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이라는 수수께끼 -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위기들
데이비드 하비 지음, 이강국 옮김 / 창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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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약화는 저임금을 의미하고 노동자가 가난해지면 시장은 위축된다. 임금억압이 지속되면 결국 기업의 증가하는 산출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자본축적의 한 장애물인 노동문제는 극복되지만 시장의 부족이라는 다른 장애물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 두 번째 장애를 어떻게 우회할 수 있었을까? 노동자가 버는 소득과 지출할 수 있는 금액 사이의 차이는 신용카드 산업의 등장과 부채의 증가로 메워졌다."(32-3) 수요문제를 해결하는 또다른 방법은 세계시장을 개척하고, 개도국들에게 대규모로 자본을 수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 더 많은 과잉자본이 생산에, 특히 중국의 생산에 투입되자, 생산자들 사이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가격 인하 압력이 거세졌고, 저임금과 저이윤이 동시에 나타났다. 그 결과 "점점 더 많은 화폐가 자산가치에 대한 투기에 몰려들었다. 바로 그곳이 이윤이 창출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49)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악명높은 닷컴버블의 형성과 함께, 부채가 폭발적으로 늘고 새로운 파생상품시장이 발전하면서 엄청난 액수의 과잉자본이 흡수"되었다. "이 모든 기회 앞에서 누가 굳이 생산에 투자하려 하겠는가?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자본주의 위기의 금융화(financialisation) 경향이 시작된 시점이었다."(49) "1973년 이후 전개된 금융화는 필요에 의한 산물이었다. 그것은 잉여흡수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해주었다. 그러나 과잉화폐, 즉 과잉유동성은 어디서 나왔을까? 1990년대가 되자 해답이 명확해졌는데, 그것은 바로 레버리지의 증가였다." 과잉자본의 금융화가 빠르게 진척되면서, 마침내 "2005년, 레버리지 비율은 30 대 1까지 높아졌다. 세계가 과잉유동성으로 넘쳐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 당연하다. 은행시스템 내에서 만들어진 과다한 가공자본이 잉여를 흡수하고 있었던 것이다!"(50)


"자본의 순환에서는 그 흐름의 연속성이 매우 중요하다. 이 과정이 중단되면 언제나 손실이 발생한다. 또한 순환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강력한 유인이 존재한다. 자본순환의 다양한 국면들에서 더욱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은 경쟁자들보다 더 높은 이윤을 얻는다. 유통의 가속화는 거의 언제나 더 많은 이윤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주로 그 속도를 더욱 빠르게 하는 혁신이 추구된다."(67) 자본의 순환은 또한 "공간 이동을 수반한다. 화폐는 어떤 곳에서 한데 모아져(assembled), 다른 어떤 곳에서 온 노동자원을 활용하기 위해 특정한 장소로 이동한다." 이러한 공간 이동의 "마찰이나 장애물은 극복하는 데 시간이 걸리며 자본순환을 느리게 만든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전 역사에 걸쳐, 이동을 더디게 하는 거리와 장애물을 줄이기 위해 많은 노력이 기울어져왔다. 운송과 통신의 혁신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68)


"자본가들은 왜 그들의 이윤을, 쾌락을 위해 소비해버리지 않고 생산확장에 재투자하는가? 이것이 '경쟁의 강제법칙'(coercive law of competition)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지점이다. 자본가로서 내가 확장에 재투자하지 않았는데, 만약 경쟁자가 그렇게 한다면, 얼마 후에 나는 파산할 가능성이 높다. 나는 시장에서 자신의 몫을 지켜내고 또 투자를 늘려야 한다. 나는 자본가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재투자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경쟁적 환경의 존재를 가정한다." 경쟁적 환경과 별개로 "자본가의 재투자를 추동하는 또다른 동인이 존재한다. 화폐는 개인들이 전유할 수 있는 사회적 권력의 형태다. 게다가 그것은 내재적 한계를 지니지 않는 사회적 권력의 형태다." 즉, 화폐의 무한성과 "그것이 제공하는 사회적 권력을 통제하려는 필연적 욕망이 더 많은 화폐를 갈구하는 사회적·정치적 유인을 두루 제공한다."(69-70)


"자본가들이 자본을 재투자할 때, 그들은 시장에서 사용 가능한 추가적인 생산수단을 찾아야 한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투입요소는 두 종류다. 하나는 생산과정에서 쓰일 수 있는 (이미 인간노동에 의해 가공된) 중간생산물(외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에너지와 옷감 등)이고 다른 하나는 기계류와 공장 건물, 생산활동을 지원하는 운송시스템, 운하, 항구 같은 물적 인프라 등을 포함하는 고정자본 설비다." 이때 "상품 혹은 생산에 투입되는 공급체인의 한 부분에서 나타나는 기술혁신은 다른 부분에도 필연적으로 혁신을 유발한다." 따라서 과거의 이윤을 새로운 자본으로 변환하는 과정은 "추가로 고용되는 노동자들의 생활을 위한 임금재뿐 아니라 생산수단의 수량이 계속 늘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달려 있다. 여기서 과제는 자본순환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물적 투입요소의 공급을 조직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자본은 확장에 앞서 그 스스로의 지속적 확장을 위한 조건들을 창출해야만 한다!"(102-3)


"국가계획 대 시장에 관한 이데올로기 투쟁은 차치하고 이 모든 것이 의미하는 바는, 사회적 노동분업이 점점 더 복잡해지는 세계에서 자본 흐름의 연속성이 공간과 시간에 걸친 흐름의 연속성을 촉진하는 적절한 제도적 장치들의 존재에 의존한다는 사실이다." 불행히도 이러한 프로젝트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시장에 의존하지 않는 "가치생산과 가치평가의 형태들을 공격한다. 간단히 말해, 비시장적인 그리고 비자본주의에 기초한 생활방식은 자본축적의 장애물로 간주되고, 따라서 이들은 자본주의의 거대한 수레바퀴를 구성하는 3퍼센트의 지속적 성장률에 길을 내주기 위해 소멸되어야만 한다."(105-6) 이처럼 생산수단을 자본가에게 집중시키는 자본주의의 위기 탈출 방식에는 "잠재적인 자연의 한계라는 더욱 근본적인 문제가 숨어 있다."(108) 경제학자 짐 오코너의 주도하에 몇몇 맑스주의자들은 "자연의 장애를 '자본주의의 두 번째 모순'(첫 번째는 물론 자본-노동 관계다)이라 불렀다."(115)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18세기 영국 자본주의 발전에서 잠재적인 자연의 한계 가운데 가장 심각해 보였던 한계가 화석연료의 도입과 증기엔진의 발명으로 훌륭하게 극복되었다는 사실이다."(117) 자본은 적절한 화폐 수익을 얻기 위해 스스로 인프라에 투자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환경은 공동으로 소유되고 그 사용에 대한 댓가를 수혜자에게 직접 부과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여기가 바로 다시 한번 국가가 개입하고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지점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세금을 징수해야 한다." 그 결과, "국가의 투자가 그 자체로 회수될 뿐 아니라 더 많은 인프라에 투입될 추가 수입을 확보하는, 국가-자본 순환의 한 형태가 만들어진다." 공간과 장소의 생산은 "오랫동안 엄청난 규모의 자본잉여를 흡수해왔다. 그 내부에서 자본이 깊은 모순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며 순환하는, 새로운 광경과 지리가 만들어져왔다."(128-9)


"끊임없는 축적의 마지막 잠재적인 장애는 투입된 화폐 더하기 이윤으로 교환되기 위해 새로운 상품이 재화 혹은 일종의 서비스로서 시장에 들어가는 지점에 존재한다. 상품의 특수성이 화폐의 보편성으로 전환되어야만 하는데, 이는 (가치의 일반적인 표상인) 화폐로부터 상품으로의 전환보다 훨씬 더 어렵다. 판매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특정한 상품을 필요로 하고, 바라며 혹은 욕망해야 한다." 잠재적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욕구와 필요를 조작하는 광고 이상으로, "특정한 상품과 서비스의 묶음을 소비하도록 만드는 일상생활의 조건을 형성"해야만 한다.(155-6) "유효수요라는 수수께끼에 대한 가장 중요한 해답은 자본가들의 소비가 그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더욱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어제의 잉여생산물에 대한 유효수요는 노동자의 소비와 자본가의 소비, 그리고 내일의 추가적인 생산의 확장으로 인해 유발되는 새로운 수요에 의존한다."(160-1)


"어제의 잉여상산물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바로 생산의 확장이며 그 시간차를 메우기 위해 신용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으면, 신용이 추동하는 지속적인 자본축적이 자본주의의 생존을 위한 조건이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외부 가능성이 고갈된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본주의는 사실상 스스로의 유효수요를 만들어내고 내부화해야만 한다. 현재의 경우처럼 이것이 실패한다면 생산의 지속적 확장에 대한 장애들로 인해 위기가 발생한다."(163-4) 자본주의에서 "유효수요 부족으로 인한 이윤저하와 감가의 문제는 신용시스템의 책동을 통해 잠시 극복될 수 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신용이 작동하여 여러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큰 모순과 갈등을 만들어낸다. 신용은 위험을 분산함과 동시에 위험을 축적한다. 진정한 문제는 유효수요의 부족이 아니라, 어제의 생산에서 얻어진 잉여의 수익성 있는 재투자 기회가 부족하다는 것이다."(167)


위기에 대응하는 자본주의 진화의 궤적 안에는 7개의 특정 '활동 영역'이 있다. "기술과 조직형태, 사회적 관계, 제도적·행정적 장치, 생산과 노동 과정, 자연과의 관계, 일상생활과 종의 재생산, 그리고 (문화 규범과 믿음 체계로 대표되는) '세계에 관한 정신적 개념'. 이 가운데 어떤 영역도 다른 것들로부터 독립적이지 않지만 동시에 어떤 영역도 지배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어느 하나도 다른 모든 것들에 의해 집합적으로조차 결정되지 않는다. 각각의 영역은 스스로 진화하지만 언제나 다른 영역과 역동적으로 상호 작용한다."(178) 즉, 집단적으로 공존하고 공진화(co-evolution)한다. "영역들 간의 불균등발전은 갈등과 모순뿐 아니라 우연적 사건을 만들어낸다(다윈주의 이론에서 예측 불가능한 변이가 우연적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게다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어느 영역의 폭발적인 발전은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185-6)


"전세계의 늘어나는 인구의 대부분이 현재 살아가는 '도시'의 생산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제 각각을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자본축적에 점점 더 통합되어왔다."(212) "화폐, 상품, 그리고 사람들의 지리적 흐름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 모든 다양성이 효율적인 교통통신 시스템을 통해 함께 결합되어야만 한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생산과 소비의 지리는 공간을 가로지르는 시간과 비용에 매우 민감하다. 이 시간과 비용은 기술적·조직적 혁신과 에너지 비용의 하락으로 인해 크게 감소해왔다. 거리의 장벽은 이제 자본주의의 지리적 이동성을 제한하는 데 점점 더 적은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것이 지리적 차이가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은 정반대다. 즉 매우 작은 비용의 지역적 차이도 이윤을 크게 높여주기 때문에, 이동성이 높은 자본은 그것에 민감하게 주의를 기울인다."(231)


# 사회적 재생산과 자본 축적을 이해하기 위한 지리적 원칙들

1. 시공간압축(time-space compression) : 자본축적에 관한 모든 지리적 한계를 극복한다. 자본가계급은 공간에 대한 우월한 지배와 이동성을 갖고 있다.

