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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고쳐쓰기 - 천박한 자본주의에서 괜찮은 자본주의로
세바스티안 둘리엔 외 지음, 홍기빈 옮김 / 한겨레출판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고정환율제를 채택한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서 각국의 국내 금융 분야들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부동산금융의 경우에는 금융시스템의 다른 부분들과 단절되어 국가의 긴밀한 통제를 받는 것이 예사였다. 소비자 신용은 종속적인 역할만을 수행하였고, 신용팽창은 비즈니스 부문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소비수요의 역동성이 기초가 된 것은 소득 증대였다. 미국 등 많은 나라에서 이자율에는 상한선이 정해져 있었다. 심지어 전통적으로 자본시장에 기초한 금융체제를 가져왔던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에서조차도 주식시장이 특출한 역할을 맡았던 것은 아니었다. 유럽 대륙과 일본 그리고 여러 개발도상국들에서는 은행 중심의 체제가 지배적이었으며 여기에서는 소위 '주거래 은행(house-banks)'이 기업들의 가장 중요한 외부 금융 원천으로 기능했다."(43-4) 이 시스템은 "1960년대 말부터 계속되던 위기를 겪은 후 1973년 2월 마침내 무너지고 말았다."(46)
1960년대 말 이후 달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미국으로부터 자본이 유출되었지만, 미 중앙은행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미국은 자국 통화의 가치 안정성을 돌볼 필요가 없었으며 그저 그 부담을 다른 나라들에 떠넘길 수 있었다. 미국은 이러한 자신들의 특권을 각별히 이용하였다." 오히려 "1971년 8월 당시 대통령이었던 닉슨은 외국 중앙은행이 보유한 달러는 더 이상 금으로 태환해 주지 않을 것이라고 공표하였고 이 때문에 달러에 대한 신뢰는 더욱 더 급격히 떨어지게 됐다." 이른바 '닉슨 쇼크'는 고정환율 체제를 잠식해 들어갔다. 달러의 가치절하를 막기 위해 강력한 외환시장 개입 정책을 펼치던 여러 나라의 중앙은행들─특히 제2의 외환 보유 통화로 자리매김한 마르크화의 독일─도 미 중앙은행의 수수방관 앞에 무기력했다. 결국 "독일의 분데스방크는 1973년 2월 12일 미국 달러 매입을 계속할 수 없다고 거부했고, 이로 인해 달러의 과감한 가치절하가 벌어졌다."(46-7)
# 유럽의 화폐 통합 과정
1. 통화 뱀(currency snake) 체제 : 변동환율제가 시행된 후 1972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6개국이 상호간 환율 등락폭을 2.25%로 제한하기로 합의
2. 유럽통화체제(EMS, European Monetary System) : 통화 뱀을 계승하여 1979년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베네룩스 3국 간에 고정환율제 창출
3. 유럽통화연합(EMU, European Monetary Union) 도입 : 1999년 유로화 출범
1960년대말 거의 모든 서방 산업국가에서 실업률은 역사상 최저 수준이었다. "그 결과 나타난 노동 부족 때문에 피고용자들의 시장 협상력이 강력히 지지되었고, 이것이 다시 명목임금의 상승을 떠받쳤다. 이는 한편으로는 단체협상에서 합의한 바의 임금상승 때문이었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합의한 임금률 이상으로 임금을 지급했기 때문이었다." 이와 함께 전개된 사회 개혁 운동들은 "민주적 제반 권리의 강화, 기회 균등의 확대, 노동자들의 지원, 교육체제의 변화, 소득분배의 공정함, 여성 해방 등 그 밖에도 더욱 진보적인 사회의 개념과 연결된 여러 사안들을 담고 있었다. 이러한 여러 개혁 운동들은 거의 필연적인 부산물로서 더욱 공격적인 임금정책을 낳았다."(54-5) 위기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혁 프로그램을 임금인상과 연계하고, 인플레이션 완화를 위한 임금인상 억제에 반대한 시도들은 향후 반동을 낳는 주요인이 된다.
