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모더니티의 조건 한울공간환경 5
데이비드 하비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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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장 현대문화 : 모더니티에서 포스트모더니티로 가는 길 요약


"보들레르(Baudelaire)는 1863년에 발표된 자신의 시론적 에세이 <근대생활을 그리는 화가>에서 '모더니티의 한쪽은 찰나적·일시적·우연적 측면이며 다른 한쪽은 영원불변한 측면'이라고 쓰고 있다."(26) "모던 생활이 실제 이처럼 찰나와 순간, 분절과 우연 따위의 감각들로 충만해 있다면 적지 않은 심층적 결과들이 초래된다. 우선 모더니티는 전前모던 사회질서뿐만 아니라 자신의 과거조차도 전혀 존중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사물의 일회성으로 말미암아 그 어떠한 역사적 연속성도 보존될 수 없게 된다. 역사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그 의미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발견되고 규정되어야 하는데, 이 소용돌이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모든 것뿐만 아니라 논의에서 구사되는 어휘에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모더니티는 그 이전의 모든 역사적 상황과의 가차 없는 단절을 뜻할 뿐만 아니라, 그 내부에서 벌어지는 끝없는 단절행위와 분절화 과정을 그 특성으로 삼는다."(28-9)


"베른슈타인이 (모더니티를 비판한) 베버의 전반적인 주장을 정리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베버는 계몽사상가들의 희망과 기대가 독설적·반어적인 환상이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과학의 발전, 합리성, 보편적 인류 자유 사이의 필연적이고도 튼튼한 연결을 계속 시도하였다. 그러나 가면을 벗기고서 들여다보면 계몽의 유산은 ··· 목적적·도구적 합리성이 승리하는 결과를 빚었다. 이러한 형태의 합리성은 경제구조, 법률, 관료행정, 심지어 예술까지를 포괄하는 사회적·문화적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감염시킨다. [목적적·도구적 합리성의] 성장은 보편적 자유를 구체적으로 실현시키지 못하고 헤어날 길 없는 관료주의적 합리성의 '철창'을 만든다." 베버의 '냉철한 경고'가 계몽이성에 대한 사망선고라면, 계몽이성의 전제들에 대한 니체(Nietzsche)의 앞선 비판은 그것의 인과응보로 여겨져 마땅하다."(33)


보들레르의 정식으로 되돌아가 보면, "성공적인 근대 예술가란 보편적이고 영속적인 것을 찾아낼 수 있고 '우리 시대의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미적 형태들'을 숙성시켜 '삶이라는 술에 담긴 쓰고도 자극적인 맛을 만들어낼 수 있는'(Baudelaire, 1984: 435) 이들이었다." 예술가나 건축가, 작가들은 "(혼돈의 수렁 속에서 영원불변한 것을) 표현할 묘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따라서 모더니즘은 그 시작부터 언어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즉 영속적 진리에 대한 특수한 재현양식을 찾는 데 매진했던 것이다." 이는 예술 전반을 '사회의 반영이라기보다 자기지시적 구성물(self-referential construct)'로 바꾸었으며, "제임스 조이스(J. Joice)나 프루스트(Proust) 같은 작가들이나 말라르메(Mallarme)나 아르공(Aragon) 같은 시인들, 마네(Manet)나 피사로(Pissarro), 잭슨 폴락(J. Pollock) 같은 화가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이 구성한 어휘 속에서 새로운 약호나 기호, 은유적 암시를 만들어내는 데 몰두했다."(39)


"모더니즘은 단지 시간과 시간의 일시적 속성을 모두 고정시킴으로써 영원함을 언급할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영구적인 공간구조물을 설계하고 건설하는 책임을 맡고 있는 건축가들에게 이는 단순명쾌한 정리(定理)였다. 1920년대에 미스 반 데어 로에는 건축이란 '공간적 용어 속에 내포된 시대 의지'라고 했다." 다른 예술가들은 "이 문제를 다루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몽타쥬·꼴라쥬 기법을 사용하였다. 상이한 시간(옛날 신문)과 공간(공통적인 대상의 사용)에서 추출된 상이한 효과들이 동시효과를 주기 위해 중첩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동시성을 추구함으로써 모더니스트들은 너나할 것 없이 자신들이 대하는 바로 그 상황의 막강함을 재차 확인함과 동시에 자기 예술의 설 자리로서 순간성과 일회성을 받아들였다."(40)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으로 "인간의 완전무결함에 대한 계몽적 확신이 사라져 버렸으니 모더니티에 적합한 새로운 신화를 찾는 일이 급선무가 되었다."(51)