2. 자본의 순환은 태생적으로 매우 좁은 공간(the head of a pin)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자본 축적은 화폐를 지닌 누군가가 이윤을 얻기 위해 임노동을 고용하는 모든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난다.


그 시작부터, "도시들은 잉여식량과 잉여노동의 사용가능성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이 잉여들은 어딘가에서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으레 농촌인구의 착취 혹은 농노와 노예의 착취로부터) 동원되고 추출되었다. 잉여의 사용과 분배는 (종교적 과두제 또는 강력한 군사지도자 같은) 소수에 의해 통제되었다. 따라서 도시화와 계급의 형성은 언제나 함께 진행되었다. 자본주의하에서는 이러한 일반적인 관계가 지속되지만, 이와는 다른 동학도 작동한다. 자본주의는 잉여의 영속적인 생산을 위한 사회의 계급형태다. 이는 자본주의가 언제나 도시화가 진행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잉여의 흡수와 인구증가가 문제가 되는 만큼, 도시화는 이 둘 모두를 흡수하는 결정적인 방법을 제공한다."(238) "미국의 교외화는 단지 새로운 인프라의 문제가 아니었다. 파리 제2제정기에 그랬던 것처럼, 그것은 생활방식의 극적인 변화, 즉 고속도로와 자동차에 기초한 새로운 생활을 의미했다."(242)


"도시지리의 개조에는 생활방식의 전환이 뒤따른다. 미국에서 나타난 이러한 전환은 대부분 1960년대 도시지역의 불만을 완화하기 위해 필요했다. 스펙터클한 경제에 대한 끊임없는 의존뿐 아니라 소비주의, 관광, 틈새 마케팅, 문화·지식 기반 산업이 도시 정치경제의 주요한 측면이 되었다." 아울러 "틈새시장의 형성을 도와주는 포스트모던 취향은 현대의 도시 경험을, 돈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자유라는 향기 가득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도시의 변화를 통한 "잉여흡수의 어두운 측면은 '창조적 파괴'를 통한 도시의 재구조화가 여러차례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 창조적 파괴는 도시 재구조화의 기회로서 위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과정에서 주로 고통받는 이들은 불우하고 정치권력에서 소외된 빈곤층이기 때문에 그것은 계급적 차원도 지닌다."(248-50) 베블런은 '유한계급(leisure class)'의 부는 "산업생산의 영역만큼이나 토지와 도시개발과 관련된 투기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257)


"이제 세계경제 내에서 지역과 국가를 더욱 '경쟁적'으로 만드는 것이 공공정책 형성의 기본이 되는데, 이는 보통 이웃을 더욱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더 나은 종류의 사람들을 유치하는 것이 그 지역 시민조직의 핵심목표가 되는 것(이는 지역의 수많은 '님비' 정치를 만들어낸다)과 비슷하다. 이로써 지역의 정부들이 서로 경쟁하기 시작한다. 이제 계급적 차이를 넘어서는 지역의 단결이, 이동하는 자본을 마을로 끌어들이는 노력에서 중요해진다. 자본의 투자와 고용의 기회를 모두 가져올 지역개발 프로젝트에 관해서라면, 지역의 상공회의소와 노조는 서로 싸우기보다는 협력하게 된다. 장소의 판매와 브랜드화 그리고 (국가를 포함한) 어떤 장소의 이미지를 포장하는 것이 자본주의적 경쟁이 작동하는 데 불가결해진다. 역사, 문화 그리고 소위 자연적 우위에 의해 주어진 요소들을 토대로 한 지리적 차이의 생산이 자본주의의 재상산 속에 내부화된다."(286-7)


자본주의가 약속하는 개인적 해방과 자유가 "사유재산과 시장이라는 제도적 장치들을 통해 조정되면 엄청난 불평등이 나타난다. 맑스가 오래전에 지적했듯이, 17세기의 사상가 존 로크가 주장했던 개인의 권리에 관한 자유주의 이론은, 생존을 위해 노동력을 팔 수밖에 없는 이들로 구성되는 계급과 신흥자본가 계급 사이에 심화된 급격한 불평등을 정당화한다."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 이론은 "이러한 관계성을 더욱 뚜렷이 보여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국가의 폭력(즉, 파시즘과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급진적 평등주의와 개인의 권리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신성불가침의 사유재산권을 사회질서의 핵심에 새겨넣는 것이다. 자본축적과 계급권력의 재생산에 효과적으로 맞서려면 이 뿌리깊고 굳건한 견해에 도전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급진적 평등주의가 진정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들의 영역에 소유권에 관한 완전히 새로운 개념─사적 소유권이 아닌 공동의 소유권─이 필요하다."(329)


"자본주의는 생존을 위해 급진적인 경영자 평등주의(enterpreneurial egalitarianism)에 기초하지만, 자본주의 생존의 핵심 기둥은 사적 소유와 그 제도적 형태를 유지하고 보호하는 데 헌신하는 국가다." 맑스의 유명한 표현대로 "동등한 권리들 사이에서 (어느 것이 중요한지는) 권력이 결정한다." 좋든 싫든, "계급투쟁이 급진적 평등주의의 정치에 핵심사안이다."(330) 자본주의 혁명의 긍정적인 면은 "그것이 (군주와 교회 같은) 전제적 봉건제로부터 권력을 빼앗았고, 창조적 에너지를 해방시켰으며, 새로운 공간을 열어젖혔고, 교환관계를 통해 세계를 더욱 긴밀하게 엮었으며, 사회를 기술과 조직적 변화의 강력한 흐름에 개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신과 무지에 기초한 세계를 극복하고, 그것을 물질적 필요와 요구로부터 모든 인류를 해방할 잠재력을 지닌 계몽된 과학에 기초한 세계로 대체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빼앗기지 않았다면 이 가운데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3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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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 - 냉전시대 경제학 교류의 숨겨진 역사
조하나 보크만 지음, 홍기빈 옮김 / 글항아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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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가 사회주의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신고전파 경제학의 창시자들은 전체 경제를 다룬 수리 모델들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서 자유로운 경쟁적 시장은 생산, 분배, 소비에 있어 최적의 결과들을 낳게 되어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 그런데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지만, 1890년대가 되면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또한 경쟁적 시장경제가 중앙계획경제와 수학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경제학자들은 새로운 신고전파 이론과 분석 도구를 개발하기 위해 "중앙계획당국과 생산수단의 국가 소유가 실현되는 모종의 '사회주의국가' 모델들을 발전시켰다. 그 결과 순수한 시장경제와 중앙계획 사회주의가 신고전파 경제학의 중심에 나란히 존재하게 된다. 물론 이는 경제학자 개인의 정치적 입장과는 무관한 일이다."(29-30)


"둘째, 신고전파 경제학의 방법론에서 사회주의가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주의 동구권과 자본주의 서방의 경제학자들은 몇십 년에 걸쳐 사회주의와 시장에 대한 대화를 진행할 수가 있었다." 경제학계의 여러 지도적 인사들이 참여한 이러한 "초국가적 대화는 신고전파 경제학에 근본적 중요성을 갖는 여러 기여를 가져왔고, 이렇게 해서 발전하게 된 신고전파 경제학은 신자유주의의 모습을 만들어나가게 된다. 셋째, 신자유주의는 이렇게 초국가적으로 벌어졌던, 경쟁적 시장을 지지하는 사회주의 논의를 자신의 일부로 통합했으나, 정치적·경제적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사회주의자들의 외침은 들어내버리고 그 자리에 위계적 제도들을 요구하는 자본주의적 주장을 가져다 놓았다."(33-5) 한마디로 "신자유주의의 가장 분명한 특징은 자유롭고 아무 구속이 없는 경쟁적 시장을 옹호한다는 점, 즉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말을 빌자면 그 '시장 근본주의'에 있다."(24)


영국의 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부와 소득의 분배에 대한 연구를 포괄하는 정치경제학으로의 전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부가 생산되는 조건과 법칙들은 물리학적 진리의 성격을 함유하고 있다. (그러나) 부의 분배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이는 오로지 인간 세상의 제도가 어떻게 짜여 있느냐의 문제다." 무수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사회주의자들이 퍼붓는 비난에 대응하여 여러 경제학자 또한 그들 직종이 전통적으로 보여왔던 자유방임에 대한 지지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신고전파 경제학자들 중에 이렇게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에 동조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들도 지적인 차원에서 마르크스주의에 동조할 수는 없었다. 그 으뜸가는 이유는 마르크스가 노동가치론을 신봉했기 때문이다.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고전파 경제학과 노동가치론에 대한 비판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이론은 물론 정체성까지도 구축했다."(53) 신고전파 이론의 핵심은 경제적 법칙의 '물리학적 진리의 성격'이었다.


발라가 개발한 "일반 균형 모델은 전체 경제를 일련의 방정식들로 묘사하며, 이를 통해 이 경제가 어떻게 수요와 공급의 최적의 균형 지점인 균형 상태에 도달하며 또 거기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자유로운 경쟁이 이루어지는 경제에서는 기업들이나 개인들이나 모두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취하는 균형가격을 향해 움직이게 되어 있다는 것으로, 이 과정을 발라는 '탐색tatonnement'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분석에서 참으로 흥미롭고도 중요한 부분은, 발라가 이 과정을 매개하는 존재로서 모종의 경매자를 상상했다는 점이다. 이 경매자가 여러 상품의 가격을 공표하고 또 그 가격을 변화시켜서 수요와 공급이 균형에 달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발라의 일반 균형 모델에서 기업들은 한계비용에 근거하여 시장에서 경쟁하고 균형가격을 받아들임으로써, "사회의 만족을 극대화시키면서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최소화한다."(55)


발라가 보기에 "사회주의란 자유경쟁과 사회 정의가 실현되는 데 필요한 여러 제도를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사회주의가 성립하면 토지와 천연자원에 대한 국가 소유가 나타날 것이며 소득세는 폐지될 것이다. 그 다음엔 국가가 토지와 천연자원의 소유자로서 이를 무수한 개인 및 집단들에 임대해줄 것이며, 이로써 여러 독점체가 제거되고 자유경쟁이 가능해진다. 토지와 천연자원의 임대를 통해 국가는 충분한 수입을 얻게 되므로 소득세는 불필요하며, 노동자들은 자신의 저축을 투자로 돌리는 것이 가능해지고 이로써 '계속해서 노동자이기는 하겠으나 그와 동시에 소유자 혹은 자본가'가 될 수 있다. 발라에게 "완전경쟁, 사회주의, 신고전파 경제학, 수학 등은 단순히 서로를 보완하는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하나가 없다면 다른 것도 있을 수 없는 필수불가결의 관계에 있었다."(56) 신고전파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사회주의는 자유경쟁 경제를 창출하는 도구적 개념인 셈이다.


