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기후적응 시대가 온다 - 종말로 치닫는 인간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
김기범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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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지구는 인류가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기후위기 대응은 지구가 아닌 인류 자신을 위한 행동이자 우리를 살리기 위한 행동일 뿐 지구를 위한 것도, 지구를 구하는 것도 아니다. 인류의 기후위기 대응에는 크게 두 가지 방향이 있다. 첫째, 더 이상의 온도 상승을 막기 위한 전 세계적인 공조 체제를 마련하고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획기적인 변화를 추진하는 것. 둘째, 이미 온도가 올라간 상황에서 근미래에 닥쳐올 기후재난에 대비하기 위한 ‘적응 정책’을 펼치는 것. 이 책은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을 포함해 인류가 지금껏 노력을 기울여온 첫 번째 방향의 대응이 성공적이었는지 살펴본 뒤, 현재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두 번째 방향의 대응책을 점검한다. 폭염, 해수면 상승, 전염병 발발 등 지금껏 우리가 마주해온 각종 기후재난의 형태를 실감 나게 소개하면서도, 우리가 왜 이러한 일들을 겪게 되었는지 역사적으로 검토하고, 그동안 다른 책에서는 크게 조명받지 못했던 기후적응 정책의 실태를 우리의 현실에 맞게 풀어내고자 한다. 14-5)


1부 지금 우리는 어떤 상황인가


국제 연구 단체인 세계 탄소 프로젝트Global Carbon Project가 2023년 12월 5일 발표한 <2023년 세계 탄소 예산 보고서>에는 2023년 화석 연료 사용으로 배출된 온실가스가 2022년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화석 연료 사용으로 인한 세계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2년보다 1.1% 증가했고, 인간 활동으로 인한 총 온실가스 배출량은 409억t으로 분석됐다. 기상청이 2023년 6월에 발간한 <2022 지구 대기 감시 보고서>에 의하면 충남 태안군 안면도 기후변화감시소의 이산화탄소 배경농도는 425.0ppm을 기록했다. 2021년보다 1.9ppm 늘어난 수치다. 미국해양대기청NOAA이 측정한 2022년 전 지구 평균 이산화탄소 배경농도도 417.06ppm으로 2021년 대비 2.13ppm 증가하며 역대 최고 농도를 기록했다. 불과 10~20년 전의 지구 이산화탄소 농도가 400ppm을 넘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얼마나 빠르게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 중인지 짐작할 수 있다. 20-1)


최근 공개되는 시나리오들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예상보다 더욱 암울한 예측을 내놓고 있다. 2023년 12월 초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UN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비영리 기후단체 클라이밋 센트럴Climate Central이 공개한 전 세계 도시의 수몰 이미지가 그 사례다. 이 단체는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예측 결과와 지역별 고도 등을 종합해 지구 지표면 평균온도(이하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에 따라 달라지는 각 도시의 모습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했다. 클라이밋 센트럴은 인류가 탄소 배출량을 급격히 줄여 전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제한했을 때 각 도시의 모습은 지금과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전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이 3도에 달했을 때 상승한 해수면은 많은 도시를 집어삼킬 것으로 예상했다. 안타깝게도 3도 상승폭은 이번 세기말 인류가 맞이할 수 있는 미래 가운데 비교적 밝은 미래, 장밋빛 전망에 속하는 편이다. 23)


<호주 보고서>는 특히 ‘찜통지구 Hothouse Earth’에 진입하는 문턱이 사실 2도보다 낮은 수치일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대해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찜통지구란 인류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더라도 지구가 스스로 온실가스를 배출해 기후변화를 증폭시키는 상태를 의미한다. 특히 ‘찜통지구’ 시나리오가 현실화된 상황에서도 인류의 온실가스 배출은 중단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구는 인류가 예측했던 온난화 수준 이상의 상태를 향해 변화한다. 지구 지표면의 30% 이상에서는 극심한 건조지대화 현상이 발생한다. 남아프리카, 지중해 남부, 서아시아, 중동, 호주 내륙, 미국 남서부 전역 등에서는 극심한 사막화가 일어난다. 2도 상승폭의 온난화로도 10억 명 이상이 집을 잃고 떠돌게 되고, 인류 문명은 종말에 이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10억 명이 기후난민이 된다는 것은 인류 사회의 상당 부분이 현재와 같은 상태를 유지하기 힘들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26-8)


그렇다면 과학자들이 내놓는 기후변화의 증거에는 어떤 내용이 포함돼 있을까? 가장 직접적인 증거는 생물종의 급격한 감소다. 인위적 요인으로 인해 수많은 동식물들이 멸종의 길을 걷고 있으며,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2024년 2월 12일 UN환경계획UNEP 산하 이동성야생동물보호협약(CMS)은 제14차 당사국총회를 열고 <이동성 야생동물의 세계 현황>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이동성 야생동물 중 44%가량의 개체 수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동성 야생동물이란 철새나 고래처럼 나라와 나라, 대륙과 대륙을 오가는, 이동 범위가 넓은 동물을 말한다. 보고서에는 이 협약에 등록된 1,189종 중 260종(22%)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 520종(44%)은 개체 수가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분류군별로 가장 심각한 상태에 처한 것은 어류였다. 이동성 어류의 약 97%가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이동성 파충류의 멸종위기 비율도 70%에 달한다. 49-50)


2부 지구와 인간의 병적 증상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이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텍사스A&M대학 연구진은 2020년 5월 한민족과학기술자네트워크KOSEN의 《KOSEN리포트》 에 기고한 <코로나19와 기후변화> 보고서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온실가스 배출량이 급증하는 ‘리바운드rebound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고, 이 예측은 실현되고 있다. 코로나19를 핑계로 인간 활동만을 중지함으로써 자연의 회복을 도모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뿐더러 지극히 무책임한 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멸종위기를 맞은 동식물들을 방치하는 것은 인류가 저지른 원죄에 스스로 면죄부를 주는 일일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생태계와 우리 인류의 관계를 설정하는 방향에 있어 자연의 회복력을 과신하는 태도를 지양해야 하는 이유다. 인간이 스스로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자연 훼손을 줄이는 활동을 지속하지 않으면서 자연 스스로 회복되기만을 바라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78-9)


과학자들은 인간의 무분별한 야생동물 이용이 앞으로도 더 큰 위험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바이러스의 저수지’라는 별명을 얻은 박쥐의 서식지 파괴와 교란이 인간 자신을 위협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 버클리캠퍼스(UC버클리) 연구진은 2020년 국제학술지인 《이라이프eLife》 에 박쥐가 바이러스를 지니고도 생존할 수 있는 메커니즘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 결과에는 인간의 박쥐 서식지 파괴와 교란이 박쥐에게 더 큰 스트레스를 주고, 이는 다른 동물들을 감염시킬 수 있는 분비물이나 배설물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추정도 포함돼 있다. 즉 인간이 동굴을 훼손하는 등의 교란 행위를 하면서 박쥐가 위협을 받게 되면 인간도 위험해진다는 것이다. 기존의 인수공통감염병 역시 인간이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훼손하고, 해당 동물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인간에게 전파된 사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아직까지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88-9)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미세플라스틱을 ‘크기가 100nm(나노미터, 머리카락 굵기의 500분의 1 정도) 이상, 5mm 미만인 플라스틱’으로 정의한다. 1차 미세플라스틱은 의도적으로 만든 미세플라스틱이다. 치약, 세안제, 화장품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알갱이가 대표적이다. 2차 미세플라스틱은 플라스틱 제품과 파편이 풍화·마모되며 생긴 것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미세플라스틱 대부분은 2차 미세플라스틱이다. 자연 환경에 있는 2차 미세플라스틱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형태는 미세섬유다. 해양 심층수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미세플라스틱 쓰레기 역시 미세섬유다. 북극의 한대수역 심해에서 채취한 시료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의 대부분(약 95%)은 미세섬유였다. 비닐을 뜯거나 플라스틱 병의 뚜껑을 여는 매우 사소한 행동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인류 모두는 미세플라스틱으로 오염시키는 문제에 있어 서로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셈이다. 103-6)


미세플라스틱의 생태계 영향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미세플라스틱 입자 자체가 미치는 물리적 영향이다. 대표적으로 미세플라스틱 섭취로 인한 영양 감소, 내부 장기 손상, 염증 반응 등이 있다. 체내에 들어온 미세플라스틱은 소화기 내부에 상처를 입히고, 소화 작용을 약화시켜 질병 발생률과 사망률을 높일 우려가 있다. 플라스틱 입자가 작을수록 더 위험하다. 입자가 작을수록 생체조직의 장벽을 통과해 혈관이나 모세혈관에 침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미세플라스틱의 화학적 영향이다. 미세플라스틱에 포함된 첨가제가 침출되면서 생물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플라스틱에 포함된 첨가제 중 비스페놀A, 프탈레이트 등은 대표적인 내분비계교란물질(환경호르몬)이다. 비스페놀A는 갑상선호르몬의 작용을 방해하고, 생식 독성과 발달장애 및 심혈관계질환을 유발하며 유방암과 전립선암의 원인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프탈레이트는 생식계 발달장애, 기형 등 다양한 인체 질환을 유발한다. 107)


현재 북극권에서는 세계 평균에 비해 적어도 2배 이상 빠른 속도로 기후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해빙, 즉 바다의 얼음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로, 해빙이 줄어든 만큼 늘어난 바다의 면적은 약 260만km2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태양광을 반사하는 얼음과 눈이 감소하면서 자연스럽게 북극권의 물과 토지가 흡수하는 태양에너지는 증가하고, 이에 따라 기온이 상승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를 ‘얼음-알베도 피드백ice-albedo feedback’이라고 부른다. 알베도는 지표면에서 반사되는 태양에너지의 비율을 의미한다. 그런데 북극권에서 일어나는 변화 가운데 영구동토永久凍土가 녹아내리고 있다는 점은 간과되고 있다. 북극권 해빙이 녹고 주변 지역을 덮은 눈이 사라지면서 태양열을 흡수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것뿐 아니라, 광대한 넓이의 영구동토가 사라지면서 온실가스 중 하나인 메탄이 대기 중으로 방출되며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114-5)


3부 피할 수 없다면 적응하라


우리가 살아가는 한반도 역시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은 곳이고, 적응의 필요성 또한 높아지고 있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이 발표한 ‘주요 작물의 재배 한계선’을 살펴보면, 1980년대 대구에서 재배된 사과는 21세기 들어 경기 포천이나 강원 북부에서도 재배된다. 같은 기간 동안 녹차는 전남 보성에서 강원 고성으로, 무화과는 전남 영암에서 충북 충주로, 복숭아는 경북 청도에서 경기 파주로 재배지가 북상했다. 해수면 온도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따뜻한 바다에 살던 난류성 어류가 북상함에 따라 바다 생태계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난류성 어류인 전갱이는 월동지인 동중국해로 가지 않고 겨울에도 남해 연안에 머문다. 난류를 따라 남해에서 잡히던 멸치는 울릉도 근해에서 어획되고, 일본 혼슈 이남에 살던 다랑어는 울산 앞바다에서도 꾸준히 잡히게 됐다. 반대로 과거 서민들의 찌개거리였던 한류성 어류 명태는 1990년대 이후 남한 수역에서 ‘씨가 말라버린’ 어종이 되었다. 123-5)


유럽에서는 여름철 낮 최고기온이 35도에 이르는 이상고온을 ‘열파heat wave’라고 부른다. 영국의 비정부기구 영파운데이션Young Foundation의 보고서 <열파: 노인 복지에 있어 2003년 프랑스 열파의 영향>은 “노동인구가 휴가를 떠나고 사람이 없는 곳처럼 변한 마을에서 휴가를 갈 경제적 수단이 없는 이들, 특히 갈 곳이나 의지할 곳이 없는 노인들”을 폭염의 최대 피해자로 언급했다. 기후적응을 한답시고 무턱대고 에어컨을 사용하면 온실가스가 쏟아져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무더위쉼터’와 같은 사례는 도시의 각 가정이나 매장에서 에어컨을 사용하는 것과는 다른, 사회복지 시스템의 차원에서 농어촌 지역이나 빈민·노인 등 사회적 약자층에 집중된 정책임을 감안해야 한다. 즉 인구가 밀집된 도시 공간에서는 에어컨 사용을 적극적으로 줄이면서 폭염의 직격탄을 맞는 농어촌 지역의 노인들에게는 에어컨 사용을 권장하는 것이 보다 균형 잡힌 기후적응 정책의 방향일 것이다. 136-8)


기후변화로 인해 전 지구의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고, 그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당장 몰려오는 바닷물을 막을 방법은 제방밖에 없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점점 상승하는 해수면이 언젠가는 제방의 높이를 넘어설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방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자연의 변화에 무리하게 맞서는 대신, 바닷물이 그대로 육지를 잠식하도록 내버려두는 역발상을 시도하기도 한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보존된 갯벌로 유명한 덴마크에서의 ‘바닷물 침수 실험’이 바로 그것이다. 연구진은 바닷물이 자연스럽게 해안 지역을 바꾸도록 두는 경우 제방을 쌓고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생물다양성이나 자연자원 측면에서 가치를 높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게다가 물에 잠긴 토양은 기후변화의 주원인인 탄소를 저장하는 기능도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현재도 해당 지역은 계속해서 자연적인 석호로 변해가고 있으며 더 많은 생물종이 나타나고 있다. 133-4)


물론 이 연구는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인간이 거주하기 힘든 환경으로 바뀔 위험이 높은 태평양이나 인도양의 섬나라들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다. 일명 ‘도서국가(모든 영토가 섬으로만 구성된 국가)’로 불리는 곳들은 UN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도 선진국에게 강도 높은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요구하는 그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해수면 상승이 빨라지고 있다는 암울한 전망을 계속해서 내놓고 있다. 태평양과 인도양의 저지대 산호초섬에 인간이 살 수 없게 되는 시점이 60~70년 뒤인 21세기 말이 아닌 20~30년 뒤인 21세기 중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 하와이대학 마노아캠퍼스 등 공동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어드밴스》 에 2018년 4월 25일 게재한 논문에서 태평양 등 저지대 산호초섬 전체가 바닷물에 잠기지 않더라도 민물인 지하수에 바닷물이 섞여 들어가면 인간의 식수원이 사라질 것이라 내다봤다. 136)


뉴욕 맨해튼의 대규모 전시장 재비츠 컨벤션센터(이하 재비츠센터) 옥상에는 7ac(2만 8,328m2)에 달하는 옥상농장이 조성돼 있었다. 옥상농장에서 재배한 농작물은 재비츠센터 직원들이 이용하는 구내식당의 식재료로 활용되고 있고, 주변 주민들에게 판매되기도 한다. 재비츠센터는 한국으로 치면 코엑스나 킨텍스 같은 전시장 역할을 하는 건물로, 뉴욕 34~40번가 허드슨강 인근 6개 블록을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이런 거대한 건물의 옥상이 농장과 태양열발전시설로 탈바꿈한 때는 2014년이다. 옥상농장을 만든 결과 재비츠센터는 여름철엔 5~6도 정도 시원해졌고, 겨울철에도 5~6도 정도 따뜻해졌다. 그만큼의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음은 물론이다. 또 옥상농장은 막대한 양의 빗물을 저장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농장의 토양과 빗물탱크 등에 저장되는 빗물의 양은 연간 700만gal(2,649만 7,882L)에 달한다. 옥상농장이 많은 양의 물이 우수관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146)


4부 이미 닥쳐온 파국 앞에서


기온이 높고 습도는 낮은 경우나 습도가 높고 기온은 낮은 경우에 비해 고온다습한 기후에서 인간의 생존률은 크게 낮아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미국 MIT 연구진은 2018년 7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에 빠르면 2070년쯤 중국 북부 화베이평원 지역의 습구온도가 인간이 생존하기 힘든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라는 내용의 논문을 게재했다. 연구진은 인류가 현재 추세대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경우를 뜻하는 ‘RCP 8.5 시나리오’를 적용할 경우 화베이평원의 평균 습구온도가 빠르면 2070년쯤 32.6도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칭타오, 상하이, 항저우 등의 습구온도는 35도까지 오를 수 있다고도 추측했다. 습구온도 35도는 건강한 사람도 야외에서 6시간 이상 버티기 힘든 수준이다. 미국 럿거스대학 연구진은 기후변화가 계속 진행된다면 2100년쯤에는 약 12억 2,000만 명이 33도 이상의 ‘습구흑구온도WBGT 지수’에 노출될 것이라는 논문을 2020년 3월 학술지 《환경연구회보》 에 게재했다. 157)


# ‘습구온도’란 온도계를 증류수에 적신 수건으로 감싼 상태에서 측정하는 것, 일반적으로 말하는 ‘기온’은 건구온도로 마른 상태의 온도계로 측정한다.


습구흑구온도 지수는 온열질환을 유발하는 4가지 환경 요소인 기온, 습도, 복사열, 기류를 반영한 수치다. 습구흑구온도가 33도가 넘으면 건강한 사람도 온열질환 때문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연구진은 40개의 기후 시뮬레이션을 분석해 온난화된 지구에서 고온다습한 환경이 얼마나 증가할지 추정했다. 연구진의 추산에 따르면 지구 지표면 평균온도가 1.5도 상승할 경우 건강에 악영향을 받는 인구는 약 5억 800만 명, 2도 상승할 경우는 7억 8,900만 명, 3도 상승할 때는 12억 2,000만 명에 달했다. 2020년 습구흑구온도가 33도 이상까지 올라가는 환경에서 거주하는 세계 인구는 약 2억 7,500만 명이다. 고온다습한 날씨는 인간의 신체뿐 아니라 정신에도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있다. 특히 폭염은 자살률을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연구진은 2018년 7월 《네이처》 자매지인 《네이처 클라이밋체인지》 에 폭염이 자살률을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157-8)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 ‘기후악당’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쓴 것은 2016년의 일이다. 2016년, 모로코에서의 당사국총회(COP22) 개막을 하루 앞두고 국제연구기관인 기후행동추적은 한국을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기후악당Climate Villain’ 국가라고 지목했다. 여기서 기후악당 국가는 기후변화 대응에 무책임하고 게으른 국가를 의미한다.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은 ‘기후변화대응지수 CCPI’에서도 최하위권으로 평가받은 바 있다. 기후변화대응지수는 온실가스 배출, 재생에너지, 에너지 소비, 기후정책 등 4가지 부문으로 나눠 평가하고, 점수를 합산해 국가별 종합점수를 매긴다. 한국의 순위는 2016년에는 조사 대상 58개국 가운데 54위, 2020년에는 61개국 가운데 58위, 2021년에는 60위, 2022년에는 57위라는 매우 낮은 순위를 차지했다. 가장 최근 평가인 2023년에는 전체 평가 대상 67개국 중 64위로 순위가 4단계 하락했을 뿐더러 한국보다 순위가 낮은 나라는 산유국뿐이었다. 160-1)


지금의 몽골을 상징하는 드넓은 초원과 사막은 사실 과거에는 겨울철마다 많은 눈으로 뒤덮이고, 끝도 없는 설경이 펼쳐지는 곳이었다. 보통 10월 말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12월에는 초원과 사막 대부분에 눈이 쌓였다. 이 눈은 황사의 발생을 막아주고, 녹은 뒤에는 유목민과 가축의 소중한 식수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평균보다 적은 양의 눈이 내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데, 특히 고비사막이 있는 몽골 남부 지역은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눈이 쌓이지 않거나 1.0~5.0cm 정도의 적은 양만 쌓였다. 이렇게 눈이 내리지 않는 따뜻한 겨울은 다수의 몽골 유목민을 환경난민으로 만들고 있다. 눈이 내리지 않으면 가축에게 먹일 풀과 물이 부족해지기 때문에 소, 양, 말 등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잦아진다. 가축이 전 재산인 유목민들은 살 길을 찾아 도시로 갈 수밖에 없다. 전 재산을 잃은 수십만 명의 유목민이 수도 울란바토르 주변에 모여 일종의 빈민가인 게르촌을 형성해 살아가고 있다. 166-7)


몽골이 겪고 있는 기후변화는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가장 먼저 주목할 부분은 모래폭풍이다. 몽골에 거대한 모래폭풍이 일어나면 높은 확률로 황사가 한반도를 덮치게 된다. 황사는 발원지인 몽골에서 고온건조한 날씨가 이어지고, 눈 덮인 면적이 작을 때 발생한다. 여기에 저기압이라는 조건까지 갖춰지면 모래먼지가 상승기류를 타고 3~5km 상공으로 올라간 후 북서풍을 타고 한반도로 날아오게 된다. 황사 자체는 모래먼지일 뿐이지만 황사가 이동할 때 중국 북부의 공업지대를 지나면서 중금속과 미세먼지 등 오염물질을 머금게 되면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국립환경과학원 자료를 보면 2009~2011년 한국에 온 28차례의 황사 중 13차례(46.4%)는 중국 공업지대를 지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오염물질이 포함되지 않은 상태의 황사는 삼국시대의 기록에서도 확인될 만큼 오래된 자연현상이다. 황사가 불어올 때는 흔히 ‘PM10(지름 10㎛ 이하)’이라고 부르는 미세먼지 농도가 크게 상승하게 된다. 168)


에필로그: 아직 희망은 있다


오존은 산소 원자 3개로 이뤄진 기체다. 지상 20~25km 상공의 성층권에 형성돼 있는 오존층은 태양으로부터 오는 자외선을 차단해 생태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반면 지표에서 오존은 건강에 해를 끼치는 물질이 된다). 오존층이 감소하고, 지표에 도달하는 자외선이 늘어나면 피부암, 백내장 등의 발병률이 높아진다. 미국 환경보호청의 연구 결과 오존이 1% 감소하면 백내장 환자가 최대 0.6%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존층 파괴의 원인 물질로는 1985년 당시 냉장고와 에어컨, 헤어스프레이 등에 널리 사용되던 냉매인 염화불화탄소(프레온)CFC가 지목됐다. 자외선과 염화불화탄소가 만나 발생하는 광화학 반응으로 염화불화탄소가 분해되면서 염소 원자가 생기고, 이 염소 원자가 오존 분자를 분해시키면서 오존층이 파괴되는 것이다. 염소 원자 하나는 오존과 반응한 뒤 원상태로 돌아와 다른 오존 분자들을 산소 원자로 분해시킨다. 염소 원자 1개는 오존 분자 10만 개를 파괴한다. 183)


