉽게 채무불이행으로 내몰렸다. 이는 뉴욕 투자은행들을 심각한 손실에 노출시키는 위험 요소이기도 했다."(47)


"자유주의적 관행은 잘못된 투자 결정에 의해 발생하는 손실을 대출자가 떠안게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관행은 현지 주민들의 생계나 복지가 어떻게 되는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차용자가 부채 지불의 비용을 떠맡도록 국가나 국제적 권력들에 의해 강제된다."(48) 전세계적 교환 관계를 금융화한 신자유주의는 "경제의 다른 모든 영역들과 국가 장치는 물론, 마틴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금융의 장악을 심화시켰다. 이는 또한 세계적 교환관계에 가속적인 변동을 유발했다. 의심할 바 없이 생산으로부터 금융의 세계로 권력 이행이 있었다. 이제 제조 능력에서의 이익이 필수적으로 1인당 소득의 증가를 의미하지 않게 된 반면, 금융 서비스에의 집중은 분명 소득의 증가를 의미했다. 이러한 이유에서 금융 제도의 지원과 금융시스템의 보전은 신자유주의 국가들의 집합체(G7처럼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들로 구성된 집단)의 핵심적 관심사항이 되었다."(52)


칠레나 아르헨티나에서 국가 폭력이 신자유주의를 도입하는 주요 수단이었다면 "1979년 이후 대처와 레이건에 의한 신자유주의적 혁명은 민주적 수단을 통해 이뤄져야만 했다. 이처럼 중대한 이행이 가능하려면, 선거에서 이길 정도로 충분히 큰 범위에 걸친 정치적 동의가 사전에 구축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람시가 ('공동으로 보유되는 지각'으로 정의하는) '상식(common sense)'이 전형적으로 동의의 기반을 이룬다." 당대 이슈를 비판적으로 고려하면서 구축되는 '양식(good sense)'과 달리 상식은 "문화적 편견하에서 실제 문제를 중대하게 오도하고, 모호하게 하며, 가장할 수도 있다. (신이나 국가에 대한 믿음, 또는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에 관한 견해와 같은) 문화적·전통적 가치와 (공산주의자, 이민자, 이방인, 또는 '타자들'에 대한) 두려움이 다른 현실을 숨기기 위해 동원될 수 있다."(59-60) '개인적 자유'라는 명분은 대중 기반에 호소함으로써 계급 권력을 회복하려는 본래 의도를 감추는 데 성공했다.


"개인의 자유가 신성불가침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정치적 운동은 신자유주의적 습곡으로 편입되기 쉽다. 가령 1968년의 세계적인 정치적 격변은 좀 더 위대한 개인적 자유를 추구하려는 소망에 의해 크게 굴절되었다." 개인적 자유를 근본적으로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수사는 "국가권력의 장악을 통해 사회 정의를 추구하는 다양한 사회 세력들을 자유지상주의, 정체성의 정치, 다문화주의, 그리고 자기중심적 소비자주의로 분할하는 힘을 갖고 있다."(61-2) 신자유주의화는 "차별화된 소비주의와 개인적 자유지상주의에 관한 신자유주의적 시장 기반적 대중문화의 구축을 정치적·경제적으로 요청했다. 신자유주의화는 (새로운) 문화적 충격, 즉 오랫동안 날개 밑에 숨어 있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커져서 문화적으로나 지성적으로 지배적이게 된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과 상당히 잘 병존할 수 있음이 입증되었다. 이것이 1980년대에 기업과 계급 엘리트가 기교를 부리고자 했던 도전이었다."(63)


"노조가 강했던 북동부 및 중서부 주들로부터 노조가 없고 '일할 권리'가 강조되었던 남부 주들─멕시코와 동남아시아로 진출하지 않았다면─로 산업 활동이 이전하는 것은 일반적 관행이 되었다." 아울러 "집단행동을 와해하기 위해 개인으로서의 노동자에게 제공될 수 있는 수많은 '당근'도 있었다. 노조의 엄격한 규율과 관료주의적 구조는 노조를 이러한 공격에 취약하게 만들었다." 노동시장에서 "더 큰 행동의 자유(freedom)와 자율(liberty)을 선사하겠다는 것은 자본과 노동 모두에게 덕목으로 여겨졌고, 이는 여기에서도 많은 노동자들의 '상식'에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통합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적극적 잠재력이 유연적 축적의 매우 착취적인 체계(시공간 모두에서의 노동 할당 유연성 증가로 인해 생겨난 혜택은 모두 자본에 돌아갔다)로 전환하게 된 이유는 실질임금이 정체 또는 하락하고 수혜가 감소된 현상을 설명하는 열쇠이다."(75)


영국은 "도덕적 다수로 동원될 수 있는 기독교 우파" 같은 세력이 없었기에, 매우 다른 방식으로 대중의 동의를 구축했다. 특히 "세계지향적 금융자본의 권력 성장이라는 점에서 런던 시의 위상을 보호 및 고양"했다. "(이자율 조작을 통한) 금융자본의 보호는 국내 제조업 자본의 요구와 적지 않게 갈등을 일으켰으며 (자본가 계급 내 구조적 분화를 촉진하면서) 국내시장의 팽창을 억제했다." 금융중심지로서 런던 시는 "케인스적 정책보다는 통화주의적 정책을 오랫동안 선호했으며, 이에 따라 착근된 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의 거점을 형성했다."(77-8) 대처는 "주택 소유, 사유재산, 개인주의, 그리고 기업적 기회의 해방을 즐기는 중간계급의 배양을 통해 동의 연합을 형성했다. 어려움 속에서 약화되는 노동계급의 결속력과 탈산업화를 통해 급격히 변화하는 일자리 구조와 더불어, 중간계급의 가치는 한때 확고한 노동계급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을 포섭하면서 좀 더 널리 전파되었다."(84)


# 신자유주의 국가 이론의 허점

1. (경쟁을 저해하는) 독점 권력의 처리 혹은 정반대로 전력, 수도, 가스처럼 국가 개입이 불가피한 자연 독점의 처리 문제

2. 시장 실패(비용의 외부화) 혹은 사회 관계와 제도를 훼손하는 기술혁신의 처리 문제

3. 매력적이지만 소외를 낳는 소유적 개인주의와 의미 있는 집단 생활을 추구하는 소망 간의 모순


"신자유주의 이론가들은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몹시 회의적이다. 다수결 원칙에 의한 통치는 개인적 권리와 헌정적 자유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된다. 만주주의는 사치스러우며, 단지 정치적 안정성을 보장하는 강력한 중간계급의 등장과 결합된 상대적 풍요의 조건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자들은 전문가와 엘리트에 의한 통치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90) "완전한 정보와 경쟁을 가능케 하는 평등한 행위의 장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가정은 순수하게 유토피아적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부의 집중과 이에 따른 계급 권력의 회복을 유도하는 과정을 감추려는 신중한 연막으로 보인다."(92) 국가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를 진압하기 위해 설득 및 선전, 또는 필요하다면 적나라한 폭력과 경찰력을 사용"할 수 있다. 즉, 자유주의적 (확장하면 신자유주의적) 유토피아 프로젝트는 "궁극적으로 권위주의에 의존함으로써 유지될 수 있다. 대중의 자유는 소수의 자유를 위해 제한된다."(94)


신자유주의 국가는 "전형적으로 탈규제를 통해 금융 제도들의 영향을 확산시키지만, 또한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금융 제도의 통합성과 지급 능력을 보장한다. 이러한 집착의 원인은 부분적으로 국가 정책의 기반을 (신자유주의 이론의 어떤 변형 속에서 정당화된) 통화주의─화폐의 통합성과 건전성은 이 정책의 핵심적 부분이다─에 의존하는 데 있다."(97) 위기가 닥쳤을 때 은행과 금융기관들의 필요를 우선하고 채무국의 생활수준을 떨어뜨리는 관행은 국제적 맥락에서 바라봤을 때, "국제 은행가들에게 보상하려고 빈곤한 제3세계 국민들로부터 잉여를 추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 메커니즘을 통한 공물(tribute)의 추출은 "계급 권력─특히 세계의 주요 금융 중심지에 있는─의 회복에 매우 도움이 되며, 또한 이의 작동은 항상 구조조정의 위기를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다."(98)