파레토는 모종의 '사회주의 국가'를 사용하여 "신고전파 경제학을 좀더 일반적으로 이론화하고 있다. 파레토에 따르면, 사회주의 국가는 모든 생산을 안배하며, 생산수단의 집단적 소유권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 안의 모든 개개인에게 안녕─혹은 효용─을 극대화할 것을 추구한다다. 이렇게 사회적 효용을 극대화해주는, 따라서 파레토 최적이라 할 수 있는 안배 상태로부터 무슨 변동이라도 있을 경우, 그 덕분에 누군가는 더 잘 살게 될지 모르지만 또 동시에 다른 누군가는 더 못살게 될 것이다. 파레토는 '생산 전담부Ministry of Production'라는 것을 상상해내어 이것으로 발라의 경매자 개념을 대체한다. 이 '생산 전담부'란 곧 발라가 완전경쟁 경제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했던 여러 방정식을 풀어주어 균형가격을 계산해내며, 그 다음에는 이 가격을 사용하여 사회적 후생을 극대화하게 된다."(59-60)


"폴라니는 국가가 아니라 생산자 결사체들과 소비자 결사체들이 생산과 가격에 관련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폴라니는 마르크스주의와는 대조적으로, "모종의 '시장'을 갖추고 있는 사회주의의 '현실적인 경제 학설positive economic doctrine'을 추구했고, '사회주의 이행 경제의 한 유형'을 발전시켰다. 폴라니가 지지했던 것은 케인스주의의 정신에 입각한 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이나 혼합경제가 아니었다. 그가 옹호했던 것은 경쟁적인 시장과 여기에 탈중앙화된 민주적인 여러 노동자들의 제도가 곁들여져 있는 것으로서, 이는 널리 퍼져 있었던 신고전파의 관점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시장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에 대한 모종의 새로운 신고전파 모델을 창조한 셈이다. 이 시장사회주의는 권위주의적인 중앙 국가를 넘어서서 급진적인 경제 및 정치 제도들을 갖춘 사회민주주의에 더욱 적합한 모델로 개발된 것이었다."(64-5)


반면, 미제스는 사회주의 경제란 "사적 소유와 시장가격을 뿌리 뽑고서 그 자리에 중앙계획의 현물교환을 가져다 놓는 것이라고 이해했으며, 그 점에서 노이라트와 같은 견해였다. 미제스가 보기에 노이라트의 문제는 그러한 과정에 어떤 난점들이 숨어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었다. 시장, 사적 소유, 시장가격 등이 없다면 경제에서 합리적인 행동의 결정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주의와 시장이란 서로를 배제하는 범주들이라고 여겼다. 따라서 미제스에 따르자면 사회주의─중앙계획경제로 이해된다면─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미제스와 시장사회주의자들은 모두 "신고전파 경제학을 공유하고 있었지만 정치적인 견해는 달랐고 경제학 자체에 대해서도 견해가 달랐다. 마르크스주의자들 또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이해했던 점에서 미제스는 (오히려) 시장사회주의자들보다는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더 많은 점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68-9)


하이에크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완전히 분리하여, 오늘날 우리가 흔히 받아들이는 신자유주의 개념을 정립한 장본인이다. 1931년 런던정경대학LSE에 도착한 하이에크는 자유시장과 사회주의를 동시에 신봉하는 당대의 학생들에 맞서 "1920년대의 미제스, 1902년의 피르손이 쓴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문과 게오르게 할음과 하이에크 그리고 엔리코 바로네가 1908년에 제시했던 사회주의 수리 모델 등을 게재했다. 사회주의를 놓고 벌어졌던 논쟁에서 이렇게 여러 다른 시대에 쓰인 저작들을 하나로 묶음으로써 하이에크는 이 저작들을 그 역사적 상황과 논쟁의 맥락으로부터 탈각시켜버렸다. 그는 사회주의를 탈역사화시켜, 그 정의를 오직 국가 소유 및 모든 물적 생산자원의 중앙계획만을 뜻하는 것으로 좁혀버렸다. 하이에크는 이렇게 함으로써 사회주의와 시장을 날카롭게 구별해버린 미제스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했다."(73)


1930년대 이후 경제 성장은 국가의 자기정당성의 기초가 되었고, 군부는 "신고전파 경제학이 병참학적 계획에 쓸모가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순수 시장 모델과 중앙계획 사회주의 모델을 자유롭게 오고 갔었던 바, 중앙계획으로 조직되는 군부야말로 신고전파 경제학에 밀접한 연관을 가진 곳이었다."(109) 1951년 애로는 권위주의적 경제계획을 거부하고 "투표와 시장이 최적으로 또 민주적으로 기능하도록 해줄 여러 제도를 옹호"했지만,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치는 당대의 분위기는 "노동자의 생산 통제 혹은 경제적 민주주의 등과 같은 제도들"을 논의할 수 있는 통로를 막아버렸다. "서방에서나 동유럽에서나 좀 더 권위주의적인 정치 및 군부 엘리트들은 기존의 위계적 제도들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여 그들의 권력을 지탱해주는 협소한 형태의 신고전파 경제학만을 지지했던 것이다."(119)


사회주의 자주 노선을 주창하여 어려움에 처한 "유고슬라비아 지도부는 소련의 국가사회주의와 미국의 국가자본주의 모두가 절망적으로 관료적·독점적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이들은 유고슬라비아의 나아갈 길은 국가의 사멸을 진전시킴으로써 공산주의에 더욱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유고슬라비아를 오랫동안 관찰했던 한 연구자는 이 체제를 '자유방임 사회주의'라고 부른다. "유고슬라비아 지도부는 국가의 여러 임무를 산하의 공화국들 그리고 기업 수준으로 내려 보냄으로써 국가의 탈집중화와 해체를 꾀했다. 첫째, 개별 공화국들은 중앙정부로부터 전력, 광산, 농업, 임업, 경공업, 공공근로 등의 감독 등과 같은 많은 행정 임무를 넘겨받았다. 둘째, 기업에 대한 국가의 개입 대신에 노동자 평의회가 공장들의 통제권을 쥐고 작업장 내에서의 경제민주주의를 실현하도록 되어 있었으니, 이것이 노동자 자주관리worker self-management라고 불린 것이다."(157-8)


유고슬라비아의 시장사회주의는 오스카르 랑게의 이론과 유사하다. "랑게의 모델에서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직업과 소비 품목을 스스로 선택하며, 이것들의 가격 혹은 임금은 경쟁적 시장에서 결정된다. 생산 활동 혹은 자본에 대해서는 시장이 존재하지 않으며, 대신 중앙계획 이사회가 최초의 가격(혹은 이자율)을 임의로 정한다. 랑게에 따르면, 그후에는 경쟁적 시장이 스스로를 교정하면서 과도한 공급 혹은 수요에 대응하여 가격(혹은 이자율)이 변동하게 된다. 기업들은 이윤 극대화가 아니라 다음 두 가지 규칙을 따른다. 첫째, (평균)생산비용을 최소화할 것. 둘째, 가격과 (한계)생산비용을 일치시킬 것. 이 모델은 국가가 자본 및 천연자원을 포함한 생산수단을 소유한다는 점에서도 사회주의이지만, 피고용자들이 자기들 소득에 덧붙여서 자본과 천연자원에서 발생하는 몫의 일부를 사회적 배당금으로(이는 자본주의에서는 주주들에게 돌아가는 몫이다) 수취한다는 점에서도 사회주의이다."(166-7)


헝가리의 당-국가는 "1968년 1월 1일 신경제메커니즘NEM을 도입했다. 이 NEM은 헝가리의 사회주의 실천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NEM 하에서는 국가가 생산수단의 공공소유를 갖지만, 소련식 중앙계획에서 본질적인 부분이었던 기업에 대한 의무적 생산 목표가 폐지되었다. NEM은 국가의 계획을 오직 국민경제의 주된 목표들을 정하는 것과 또 경제 발전의 주요한 여러 사항들의 비례에 대한 것으로만 제한했다. 경제계획가들은 강제적인 행정 수단 대신 간접적인 금융적 혹은 경제적 수단들을 사용하여 기업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짜놓은 계획을 실행하도록 만들 수 있었다. 랑게의 시장사회주의 모델 그리고 신고전파 경제학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기업들은 정부가 방향을 지휘하는 큰 투자들 이외에는 자율적으로 움직이도록 되어 있었고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도록 상정되었던바, 이윤 극대화가 기업을 움직이는 인센티브로 대두되었다."(246-7)


1950년대 초·중반에 "새로운 사회적 운동과 사회적 행위자들이 나타났으며 미국에서는 메카시즘에 대해, 소련에서는 스탈린주의에 대해 반작용이 생겨났다. 여러 집단이 서방 자본주의와 소련의 국가사회주의를 모두 비판하고 CESES(밀라노의 경제 및 사회문제 연구센터)와 같은 새로운 기관들을 만들어 두 체제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적 형태들을 토론하면서 이 냉전의 양대 축 내부와 사이와 그 너머에 간극적 공간을 확장했다."(257) "간극적 공간이 이탈리아에서 나타났던 이유는 다름 아닌 이탈리아에 강력한 공산당이 있었기 때문이다."(262) 이탈리아 공산당을 거부한 "전직 공산당원들이 만들어낸 공간은 이탈리아 내부에 이미 존재하던, 소수의 반소련 사회주의 문화와 연계를 맺게 된다. 이탈리아는 파시즘과 냉전 때문에 가로막힌 상이한 여러 형태의 민주적 사회주의를 창출하려는 오랜 노력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264)