1973년 오일쇼크가 터졌을 때 "실업률은 여전히 낮았기에 노동자들이 물가 상승으로 인한 (실질)임금의 손실을 보상하기 위한 임금인상을 힘으로 얻어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 결과 임금-물가 상승의 악순환 고리가 시작되었다. 임금이 올라가면서 기업에는 비용 압력이 가해졌고, 이는 다시 물가를 올렸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 또한 이와 비슷한 효과를 낳았다. 환율 통제를 걷어내자 수많은 나라들이 자국 통화의 가치절하로 타격을 받게 되었다. 외환가치 절하는 수입 가격의 상승을 낳으며, 특히 석유 가격 인상의 경우처럼 결국 물가수준 전반을 올리게 된다. 그리고 이에 따라 실질임금은 감소하게 된다. 오일쇼크뿐 아니라 임금-물가 상승의 악순환과 외환가치 절하 같은 효과가 누적적으로 발생한 나라들은 특히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56-7) 여기에는 1976년, 통화위기에 휘말린 파운드의 가치절하로 어려움을 겪던 영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영국은 IMF에 도움을 요청하였고 수많은 조건들이 붙기는 했어도 일정한 대출을 받아 상황을 타개할 수 있었다." 경제난 극복을 위해 "물가 안정화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에 노동조합 대표자들을 데려 오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한 뒤, (노동당의) 캘러헌은 마침내 그들에 맞서기로 결심하였다. 이른바 '불만의 겨울(winter of discontent)'이라고 불리는 1978년 말의 겨울이 왔고 여기에서 거대한 파업의 물결이 영국 경제 전체를 휩쓸었으며 사실상 마비 상태로 몰아가버렸다. 이러한 배경을 생각한다면 마거릿 대처가 1979년 5월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대처 여사는 승리를 거둔 직후 그녀의 보수적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겼다. 이를 구성하는 결정적인 요소들은 자유화, 규제완화, 사유화, 그리고 경제성장과 고용에서 큰 감소를 대가로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인플레이션과 노동조합을 반드시 때려잡겠다는 선전포고 등이었다."(58-9)
전후 시기만 해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세계 부동산시장은 금융체제 내에 별개의 부문을 형성하여 금융체제 내 다른 부분들과 거의 무관하거나 관계가 있더라도 엄격히 규제되었다." 그러나 시장자유주의의 세계화와 더불어 "1980년대 초 금융시장의 규제완화가 시작되면서 이런 양상은 크게 변하였다. 첫째, 새로운 대출기관들이 시장에 몰려들어 오면서 경쟁이 격화되었다. 둘째, 이자율에 제한을 두었던 나라들이 이자율 통제를 철폐하였다. 마지막으로, 부동산 대출을 위한 금융시장 자체가 비약적으로 발전해, 부동산 대출을 해준 뒤 이를 매각해 다른 이들에게 떠넘기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는 여러 결과를 초래했는데, 무엇보다도 부동산시장과 전국 금융시장, 심지어 국제 금융시장까지 서로서로 긴밀히 연계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제 전 세계의 투자자들이 유통시장에서 여러 부동산 대출을 매입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말이다."(77-8)
이제 "전체 경제를 분석 대상으로 삼는 거시경제학적 접근은 낡은 모자 취급을 당하게 되었고, (효율적 자본시장과 합리적 기대 가설을 바탕으로) 개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미시경제학적 접근이 전면에 나서게 된다."(91) 그러나, 미시적 접근은 미래를 과거로부터 통계적으로 유추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을 외면한다. 일례로, "VaR(위험감안가치, value at risk)란 위험의 척도로서, 포트폴리오가 일정한 기간 동안 손실을 볼 가능성을 얼마간의 확실성을 갖고 보여준다. 그 계산은 전적으로 과거와 관련된 데이터에 의존한다. 방법론적으로 이와 동일한 것이 금융 세계에 잘 알려져 있는 블랙-숄스 모델(Black-Scholes model)이다." 과거 데이터에 기반한 "이러한 위험관리모델들은 경기순환을 더욱 강화시키는 강한 효과를 갖게 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들은 자산시장에서 거품이 쌓여가는 과정을 더욱 증폭시킬 뿐만 아니라 그 거품이 폭발했을 때에는 그 뒷감당 비용 또한 증폭시키는 것이다."(99-100)