"왜 많은 사람들이 세계화를 통한 신자유주의가 '유일한 대안'이라고 설득되는 데 그리도 성공적이었는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지리적 불균등발전의 변동이 가속화되고, 어떤 영토들에서는 다른 영토들의 손실을 전제로 (최소한 일정 기간 동안이나마) 엄청난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예로, 1980년대가 주로 일본, 아시아의 '호랑이', 그리고 서독의 시기였고, 1990년대는 미국과 영국의 시기였다고 한다면, 이처럼 세계 어딘가에는 '성공'이 이뤄진다는 사실은 신자유주의화가 성장을 촉진하고 복리를 증진하는 데 일반적으로 실패했다는 사실을 모호하게 한다. 둘째, 이론이라기보다 실제 과정으로서 신자유주의화는 상위 계급들의 입장에서 보면 엄청난 성공을 가져왔다. 이는 (미국이나 부분적으로 영국에서처럼) 지배 엘리트들에게 계급 권력을 회복시키거나, (중국, 인도, 러시아 또는 다른 국가들에서처럼) 자본가계급 형성을 위한 조건을 창출했다."(191)


신자유주의화는 "상품화化의 선線을 의심할 바 없이 후퇴시켰고, 법적 계약의 범위를 크게 확대시켰다. 이는 전형적으로 (포스트모던 이론의 대부분이 그러한 것처럼) 짧은 수명과 단기 계약을 찬양한다."(202) 신자유주의화는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노동도 상품이라고 강조함으로써, 노동·여성 및 토착민 집단이 사회질서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전환시켰다." 강도와 범죄 카르텔, 마약 밀매망, 소규모 마피아와 슬럼가 두목들에서부터 공동체, 민중, NGO에 이르기까지 "이 조직들은 국가권력, 정당, 그리고 다른 제도적 형태들이 활발하게 분해되거나 집단적 노력과 사회적 연대의 중심지로서 기능을 소진하게 됨에 따라 남겨진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해 등장한 대안적 사회형태이다. 종교로의 현저한 전환은 이러한 관점에서 흥미롭다(파룬궁)." 미국에서 근본주의적 복음주의 기독교의 확산은 "고용 불안정의 증대, 다른 형태의 사회적 결속의 상실, 자본주의적 소비문화의 공허함과 어떤 연관성을 가진다."(207-8)


"탈취에 의한 축적accumulation by dispossession은 산업 및 농업에서 임금노동의 확대를 통한 축적과는 상이한 일단의 관행들을 동반한다. 1950년대 및 1960년대 자본축적 과정을 지배했던 후자의 축적은 착근된 자유주의를 창출한 (노조와 노동계급 정당에 착근된 것과 같은) 저항문화를 유발했다. 다른 한편 탈취는 (여기에서는 민영화, 저기에서는 환경 퇴락, 또 다른 곳에서는 부채에 의한 금융 위기가 일어나는 식으로) 파편적이며 특정적이다. 보편적 원칙들에 호소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특이성과 특정성 모두에 반대하기는 어렵다."(215) 신자유주의 아래 살아가는 것은 "자본축적에 필요한 일단의 권리들을 수용하거나 준수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사적 소유와 이윤율에 대한 개인들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그리고 법인들은 법 앞에서 개인으로 규정된다는 점을 상기하라)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또 다른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의 개념화를 압도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218)


"1935년 연두교서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0년대 대공황의 경제적·사회적 문제의 근원에는 지나친 시장 자유가 있었다는 견해를 분명히 했다." 그는 미국인들이 "과도하게 이윤을 추구해 부당한 개인적 힘을 키워도 된다는 부의 획득 개념을 반드시 폐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궁핍한 사람은 자유인이 될 수 없다.(221) 마르크스 역시 허기진 배는 자유를 전도하지 못한다는 굉장히 급진적인 견해를 가졌다. 그는 "필요성과 일상적 고려에 의해 결정되는 노동이 끝나는 곳에서야 자유의 영역이 시작한다"라고 적고 있으며, 따라서 자유는 "실제 물질적 생산 영역 너머에 놓여 있다"라고 덧붙인다.(223) 저자가 신자유주의적 권리 체제를 반대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회적·생태적·정치적 결과가 어떠하든지 무한한 자본축적과 경제성장의 체제 아래 살아가는 것 외에 대안이 없음을 인정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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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살상수학무기 - 어떻게 빅데이터는 불평등을 확산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가
캐시 오닐 지음, 김정혜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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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경제의 원동력인 수학 모형 프로그램들은 대다수가 "인간의 편견, 오해, 편향성을 코드화했다. 그리고 이 코드들은 점점 더 우리 삶을 깊이 지배하는 시스템에 그대로 주입됐다."(15) 대량살상수학무기(WMD) "모형 자체는 속이 보이지 않는 블랙박스로, 그 안의 내용물이 영업 비밀처럼 엄격하게 보호된다. 이것은 매스매티카 같은 컨설팅업체들에게 일거양득의 효과를 가져다준다. 첫째,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알고리즘이 지닌 가치보다 훨씬 많은 수수료를 청구할 수 있다. 둘째, 평가 대상이 모형의 작동 원리에 대해 모르기에 모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정하려는 시도를 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대신에 평가 대상자들은 모형의 기준에 맞춰 열심히 일하고 규칙을 준수한다. 모형이 그들의 노력을 제대로 평가해주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세부 사항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평가 결과에 의문이나 이의를 제기하기란 더더욱 쉽지 않다."(24-5)


WMD이 안고 있는 세 가지 위험 요소는 '불투명성, 확장성, 그리고 피해'다. 비즈니스에 중요한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알고리즘이 공개되지 않은 모형에 쓰인 가정들은 파괴적인 피드백 루프를 통해서 자신의 가정들을 정당화하는 환경을 창조한다. "은행의 대출심사모형이 당신에 대해 채무불이행 위험이 높다고 판단하면 어떻게 될까? 이것이 지독한 오해에 불과할지라도 온 세상이 당신에게 '예비 채무불이행자'라는 똑같은 꼬리표를 붙일 것이다. 꼬리표 정도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 꼬리표는 당신이 아파트나 일자리를 구할 때는 물론이고 자동차를 렌트할 때조차 기준이 되어 당신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58-9) 문제의 핵심은 "알고리즘에 의해 작동되는 모형이 수백만 명의 면전에서 기회의 문을 닫아버리고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조차 허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가끔은 지극히 하찮은 이유로 그렇게 한다."(61)


금융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투자자들은 MBS(주택저당증권, mortgage-backed securities)에 투자하는게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복병이 있었다. 바로 불투명성이었다. 투자자들은 증권에 포함된 주택담보대출 각각의 건전성에 대해서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증권에 포함된 내용물을 얼핏이라도 짐작해볼 수 있는 방법은 신용평가기관의 분석가들이 평가한 등급이 유일했다. 그런데 분석가들은 자신이 등급을 매기는 금융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기업들에서 수수료를 챙겼다."(75) 금융과 첨단기술이 안겨주는 혜택을 장악한 계층의 사람들은 "똘똘 뭉쳐 서로 칭찬하는 사회mutual admiration society를 형성한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시스템을 악용한 것과 대단한 행운이 결합된 결과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도 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성공을 적자생존의 사회적 다윈주의가 작동한 결과임을 납득시키려 한다."(90)


