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통해 제시하는 민주주의의 근간은 인류가 지닌 보편 이성(의 가능성)과 공공 장소에서 발언할 수 있는 권리(의 보장), 그리고 시민들의 능력을 개발하는 교양 교육(의 필요성)이다. 민주주의가 가장 이상적인 체제라는 저자의 주장은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페르시아 전쟁의 환희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몰락을 거치면서 다수결의 불화를 겪은 아테네 민주정을 변호하는 근거로는 미진한 구석이 있다.그가 제시하는 민주주의의 7가지 이념은 "어떠한 방식으로 합의에 이르는가?"라는 질문의 곤란함을 우회하는데, 이것은 민주주의가 합의를 예비하는 체제가 아니라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설계하는 체제라는 점에만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차적 정당성' 역시 절차에 대한 합의를 전제하기 때문에 가치중립적 명제가 아니다. 합의는 정적인 사유로 발굴한 유물이 아니라 북적이는 광장의 소란스러움에서 쟁취한 산물이다.아울러 최초의 민주주의는 개체 수준에서 달성 가능한 합리적 이성이 집단 수준에서 독단적 패기로 변질되어 버리는 부정적 합의에 대한 고찰을 요청한다. 사회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이 위상 전환은 민주주의의 이상이 이성에 기반하고 있는 반면, 인간의 삶은 정념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의외의 사태로만 간주할 수는 없다. 인간은 자신의 정념이 사회를 압도하는 순간, 보편성과 지속성이 무너진다는 사실에 직면한다.죽음을 피할 수 없는 개체로서의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열망을 사회에 투사하고자 한다. 이것은 자신이 수립한 법칙에 따라 생동하고 번성하라는 인간의 정언 명령이다. 인간의 정념은 이 열망이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지각한다. 그렇지만 시민 지혜와 교양 교육의 실현을 허구로 낙인 찍는 길과 그것을 본(本)으로 상정하여 부단히 매진하는 길은 다르다. '다름'에 대해 토론할 때 다른 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