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의 세계
피에르 비달나케 지음, 이세욱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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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 서사시가 없었다고(쓰여지지 않았거나/소실되었거나) 하여 문학과 예술의 질이 떨어지거나 범위가 좁아졌으리라 단언할 수는 없다. 조금 늦은 후대의 상상력이 최초의 타이틀을 달고 다른 형식의 돈키호테와 율리시즈의 길을 예비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호메로스가 음송한 서사시의 뒤를 따라 살고 있기에 그 자장(磁場)을 벗어난 돈키호테와 율리시즈를 생각할 수 없다.

역사는 누적되어 쉽사리 변치 않는 시대적 해석을 담고 있지만, 그 영향력은 당대와 전후(前後) 세대라는 짧은 오감에 국한되며, 그마저도 눈 밝고 귀 열린 이들에게 한정된다. 그래서 헤겔은 우리가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학과 예술은 매 시대마다 새로운 해석과 창작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된 몸으로 부활한다.

그리스인들은 그리스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그리스인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들은 서사시를 익히고, 비극을 관람하며, 민회에 나가서 발언하는 등 모든 배움을 폴리스 안에서 실천했다. 역사는 노래로 직조되고 문학으로 형상화되었으니 그리스인들은 서사시를 읽으면서 역사적 식견을 세우고, 인간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키웠나갔다. 그 출발점이 바로 호메로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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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42
홍기빈 지음 / 책세상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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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장 큰 기여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구분 그리고 시장과 공동체의 관계 역전에 대한 고심과 대응방안이다. 그는 시장이 들어서고 화폐가 본격적으로 사용되면서, 사용가치와 무관한 화폐 축적에의 욕망을 접하게 되었고, 이러한 욕망의 폭주가 호혜성에 기반한 사회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사태를 우려했다.

그의 해결책은 공정한 분배를 구현하는 이성적 제도의 수립과 행복의 진정한 의미에 관한 시민 교육이었다. 19세기 고전 경제학의 기여(?)로 경제의 위상이 사회 활동의 일부가 아니라 사회를 창출하는 원인으로 격상된 현재의 우리들이 보기에는 망상에 불과한 주장이지만, 그는 병의 근본 원인을 조기에 치료하고자 애쓴 사상의 의사였다.

물론 역사적 변천을 겪으면서 복잡성이 심화되고 적자생존이라는 생물학의 지적 대격변을 수용한 현재의 경제적 관계를 아리스토텔레스의 통찰 하나로 재단하거나 회귀시키려는 시도는 지적 게으름과 시대착오적 오류anachronism에 불과하다. 저자가 아리스토텔레스에 주목하는 이유는 저작권의 회복이 아니라 공동체의 복원을 위해서이다.

그것은 공동체가 경제적 욕구 충족의 수단이 아니라 그 반대라는 사실, 곧 경제적 재화의 생산과 분배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시민 모두의 '행복'을 위한 수단이라는 생각의 재생이다. 이 사유는 자본을 탄생시킬 만큼 놀라운 인간 정신의 위력을 긍정하면서도 확고한 신념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더 나은 방식을 지향하는 합의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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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론으로 본 민주주의 - 민주주의에서 정당정치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정당론 클래식 2
앤서니 다운스 지음, 박상훈 외 옮김 / 후마니타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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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량회된 경제 모델은 변수 통제에서 오는 단순화의 위험성을 피할 수 없다. 이것은 '단순히' 더 많은 변수를 적용한다고 해서 해결되거나 모델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 작용하는 변수의 종류와 중요도가 수시로 변하기 때문이다. 결국 특정 경제 모델의 설득력은 현상을 설명하는 최초의 가정이 무엇인가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이 가정은 포괄성과 함축성을 동시에 구현해야 하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저자는 민주주의 제도하의 정당이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처럼 득표 극대화를 위한 정책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시민들은 정치적 판단을 내릴 때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두 가지 기본 전제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합리적'이라는 말은 규범적 가치를 지향하는 의사결정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목적-정당에게는 득표 극대화, 유권자에게는 적확한 투표 행위-에 부합하는 절차의 수립을 의미한다.