"데이터를 처리하는 기계들 스스로가 우리의 데이터를 샅샅이 조사하면서 우리의 습관과 희망, 두려움과 바람을 찾아내고 있다." 인터넷이 등장한 뒤 "전세계 사람들이 자신의 삶, 일, 구매 경험, 우정 등에 관해 무수히 많은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언어를 처리하는 기계들을 위한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학습 말뭉치training corpus가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사람들이 손글씨와 종이에서 이메일과 SNS로 소통의 도구를 바꿈에 따라 기계들이 우리의 언어를 연구하고 비교하면서 언어의 문맥과 관련해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진전은 신속하고 극적으로 이루어졌다."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을 통해 향상된 "자연언어 처리 능력은 광고주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의 신세계를 열어주었다. 이제 프로그램은 특정한 단어의 의미를 안다. 아니, 적어도 가끔은 그 단어를 특정한 행동이나 결과와 충분히 관련시킬 수 있을 만큼은 안다."(135-8)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이 인터넷 세상에서 드러낸 선호도와 패턴을 토대로 수많은 모형에서 나뉘고 분류되어 점수가 매겨진다. 이런 정보는 합법적인 광고 캠페인의 튼튼한 토대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약탈적인 광고들의 연료가 된다.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만 골라서 지킬 수 없는 거짓 약속을 하거나 지나치게 높은 비용이 드는 약속을 해서 바가지를 씌우는 악질적인 광고 말이다."(126) 전형적인 WMD인 약탈적 광고는 절박한 사람들을 찾아내 표적공략한다. 일례로, 배터롯 칼리지는 신입생 모집원들에게 "복지수당을 수령하고 자녀가 있는 편모, 임신한 미혼여성, 최근에 이혼한 사람, 자긍심이 낮은 사람, 저임금 종사자, 최근에 가까운 사람과 사별한 사람, 신체적·정신적 학대 피해자, 최근 출소자, 약물 중독 재활 치료 유경험자, 장래성이 없는 직종 종사자"를 집중 공략하라고 지시했다.(129)


이처럼 알고리즘은 기본적인 명령에 따라 데이터를 처리할 뿐이지만, 그 명령을 내리는 사람(혹은 집단)의 의도가 모형 안에 속속들이 배어 있다. "미국 정부는 1965년에 시행된 고등교육법Higher Education Act에 소위 '90-10법칙'이라고 불리는 조항을 포함시켰다. 이 조항은 대학들이 재정의 최대 90%까지만 연방정부의 원조를 받을 수 있다고 규정했다. 9대1이라는 비율의 근거는 학생들이 교육비의 일정 부분을 감당할 때 자신의 교육을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영리 대학들은 이 조항의 허점을 공략하는 사업 계획을 만들었다. 저축이든 은행 대출이든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수천 달러를 긁어모을 수 있다면, 영리 대학들은 그 학생들의 이름을 빌려 그 금액의 9배나 되는 돈을 정부에서 지원받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영리 대학들에는 학생 하나하나가 막대한 수익 창출원이 됐다."(142)


"가난한 동네에서 경미한 범죄는 흔한 일이다. 오죽하면 어떤 지역에서는 경찰들이 그런 범죄를 범죄가 아니라 반사회적 행동antisocial behavior, ASB이라고 부르겠는가." 이런 2군 범죄를 예측 모형에 포함시키면 "더 많은 경찰이 가난한 동네로 출동하게 되고, 당연히 그런 동네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체포당할 것이다." 이는 바로 유해한 피드백 루프가 활성화되는 전형적인 과정이다. "경찰 활동 자체가 새로운 데이터를 생성시키고, 이런 데이터가 다시 더 많은 경찰 활동을 정당화해준다. 그리고 교도소는 피해자가 없는 범죄victimless crime를 저지른 수많은 범죄자들로 넘쳐나게 된다. 이런 범죄자들은 대부분 가난한 동네 출신이고, 또한 대부분 흑인이거나 히스패닉계다. 설령 모형이 '색맹', 다른 말로 피부색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피부색과 소득 수준에 따라 거주 지역이 뚜렷이 구분되는 오늘날 미국 도시에서 지리적 요소는 인종에 대한 유효적절한 대리 데이터다."(151-2)


"미국 직장인들 사이에 최근 유행하는 신조어가 있다. '클로프닝clopening'이 바로 그것이다. 이 단어는 상점이나 카페의 종업원이 밤늦게까지 일하다가 매장 문을 닫고 퇴근한 다음, 불과 몇 시간 후 새벽 동도 트기 전에 다시 출근해서 매장 문을 여는 것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한 명의 종업원이 매장 문을 닫고 여는 클로프닝은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물류logistics적으로 타당한 업무 방식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수면 부족과 빡빡한 일정에 쫓기는 것을 의미한다."(208) 일정 관리 소프트웨어가 양산하는 "불규칙적인 장시간 근무는 노동자들이 더 나은 근무 조건을 요구하거나 스스로 조직화하는 것을 힘들게 만든다. 대신 노동자들은 극심한 불안감과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급격한 감정 변화를 겪고 있다." 더욱이, 일정 관리 소프트웨어에게 착취당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자녀도 커다란 피해자다. 이런 부모를 둔 아이들은 평범한 일상을 경험하지 못한 채 성장한다."(217-8)


"보험사들은 신용평가 보고서에서 신용평가점수를 얻은 다음, 자사의 고유한 알고리즘을 통해 자체적인 등급이나 e점수를 생성시켰다. 이런 등급이나 e점수는 '책임 있는 운전 습관'을 대신하는 대리 데이터"로 활용된다. "자동차 보험비를 산정하는데 '돈을 어떻게 관리하는가'가 '어떻게 운전하는가'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273) 보험사들은 이를 악용해서 저신용 고객층에게 "과다한 보험료를 부과함으로써 실리를 챙긴다. 운전 기록이 깔끔해도 신용평가점수가 낮은 운전자는 사고 위험이 낮기 때문에 보험사에 복덩어리다. 게다가 그 운전자의 보험 계약에서 발생한 수익의 일부는, 보험사가 사용하는 모형의 비효율적인 측면을 보전해준다. 신용평가 보고서가 완벽해서 보험료를 적게 내는 운전자가 음주 운전 사고를 일으켰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그 손실을 신용평가점수가 낮아도 운전 습관이 좋은 운전자들의 보험료로 메울 수 있다."(275)


"현대의 소비자 마케팅은 정치인들을 특정한 유권자들에게로 데려다주는 새로운 경로를 제공한다. 이제 정치인들은 각 유권자 집단의 욕구에 맞춤화된 정보를 들려줄 수 있다. 일단 그렇게 하고 나면,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에게서 들은 정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큰데, 그 주장이 자신들의 기존 믿음을 확인시켜 주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확증편향이라고 부른다." 정치참모들은 micro-targeting이라는 "신용카드업계의 전술을 차용함으로써 막대한 유권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각자의 가치관과 인구통계학적 정보를 고려해 유권자를 다양한 하위집단으로 분류했다. 그리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이웃한 두 집이 동일한 정치인으로부터 각각 다른 내용의 우편물이나 팸플릿을 받게 됐다. 가령 같은 후보로부터 한 집은 야생동식물 보호를 약속하는 우편물을, 바로 옆집은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우편물을 받는 식이다."(311-2)


