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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철학 - 중판
조가경 지음 / 박영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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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키에르케고르는 자기의 주체적 사유를 객관적 사유에 대해 하나의 「교정안」(矯正案)으로 제시한 것이었다. 그의 교정책은 현실의 진리를 파악함에 있어서 객관적 사유가 평형을 잃었던 측면을 견제 내지 보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것이며, 결코 그 자체로 완전한 진리 체계일 것을 의도했던 것이 아니다." p222
선행하는 자연철학자들의 학문적 성과와 대결하여 '자연학(physis)에서 인간학(logos)로의 전환'을 모색한 소크라테스와 영웅주의를 숭상하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전통을 타파하고 좋음의 형상을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구상한 플라톤의 사유는 내전(stasis)에 빠진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교정안'이었다.
보편이성을 전제로 엄밀한 관찰과 실험에 기반한 자연과학의 성과가 인류 전체의 행복을 가져다주리라는 희망과 달리 대량 살육의 전쟁으로 마감한 현실의 폐허를 딛고, '사유'하는 주체에서 '존재'하는 주체로의 전환을 모색한 실존철학 역시 허무와 회의주의의 극단에서 생(生)의 의지를 되살리려는 몸부림이었다.
전쟁이 유발한 '주관적 언어 상태', 곧 말의 의미가 타락하는 전환기를 맞아 전자는 자연학의 절대적 기준을 대체할 수 있는 윤리,정치학의 절대적 기준을 세우려고 노력한 반면, 후자는 초월적 대상과 단독으로 마주한 주체적 사유를 제시하여 세계 안에 있지만 세계를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반(反)구성주의를 표방하였다.
이러한 실존철학의 입장은 일견 소피스트의 상대주의적 진리관을 떠올리게 하는데, 소피스트들이 상대성에만 몰두하여 하나의 합의된 원칙을 부정하고, 사회적 소통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거부한 것과 달리 실존철학은 궁극적으로 실존의 '결단'을 거쳐 절대적 초월성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존재'의 목적을 저버리지 않았다.
실존철학은 실존을 시간성 위에 놓인 유한한 존재로 파악하지만 이때의 유한성은 '제한'이 아니라 나의 한계를 한정짓는 '확보'이다. 존재자는 확보된 자신을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미완성의 자유로운 결단을 촉구하면서 신을 향한 수직적 믿음뿐만 아니라 세계와 교섭하는 수평적 물음을 통해 초월에 접근하고자 한다.
실존철학은 비합리적 직관주의를 바탕으로 과학적 합리주의를 포섭하고자 하였고, 실존을 지성의 선행조건으로 삼아 진리인식의 가능성을 담보하려 하였다. 우연적으로 세계에 던져진 존재의 필연성을 증명하고자 했으며, 종래의 모든 가치를 전복한 일체의 무(無) 위에 정화와 재건의 공간을 창출하려는 적극적인 의의를 제시하였다.
이러한 정립과 반정립의 통일 시도는 그들의 원천적인 대결의 대상이었던 헤겔의 방법론이라는 점에서 역설적이지만 실존 자체가 역리(逆理)를 포함한다는 면에서 받아들일만 하다. 다만 "결코 그 자체로 완전한 진리 체계일 것을 의도했던 것"이 아니었던 출발점의 열린 개방성은 방황하는 자의성의 한계를 봉합하는데 실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