1960년대 미국과 여타 지역의 소련학 학자들은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공격 이후 "정태적인 전체주의 모델의 단점들을 인정하고 동유럽 블록에서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이론적 도구들을 찾아 헤맸다."(271) 이념적으로 안전한 소련학을 동원하여 좌파를 무찌르고 우익의 신봉자들을 길러내고자 했던 우익 헤게모니 프로젝트는 한때 "냉전 지형의 변동, 현실 사회주의의 변화, 소련학 혁명, 초국가적으로 연결된 간극적 공간의 이질적 성격 등으로 인해 잠식당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 이념적으로 좀더 안정된 시대가 오자 "우익들은 CESES와 같은 간극적 공간들을 서방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냐 끝장나버린 소련 사회주의냐라는 이분법에 억지로 끼워 맞추고 그 틀 안에 넣어버림으로써 자기들 멋대로 써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간극적 공간으로부터 나온 지식이 서방 자본주의 헤게모니의 핵심을 유지하면서도 서방 자본주의를 바꾸어버리는 일이 벌어졌다."(294-5)


"사실상 통화주의자들과 케인스주의자들은 신고전파 경제학 방법을 공유하며, 이 방법은 경쟁적 시장과 중앙계획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여러 비판과 논쟁의 원인은 시장이냐 국가냐 따위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1960년대에 걸쳐서 "시카고 신고전파 경제학은 보수 세력들에게 오래도록 꼭 맞게 되는 협소한 버전의 신고전파 경제학을 더욱 더 발전시킨다. 다른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접근에 반대했다." 프리드먼 등은 신고전파 경제학을 "개개인들이 완전히 합리적이며 시장들이 완전히 경쟁적이라고 가정하는 아주 편리한 허구로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프리드먼의 논리에는 "사적 소유권을 법으로 강제하는 강력한 국가라는 전제가 깔려 있을 뿐만 아니라, 초기의 시카고 학파 전통과 달리 경쟁을 잠식하는 대기업들 사이와 그 내부의 중앙집중화된 권력의 문제는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323-5)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련 공산당의 총서기가 되었다. 1987년에는 사회주의를 쇄신하는 방법으로서 페레스트로이카(재구조화) 그리고 글라스노스트(개방)를 실현하기 위해 고안된 여러 개혁 조치를 실행에 옮겼다. 고르바초프에 따르면, 페레스트로이카는 전체주의 체제를 종식시키고 민주적 개혁과 자유, 다원주의적 경제(사유화, 자유 기업, 주식 소유를 포함한 여러 형태의 소유권) 그리고 자유시장경제 등을 도입하는 것을 뜻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는 꼭 자본주의처럼 들리지만, 당시에는 이것이 동유럽에서나 서방에서나 경제학자들 사이에 가장 진보된 사회주의 이해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런 것들은 초국가적으로 사회주의경제학에서의 최상의 예라고 여겨졌던 것들이다. 여러 동유럽 사회주의자가 보기에는 드디어 소련도 다른 동유럽 나라들을 따라잡기 시작한 것이었다."(340)


"1989년 이후의 기간에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지형과 선택지가 근본적으로 바뀌어버리고 말았다. 마이클 부라보이와 캐서린 버더리가 주장하듯이, 당-국가의 몰락은 '거시구조들macrostructures'을 무너뜨렸고 새로운 규칙들과 한계 내에서 '미세세계들microworlds'과 지역적인 임기응변의 변화를 위한 공간을 열어젖혔다."(356) 제프리 색스와 조지프 스티글리츠 같은 신고전파 경제학자들 간에 벌어진 논쟁은 "시장에 대해 모든 족쇄를 풀어줄 것이냐 아니면 경제에 국가가 개입해야 하느냐를 놓고 싸움을 벌인 것이 아니었고, 시장을 단단히 박아 넣을 것이냐 뽑아낼 것이냐를 놓고 싸운 것도 아니었다. 이들의 차이점은 시장이 필요로 하는 제도들이 권위적인 것이냐 민주적인 것이냐에 있었다."(358-9) "1990년 1월 1일, 폴란드는 동유럽 블록에서 최초로 충격요법을 실행에 옮겼고, 1991년에는 체코슬로바키아와 불가리아가, 1992년에는 에스토니아가, 1993년에는 라트비아가 그 뒤를 따랐다."(360)


"립턴과 색스는 필연적으로 나타날 '포퓰리즘' 혹은 여타 정치적 저항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정책들을 재빨리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들은 국가가 후퇴하면 시장이 출현하여 자신에게 필요한 제도들을 스스로 창조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렇게 국가와 시장을 마치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말하는 언어는, 이러한 경제학자들이 다른 한편으로 주장하는 바 시장이 번성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국가와 기업 제도들이 필요하다는 아주 명쾌한 주장을 애매모호하게 만든다."(360-1) 이들의 이행 전략은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구사했던 자유주의적인 수사학과 정반대로 강력한 권위주의적인 국가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동유럽 경제학자들이 "소련식 국가사회주의를 비판하고 탈중앙집권화를 요구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이들은 포퓰리즘적 저항을 묵살하고 충격요법을 실행하는 일은 오로지 강력한 정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천명한다."(363-4)


"이 기간에는 '이행'이라는 생각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의미들을 가지게 된다. 사회주의자들은 수십 년 간 '이행'을 옹호해왔다.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이든 국가사회주의에서 노동자 자주관리 사회주의로의 이행이든 아니면 국가사회주의에서 사회주의 체제 내 시장경제로의 이행이든 말이다. 그런데 세계은행이 1980년대 말에 이 말을 이해했던 방식은 바로 마지막 의미로서였다. 사회주의자들은 이 이행이라는 용어를 오래도록 사용해왔지만, 정치 지도자들은 이제 이 '이행'이라는 말을 모든 종류의 사회주의로부터 멀어지면서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자본주의라는 뜻으로 이해되는 모종의 시장경제를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서 다시 해석했다." 이렇게 경제적 개념들이 "여러 가지의 이해 방식을 동시에 가지게 된 것은 또한 시장으로의 이행을 이전에 있던 여러 시장개혁의 연속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했다."(380-1)


"신자유주의란 경쟁적 시장, 더 작고 권위주의적인 국가, 위계적인 기업, 경영진, 소유자들 그리고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한 묶음의 사상과 그와 연결된 정책들이다. 신고전파 경제학의 세계에서 시장이란 자본주의를 도울 수도 또 사회주의를 도울 수도 있다. 게다가 시장은 사적 소유와 동일시되지 않으며 오히려 다양한 소유 구조를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하비에 따르면, 시장의 이름으로 국가의 종식을 요구하는 신자유주의 프로젝트는 유토피아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이는 1970년대 초 경제위기와 사회주의의 대안 및 프로그램이 정치적으로 성공을 거둘 가능성 등에 맞서서 "자본 축적의 조건을 다시 확립하고 경제 엘리트의 권력을 회복"하는 목적으로 국가를 변혁하고 동원한다는 정치적인 프로젝트로서의 현실을 은폐하는 기능을 한다."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은 "노동자 소유의 재국유화, 임금 동결, 노동자 대량 해고, 자주관리의 근절, 민주주의의 협소화 등과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388-9)


1970년대 보수주의 정치가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던 협소한 버전의 신고전파 경제학은, "사회적 맥락에서 뽑혀져 나온 경제학으로서, 경쟁적 시장 혹은 효과적 중앙계획을 위해 필요한 제도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현실 세계에서는 현재의 권력 배분 상태에 존재하는 위계적 제도들과 이 지도자들의 권력을 유지해주는 경제학이다." 급격하게 뒤바뀐 정치적 지형 위에서, 구엘리트와 신엘리트가 국제 자본주의 기관들과 동맹을 맺자 "사회주의 체제 내에서 '진정한 시장'과 급진적인 경제민주주의 및 정치민주주의를 창출하려고 했던 시장 이행은 자본주의 그리고 대의제 민주주의로의 이행으로 변형되어버렸다."(407-8) 신자유주의의 승리는 "민주적 시장사회주의의 여러 모델을 개발하여 1989년 이후의 기간에 이를 실행에 옮기기를 희망했던 경제학자들이 있었기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가 승리하고 만 것이었다."(409)


# 신고전파 경제학의 한계

1. 사회적 가치나 비용 같은 개인의 경제적 효용 계산으로 환원할 수 없는 종류의 경제적 계산에 대해 무력하다. 

2. 권력의 문제가 이론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우리는 순수한 경제적 행위자가 아니라 포괄적인 사회적 행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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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반양장) - 간략한 역사
데이비드 하비 지음, 최병두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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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이후 거의 모든 국가들에서 관찰되는 안정 조건의 하나는 "상위 계급들의 경제적 힘이 제약되면서, 경제적 파이의 훨씬 더 많은 몫을 노동자들이 갖게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소득자의 상위 1퍼센트가 갖는 국가 소득의 몫이 전쟁 전 17퍼센트에서 전쟁 직후에는 8퍼센트 이하로 떨어졌으며 거의 30년 동안 이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성장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이러한 제약이 문제되지 않았다. 파이는 계속 커져갔으므로 그 파이의 안정적인 몫을 챙기는 것으로 족했다. 그러나 1970년대 성장이 붕괴되어 실질이자율이 마이너스가 되고 매우 낮은 배당 및 이윤만을 받게 되는 생활이 일반화되자, 세계 곳곳의 상위 계급들은 위협을 느꼈다." 자산 가치(주식, 부동산, 저축) 하락으로, 20세기 전반에 걸쳐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상위 1퍼센트의 통제 권력은 급속히 약화됐고, "상위 계급들은 정치적·경제적 파멸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단호하게 행동해야만 했다."(31-3)


"1979년 10월 카터가 대통령이었을 때 연방준비은행장이었던 볼커는 미국 통화정책에 엄중한 변화를 추진했다.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적 국가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뉴딜 원칙들에 대한 집착─이는 기본 목표로서 완전고용과 결부된 케인스적 종합재정통화정책을 의미함─은 폐기되고, 고용에 대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든지 간에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고안된 정책이 선호되었다. 1970년대 두자릿수의 인플레이션 파도가 일었던 시기에 마이너스였던 실질이자율은 연방준비은행의 지시에 의해 플러스로 변했다. 명목 이자율은 밤새 인상되어, 그 후 몇 번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1981년 7월에는 20퍼센트에 가깝도록 뛰어올랐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공장을 텅 비게 하고 노조를 와해시켰으며 채무국들을 파산의 고비로 몰고 갔던 깊고 오래된 경기후퇴와 연이은 긴 구조조정기"가 시작되었다."(41)


볼커의 통화주의 정책을 계승한 레이건은 다음 단계로 노동권력에 대한 전면 공격에 나섰다. 1981년 항공관제사 노조PATCO의 파업 분쇄는 결정적인 분기점이었다. "PATCO는 일반적 노조 이상의 것이었다. 숙련된 전문직 협회 성격을 가진 백인 노조였고, 따라서 노동계급이라기보다 중산층 조합주의의 징표였다. (PATCO의 좌절이) 국경을 가로질러 노동 조건에 미친 효과는 극적이었다. 이 점은 1980년대 빈곤선과 동등한 수준이었던 연방 최저임금이 1990년에는 그 수준의 30퍼센트 이하로 떨어졌다는 사실에서 가장 잘 파악될 수 있다. 그 이후 실질임금 수준의 지속적 감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43) 노동 권력을 제압하고 나자, 석유파동으로 쌓인 오일머니의 유입과 미국이 여러 개발도상국에서 벌인 은밀한 폭력과 체제 길들이기 속에서 뉴욕 투자은행들을 통해 재순환된 유휴 기금들은 세계 전역에 파급되었다.