정치가와 유권자 사이의 이런 "정보의 비대칭asymmetry of information은 여러 집단이 손을 잡고 힘을 합치는 것을 막는다. 이는 현대 민주주의 체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다."(325) 정보의 비대칭 말고 또 다른 비대칭이 있다. 바로 관심의 비대칭이다. "알고리즘에 의해 투표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투표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음 선거에서는 관심의 융단폭격을 받게 된다. 여전히 투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반면 애시당초 투표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유권자들은 관심에서 거의 배제된다. 정치 시스템은 투자 수익률이 가장 높은, 다른 말로 가장 적은 비용으로 표심을 바꿀 수 있는 유권자들을 열심히 찾는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때로는 투표 기권자들이 돈 먹는 하마처럼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정치 시스템의 이런 역학은 양극화를 부추긴다. 특정 계층은 물과 양분을 쏟아부어가며 살뜰히 보살피고, 나머지 계층은 영원히 방치되고 있다."(327-8)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WMD들은 상위 계층 사람들, 즉 부자들에겐 확연히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그들만을 따로 모아 배타적인 마케팅을 전개한다. 가령 카리브 해에 위치한 아루바로 휴가를 가도록 추천하고, 세계 최고의 경영대학원 중 하나인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준다. 그러니 부자들은 세상이 갈수록 편리해진다고 생각할 만하다." 이런 표적 마케팅 기법의 "은밀하고 개인적인 특성 때문에 사회의 승자들은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모형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볼 수 없다."(330) "돈으로 영향력을 사는 오늘날 사회에서 WMD의 피해자들은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나 다름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과 범죄로 개인적 비난에 시달리기 십상이지만, "사회적 통념에서 보면 가난의 병폐는 질병에 가깝다. (오늘날 정치권의) 빈곤 퇴치 노력은 중산층에게까지 그 병폐가 확산되지 않도록 차단시키는 것이 전부다."(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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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계산기 - 경제학이 만드는 디스토피아
필립 로스코 지음, 홍기빈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계몽주의 학자들에게 시장은 진리의 장소, 자연의 거울이자 산업 사회 이전의 촌락이라는 억압적 사회관계에 맞서는 해방의 힘이었다. 그들에겐 무역이 제공하는 여러 자애로운 메커니즘을 거치기만 하면 자기 이익, 즉 사적인 이윤의 추구라는 것도 공적 미덕의 샘솟는 원천으로 변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제러미 벤담이 착상하고 이후 존 스튜어트 밀이 상세히 발전시킨 영국 공리주의의 프로젝트는 이러한 공적 미덕을 다시 법률로 전환시키고자 했으며, 감옥과 학교 또한 이 새로운 시장 경제의 노선에 따라 개혁하고자 했다. 이것이 19세기 말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들이라 불릴 만한 오스트리아의 <한계주의> 혁명가들, 즉 카를 멩거, 조지프 슘페터, 루트비히 폰 미제스, 그리고 가장 유명한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 등이 나타날 때까지의 상황이었다. 이 오스트리아인들은 영국인 스탠리 제번스 그리고 프랑스인 레옹 발라 등과 함께 경제학을 수학적 프로젝트로 재창조했다."(51-2)


"19세기가 되면 어떤 좋은 것의 유용성을 연속의 수학적 함수로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등장하게 되었고, 제번스, 멩거, 발라가 각각 독자적으로 한계 효용의 이론을 <발견>했던 것도 그때였다." 그전까지 <효용utility>이란 "단순히 <가치> 혹은 <유용성>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다음 두 가지 점에 있어서 완전히 새로운 정의를 얻었다. 첫째, 이 유용성이란 오로지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순간에만 관찰과 이해가 가능하다. 즉 어떤 사물의 유용성은 사람들이 그것에 대한 욕망으로 실제로 어느 만큼의 행동을 벌이는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둘째, 그 효용이란 단일의 수리적 함수로 표현될 수 있다. 좋음의 본성을 두고 철학자들은 오래도록 입씨름을 벌여 왔지만, 이제부터 분석가들은 그런 논쟁에 대해 더 이상 신경 쓸 게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마다 사물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제각각이니, 그 제각각의 가치 평가를 그들 각각의 행동에 반영되어 있다는 것만 인식하면 된다는 설명이다."(52-3)


"하이에크 그리고 그의 사상을 물려받은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거기에 가치를 부여하고 선택하는 방법을 어떻게 알아낼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들의 해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에 돈을 지불하게 하여 자기들이 거기에 얼마나 큰 가치를 부여하는지를 <보여 주도록> 만들자는 것이었다. 화폐는 보편적인 매개물이므로 이를 통해서 이질적인 가지가지의 재화 및 서비스들에 대해 한 개인이 갖는 모든 선호 사항들에다가 단일의 서열을 매길 수 있고, 심지어 모든 개인들의 모든 선호 사항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또한 저 기적의 장치인 시장이 자동적으로 만들어 내는 단일의 척도인 화폐를 사용한다면 인간들의 오만가지 필요, 욕망, 욕구를 모조리 한 줄로 세울 수가 있다는 설명이었다."(59-60)


"경제라는 세계는 우리가 <경제학>이라고 부르는 일련의 규칙들로 세세하게 설명할 수 있는 실로 매혹적인 질서와 명확성을 가진 세상이다. 이렇게 경제학이 그 세계를 그렇게 잘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경제라는 세계의 조직과 구조와 통치 자체가 바로 그 경제학의 규칙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경제학이 조사하는 대상은 인간 세상이며, "경제학이 초점을 두는 것들은 모조리 특정한 역사적·문화적 맥락 속에서 존재하는 것들로서 무엇보다도 가격과 가치와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경제학이 내놓는 여러 묘사는 이 세상에 대한 묘사인 만큼이나 이 세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기도 하다. 경제학, 그리고 경제학이 조사하는 세계는 상호 작용과 되먹임의 순환 고리로 강하게 묶여 있다." 경제학 또한 "전문성, 도구화 작업, 언어 등이 긴밀하게 얽히는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으며, 이 점에서는 자연 과학과 동일하다. 그런데 자연 과학과 다른 점이 있다. 경제학은 바로 자기 자신을 척도로 삼는다는 것이다."(84-6)


형이상학이 제거된 명징하고 논리적인 언어로 현실을 파악하는 포퍼의 방법론을 받아들인 "프리드먼은 경제학이란 과학적 탐구의 엔진으로서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여러 예견을 내놓기 위해 여러 가정들을 활용하고, 이를 기초로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해 나가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프리드먼은 포퍼가 용인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넘어 나아가 버렸다. 프리드먼의 글을 보면 가정들이 정확하지 않아도 이것들이 반증 가능한 예견들을 내놓을 수만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니며, 나아가 여러 가정들이 이런저런 부정확성을 담고 있다면 <오히려> 그 때문에 더 큰 미덕(설명을 더 잘 할 수 있다는 의미)을 갖게 된다는 뜻까지 담겨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떠받치는 근저에는 또 하나의 좀 더 기본적인 가정이 있다. 이 가정이야말로 위와 같은 경제학 방법론의 모든 주장과 다른 모든 과학적 방법론의 기초가 되는 가정이니, 그것은 바로 이 세계를 명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이다."(88-9)


경제학의 언어로 만들어진 세계에서 "우리는 바로 이러한 한계 효용과 기회비용이라는 관점에서 선택하는 존재로 탈바꿈한다. 가격, 효용, 가격 대비 성능 등의 언어들 자체가 나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문제의 성격 자체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과연 <가격>이니 <효용>이니 하는 것들이 현실과 조응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다. 이러한 개념들 자체가 살아있는 생물이며, 나의 정신과 육체를 매개로 현실에서 작동한다. 경제학의 규칙들과 논리가 움직이는 곳마다 이 세계는 무너지며, 그 무너진 틈은 다시 경제학의 규칙들과 논리가 메꾸어 버린다. 경제학은 우리에게 어느 테두리 내에서 의사 결정이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가르치며, 중요한 것과 중요치 않은 것도 가르쳐 준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가운데 우리들이 현실 세계에서 내리는 의사 결정의 테두리를 실제로 결정해 버린다."(93-4) 경제학자들이 구축한 세계상은 "<인간이 구축한 미로이자, 인간이 출구를 찾아내도록 설계된 미로>이다."(102)