"1990년대 초부터 회계 조항들에 도입된 변화들 또한 이 효율적 시장이라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이는 미국으로부터 뻗어 나온 움직임으로서, 역사적 원가에 기초한 회계 규칙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지배적인 시장가치에 조응하는 가치 평가가 들어서게 되었다." 자산 가치가 떨어지는 기간에는 "이른바 '공정가치회계'라는 것이 자기자본의 부당한 감소로 이어지게 되며, 심지어 지급 능력의 문제와 생존의 문제까지 나올 지경이 된다. 특히 자산시장 인플레이션의 여파로 각별히 높은 배당금을 지급했던 기업들은 자기자본을 충당하는 데 써야 할 돈을 주주들의 배당금으로 흡혈귀에게 피를 빨리듯 내줬으니, 자기자본 상태가 좋지 못하며 따라서 모종의 위기가 닥쳤을 때에 이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만약 자산들의 가격이 여러 기초여건들을 제대로 반영하는 가격이 아니라면 공정가치회계라는 것도 결국 경기순환을 더욱 증폭시키는 경향을 띠지 않을 수 없다."(100-1)
변동환율제 하에서, "외환시장은 마치 자산시장처럼 기능하여 근본적으로 그곳의 행위자들의 기대와 예측으로 결정된다."(109)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기대와 예측의 형성이란 사회적 과정으로서 역사적 상황, 특수한 제도와 해당국의 상황 등 여러 요인들과 상호 연관되어 있음을 강조하였다. 경제행위자들이 제아무리 기초여건들을 성공적으로 찾아낸다고 해도 미래의 환율 변화를 알아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112) 결국 변동환율제는 "불안정한 국제 자본흐름이 지배하는 혼돈의 체제이며, 국제무역과 지구적 경제가 작동하기 위한 합리적을 틀을 제공해줄 능력이 없는 체제이다. 하지만 문제는 국내에서 생산된 재화 및 서비스와 해외에서 생산된 재화 및 서비스의 상대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환율의 운동이기 때문에 이것이 경제 전체에 심각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데 있다. 재화시장, 노동시장, 자산시장 모두가 교란당하지 않을 수 없다."(115)
프리드먼에 따르면 "통화정책은 오로지 가격안정 유지만을 업무로 삼아야 하며, 고용이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도록 보장하는 것은 통화정책이 아닌 노동시장의 임무다. 임금형성 메커니즘이 자유시장의 작동이 아니라 노동조합과 사용자 연합 등에 지배당하는 형태가 나타나고 노동의 수요와 공급에서 지역적 불균형 및 직종 간 불균형이 생겨나는 등 노동시장이 교란당하는 것이 실업의 원인─그렇게 나타나는 실업률이 '자연적' 실업률이다─이라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경제정책에 접근하면 실업과 싸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노동시장의 규제완화가 된다."(140-1) 반면, 케인스는 "노동시장의 역할과 의미를 재화시장에 대한 총수요라는 맥락 속에서 해석한다. 재화에 대한 수요야말로 생산 총량 그리고 경제 전체의 고용 및 실업을 결정하는 주된 요소이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노동시장은 여러 시장들로 이루어진 위계 서열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으며 자산시장과 재화시장의 지배를 받게 된다."(145)
금융위기에 맞서 각국 정부가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하면서 쌓이는 "공공부채의 저량(stock)을 GDP에 대한 비율로 측정했을 때 이것이 아주 높다면 무수한 부정적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첫째, 공공부채 수준이 높아지면 재분배에도 부정적 결과가 나오게 된다. 예를 들어 국가가 부채에 대해 지불하는 이자소득은 소득이 높은 집단에 흘러들어가며, 반면에 이 돈의 원천이 되는 조세는 중위 혹은 하위 소득자들이 내는 돈이다. 둘째, 공공부채가 높은 수준이 되면 고금리 시기가 나타나게 되는데, 이렇게 금리가 올라가면 다시 예산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마침내 예산 자금을 더 조달하기 어려운 지경이 될 수 있다. 셋째, 국가예산이 지나치게 부채를 안게 되면 신용시장에서 아예 퇴출당할 수 있다. 이는 특히 부채가 외화로 표시되어 있을 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개발이 덜 된 나라들의 경우 최근 몇십 년간 이 때문에 통화위기를 겪은 경우가 허다하다."(204)
"일반적으로 많은 나라에서 정부 부채가 크게 증가하였다. 미국에서는 총 공공부채가 1970년대 초에는 평균 45퍼센트 정도였지만 2010년에는 90퍼센트 이상이 된다(순부채는 65퍼센트 이상)." 이러한 숫자들을 볼 때 "시장자유주의가 득세하던 시대 동안 이데올로기적으로는 그토록 균형재정을 외치는 경향이 지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공공의 살림살이를 건전한 방식으로 운영하지 못했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이는 1970년대 이후 경험했던 경제적 불안정과 관련이 있으며, 또 경기순환을 극복하기 위한 지출을 충당할 만큼 세금을 올리는 일을 정치적으로 주저했던 것과 관련이 있다."(242-3) 공적인 개입 없이는 재화와 서비스의 공급이 불충분한 시장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간 선진국 세계 대부분의 정부가 스스로의 역할을 축소한 결과, 개별 나라의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경제 자체가 실질적으로 안정성의 파괴를 겪어야 했다."(251)