충격을 받은 국제사회는 발 빠르게 움직여 2년 뒤인 1987년 ‘몬트리올 의정서’를 채택해 염화불화탄소 생산을 금지하기에 이른다. ‘몬트리올 의정서’ 체결을 통한 오존층 회복 노력은 국제사회가 전 지구적인 환경 재앙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몬트리올 의정서’에는 세계 197개국이 가입했으며 한국은 1992년 2월 가입했다. 이처럼 전례 없는 국제사회 전체의 환경 보존을 위한, 실은 인류 생존을 위한 노력 덕분에 극지방의 오존구멍은 점진적으로 회복되고 있다. 세계기상기구 WMO는 2018년 11월 남극과 북극의 오존구멍이 2060년쯤에는 완전히 복원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오존구멍이 2000년대 들어 회복되고 있으며 속도가 느리긴 하지만 약 40년 뒤에는 완전히 회복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북반구와 중위도의 오존구멍은 이보다 빠른 2050년쯤이면 완전히 복원될 것으로 예상했다. 183-4)


오존층 회복에 대해 밝은 전망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학계에서는 염화불화탄소 외에도 오존층을 파괴하는 것으로 알려진 물질의 배출량이 빠르게 증가하고 염화불화탄소의 불법 배출도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018년 6월에는 국제사회가 꾸준히 저감 노력을 기울여온 염화불화탄소의 대기 중 농도가 크게 늘어나는 일도 발생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중국 산둥성 싱푸 지역의 공장들에서 염화불화탄소를 사용 및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세계기상기구 역시 2018년 11월 오존층 회복 전망을 내놓으면서 동아시아 지역에서 염화불화탄소 가운데 삼염화불화탄소CFC11의 불법적인 배출량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MIT 연구진은 클로로포름에 대한 연구 결과가 인류의 오존층 회복을 향한 여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는 경고라고 강조했다. 오존층 회복을 늦출 수 있는 클로로포름 같은 물질들에 대한 새로운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185-6)


오존층 파괴로 인류 일부와 생태계가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인류 전체의 노력으로 오존층이 회복되긴 했지만, 염화불화탄소와 클로로포름이 여전히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는 현실은 기후위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지구 전체에서 시기가 빠르든 늦든, 기후위기는 이전에 없었던 재난을 일으킬 것이고, 또 일으키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현재 인류의 기후위기 대응은 —‘완화’와 ‘적응’을 모두 포함해서 —너무 느리고, 부족해 보인다. 인류 전체를 위협할 재난이 더 자주 일어나고, 더 큰 피해를 입힐 때 인류는 결국 전시 동원 체제에 준하는 ‘기후위기 동원 체제’를 가동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장밋빛 전망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라도 대책이 시행됐을 때, 인류 전체의 노력은 오존층 회복 사례에서 본 바와 같이 예상보다 더 빠른 성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수십 년 후를 향한 이 작은 외침이, 조용한 경고가 오늘의 인류와 미래 세대에게 닿기를 간절히 바란다.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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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에서 니체로 - 마르크스와 키아케고어, 19세기 사상의 혁명적 결렬
카를 뢰비트 지음, 강학철 옮김 / 민음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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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부 19세기 독일 정신사 연구


서론 괴테와 헤겔


"헤겔도 괴테도 (셸링처럼) 칸트의 이 최후의 이념─자연 개념과 자유 개념을 매개하는 판단력─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두 사람은 논증적인 오성을 타고 넘어서 자기 존재와 세계 존재의 중간에 서는 것으로써 '이성의 모험'을 감행했다. 다만 괴테는 직관된 '자연'의 편에서 헤겔은 '역사적 정신'의 편에서 통일을 파악하는 점에 두 사람이 가진 매개의 차이가 있다. 헤겔이 '이성의 간지(奸智)'를, 괴테가 자연의 간지를 승인하는 것은 이것에 대응한다. 간지는 어느 경우에도 인간의 행위 일체를 본인이 모르는 사이에 전체를 위한 봉사에 이바지한다." "괴테가 밑바탕으로 삼았던 원근법상의 착각은 헤겔이 이해하고 있던 '이념'이 '자연의 방식'이 아니라 정신의 방식을 표명해야 하는 점에 있다. 그것을 헤겔은 자연의 이성으로 풀이하지 않고(헤겔에게 자연은 무력한 것이었지만, 괴테에게 자연은 전능한 것이었다.) 역사의 이성으로 풀이하여, 거기서 그리스도교의 정신을 헤겔은 역사에 있어서의 절대자로 보았다."(29-30, 36)


"헤겔과 마찬가지로 괴테도 종교개혁을 '정신적 고루의 질곡'에서의 해방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들도 모두 차츰 언어와 신앙의 기독교에서 나와 의향과 행위의 기독교로 점점 가까워질 것이다〉라는 괴테의 명제는 사실상 벌써 헤겔에서 포이어바흐에, 나아가서는 근본적인 결정으로 통하는 길의 단초(端初)가 되었다. 따라서 새로이 이교와 기독교의 어느 것을 채택하는가를 결정하려고 한 니체와 키아케고어의 두 개의 상반된 실험은 헤겔과 괴테에 의해서 대표된 융통성이 있는 기독교에 대한 과감한 반동이다." "괴테와 헤겔은 공통적으로 '초월하는 것'을 거부했다. 괴테의 자연은 중용 가운데서 살았고, 헤겔의 정신은 매개 가운데서 움직였으나, 이 중용과 매개는 마르크스와 키아케고어에 있어서 다시금 외면성과 내면성의 양 극단으로 서로 대결하게 되어 결국 니체는 새로운 시발로서 근대성의 무(無) 속에서 고대를 되찾으려고 이 실험을 하고 있는 동안에 정신 착란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43-4, 54)


▷ 헤겔의 정신사 철학에서 생긴 시대정신적 사상(事象)의 기원


1장 헤겔의 세계사 및 정신사의 완성이라는 종말사적 의의


"유럽 정신사의 최후의 단계에서 드디어 나타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의욕하고 또한 자기가 의욕하는 것을 알고 있는 〈순수한 자기 의지〉이다. 그것으로써 인간은 처음으로 '곤두서게' 되고, 세계의 사상(事象)은 철학의 사유와 일치하게 된다. 〈자유의 의식에서의 진보〉를 원리로 하는 역사의 철학은 이 사건으로 마감된다. 원시 기독교의(그 정신과 그 자유의) 소위 세속화는 헤겔로 보자면 그 본래의 의의에서의 비난될 이반(離反)이 아니라, 반대로 그것의 적극적 실현에 의한 그 본원의 참된 해석을 뜻한다." "그리스-로마의 세계는 기독교-게르만적 세계 속에서 '지양'되고, 따라서 헤겔의 존재론적 기초 개념은 이중으로, 즉 그리스적 로고스 및 기독교적 로고스로서 규정된다. 그에 반하여 새로이 고대 세계와 기독교와의 결합을 분리라도 해서, 그리스 정신이든지 기독교든지 '어느 한쪽을' 추상적인 본원으로 보고 그것에 다시 복귀하려 하는 것은, 그의 구체적인 역사 감각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다."(61)


"헤겔의 종말사적 구조의 궁극의 근거는 그가 기독교를 절대적으로 평가하는 데 있다. 기독교의 종말론적 신앙에서 본다면 여러 시대의 종말과 '때의 참die Fülle der Zeiten'이 그리스도와 함께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헤겔이 지상 시간의 종말의 기독교적 기대를 세계의 사상(事象)에 옮기고, 그리스도 신앙의 절대자를 역사의 이성으로 풀이하기 때문에 세계와 정신의 역사에서 최후의 대사건을 단초의 완성으로 이해하는 경우라면 이치에 맞는다. 실상 '개념'의 역사는 헤겔이 〈여기까지의 그리고 거기서부터〉의 역사 전체를 회상시키면서 여러 시대의 실현으로 이해할 때에 헤겔과 함께 마감되었다. 원리도 없고 따라서 시기도 없는 경험적 사상(事象)이 처음도 끝도 없이 경과하는 것은 그것과 모순되지 않는다. 헤겔의 후계자뿐만 아니라, 그의 논적(論敵)도 상기한 역사적 의식에 의해 양육되었다. 유럽 역사에 대한 부르크하르크의 의식의 최후의 의향은 〈낡은 유럽〉은 종말에 가깝다는 인식이었다."(61-2)


"그렇지만 새로운 분리로의 진전 가능성은 헤겔 자신의 역사적 의식 속에 이미 배태되어 예견되고 있었다. 사실 시대의 실질적인 것에 관한 철학적 인식은 물론 그가 속한 시대정신에서 발생하고 따라서 형식적이긴 하지만 관상적(觀想的) 지식으로서, 그 시대정신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유별난 관상적 지식과 함께 한층 더 발전을 촉진시킬 하나의 차이, 즉 〈지식과 현재하는 것 사이의〉 차이가 마련된 것이다. 이제 이런 차이에서 철학과 더불어 현실에서 새로운 분리로 진전할 가능성과 필연성이 생겨난다." "스스로 완성하는 이 철학은 차후에 현실적인 새로운 형성으로 몰아넣는 정신의 출생지가 된다. 그리고 실제로 헤겔이 말하는 지식의 역사의 종결은 출생지가 되어 그것에서 19세기의 사상 및 정치상의 사상(事象)이 발생했다." "즉 헤겔의 매개 대신에 결단으로의 의지가 나타나서, 헤겔이 합일한 것을, 즉 고대와 기독교, 신과 세계, 내면과 외면, 본질과 실존을 다시금 분리시켰다."(70-3)


"헤겔 철학의 영역에서 신앙과 이성, 뿐만 아니라 국가와 기독교와의 화해는 1840년경에 끝나고 있다. 헤겔 철학과 그 시대와의 분열은 마르크스에 있어서는 국가 철학과의 분열이며, 키아케고어에 있어서는 종교철학과의 분열이어서, 요컨대 국가, 기독교 및 철학의 합일과의 분열이다. 이 분열을 포이어바흐는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브루노 바우어도 키아케고어에 못잖게 결정적으로 실행했다. 다만 제각기 그 방법이 서로 달랐을 뿐이다. 포이어바흐는 기독교의 본질을 감각적 인간에, 마르크스는 인간 세계에 있는 모순으로 환원하고, 바우어는 기독교의 발생을 로마 세계의 몰락에서 설명하고, 키아케고어는 기독교적 국가도 기독교의 교회나 신학도, 즉 기독교의 세계사적 실재 전체를 방기하고 그 본질을 절망 끝에 결단한 신앙으로의 비약이라는 역설에 환원한다. 그들에게는 현실이 더 이상 자각적 존재의 의식이라는 자유의 빛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기 소외'라는 그림자 속에 나타난 것이었다."(79)


2장 노장 헤겔 학파, 소장 헤겔 학파, 신헤겔 학파


"(노장 헤겔 학파가 주도한) 헤겔 철학의 보존은 철학 일반이 철학사가 되는 역사화의 도상에서 행해진다. 헤겔의 정신사의 형이상학에서 발단한 역사주의는 문화와 지식을 아직도 믿고 있던 교양인의 '최후의 종교'가 되었다." "헤겔의 경우 정신은 역사의 주체 및 실체로서 절대자이며, 그의 존재론의 근본 개념이었다. 그러기에 자연철학도 국가, 예술, 종교 및 역사 등의 철학과 함께 하나의 정신의 학문이다. 기독교라는 절대적 종교와 일치하는 정신인 까닭에 이러한 절대정신은 스스로를 알고 있음으로써 존재한다. 또한 그 정신은 이미 존재했던 정신의 여러 형태들의 회상을 자기의 갈 길로 삼는 한에서 역사적 정신이다." "그러나 1850년대 이래로 유행하게 된 '정신사'의 개념, 곧 하임에서 딜타이에 이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승인되었던 다소간의 확신은 인간의 정신 그 자체가 '사회-역사적 현실'의 유한한 '표현'이기 때문에 그런 정신은 정치적, 자연적 세계에 대해서는 본질적으로 무력하다는 확신이었다."(93-4)


"소장 헤겔 학파는 청년의 당파를 대표하고 있으나, 그것은 그들이 현실의 청년이어서가 아니라 아류 의식을 극복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존하는 것의 근거가 박약함을 인식하여 '보편적인 것'과 과거에서 이반(離反)하여, 미래를 예견하고 '일정한', '개별적인' 것을 강조하여 현존하는 것을 부정하려 했다." "그들의 저서들은 선언과 강령이나 주장이긴 하지만, 그 자체로서는 실속 있는 전체가 아니고 그들의 학문적인 논증은 그들이 손질하는 동안에 대중 아니면 단독자(개인)에게 호소하기 위해 효과를 노린 설명이 된다. 그들의 저서들을 검토하는 사람이면 그들의 자극적인 어조에도 불구하고 김 빠진 듯한 뒷말을 남긴다는 점을 경험하게 된다. 그 까닭은 그들이 빈약한 수단으로 과도한 요구를 내걸고 헤겔의 개념적인 변증법을 수사적인 문체로 길게 뽑아 늘이기 때문이다." "생성과 운동의 이론가들인 그들은 헤겔의 변증법적 부정성(否定性)의 원리와 세계를 움직이는 모순에 고착(固着)되어 있다."(96-7)


"헤겔 학파의 분열은 보수적으로나 혁명적으로나 해결될 수 있는 헤겔의 변증법적 '지양Aufhebungen'의 원칙적인 애매성에 의해 가능했다. 헤겔의 방법을 '추상적'으로 일면화하기만 하면, 〈그 견해의 보수성은 상대적이고, 혁명적 성질은 절대적이다〉라고 엥겔스의 명제 즉 그것은 세계사의 과정이 진보의 움직임이며 따라서 현존하는 것의 지속적인 부정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모든 헤겔 좌파 사람들의 특징을 나타내는 명제에 도달할 수가 있다. 엥겔스는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라고 하는 헤겔의 명제에 깃든 혁명적 성격을 증명한다. 즉 헤겔이 말하는 현실적인 것은 우연히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또는 '필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 명제는 외견상 반동적이지만 실상 혁명적인 것이라 말한다." "우파는 현실적인 것만이 이성적인 것이라는 점을, 좌파는 이성적인 것만이 현실적인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였으나, 헤겔에서는 보수적 견해와 혁명적 견해가 적어도 형식상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101)


"헤겔을 단지 부분적으로 개조하려 했던 여타 소장 헤겔 학파와는 달리 마르크스는 철학 그 자체가 문제라고 하는 통찰을 역사에서 얻었다." "〈새로운 여신은 아직은 직접적으로 운명의 순연한 광명이든 순연한 칠흑이든 간에 애매모호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문장은 마무리지어진 세계의 회색의 황혼에서 철학한다고 하는 헤겔의 비유를 회상케 한다. 그 의미는 철학이 붕괴된 직후, 이 현재의 어두움이 칠흑 같은 어둠 직전의 황혼인지 아니면 새 날의 동틈 직전의 미명인지, 아직은 확실하게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헤겔에서는 현실 세계의 노쇠가 철학의 최후의 회춘(回春)과 함께 병행하나, 미래를 선취(先取)하는 마르크스에게서는 마무리지어진 철학이 현실 세계의 회춘과 함께 옛 철학에 역행한다. 철학이 현존하는 '비철학'의 실천에 몰두할 때, 즉 철학이 마르크스주의로 직접적인 실천적 이론이 되었을 때, 현실의 세계에 이성이 '실천praxis'됨으로 인하여 철학 그 자체는 지양된다."(129-30)


"키아케고어를 단지 '예외'로 보지 않고, 시대의 역사적 동향의 내부에서 생긴 현저한 현상의 하나로 본다면, 그의 '단독성'은 적어도 단독적인 일이 아니라 당시의 세계 정세에 대해 흔히 유행했던 하나의 '반동Reaktion'이었음이 명백해진다. 그는 무엇보다도 시대의 사상(事象)에 대한 비판자였다." "'단독자'에 관한 두 개의 각서에서의 서문(1847)은 〈오늘의 시대는 만사가 정치 일색이다〉라는 말로 시작하여 시대가 요구하는 것, 즉 사회적 개혁은 시대에 있어서 필요한 것, 즉 무조건으로 확정하고 있는 것의 반대물이다라는 말로 끝맺고 있다. 현대의 불행은, 현대가 더 이상 영원에 관해서 알려고 하지 않는 한낱 '시간'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키아케고어에게 헤겔 철학은 역사적 세계의 보편자 안에서의 단독적 실존의 평준화, '세계 과정' 안에서의 인간의 '산재성'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키아케고어는 헤겔의 체계적 세계사적 해석에 반대하여 자신을 결단하는 실존의 단독성, 즉 개별화된 단독자를 부각시켰다."(148-50)


"세계의 평준화를 향한 발전과 하나님 앞에 '자기Selbst'로서 존재하는 기독교적 요구와의 양자가, 그에게는 재수 좋은 우연처럼 일치하는 듯이 생각되었다." "그는 1848년의 '파국'을 신호로 삼아 종교개혁의 때와는 반대로 이번의 정치적 운동은 종교적 운동으로 급변함을 예언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키아케고어의 소견으로는 전체 유럽은 세계를 매체로 해서는 해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 영원 앞에서만 해결될 문제 가운데로 끓어오르는 혈기에 휘말려 허둥지둥 끌려 들어간 것이다. 그 다음에는 얼마나 오랫동안 이 단적인 경련이 계속될지는 물론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세대가 고뇌와 출혈 때문에 온통 기진맥진했을 때, 다시금 영원이 고려되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진리를 위해서는 자기가 맞아죽어도 된다는 그런 증인에 의한 기독교의 부흥을 희구하는 이러한 예상을 가진 키아케고어는 프롤레타리아 세계 혁명을 선전하는 마르크스와 시대를 같이하는 대국자(對局者)이다."(152-4)


"헤겔 철학 부흥의 원리는 베네데토 크로체에 의해 처음으로, 또한 가장 선명하게 헤겔 철학의 '죽은' 부분과 '살아 있는' 부분의 구별에 의해 확정되었다. 죽은 것으로 여겨진 것은 무엇보다도 자연철학이지만, 논리학이나 종교철학도 여기에 해당한다. 살아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객관적 정신의 학문이며, 그 한도에서 그것의 절대적-체계적 주장이 역사적 주장 속에 해소되고 있다." "역사적 의식을 철학과 정신의 문제로 삼아 탁월한 방식으로 이해한 것은 빌헬름 딜타이였다." "딜타이는 헤겔의 현실 개념의 사변적 '파악'을 현실의 가장 일반적인 여러 구조의 분석적 '이해Verstehen'에 환원한다. 딜타이에 의하면 헤겔의 형이상학의 영속적 부분으로서는 '역사적 지향die historischen Intentione'이 존립할 따름이다. 이 경우에 바로 그 체계의 궁극적 부분이 될 형이상학적, 신학적 기초는 제외된다. 헤겔의 영속적인 의의는 그가 낱낱의 생의 현상의 본질을 역사적으로 이해할 것을 가르친 점에 있다."(162-5)


3장 마르크스와 키아케고어의 결단에 의한 헤겔 매개의 해소


"헤겔 학도로서 마르크스가 이해한 공산주의는 실체가 없는 생존 관계의 참된 해소이고, 공동체로서 생존하는 인간의 현실적 존재와 본질적 이성과의 사회적 일치이다. 헤겔은 양쪽을 단지 사상적으로 융화시켜 실제로는 사적-개별적 생존과 공적-공동적 생존 사이에서 역사적으로 제약된 모순을 그의 서술 내용으로 취급했다." "결국 현존하는 존재 관계의 급진적인 혁명만이 '세계 국가'에까지 확대된 폴리스, 계급 없는 사회의 '참된 민주 정치'를 대동해서 헤겔의 국가 철학을 근대적 사회의 요소 가운데 실현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이 철학적 공산주의와 극단적 대조를 이루는 키아케고어는 사적 인간을 철두철미하게 '단독자Einzelne'로까지 구체화시켜 대중의 상황이라 할 외면성에다 '자기 존재Selbstsein'라 할 내면성을 대치시켰다. 그에게 이 개별화된 실존의 다시없는 실례는 아테네의 폴리스에서 소크라테스와 유대인 및 이교도로 이루어진 전 세계에 대한 그리스도이다."(192-3)


"현실에 대한 헤겔의 무력의 원인을 키아케고어는 마르크스와는 달리 원리의 잘못된 귀결에서 보지 않고 헤겔이 전반적으로 본질과 실존을 일치시키려는 점에서 본다. 바로 그 까닭에 그는 '현실적' 존재의 표현에는 이르지 않고 항상 이상적 '개념 존재'에만 이를 뿐이다. 왜냐하면 어떤 것의 essentia, 즉 어떤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보편적 본질에 관계하고, existentia, 즉 어떤 것이 있다고 하는 것은 그때그때의 낱낱의 실재, 나 혹은 너 나름의 실존, 그것이 있는가 없는가의 일이 결정적인 일이 되는 그러한 실존에 관계하기 때문이다." "낱낱의 인간은 정신을 가지고 그 본질로 삼는 보편적 인간 존재의 특수한 한정성을 의미한다. 이 인간 존재의 보편성, 즉 '보편 인간성'을 키아케고어는 부정하지는 않았으나 그것을 단독자에 의해서만 실현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겼다. 이것에 반해 헤겔 정신의 보편자이든가 마르크스의 인류의 보편자이든 간에 키아케고어에게는 실존적으로 실체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194-5)