"경제학의 파놉티콘을 건설하는 그다음 단계는 권력 관계를 완전히 자동적이면서도 연속적으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곧 개개인들이 자신의 경제적 주관성을 내면화하는 과정이다. 경제학은 개인의 내면에 이런저런 계산과 가치 평가를 형성함으로써 그들의 행동을 통제하려고 시도한다."(121) 일례로 노르웨이에서 어부들에게 조업량 쿼터 시스템을 도입하자, 이전까지 공유지였던 바다는 조각조각 울타리가 쳐진 개인의 재산으로 변모했다. 어부들은 "화폐로 표현되는 시장 가치를 받아들여 행동을 결정했고, 리스크를 줄이고 수익은 극대화하는 행동을 선호했다. 또한 <평범하고 진부한 프로그램들, 계산들, 기술들, 도구들, 문서들, 절차들의 복합체>를 조심스럽게 실행에 옮기는 가운데 합리적이고 도구적이며 자기중심적인 경제적 인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 어부들이 영위하는 삶, 그들이 살고 있는 공동체와 온 세상 또한 전혀 다른 것으로 탈바꿈했다."(127)


"계산의 공유는 거의 불가피하다. 우리가 기술적으로 발전된 사회에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남들과 계산 작업을 분배한 덕분이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남들에게 계산 작업을 맡기는 양도 커질 수밖에 없고, 위임받은 이들이 계산을 대신해 줄수록 우리의 운명은 점점 더 그들의 손아귀로 들어가게 된다." 경제적 인간이 "합리적 계산을 해내는 것 역시 여러 도구들, 측량 기기들, 계산기들을 통해서 가능하다. 사회학자 미셸 칼롱의 표현처럼, 발명된 도구들은 경제적 행동을 위한 <인공 기관들(의치, 의족 등)>로 변한다. 시장 사회학에서는 이렇게 인간들과 발명 도구들이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배열agencement>이라는 다른 말을 이미 사용해 오고 있다. 이는 도구들이 행위자agency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즉 이 도구들이 행동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는 점에서 유용한 단어다."(143-5)


마트에서 우리는 "미리 가공 처리가 끝난 사실들만을 받게 될 뿐이다. 계산대에서 나오는 영수증에는 2.78파운드를 절약했다는 가공의 숫자만 나올 뿐이며, 홈쇼핑 채널의 텔레비전 화면에는 몇 퍼센트가 더 저렴하다는 수치만이 등장한다." "계산의 인프라가 은폐된 채로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전혀 다른 종류의 고객으로 변모한다. 즉 만사 제쳐 놓고 가격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고객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판매대에 오른 제품의 "여러 성질들 가운데 오로지 가격만 보여 주면 나머지 요소들은 우리의 결정 과정에서 확실하게 쫓겨난다. 우리가 그러한 가격 차이가 과도한 노동, 과도한 경작, 착취적인 노동 조건 등에서 비롯한 것임을 잘 알고 있다 해도 이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어떤 상품이 어떤 조건에서 생산되는지는 상품의 <가격표>가 확실하게 가려 버린다. 가격만이 우리 의사 결정의 틀이 되며, 가격만이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판별하는 기준이 된다."(147-9)


"어떤 사람이 신용 리스크가 있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신용에서 <배제>된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신용이라는 희소한 자원에 대해 <더 많이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이제 한 사람의 신용 점수는 "그 개인의 인격적 속성이자 계속 갈고 닦아야 할 무엇으로 여겨진다. 마치 대학 졸업장이나 빨래판 복근처럼 말이다. 신용 점수 시스템의 확산은 곧 인격적 관계에 묻어 들어 있었던 대출에서 통계적인 리스크 관리를 통한 대출로의 이동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경제학의 개념들은 여러 기술적 도구들에 새겨져 있다. 그 도구들은 미국 농촌의 가게 점원이 참조하는 채점표처럼 원시적일 수도 있고 피코 스코어의 배후에 있는 알고리즘처럼 현란하고 세련된 것일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옛날 주택 담보 대출 시장을 안정화시키는 데 기여했던 사회적 유대를 끊어 내는 일에 일조한 것은 마찬가지였다."(160-1)


교육을 상품화한 "윌레츠의 주장은 명쾌하다. 학생들을 소비자로 만들기만 하면 대학들도 개선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지불하도록 하면 대학들이 이 <고객들>을 끌어오기 위해 서로 경쟁을 벌이게 될 것이므로 자생적으로 시장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시장이라는 장치는 "교육이 가져다주는 여러 혜택 또한 똑같은 방식으로 볼 것을 요구한다. 학생은 스스로의 경제적 이력을 책임져야 할 개인으로서, 교육을 통해 장래에 엄청난 혜택들을 받게 된다. 따라서 그 비용을 감내해야 할 것은 학생 본인이며, 그 대신 학생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168) 대학 교육의 상품화는 "여러 가지의 귀결을 가져온다. 그중 중요한 것으로 사회적 재화의 감소를 들 수 있다. 교육이란 그 내재적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피어나기 위한 핵심 도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이 이제 개인적 출세라는 단기적 목표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177)


경제학자 로널드 코즈에 따르면 "여러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는 비용은 그 문제를 가장 적은 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는 쪽에게 부담시켜야 한다. 지출이 적을수록 '만인이' 더 큰 혜택을 보기 때문이다. 코즈의 규칙은 잘못을 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나 무엇이 정의로운 선택인가 등의 문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비용과 편익이 사람들 사이에 어떻게 분배되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오직 그렇게 해서 절약할 수 있는 총량이 얼마인가가 중요할 뿐이다."(187) "비용-편익 계산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두 가지 사실을 보여준다. 첫째, 우리가 어떤 문제를 경제학적으로 생각하려면 무조건 모든 것에 가격을 붙여야만 한다. 설령 그것이 인간의 목숨이라고 해도 말이다. 둘째, 만약 정말로 이러한 분석이 의사 결정의 도구가 되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그 비용이 어떤 것인지를 보고 나서도(예를 들어 180명 사망, 180명 불구, 2,100대 차량 파손) '태연하게' 그 비용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 한다."(191)


"깨끗한 공기와 같이 가격이 붙어 있지 않은 것들을 꺼내 놓고서 한번 가격을 불러 보라고 묻는 것 자체가 그것에 가격을 매기는 행위이며, 그것을 상품 즉 우리가 거래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바꾸어 놓는 행위이다. 그런 것들을 지켜 내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 대응들이 있는데도 이들을 깡그리 무시한 채 그런 방법론으로 얻은 가격 수치만 중시하게 되면 그러한 종류의 성격 변화가 아예 제도로 굳어진다."(225) 장기 매매 시장을 허용하고, 장기의 공정 가치를 구하는 식의 "장기 이식을 둘러싼 주장들을 보게 되면 경제학이란 단순히 현실을 기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한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경제학은 수행한다. 즉 자기 스스로가 제시한 현실 세계의 묘사를 실제 세계의 무대 위에 그대로 연극으로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경제학이 무엇을 분석하는가는 현실 세계에 큰 중요성을 가지는 문제가 된다."(235)


온라인 데이팅의 "여러 규칙들은 개개인들을 서로 교체할 수 있고 교환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대체 가능한 존재로 바꾸어 버린다."(276) 온라인 데이팅은 "사랑을 이해하는 독특한 경제학적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는 사랑에 빠지는 일을 상대방의 여러 특질과 양립도에 기초하여 매력을 느끼는 모종의 적극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으로 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사이트들의 광고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통제해야지 확률이나 행운 따위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사이트들에서 짝이 될 이들을 검색하는 사용자들은 자기를 포함한 개개인들을 여러 성질들이 교차하는 결절점에 불과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면 이 결절점들은 다른 결절점들을 보면서, 또 자기를 검색할 사용자들이 무엇을 내놓을지를 염두에 두면서 자기가 지닌 성질들 하나하나의 가치를 올리려고 노력한다."(287)


오늘날의 자기 이익이라는 개념은 "21세기식 경제 행위자의 계산적·도구적 합리성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는 복잡한 기술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오래된 부르주아의 미덕 따위와는 전혀 성질이 다르다." 문제의 핵심은 "기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이루어진 무정무감의 합리성이 우리의 삶과 신체의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공간에까지 침범해 들어오는 사태이다. 나아가 이러한 자기 이익이라는 것이 순전히 개인의 수준에서만 현실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는 이미 통치governance의 사회적 장치의 일부가 되어 버렸으며, 우리 모두가 스스로 사업가로 변해 가도록 장려한다."(300) 비용-편익 분석은 "직선적이며, 투명하며, 객관적인 외양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공론장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그 주장의 "배후에는 항상 따져 보아야 할 계산 과정이 버티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302)