"1973년 이전에 미국의 해외투자 대부분은 주로 유럽이나 남아메리카에서 원료 자원(석유, 광물, 농업 생산물)의 활용이나 또는 특정한 시장(원거리 통신, 자동차 등)의 육성과 직접 관련된 것들이었다. 뉴욕의 투자은행들은 언제나 국제적으로 적극적인 자세를 견지했지만, 1973년 이후에는 (외국 정부들에 대한 자본 대출에 좀 더 초점을 두기는 했지만) 그런 성향을 훨씬 더 많이 보였다. 이 점은 국제 신용 및 금융 시장의 자유화를 필요로 했으며, 미국 정부는 1970년대 동안 이 전략을 세계적으로 촉진하고 지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대출에 목말랐던 개발도상국들은 뉴욕 은행가들에게 유리한 이자율인데도 많이 빌리도록 장려되었다. 그러나 채무는 미국 달러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미국 이자율이 급등할 때는 물론 아주 조금 인상되는 경우에도 취약한 국가들은 쉽게 채무불이행으로 내몰렸다. 이는 뉴욕 투자은행들을 심각한 손실에 노출시키는 위험 요소이기도 했다."(47)


"자유주의적 관행은 잘못된 투자 결정에 의해 발생하는 손실을 대출자가 떠안게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관행은 현지 주민들의 생계나 복지가 어떻게 되는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차용자가 부채 지불의 비용을 떠맡도록 국가나 국제적 권력들에 의해 강제된다."(48) 전세계적 교환 관계를 금융화한 신자유주의는 "경제의 다른 모든 영역들과 국가 장치는 물론, 마틴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금융의 장악을 심화시켰다. 이는 또한 세계적 교환관계에 가속적인 변동을 유발했다. 의심할 바 없이 생산으로부터 금융의 세계로 권력 이행이 있었다. 이제 제조 능력에서의 이익이 필수적으로 1인당 소득의 증가를 의미하지 않게 된 반면, 금융 서비스에의 집중은 분명 소득의 증가를 의미했다. 이러한 이유에서 금융 제도의 지원과 금융시스템의 보전은 신자유주의 국가들의 집합체(G7처럼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들로 구성된 집단)의 핵심적 관심사항이 되었다."(52)


칠레나 아르헨티나에서 국가 폭력이 신자유주의를 도입하는 주요 수단이었다면 "1979년 이후 대처와 레이건에 의한 신자유주의적 혁명은 민주적 수단을 통해 이뤄져야만 했다. 이처럼 중대한 이행이 가능하려면, 선거에서 이길 정도로 충분히 큰 범위에 걸친 정치적 동의가 사전에 구축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람시가 ('공동으로 보유되는 지각'으로 정의하는) '상식(common sense)'이 전형적으로 동의의 기반을 이룬다." 당대 이슈를 비판적으로 고려하면서 구축되는 '양식(good sense)'과 달리 상식은 "문화적 편견하에서 실제 문제를 중대하게 오도하고, 모호하게 하며, 가장할 수도 있다. (신이나 국가에 대한 믿음, 또는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에 관한 견해와 같은) 문화적·전통적 가치와 (공산주의자, 이민자, 이방인, 또는 '타자들'에 대한) 두려움이 다른 현실을 숨기기 위해 동원될 수 있다."(59-60) '개인적 자유'라는 명분은 대중 기반에 호소함으로써 계급 권력을 회복하려는 본래 의도를 감추는 데 성공했다.


"개인의 자유가 신성불가침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정치적 운동은 신자유주의적 습곡으로 편입되기 쉽다. 가령 1968년의 세계적인 정치적 격변은 좀 더 위대한 개인적 자유를 추구하려는 소망에 의해 크게 굴절되었다." 개인적 자유를 근본적으로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수사는 "국가권력의 장악을 통해 사회 정의를 추구하는 다양한 사회 세력들을 자유지상주의, 정체성의 정치, 다문화주의, 그리고 자기중심적 소비자주의로 분할하는 힘을 갖고 있다."(61-2) 신자유주의화는 "차별화된 소비주의와 개인적 자유지상주의에 관한 신자유주의적 시장 기반적 대중문화의 구축을 정치적·경제적으로 요청했다. 신자유주의화는 (새로운) 문화적 충격, 즉 오랫동안 날개 밑에 숨어 있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커져서 문화적으로나 지성적으로 지배적이게 된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과 상당히 잘 병존할 수 있음이 입증되었다. 이것이 1980년대에 기업과 계급 엘리트가 기교를 부리고자 했던 도전이었다."(63)


"노조가 강했던 북동부 및 중서부 주들로부터 노조가 없고 '일할 권리'가 강조되었던 남부 주들─멕시코와 동남아시아로 진출하지 않았다면─로 산업 활동이 이전하는 것은 일반적 관행이 되었다." 아울러 "집단행동을 와해하기 위해 개인으로서의 노동자에게 제공될 수 있는 수많은 '당근'도 있었다. 노조의 엄격한 규율과 관료주의적 구조는 노조를 이러한 공격에 취약하게 만들었다." 노동시장에서 "더 큰 행동의 자유(freedom)와 자율(liberty)을 선사하겠다는 것은 자본과 노동 모두에게 덕목으로 여겨졌고, 이는 여기에서도 많은 노동자들의 '상식'에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통합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적극적 잠재력이 유연적 축적의 매우 착취적인 체계(시공간 모두에서의 노동 할당 유연성 증가로 인해 생겨난 혜택은 모두 자본에 돌아갔다)로 전환하게 된 이유는 실질임금이 정체 또는 하락하고 수혜가 감소된 현상을 설명하는 열쇠이다."(75)


영국은 "도덕적 다수로 동원될 수 있는 기독교 우파" 같은 세력이 없었기에, 매우 다른 방식으로 대중의 동의를 구축했다. 특히 "세계지향적 금융자본의 권력 성장이라는 점에서 런던 시의 위상을 보호 및 고양"했다. "(이자율 조작을 통한) 금융자본의 보호는 국내 제조업 자본의 요구와 적지 않게 갈등을 일으켰으며 (자본가 계급 내 구조적 분화를 촉진하면서) 국내시장의 팽창을 억제했다." 금융중심지로서 런던 시는 "케인스적 정책보다는 통화주의적 정책을 오랫동안 선호했으며, 이에 따라 착근된 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의 거점을 형성했다."(77-8) 대처는 "주택 소유, 사유재산, 개인주의, 그리고 기업적 기회의 해방을 즐기는 중간계급의 배양을 통해 동의 연합을 형성했다. 어려움 속에서 약화되는 노동계급의 결속력과 탈산업화를 통해 급격히 변화하는 일자리 구조와 더불어, 중간계급의 가치는 한때 확고한 노동계급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을 포섭하면서 좀 더 널리 전파되었다."(84)


# 신자유주의 국가 이론의 허점

1. (경쟁을 저해하는) 독점 권력의 처리 혹은 정반대로 전력, 수도, 가스처럼 국가 개입이 불가피한 자연 독점의 처리 문제

2. 시장 실패(비용의 외부화) 혹은 사회 관계와 제도를 훼손하는 기술혁신의 처리 문제

3. 매력적이지만 소외를 낳는 소유적 개인주의와 의미 있는 집단 생활을 추구하는 소망 간의 모순


"신자유주의 이론가들은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몹시 회의적이다. 다수결 원칙에 의한 통치는 개인적 권리와 헌정적 자유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된다. 만주주의는 사치스러우며, 단지 정치적 안정성을 보장하는 강력한 중간계급의 등장과 결합된 상대적 풍요의 조건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자들은 전문가와 엘리트에 의한 통치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90) "완전한 정보와 경쟁을 가능케 하는 평등한 행위의 장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가정은 순수하게 유토피아적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부의 집중과 이에 따른 계급 권력의 회복을 유도하는 과정을 감추려는 신중한 연막으로 보인다."(92) 국가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를 진압하기 위해 설득 및 선전, 또는 필요하다면 적나라한 폭력과 경찰력을 사용"할 수 있다. 즉, 자유주의적 (확장하면 신자유주의적) 유토피아 프로젝트는 "궁극적으로 권위주의에 의존함으로써 유지될 수 있다. 대중의 자유는 소수의 자유를 위해 제한된다."(94)


신자유주의 국가는 "전형적으로 탈규제를 통해 금융 제도들의 영향을 확산시키지만, 또한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금융 제도의 통합성과 지급 능력을 보장한다. 이러한 집착의 원인은 부분적으로 국가 정책의 기반을 (신자유주의 이론의 어떤 변형 속에서 정당화된) 통화주의─화폐의 통합성과 건전성은 이 정책의 핵심적 부분이다─에 의존하는 데 있다."(97) 위기가 닥쳤을 때 은행과 금융기관들의 필요를 우선하고 채무국의 생활수준을 떨어뜨리는 관행은 국제적 맥락에서 바라봤을 때, "국제 은행가들에게 보상하려고 빈곤한 제3세계 국민들로부터 잉여를 추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 메커니즘을 통한 공물(tribute)의 추출은 "계급 권력─특히 세계의 주요 금융 중심지에 있는─의 회복에 매우 도움이 되며, 또한 이의 작동은 항상 구조조정의 위기를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다."(98)


