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의 세계
피에르 비달나케 지음, 이세욱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호메로스 서사시가 없었다고(쓰여지지 않았거나/소실되었거나) 하여 문학과 예술의 질이 떨어지거나 범위가 좁아졌으리라 단언할 수는 없다. 조금 늦은 후대의 상상력이 최초의 타이틀을 달고 다른 형식의 돈키호테와 율리시즈의 길을 예비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호메로스가 음송한 서사시의 뒤를 따라 살고 있기에 그 자장(磁場)을 벗어난 돈키호테와 율리시즈를 생각할 수 없다.

역사는 누적되어 쉽사리 변치 않는 시대적 해석을 담고 있지만, 그 영향력은 당대와 전후(前後) 세대라는 짧은 오감에 국한되며, 그마저도 눈 밝고 귀 열린 이들에게 한정된다. 그래서 헤겔은 우리가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학과 예술은 매 시대마다 새로운 해석과 창작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된 몸으로 부활한다.

그리스인들은 그리스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그리스인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들은 서사시를 익히고, 비극을 관람하며, 민회에 나가서 발언하는 등 모든 배움을 폴리스 안에서 실천했다. 역사는 노래로 직조되고 문학으로 형상화되었으니 그리스인들은 서사시를 읽으면서 역사적 식견을 세우고, 인간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키웠나갔다. 그 출발점이 바로 호메로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