"자연과학은 정리와 증명, 데이터와 증거들의 끝없는 증식을 추구하며 이를 중시하지만, 경제학은 오로지 희소성 조건 아래에서의 비용과 편익의 비교라는 단 하나의 보편적인 알고리즘 외에는 아무것도 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현실에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경제 분석의 중심을 차지하는 질문이 비용과 편익의 비교라면, 경제적 이성의 중심적 미덕은(그리고 경제학과 관련된 모든 의사 결정, 정책, 규제 등에서도) 효율성이다. 이는 이 세상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언명이며 명백하게 도덕적인 성격을 띠는 주장이다. 만약 어떤 특정한 행동 노선을 취할 경우 더 적은 수단으로도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러한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이 복잡한 우리의 삶에서 "비용만 빼고 나머지는 완전히 똑같은 행동 노선들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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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3-13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섬뜩한 대단한 책입니다.
읽고 싶은 책입니다. ^^

nana35 2018-03-15 17:14   좋아요 0 | URL
북다이제스터님에게도 충만한 독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고쳐쓰기 - 천박한 자본주의에서 괜찮은 자본주의로
세바스티안 둘리엔 외 지음, 홍기빈 옮김 / 한겨레출판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고정환율제를 채택한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서 각국의 국내 금융 분야들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부동산금융의 경우에는 금융시스템의 다른 부분들과 단절되어 국가의 긴밀한 통제를 받는 것이 예사였다. 소비자 신용은 종속적인 역할만을 수행하였고, 신용팽창은 비즈니스 부문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소비수요의 역동성이 기초가 된 것은 소득 증대였다. 미국 등 많은 나라에서 이자율에는 상한선이 정해져 있었다. 심지어 전통적으로 자본시장에 기초한 금융체제를 가져왔던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에서조차도 주식시장이 특출한 역할을 맡았던 것은 아니었다. 유럽 대륙과 일본 그리고 여러 개발도상국들에서는 은행 중심의 체제가 지배적이었으며 여기에서는 소위 '주거래 은행(house-banks)'이 기업들의 가장 중요한 외부 금융 원천으로 기능했다."(43-4) 이 시스템은 "1960년대 말부터 계속되던 위기를 겪은 후 1973년 2월 마침내 무너지고 말았다."(46)


1960년대 말 이후 달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미국으로부터 자본이 유출되었지만, 미 중앙은행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미국은 자국 통화의 가치 안정성을 돌볼 필요가 없었으며 그저 그 부담을 다른 나라들에 떠넘길 수 있었다. 미국은 이러한 자신들의 특권을 각별히 이용하였다." 오히려 "1971년 8월 당시 대통령이었던 닉슨은 외국 중앙은행이 보유한 달러는 더 이상 금으로 태환해 주지 않을 것이라고 공표하였고 이 때문에 달러에 대한 신뢰는 더욱 더 급격히 떨어지게 됐다." 이른바 '닉슨 쇼크'는 고정환율 체제를 잠식해 들어갔다. 달러의 가치절하를 막기 위해 강력한 외환시장 개입 정책을 펼치던 여러 나라의 중앙은행들─특히 제2의 외환 보유 통화로 자리매김한 마르크화의 독일─도 미 중앙은행의 수수방관 앞에 무기력했다. 결국 "독일의 분데스방크는 1973년 2월 12일 미국 달러 매입을 계속할 수 없다고 거부했고, 이로 인해 달러의 과감한 가치절하가 벌어졌다."(46-7)


# 유럽의 화폐 통합 과정

1. 통화 뱀(currency snake) 체제 : 변동환율제가 시행된 후 1972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6개국이 상호간 환율 등락폭을 2.25%로 제한하기로 합의

2. 유럽통화체제(EMS, European Monetary System) : 통화 뱀을 계승하여 1979년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베네룩스 3국 간에 고정환율제 창출

3. 유럽통화연합(EMU, European Monetary Union) 도입 : 1999년 유로화 출범


1960년대말 거의 모든 서방 산업국가에서 실업률은 역사상 최저 수준이었다. "그 결과 나타난 노동 부족 때문에 피고용자들의 시장 협상력이 강력히 지지되었고, 이것이 다시 명목임금의 상승을 떠받쳤다. 이는 한편으로는 단체협상에서 합의한 바의 임금상승 때문이었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합의한 임금률 이상으로 임금을 지급했기 때문이었다." 이와 함께 전개된 사회 개혁 운동들은 "민주적 제반 권리의 강화, 기회 균등의 확대, 노동자들의 지원, 교육체제의 변화, 소득분배의 공정함, 여성 해방 등 그 밖에도 더욱 진보적인 사회의 개념과 연결된 여러 사안들을 담고 있었다. 이러한 여러 개혁 운동들은 거의 필연적인 부산물로서 더욱 공격적인 임금정책을 낳았다."(54-5) 위기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혁 프로그램을 임금인상과 연계하고, 인플레이션 완화를 위한 임금인상 억제에 반대한 시도들은 향후 반동을 낳는 주요인이 된다.


1973년 오일쇼크가 터졌을 때 "실업률은 여전히 낮았기에 노동자들이 물가 상승으로 인한 (실질)임금의 손실을 보상하기 위한 임금인상을 힘으로 얻어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 결과 임금-물가 상승의 악순환 고리가 시작되었다. 임금이 올라가면서 기업에는 비용 압력이 가해졌고, 이는 다시 물가를 올렸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 또한 이와 비슷한 효과를 낳았다. 환율 통제를 걷어내자 수많은 나라들이 자국 통화의 가치절하로 타격을 받게 되었다. 외환가치 절하는 수입 가격의 상승을 낳으며, 특히 석유 가격 인상의 경우처럼 결국 물가수준 전반을 올리게 된다. 그리고 이에 따라 실질임금은 감소하게 된다. 오일쇼크뿐 아니라 임금-물가 상승의 악순환과 외환가치 절하 같은 효과가 누적적으로 발생한 나라들은 특히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56-7) 여기에는 1976년, 통화위기에 휘말린 파운드의 가치절하로 어려움을 겪던 영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영국은 IMF에 도움을 요청하였고 수많은 조건들이 붙기는 했어도 일정한 대출을 받아 상황을 타개할 수 있었다." 경제난 극복을 위해 "물가 안정화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에 노동조합 대표자들을 데려 오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한 뒤, (노동당의) 캘러헌은 마침내 그들에 맞서기로 결심하였다. 이른바 '불만의 겨울(winter of discontent)'이라고 불리는 1978년 말의 겨울이 왔고 여기에서 거대한 파업의 물결이 영국 경제 전체를 휩쓸었으며 사실상 마비 상태로 몰아가버렸다. 이러한 배경을 생각한다면 마거릿 대처가 1979년 5월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대처 여사는 승리를 거둔 직후 그녀의 보수적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겼다. 이를 구성하는 결정적인 요소들은 자유화, 규제완화, 사유화, 그리고 경제성장과 고용에서 큰 감소를 대가로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인플레이션과 노동조합을 반드시 때려잡겠다는 선전포고 등이었다."(58-9)


전후 시기만 해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세계 부동산시장은 금융체제 내에 별개의 부문을 형성하여 금융체제 내 다른 부분들과 거의 무관하거나 관계가 있더라도 엄격히 규제되었다." 그러나 시장자유주의의 세계화와 더불어 "1980년대 초 금융시장의 규제완화가 시작되면서 이런 양상은 크게 변하였다. 첫째, 새로운 대출기관들이 시장에 몰려들어 오면서 경쟁이 격화되었다. 둘째, 이자율에 제한을 두었던 나라들이 이자율 통제를 철폐하였다. 마지막으로, 부동산 대출을 위한 금융시장 자체가 비약적으로 발전해, 부동산 대출을 해준 뒤 이를 매각해 다른 이들에게 떠넘기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는 여러 결과를 초래했는데, 무엇보다도 부동산시장과 전국 금융시장, 심지어 국제 금융시장까지 서로서로 긴밀히 연계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제 전 세계의 투자자들이 유통시장에서 여러 부동산 대출을 매입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말이다."(77-8)