"왜 많은 사람들이 세계화를 통한 신자유주의가 '유일한 대안'이라고 설득되는 데 그리도 성공적이었는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지리적 불균등발전의 변동이 가속화되고, 어떤 영토들에서는 다른 영토들의 손실을 전제로 (최소한 일정 기간 동안이나마) 엄청난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예로, 1980년대가 주로 일본, 아시아의 '호랑이', 그리고 서독의 시기였고, 1990년대는 미국과 영국의 시기였다고 한다면, 이처럼 세계 어딘가에는 '성공'이 이뤄진다는 사실은 신자유주의화가 성장을 촉진하고 복리를 증진하는 데 일반적으로 실패했다는 사실을 모호하게 한다. 둘째, 이론이라기보다 실제 과정으로서 신자유주의화는 상위 계급들의 입장에서 보면 엄청난 성공을 가져왔다. 이는 (미국이나 부분적으로 영국에서처럼) 지배 엘리트들에게 계급 권력을 회복시키거나, (중국, 인도, 러시아 또는 다른 국가들에서처럼) 자본가계급 형성을 위한 조건을 창출했다."(191)


신자유주의화는 "상품화化의 선線을 의심할 바 없이 후퇴시켰고, 법적 계약의 범위를 크게 확대시켰다. 이는 전형적으로 (포스트모던 이론의 대부분이 그러한 것처럼) 짧은 수명과 단기 계약을 찬양한다."(202) 신자유주의화는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노동도 상품이라고 강조함으로써, 노동·여성 및 토착민 집단이 사회질서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전환시켰다." 강도와 범죄 카르텔, 마약 밀매망, 소규모 마피아와 슬럼가 두목들에서부터 공동체, 민중, NGO에 이르기까지 "이 조직들은 국가권력, 정당, 그리고 다른 제도적 형태들이 활발하게 분해되거나 집단적 노력과 사회적 연대의 중심지로서 기능을 소진하게 됨에 따라 남겨진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해 등장한 대안적 사회형태이다. 종교로의 현저한 전환은 이러한 관점에서 흥미롭다(파룬궁)." 미국에서 근본주의적 복음주의 기독교의 확산은 "고용 불안정의 증대, 다른 형태의 사회적 결속의 상실, 자본주의적 소비문화의 공허함과 어떤 연관성을 가진다."(207-8)


"탈취에 의한 축적accumulation by dispossession은 산업 및 농업에서 임금노동의 확대를 통한 축적과는 상이한 일단의 관행들을 동반한다. 1950년대 및 1960년대 자본축적 과정을 지배했던 후자의 축적은 착근된 자유주의를 창출한 (노조와 노동계급 정당에 착근된 것과 같은) 저항문화를 유발했다. 다른 한편 탈취는 (여기에서는 민영화, 저기에서는 환경 퇴락, 또 다른 곳에서는 부채에 의한 금융 위기가 일어나는 식으로) 파편적이며 특정적이다. 보편적 원칙들에 호소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특이성과 특정성 모두에 반대하기는 어렵다."(215) 신자유주의 아래 살아가는 것은 "자본축적에 필요한 일단의 권리들을 수용하거나 준수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사적 소유와 이윤율에 대한 개인들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그리고 법인들은 법 앞에서 개인으로 규정된다는 점을 상기하라)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또 다른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의 개념화를 압도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218)


"1935년 연두교서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0년대 대공황의 경제적·사회적 문제의 근원에는 지나친 시장 자유가 있었다는 견해를 분명히 했다." 그는 미국인들이 "과도하게 이윤을 추구해 부당한 개인적 힘을 키워도 된다는 부의 획득 개념을 반드시 폐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궁핍한 사람은 자유인이 될 수 없다.(221) 마르크스 역시 허기진 배는 자유를 전도하지 못한다는 굉장히 급진적인 견해를 가졌다. 그는 "필요성과 일상적 고려에 의해 결정되는 노동이 끝나는 곳에서야 자유의 영역이 시작한다"라고 적고 있으며, 따라서 자유는 "실제 물질적 생산 영역 너머에 놓여 있다"라고 덧붙인다.(223) 저자가 신자유주의적 권리 체제를 반대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회적·생태적·정치적 결과가 어떠하든지 무한한 자본축적과 경제성장의 체제 아래 살아가는 것 외에 대안이 없음을 인정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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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살상수학무기 - 어떻게 빅데이터는 불평등을 확산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가
캐시 오닐 지음, 김정혜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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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경제의 원동력인 수학 모형 프로그램들은 대다수가 "인간의 편견, 오해, 편향성을 코드화했다. 그리고 이 코드들은 점점 더 우리 삶을 깊이 지배하는 시스템에 그대로 주입됐다."(15) 대량살상수학무기(WMD) "모형 자체는 속이 보이지 않는 블랙박스로, 그 안의 내용물이 영업 비밀처럼 엄격하게 보호된다. 이것은 매스매티카 같은 컨설팅업체들에게 일거양득의 효과를 가져다준다. 첫째,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알고리즘이 지닌 가치보다 훨씬 많은 수수료를 청구할 수 있다. 둘째, 평가 대상이 모형의 작동 원리에 대해 모르기에 모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정하려는 시도를 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대신에 평가 대상자들은 모형의 기준에 맞춰 열심히 일하고 규칙을 준수한다. 모형이 그들의 노력을 제대로 평가해주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세부 사항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평가 결과에 의문이나 이의를 제기하기란 더더욱 쉽지 않다."(24-5)


WMD이 안고 있는 세 가지 위험 요소는 '불투명성, 확장성, 그리고 피해'다. 비즈니스에 중요한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알고리즘이 공개되지 않은 모형에 쓰인 가정들은 파괴적인 피드백 루프를 통해서 자신의 가정들을 정당화하는 환경을 창조한다. "은행의 대출심사모형이 당신에 대해 채무불이행 위험이 높다고 판단하면 어떻게 될까? 이것이 지독한 오해에 불과할지라도 온 세상이 당신에게 '예비 채무불이행자'라는 똑같은 꼬리표를 붙일 것이다. 꼬리표 정도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 꼬리표는 당신이 아파트나 일자리를 구할 때는 물론이고 자동차를 렌트할 때조차 기준이 되어 당신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58-9) 문제의 핵심은 "알고리즘에 의해 작동되는 모형이 수백만 명의 면전에서 기회의 문을 닫아버리고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조차 허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가끔은 지극히 하찮은 이유로 그렇게 한다."(61)


금융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투자자들은 MBS(주택저당증권, mortgage-backed securities)에 투자하는게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복병이 있었다. 바로 불투명성이었다. 투자자들은 증권에 포함된 주택담보대출 각각의 건전성에 대해서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증권에 포함된 내용물을 얼핏이라도 짐작해볼 수 있는 방법은 신용평가기관의 분석가들이 평가한 등급이 유일했다. 그런데 분석가들은 자신이 등급을 매기는 금융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기업들에서 수수료를 챙겼다."(75) 금융과 첨단기술이 안겨주는 혜택을 장악한 계층의 사람들은 "똘똘 뭉쳐 서로 칭찬하는 사회mutual admiration society를 형성한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시스템을 악용한 것과 대단한 행운이 결합된 결과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도 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성공을 적자생존의 사회적 다윈주의가 작동한 결과임을 납득시키려 한다."(90)


"데이터를 처리하는 기계들 스스로가 우리의 데이터를 샅샅이 조사하면서 우리의 습관과 희망, 두려움과 바람을 찾아내고 있다." 인터넷이 등장한 뒤 "전세계 사람들이 자신의 삶, 일, 구매 경험, 우정 등에 관해 무수히 많은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언어를 처리하는 기계들을 위한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학습 말뭉치training corpus가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사람들이 손글씨와 종이에서 이메일과 SNS로 소통의 도구를 바꿈에 따라 기계들이 우리의 언어를 연구하고 비교하면서 언어의 문맥과 관련해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진전은 신속하고 극적으로 이루어졌다."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을 통해 향상된 "자연언어 처리 능력은 광고주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의 신세계를 열어주었다. 이제 프로그램은 특정한 단어의 의미를 안다. 아니, 적어도 가끔은 그 단어를 특정한 행동이나 결과와 충분히 관련시킬 수 있을 만큼은 안다."(135-8)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이 인터넷 세상에서 드러낸 선호도와 패턴을 토대로 수많은 모형에서 나뉘고 분류되어 점수가 매겨진다. 이런 정보는 합법적인 광고 캠페인의 튼튼한 토대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약탈적인 광고들의 연료가 된다.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만 골라서 지킬 수 없는 거짓 약속을 하거나 지나치게 높은 비용이 드는 약속을 해서 바가지를 씌우는 악질적인 광고 말이다."(126) 전형적인 WMD인 약탈적 광고는 절박한 사람들을 찾아내 표적공략한다. 일례로, 배터롯 칼리지는 신입생 모집원들에게 "복지수당을 수령하고 자녀가 있는 편모, 임신한 미혼여성, 최근에 이혼한 사람, 자긍심이 낮은 사람, 저임금 종사자, 최근에 가까운 사람과 사별한 사람, 신체적·정신적 학대 피해자, 최근 출소자, 약물 중독 재활 치료 유경험자, 장래성이 없는 직종 종사자"를 집중 공략하라고 지시했다.(129)


이처럼 알고리즘은 기본적인 명령에 따라 데이터를 처리할 뿐이지만, 그 명령을 내리는 사람(혹은 집단)의 의도가 모형 안에 속속들이 배어 있다. "미국 정부는 1965년에 시행된 고등교육법Higher Education Act에 소위 '90-10법칙'이라고 불리는 조항을 포함시켰다. 이 조항은 대학들이 재정의 최대 90%까지만 연방정부의 원조를 받을 수 있다고 규정했다. 9대1이라는 비율의 근거는 학생들이 교육비의 일정 부분을 감당할 때 자신의 교육을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영리 대학들은 이 조항의 허점을 공략하는 사업 계획을 만들었다. 저축이든 은행 대출이든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수천 달러를 긁어모을 수 있다면, 영리 대학들은 그 학생들의 이름을 빌려 그 금액의 9배나 되는 돈을 정부에서 지원받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영리 대학들에는 학생 하나하나가 막대한 수익 창출원이 됐다."(142)


"가난한 동네에서 경미한 범죄는 흔한 일이다. 오죽하면 어떤 지역에서는 경찰들이 그런 범죄를 범죄가 아니라 반사회적 행동antisocial behavior, ASB이라고 부르겠는가." 이런 2군 범죄를 예측 모형에 포함시키면 "더 많은 경찰이 가난한 동네로 출동하게 되고, 당연히 그런 동네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체포당할 것이다." 이는 바로 유해한 피드백 루프가 활성화되는 전형적인 과정이다. "경찰 활동 자체가 새로운 데이터를 생성시키고, 이런 데이터가 다시 더 많은 경찰 활동을 정당화해준다. 그리고 교도소는 피해자가 없는 범죄victimless crime를 저지른 수많은 범죄자들로 넘쳐나게 된다. 이런 범죄자들은 대부분 가난한 동네 출신이고, 또한 대부분 흑인이거나 히스패닉계다. 설령 모형이 '색맹', 다른 말로 피부색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피부색과 소득 수준에 따라 거주 지역이 뚜렷이 구분되는 오늘날 미국 도시에서 지리적 요소는 인종에 대한 유효적절한 대리 데이터다."(151-2)