"키아케고어는 관심을 '정열Leidenschaft' 즉 '파토스Pathos'라 칭하여 그것을 사변적 이성에 대처케 한다. 정열의 본질은 그것이 헤겔의 체계의 폐쇄적 '종결'과는 달리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결정할' 결단으로 몰고 간다는 것이다. 이 비약, 즉 변증법적 반성이라는 〈방법의 역행에 대한 단호한 반항〉은 의미심장한 하나의 결정이다. 비약의 용의가 되어 있는 이 결정의 단호한 정열은 직접적인(무매개의) 단초를 설정한다. 이에 반하여 헤겔 논리학의 단초는 실제로 '직접적인 것'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극단의 반성의 산물, 즉 현실에 실존하는 현존재의 추상(무시) 가운데서 순수한 존재 일반을 가지고 시작한다. 이러한 실존 규정을 가지고 키아케고어는 자기를 아는 이성적 현실의 영역을 '하나의 실존자가 그것에 대해 단지 알고만 있지 않는 유일한 현실', 즉 '그가 바야흐로 존재한다고 하는' 현실에 환원시킨다. 스스로 실존하는 자에게 실존 그 자체는 최고의 관심사인 것이다."(196-7)


"1848년 혁명 직전에 마르크스와 키아케고어는 어떤 결정의 의지를 표명했다. 시민-자본주의적 세계의 혁명을 위해 마르크스는 무신자의 대중을 발판으로 삼는 한편, 키아케고어는 시민-기독교적 세계에 대한 그의 싸움에서 만사를 개개인에게 걸고 있다. 이것에 대응하여 마르크스로 말하면 시민사회는 '개별화된 단독자'의 사회여서 거기서는 인간이 자기의 '동류적 본질'에서 소외되어 있고, 키아케고어로 말하면 기독교 세계는 대량으로 전파된 기독교이고, 거기서는 단 한 사람도 '그리스도의 순종자'가 아니다. 그러나 헤겔이 이러한 존재하는 모순을, 즉 시민사회와 국가, 국가와 기독교를 본질에 있어서 매개한 연후이기 때문에 마르크스 및 키아케고어의 결단은 바로 그러한 것들의 매개 가운데 있는 차이와 모순을 지적하는 일을 목적으로 삼는다. 마르크스가 문제 삼는 '자기 소외'는 인간 쪽에서 보면 자본주의고, 키아케고어가 문제로 삼는 '자기 소외'는 기독교 쪽에서 보면 기독교 세계이다."(198)


▷ 역사적 시대에 철학의 영원성 희구로의 급변


4장 현대 및 영원의 철학자인 니체


"괴테가 온갖 잔재주꾼보다 탁월하였던 것은 그가 단지 자유를 의욕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완전히 소유했던 점이다. 그는 이 도달된 자유에서 자기 마음에 거슬리는 것마저도 촉진하며 전체로서의 생활, 그리고 그 외관상의 진실 및 그 진실의 외관을 위한 대변자 노릇까지도 감당해낼 수 있었다. 괴테는 비현실을 의도하며 살던 시대의 한가운데서 확신에 찬 현실주의자였다. 그는 그 속에서 자기에게 연고가 있는 것을 모두 긍정했다." "그는 관용의 인간이기도 하다. 약함에서가 아니라 강함에서의 관용이다. 왜냐하면 그것 때문에 범속의 인간이면 몰락할지도 모를 것을 그는 자기에게 유리하게 사용할 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인간에게는 덕이든 악덕이든, 나약함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금지될 것이 없다." "이것은 니체의 '실재에 대한 디오니소스적 입장'을 나타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실상 『권력에의 의지』의 최후의 경구는 자연에 관한 괴테의 단편과 동일한 정신에서 발상된 것처럼 느껴진다."(231-2)


# 다만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와 괴테의 자연은 매우 상이하다. 이 차이는 기독교에 대한 두 사람의 입장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니체가 19세기의 독일인을 위한 참된 교육자는 헤겔의 문하생들이라고 했던 말은, 소장 헤겔 학파를 경유하여 헤겔에서 니체로 통하는 길은 신의 죽음이라는 이념에 관련하여 말할 때 가장 명료하게 언급되고 있다. 즉 헤겔은 기독교 신앙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 즉 '무신성(무신앙)의 진리'에서 기원함을 기초로 하여 자기의 기독교적 철학을 완성하였으나, 니체는 몰락하는 기독교를 기초로 하여 그리스 철학의 기원을 반복하는 것으로 '수천 년의 허위'를 극복하려고 했다. 헤겔에게 있어서는 '신의 성육(聖肉)'은 인간적 본성과 신적 본성의 결정적으로 완수된 화해를 뜻하고, 니체와 바우어에게 있어서는 인간의 참된 본성이 파손되었음을 의미한다. 헤겔은 신을 '영Geist'이라고 하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철학적 존재로까지 높였고, 니체는 신을 영이라고 말한 자야말로 육체를 갖춘 신의 재생에 의하지 않는 한 보상될 수 없는 그러한 불신앙에로 누구보다 큰 발걸음을 한 발짝 내딛었다고 주장한다."(243)


"허무주의 그 자체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것은 궁극적인 몰락과 생활 혐오의 징조일 수도 있고, 생활에의 새로운 의지와 강화로서의 최초의 징조일 수도 있다. 즉 약자의 허무주의와 강자의 허무주의인 것이다. 근대성의 근원인 허무주의의 이 양의성(兩義性)은 니체 자신도 본래부터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양쪽을 알고 있다. 나는 양쪽 모두인 것이다.' 니체의 철학적 실존의 이런 이중의 의미는 시대에 대한 그의 관계의 특징이기도 하다. 즉 그는 '오늘 및 지난날'의 사람이기도 하고, '내일과 모레 및 다른 훗날'의 사람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하여 그는 지난날과 훗날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현재를 철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그의 철학은 '(기독교적) 후생(後生)의 역사의 단편'이며 동시에 그리스 전생(前生)에서 남겨진 흔적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니체는 최근의 시대의 철학자일 뿐만 아니라 가장 옛 시대의 철학자이기도 하고 그런 한에 있어서 '나이 든' 시대라고 하는 것의 철학자이다."(246-7)


"니체의 본래의 사상은 처음에는 신의 죽음이, 중간에는 신의 죽음에서 생긴 허무주의가, 마지막에서는 영원 회귀를 지향한 허무주의의 자기 극복이 자리잡는 하나의 사상 체계이다. 그것에 대응하는 것이 짜라투스트라의 최초의 연설 가운데 있는 정신의 삼중 변화이다. 기독교적 신앙의 '너는 할지어다Du sollst'는 '나는 의욕한다Ich will'라는 자유화된 정신으로 변한다. 무를 지향하는 '그 자유의 사막'에 있어서 '나는 의욕한다'에서 파괴와 창조 속에서 천진스러운 유희의 실재인 영원히 회귀하는 실재로의 최후이자 가장 곤란한 변화가, 즉 '나는 의욕한다'에서 '나는 존재한다'로의, 말하자면 존재 전체에 있어서 '나는 존재한다'로의 변화가 발생한다. 무를 지향한 자유가, 동일자des Gleichen의 영원회귀라는 필연성, 자유롭게 의욕된 그 필연성으로 들어가는 그 최후의 변화와 함께 니체에게 있어서 '영원한 운명'이라 할 그의 시간적 운명이 실현된다. 그의 자아는 그에게 천운이 된다."(250-1)


"니체의 철학에 있어서 영원회귀가 의미하는 것과 같은 영원의 문제는 니체가 '인간'과 함께 '시간'을 극복한 도상(途上)에서 찾아내기 마련이다. 그 길은 기독교 역사에서의 탈출구이며 니체는 그것을 '허무주의의 자기 극복'이라고 일컬었으나, 이 허무주의는 또한 신의 죽음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짜라투스트라는 '신과 무의 정복자'이다. 영원회귀의 '예언'과 허무주의의 '예언'과의 이 본질적 관계에 근거하여 니체의 교설 전체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진다. 즉 그것은 허무주의의 자기 극복이어서, 거기서는 '극복자와 극복당하는 것'은 하나인 것이다. 그것들이 하나의 것이라는 것은 마치 짜라투스트라의 '이중의 의지', 또한 세계를 보는 디오니소스적 '이중의 눈'과 디오니소스적 '이중의 세계' 그 자체가 하나의 의지, 하나의 눈, 하나의 세계인 것과 동일하다. 허무주의와 회귀와의 이 일치는 니체의 영원을 의욕하는 의지가 니체의 무를 의욕하는 의지의 전향(轉向)이라는 사실에서 생겨난다."(251-2)


"그런데 인간은 신이 그에게 무슨 일을 '해야 한다'를 이 이상 말하지 않게 된 이래 의지로 있는 것이다. 실재는 스스로 '다시금 영구히 행위와 죄'가 된다. 그것은 실재가 '현실적으로 있다Da-sein'는 우연에 대하여 자체적으로 책임을 갖지 않음에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실재는 언제나 이미 우연으로 있던 것이며 그것이 스스로를 의욕하기 전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존재하는 의지로서 그 책임을 떠맡으려 의욕하지만 아무튼 떠맡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의지는 적의가 되고, 자기에게 귀속된 실재의 부담을 향해서 '뒤에서 뒤로 돌'을 굴리어 마침내는 망상이 일체를 소멸한다. 그러므로 일체는 소멸할 값어치가 있다고 설교한다." "실상, 시간 및 존재의 영원회귀적인 순환을 의욕함에 있어서 의지 그 자체도 또한 끝없이 무한한 것 속으로 향하는 직선 운동에서 미래와 더불어 과거로 향해 의욕하는 원환이 된다. 항상 이미 할 수밖에 없는 것을 항상 의욕하는 이 이중의 의지가 니체가 의미하는 '운명애amor fati'이다."(253)


5장 시대의 정신 및 영원의 문제


"헤겔적인 구조의 요강은 대개 역사의 진행을 시간적 진보에 의해 측정한다는 점, 즉 마지막 걸음으로부터 그것에 선행된 걸음을 필연적으로 그 최후의 걸음에까지 인도된 것인 양 역진적(逆進的)으로 구성하는 점이다. 이러한 시간적 결과에 입각한 자리매김은 세계사에 있어서는 성과가 많은 것만이 인정된다고 하는 사실과, 세계적 사건의 연속은 성공의 이성에 의해 평가되어질 것임을 전제한다. 그러나 성공은 헤겔의 세계사적 견해의 최고 심급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일상생활의 부단한 척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도 역시 사람은 어떤 일의 성공은 그 일이 실패로 끝나는 것보다 고차원적인 정당성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헤겔의 사색의 통속적인 핵심은 성공에 차 있는 자만이 정당화된 것이라는 일반에게 보급된 확신에 근거하고 있다." "파괴되거나 실패로 끝나버린 것 때문에 역사적 기억에서 소실되어 버린 것은 헤겔의 처방에 의하면 '탈권당한 실존'으로 간주된다."(282-3)


"어떤 속담은 '성공은 명인(대가)에게 영광을 돌린다'고 말한다. 반면 니체는 '성공은 언제나 최대의 거짓말쟁이였다'고 말한다. 성공이란 실상 인간 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척도이긴 하나, 그것은 일체를 증명하고 또한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다. 일체를 증명한다는 것은 세계사에서나 일상생활에서나 성공하는 것만이 통용되기 때문이고,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함은 비록 최대의 대량 성공이라 할지라도 사실상 성공된 것의 참된 '역사적 위대함'이나 내면적 가치를 조금도 입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천한 것, 어리석은 것, 비겁한 것, 미친 것 등이 벌써 종종 최대의 성공을 거둔 적이 있었다." "세계사의 참된 '파토스'는 울림이 요란하고 위세 당당한 '일대 사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간들 위에 가져오는 소리 없는 고뇌에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세계사에서 감탄할 것이라도 가진다면, 그것은 인류가 온갖 손실과 파괴와 상해 속에서 항상 새롭게 갱신하는 힘이며 인내이며 끈질김인 것이다."(283-4)


"전체로서의 큰 세계사에 현혹되어 빠져 버리는 편견은 사람이 인간적 현실의 실상과 자신의 환경을 무시하고, 세계사가 마치 그것만으로 하나의 세계인 양 생각하고, 그 속에서 능동적으로나 수동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간과 관계 없이 그 세계사를 다루는 데 있다. 그와 같은 철학적 추상이라는 죄를 괴테는 스스로 범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적 '원리'의 구현으로서의 '민족 정신' 같은 것을 구성하지 않았다." "괴테가 인간의 머리 위를 건너 지나가는 세계사 자체의 위력을 관찰하는 경우, 그것은 괴테에게는 '이성'으로 보이지 않고 자연계의 한 사건처럼 보인다." "괴테는 자연 속에서, 세계사의 진행 중에는 입증할 수 없는 그러한 변화의 법칙을 인식했다. 헤겔이 원래 기독교신학 출신이었기에 역사를 '정신적'으로 파악하고 자연을 단지 이념의 '타재태Anderssein'로 본 것에 반해, 괴테는 자연 그 자체 속에서 이성과 이념을 관찰하고 자연을 출발점으로 하여 인간과 역사의 이해를 위한 하나의 통로마저 발견했다."(286-8, 291)


2부 시민적, 기독교적 세계의 역사 연구


1장 시민사회의 문제


"루소가 이해한 일반 의지란 단순히 개개의 시민의 공통된 의지에 불과하며 진정한 의미의 일반적인 의지는 아니었기 때문에 '전체 의지'와 '일반 의지'와의 모순을 실제로 지양하는 일을 루소는 할 수 없었다. 그 결과, 국가 안에서 합일한다고 하는 것은, 의연히 개개의 인간의 임의적 동의를 기초로 하는 단순한 하나의 사회 계약에 불과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헤겔은 국가를 단순한 수단으로 삼는 자유주의적 국가관을 문제 삼고 있다." "시민사회로 보자면 국가는 그저 '귀찮은 것' 또는 '분별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이다. 말하자면 그 자체의 실질적인 의의는 없고, 각 개인의 이해 거래를 초월한 '형식적' 통일성이나 일반성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는 그 개개의 목적을 위해서도 국가의 일반적 전체와의 관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가의 본질은 시민사회의 제도의 심층 구조에까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헤겔은 시민사회의 원리를 부정함 없이 그것을 '지양augheben'시켰다."(310-2)


"키아케고어의 '단독자Einzelne'라는 근본 개념은, 사회 민주주의적인 '인류'와 더불어 자유주의적인 교양을 받은 기독교 세계에 대한 일종의 교정제이다." "과거에는 승인된 권위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지만, 만인이 상호 평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시대가 되면서부터 세속적 수단으로 더욱 진정한 의미로 지배하는 일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키아케고어가 정치상 요구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절대의 권위가 지배한다는 단지 그 한 가지일 뿐이다. 그와 같은 시대에는 세계의 참된 통치는 벌써 세속적인 내각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위하여 자진하여 생명을 희생함으로써 승리를 점유하는 순교자의 손으로 행해진다. 기독교 순교자의 원형으로서 귀감이 되는 것은 민중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참으로 '단독적'인 이 '신인Gottmensch'이다. 다만 그리스도 앞에서만 인간 평등의 문제도 해결된다. 그러나 차이성의 대소를 본질로 하는 세계에서는 그것이 해결되지 않는다."(319-21)


"당면한 세계의 비판자로서 니체는 18세기의 루소와 같은 생각을 19세기에 대해 가지고 있었다. 니체를 거꾸로 한 것이 루소이다. 유럽 문명에 대한 것처럼 날카로운 비판에 있어서 루소가 되고, 그 비판의 규준이 루소의 인간 이념과 정반대인 점에서 루소의 역이 된다. 이런 관계를 의식한 니체는 루소의 인간상에는 '근대에서 가장 위대한, 혁명하는 힘', 칸트나 피히테나 실러에 있어서도 독일 정신을 결정적으로 부각한 그 혁명력이 갖추어져 있음을 승인하였으나 동시에 니체는 루소를 '근대의 입구에 놓여진 기형아'라든지 '이상가와 천민'을 한몸에 갖춘 사람이라고 부른다. (니체의 말에 의하면) 루소의 평등 관념은 불평등한 것을 평등하게 하고 노예 도덕에게 주권을 주는 것이었으며 또한 루소의 민주적 인도주의적 이념은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권력에의 의지'인 인간의 참된 본성을 속이고 왜곡한 것이 된다. 시민적 민주정치에는 실체가 없다. 그것은 '국가 붕괴의 역사적 형태'에 불과한 것이다."(332)


2장 노동 문제


"헤겔은 노동의 정신적 성격을 우선 자연에 대한 '부정적 태도'로 규정한다. 노동은 본능이 아니라 일종의 '이성적인 것' 혹은' 정신의 존재 방식'이다. 동물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욕구를 자연에 의해 직접적으로 만족시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인간의 특징은 자기의 빵을 몸소 간접적으로 만들어 내어 자연을 수단 삼아 이용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욕구와 그 만족 사이에 있는 이 '매개'는 도구나 기계의 수단에 노동을 더한 것을 가리킨다. 노동은 인간과 그 세계 사이에 있는 '중간항'이다." "독립적인 도구인 기계 덕분에 비로소 완전한 노동이 이루어진다. 인간은 자기를 위하여 움직이고 자연은 기계에 의해 인간에게 속임을 당한다. 그러나 이 기만은 속이는 자 자신에게 복수한다. 그래서 인간이 자연을 압제하면 할수록 인간 자신은 비천해진다." "노동이 기계적이 되면 될수록 그 가치는 적어지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런 방법으로 노동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340-1)


"『법철학』은 노동을 '욕구 체계'의 첫 번째 계기로 다루고 있다. 복잡하게 구별된 추상적인 욕구와 동등하게 분화된 그 충족의 수단을 마련해 주는 것이 시민사회의 노동이다. 거기서는 최초부터 노동의 본질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 즉 인간은 스스로를 생산하는 데에서만 '존재한다'고 하는 것, 그의 전 존재는 온전히 매개하며 또 매개되어지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는 자기 자신과 자기 세계를 생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이 생산적 노동 관계에서 이론적이면서도 실제적 '교양Bildung'이, 즉 다양한 지식, 특정한 목적에 적합한 수단을 생각해 낼 수 있는 활기, 복잡하면서도 일반적인 관계 파악이 발전한다." "노동하는 자는 본질적으로 나태한 미개인과는 달라서 동시에 교양 있는 자이며 그의 욕구는 생산적으로 형성하는 사람이다. 노동이 인간을 형성(교양)하게 되는 것은 그것이 형식적이거나 교양적 행위로서 그 자체가 이미 정신적인 성질의 것이며 또한 추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까닭밖에는 없다."(344)


"헤겔이 노동을 파악할 때 가졌던 입장을 이해함에 있어서 중심이 되는 것은 현상론이다. 즉 의식과 자아 의식의 변증법이다. 이중 부정을 그의 운동 원리로 삼는 이 '사고의 산물'을 사용하여 헤겔은 현실적으로 인간적인 표현과 외화(양도), 대상화와 소외를 재치 있게 뛰어넘을 수 있다. 그 때문에 현상론의 운동은 절대지를 가지고 끝난다. '외화(外化)의 역사 전체와 외화가 되찾은 전체는 때문에 추상적, 즉 절대적 사유의 생산의 역사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소외는 뭐라 해도 외화와 더불어 그것의 지양이 본래 관심사이긴 하지만 그것은 '즉자(卽自)'와 '대자(對自)', 의식과 자아 의식, 객체와 주체의 구별로 이해되고 그 점에서 현실적, 감각적 대립이 소멸한다." "헤겔에게 자아 의식은 인간의 참된 본질이라 생각되어 소외된 대상적 본질을 되찾음은 자아로의 복귀로 나타나지만, 이 복귀는 대상적 세계의 '적의 있는 소외'가 '무관심한 소원'에까지 끌어내려진 후에는 비용을 크게 쓰지 않아도 행할 수가 있는 것이다."(353-5)


"헤겔의 현상론의 위대한 점은 그것이 대략 〈인간의 자기 생산〉을 하나의 과정으로서 파악하고 있는 것, 대상화를, 외화로서 획득을 그의 외화의 지양으로서 파악하고 있는 것, 요컨대 그것이 노동의 보편적 본질을 이해하여, 인간적 세계를 노동의 성과로 보고 있는 점이다. 〈헤겔은 근대적 국민 경제의 견지에 서 있다.〉 그는 외화의 긍정적 측면만을 알고, 그의 부정적 측면을 관념론적으로 지양시킴에도 불구하고, 노동을 인간의(···) 본질로서 파악한다. 그리하여 노동은 헤겔에서는 인간의 〈자립화〉로서 나타나지만 소외의 범위 내에서 나타날 뿐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되찾음은 우리들의 대상적인 세계의 소외된 제규정의 〈파기〉에 의하지 않고는 수행될 수 없다. '지양'을 파기로 고치는 이 부수적인 수정에 의해서 마르크스는 헤겔과는 방법에 구별되고, 더욱이 그가 어떻든 헤겔의 범주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감각화된 모습으로 『자본론』에 이르기까지 붙들고 있는 점에서는 원리적으로도 구별된다."(356-7)


3장 교양 문제


"헤겔에게 학생의 교육 목표로 삼아야 할 세계는 개인적 세계가 아니라 공동체, 즉 국가이다. 그중에서 인간이 가치를 가지는 것은 인간의 개인적인 특성에 의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객관적인 제영역 가운데 있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그 인간이 얼마나 유용한가에 있다. 그러기에 교양은 개인이 그의 특성을 방기하도록 교육하고 '사물의 요소'에 들어맞도록 형성할 것을 지향하고 있다. '사물의 요소'란 공동의 세계에서 가정의 특수한 개인 관계와는 다르다. 학교라는 중간 영역이 (개인을) 가정에서 끌어내어(공동의 세계로 집어넣어서) 작용한다. 교양된 인간이 '일반적인 자기 존재'를 획득하는 장소인 세계를 헤겔은 그곳에 들어가면 개개인은 그것에 자기를 적응시키는 한도에서만 통용되는 것과 같은, 즉 '일반성의 체계'로 삼았다. 그래서 학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은, 개개인이 자기를 일반적(사회적) 생활에 소속시키는 능력이다. 이것이 인문주의적 교양이라 부를 때에 규범으로 삼는 인간 교육의 목표였다."(372)