이제 "전체 경제를 분석 대상으로 삼는 거시경제학적 접근은 낡은 모자 취급을 당하게 되었고, (효율적 자본시장과 합리적 기대 가설을 바탕으로) 개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미시경제학적 접근이 전면에 나서게 된다."(91) 그러나, 미시적 접근은 미래를 과거로부터 통계적으로 유추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을 외면한다. 일례로, "VaR(위험감안가치, value at risk)란 위험의 척도로서, 포트폴리오가 일정한 기간 동안 손실을 볼 가능성을 얼마간의 확실성을 갖고 보여준다. 그 계산은 전적으로 과거와 관련된 데이터에 의존한다. 방법론적으로 이와 동일한 것이 금융 세계에 잘 알려져 있는 블랙-숄스 모델(Black-Scholes model)이다." 과거 데이터에 기반한 "이러한 위험관리모델들은 경기순환을 더욱 강화시키는 강한 효과를 갖게 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들은 자산시장에서 거품이 쌓여가는 과정을 더욱 증폭시킬 뿐만 아니라 그 거품이 폭발했을 때에는 그 뒷감당 비용 또한 증폭시키는 것이다."(99-100)


"1990년대 초부터 회계 조항들에 도입된 변화들 또한 이 효율적 시장이라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이는 미국으로부터 뻗어 나온 움직임으로서, 역사적 원가에 기초한 회계 규칙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지배적인 시장가치에 조응하는 가치 평가가 들어서게 되었다." 자산 가치가 떨어지는 기간에는 "이른바 '공정가치회계'라는 것이 자기자본의 부당한 감소로 이어지게 되며, 심지어 지급 능력의 문제와 생존의 문제까지 나올 지경이 된다. 특히 자산시장 인플레이션의 여파로 각별히 높은 배당금을 지급했던 기업들은 자기자본을 충당하는 데 써야 할 돈을 주주들의 배당금으로 흡혈귀에게 피를 빨리듯 내줬으니, 자기자본 상태가 좋지 못하며 따라서 모종의 위기가 닥쳤을 때에 이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만약 자산들의 가격이 여러 기초여건들을 제대로 반영하는 가격이 아니라면 공정가치회계라는 것도 결국 경기순환을 더욱 증폭시키는 경향을 띠지 않을 수 없다."(100-1)


변동환율제 하에서, "외환시장은 마치 자산시장처럼 기능하여 근본적으로 그곳의 행위자들의 기대와 예측으로 결정된다."(109)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기대와 예측의 형성이란 사회적 과정으로서 역사적 상황, 특수한 제도와 해당국의 상황 등 여러 요인들과 상호 연관되어 있음을 강조하였다. 경제행위자들이 제아무리 기초여건들을 성공적으로 찾아낸다고 해도 미래의 환율 변화를 알아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112) 결국 변동환율제는 "불안정한 국제 자본흐름이 지배하는 혼돈의 체제이며, 국제무역과 지구적 경제가 작동하기 위한 합리적을 틀을 제공해줄 능력이 없는 체제이다. 하지만 문제는 국내에서 생산된 재화 및 서비스와 해외에서 생산된 재화 및 서비스의 상대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환율의 운동이기 때문에 이것이 경제 전체에 심각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데 있다. 재화시장, 노동시장, 자산시장 모두가 교란당하지 않을 수 없다."(115)


프리드먼에 따르면 "통화정책은 오로지 가격안정 유지만을 업무로 삼아야 하며, 고용이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도록 보장하는 것은 통화정책이 아닌 노동시장의 임무다. 임금형성 메커니즘이 자유시장의 작동이 아니라 노동조합과 사용자 연합 등에 지배당하는 형태가 나타나고 노동의 수요와 공급에서 지역적 불균형 및 직종 간 불균형이 생겨나는 등 노동시장이 교란당하는 것이 실업의 원인─그렇게 나타나는 실업률이 '자연적' 실업률이다─이라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경제정책에 접근하면 실업과 싸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노동시장의 규제완화가 된다."(140-1) 반면, 케인스는 "노동시장의 역할과 의미를 재화시장에 대한 총수요라는 맥락 속에서 해석한다. 재화에 대한 수요야말로 생산 총량 그리고 경제 전체의 고용 및 실업을 결정하는 주된 요소이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노동시장은 여러 시장들로 이루어진 위계 서열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으며 자산시장과 재화시장의 지배를 받게 된다."(145)


금융위기에 맞서 각국 정부가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하면서 쌓이는 "공공부채의 저량(stock)을 GDP에 대한 비율로 측정했을 때 이것이 아주 높다면 무수한 부정적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첫째, 공공부채 수준이 높아지면 재분배에도 부정적 결과가 나오게 된다. 예를 들어 국가가 부채에 대해 지불하는 이자소득은 소득이 높은 집단에 흘러들어가며, 반면에 이 돈의 원천이 되는 조세는 중위 혹은 하위 소득자들이 내는 돈이다. 둘째, 공공부채가 높은 수준이 되면 고금리 시기가 나타나게 되는데, 이렇게 금리가 올라가면 다시 예산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마침내 예산 자금을 더 조달하기 어려운 지경이 될 수 있다. 셋째, 국가예산이 지나치게 부채를 안게 되면 신용시장에서 아예 퇴출당할 수 있다. 이는 특히 부채가 외화로 표시되어 있을 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개발이 덜 된 나라들의 경우 최근 몇십 년간 이 때문에 통화위기를 겪은 경우가 허다하다."(204)


"일반적으로 많은 나라에서 정부 부채가 크게 증가하였다. 미국에서는 총 공공부채가 1970년대 초에는 평균 45퍼센트 정도였지만 2010년에는 90퍼센트 이상이 된다(순부채는 65퍼센트 이상)." 이러한 숫자들을 볼 때 "시장자유주의가 득세하던 시대 동안 이데올로기적으로는 그토록 균형재정을 외치는 경향이 지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공공의 살림살이를 건전한 방식으로 운영하지 못했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이는 1970년대 이후 경험했던 경제적 불안정과 관련이 있으며, 또 경기순환을 극복하기 위한 지출을 충당할 만큼 세금을 올리는 일을 정치적으로 주저했던 것과 관련이 있다."(242-3) 공적인 개입 없이는 재화와 서비스의 공급이 불충분한 시장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간 선진국 세계 대부분의 정부가 스스로의 역할을 축소한 결과, 개별 나라의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경제 자체가 실질적으로 안정성의 파괴를 겪어야 했다."(251)


교육과 사회기반 시설에 대한 투자는 그 계획의 시간 지평이 장기적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철도나 자동차 도로에 대한 투자 그리고 교육은 모두 그 혜택이 40년은 족히 지속되는 것인 바, 이렇게 긴 시간의 미래를 놓고서 어느 만큼의 투자가 어느 만큼의 편익을 낳는지를 정확히 수량화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217) "상속세가 너무 높으면 중간 크기의 기업들은 파산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 기업 소유자가 죽으면 상속자들이 그 기업의 유동성 자금을 세금 납부에다가 너무 많이 써버려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상속자들이 상속세를 즉각 납부할 능력이 없는 기업들의 경우 정부가 사업에 일체 참견하지 않는 무명의 동업자(sleeping partner)가 되는 것도 일책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는 상속이 이루어지는 시점부터 기업 이윤의 일정한 몫을 보유하게 되지만, 상속자들은 돈이 생기게 되면 그 즉시 정부로부터 그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만드는 것이다."(222)


