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로부터의 수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9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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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러분은 나한테 화를 내고 고함을 지르면서 두 발을 쾅쾅 구를 것이다, 나도 잘 안다. "당신 자신의 얘기만, 당신의 비참한 지하 생활 얘기만 할 것이지, 감히 우리 모두라고 둘러대진 말라."라면서. 죄송하지만, 여러분, 이 모두란 말로 변명을 하려는 건 아니다. 나 자신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실상 여러분이 감히 절반도 밀고 나가지 못한 것을 내 삶에서 극단까지 밀고 나갔을 뿐인데, 여러분은 자신의 비겁함을 분별이라 생각하고 이로써 스스로 기만하면서까지 위안을 얻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여러분보다는 훨씬 더 '생기로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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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 모두를 점령한 히끄무레한 변덕과 휘황찬란한 망상의 왈츠, 듣는 이 없는 허공에 쏟아내는 수다와 그 아래 깔리는 엄혹한 현실의 허기, 외면으로 점철된 타인의 냉소를 구멍 난 자존심에 담아 물처럼 들이키는 수치심까지,

없는 것 없는 이 사람.
내 안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찌질한 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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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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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주의는 생각하지 않는 것, 생각할 필요도 없는 걸 뜻하네. 요컨대 정통주의란 무의식 그 자체일세."

윈스턴은 그녀와 이야기하는 동안 정통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면서도 정통적인 태도를 갖는다는 게 얼마나 쉬운 일인가를 깨달았다. 어떤 면에서 당의 세계관은 그것을 이해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잘 받아들여졌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도 납득하지 못할뿐더러 현재 일어나고 있는 공적인 사건에 대해 무관심하기 때문에 가장 악랄한 현실 파괴도 서슴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무지로 인해 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유지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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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은 대상의 실존을 확인하는 일이다. 보는 것은 눈과 마음을 다하는 일이며, 한번에 그치지 않고 잊혀질때마다 되풀이하여 새기는 일이다. 도마의 의심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자의 것이 아니라, 보던 것을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된 자의 불안이다. 있음을 알던(믿던) 자만이 없음의 상실을 절감할 수 있다.

절대 권력이 아무리 텔레스코프와 사상경찰을 흩뿌려 감시해도 개개인의 머릿속에 든 생각을 볼 수는 없다. 대신에 그들은 검열하고 색출하고, 교정하면서 이단자를 잡아들이는 동시에 끊임없이 정통을 보여주어 마음 속의 이단을 삭제한다. 잊을 수 없도록 반복하고, 눈앞에 가져다놓아 확신의 등불을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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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은 빅 브라더의 거대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그 검은 콧수염 속에 숨겨진 미소의 의미를 알아내기까지 사십 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오, 잔인하고 부질없는 오해여! 오, 저 사랑이 가득한 품 안을 떠나 제멋대로 고집을 부리며 지내온 유랑의 삶이여! 진 냄새가 배어 있는 두 줄기 눈물이 그의 코 양옆으로 흘러내렸다. 그러나 잘되었다. 모든 것이 잘되었다. 투쟁은 끝이 났다. 그는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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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적 확신은 타율적 강요보다 강하며, 생명의 조건을 넘어서는 의지의 날개를 달아준다. 그러나 자립적이라는 말을 찬찬히 짚어보면, 그것의 원천과 재료들은 거의가 외부에서 받아들인 정보와 경험과 판단의 합성물임을 알 수 있다. 자립은 타율의 반대가 아니라 타율과 교감하며, 그것을 극복하는 힘인 것이다.

본성이냐 환경이냐의 논쟁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와 상호작용하는 환경은 단순히 물질적 사물만이 아니라 정신을 구성하고 지성을 고양하는 의식의 형성 과정을 포함한다. 같은 것을 보면서 다른 면을 생각하는 것이 자립적 의식이다. 이 자립은 홀로 서지만, 자신 밖의 홀로 섬을 볼 때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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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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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계명

1 무엇이건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
2 무엇이건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친구이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선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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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나' 같은 모습을 하고, '어떤' 변화도 용납하지 않고, 다름을 시도하는 것도 '안 되며', '모두' 고정된 자리에 머문다면, 그 종(種)은 출발과 함께 멸종했을 것이다.

종이에 쓰여진 법률은 수정이 가능하지만, 돌판에 새겨진 계명은 지우고 고쳐 쓸 수 없다. 다시 말할 수 없는 언어란 생명력을 소진하고 침묵의 품으로 돌아간 화석이다.

그리하여 대의(!)가 희생의 흙더미에서 꽃피우고 농장의 풍요(?)가 인간들을 감동시킬때 언어는 자의성을 회복하고 다시금 하나의 원칙으로 돌아갔으니 그것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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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된 계명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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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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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리의 죽음은 내가 쉽게 용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마일리는 용감하고 재능 있는 청년이었다. 그는 파시즘과 싸우기 위해 글래스고 대학의 자리를 내팽개쳤다. 또한 내가 목격한 대로, 그는 흠 잡을 데 없는 용기와 흔쾌함으로 전선에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그런데 저들이 그에게 해준 일이라고는 그를 감옥에 집어넣고 방치된 동물처럼 죽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
내가 이런 죽음에 화가 나는 것은 그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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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사건에 역사적 사실을 중첩하면 보이지 않던 진실의 일면이 드러난다는 말은 일정 부분 사실이다.

다만, 거기에는
1. 해석의 여지가 있는 사건인가?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풀이는 따분하다)
2. 현재를 미화하기 위한 인용이 아닌가?
(꽃의 아름다움을 알기 위해 새싹의 싱그러움을 상기할 필요는 없다)
3. 선악의 구도를 벗어나 있는가?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산 자는 굶주려도 입만은 살아 있다)
4. 역사적 결과를 확정된 미래로 착각하고 있는가?
(역사는 이정표이지 단선 철로가 아니다)
를 검토하는 관조의 자세가 필요하다.

즉, 역사의 물길을 잇대어 자신을 정당화하거나 예언자적 통찰을 과시하는 태도가 아니라, 유사한 상황과 인물구도의 결합이 전혀 다른 결과를 빚어내는 것이 인간 행위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앎은 삶을 되짚어볼 뿐,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인간은 지식과 실천, 용기와 겸손, 사려와 결단 사이에서 고뇌하는 시지프스이지, 정상과 지상에 동시에 거하는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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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와 죽은 자 1
제라르 모르디야 지음, 정혜용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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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프랑스 노동자가 뼈가 부서지도록 일하는 공장은 베트남과 중국의 노동자가 뼈가 부서지도록 일하는 공장의 생산성을 이겨낼 수 없다. 공장은 폐쇄되고 노동자들은 장마에 떠내려가는 부유물처럼 흩어진다. 숫자는 많은 걸 말해주지만 그 중 단 한 명의 삶도 담아내지 못한다.

앎은 힘들다. 사실의 본질을 제대로 알기까지 거쳐야 하는 과정의 무게가 힘들고, 기껏 알아낸 사실의 슬픔과 무기력함이 힘들다. 그래서 차라리 알고 싶어 하지 않고, 앎이 곁에 오지 않길 바란다. 고통을 외면하고 피해다닌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너무 멀리까지 연결되어버렸다.

산 자는 누구이고 죽은 자는 누구인가? 해고를 피한 자와 생계를 택한 자가 산 자인가? 반대로 해고를 당한 자와 신념을 지킨 자가 산 자인가? 삶은 어느 것으로도 답할 수 없다. 매일 밤 잠들고 매일 아침 다시 깨어나는 자신에게 물어볼 따름이다. 너는 산 자인가? 죽은 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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