"1846년에 J. 부르크하르트는 바로 이 급진적 운동에 있어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한 G. 킨켈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다음과 같이 썼다. 〈옛날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불장군이어서 세상에서는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다. 지금은 그와 반대로 누구든지 자기는 교양이 있는 자라고 생각하고, '세계관'을 모아 엮어서 타인에게 설교를 늘어놓는다. 공부는 더 이상 아무도 생각하지 않고 더 이상 침묵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렇게 철저히 보급된 교양은 매일매일 인습적 사상의, 즉 착각의 건물을 세워서 그 가운데서 사회의 전 계층이 인공적인 감격으로 움직이고 있다." "40년 후에 그는 옛날 자신이 얻은 확신, 즉 대도회식 교양은 '나사못으로 틀어 올린 범용'을 육성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확신이 그 후 점차로 보급되고 점점 낮고 천해진 교양의 일반적 상태가 보증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는 이 '강제 평준화'에 대항하여 중세가 해소된 이래로 생겨난 교양인과 무교양인의 거리감 같은 것은 비교적 적은 폐해라고 변호했다."(381-2)


"니체는 교양 문제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외관상 상반되지만 꼭같이 파괴적인 작용을 일삼고, 그 결과로 최후에 이루어지는 두 개의 흐름이 본래는 전혀 다른 기초 위에 세워진 독일 교육 기관을 현재 지배하고 있다. 하나는 교양의 확대로의 충동이며, 다른 하나의 그 교양의 감소와 약화로의 충동이다. 제1의 충동에 의하면 교양은 점점 넓은 범위로 퍼지게 마련이고, 제2의 경향에 따르면 교양은 그 최고의 자주적 주장을 방기하고 다른 생활 형태, 즉 국가의 생활 형태에 봉사하고 종속할 것을 요구한다. 확대와 감소라는 두 개의 숙명적인 경향을 생각한다면 비관이나 절망의 기분에 사로잡힐 것만 같다. 더욱이 정말로 독일적인 두 개의 상반되는······ 경향, 즉 교양의 확대의 대조로서 수축과 집중의 충동, 교양의 감소의 대조로서 강화와 자족의 충동을 도와서 승리로 인도하는 일이 가능해질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면 별문제다.〉 그리하여 현존하는 교양에 대한 그의 비판은 철두철미 현존하는 인간성에의 비판이 된다."(386)


4장 인간성의 문제


"무한자를 원리로 삼은 철학적 신학과는 반대로 포이어바흐는 미래의 철학 때문에 유한성의 '참된 정립'을 요구한다. 그러기에 참된 철학의 근본은 신이나 절대자가 아니라, 유한하며 죽어갈 인간이다. 〈권리, 의지, 자유, 인격에 관한 명상은 인간 없이, 인간 밖에서 혹은 인간을 초월하여 행해질 때믄 모두가 통일도 필연성도 실체도 실재성도 없는 명상이다. 인간은 자유의 존재, 인격의 존재, 권리의 존재다. 인간만이 피히테의 자아의 근저, 라이프니츠의 단자의 근저, 절대자의 근저다.〉" "그러나 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과 해방되고 독립된 인간주의의 내용을 참으로 형성하는 것, 이것들을 포이어바흐는 구체적 인간이라는 그의 추상적 원리를 가지고 감상적 미사여구 이상으로 발전시킬 수 없었다. 엥겔스의 말마따나 〈그는 형식상 실제적이고 인간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 인간이 생활하고 있는 세계에 대해서는 절대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인간은 의연히 『종교철학』 가운데서 행동하는 추상적 인간이다.〉"(391-2)


"마르크스가 보기에, 인간을 구체적으로 본래부터 시민(유산계급)이라고 한 헤겔의 정의는 근대의 시민-자본주의적 세계의 현존하는 존재 관계에 있는 사실상의 '비인간성'을 나타내는 적절한 이론적 표현이며, 인간의 자기 소외의 표시이다." "인간을 시민사회의 단지 결정적인 국가에서 결정적으로 해방시켜 자기의 공동체 그 자체와 다름없는 공산주의적 인간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마르크스는 무산 계급에게 말을 건넨다. 왜냐하면 무산 계급은 현행하는 것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대립함으로써 하나의 전면저 과제를 가지고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헤겔 법철학의 비판』 서문에서 이미 〈사회가 파괴되어 특별한 하나의 신분이 된 것이 무산계급이다〉라는 명제가 포함되어 있다. 무산계급만이 인간의 완전한 상실이기에 송두리째 인간 그대로의 성질을 모두 되찾는 능력을 가질 수가 있다. 마르크스는 시민사회의 이런 예외에서 오히려 새롭고도 일반적인 인간적 인간의 이념을 부각시키고 있다."(395-6)


"키아케고어의 '단독자' 개념은 그의 인간적이면서도 기독교적인 근본 개념이다. 보편적 '체계'는 그것이 정신의 체계(헤겔)이든 인간의 체계(마르크스)이든간에 세계사적인 방심 속에서 〈인간으로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인간 일반이 아니라 너와 나와 그 사람, 우리들이 제 나름으로 인간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를 잊어버렸다." "〈헤겔의 변증법에 의하면 그것(연합의 원리)은 개인을 강화시킴으로써 약화시킨다. 즉 그것은 합병에 의해 수적으로는 강화하는 것이 되지만 윤리적으로는 약체화이다.〉" "자기가 이룬 자아는 추상적으로 개별화된 자아가 아니라, 그 생활 전체에서 구체적으로 보편 인간적인 것을 표현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대번에 아주 평범한 인간, 즉 부부 생활이나 직업이나 노동에 있어서 '보편자'를 실현하는 인간으로 본다. 참으로 실존하는 인간은 '똑같지 않은 전혀 개성적인 인간임과 동시에 보편적인 인간'이다. 그는 단신으로 '홀로 배우는 자'이면서 '하나님을 배우는 자Theodidakt'이다."(400-2)


"기독교와 인간주의의 내적 관련은 니체의 경우 신이 죽었을 때에 초인이 나타난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 죽음은 자기 자신을 의욕하는 인간,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는 어떤 신으로부터도 이미 말해지지 않는 인간에게 신으로부터의 탈출과 동시에 인간의 초극까지도 요구한다. 인간은 그런 점에서 신으로 있는 것과 동물로 있는 것의 중간에 놓여진 존재로서의 인간의 전통적인 위치를 잃는다. 그는 무(無)의 심연 위에 팽팽하게 걸쳐진 줄 위에 있는 것과 같이 자기 자신 위에 놓여진다. 그의 존재는 『짜라투스트라』의 서언 가운데 나오는 줄광대의 존재같이 본질적으로 위험 속에 있고 위험이 그의 '천직'이며 위험 속에서만 문제가 된 인간 '규정'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인간주의는 버리려고 하면 버릴 수 있는 '편견'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속하는 것이다. 물론 인도주의적 '인간성'과 그 반동의 대조물인 영웅 기질의 편협도 인간의 참된 본성, 즉 그 비참과 위대, 취약함과 견고함을 한결같이 잘못 보기도 한다."(405-6)


5장 기독교성의 문제


"헤겔은 신앙과 지식의 '실증적' 대립을 보다 높이, 동시에 보다 본원적인 통일에로 지향하려고 시도했다." "헤겔은 종교적 신앙과 철학적 지식을 구별하여 분리하는 것으로 종교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헤겔이 비판하는 것은 종교가 반성 철학 내부에서도 여전히 가지는 '실증적 형식'뿐이다. 이 비판의 목표는 '실증'─기독교적 종교의 철학적 개조에 의한 실증적 형식의 원칙적 지양이다." "철학의 '내용, 요구, 관심'은 신학과 완전히 '공통'이다. 〈종교의 대상도 철학의 대상도, 영원한 진리의 객관성 그 자체의 모습, 하나님 이외의 그 무엇도 아닌 하나님, 하나님의 설명인 것이다. 철학은 종교를 설명하는 일로써 스스로를 설명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철학은 스스로를 설명함으로써 종교를 설명한다. 철학은 종교와 마찬가지로 이 대상에서 종사하는 것이고 이 대상, 즉 진리에 침투하는 사색의 정신이다. 이 종사에 있어서, 그리고 이 종사로 인한 주관적 자아 의식의 정화와 진리, 받아누림과 생동이다.〉"(412-4)


"종교의 '신학적 본질'을 그의 참된 인간학적 본질로 지양함은 포이어바흐에게는 헤겔이 단순한 '감정'이라고 냉소했던 바로 그 평범한 형식에로 후퇴하는 데서 생겨난다. 다름아닌 그 형식을 포이어바흐는 직접-감각적이기 때문에 본질적인 형식으로 재건하려고 했다. 그에게 종교의 초월성은 감정의 내재적 초월성에 기초하고 있다. 즉 감정은 당신 가운데서 당신을 넘어서 있다." "포이어바흐의 종교 비판의 가장 일반적인 원칙은 종교의 근원적인 본질이 인간적 본질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인간 원래의 본질적 욕구의 '대상화'이긴 하지만 거기에는 특별한 고유의 내용은 없다. 그러므로 바르게 이해한다면 신의 인식은 인간의 자기 인식이지만, 그것이 인간의 자기 인식이라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는 그러한 자기 인식이다. 〈종교는 인간 최초의 직접적 자아 의식이며〉 인간이 자기 자신에 이르는 도상에 있는 우회로이다. 〈신적 본질의 규정 일체가 인간적 본질의 규정이다.〉"(419-20)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종교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할 뿐만 아니라 〈더구나 종교는······ 자기 자신을 아직 획득하지 못하거나 혹은 그것을 이미 상실한 인간의 자아 의식이다〉라고 계속 말함으로써 포이어바흐를 넘어선다. '자기 자신'이라는 것은 그러나 세속적 및 사회적 관계에서의 자기 자신이다. 그러기에 종교는 마르크스에게는 인간적 본질의 단적인 '대상화'가 아니라 '자기 소외'의 의미에서의 물화Verdinglichung이다. 종교는 도착된 세계이며 이 도착은 공동체로서의 인간적 본질이 아직 참된 현실성을 가지지 않는 동안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내세적 종교에 대한 싸움은 그런 까닭에 간접적으로는 스스로의 보충과 신성화를 위해서 무릇 종교를 필요로 하는 현세의 세계에 대한 싸움이다." "마르크스주의적 무신론자는 신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믿는 것이다. 그가 정복하려 한 것은 이제는 신들이 아니라 우상이다. 근대 자본주의의 '상품' 세계가 바로 그러한 우상이다."(440-1)


"키아케고어와 포이어바흐 양자는 각자의 자기화(터득)이라는 입장에서 가톨릭적 실증성에 대한 루터의 비판으로 되돌아섰다. 포이어바흐가 기독교적 신앙의 해소를 루터로부터 찾듯이 키아케고어도 소위 '수련'과 '반복'을 루터로부터 전개한다." "루터의 '나를 위함'과 '우리들을 위함'에서 포이어바흐는 신앙의 본질이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임을 추론하지만, 키아케고어는 그것을 '자기화'와 '주체성Subjektivität'이라는 말로 번역한다." "그러나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과의 사이의 역설적인 관계에 있는 강조점은 역시 주체적 내면성의 쪽에서 보는 자기화에 있다." "지각되는 정신은 지각하는 정신과 동일한 정신이기에 신은 본질적으로 〈사유〉 가운데서만 있다고 하는 헤겔의 명제는 기독교적 진리의 인간학적 본질이라 하는 포이어바흐의 원칙을 거쳐서 키아케고어에 와서는 신은 각자의 신께 대한 관계의 주체성 안에서 그리고 그 주체성을 위해서만 거기에 존재한다고 하는 실존적 명제로 변하여 간다."(449-50)


"'독일 철학'의 '프로테스탄티즘'에 대한 니체의 통찰 이면은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철학적 무신론'에 대한 니체의 안목이다. 그것은 철학의 과학적 무신론을 용납하였으나 끝을 맺지 못하고 중단했기 때문에 절반은 아직 신학이고 절반은 철학이다. 거기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쇠퇴'가 온다." "니체는 자신의 '몰도덕주의'까지도 기독교-프로테스탄트적 전통의 연속으로 느끼고 있었다. 또한 기독교적 도덕의 나무에 맺은 최후의 과일이었다. 〈그 기독교적 도덕 자체가 도덕 부정을 성실한 것으로서 강요한다.〉 기독교 도덕의 철학적 자기 파괴는 역시 그것의 가장 고유한 힘의 한 조각이다." "니체가 어느만큼 기독교에서 졸업하고 있지 못했던가는, 그의 '반기독교'뿐만 아니라 그것 이상으로 그것과 대응하는 '영원회귀' 설이 보여 주고 있다. 이 설은 명백히 종교의 대응물이고 키아케고어의 기독교적 역설이 절망으로부터의 도피로임에 못잖게 '무'에서 나와 '유'에 들어가려고 하는 하나의 시도이다."(4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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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
백승영 지음 / 책세상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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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니체 철학 입문


"1960년대부터 본격화한 학적 연구는 체계적·역사적 방식으로 니체를 읽는다. 체계적 방식은 니체의 글을 그 창작 시기를 염두에 두어, 특정 사유와 다른 사유들 간의 시기상·내용상의 연관 관계를 살핀다. 예를 들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씌어지기 훨씬 전에 이미 《즐거운 학문》에서 그것을 위한 수많은 예비 절차가 행해지며, 그 결정체는 신의 죽음이 고지되는 유명한 125번 잠언이다. 여기서 신의 죽음을 말하는 '미친 사람'은 차라투스트라라는 형상의 전(前)단계 역할을 한다. 또한 《차라투스트라》는 1881년에 이미 니체의 머릿속에 떠오른 영원회귀 사유를 핵심으로 하고 있으며, 이 사유는 니체 후기 사유의 대표 개념인 힘에의 의지와 서로 완성해주는 관계를 형성한다. 또한 힘에의 의지 개념에 의해 위버멘쉬 개념도 이론적·실제적 보증을 받는다. 그리고 위버멘쉬 개념은 허무주의 극복과 가치의 전도를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모든 사유의 결합체만이 니체 철학을 '긍정의 철학'으로 만든다."(82)


"역사적 연구 방식은 니체와 사유를 교환한 동시대인들, 그 시대의 문화 형성에 큰 역할을 한 사유가들, 그가 공개적으로 비난하거나 칭찬해 마지않은 사유가들, 니체 스스로는 숨기고 있지만 그가 영향을 받은 사유가들, 그리고 니체가 영향을 미친 사유가들과 니체 자신과의 연관 관계를 고려한다." "체계적·역사적 연구는 전승된 것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비판가의 모습과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는 이론가의 모습을 니체에게서 부각시킨다. 비판가Kritiker와 이론가Theoretiker로서 니체는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을 말하는 철학자로 제시된다. 이 철학은 생성에 대한 철학적 해명과 정당화 프로그램을 통해 존재하는 모든 것을 생성하는 것으로 규명하고, 생성적 성격을 지닌 모든 것의 필연성과 유의미성을 도출해내어, 그것에 대한 조건 없는 긍정을 철학적으로 보증하고 싶어 한다." "디오니소스적 긍정은 니체 철학의 정수이며, 허무주의 극복 후에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긍정 양식 중에서 최고의 양식이다."(84-6)


제2부 니체 철학의 과제와 방법론


"니체에게 해석이란 해석자의 인식 의지가 세계와 상호 작용 하면서 자신의 의미 세계를 구성해내고 창조해내는 작업이다." "즉 인간의 모든 인지적 활동은 해석이다. 철학적 활동 역시 의미 세계를 창조하는 해석 활동이다. 니체는 이런 해석 활동이 철학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이 해석이고 해석일 수밖에 없는 것인 한, 철학은 수학 이론처럼 객관적으로 타당한 개념들의 체계를 구성해낼 수 없다. 또 참과 거짓을 객관적으로 확정해내는 작업도 할 수 없다. 니체는 의미 세계를 조직하고 창조하는 이런 해석 활동 일반을 예술Kunst이라고 부른다. 이 예술 개념은 예술가의 활동이나 이 활동에 의한 예술 작품의 산출이라는 협의적 제한을 넘어서서 학적-논리적 영역으로 범위를 넓히는 것으로서, 예술을 인지적 활동으로 이해하는 고차적 예술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도 그것이 해석인 한에서 이런 인지적 예술 활동의 일환이며, 철학자는 〈예술가-철학자Künstler-Philosoph〉인 것이다."(106)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을 건설하는 첫 단계는 전통적인 철학적 자명성 및 철학적 세계 해석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것을 해체하는 것이다. 이때 니체가 사용하는 방법론은 심리-계보적 방법론이다. 계보적 방법론은 탐구 대상의 발생Entstehung 조건이나 유래 및 출처Herkunft를 밝혀내면서 탐구 대상을 해명한다. 이때 어떤 최종적인 결론에 대한 추측이나 목적론적 가정은 배제한다. 따라서 탐구 대상의 유래와 출처는 형이상학적 상상력에 기초한 기원Ursprung일 수는 없다. 니체는 그 출처를 개인적이고도 집합적인 존재인 인간의 심리에서 찾아낸다. 그러므로 심리-계보적 방법론은 일종의 심리 분석의 형태로 진행되게 된다. 이 방법론에 의해 니체는 서양 사유의 자명성을 형성했던 토대가 형이상학적-도덕적-목적론적 해석의 결합체라는 것을 밝혀낸다. 니체는 서양 철학의 제 영역들이 한마디로 도덕 가치들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고 생각한다."(120-1)


"니체가 극복의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형이상학의 기본 특징은 무엇보다도 이분법적 세계 해명이다. 이분법적 형이상학의 세계 해명은, 세계를 존재(혹은 존재의 세계)와 생성(혹은 생성의 세계)으로 이분하여 그것들의 본질적-가치적 배타 관계를 공고히 하고, 나아가 전자에 존재적·인식적·가치적인 우위를 부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생성은 한갓 가상으로 평가절하된다." "이 이분법에서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인식과 탐구, 학문과 삶의 토대 역할을 해왔으며, 이 존재에 대한 믿음이 바로 생성 및 생성 세계를 부정하는 근거가 되어버린다. 이런 사실을 인지한 니체에게 실제 세계를 가상으로 폄하하는 가상 아닌 세계, 즉 그 자체의 세계 또는 존재의 세계란 한갓 허구일 뿐이다. 니체의 생성의 철학은 '그-자체' 일반을 믿지 않으며, 그래서 '존재'와 마찬가지로 '현상'이라는 개념의 시민권을 거부하는 '생성에 대한 진정한 철학'이고 싶어 한다. 존재는 이제 다른 식으로 설명되어야 한다."(124-5)


"이분법적 형이상학이 범하는 최대의 오류를 니체는 '도구와 규준의 혼동' 혹은 '과도한 순진함'에서 찾는다. 이 오류는 니체가 인간 이성의 소박한 오류로 제시하는 것으로서, 이성이 자신과 자신의 인식 범주들의 도구적 성격을 망각해서 그것들을 실재에 대한 규준으로 믿어버리는 독단적 태도에서 비롯된다. 니체는 이러한 이성의 독단성에 의해 서양 형이상학의 전 역사가 규정되고 있다고 이해하며, 이것을 형이상학 비판의 핵심으로 설정하고 있다." "니체에 의하면 인간은 '표상하고-생각하는 주체'가 아니라 '가치를 창조하고-해석하는 주체'다. 이런 인간의 인식은 관점적 해석이고, 관점적 해석은 삶에 유용한 오류일 뿐이다." "니체는 이 점을 다음처럼 말한다. 〈파르메니데스는 말하기를 '존재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사유하지 않는다.'─우리는 [파르메니데스]의 반대편에 서서 말한다. '사유될 수 있는 것은 확실히 허구여야만 한다.' 사유는 실재를 잡을 수 없다.〉"(131-3)


"일반적으로 이론적 허무주의는 진리의 인식 가능성에 대한 부정을, 윤리적 허무주의는 행위의 가치와 규범에 대한 부정을 의미한다. 니체는 프랑스 문화 비판으로부터 허무주의 개념을 전수받아, '최고 가치의 탈가치'에 의해 초래되는 의미 상실의 경험 상황, 의미에 대한 물음이 아무런 답변을 얻지 못하는 상황을 허무주의 상황으로 규정한다." "니체가 자신의 '철학적 주제'로 허무주의를 도입한 것은 1882년 가을부터다. 이때 씌어진 유고에서 알 수 있듯이, 니체는 허무주의 주제를 러시아의 정치적 상황과 집중적으로 연관시키고 있다. 이것은 러시아의 정치적 상황, 특히 정적 암살 행위들이 신문 지상이나 사실주의 문학에 등장하면서 허무주의 개념이 테러리즘과 동의어로 인식되어, 그 원래의 의미에서 벗어나고 의미의 축소화 과정을 밟았던 시대적 상황과 맥을 같이한다." "니체가 자신의 철학적 주저로 기획했던 《힘에의 의지》에 '모든 가치의 전도에 대한 시도'라는 부제를 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195-6)