"추상적 표현주의의 발흥과 함께 일어난 모더니즘의 탈정치화는 냉전의 이데올로기적 무기로 활용된 정치적·문화적 기성 형태들에 의해 포섭될 운명임을 역설적으로 예견한 것이었다."(59) 이제 모더니즘은 "몇몇 반동적이고도 '전통주의적'인 이데올로기에 대한 혁명적 반명제로서 자신이 지녔던 호소력을 잃어버렸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1960년대의 다양한 대항문화, 반反모더니스트 운동들이 생겨났다. 기업이나 국가, 기타 제도화된 권력 등 거대한 단일체를 이룬 세력들(관료화된 정당이나 노동조합도 포함)이 만들어 놓은 기술적, 관료적 합리성은 '과학적'이라는 미명 아래 서슴 없이 압제를 휘두르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에 대항하여 대항문화들은 독특한 '신좌파' 정치를 통해 반反전체주의적 입장이나 반反전통, 일상생활 비판을 포용함으로써 개별적인 자아실현 영역을 개척했다."(60)


# 분야별 포스트모던 현상

1.건축 : 대규모 계획도시에서 꼴라쥬 같은 다원적 공간으로 변모

2.소설 : 인식론 중심(복합적이면서도 단일한 실체의 의미 추구)에서 존재론 우위(서로 다른 주체들이 공존하고 충돌하는 상호 관계 조명)로 변모

3.철학 : 추상적 이성에 대한 철저한 반항과 보편적 인간해방과 관련한 모든 프로젝트 거부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놀라운 점은 "보들레르의 모더니티 개념 가운데 한쪽 측면, 즉 순간성, 분절성, 불연속, 혼돈을 전면 수용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의 이 사실에 대한 대응은 {보들레르와 달리}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 사실에 맞대응해 넘어서고자 애쓰지 않으며, 심지어 그 배후에 깔린 '영원불변'한 요소들을 밝혀보고자 하지도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마치 그것이 전부인 듯 '분절성과 변화의 무질서한 흐름' 속에서 헤엄치며 심지어 이에 탐닉한다."(68) 푸코(Foucault)나 리오타르(Lyotard)의 경우처럼, 메타언어나 메타서사, 또한 메타이론이 존재한다는 생각들을 단호히 배격하고, "모든 그룹이 자신 고유의 목소리로 자신들을 대변한 권리를 갖는다는 생각, 그리고 그러한 목소리가 신뢰성이 깃든 적법한 것이 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주의적 입장에서 필수적이다."(72-3)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언어와 커뮤니케이션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매우 상이한 이론들을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인다. 모더니스트들은 언급되는 것(기의 또는 '메시지')과 언급하는 방법(기표 또는 '미디어') 사이에 튼튼하고도 뚜렷한 관계가 있다고 가정하지만,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은 이것을 '끊임없이 쪼개어져서 새로운 조합으로 다시 뭉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해체주의'─1960년대 말 데리다(Derrida)의 마틴 하이데거(M. Heidegger) 읽기로부터 시작된 운동─는 바로 이 대목에서 포스트모던 사고방식에 대한 강력한 자극으로서 등장한다. 해체주의는 철학적 입장이라기보다는 텍스트에 대한 사고법이자 '독서법'이다."(74) 이들이 보기에 "텍스트와 의미의 영원한 상호교차는 우리의 통제영역 밖에서 벌어지므로 힘들여 텍스트를 정복하고자 함은 부질없는 일이다. 언어는 우리 내부에서 유통되고 있다."(76)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주장하듯 세상에 대한 그 어떠한 통일적 재현도 기대될 수 없다면, 또는 세계를 끊임없이 변동하는 파편들로 묘사하지 않고 그것을 연관과 차이로 가득찬 총체로 묘사할 수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세계에 대해 일관된 방식으로 행위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간단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즉 일관된 재현이나 행위가 억압적이거나 환상적일 따름이므로(그에 따라 자기소모적, 자기배제적일 운명이므로), 우리는 결코 어떠한 총론적 프로젝트에도 매달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듀이(Dewey)류의 실용주의가 유일한 행위철학으로 떠오르게 된다."(77) 포스트모던 사상에서 "우리는 더 이상 개인들이 고전적 맑시즘의 주장처럼 소외되어 있다고 볼 수가 없다. 소외되었다는 말에는 소외의 대상이 될 자아에 대한 의식이 분절적이지 않고 일관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미리 상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80)