교육과 사회기반 시설에 대한 투자는 그 계획의 시간 지평이 장기적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철도나 자동차 도로에 대한 투자 그리고 교육은 모두 그 혜택이 40년은 족히 지속되는 것인 바, 이렇게 긴 시간의 미래를 놓고서 어느 만큼의 투자가 어느 만큼의 편익을 낳는지를 정확히 수량화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217) "상속세가 너무 높으면 중간 크기의 기업들은 파산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 기업 소유자가 죽으면 상속자들이 그 기업의 유동성 자금을 세금 납부에다가 너무 많이 써버려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상속자들이 상속세를 즉각 납부할 능력이 없는 기업들의 경우 정부가 사업에 일체 참견하지 않는 무명의 동업자(sleeping partner)가 되는 것도 일책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는 상속이 이루어지는 시점부터 기업 이윤의 일정한 몫을 보유하게 되지만, 상속자들은 돈이 생기게 되면 그 즉시 정부로부터 그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만드는 것이다."(222)
의료 부문 역시 정부가 개입하여 적절한 규칙과 규제를 부과하고 적극적인 재분배 정책을 펼쳐야 하는 영역 중의 하나이다. "의료보험 부문에서는 경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혜택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만약 경쟁을 행하는 방법이 보장성의 정도를 변화시키는 식이라면, 역선택 이론에 따라서 경쟁이 다음과 같은 결과를 낳을 것을 예견할 수 있다. 즉 보험 계약에서 일정한 조건에 해당하는 치료의 보장성이 갈수록 사라져 마침내 그 치료를 확실하게 필요로 하는 이들만이 그 치료를 보장해주는 보험을 구매하게 될 것이며, 이렇게 되면 그 의료보험은 아주 비싸지게 될 것이다. 더욱이 보험회사들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치료비를 낮추고 운영비를 줄이거나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가장 건강한 '고객들'을 가입시키려고 경쟁을 벌일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238)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의 증가에 맞서서 모든 형태의 소득에 동등하게 누진적 소득세를 매기고 그리고 여기에 정규적인 상속세까지 배치한다면, 기업 이윤에 대한 조세는 그 중요성이 줄어든다." 이러한 체제에서는 "법인세를 낮춘다고 해도 이것이 꼭 공공부문의 자금 불균형을 낳거나 사람들의 소득 및 자산 불균형이 위험할 정도로 증가하는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법인세를 낮추면 또한 기업 부문의 자본 기초를 강화하는 데도 도움이 되어 기업들이 부채에 의존하는 것을 줄일 수 있다. 법인 기업들에 대한 조세의 그 으뜸가는 목적은 투자를 장려하는 시스템을 조직하는 것이어야 한다."(222-3) "강력하고 경제를 안정시킬 수 있는 정부는 튼튼한 수입을 필요로 하며, 이 수입은 오로지 광범위한 조세와 누진적 소득세 체제로 최고 구간 한계세율이 50퍼센트에 근접하거나 그를 훌쩍 넘도록 만들어야만 제대로 보장될 수 있다."(252)
"경제성장은 분배가 더 공정하게 이루어질 것을 요구하며, 소득이 낮은 이들에게 더 높은 임금을 통하여 소비를 늘리도록 해주는 분배를 요한다. 그렇지 않고서 소비수요를 충분히 성장시키려면 일부 임금노동자들이 점점 더 많은 부채를 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미국과 여러 나라에서 서브프라임 위기를 겪은 이후, 명백히 막아야 할 사태임이 분명해졌다." 사람들은 일자리와 소득이 불확실해질수록 "가정경제 면에서 미래에 대비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당장의 소비수요는 더 낮아진다." 또한 소득분배는 국민소득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몫에 달려 있는데, 이것은 최근 몇십 년간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하락한 바 있다. 이 사실은 다른 무엇보다도 금융체제의 권력이 점점 커져서 더 높은 이윤 마크업을 강제할 수 있었다는 점을 반영한다. 만약 안정된 성장을 얻고자 한다면 임금이 차지하는 몫을 다시 올려야만 하며, 이는 다른 무엇보다도 금융시장의 개혁을 통하여 이뤄져야 한다."(257)