"니체의 '유럽 허무주의에 대한 철학'에서 허무주의 주제는 '기존 가치의 탈가치', '유럽 허무주의의 역사', '새로운 가치의 설정'이라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고 볼 수 있다. '기존 가치의 탈가치'는 인식 이론, 형이상학, 미학을 비롯한 학문 일반 및 도덕, 정치, 경제 영역에서의 진리 상실과 신적 권위의 상실의 결과로서 등장한다. '유럽 허무주의의 역사'에서는 유럽의 역사가 플라톤적-그리스도교적 가치의 몰락 과정, 신 개념의 의미 상실 과정, 그리스도교 도덕의 무력화 과정으로 그려진다. 즉 유럽 역사가 허무주의 과정으로 재조명된다. 이 허무주의 과정은 힘에의 의지라는 새로운 세계 해명 원칙과 위버멘쉬의 등장, 그리고 위버멘쉬에 의한 '새로운 가치 설정'으로 극복되어 새로운 유럽의 미래가 예견된다. 이렇듯 허무주의 주제의 세 부분은 서로 불가분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것으로서의 허무주의 주제는 힘에의 의지와 영원회귀와 위버멘쉬 개념군 안에서 움직인다."(197)


"완전한 허무주의는 허무주의의 극단적 형태이자, 동시에 허무주의를 그 반대의 방향으로 역전시키는 허무주의 형식이다. 그래서 인간을 부정의 상태에 머물게 하지 않고, 오히려 부정에의 의지를 긍정에의 의지로, 그것도 디오니소스적 긍정에의 의지로 전환시키는 허무주의 형식이다. 허무주의가 단지 과거의 것에 작별을 고하는 것일 뿐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감행하게 하는 계기도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것을 위해 니체는 인간에게 근본적 부정과 근본적 긍정 사이에서, 절대적 퇴락의 가능성과 허무주의 극복 가능성 사이에서 결단을 요구하는 상황을 제시한다." "그리고 니체는 허무무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성공 가능성을 오로지 인간 의식의 전환 여부에서 찾는다. 인간이 스스로를 가치의 설정자이며 창조자로, 해석 주체로 긍정하는지의 여부에 따라서 관점적 인식 상황이 단순한 허무적 위험으로서의 데카당스인지 아니면 그 반대로 적극적 기회의 역할을 하는지가 결정된다."(210-3)


"인간의 변화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가치의 설정자이자 창조자로, 해석 주체로 긍정해야만 가능하다. 이런 긍정은 자신의 해석이 자신의 힘과 삶을 위한 전략에 의해 수행되는 관점적 평가라는 사실에 대한 긍정이다. 이는 곧 자신의 해석이 필연적으로 오류이고 일면적일 수밖에 없음에 대한 긍정이다. 더불어 해석의 오류성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의미 있고 필연적이며 정당한 해석이라는 사실에 대한 긍정이다. 동시에 이 의미 필연성이 실재 자체와 일치되거나 실재 자체의 진리를 보증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대한 긍정이다. 이렇게 인간이 자기 자신을 해석 주체로 인정하면 궁극적으로 존재 그 자체는 인간에게 여전히 비밀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음을 긍정하게 된다. 이는 곧 자신의 한계에 대한 적극적 긍정을 의미하며 자신의 이성 사용에 결코 절대적 요구를 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즉 자신을 해석 주체로 긍정하는 이 주체는 니체에게서 위버멘쉬Übermensch라는 명칭으로 불린다."(214-5)


"인간은 자신의 경험 상황의 무의미함과 그 경험 상황의 주체로서의 자신의 삶의 무의미함과 무가치함을 경험한다. 영원회귀 사유는 이런 인간 존재의 무의미함이 영원히 반복되고 결코 종결되지 않으며, 이것으로부터 도망칠 가능성이 전혀 없으리라는 경험을 가능케 한다." "영원회귀 사유의 결정적인 기능은 이 사유가 자신의 이론적 적절성을 증명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지 않다. 오히려 이 사유의 〈비이론적〉인 면, 즉 이 사유가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달려 있다. 모든 것이 되돌아온다는 사유는 인간을 기습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이 사유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결단하게 한다. 이 기능을 가리켜 니체는 〈약한 자로 하여금 결정하게 하고, 강한 자도 결정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약자와 강자를 구별하는 목적이 약자의 제거에 있지 않고 오히려 약자일 가능성을 가진 인간을 강자로 만드는 데에 있다는 것, 바로 여기에서 영원회귀 사유의 목표인 허무적 상황의 극복 가능성이 주어진다."(221-3)


제3부 새로운 세계 해석의 건설: 생기존재론


"생성에 대한 니체의 설명은 생성의 세계=힘에의 의지=생기Geschehen라는 기본 공식에서 출발한다. 니체는 세계의 기본 사태를 곧 힘에의 의지이며 생기 자체로 이해한다. 따라서 니체의 입장을 마그라이터가 제안한 〈생기존재론〉이라는 말로 규정하는 것은 적절하다." "이렇듯 니체의 생성에 대한 설명은 (전통적 의미로는) 반형이상학적이지만, 여전히 제일철학으로서의 형이상학, 존재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 따라서 니체의 이런 프로그램은 근대의 경험철학에서 행해진 반형이상학적 환원주의와는 거리가 있다. 니체에게는 카르납과 달리 형이상학적인 문제가 학적으로 다루어질 수 없는 〈가상 문제〉는 아니며, 형이상학적 문장들은 단순한 〈삶의 느낌에 대한 표현〉일 수 없다." "'생성의 의미는 모든 순간에 충족되고 도달되고 완성되어야만 한다'는 그의 의도에 따라 니체는 생성을 오로지 생성적 성격에 의해서만 설명하고 정당화하며 더 나아가 긍정할 수 있는, 즉 〈생성의 무죄를 입증〉하는 방법을 모색한다."(293, 296)


"생성 철학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유 단초는 바로 '생성은 살아 있는 존재Sein'라는 것이다." "존재는 살아 있는 것이고 생성의 과정에 있다. 이는 니체가 이해하는 전통 형이상학의 도식 '존재하는 것은 되어가는 것이 아니고, 되어가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를 새로운 공식, 즉 '존재하는 것은 되어가는 것이고, 되어가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다'로 대체하는 것이다. 살아 있는 존재와 대립되는 것은 이제 '생성'이 아니라 '생성하지 않음'이고,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생성'은 가상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존재'다. 니체 철학은 이렇듯 '전도된 플라톤주의'다. 전도된 플라톤주의가 제시하는 존재와 생성의 일치에서, 존재하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생성의 과정에 있을 수 있는지는 바로 생기 개념에 의해 설명된다. 이 개념에 의해 '존재하는 것은 되어가는 것이다'라는 원리는 이제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힘에의 의지인 한에서 되어간다'라는 윈리로 구체화된다."(310-2)


"힘에의 의지를 니체는 추동하는 온갖 힘의 원천으로 이해한다. 〈추진하는 힘은 힘에의 의지 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그 외의 심리적이거나 역동적이거나 심리적인 힘은 없다〉라는 니체의 단언은 이런 맥락에서 등장한다. 그렇다면 의지의 힘의 실제 영역은 무기적인 세계에서부터 인간의 지각과 지성 영역을 거쳐 물리적 세계에 이르기까지 전 존재 영역을 포괄한다. 이렇게 해서 힘에의 의지는 '존재의 가장 내적인 본성'으로 니체에 의해 상정된다. 이것에 의해 니체의 초기부터의 기본 구상인 '살아 있는 존재'의 내용이 구체화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변화하는 것이고, 이 변화와 생성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힘이며, 그것도 지배를 원하고, 더 많이 원하며, 더 강해지기를 원하는 의지의 힘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의지의 힘은 바로 존재를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전통 형이상학의 정식을 뒤집은 '존재하는 것은 되어가는 것이다'라는 정식은 이제야 구체적인 내용을 얻게 된다."(331)


"니체는 힘에의 의지를 〈존재의 가장 내적인 본성〉이라고 부른다. 《선악의 저편》에서 힘에의 의지를 세계의 〈본질essence〉로 명명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본질' 혹은 '본성'이라는 철학 용어는 전통 형이상학을 극복하고자 하는 니체에게서는 기피되는 용어 중의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체는, 그가 여전히 전통 형이상학의 틀 안에 머물러 있다는 오해를 유발할 수 있는 이 용어를 힘에의 의지에 대해 사용한다. 힘에의 의지의 보편성을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하지만 이런 보편적 성격을 갖는 힘에의 의지는 그 자체로 자존하는 것도 아니고, 실체적 존재도 아니며, 형이상학적 유類도 아니다. 오히려 힘에의 의지는 관계를 맺으면서만 존립할 수 있으며, 실제로 작용하고 활동하는 의지 작용이다. 즉, 관계적 존재다." "더불어 이런 힘에의 의지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생기라는 이름을 부여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에 내재하는 〈내적 생기innerliches Geschehen〉이기도 하다."(333-4)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지는 〈자연 전체의 현재적인 기체〉, 모든 개별적인 사물에 〈근원적인 창조력〉이다. 즉 세계의 가장 내적인 본질인 의지는 곧 내적인 힘이다. 그리고 이런 것으로서의 의지를 그는 〈사물 자체〉로 인정한다. 〈모든 표상은, 모든 대상은 그 어떤 종류이든 간에 현상이다. 사물 그 자체만이 유일하게 의지인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의지를 힘Kraft 개념에 포함시키던 기존의 표상 방식에서 벗어나 힘을 본성상 의지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제 쇼펜하우어의 의지의 형이상학은 곧 힘의 형이상학이 된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의지를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작은 문〉이면서도 동시에 그 문을 통해서 스스로를 열어 보이는, 〈모든 사물의 좀더 내적인 본성〉이라고 여긴다. 의지는 사물 그 자체인 동시에 현상(더 정확히는 표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의지는 모든 사물의 배후에 놓여 있는 형이상학적 유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주어진 '가장 직접적이고도 가장 명료한 인상'이라고 할 수 있다."(346)


"쇼펜하우어는 의지의 형이상학을 가지고 형이상학적 일원론을 지향한다." "이런 실재를 니체는 한갓 〈편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완전히 다른 실재성의 〈창백한 그림자〉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칸트의 물 자체와 쇼펜하우어의 의지를 동일한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칸트에 이르기까지 이성적 인간의 내적인 규정 근거였으며, 쇼펜하우어에게는 모든 존재자의 일차적이면서도 근원적인 것이었던 의지는, 니체에게는 모든 역동적인 관계들의 일차적인 원천이 된다. 의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의지의 〈힘의 급작스러운 분출이나 폭발〉만이 있을 뿐이다. 니체에게 의지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힘을 증가시키고 잃어버리는 의지들이며, 이미 다른 의지들의 존재를 전제하는 것이다. 의지의 이런 '내용'과 '목적'을 없애버리게 되면 의지의 성격 역시 없애버리게 되며, 내용과 목적이 사라진 의지는 그야말로 〈한갓 공허한 개념〉에 불과하게 된다."(346-8)


"힘에의 의지는 힘 소비의 극대 경제의 원칙을 따른다. 의지는 항상 더 많은 힘을 얻기 위해, 의지들 간의 긴장 관계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 자신의 힘을 최대한 발휘한다. 니체는 이런 힘 소비의 극대 경제 원칙이 '매 순간' 적용된다고, 즉 '예외 없이' 그리고 '중단 없이'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즉 '당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본성상 더 많은 힘을 원하는 힘에의 의지는 '모든 순간' 자신의 힘의 극대화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작용 방식의 '지속'은, '매 순간'의 당위는 어디서 보장받을 수 있는가? 이것에 대한 설명의 필요성 때문에 니체는 힘 소비의 극대 경제 원칙과 영원회귀 사유를 결합하게 된다." "따라서 '같은 것의 영원회귀'는 곧 '같은 것의 같은 것으로의 영원회귀'를 의미하게 된다. 즉 '힘에의 의지'가 '힘에의 의지라는 자신의 본성으로 영원히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의지의 힘은 항상 자신의 본성으로 되돌아오고, 매 순간 자신의 본성을 실현한다."(362-3)


"힘에의 의지의 이런 성격은 매 순간 힘의 최고 상태를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생성의 전 과정에서 하나의 힘의 극대점이나 힘이 극대화되는 순간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생성의 전 과정이 매 순간 힘의 극대화를 경험한다. 더 나아가 힘의 균형 상태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힘의 균형 상태라는 것은 힘들 간의 싸움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일종의 정지 상태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매 순간 힘의 극대화를 꾀하고 실현시키는 힘에의 의지의 본성에 어긋난다." "영원회귀에서의 영원성은 무시간성이나, 시간적 과정의 멈추지 않음, 혹은 헤겔적 의미의 '끔찍한 무한성', 피안에 대한 믿음에 각인된 종교적 영원성과도 상관이 없다. 오히려 절대적인 생기 필연성이 확보되는 개개의 순간의 영원화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각 순간들이 그것들의 영원회귀를 원할 정도로 필연적이고 가치가 충만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순간이 의미를 갖는 것은 그 순간들이 힘에의 의지의 생기 사건이기 때문이다."(364, 376)


제4부 해석적 지식과 해석적 진리: 관점주의 인식론


"니체는 관점성Die Perspektivität을 생/삶의 기본 조건으로 제시한다. 이것은 곧 더 많은 힘을 더기 위한, 즉 자기 극복을 통한 자기 상승을 목적으로 하는 의지 작용의 조건을 의미한다." "그런데 '필연적 관점주의'는 해석의 보편성에 대한 다른 식의 해명이기도 하다. 니체는 힘에의 의지의 작용을 해석 행위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존재자 내부의 유기적 과정은 힘을 얻어 성장을 원하는 의지에 의해 수행된다. 이런 수행 방식이 곧 해석 작용인 것이다. 따라서 관점을 설정하는 힘의 보편성은 곧 해석의 보편성을 의미하게 된다." "인간은 힘에의 의지가 활동하는 장이다. 신체-주체의 힘에의 의지는 신체-주체를 단순한 인식 주체가 아닌 해석 주체로 만든다. 해석 주체의 인식 과정은 곧 생기 현상으로서의 해석 작용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해석 주체의 해석 과정에서의 특정한 관점을 규정하는 규제적 원리가 힘에의 의지고, 이 점은 니체가 힘에의 의지를 '관점을 설정하는 힘'으로 명명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428-30)


# 니체 철학에서는 언제나 힘에의 의지의 수행=생기=해석 행위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신체 개념은 인간에 대한 이원적 해석을 벗어나기 위한 전략적 개념이기도 하다. 신체는 이원화할 수 없는 인간을 총체적으로 지시하는 명칭이며, '큰 이성die groβe Vernunft', '나Ich', '자기 자신das Selbst'은 신체의 또 다른 명칭들이다. 니체가 신체 개념을 매개로 하여 극복하고 싶어 하는 인간에 대한 이원적 해석이란, 인간을 정신/이성/영혼과 이에 대립되는 육체라는 두 가지 단위로 설명하는 해석을 말한다." "니체에 의하면 순수한 이성의 동일성으로 결정되는 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성은 인간인 '나'의 주인 역할을 할 수 없다." "니체는 육체 중심이든, 이성 중심이든 간에 인간을 두 단위로 분리하여 설명하는 모든 해석을 형이상학적 인간관으로 규정하며, 인간에 대한 오해라고 단정 짓는다. 인간은 이런 구분에 의해 이원화될 수 없는 총체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성/영혼/정신 부분과 육체 그리고 의지들이 유기적으로 관계 맺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인간은 신체인 것이다."(435-7)


"신체는 창조 주체다. 여기서 창조는 '가치 평가 작용' 혹은 '의미 창조 작용'을 말한다. 신체는 자신의 자기 극복적인 삶을 위해, 위버멘쉬적 삶의 유지를 위해 평가 작용을 한다. 따라서 어떤 것의 가치와 의미는 그 자체로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신체의 평가 작용에 의해 비로소 부여된다. 이 가치 평가와 의미 부여는 전적으로 신체의 목적을 위한 것이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된 것은 전적으로 신체 의존적이다. 우리가 선과 악이라고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선과 악은 그 자체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체의 자기 극복적인 삶의 유지를 척도로 선과 악의 내용이 결정된다. 신체는 이런 평가 작용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구성해간다. 평가 작용은 신체의 삶의 실천인 것이다. 그러나 한번 평가된 의미와 가치는 결코 고정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삶은 평가 작용에 의해 유지되지만, 이 평가 작용에 의해 상승되고 변화된 삶은 또 다른 평가 작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442)


"해석은 관점적 평가다. 니체에게서 관점성은 모든 삶의 근본 조건이며, 인간 인식의 근본 조건이기도 하다. 인식은 관점성에 의존하며, 인식은 단적으로 관점적이다. 관점적 인식은 가치를 평가하는 활동이다. 그렇다면 해석은 주체의 능동적인 가치 평가 행위이며, 가치 각인적 성격을 갖는다. 이 점은 해석의 특징을 결정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해석으로서의 인식은 주체의 주관적인 가치 판단 행위인 것이다. 대상 인식에서 규준이 되는 물음은 이제 〈이것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이것이 나에게 무엇인가?〉이며, 인식 행위의 결과는 따라서 주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질적인 의미-해석이다. 의미-해석은 이미 주어져 있는 의미에 대한 획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주체가 자신에 대해서만 '의미가 있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의미 창조 작용의 결과다. 하지만 이 행위는 언제나 특정한 목적하에서 이루어진다. 그 목적은 삶의 유지다. 그것도 항상 성장하는 형태의 삶의 유지다."(458-9)


"니체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인식 활동에서 인간은 해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인간은 주관적 관점을 배제한 외재적 관점을 가질 수 없다. 또한 해석된 세계는 주체가 경험하는 세계이고, 주체가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가 의미를 만들어내는 그런 세계다. 이 세계야말로 바로 주체에게 '상관있는' 세계다. 그러나 이 세계의 상정이 곧 대상으로서의 세계의 사라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또 해석된 세계의 범위는 단지 주체가 경험하는 세계의 범위일 뿐, 대상으로서의 세계 자체의 범위와 같은 것은 아니다. 내 해석의 한계는 나에 의해 경험된 세계의 한계일 뿐이다. 이렇듯 니체는 세계에 대한 관점적 관계 맺음의 불가피함을, 그리고 해석 세계가 인간 경험의 한계이며, 경험의 한계가 바로 인간 자체의 한계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즉 니체는 한편으로는 본질 형이상학을 거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객관적 경험 인식의 가능성에 대한 비판적인 한계 설정을 하는 약화된 인식론적 실재론을 표명하고 있다."(473-5)


"해석은 비록 필연적으로 오류인 가상Schein이긴 하지만, 니체가 인정하는 유일 실재, 즉 힘에의 의지에 의해 '의욕되고 산출된' 가상이기에 진정한 의미의 인식이다. 가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실재의 기능이며, 가상은 실재에 의해 의욕되고 만들어진 가상이다." "'현상'이자 '의욕되고 산출된 가상'인 해석은 이렇게 해서 기존의 참-거짓의 구분을, 기존의 '참-가상'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있다. 해석은 비록 가상적 현상이지만, 이것은 우리의 해석 세계이며, 힘에의 의지라는 실재의 산출물이다. 이런 해석과 대립되는 것은 참된 인식이나 진리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해석과 대립적인 것은 우리의 해석 세계로 들어오지 않는 것, 즉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것이며, 니체는 이것을 기존의 분류 도식을 벗어나서 '다른 종류의 현상 세계'라고 부른다. 이 세계는 비록 지금은 우리의 해석 세계로 들어오지 않지만, 우리에 의해 형식화되고 해석될 가능성이 배제되지는 않은 세계다."(475-7)


"타자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라는 것은 우리의 규약적이고도 가치평가적인 해석적 이해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타자에 대해 공정하지 않은ungerecht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우리 자신이 그런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존재라는 것을 니체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공정치 않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이런 사실에 대한 인식. 이런 '부조화'야말로 우리를 타자에 대한 공정한 이해gerechtes Verstehen로 이끄는 동인이 된다. 공정치 못함에 대한 인식과 통찰은 우리에게 더욱 섬세한 해석적 이해를 원하는 의지를 갖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섬세한 해석은 다름 아니라, 각 개별자들의 개별성을 무시하거나 배제하거나 일반화하지 않은 해석을 말한다." "섬세한 해석을 원하는 의지는 타자에 의해 사실적인 이해나 동의나 합의를 하라는 강제와 타협하지 않는다. 이런 의지를 갖는 해석자를 니체는 공정함이라는 특성을 갖는, 공정한 주체로 상정한다."(531)


제5부 비도덕주의 윤리학


"니체가 보기에 플라톤 이래 서양 철학이 추구해온 진리는 바로 도덕적 진리들이며, 그것도 편견으로서의 도덕적 진리들이다. 이것들은 인간의 현실적·자연적 삶을 부정하는, 즉 삶의 본능을 부정하는 반자연적 성격을 띤다. 이런 특징은 형이상학의 성립과 전개에서, 그리고 인간의 진리 추구 노력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서양의 도덕과 형이상학과의 숙명적 결합은 이미 지적된 '존재와 생성의 형이상학적 이분법'의 형성이나 '도덕적 존재론으로서의 철학'에서뿐 아니라 '선악의 이분법'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니체는 생각한다. … 이렇게 해서 선과 악, 선의 세계와 악의 세계는 존재적으로나 가치적으로 분리되고, 본질적 대립 관계를 형성한다." "이 도덕은 도덕성을 종교적 초월이나 철학적 초월을 통해 존재 세계/저편의 세계에 근거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니체는 이런 형이상학적 특성을 갖고 있는 도덕을 인정할 수 없다. 이 이분법 자체가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이며, 인간의 삶을 부정하는 결과를 갖기 때문이다."(550-1)