이와 같은 "시간적 질서의 붕괴로 말미암아 과거가 특이한 방식으로 다루어지게 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진보의 개념을 잃어버리는 과정에서 역사적 연속성이나 그에 대한 기억까지 모두 폐기해 버리며, 동시에 역사를 훔치고 거기서 현재의 모습이라 여겨지는 것들이라면 모두 집어삼킨다."(82) 이제 "역사가들에게 남는 유일한 역할은, 푸코가 주장했듯이, 과거를 쫓는 고고학자가 되는 일이다. 즉 보르헤스가 그의 소설에서 그러했듯이 땅을 뒤져 역사의 유물을 찾고 그것들을 차례차례로 박물관에 모으는 일이다. 철학을 통해 몇몇 불변의 인식론적 문제제기 틀을 설정해볼 수 있으리란 기대를 공격하면서 로티(Rorty, 1979: 371)도 비슷한 주장을 편다. 곧 하나의 문화 속에서 오가는 엇갈린 대화들의 불협화음 속에서 철학자가 맡는 유일한 역할이란, '여러 견해들에 대한 한 가지 견해를 가지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무언가에 대해 오직 하나의 견해만을 인정하는 입장을 비난하는 일'이다."(84)


"모더니즘은 근대화라는 특수한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 모더니티의 조건들에 대한 미학적 대응으로서, 불안정하게 오르락내리락거리는 개념이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발흥을 적절하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근대화의 본질을 파악해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포스트모더니즘이 변함없는 근대화 과정에 대한 하나의 또다른 대응인지, 아니면 이른바 '탈산업' 사회 또는 심지어 '탈자본주의' 사회의 일종을 지향하여 근대화의 본질 그 자체가 급격히 변동한 것을 반영하거나 혹은 그 징조를 보여주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132)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최고 권력인 "화폐는 정치 및 경제적인 것들을 순수한 지배권력 관계의 정치경제로 결합시킨다. 화페와 상품이라는 가장 공통적이고도 구체적인 어휘들은 모든 사람들을 동일한 시장평가 체계로 묶고, 그에 따라 객관적으로 자리잡은 사회적 결속체계를 통하여 사회적 삶의 재상산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이야말로 시장자본주의의 보편적 기반을 이루는 것들이다."(136)


"시장 거래에 동참하려면 생산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키는 것(소외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일정한 분업 또한 미리 가정되어야 한다. 그 결과 개인 경험의 산물로부터 개인이 소외되고 사회적 업무들이 분절화되고 생산과정의 주관적 의미가 시장에서의 객관적인 제품 평가와 분리된다. 고도로 조직화된 기술적·사회적 분업은 비록 자본주의에만 고유한 것은 아닐지라도 자본주의적 근대화의 기본원리 가운데 하나이다." 아울러 "노동이 임노동으로 바뀐 것은 '노동 생산물로부터 노동의 분리, 객관적 노동조건들로부터 주관적 노동력의 분리'를 뜻한다. 이는 아주 색다른 유형의 시장 거래가 생겨났음을 말해준다. 노동력을 구매해야 하는 자본가들의 경우 필연적으로 노동력을 도구적으로 다루게 된다. 노동자는 전인(全人 : whole person)이 아니라 '일손'으로 여겨진다. 노동이 단지 생산의 한 '요인'으로만 취급되는 것이다(이 물상화에 주목하라)."(137-9)


"모더니즘의 역사 전반과 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불리는 운동 사이에는 차이점보다 연속성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 속에 일어난 특정 종류의 위기 가운데 하나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즉 보들레르 정식 가운데 분절적이고 순간적이고 혼돈된 측면(맑스는 이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라는 총체의 일부임을 훌륭하게 분석하고 있다)을 강조하고 영원불변한 것을 사유하고 재현하거나 표현하는 방법에 관한 모든 특정한 처방에 대해 깊은 회의를 보이는 것이 곧 포스트모더니즘이다."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은 "현대 세계의 딜레마를 이해하는 수단 노릇을 하는 분절화나 불협화음을 수용하라고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한껏 즐기라고 말한다. 그들이 마주치게 되는 모든 형태의 견해들을 해체하고 비합법으로 내모는 데 집착한 나머지, 그들은 합리적 근거를 갖춘 행동이라곤 전혀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면서 자신들의 타당성 주장을 스스로 비난할 수밖에 없다."(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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