"미국 직장인들 사이에 최근 유행하는 신조어가 있다. '클로프닝clopening'이 바로 그것이다. 이 단어는 상점이나 카페의 종업원이 밤늦게까지 일하다가 매장 문을 닫고 퇴근한 다음, 불과 몇 시간 후 새벽 동도 트기 전에 다시 출근해서 매장 문을 여는 것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한 명의 종업원이 매장 문을 닫고 여는 클로프닝은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물류logistics적으로 타당한 업무 방식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수면 부족과 빡빡한 일정에 쫓기는 것을 의미한다."(208) 일정 관리 소프트웨어가 양산하는 "불규칙적인 장시간 근무는 노동자들이 더 나은 근무 조건을 요구하거나 스스로 조직화하는 것을 힘들게 만든다. 대신 노동자들은 극심한 불안감과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급격한 감정 변화를 겪고 있다." 더욱이, 일정 관리 소프트웨어에게 착취당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자녀도 커다란 피해자다. 이런 부모를 둔 아이들은 평범한 일상을 경험하지 못한 채 성장한다."(217-8)


"보험사들은 신용평가 보고서에서 신용평가점수를 얻은 다음, 자사의 고유한 알고리즘을 통해 자체적인 등급이나 e점수를 생성시켰다. 이런 등급이나 e점수는 '책임 있는 운전 습관'을 대신하는 대리 데이터"로 활용된다. "자동차 보험비를 산정하는데 '돈을 어떻게 관리하는가'가 '어떻게 운전하는가'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273) 보험사들은 이를 악용해서 저신용 고객층에게 "과다한 보험료를 부과함으로써 실리를 챙긴다. 운전 기록이 깔끔해도 신용평가점수가 낮은 운전자는 사고 위험이 낮기 때문에 보험사에 복덩어리다. 게다가 그 운전자의 보험 계약에서 발생한 수익의 일부는, 보험사가 사용하는 모형의 비효율적인 측면을 보전해준다. 신용평가 보고서가 완벽해서 보험료를 적게 내는 운전자가 음주 운전 사고를 일으켰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그 손실을 신용평가점수가 낮아도 운전 습관이 좋은 운전자들의 보험료로 메울 수 있다."(275)


"현대의 소비자 마케팅은 정치인들을 특정한 유권자들에게로 데려다주는 새로운 경로를 제공한다. 이제 정치인들은 각 유권자 집단의 욕구에 맞춤화된 정보를 들려줄 수 있다. 일단 그렇게 하고 나면,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에게서 들은 정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큰데, 그 주장이 자신들의 기존 믿음을 확인시켜 주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확증편향이라고 부른다." 정치참모들은 micro-targeting이라는 "신용카드업계의 전술을 차용함으로써 막대한 유권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각자의 가치관과 인구통계학적 정보를 고려해 유권자를 다양한 하위집단으로 분류했다. 그리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이웃한 두 집이 동일한 정치인으로부터 각각 다른 내용의 우편물이나 팸플릿을 받게 됐다. 가령 같은 후보로부터 한 집은 야생동식물 보호를 약속하는 우편물을, 바로 옆집은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우편물을 받는 식이다."(311-2)


정치가와 유권자 사이의 이런 "정보의 비대칭asymmetry of information은 여러 집단이 손을 잡고 힘을 합치는 것을 막는다. 이는 현대 민주주의 체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다."(325) 정보의 비대칭 말고 또 다른 비대칭이 있다. 바로 관심의 비대칭이다. "알고리즘에 의해 투표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투표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음 선거에서는 관심의 융단폭격을 받게 된다. 여전히 투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반면 애시당초 투표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유권자들은 관심에서 거의 배제된다. 정치 시스템은 투자 수익률이 가장 높은, 다른 말로 가장 적은 비용으로 표심을 바꿀 수 있는 유권자들을 열심히 찾는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때로는 투표 기권자들이 돈 먹는 하마처럼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정치 시스템의 이런 역학은 양극화를 부추긴다. 특정 계층은 물과 양분을 쏟아부어가며 살뜰히 보살피고, 나머지 계층은 영원히 방치되고 있다."(327-8)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WMD들은 상위 계층 사람들, 즉 부자들에겐 확연히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그들만을 따로 모아 배타적인 마케팅을 전개한다. 가령 카리브 해에 위치한 아루바로 휴가를 가도록 추천하고, 세계 최고의 경영대학원 중 하나인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준다. 그러니 부자들은 세상이 갈수록 편리해진다고 생각할 만하다." 이런 표적 마케팅 기법의 "은밀하고 개인적인 특성 때문에 사회의 승자들은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모형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볼 수 없다."(330) "돈으로 영향력을 사는 오늘날 사회에서 WMD의 피해자들은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나 다름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과 범죄로 개인적 비난에 시달리기 십상이지만, "사회적 통념에서 보면 가난의 병폐는 질병에 가깝다. (오늘날 정치권의) 빈곤 퇴치 노력은 중산층에게까지 그 병폐가 확산되지 않도록 차단시키는 것이 전부다."(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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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계산기 - 경제학이 만드는 디스토피아
필립 로스코 지음, 홍기빈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계몽주의 학자들에게 시장은 진리의 장소, 자연의 거울이자 산업 사회 이전의 촌락이라는 억압적 사회관계에 맞서는 해방의 힘이었다. 그들에겐 무역이 제공하는 여러 자애로운 메커니즘을 거치기만 하면 자기 이익, 즉 사적인 이윤의 추구라는 것도 공적 미덕의 샘솟는 원천으로 변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제러미 벤담이 착상하고 이후 존 스튜어트 밀이 상세히 발전시킨 영국 공리주의의 프로젝트는 이러한 공적 미덕을 다시 법률로 전환시키고자 했으며, 감옥과 학교 또한 이 새로운 시장 경제의 노선에 따라 개혁하고자 했다. 이것이 19세기 말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들이라 불릴 만한 오스트리아의 <한계주의> 혁명가들, 즉 카를 멩거, 조지프 슘페터, 루트비히 폰 미제스, 그리고 가장 유명한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 등이 나타날 때까지의 상황이었다. 이 오스트리아인들은 영국인 스탠리 제번스 그리고 프랑스인 레옹 발라 등과 함께 경제학을 수학적 프로젝트로 재창조했다."(51-2)


"19세기가 되면 어떤 좋은 것의 유용성을 연속의 수학적 함수로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등장하게 되었고, 제번스, 멩거, 발라가 각각 독자적으로 한계 효용의 이론을 <발견>했던 것도 그때였다." 그전까지 <효용utility>이란 "단순히 <가치> 혹은 <유용성>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다음 두 가지 점에 있어서 완전히 새로운 정의를 얻었다. 첫째, 이 유용성이란 오로지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순간에만 관찰과 이해가 가능하다. 즉 어떤 사물의 유용성은 사람들이 그것에 대한 욕망으로 실제로 어느 만큼의 행동을 벌이는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둘째, 그 효용이란 단일의 수리적 함수로 표현될 수 있다. 좋음의 본성을 두고 철학자들은 오래도록 입씨름을 벌여 왔지만, 이제부터 분석가들은 그런 논쟁에 대해 더 이상 신경 쓸 게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마다 사물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제각각이니, 그 제각각의 가치 평가를 그들 각각의 행동에 반영되어 있다는 것만 인식하면 된다는 설명이다."(52-3)


"하이에크 그리고 그의 사상을 물려받은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거기에 가치를 부여하고 선택하는 방법을 어떻게 알아낼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들의 해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에 돈을 지불하게 하여 자기들이 거기에 얼마나 큰 가치를 부여하는지를 <보여 주도록> 만들자는 것이었다. 화폐는 보편적인 매개물이므로 이를 통해서 이질적인 가지가지의 재화 및 서비스들에 대해 한 개인이 갖는 모든 선호 사항들에다가 단일의 서열을 매길 수 있고, 심지어 모든 개인들의 모든 선호 사항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또한 저 기적의 장치인 시장이 자동적으로 만들어 내는 단일의 척도인 화폐를 사용한다면 인간들의 오만가지 필요, 욕망, 욕구를 모조리 한 줄로 세울 수가 있다는 설명이었다."(59-60)


"경제라는 세계는 우리가 <경제학>이라고 부르는 일련의 규칙들로 세세하게 설명할 수 있는 실로 매혹적인 질서와 명확성을 가진 세상이다. 이렇게 경제학이 그 세계를 그렇게 잘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경제라는 세계의 조직과 구조와 통치 자체가 바로 그 경제학의 규칙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경제학이 조사하는 대상은 인간 세상이며, "경제학이 초점을 두는 것들은 모조리 특정한 역사적·문화적 맥락 속에서 존재하는 것들로서 무엇보다도 가격과 가치와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경제학이 내놓는 여러 묘사는 이 세상에 대한 묘사인 만큼이나 이 세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기도 하다. 경제학, 그리고 경제학이 조사하는 세계는 상호 작용과 되먹임의 순환 고리로 강하게 묶여 있다." 경제학 또한 "전문성, 도구화 작업, 언어 등이 긴밀하게 얽히는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으며, 이 점에서는 자연 과학과 동일하다. 그런데 자연 과학과 다른 점이 있다. 경제학은 바로 자기 자신을 척도로 삼는다는 것이다."(84-6)


형이상학이 제거된 명징하고 논리적인 언어로 현실을 파악하는 포퍼의 방법론을 받아들인 "프리드먼은 경제학이란 과학적 탐구의 엔진으로서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여러 예견을 내놓기 위해 여러 가정들을 활용하고, 이를 기초로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해 나가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프리드먼은 포퍼가 용인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넘어 나아가 버렸다. 프리드먼의 글을 보면 가정들이 정확하지 않아도 이것들이 반증 가능한 예견들을 내놓을 수만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니며, 나아가 여러 가정들이 이런저런 부정확성을 담고 있다면 <오히려> 그 때문에 더 큰 미덕(설명을 더 잘 할 수 있다는 의미)을 갖게 된다는 뜻까지 담겨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떠받치는 근저에는 또 하나의 좀 더 기본적인 가정이 있다. 이 가정이야말로 위와 같은 경제학 방법론의 모든 주장과 다른 모든 과학적 방법론의 기초가 되는 가정이니, 그것은 바로 이 세계를 명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이다."(88-9)