"니체는 도덕적 가치 판단에서 '행위'가 아니라 '행위자'를 판단의 척도로 상정한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자기애에서 발생하며, 그런 한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이기적인 행위들이다. 따라서 이기적인 행위와 비이기적인 행위 사이에는 단계와 정도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 후에 니체는 이기심 '자체'가 아니라 이기심의 '주체'가 이기심이나 이기적 행위를 판단하는 척도가 된다는 것을 밝힌다. 이기심은 예컨대 위버멘쉬적 삶을 목적으로 하는 주체의 자기 사랑일 수 있다. 이런 이기심을 갖는 주체는 '고결한 인간'이자 '강자'이며, 그의 이기심은 '건강하며 건전한' 이기심이다. 이렇게 해서 니체는 선과 악의 차이를 '선 그 자체'와 '악 그 자체' 사이의 대립이 아니라, 강자와 약자의 차이로 환원해버리는 비도덕주의의 입장을 선취하게 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기심 그 자체'가 아니라, '누가' 이기적인가 하는 것이다. 이기적 '행위'가 아니라 이기적 '행위자'가 문제인 것이다."(556-7)


"〈자연이 퇴화된 자들을 동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연이 반도덕적인 것은 아니다. 인류에게 있어서 생리적이고 도덕적인 악의 증대는 그와는 반대로, 병들었고 반자연적인 도덕의 결과인 것이다〉라는 니체의 단언처럼, 반자연성으로부터 도덕의 구제는 니체에게 시급한 과제다. 니체의 프로그램은 도덕이 갖고 있는 반자연적 성격을 없애고, 도덕의 자연적 유용성을 다시 밝혀내고 부여하여, 도덕을 자연화하고자 한다." "니체의 관심은 특정 행위에 대한 도덕적 평가는 전적으로 행위 주체에 의존한다는 것, 따라서 그 자체로는 선한 행위도 악한 행위도 없다는 것을 밝혀내어 선과 악에 대한 고정 관념을 없애는 데에 있다. 그리고 이것을 토대로 니체는 도덕의 기원이 도덕 외적=비도덕적=자연적 유용성이며, 도덕 가치도 오로지 이것에 의해서만 평가되어야 한다는 정언적 명제를 세우고 싶어 한다. 〈자연명법으로 정언명법을 대체한다〉라는 짤막한 표명은 니체의 이런 관심을 대변해주고 있다."(584-6)


"반자연적 도덕은 무리 본능과 평균 본능과 데카당스 본능의 소유자들의 힘에의 의지가 만들어낸 도덕이다. 그래서 생명력의 퇴화를 가져오고 삶을 부정하는 데카당스 도덕인 것이다. 그러므로 '좀더 차원 높은' 새로운 도덕은 다른 종류의 해석 주체를 상정해야만 한다. 즉 스스로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가치 평가자, 자기 극복과 자기 지배를 할 수 있는 자, 이런 삶을 영위하고자 의식적-의지적으로 노력하는 자, 즉 강자다. 이런 강자를 니체는 노예와 대립시켜 '귀족적 인간' 혹은 '주인Herr'이라고 부른다." "주인 도덕에서 '좋음gut과 나쁨schlecht'의 대립은 '고귀함vornehm과 경멸적임verächtlich'의 대립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반면 노예 도덕에서 '선gut과 악böse'의 대립은 그들에게 '위험하지 않음ungefährlich과 위험함gefährlich'의 대립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 도덕 유형은 고도로 혼합된 문화 체계 안에서뿐 아니라 한 개인의 영혼 속에서도 공존하고 침투하며 중재되고 있다."(590-1)


"노예 의식을 갖는 개인들 사이에서 타자에 대한 승인은 여론이나 평판 혹은 대중들의 판단에 의해 규정된다. 반면 주인 의식을 갖는 사람들 간의 서로에 대한 승인은 자신에 대한 긍정에서 출발하는, 타자에 대한 긍정에서 성립된다. 자기 자신을 긍정한다는 것은 자신이 선과 악의 판단 주체라는 점에 대한 긍정이다. 이 긍정은 자신의 가치 판단과 그것의 행사가 필연적으로 개인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 대한 긍정이다. 이런 반성적 자기 제한은 주인 의식을 갖고 있는 강자의 힘이다. 강자의 반성적 자기 제한은 타자의 가치 판단의 개별성과 차이를 인정하게 한다. 타자에게 자신의 가치 판단에 동의하거나 합의하라고 강요하거나 강제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자들이 자신과는 다른 삶의 조건을 갖고 있다는 것을, 거기서 도출된 타자의 판단을 인정하고 승인한다. 타자 역시 자신처럼 가치 판단의 주체이며, 자신의 창조 의지를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는 주체임을 인정한다."(594-5)


제6부 예술생리학


"아이스킬로스나 소포클레스의 그리스 비극은 내용상으로는 신화적 세계관, 욕망과 본능, 인간의 불가항력적인 비극적 운명과 고통, 인간 존재의 경악스럽고 부조리하고 잔인한 삶, 죄와 속죄, 자신의 고통스럽고 부조리한 삶에 대한 긍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형식상으로는 비극적 운명의 개인을 구원하는 역할로서 합창과 음악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이성=덕=행복이라는 소크라테스의 합리주의 공식이 신화적 환상과 비극적 운명을 의식성으로, 죄와 속죄의 상관성을 기계적 인과론으로, 동정과 일체감과 음악(합창)의 장을 논리적·이성적 토론의 장으로 변질시킨다. 비극의 주인공은 이제 변증론자이며, 그는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인한 비극적 사건 때문이 아니라 논리적 비대화로 인해 파멸한다." "니체는 이런 종말의 책임을 소크라테스주의와, 〈소크라테스적 합리주의의 시인〉이자 〈미학적 소크라테스주의〉를 표방하는 에우리피데스에게 지운다. 니체의 이런 입장은 《비극의 탄생》에서도 일관되게 유지된다."(630-1)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가 제시하는 두 예술 충동 중에 아폴론적 예술 충동은 형상과 형태를 만들고 제공하는 충동이자 척도를 설정하고 틀을 규정하고 인식하는 충동이다. 이 충동은 '개별화의 원리'를 사용하여 구분 가능하고 산정 가능하며 인식 가능한 조형 세계를 만들어낸다." "반면 디오니소스적 예술 충동은 인간 안에서 무매개적으로 솟구치는 예술 충동으로서, 울타리나 제한이나 형태를 만들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파괴하여 모든 것과 그리고 세계의 근원적 모습과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지향한다." "그런데 니체는 이 두 예술 충동이 대립적이지만 서로를 요청하는 관계에 있으며, 변증법적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한다. 즉 예술 활동은 이 두 충동이 같이 작용하는 것이다. 단지 예컨대 음악에서는 디오니소스적 힘이, 조형 예술에서는 아폴론적 힘이 더 강하게 작용할 뿐이다. 이 두 예술 힘이 최고의 조화를 이루는 합일의 상태를 니체는 그리스 비극에서 찾는다."(632-4)


"예술가-형이상학은 세계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 역시 오로지 미적 현상으로서만 정당화된다'고 한다. 니체에게서 (그리스인들의) 삶은 다양한 활동의 장이자, 고통과 온갖 종류의 부조리와 잔인함 그리고 죽음이 지배하는 거대한 불협화음의 장이다. 삶의 이런 불협화음을 바라보면서 이것을 해소할 그 어떤 현세적 해결책도 없다는 것에 대한 인식은 예술이라는 매개물을 요청하게 된다. 예술을 통해 인간 역시 '형이상학적 위로'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 위로는 도덕에 기초한 초월 세계의 상정이나 정의로운 미래 제국의 건설에 대한 약속과는 다르다. 이 형이상학적 위로는 합리적-도덕적 사고를 넘어서 있다. 이런 맥락에서 니체는 예술을 〈반도덕적 예술가 신〉이라고 부른다. 형이상학적 위로는 또한 자의적 낙관주의일 수도 없다. '가상의 가상'을 통한 '가상에 의한' 근원 일자와의 합치에 대한 약속인 것이다. 그리고 이 약속은 비극이라는 예술 양식에 의해 이행된다."(642-3)


"니체는 1881년 이후 예술가-형이상학 대신에 새로운 철학적 과제를 설정한다. 이제 그에게 인간의 삶과 세계는 형이상학적 위로라는 정당화를 통해서만 긍정 가능한 대상이 아니다. 인간의 삶과 세계는 서로 대립되는 측면들을 필연적으로 갖고 있으며, 그 여러 측면들에는 없어도 좋은 것이나 불필요한 것은 없다. 그래서 니체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무조건적 긍정 가능성을, 즉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을 구성해보고자 한다. 이런 철학에 필요한 도구로서 니체는 다시 예술을 주목한다. 하지만 여기서의 예술은 해석으로서의 예술이다. 해석으로서의 예술은 힘에의 의지의 창조력의 소산이다. 그런 한에서 관점적 평가 행위이며 가상이다. 하지만 이 가상은 형이상학적 위로 수단, 아름다운 환상으로서의 가상과는 차이가 있다. 오히려 힘에의 의지의 예술 활동은 삶의 어두운 디오니소스적 심연에도 불구하고 삶을 긍정하게 한다. 이런 긍정을 니체는 디오니소스적 지혜라고 부른다."(647)


"예술생리학 프로그램은 니체의 관점적 세계 경험을 토대로 하며, 예술을 힘에의 의지에 의한 해석으로 규정한다. 힘에의 의지는 인간 안에서 의미와 가치의 세계를 창조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니체는 힘에의 의지의 이런 창조 활동을 예술 활동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힘에의 의지의 활동은 그에게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서 예외없이 발생하는 것으로, 세계의 본질이다. '이 세계는 힘에의 의지이고, 다른 것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존재하는 것들의 활동은 모두 예술적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는 거대한 예술 활동의 장이며, 거대한 예술 작품이다. 힘에의 의지의 작용에 대한 다른 명칭이 '해석 작용'인 한에서, 세계는 거대한 해석 작용의 장이며, 거대한 해석 작품이다. '스스로 분만하는 예술 작품으로서의 세계'라는 니체의 유명한 단언은 여기서도 유효하다." "이렇듯 초기의 형이상학의 토대였던 근원 일자는 이제 힘에의 의지에 창조의 주체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649-50)


"인간의 미적 체험에 대한 니체의 분석은 철저하게 인간 중심적인 입장에서 출발한다. 세계의 아름다움은 인간이 선사한 것이며, 세계가 아름답다는 판단은 인간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래서 니체의 표현대로 〈아름답다는 판단은 인간의 종적 허영심〉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미학의 제1진리는 다음과 같이 말해질 수 있다. 〈그 어느 것도 아름답지 않다. 인간 외에는.〉" "하지만 니체가 전적으로 주관주의적 입장만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랜 역사와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입증된 것'은 일종의 집합적인 생존 조건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미 판단이나 미적 가치는 주체 의존적이기는 하지만, 각 개인의 주관성의 영역으로 전적으로 환원될 수만은 없다. 오히려 니체는 미적 체험의 집합적 생존 조건 측면을 강조하면서 이런 환원에 대해 경고한다. 이것은 현대의 미학 이론이 말하는 객관적 상대주의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6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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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철학사 - 독일 정신은 존재하는가
비토리오 회슬레 지음, 이신철 옮김 / 에코리브르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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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대체 독일 철학의 역사는 존재하는가? 그리고 '독일 정신'이 존재한 적이 있었던가?


"철학사에서 의미와 연관을 추구하는 사람, 철학사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최소한 유럽 철학사를 하나의 통일로서 고찰해야만 한다." "요컨대 독일 철학의 고유한 역사를 박제화하는 것은 사유의 세계 공화국에 실제로 존재하는 지시 연관들을 보지 못하게끔 하거니와, 그렇게 만들어진 독일 철학의 역사는 분명히 오직 세계 수학의 비자립적 부분으로서만 존재하는 독일 수학의 역사와 비슷하게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로지 독일 철학자들에게만, 또는 최소한 그들 모두에게만 공통된 특징을 찾아내는 것도 쉽지 않다. 확실히 18세기의 독일 철학 거의 전부는 계몽(Auflärung)의 결정적 이념을 수용하거나 최소한 그것을 의식적으로 비판하는 것에 의해 규정된다. 그러나 계몽은 철저히 유럽적인 현상이었다." "그러므로 '독일 철학'이란 다름 아닌 정신적으로 수준 높은 동일성을 창출하고자 하는 독일 국민과 독일 국민국가와의 욕구에 힘입은 인위적인 구성물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떠오른다."912-5)


"그렇지만 구술 문화에서는 물리적으로 가까이 존재하는 사람들과 정신적으로 결실 있는 모든 직접적 상호 작용이 이루어지며, 이런 점은 다수의 그러한 상호 작용에 대해 또한 문자성(文字性)의 발생 이후에도 여전히 타당하다." "더욱이 국민이 일차적 동일성 요소로 떠오름에 따라 의도적으로 강화된 언어 장벽이 국민국가의 시기에 철학적인 국민 문화를 산출했다는 것은 처음부터 개연적이다. 따라서 독일의 계몽철학이 분명히 유럽의 계몽철학과 공동의 특징을 지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독일어 사용을 넘어서 그것을 이웃 나라의 그것과 구별해주는 특수한 형태화를 획득했다는 작업가설은 그 자체로 많은 것을 함축한다. 이런 점은 독일의 거의 모든 지식인이 종교적 신앙 고백, 즉 독일 정신을 다른 어떤 것과도 다르게 주조해낸 루터교 출신인 만큼 더욱더 개연적이다." "우리는 〈독일 정신에는 결정적으로 정신 개념(Geistbegriff)에 대한 추사유(Nachdenken)가 속한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17-9)


2 영혼에서 신의 탄생: 중세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에게서 독일어로 철학함의 시작.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의 중세 사유의 완성과 돌파


"(독일의) 고유한 철학적 사상을 민중어로 처음으로 분명히 표현한 것은 도미니크회 수도사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였다. 내 생각에는 이 이유 및 또 다른 두 가지 이유에서 그를 최초의 독일 철학자로 간주하는 것은 여전히 의미 있다. 그의 이념들 가운데 많은 것은 첫째, 이미 동시대인들이 감지했을 만큼 그리스도교 주류와 당혹스러울 정도로 눈에 띄게 다른, 훗날 독일 전통의 종교철학적 사상을 선취하고 있다." "둘째, 비록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독일 관념론의 발전에 본질적 영향을 주지는 못했을지라도, 청년 헤겔은 에크하르트를 자신의 종교철학 강의에서 인용했으며, 에크하르트는 이미 1864년 요제프 바흐의 책에서 〈독일적 사변의 아버지〉라는 칭송을 받았다." "에크하르트가 민중어의 이용을 명시적으로 정당화한, 아마도 후기 저술인 〈신적 위로의 책〉은 이론적으로 더 의미심장하다. 요컨대 오로지 민중어로만 우리는 배우지 못한 자들에게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36-8)


"독일의 철학적 어휘 창조를 넘어 에크하르트 철학에서 내용적으로 혁신적인 것은 무엇인가?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에크하르트 철학은 이성주의적 근본 기획을 직접적인 신 관계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결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성이 신앙을 정당화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한다는 견해는 중세 초기에 전적으로 널리 퍼졌다. 물론 에크하르트의 도미니크회 형제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본래적인 신앙 조항은 이성을 벗어난다고 가르쳤다. 그의 견해는 곧바로 가톨릭교회의 공인 교리가 되어 교회의 권력 요구를 뒷받침했으며, 그에 의해 교회는 자기의 교의에 대한 이성적 근거짓기를 더 이상 지시받지 않아도 되었다. 그에 반대해 에크하르트는 빛이 비추어진 사람들은 조야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직 믿을 뿐인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거라고 강조한다." "직접적인 신 관계에 대한 관심을 에크하르트는 그리스도교적인 유럽 도처에서, 아니 다른 많은 지역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신비주의자들과 공유한다."(38-9)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역시 이성으로부터 논증하며, 그러므로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이성적으로 근거지을 수 없는 삼위일체(Trinität)와 성육신(Inkarnation, 육화)이라는 특수하게 그리스도교적인 교의들이 문제되는 곳에서도 이성적 신학을 추진한다." "매혹적인 것은 쿠자누스가 아리스토텔레스적 세계상에 대한 비판을 그리스도교적 정신에서 수행한다는 점이다. 근대 과학은 참으로 그리스도교의 '세속화'가 아니라 고대,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맞서 특수하게 그리스도교적인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에 빚지고 있다. 에크하르트의 윤리적 혁명도 이와 유사한데, 그것은 근세에 강화된다. 물론 새로운 과학과 그리스도교 사이에 긴장이 존재한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만약 다른 천체들에도 이성적 존재자가 존재한다면, 근대의 독자는 성육신을 위한 논증이 그에 기초한 인간 본성의 특수한 지위가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50-2)


"(《신앙에서의 평화에 대하여》 같은) 쿠자누스의 저술에서 새로운 것은 그것이 훨씬 더 많은 수의 종교 옹호자를 포함한다는 점이다. 묘사되는 대화는 〈지성의 하늘에서〉, 더 나아가 로고스와 베드로 그리고 바울의 지도 아래 이루어진다. 이는 그리스도교 진리를 이미 전제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전의 종교 간 대화들과는 눈에 띄게 다르다. 그러나 로고스는 모두에 의해 전제된 이성이다. 이성과 그 전제들에 대한 반성을 통해 니콜라우스는 수많은 민족 신앙을 넘어서 있는 하나의 철학적 종교를 근거짓고자 한다. 종교의 통일성은 의식(儀式)의 다수성과 양립할 수 있다. 성사(聖事)들은 분명히 평가 절하된다. 정당성은 행위가 아니라 오로지 신앙에만 달려 있는데, 그 신앙은 물론 행위에서 그 표현을 발견해야만 한다. 여기서 니콜라우스는 종교 개혁의 결정적 문제를 선취한다." "18세기 후반에 성립한 헤겔의 관념론은 쿠자누스의 그것에 당혹스러울 정도로 가까운 형이상학과 자연철학을 전개한다."(56)


3 종교 개혁에 의한 철학적 상황의 변화: 파라켈수스의 새로운 자연철학과 야코프 뵈메의 신에게서의 아님


"이미 16세기에 한편으로는 종교 개혁에 의해 고무된,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 교의로부터 벗어나 루터교로부터 핍박받는 성령주의적·정신주의적 전통이 확립되기 시작한다. 더 이상 성서가 아니라 정신(Geist, 영)이 결정적 원리로 여겨졌다." "이런 사유 방향에서 특히 매혹적인 것은 파라켈수스의 종교적 표상이다. 파라켈수스는 아무런 거처도 지니지 않는 성령 안에 있는 교회를 믿으며, 어떠한 강제적 개종도 〈악마로부터〉 비롯된 것으로서 거부하고, 세례받지 않은 아이들도 포함해 모든 아이의 구원을 가르쳤다." "정치적 이념에서 파라켈수스는 신분들의 폭넓은 평등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활동적 개입을 그리스도교적 이상으로서 옹호한다. 귀족은 신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토지에 대한 권리는 언제나 다만 황제로부터 빌려온 것일 뿐이다. 모두는 노동할 의무를 지닌다. 노동 없는 소유권은 도둑질이다. 그는 사형을 거부한다. 그리고 오로지 방어 전쟁만을 도덕적으로 허락할 수 있다."(64-8)


"근세의 신기원적인 최초의 독일 철학자라는 명예로운 칭호는 야코프 뵈메에게 돌아가야 한다." "16세기 후반의 프랑스 철학은 회의주의적 에세이스트 미셸 드 몽테뉴에 의해 그리고 17세기 전반에는 형이상학과 과학에 흔들리지 않는 기초를 마련하고자 한 데카르트에 의해 광채를 발한다. 영국에서는 정치가 프랜시스 베이컨이 근대 경험과학의 방법적 기초를 발전시킨다. 베이컨과 동시대인이자 정신적으로 가장 활기찼던 슐레지엔 출신의 뵈메는 반면 구두장이였다. 그는 결코 공부를 한 적이 없고 따라서 라틴어를 쓸 수 없었지만, 신비적 비전을 체험하고서는 자기의 전통적인 루터교적 성서 신앙을 신과 자연 그리고 그리스도에 의한 구속의 전개에 관한 철학적 설명을 통해 좀더 깊이 근거짓고자 했다." "이 소박한 사상가는 철학적 전통으로부터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은 엄청나게 표현력 강하고 창조적인 언어로 자연에 대한 자신의 열광 및 종교적 두려움과 희망을 난삽한 동시에 웅대한 현실 이미지로 표현했다."(68-9)


"고통과 악은 어디로부터 세계로 오는가? 우리가 토마스 아퀴나스에게서 발견하는 것과 같은 고전적 대답은 결여론이다. 즉 나쁜 것 또는 악은 존재에서의 결여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신이 모든 것의 창조주라면 그것들도 신 안에서 그 근거를 지녀야만 한다. 뵈메는 신 자신 안에 부정적 원리를 갖다 대는 것을 불가피한 것으로 간주하며, (마지막 저작에서 추상적 방식으로 '예(Jah)'와 '아님(Nein)'으로 언급하는) 긍정적 원리와 부정적 원리의 공동 작용으로부터 외적 세계에서의 신의 현현, 즉 오로지 신적 본질의 전개일 뿐이고 다른 두 원리를 결합하는 자신의 세 번째 원리를 이루는 신의 현현을 파악하고자 한다. 결정적인 것은 대립이 없으면 아무것도 계시되지 않는다는 그의 사상이다." "빛 속에서 '있음(ein Ichts)'인 신은 지옥에서 '없음(ein Nichts)'이며, 따라서 현재하지 않는다." "'예'와 '아님'의 재합일은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지며, 뵈메는 그 자신의 통찰을 그리스도의 정신에 돌린다."(71-3)