"지난 몇 십 년간 금융시장 규제의 개혁에는 하나의 근본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규제 당국조차 효율적 시장이라는 가설에 대한 신앙을 끈질기게 붙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규제는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되었다."(270) 그러나 현재 우리가 처한 지구적 금융 체제는 그에 걸맞는 지구적 관리를 필요로 한다. 한 국가의 규제를 피해서 다른 나라로 이전할 수 있는 규제 차익이 가능해지면 "은행들과 여타 금융시장 행위자들은 당연히 가장 규제가 가벼운 법체제나 장소로 활동 거점을 옮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림자은행 체제'라는 것이 생겨난 이래 지난 몇십 년간 목도해온 바이다. 그림자은행 체제는 여러 나라의 내부로부터 생겨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반적으로 규제 수준이 낮은 나라로 여러 거래를 이전함으로써 생겨나기 때문이다."(272)
국제적 자본이동을 규제하지 않는다면, "고정환율제를 쓰든 변동환율제를 쓰든 시장의 힘만으로는 지구적인 경제 안정과 번영이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일찍이 케인스는 "원칙상으로는 고정환율이지만 국가들 간에 경상수지 불균형이 출현하게 될 경우에는 새로 조정이 가능한 환율체제를 제안한 바 있었다. 이렇게 환율은 기축통화와의 등가를 중심으로 일정한 폭으로 오르내리게 되지만 그 진폭은 가급적 적어야 한다. 국가 간 경상수지 불균형이 발생했을 때의 조정 메커니즘으로 케인스가 그렸던 것은 흑자를 본 나라에서는 경기부양 정책이, 적자를 보고 있는 나라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긴축정책이 벌어지는 모습이었다." 나아가 케인스는 "적자국과 흑자국 모두에 대칭적인 조정과정을 장려하고 강제하기 위해서 경상수지 적자를 보는 나라들이나 흑자를 보는 나라들이나 모두 일정한 징벌적 조세를 도입할 것을 요구하였다."(295-6)
"한 나라의 국내 통화를 국제 통화로 그대로 쓸 경우 그 통화를 쓰는 나라들은 상당한 이점을 누리게 된다. 이 나라들은 자국 통화로 외국에서 차입을 해 올 수 있으며 자신들 대외무역의 큰 몫을 자국 통화로 거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나라들의 지폐와 주화는 전 세계적으로 유통되며 심지어 통화가 미약한 나라에서는 그 나라 통화를 밀어내기까지 하므로, 이를 통해 상당히 높은 소위 '화페주조세(seignorage)'의 이윤을 실현할 수가 있다. 하지만 불리한 점들도 있다. 그 하나는 각국 중앙은행들과 민간의 경제행위자들이 자신들의 화폐 자산을 보유할 때 대부분 국제통화로 보유한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투자는 단기 투자이며 그 결과 특히 국제적으로 중요한 준비통화 몇 가지가 함께 쓰이는 특징의 통화체제에서는 통화에서 통화로 자산을 재구조화하는 일이 벌어질 확률이 높다."(302)
"그러한 재구조화가 벌어질 때마다 그 통화를 발행한 나라는 외부에서 비롯된 경제적 혼란을 겪게 되고 그 여파로 통화 발행국만이 아니라 세계경제 전체가 부정적 효과를 입게 된다. 더욱이 국제통화를 발행하는 나라는 또한 그 통화에 대한 높은 수요 때문에 끊임없이 자본이 유입되는 결과를 보게 되며 이 때문에 지속적으로 환가치가 상승하게 된다. 이에 따라 지속적이고도 높은 경상수지 적자에 봉착하게 되며 이는 다시 국내 경제의 성장에 질곡으로 작용한다. 또 그런 나라가 적절한 통화정책을 추구해줄 것이라는 보장도 있을 수 없다." 달러 지배가 초래하는 위기를 "피하기 위한 현실성 있는 구상 하나는 IMF가 국제통화를 창출하되 이는 각국 중앙은행들 간의 거래에만 쓰이도록, 그리고 그들 간의 국제적 준비금으로만 쓰이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체제의 이점은 "전 세계의 중앙은행들이 안정된 준비통화를 갖게 된다는 데 있다."(303-4)
#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제성장을 위한 세 가지 질문
1. 우리는 어째서 이미 우리가 달성한 생산수준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경제성장을 원하는가?
- 인류의 대다수는 아직 빈곤선에 머물러 있으며, 부의 재분배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2. 환경 기반을 파괴하지 않고도 지속 성장이 가능한가?
- 장기적으로 재생불능의 투입요소를 사용하지 않는 생산과 소비는 불가피하며, 여기에 필요한 기술혁신 가능성은 낙관적이다.
3. 우리가 생산하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자를 실제로 찾아낼 수 있는가?
- GDP 측정 방식을 바꾼다. 즉, 소비재 중심의 재화와 서비스 측정을 친환경, 건강, 육아, 오락, 돌봄 등의 서비스 측정으로 전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