경제학의 언어로 만들어진 세계에서 "우리는 바로 이러한 한계 효용과 기회비용이라는 관점에서 선택하는 존재로 탈바꿈한다. 가격, 효용, 가격 대비 성능 등의 언어들 자체가 나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문제의 성격 자체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과연 <가격>이니 <효용>이니 하는 것들이 현실과 조응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다. 이러한 개념들 자체가 살아있는 생물이며, 나의 정신과 육체를 매개로 현실에서 작동한다. 경제학의 규칙들과 논리가 움직이는 곳마다 이 세계는 무너지며, 그 무너진 틈은 다시 경제학의 규칙들과 논리가 메꾸어 버린다. 경제학은 우리에게 어느 테두리 내에서 의사 결정이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가르치며, 중요한 것과 중요치 않은 것도 가르쳐 준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가운데 우리들이 현실 세계에서 내리는 의사 결정의 테두리를 실제로 결정해 버린다."(93-4) 경제학자들이 구축한 세계상은 "<인간이 구축한 미로이자, 인간이 출구를 찾아내도록 설계된 미로>이다."(102)


"경제학의 파놉티콘을 건설하는 그다음 단계는 권력 관계를 완전히 자동적이면서도 연속적으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곧 개개인들이 자신의 경제적 주관성을 내면화하는 과정이다. 경제학은 개인의 내면에 이런저런 계산과 가치 평가를 형성함으로써 그들의 행동을 통제하려고 시도한다."(121) 일례로 노르웨이에서 어부들에게 조업량 쿼터 시스템을 도입하자, 이전까지 공유지였던 바다는 조각조각 울타리가 쳐진 개인의 재산으로 변모했다. 어부들은 "화폐로 표현되는 시장 가치를 받아들여 행동을 결정했고, 리스크를 줄이고 수익은 극대화하는 행동을 선호했다. 또한 <평범하고 진부한 프로그램들, 계산들, 기술들, 도구들, 문서들, 절차들의 복합체>를 조심스럽게 실행에 옮기는 가운데 합리적이고 도구적이며 자기중심적인 경제적 인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 어부들이 영위하는 삶, 그들이 살고 있는 공동체와 온 세상 또한 전혀 다른 것으로 탈바꿈했다."(127)


"계산의 공유는 거의 불가피하다. 우리가 기술적으로 발전된 사회에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남들과 계산 작업을 분배한 덕분이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남들에게 계산 작업을 맡기는 양도 커질 수밖에 없고, 위임받은 이들이 계산을 대신해 줄수록 우리의 운명은 점점 더 그들의 손아귀로 들어가게 된다." 경제적 인간이 "합리적 계산을 해내는 것 역시 여러 도구들, 측량 기기들, 계산기들을 통해서 가능하다. 사회학자 미셸 칼롱의 표현처럼, 발명된 도구들은 경제적 행동을 위한 <인공 기관들(의치, 의족 등)>로 변한다. 시장 사회학에서는 이렇게 인간들과 발명 도구들이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배열agencement>이라는 다른 말을 이미 사용해 오고 있다. 이는 도구들이 행위자agency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즉 이 도구들이 행동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는 점에서 유용한 단어다."(143-5)


마트에서 우리는 "미리 가공 처리가 끝난 사실들만을 받게 될 뿐이다. 계산대에서 나오는 영수증에는 2.78파운드를 절약했다는 가공의 숫자만 나올 뿐이며, 홈쇼핑 채널의 텔레비전 화면에는 몇 퍼센트가 더 저렴하다는 수치만이 등장한다." "계산의 인프라가 은폐된 채로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전혀 다른 종류의 고객으로 변모한다. 즉 만사 제쳐 놓고 가격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고객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판매대에 오른 제품의 "여러 성질들 가운데 오로지 가격만 보여 주면 나머지 요소들은 우리의 결정 과정에서 확실하게 쫓겨난다. 우리가 그러한 가격 차이가 과도한 노동, 과도한 경작, 착취적인 노동 조건 등에서 비롯한 것임을 잘 알고 있다 해도 이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어떤 상품이 어떤 조건에서 생산되는지는 상품의 <가격표>가 확실하게 가려 버린다. 가격만이 우리 의사 결정의 틀이 되며, 가격만이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판별하는 기준이 된다."(147-9)


"어떤 사람이 신용 리스크가 있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신용에서 <배제>된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신용이라는 희소한 자원에 대해 <더 많이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이제 한 사람의 신용 점수는 "그 개인의 인격적 속성이자 계속 갈고 닦아야 할 무엇으로 여겨진다. 마치 대학 졸업장이나 빨래판 복근처럼 말이다. 신용 점수 시스템의 확산은 곧 인격적 관계에 묻어 들어 있었던 대출에서 통계적인 리스크 관리를 통한 대출로의 이동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경제학의 개념들은 여러 기술적 도구들에 새겨져 있다. 그 도구들은 미국 농촌의 가게 점원이 참조하는 채점표처럼 원시적일 수도 있고 피코 스코어의 배후에 있는 알고리즘처럼 현란하고 세련된 것일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옛날 주택 담보 대출 시장을 안정화시키는 데 기여했던 사회적 유대를 끊어 내는 일에 일조한 것은 마찬가지였다."(160-1)


교육을 상품화한 "윌레츠의 주장은 명쾌하다. 학생들을 소비자로 만들기만 하면 대학들도 개선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지불하도록 하면 대학들이 이 <고객들>을 끌어오기 위해 서로 경쟁을 벌이게 될 것이므로 자생적으로 시장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시장이라는 장치는 "교육이 가져다주는 여러 혜택 또한 똑같은 방식으로 볼 것을 요구한다. 학생은 스스로의 경제적 이력을 책임져야 할 개인으로서, 교육을 통해 장래에 엄청난 혜택들을 받게 된다. 따라서 그 비용을 감내해야 할 것은 학생 본인이며, 그 대신 학생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168) 대학 교육의 상품화는 "여러 가지의 귀결을 가져온다. 그중 중요한 것으로 사회적 재화의 감소를 들 수 있다. 교육이란 그 내재적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피어나기 위한 핵심 도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이 이제 개인적 출세라는 단기적 목표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177)


경제학자 로널드 코즈에 따르면 "여러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는 비용은 그 문제를 가장 적은 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는 쪽에게 부담시켜야 한다. 지출이 적을수록 '만인이' 더 큰 혜택을 보기 때문이다. 코즈의 규칙은 잘못을 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나 무엇이 정의로운 선택인가 등의 문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비용과 편익이 사람들 사이에 어떻게 분배되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오직 그렇게 해서 절약할 수 있는 총량이 얼마인가가 중요할 뿐이다."(187) "비용-편익 계산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두 가지 사실을 보여준다. 첫째, 우리가 어떤 문제를 경제학적으로 생각하려면 무조건 모든 것에 가격을 붙여야만 한다. 설령 그것이 인간의 목숨이라고 해도 말이다. 둘째, 만약 정말로 이러한 분석이 의사 결정의 도구가 되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그 비용이 어떤 것인지를 보고 나서도(예를 들어 180명 사망, 180명 불구, 2,100대 차량 파손) '태연하게' 그 비용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 한다."(191)


"깨끗한 공기와 같이 가격이 붙어 있지 않은 것들을 꺼내 놓고서 한번 가격을 불러 보라고 묻는 것 자체가 그것에 가격을 매기는 행위이며, 그것을 상품 즉 우리가 거래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바꾸어 놓는 행위이다. 그런 것들을 지켜 내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 대응들이 있는데도 이들을 깡그리 무시한 채 그런 방법론으로 얻은 가격 수치만 중시하게 되면 그러한 종류의 성격 변화가 아예 제도로 굳어진다."(225) 장기 매매 시장을 허용하고, 장기의 공정 가치를 구하는 식의 "장기 이식을 둘러싼 주장들을 보게 되면 경제학이란 단순히 현실을 기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한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경제학은 수행한다. 즉 자기 스스로가 제시한 현실 세계의 묘사를 실제 세계의 무대 위에 그대로 연극으로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경제학이 무엇을 분석하는가는 현실 세계에 큰 중요성을 가지는 문제가 된다."(235)


온라인 데이팅의 "여러 규칙들은 개개인들을 서로 교체할 수 있고 교환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대체 가능한 존재로 바꾸어 버린다."(276) 온라인 데이팅은 "사랑을 이해하는 독특한 경제학적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는 사랑에 빠지는 일을 상대방의 여러 특질과 양립도에 기초하여 매력을 느끼는 모종의 적극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으로 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사이트들의 광고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통제해야지 확률이나 행운 따위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사이트들에서 짝이 될 이들을 검색하는 사용자들은 자기를 포함한 개개인들을 여러 성질들이 교차하는 결절점에 불과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면 이 결절점들은 다른 결절점들을 보면서, 또 자기를 검색할 사용자들이 무엇을 내놓을지를 염두에 두면서 자기가 지닌 성질들 하나하나의 가치를 올리려고 노력한다."(287)


오늘날의 자기 이익이라는 개념은 "21세기식 경제 행위자의 계산적·도구적 합리성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는 복잡한 기술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오래된 부르주아의 미덕 따위와는 전혀 성질이 다르다." 문제의 핵심은 "기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이루어진 무정무감의 합리성이 우리의 삶과 신체의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공간에까지 침범해 들어오는 사태이다. 나아가 이러한 자기 이익이라는 것이 순전히 개인의 수준에서만 현실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는 이미 통치governance의 사회적 장치의 일부가 되어 버렸으며, 우리 모두가 스스로 사업가로 변해 가도록 장려한다."(300) 비용-편익 분석은 "직선적이며, 투명하며, 객관적인 외양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공론장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그 주장의 "배후에는 항상 따져 보아야 할 계산 과정이 버티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302)


"자연과학은 정리와 증명, 데이터와 증거들의 끝없는 증식을 추구하며 이를 중시하지만, 경제학은 오로지 희소성 조건 아래에서의 비용과 편익의 비교라는 단 하나의 보편적인 알고리즘 외에는 아무것도 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현실에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경제 분석의 중심을 차지하는 질문이 비용과 편익의 비교라면, 경제적 이성의 중심적 미덕은(그리고 경제학과 관련된 모든 의사 결정, 정책, 규제 등에서도) 효율성이다. 이는 이 세상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언명이며 명백하게 도덕적인 성격을 띠는 주장이다. 만약 어떤 특정한 행동 노선을 취할 경우 더 적은 수단으로도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러한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이 복잡한 우리의 삶에서 "비용만 빼고 나머지는 완전히 똑같은 행동 노선들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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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3-13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섬뜩한 대단한 책입니다.
읽고 싶은 책입니다. ^^

nana35 2018-03-15 17:14   좋아요 0 | URL
북다이제스터님에게도 충만한 독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