4 신에게는 오로지 최선의 것만이 충분히 좋다: 라이프니츠의 스콜라철학과 새로운 과학의 종합


"17세기에 철학을 이성주의적으로 전환시킨 결정적 요인에는 한편으론 똑같은 정도로 권위적인 진리 요구를 지닌 서로 배타적인 다수의 그리스도교 종파가 존재하므로 바로 그 점이 단순히 권위에 기초하지 않는 심급에 대한 추구를 요구한다는 경험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조건적으로 끝내야 하는 종교적 시민전쟁이 불러일으킨 물리적·도덕적 악이 속해 있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는 왜 독일에서 종교의 이성적 근거짓기를 향한 노력이 특히 중요했는지를, 아니 왜 그것이 종교적 활기를 지니고 추구되었는지를 설명해준다. 한편으로 제국은 거의 모든 유럽 국가와 달리 종파적으로 분열되어 있었는데, 따라서 그 국가들은 철학을 덜 필요로 했다. 다른 한편으로 제국은 주권을 획득한 이웃 나라들의 특징을 이룬 저 정치적 통일을 최종적으로 달성하지 못했으며, 이 점은 1648년 이후로 명확했다. 그러나 괴물과 유사한 형성물은 특별한 손질을 필요로 하며, 라이프니츠의 극단적 이성주의는 그러한 치료제였다."(76)


"영국의 경험주의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이러한 이성주의는 신의 본성에 관한 다양한 가정에 뿌리박고 있으며─비록 헤르더 이후에는 신과 자연과학이 아니라 정신과학 법칙의 연관이 관심의 중심에 놓여 있을지라도─독일 문화에 특수한 지위를 부여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추측하건대 전-과학적인 종교적 신앙의 억제, 그것도 좀더 복잡한 신 개념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억제는 독일 정신에 대한 라이프니츠의 가장 중요한 기여였다." "과학이 빈틈을 드러내는 곳에서 종교가 자기 자리를 지닌다는 단순한 이념은 라이프니츠에게서 오로지 자연 법칙에 대한 형이상학적-신학적 근거짓기만이 자연 법칙 자체로부터 그것의 조야한 사실성을 박탈할 수 있다는 좀더 복잡한 이념에 의해 대체된다.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우리는 과학과 기술에서 신의 창조력을 모방한다. 신은 과학의 각각의 모든 새로운 승리가 위태롭게 하는 미봉책이 아니다. 오히려 신은 과학의 기초이며, 과학을 촉진하는 것은 종교적 의무이다."(84-5)


"크리스티안 볼프는 1721년 할레에서 중국인들의 실천철학에 관한 축사 때 그들의 도덕, 즉 바로 신학적으로 정초되지 않은 도덕에 대한 자신의 경탄을 표명했다. 이러한 격찬은 17~18세기에 널리 퍼진 중국 애호에 상응했다. 동시에 축사는 도덕이 종교 없이도 존립할 수 있다는 확신을 표현했다. 그의 신학적 동료인 요한 요아힘 랑게는 격분했다. 랑게와 그 밖의 다른 신학자들이 추진한 고발에는 볼프가 라이프니츠와 마찬가지로 결정론자라는 것도 역할을 했다." "여러 해에 걸쳐 이뤄진 신학적-철학적 논쟁은 독일에서 철학이 신학으로부터 해방되는 데 기여했으며, 또한 랑게가 프랑케 재단과 더불어 종교 개혁 이래 독일의 가장 독창적인 종교적 운동이었던 경건주의의 대표자였기 때문에도 중요하다." "분명 윤리학을 신학 없이 근거지을 수 있다는, 아니 그래야만 한다는 볼프의 견해를 공유하지만 라이프니츠와 볼프의 결정론에 대한 반항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칸트도 경건주의적으로 교육을 받았다."(100-1)


5 독일의 윤리 혁명: 임마누엘 칸트


"칸트는 모든 인간은 자신의 행복을 희생할 의무를 지는 상황에 도달할 수 있으며, 오로지 그것만이 그에게 존엄을 부여한다고 개념화한다." "자연 내에서의 신의 현전은 회의적으로 유보하면서 신에 대한 관계를 내적인 것, 즉 윤리 법칙에서 근거짓고자 하는 이념─칸트의 정언명법은 라이프니츠의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과 기능적 등가물이다─은 프로테스탄티즘, 특히 경건주의의 철학적 표현이다. 독일 정신사에서 칸트의 특수한 지위를 이루는 것은 그가 계몽과 그것에 본래적으로 적대적 의도를 지닌 경건주의 사이의 균형, 즉 그것의 완전한 표현이 바로 그 자신의 인격적이고 지적인 통합성인 그러한 균형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그는 독일의 종교성을 라이프니츠처럼 모든 학문적 영향뿐만 아니라 사회를 변형시키고자 하는 소원에 대해서도 열어 놓았으며, 역으로 계몽주의적 노력에 대해서도 동시대의 프랑스 철학자들에게서는 오래전에 사라진 윤리적인, 아니 바로 종교적인 추진력을 부여했다."(109-10)


"칸트의 천재적 착상은 그가 인과율에 대해 교조적 형이상학도 흄의 회의적 경험주의도 충족시킬 수 없는 타당성을 확증해주는 동시에 인간적 자유의 가능성도 보존한다는 점에 있다. 칸트에 따르면 인과성과 그와 비슷한 다른 범주들이, 아니 더 나아가 바로 공간과 시간이 우리로부터 유래한다. 우리가 그것들을 현실에 강요하는 것이다." "우리의 이성은 우리가 범주들 없이는 세계를 전혀 경험할 수 없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범주들은 선험적으로 타당하다. 세계의 통일은 더 이상 신이 아니라 자기의식의 통일에 근거한다. 우리는 현상계에서 모든 변화의 원인을 추구해야 하지만 예지적 현실, 즉 우리의 도식화한 범주들에 의해 형식화되지 않은 본래적 현실에 자유로부터의 인과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배제하지 말아야만 한다(자유의 형이상학). 우리는 역설적으로 바로 우리가 현상들에 인과성을 규정함으로써 자유롭다. 왜냐하면 인과성은 우리의 자발적인 정립이기 때문이다."(111-2)


"한 가지 점에서 칸트는 데카르트와 근본적으로 관계를 끊는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우리에게 우리의 의식 흐름은 의심할 바 없이 확실하게 주어져 있다. 그에 반해 칸트에게는 우리 의식의 시간성 자체가 다만 그 자체에서 우리인 것의 주관적 변형일 뿐이다. 시간성은 현상적 자아에 속하지 분명히 무시간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예지적 자아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나는 생각한다'라는 공허한 점에 의하거나 우리의 실천 이성을 통하는 것 외에는 예지적 자아에 이르는 접근 통로를 지니지 않았다. 이 두 가지에서 독일 관념론은 시작될 것이다." "달리 말해 선험적 종합 인식의 실존과 그 근거에 대한 물음이 철학의 하나의, 아니 아마도 바로 그 결정적 문제이며 그에 대한 몰두가 독일 철학을 영국 철학과 구별해주는 본질 징표 가운데 하나였다는 점은 오늘날에도 견지될 수 있다. 물론 칸트는 자신이 선험적으로 종합적인 것으로 간주한 그 판단들 모두의 공통된 징표를 제시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113-5)


"칸트의 경험주의적 인식론은 스스로를 자유롭게 규정하는 실천 이성이 실질적 윤리학이 아니라 오직 형식적 윤리학만을 근거지을 수 있다는 것에로 이어진다." "도덕 준칙[정언명법]이 허락될 수 있는 조건으로서 그것의 보편화 가능성은 칸트가 특정한 행위를 단지 정언적으로만이 아니라 예외 없이 금지하는 결과를 가진다. 거짓말은 그것이 죄 없는 사람을 구하는 유일한 가능성일 때에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엄숙주의는 실질적 선의 위계질서의 결여로부터 그리고 그 밖에 우리가 일단 예외를 허용하면 모든 것에 대해 쉽게 생겨나는 정당화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따라 나온다. 이는 선구자[아우구스티누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령 플라톤의 윤리학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순된다. 의심할 바 없이 그것은 독일 문화를 각인했다. 너 자신의 인격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 속에도 존재하는 인간성을 결코 한갓된 수단으로서만 아니라 목적으로서 사용하라는 요구는 순수한 형식주의를 넘어선다."(128-9)


"더 나아가 칸트는 모든 저항권을 거부한다. 이것은 한편으로 일단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규범에 대한 예외를 정당화할 수 없는 그의 원칙적 무능력의 결과다. 왜냐하면 의심의 여지없이 우리가 무정부를 피하고자 한다면 국가에 복종해야 한다는, 일단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규범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 칸트의 학설은 그의 루터교적 표현인데 그것은 프로이센이 유럽의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것과 연관해 더욱 강화되었다. 물론 칸트의 학설은 양날의 검이다. 혁명을 거부하는 만큼 그는 또한 그 혁명이 성공적일 때에는 반혁명도 배척한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그의 분석은 혁명의 정치적 이념에 대한 공감에 의해 고무되었을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혁명 정부를 존중해야만 한다는 점을 부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참인 것은 존 로크의 그것과 같이 적극적인 동시에 적절한 저항론이 앵글로아메리카 세계와 달리 독일에 대해서는 그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에 의해 제공되지 않았다는 점이다."(135)


6 종교적 과제로서 정신과학: 레싱, 하만, 헤르더, 실러, 초기 낭만주의와 빌헬름 폰 훔볼트


"역사철학의 역사에서 본래적인 발전 단면은 18세기에, 잠바티스타 비코도 여전히 따르고 있던 고대의 순환 모델이 진보 이념에 의해 교체될 때 이루어진다. 비코와 헤르더가 비슷한 관심을 공유하고 양자가 특히 인간 문화의 전前-이성적 단계에 관심을 기울인다 할지라도, 헤르더의 역사철학은 볼테르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진보를 긍정한다." "그러나 볼테르와 달리 그리고 비코와는 전적으로 마찬가지로 헤르더는 개별적인 시기들이 그 자체로서 파악해야 하는 각각의 상이한 논리를 지닌다는 점을 고수한다." "헤르더에게 상대주의를 귀속시키거나 심지어 국가사회주의자들처럼 그를 반보편주의적 내셔널리즘의 선구자로 찬미하는 것은 잘못이다. 헤르더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다만 특정한 발전 단계에서 가능하고 많은 경우 이후의 것들과 양립할 수 없는 가치를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롭게 인정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덕과 악덕은 종종 서로 뒤얽혀 있다."(150-1)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에게 종교란 형이상학으로나 도덕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무한자에 대한 감각과 취미〉다. 따라서 종교는 낡은 교의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에게도 다시 다가갈 수 있다. 슐라이어마허의 감정신학은, 비록 그것이 전적으로 새로운 어떤 것, 아마도 토마스 아퀴나스 이래로 신학의 역사에서 가장 커다란 단절을 나타낸다 할지라도 계몽과 경건주의에 그 뿌리를 지닌다. 이제 전통의 권위 대신 주관적 진지함과 근대적 합리성 표준이 학문적 신학의 근저에 놓여 있다. 그리하여 슐라이어마허는 이후의 신학적 저술에서도 그가 모든 교조적 동기들로부터 분리하는 근대적 해석학에 계속해서 충실히 머문다. 우리는 나중의 교의들을 성서에 넣어 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8세기가 일차적으로 헬레니즘 철학을 연구했던 데 반해 이제는 고전 그리스 철학으로 전환이 이루어지는데, 그 전환은 결국 독일 관념론이 플라톤주의를 가장 독창적으로 다시 체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158-9)


"빌헬름 폰 훔볼트의 언어 유형론은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업에서 본래적으로 철학적인 것, 즉 언어학에 고유한 가치를 보장하고 가령 방언들에 대한 관심을 정당화하는 것은 언어와 사유의 관계에 대한 분석이다. 확실히 훔볼트는 사유에 대한 언어의 영향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어떠한 언어 외적인 입장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훔볼트의 테제를 나중의 언어상대주의자들의 그것과 구별해주는 것은 그가 언어 자체를 정신의─무의식적인─작품으로 해석한다는 점이다. 그는 각각의 모든 언어의 근저에 보편적 언어 능력이 놓여 있으며, 이것이─비록 상이한 언어에서 서로 상응하는 단어의 개념 내용이 언어의 전체론적 본성을 근거로 할 때 결코 동일하지 않다 할지라도─원리적으로 상호적인 이해를 가능케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각각의 모든 언어는 유한하게 많은 요소로부터 그것들의 계속적인 형성을 통해 무한하게 많은 사상을 표현할 수 있다. 특히 문학과 철학이 그 언어를 확대한다."(162)


7 체계에 대한 동경: 독일 관념론


"독일 국민의 형성에서 중심적 형상으로 여겨지는 것은 루터다. 루터 이래로 축복과 진지함에 대한 관심이 독일인의 본질 징표라는 것이다. 피히테는 정당하게도 독일에서는 자율성 추구가 종교적 뿌리를 지니는 까닭에 종교와 철학의 대립이 덜 부각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아본다. 초감성적인 것에 대한 믿음은 결코 포기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것이 이성에 의해 새롭게 정향되었던 것이다. 확실히 피히테가 '세계 지배'를 약속하는 것은 이러한 철학적 정신에 대해서다. 그러나 그는 위험한 방식으로 실재적인 독일 국민과 융합한다. 왜냐하면 피히테는 독일 국민으로 하여금 프랑스인에게 저항할 용의를 갖추게끔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피히테를 21세기의 지식을 가지고 비판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만약 피히테가 자신의 잠재적 해방 전사들에게 그들의 행위로부터 구원의 시대가 새롭게 시작될 거라고 약속한다면 그는 라이프니츠와 칸트가 그 앞에서 멈칫했던 한계를 넘어서 있다."(174-5)


"셸링은 1802년의 《철학 일반에 대한 자연철학의 관계에 대하여》에서 자연의 윤리적 기능화를 물리친다. 셸링에 따르면 자연을 자기 목적으로서 고찰하는 것은 신을 단지 요청으로 간주할 뿐인 칸트와 피히테의 인간중심주의보다 더 종교적이다." "자연 속에 바로 자연과학이 단지 경험적으로만 열거하는 저 근본 형식들이 왜 존재하는지를 이해하고자 하는 그의 절실한 관심은 포기될 수 없다. 이 물음은 대답하기 어렵지만 정당하며, 아니 관념론적 관점과 종교적 관점으로부터는 만약 자연이 단적인 사실이 아니라 이성의 표현이라고 한다면 피할 수 없다. 셸링의 목표는 현실의 근본 구조를 실재적인 것과 이념적인 것의 양극적 대립의 전개로서 해석하는 것인데, 이 대립은 가장 추상적인 수준에서는 자연과 정신의 대립에서 표현되며, 그 이후 각각의 분과 내부에서 더욱더 분화된다. 그리하여 오로지 그렇게 해서만 원리들을 파악할 수 있다. 〈체계 내의 이 위치는 그것들에 대해 존재하는 유일한 설명이다.〉"(181-2)


"1800년의 《초월론적 관념론의 체계》는 정신의 근본 구조를 〈자기의식의 전진하는 역사로서〉 질서 연관 내로 가져오고자 하는데, 거기서 셸링은 〈자연과 이지적인 것과의 평행론〉에 주목한다. 피히테에 대한 특별히 중요한 내용적 보완은 셸링이 이론철학과 실천철학 이후에 또한 예술의 철학도 다룬다는 점이다." "셸링에 따르면, 예술가는 〈그를 다른 모든 인간들로부터 분리하고 그로 하여금 그 자신이 완전하게는 들여다보지 못하고 그 의미가 무한한 사물들을 언표하거나 서술하도록 강요하는〉 하나의 힘 아래 서 있다. 모순들로부터 출발해 예술가는 무한한 조화를 얻기 위해 애쓴다. 예술과 학문은 동일한 과제를 추구하지만, 그것은 물론 후자에 대해서는 끝없는 것으로 머문다. 그에 반해 예술은 학문이 비로소 도달해야 할 그곳에 이미 존재한다. 오로지 예술만이 철학이 서술할 수 없는 것, 요컨대 생산에서의 무의식적인 것을 증거하며, 자연과 역사의 근저에 놓여 있는 통일을 열어 보인다."(182-3)


"헤겔의 《정신현상학》 서문은 장엄하면서도 모호한 언어로 헤겔의 프로그램, 특히 〈참된 것은 전체다〉라는 그의 전체론과 셸링의 동일성 이론으로부터 이반의 시작을 묘사한다. 절대자는 본질적으로 결과라는 것이다. 헤겔은 감성적 확신의 가장 단순한 것으로부터 절대지에까지 이르는 의식 형식의 만화경을 펼치는데, 거기서 성숙한 체계의 범주들로 하자면 주관 정신으로부터 객관 정신을 거쳐 절대 정신으로, 그러므로 철학적 심리학으로부터 사회론을 거쳐 종교철학에로 움직여간다. 세계상의 본질을, 가령 그리스적 윤리와 칸트적 도덕철학의 본질을 몇 번의 필치로 파악해내는 그의 능력은 압도적이다." "저작의 목표는 두 관점의, 즉 주관과 객관의 그러나 또한 나와 우리의 일치다. 왜냐하면 《정신현상학》은 상호 주관성이라는 주제에 《엔치클로페디》보다 많은 공간을 배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히 '지배와 예속' 장은 마르크스로부터 사르트르에 이르는 이후의 발전을 너무도 지속적으로 각인했다."(191-2)


"〈체계 없는 철학함은 학문적인 것일 수 없다.〉 헤겔은 학문의 내적 건축술에 대한 선험적 설명을 갖고자 한다. 그는 종합적-선험적 판단이 아니라 개념의 선험적 체계에 관심을 지닌다. 근본적으로 《엔치클로페디》는 플라톤과 플로티노스의 눈앞에 떠올랐던 이데아의 우주를 조탁해낸 것이다." "개념은 우리가 현실에 덮어씌우는 어떤 것이 아니다. 비록 개념이 경험으로부터의 추상에 의해 획득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실재 자체가 개념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지성과 이성이 세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객관적 사상'이라는 표현이 포함하는 것과 동일한 것을 말한다.〉 객관적(또는 절대적) 관념론은 개념경험주의가 견지될 수 없으며 따라서 근본적 개념은 스스로를 선험적인 구성 과정에 빚지고 있다는 통찰과, 우리의 개념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그 개념 때문에 현실의 맥박에 다가선다는 실재론적 확신과의 결합이다. 그것은 단연코 세계가 신적 사상들의 표현이라는 종교적 신앙과 일치한다."(194-5)


8 그리스도교 교의학에 대한 반란: 쇼펜하우어의 인도 세계 발견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대안적 세계관을 좀더 커다란 권위를 가지고서 발전시킬 수 있었는데, 그 세계관이 불교의 핵심과 일치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 이래로 서구 지식인들은 아시아의 세계관을 지혜의 탁월한 원천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우파니샤드 및 불교와 더불어 쇼펜하우어는 플라톤과 칸트에게서 자신의 철학의 가장 중요한 원천을 보았다. 그의 철학은 분명히 칸트에 대해 반작용하며, 그는 사물-자체에 빛을 비추고자 하는 독일 관념론자들의 소망을 공유한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여전히 강력하게 칸트의 주관주의에 붙잡혀 있으며 또한 그것을 필요로 하기도 하는데, 그에 따르면 주관주의야말로 현상적 세계를 무조건적으로 지배하는 결정론을 최종 심급에서 회피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현실의 최종 근거는 인식 불가능한 사물-자체가 아니라 내관으로부터 확신된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성이나 개념이 아니라 삶에의 의지다."(218-22)


"객관적 관념론적인 근본 사상을 기묘한 방식으로 수용하는 가운데 쇼펜하우어는 물론 현실을 그가 '이념들'이라고 부르는 의지의 객관화의 연속적 단계로서─즉 비유기체적인 것으로부터 유기체를 거쳐 인간적 개별성에까지 이르는 단계로서─해석한다." "예술 향유와 도덕적 행위 그리고 윤리학의 정점인 금욕은 그에 따르면 거기서 의지의 부정이 이루어지는 세 가지 형식이다. 정신이 세계의 원리로서 절대 이념에로 귀환하는 헤겔의 체계와 달리 쇼펜하우어의 체계는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형이상학적 원리에 대한 반란으로 끝나는데, 그 반란은 '의지'라는 표현이 때에  따라서 동음이의어적으로 도덕적 세계 질서와 관계됨으로써 단지 임시방편적으로만 은폐된다. 게다가 쇼펜하우어의 윤리학은 순수하게 기술적이다. 그것은 어떤 힘이 이기주의를 초월하는가 하는 물음을 추적하며, 그것을 동정심에서 발견한다. 그러나 왜 이타주의적 태도가 도덕적인가 하는 것은 근거지어지지 않는다."(223-4)


9 부르주아 세계에 대한 반란: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카를 마르크스


"종교적 이념의 근저에 신적인 계시가 놓여 있지 않다면 그것들은 어디서 유래하는가? 포이어바흐에 따르면 종교는 〈인간 정신의 꿈〉, 〈인류의 어린이 같은 본질〉이다. 종교를 원시적 발전 단계로 추방하는 것은 같은 시기 프랑스의 콩트에게서 발견되며 모든 세속화 이론의 근저에 놓여 있는데, 물론 그러한 이론에 대해서는 종교가 경이로운 저항력을 보였다. 포이어바흐의 이론에서 특수한 것은 헤겔의 의식철학과 그의 사변적 명제 이론에 그 배경이 있다는 점인데, 그에 따르면 주체·주어는 결코 술어들로부터 독립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포이어바흐에게 종교는 인간의 자기 자신에 대한, 좀더 정확하게는 다른 본질로서 자기의 본질에 대한 태도다. 종교에서 인간은 그 자신의 정신의 특성을 대상화하며, 그 특성을 외적인 힘에서 특히 가치로 충만한 것으로서 경험한다. 〈무한자의 의식은 의식의 무한성에 관한 의식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따라서 종교사는 인간 정신의 진화에 대한 중심적인 지표일 것이다."(234-5)