이 가정은 선출된 정부의 실제 정책 집행 과정에 대해 유권자들이 보이는 합리적 무지rationally ignorant를 통해 간접적으로 입증된다. 유권자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 및 선호도와 긴밀하게 연관된 정보의 편향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들의 판단에 자신의 결정을 위탁한다. 이것은 선거 이후의 정부 활동에 대한 정보 수집이 시간과 노력을 막대하게 소모시키면서도 자신의 삶에 직접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저자의 작업은 공공선을 추구하는 고전적 민주주의 개념이 놓치고 있는 사적 행위자agents들의 권력 지향 행위에 주목하여 '집권'에 초점이 맞춰진 민주주의의 절차적, 제도적 측면을 분석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규범적 가치평가를 배제하고 정당 활동에 기초한 행위자들의 합리적 경쟁이 민주주의의 한 단면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슘페터의 선행 연구를 확장하여 경제 모델화했다는 점에서 방법론적 의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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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
로버트 달 지음, 배관표 옮김 / 후마니타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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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더 이상 비민주적 절차의 남용을 걱정하지 않는 시기이다. 이 시기는 시민들의 의식 수준이 민주적 절차에 숙달되어 있음을 확인한 민주주의의 공식적 승인기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권위주의가 민주적 절차 아래에서도 충분히 권력의 상층부에 이를 수 있음을 확인한 시기이기도 하다. 국가의 외부 구조가 민주주의로 장식되어 가는 동안, 내부 체제들은 경제적 불평등에서 비롯한 비민주적 성향을 가파르게 확장시키고 있었다.

우리는 민주적 절차에 익숙한 만큼 기업 문화의 비민주적 관행에도 익숙하다. 경제적 권리가 사유재산을 무제한으로 축적할 수 있는 권리까지 정당화하면서, 경제적 자원의 획득이 다른 사람의 동등한 권리를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로크의 신중함은 잊혀진 지 오래다. 민주주의가 절차적 정당성을 넘어 시민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풍요롭게 하려는 일련의 시도라고 한다면, 기업 문화의 반민주성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직면한 주요 과제인 셈이다.

통상적으로 경제 민주주의에 관한 논의가 부의 재분배나 복지 체계의 손질을 통해 불평등을 사후적으로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반해, 저자는 "기업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통치하는 기업 체계"인 자치 기업(self-governing enterprise)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저자는 현실 정치가 대의제에 기반한 불완전한 민주주의인 것처럼, 자치 기업도 불완전한 집단적 의사결정 구조를 개선해가는 체제라고 강조한다.

자치 기업의 의의는 혁명의 성취가 아니라 경험의 축적을 통해 기업 내부의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는 데 있다. 자치 기업은 공정하게 경제적 자원을 배분하려는 선제적 시도를 상징한다. 비록 자치 기업의 유효성에 불가피하게 의문 부호가 뒤따르더라도, 몬드라곤과 같은 이상의 진행형은 이론을 현실에 반영하고자 하는 민주주의의 견인력을 보여준다. 이 길은 기업의 최우선 목표가 '이윤 추구'라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우리의 시야에 들어온다.

[장하성 칼럼] 재분배보다 분배를 먼저 개혁해야 한다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7385938&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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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민주주의 - 오래된 이상과 도전
폴 우드러프 지음, 이윤철 옮김 / 돌베개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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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통해 제시하는 민주주의의 근간은 인류가 지닌 보편 이성(의 가능성)과 공공 장소에서 발언할 수 있는 권리(의 보장), 그리고 시민들의 능력을 개발하는 교양 교육(의 필요성)이다. 민주주의가 가장 이상적인 체제라는 저자의 주장은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페르시아 전쟁의 환희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몰락을 거치면서 다수결의 불화를 겪은 아테네 민주정을 변호하는 근거로는 미진한 구석이 있다.

그가 제시하는 민주주의의 7가지 이념은 "어떠한 방식으로 합의에 이르는가?"라는 질문의 곤란함을 우회하는데, 이것은 민주주의가 합의를 예비하는 체제가 아니라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설계하는 체제라는 점에만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차적 정당성' 역시 절차에 대한 합의를 전제하기 때문에 가치중립적 명제가 아니다. 합의는 정적인 사유로 발굴한 유물이 아니라 북적이는 광장의 소란스러움에서 쟁취한 산물이다.

아울러 최초의 민주주의는 개체 수준에서 달성 가능한 합리적 이성이 집단 수준에서 독단적 패기로 변질되어 버리는 부정적 합의에 대한 고찰을 요청한다. 사회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이 위상 전환은 민주주의의 이상이 이성에 기반하고 있는 반면, 인간의 삶은 정념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의외의 사태로만 간주할 수는 없다. 인간은 자신의 정념이 사회를 압도하는 순간, 보편성과 지속성이 무너진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개체로서의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열망을 사회에 투사하고자 한다. 이것은 자신이 수립한 법칙에 따라 생동하고 번성하라는 인간의 정언 명령이다. 인간의 정념은 이 열망이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지각한다. 그렇지만 시민 지혜와 교양 교육의 실현을 허구로 낙인 찍는 길과 그것을 본(本)으로 상정하여 부단히 매진하는 길은 다르다. '다름'에 대해 토론할 때 다른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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