의료 부문 역시 정부가 개입하여 적절한 규칙과 규제를 부과하고 적극적인 재분배 정책을 펼쳐야 하는 영역 중의 하나이다. "의료보험 부문에서는 경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혜택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만약 경쟁을 행하는 방법이 보장성의 정도를 변화시키는 식이라면, 역선택 이론에 따라서 경쟁이 다음과 같은 결과를 낳을 것을 예견할 수 있다. 즉 보험 계약에서 일정한 조건에 해당하는 치료의 보장성이 갈수록 사라져 마침내 그 치료를 확실하게 필요로 하는 이들만이 그 치료를 보장해주는 보험을 구매하게 될 것이며, 이렇게 되면 그 의료보험은 아주 비싸지게 될 것이다. 더욱이 보험회사들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치료비를 낮추고 운영비를 줄이거나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가장 건강한 '고객들'을 가입시키려고 경쟁을 벌일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238)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의 증가에 맞서서 모든 형태의 소득에 동등하게 누진적 소득세를 매기고 그리고 여기에 정규적인 상속세까지 배치한다면, 기업 이윤에 대한 조세는 그 중요성이 줄어든다." 이러한 체제에서는 "법인세를 낮춘다고 해도 이것이 꼭 공공부문의 자금 불균형을 낳거나 사람들의 소득 및 자산 불균형이 위험할 정도로 증가하는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법인세를 낮추면 또한 기업 부문의 자본 기초를 강화하는 데도 도움이 되어 기업들이 부채에 의존하는 것을 줄일 수 있다. 법인 기업들에 대한 조세의 그 으뜸가는 목적은 투자를 장려하는 시스템을 조직하는 것이어야 한다."(222-3) "강력하고 경제를 안정시킬 수 있는 정부는 튼튼한 수입을 필요로 하며, 이 수입은 오로지 광범위한 조세와 누진적 소득세 체제로 최고 구간 한계세율이 50퍼센트에 근접하거나 그를 훌쩍 넘도록 만들어야만 제대로 보장될 수 있다."(252)


"경제성장은 분배가 더 공정하게 이루어질 것을 요구하며, 소득이 낮은 이들에게 더 높은 임금을 통하여 소비를 늘리도록 해주는 분배를 요한다. 그렇지 않고서 소비수요를 충분히 성장시키려면 일부 임금노동자들이 점점 더 많은 부채를 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미국과 여러 나라에서 서브프라임 위기를 겪은 이후, 명백히 막아야 할 사태임이 분명해졌다." 사람들은 일자리와 소득이 불확실해질수록 "가정경제 면에서 미래에 대비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당장의 소비수요는 더 낮아진다." 또한 소득분배는 국민소득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몫에 달려 있는데, 이것은 최근 몇십 년간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하락한 바 있다. 이 사실은 다른 무엇보다도 금융체제의 권력이 점점 커져서 더 높은 이윤 마크업을 강제할 수 있었다는 점을 반영한다. 만약 안정된 성장을 얻고자 한다면 임금이 차지하는 몫을 다시 올려야만 하며, 이는 다른 무엇보다도 금융시장의 개혁을 통하여 이뤄져야 한다."(257)


"지난 몇 십 년간 금융시장 규제의 개혁에는 하나의 근본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규제 당국조차 효율적 시장이라는 가설에 대한 신앙을 끈질기게 붙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규제는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되었다."(270) 그러나 현재 우리가 처한 지구적 금융 체제는 그에 걸맞는 지구적 관리를 필요로 한다. 한 국가의 규제를 피해서 다른 나라로 이전할 수 있는 규제 차익이 가능해지면 "은행들과 여타 금융시장 행위자들은 당연히 가장 규제가 가벼운 법체제나 장소로 활동 거점을 옮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림자은행 체제'라는 것이 생겨난 이래 지난 몇십 년간 목도해온 바이다. 그림자은행 체제는 여러 나라의 내부로부터 생겨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반적으로 규제 수준이 낮은 나라로 여러 거래를 이전함으로써 생겨나기 때문이다."(272)


국제적 자본이동을 규제하지 않는다면, "고정환율제를 쓰든 변동환율제를 쓰든 시장의 힘만으로는 지구적인 경제 안정과 번영이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일찍이 케인스는 "원칙상으로는 고정환율이지만 국가들 간에 경상수지 불균형이 출현하게 될 경우에는 새로 조정이 가능한 환율체제를 제안한 바 있었다. 이렇게 환율은 기축통화와의 등가를 중심으로 일정한 폭으로 오르내리게 되지만 그 진폭은 가급적 적어야 한다. 국가 간 경상수지 불균형이 발생했을 때의 조정 메커니즘으로 케인스가 그렸던 것은 흑자를 본 나라에서는 경기부양 정책이, 적자를 보고 있는 나라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긴축정책이 벌어지는 모습이었다." 나아가 케인스는 "적자국과 흑자국 모두에 대칭적인 조정과정을 장려하고 강제하기 위해서 경상수지 적자를 보는 나라들이나 흑자를 보는 나라들이나 모두 일정한 징벌적 조세를 도입할 것을 요구하였다."(295-6)


"한 나라의 국내 통화를 국제 통화로 그대로 쓸 경우 그 통화를 쓰는 나라들은 상당한 이점을 누리게 된다. 이 나라들은 자국 통화로 외국에서 차입을 해 올 수 있으며 자신들 대외무역의 큰 몫을 자국 통화로 거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나라들의 지폐와 주화는 전 세계적으로 유통되며 심지어 통화가 미약한 나라에서는 그 나라 통화를 밀어내기까지 하므로, 이를 통해 상당히 높은 소위 '화페주조세(seignorage)'의 이윤을 실현할 수가 있다. 하지만 불리한 점들도 있다. 그 하나는 각국 중앙은행들과 민간의 경제행위자들이 자신들의 화폐 자산을 보유할 때 대부분 국제통화로 보유한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투자는 단기 투자이며 그 결과 특히 국제적으로 중요한 준비통화 몇 가지가 함께 쓰이는 특징의 통화체제에서는 통화에서 통화로 자산을 재구조화하는 일이 벌어질 확률이 높다."(302)


"그러한 재구조화가 벌어질 때마다 그 통화를 발행한 나라는 외부에서 비롯된 경제적 혼란을 겪게 되고 그 여파로 통화 발행국만이 아니라 세계경제 전체가 부정적 효과를 입게 된다. 더욱이 국제통화를 발행하는 나라는 또한 그 통화에 대한 높은 수요 때문에 끊임없이 자본이 유입되는 결과를 보게 되며 이 때문에 지속적으로 환가치가 상승하게 된다. 이에 따라 지속적이고도 높은 경상수지 적자에 봉착하게 되며 이는 다시 국내 경제의 성장에 질곡으로 작용한다. 또 그런 나라가 적절한 통화정책을 추구해줄 것이라는 보장도 있을 수 없다." 달러 지배가 초래하는 위기를 "피하기 위한 현실성 있는 구상 하나는 IMF가 국제통화를 창출하되 이는 각국 중앙은행들 간의 거래에만 쓰이도록, 그리고 그들 간의 국제적 준비금으로만 쓰이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체제의 이점은 "전 세계의 중앙은행들이 안정된 준비통화를 갖게 된다는 데 있다."(303-4)


#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제성장을 위한 세 가지 질문

1. 우리는 어째서 이미 우리가 달성한 생산수준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경제성장을 원하는가?

- 인류의 대다수는 아직 빈곤선에 머물러 있으며, 부의 재분배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2. 환경 기반을 파괴하지 않고도 지속 성장이 가능한가?

- 장기적으로 재생불능의 투입요소를 사용하지 않는 생산과 소비는 불가피하며, 여기에 필요한 기술혁신 가능성은 낙관적이다.

3. 우리가 생산하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자를 실제로 찾아낼 수 있는가?

- GDP 측정 방식을 바꾼다. 즉, 소비재 중심의 재화와 서비스 측정을 친환경, 건강, 육아, 오락, 돌봄 등의 서비스 측정으로 전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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