"부정으로서가 아니라 발견으로서 이해되는 그의 비판의 날카로움에도 불구하고 포이어바흐를 그리스도교의 적대자로 표현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우리는 이 칭호를 니체를 위해 남겨놓아야 한다. 왜냐하면 포이어바흐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기 때문이다. 〈신은 사랑이다. 이 명제는 그리스도교의 최고의 것이다.〉 결정적인 것은 사랑을 신앙이 아니라 이성과 결합해 그것을 자기 자신을 통해 근거짓는 것이다. 사랑은 그리스도의 삶의 척도다. 그러나 그 역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 때문에 인간을 사랑하는 자는 ······ 그리스도 자신인 그리스도교도다.〉 물론 포이어바흐는 위선이 곧이어 그에 뒤따르는 반자연성을 위한 완곡어법으로서 초자연성을 논박한다. 그는 삶 자체에서 종교적 의미를 찾아내고자 한다. 그러나 후자는 비그리스도교적이지 않다. 비그리스도교적인 것은 다만 그가 윤리학을 〈인간은 인간에게 신이다〉라는 명제로 환원하고자 하는 소박성뿐이다."(238)


"역사의 공산주의적 최종 상태에 대한 예측은 경쟁 없는 경제가 정체한다는 경험과 모순된다. 그 예측은 빈곤의 극복을 세계사적으로 처음 전망케 해준 산업혁명에 의해 생산력이 해방된 것에 대한 매혹에 토대한다. 그러나 이것이 왜 사적 소유의 철폐와 함께 가야 하는지는 결코 근거지어지지 않는다. 자유를 오로지 공동체 속에서만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은 물론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이 공동체가 강제되지 않을 뿐이다." "과학성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요구는 그 이론이 자본주의의 붕괴에 관한 자기의 예언에 관해 침묵하기 위해 단지 (환경 파괴와 같은) 현실적 과정조차 거의 설명할 수 없었던 만큼 더욱더 우스꽝스럽다. 마르크스가 계급 없는 사회를 위한 규범적 권력분립론을 다듬어내길 거부한 것은 그 사회에서도 모든 지배가 남겨질 것이기 때문에 엄청난 권력 남용을 위한 처방전이었다. 우리는 거기서 특유한 변증법이 지배한다는 것을 가지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254-5)


10 보편주의 도덕에 대한 반란: 프리드리히 니체


"좋은 철학은 본질적으로 표현의 풍부함 그 이상이다. 그러나 예술과 마찬가지로 철학도 역시 표현적인 과제를 가진다. 그리고 니체 반열에 올라선 철학적 표현 무용가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다. 인간 영혼과 문화의 심원함에 대한 민감화 및 정신의 위협과 니체가 자기 자신에게서 풍부하게 관찰할 수 있었던 도덕적 최고 성취의 의문스러움에 대한 지식은 긍정적인 의식사적 변화에 속한다." "그러나 그의 호언장담하는 무자비함, 스스로 강해지고자 했던 그의 강함은 주로 자기 자신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강함에 대한 그의 찬가는 오히려 그와 반대였던 사람들을 고무시켰다. 그가 성취한 것은 이념적 세계 속에 쓰여 있는 사실들, 즉 미학적 민감성과 심리학적 명민함 그리고 문헌학적-역사학적 지식이 논리적 지성과 일관된 형이상학에 대한 감수성을 동반하지 않을 때 그것은 유용하기보다는 해롭다는 사실, 위대한 덕과 몇 가지 약점의 결합은 종종 모든 악덕이 뒤섞인 것보다 더 위험하다는 사실이다."(258-60)


"니체, 즉 객관적 도덕에 대한 믿음을 지니지 않는 이 모럴리스트의 역설은 그가 지속적으로 그 장르와 처음에는 그 자신에게 활기를 불어넣는 저 도덕적 민감성을 해친다는 데 존립한다." "얼마나 많은 허영심(〈인간적 '사물 자체'〉)이, 얼마나 많은 탁월함에 대한 소원과 열등함에 대한 두려움이 이른바 덕들의 근저에 놓여 있는지, 얼마나 많은 숨어 있는 비천함이 모든 일상 대화의 근저에 놓여 있는지 그 어느 누구도 이 도덕적 엄숙주의자만큼 깊이 감지하지 못했기에 가장 엄격한 고해 문답보다 그를 읽을 것이 더 요구된다. 왜냐하면 평등주의자, 다시 말하면 보편주의에 대한 니체의 투쟁이 숙명적인 만큼이나 그의 근대의 형식주의가 가치들과 덕들에서 전통의 풍부함을 종종 보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기 니체마저도 보통의 무신론자와 실증주의자보다 더 뛰어나게 만드는 것은 다른 어떤 것과도 달리 종교가 교육하는 도덕적 차별성에 대한 그의 진지함이다."(265-6)


"형이상학에 대한 모든 공격에도 불구하고 니체는 형이상학적인 시대와 더불어 또한 지속적인, 즉 스스로 살아남는 제도들을 창조하는 추동력도 사라졌다는 것을 단연코 인정한다. 자신의 시대는 그 본질이 불안정함, 아니 야만인 것의 비교와 가속화의 시대로서 표현된다. 삶은 오로지 자신의 동기와 관련한 그러나 또한 인정된 모범들의 그것과 관련한 자기기만에 의해서만 유지된다." "종교는 결코 단지 위선만이 아니라 긴장되고 성공적인 자기기만에 의거한다. 니체가 그 이상주의적 삶의 형식에 대해 많은 재치 있는 것을 말하고 있는 자유로운 정신은 이 세계를 흥분 없이 고찰하며 그에 의해 마음의 안정에 도달한다─충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인식에 대한 칭찬은 의지가 지성의 후견자라는 테제와 마찬가지로 쇼펜하우어의 유산이다. 쇼펜하우어로부터 니체는 물론 현실이 그 본질에 따라 정신에 적대적이라면 자유로운 정신이 현실을 인식한다는 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상속한다."(267)


"근대 문화의 표면 밑에서 제어된 악의와 과거의 트라우마적 사건들의 마그마가 끓어오르는 것을 어느 누구도 니체처럼 그렇게 뚜렷하게 듣지 못했다. 그것은 전적으로 존중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단순한 관찰자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는 늦어도 《즐거운 학문》에서는 스스로 불을 내뿜기 시작하며, 그러함으로써 스스로 다가오는 것을 감지하고 있는 숙명을 가속화한다. 언젠가 니체는 인간적 자기기만과 그리스도교의 퇴락에 대한 단순한 기술에 지겨워졌음에 틀림없다. 그는 새로운 가치표들을 세워놓기 시작했다. 그것들을 위한 논증은 그 자신의 인식 이론에 따르면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문학적인 작품을 저술해야만 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는 인간적이고 비인간적인 가능한 모든 인물─이들 가운데 몇몇은 비유다─과의 상호 작용 속에서 새로운 윤리학을 고지하는 자를 서술한다. 문제되는 것은 이것이 니체의 너무도 키치적인 책이라는 것이다."(277-8)


11 도전으로서 정밀과학과 분석철학의 부상: 프레게, 빈학파와 베를린 학파, 비트겐슈타인


"오늘날에는 이미 오래전에 극복한 분석철학의 최초의 형태는 논리실증주의 또는 논리경험주의였다. (첫 번째 것은 현상주의에 대한 공감을 지녔고, 두 번째 것은 좀더 실재론적으로 맞추어져 있었다.)" "논리실증주의의 목표는 물리학에서 그 모범을 지니는 통일과학이다. 형이상학의 진술은 가령 거짓인 것이 아니라 무의미하다. 거기서 다루는 것은 의미 없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구문론에 반해서 형성된 사이비 명제이다. 하나의 단어가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이 단어를 지닌 명제를 검증하기 위한 방법이 알려져 있어야만 하며, 아니 결국 그와 같은 종류의 명제는 프로토콜 명제로 환원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형이상하적 신 개념의 타당성을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까닭에 '신'이라는 개념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형이상학의 판단들은 분석적이지도 경험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형이상학은 음악이나 서정시와 마찬가지로 삶의 감정의 표현이다─형이상학자는 〈음악적 능력이 없는 음악가〉라는 것이다."(291, 300)


"비트겐슈타인의 명제 이론에서 결정적인 것은 어떠한 명제도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철학은 사상들을 다만 분명하게 밝힐 뿐이다." "참된 명제들의 총체는 (심리학을 포함해) 자연과학의 총체다. 윤리학의 명제들은 존재할 수 없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 논고》의 명제들의 무의미한 본성을 인정한다. 세계를 올바로 보기 위해 우리는 그것들을 사다리처럼 타고 올라간 다음 내던져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트겐슈타인은 단순히 현실에 대한 가치 중립적인 고찰, 즉 형식 논리적으로 구조화되어 있지만 거기서 더 이상 결코 칸트의 경험의 유추를 전제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가치 중립적인 고찰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비록 신이 더 이상 세계 속에 현현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세계의 실존이라는 단적인 사실 속에는 무언가 신비적인 것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에 관해 이론화하는 것은 전망 없는 일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우리는 침묵해야만 한다.〉"(306)


"결정적인 것은 플라톤적이고 데카르트적인 의미 이론과의 단절을 나타내는 언어놀이 개념이다. 언어는 본질적으로 사회적 사건, 즉 삶의 형식의 부분이다. 요컨대 요소적인 대상들에 대한 자율적 관련 대신 '길들임'이 행해지는 것이다. 처음부터 언어 획득은 일정한 활동과 얽혀 있으며, 역사적으로 생성된 모든 언어는 서로 다른 추상성을 지니는 수준을 포함한다." "비트겐슈타인에게 결정적인 것은 언어 획득에 대해 정신적 연관에 대한 마음의 지배, 즉 그 경우 언어적으로 표현되는 '생각함'이 선행한다는 이념의 거부이다." "그의 언어놀이 개념의 상대주의적 귀결은 곧바로 사회과학으로부터 학문 이론에 이르는 많은 분과에서 끌어내졌다. 그러나 가장 급진적인 것은 비트겐슈타인이 제안하는 새로운 철학 개념이다. 철학의 성과는 〈지성이 언어의 한계에 달려가 부딪쳐서 감염된 종기들〉이며, 자기의 목표는 〈파리에게 파리통에서 빠져나오는 출구를 보여주는〉 거라는 것이다."(309-10)


12 신칸트주의와 딜타이에서 정신과학과 사회과학의 근거짓기 시도 및 후설에서 의식의 해명


"신칸트주의 이전에 이미 빌헬름 딜타이가 '역사 이성 비판', 다시 말하면 정신과학의 정초를, 그것도 실험실 안의 연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삶의 철학적으로 획득한 이해심리학에서 시도했다. 이와 관련한 그의 최초의 주저 《정신과학 입문》(1883)은 (그에게서는 또한 사회과학도 포함하는) 정신과학을 한편으로는 자연과학으로부터, 다른 한편으로는 형이상학으로부터 경계 긋고자 한다. 그러므로 이는 독일 관념론과 실증주의적 자연주의에 대항한 이중전선 전투를 이끌어나가며, 따라서 오늘날 대학뿐만 아니라 출판사와 신문 문예란도 장식하는 저 특수하게 정신과학적인 의식, 즉 엄밀한 철학적 논증에 대한 혐오와 수학적 무능력 및 정밀한 자연과학에 대한 적은 이해를 보이는 엄청난 역사학적 박식함의 형성에 기여했다. 이 저작은 고전 이후 철학의 아주 많은 다른 저작과 마찬가지로 미완성 작품으로 남았는데, 그 까닭은 아마도 건축술의 발생적 원리가 결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319)


# 신칸트주의, 특히 바덴학파(빈델반트와 리케르트가 속한)의 주요 주제는 칸트가 비워둔 주제, 즉 자연과학과의 경계를 설정한 정신과학과 사회과학의 철학적 근거짓기이다.


"후설은 칸트와 함께 그리고 헤겔에 반대해 모든 범주적인 것은 감성적 직관 안에 기초해 있다고 가르치는 데 반해, 헤겔과 함께 그리고 칸트에 반대해 범주가 대상을 변조한다는 이론을 비판한다. 왜냐하면 비-범주적 작용에 대한 어떠한 호소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리적으로 자각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후설을 칸트 및 헤겔로부터 떼어놓는 것은 그에게는 범주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어떠한 시도도 낯설다는 점이다. 범주는 그 원천을 직관에서 지닌다. 그 점은 최종적 타당성 기준으로서 명증성에 대한 호소와 마찬가지로 불만족스럽다. 범주적 직관이나 가치 직관의 경우처럼 서로 모순되는 명증성을 끌어대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결실 풍부한 대화가 성립할 수 있는지 거의 파악할 수 없다. 또한 명증성을 착각하는 현상은 증명에서의 오류 문제보다 더 커다란 문제인데, 왜냐하면 저 착각된 명증성을 현실적인 명증성과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는 어떠한 절차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330)


"후설의 마지막 성찰은 초월론적 유아론을 모나드론적 상호 주관성으로 대체하고자 한다." "후설은 의식적으로 라이프니츠로 돌아갔지만, 모나드 각각이 결코 그들 자신의 세계를 갖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개별적 모나드의 지평은 가령 그것이 서로 다른 문화적 환경이나 '생활 세계'에서 작용하는 까닭에 교호적으로 서로에게 열리지 않는 일은 단지 우연적으로만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후설은 더 나아가 주관성과 상호 주관성의 관계를 두고 씨름한다.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 것은 비록 세계 내부적으로 개별적인 주관성이 상호 주관적으로 공유된 생활 세계의 부분이라 할지라도 그것의 고립이 없다면 근본적인 철학이 가능하지 않을 초월론적 에포케(Epoché, 판단중지)일 것이다. 초월론적 자아는 오직 그에 대해서만 너와 우리가 존재하는 세계 내부적 자아와 다른 자아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미 초월론적 자아는 자기 내에서 초월론적 상호 주관성을 구성해야 한다."(333-6)


13 독일의 재앙에 철학의 공동 책임은 존재하는가? 하이데거, 겔렌, 슈미트: 결의성과 강력한 제도 그리고 정치의 본질로서 적의 제거


"《존재와 시간》은 어떠한 구체적인 윤리적 내용도 제시하지 못한다. 그런 것 자체는 비난이 아니다. 한 철학자가 모든 것에 대해 의견을 표명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 저작의 음흉한 점은 그것이 양심이나 죄같은 개념을 고쳐 정의함으로써 전통적인 도덕적 의미를 전복시키고,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이든 결의성이 유일한 관건이라는 점을 아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끔 제시한다는 데 있다. 우리는 셸러와 함께 칸트를 형식주의라고 비난할 수 있겠지만, 《윤리형이상학》은 확실히 하이데거의 반-윤리학만큼이나 형식주의적이지 않다. 비록 《존재와 시간》이 단지 존재론의 역사의 파괴에 착수할 뿐이라 할지라도, 이는 그에 못지않게 윤리학의 파괴를 제공한다. 물론 하이데거의 언어가 프랑스 모럴리스트들에게서 훈련받은 니체의 모범적인 산문보다 훨씬 덜 명확한 까닭에 그리고 또한 '존재' 같은 전통의 표어를 사용하고 근대에 반하는 자신의 격정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까닭에 그는 니체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355)


"1949년 처음으로 행한 강연 〈기술에 대한 물음〉에서 하이데거는 정당하게도 기술이 무언가 중립적인 것이라는 테제를 비판한다. 기술은 단순한 수단이 아니다. 오히려 기술에서는 세계 관계의 방식이 현현한다." "하이데거는 모든 것이 그것에게는 부품이고 따라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인 근대 기술을 〈몰아-세움〉이라고 명명한다. 근대 자연과학은 그 은밀한 목적으로서 근대 기술에서 이미 착수되었다. 그리고─우리가 기껏해야 그 본질을 통찰함으로써 만날 수 있는─이러한 기술의 위험은 어느 경우에도 단지 〈어쩌면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기계와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적 본질의 변화에 존립한다. 그의 퇴락의 역사철학과 연관해 하이데거는 또한 국가사회주의적인 권력 의지에 대해서도 한 자리를 인정했다." "이것은 하나의 업적이지만, 하이데거는 그로 하여금 〈존재론적 본질 진술〉을 넘어서서 도덕적으로 중요한 구별을 확정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범주를 갖지 못했다."(365-6)


"이 장에서 다루는 세 사람의 국가사회주의 지식인 가운데 카를 슈미트는 의심할 여지없이 도덕적으로 가장 거부감을 주는 인물이다. 이러한 판단을 가지고서 나는 단지 그가 자신의 수치스러운 논문 〈지도자는 법을 떠받친다〉에서 1934년의 이른바 룀-반란과 관련해 살인을 정당화한 것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 이후 후회에 대한 그의 무감각, 자신의 운명에 대한 감상(그는 뉘른베르크에서 잠재적 피고였지만 당시 로버트 캠프너는 기소를 포기했다),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에 대한 완전한 무관심, 아니 그의 독창적인 정치 이념이 그 윤리적 핵심과 극단적으로 모순되는 자신의 가톨릭주의에 대한 노골적인 자랑을 격분을 일으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법학자가 지난 세기의 가장 중요한 정치사상가 중 한 명이었다는 판단을 회피하지 못한다." "슈미트는 다수가 신칸트주의의 영향을 받았던 바이마르 시대 일군의 법학자와 법철학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다."(374-5)


"슈미트는 특히 주권 개념에 매혹당해 있다. 예외 상태에 관해 결단하는 자는 주권을 가질 것이다." "거의 신학적인 존엄이, 그에 귀속되는 근거지어지지 않고 근거지을 수 없는 결단이 법의 최종적 근거다. 이는 명백히 하이데거의 결의성을 지시한다." "슈미트 논고의 문제는 그가 적에 대한 설명에 특유한 도덕적 숭고함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설명은 평준화하는 중립화의 자유주의적 시대로부터 벗어난다. 특히 견디기 어려운 것은 정치적인 것을 전통같이 공익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와 외부를 향한 경계 설정에 의해 정의하는 것이다. 슈미트는 권력 투쟁을 실질 문제의 해결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기 목적으로 간주하는 정치가를 정당화하였다." "국가의 절대적 주권과 예외 상태, 독재와 전쟁에 대한 그의 매혹은 단지 독일이 전체주의로 비틀거리며 치달아가는 것에 날개를 달아준 것만이 아니다. 9·11 이후 슈미트의 이념은 고전적 자유주의의 모국인 미국에서도 〈영감을 불어넣으며〉 작용해왔다."(378-80)


14 서유럽의 규범성에 대한 연방공화국의 적응: 가다머와 두 개의 프랑크푸르트학파 그리고 한스 요나스


"예술 작품의 존재론에 대한 섬세한 분석과 정신과학의 역사에 대한 포괄적인 재구성은 《진리와 방법》에 고전적 지위를 보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딜타이 이래로 촉구된 역사학적 이성에 대한 비판이라는 과제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점은 인정해야만 한다." "그의 본래 관심은 해석학이 딜타이와 함께 완전히 뒤얽힌 역사학주의의 난문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역사학주의의 역사적 발생을 모사함으로써 가다머는 이 역사학주의 자체를 상대화하고자 한다. 하지만 발생과 타당성은 이 운동의 경우에도 항상 구별되어야 한다. 가다머의 지속적인 성취는 단지 해석해야 할 것에 관해 배우고자 할 뿐인 역사학주의적 관점에 대해, 이해란 오직 우리가 해석해야 할 것으로부터 배울 때에만, 즉 우리가 그 속에 원리적으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으며 해석해야 할 것에서 아마도 대답이 준비되어 있는 사태 물음을 제기하는 것에서 출발할 때에만 이해가 가능하다는 테제를 가지고 도전했다는 것이다."(384-5)


"이러한 관점 변화의 긍정적 결과 중 하나는 가다머에 따르면 가령 철학사학이 단순히 고전들에 관해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논증으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바람을 지니고 그것들을 읽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가다머가 동시에 독일 정신과학에 19세기 이래로 세계적 타당성을 마련해준 역사학적 이해의 의도주의적 표준을 포기했다는 점이다. 하나의 사상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살피는 것은 전적으로 정당하며 철학적으로 종종 그 결실이 풍부하다─그러나 우리는 어떤 지점에서 저자의 의도(mens auctoris)를 넘어서는지에 관해 해명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우리에겐 방법이 필요하다. 그러나 가다머의 책 제목에서 '와(und)'는 '대신에(statt)'를 의미한다. 진리는 방법 없이 생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난 몇십 년간의 정신과학에 대한 해체주의적 파괴 전체는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해할 때 다르게 이해한다〉는 가다머에 의해 고무되어왔다."(385-6)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1936)에서 영화나 사진 같은 새로운 대중 매체에 대해 많은 희망을 걸고 파시즘에서의 정치의 미학화에 대해 미학의 정치화로써 대답하고자 했던 벤야민과 달리 아도르노는 새로운 발전에 대해 희의적이며 예술의 정치적 도구화를 거부한다. 그의 《부정 변증법》(1966)은 그것이 제기하는 물음에 조금도 부응하지 못한다. 이 저작이 헤겔과 직접적으로 대립하는 비-동일적인 것이라는 구호의 이름으로 현실의 개념적 범주화와 더 나아가 현실과의 화해에 대한 어떤 가능성도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의 보편적 은폐 연관(하이데거의 존재 망각에 대한 기능적 등가물)에 대한 지시는 자신의 모순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도와준다. 아도르노 자신도 불가피하게 개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그의 책을 가치 있는 동시에 더 위험한 것으로 만든다. 자신의 사유 경력 초기에 이러한 철학적 표현 무용에 사로잡힌 사람은 언제고 다시 문제를 명확하게 분석하는 걸 배우기 어려울 것이다."(392-3)


"이웃 간의 갈등이나 가정 내 갈등을 당사자 자신에게 맡기는 것은 확실히 올바르다. 그러나 도덕적 갈등을 오로지 우리가 서로 이야기를 나눔으로써만 해결할 수 있다는 견해는 망상적이다. 가령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원리나 예를 들면 분배 문제의 성과 원리 같은 실질적 원리 없이 어떻게 합의를 달성할 수 있는지 통찰할 수 없는 것이다." "담론 윤리학에는 칸트의 정언명법에 근접하는 어떠한 등가물도 없다. 따라서 담론 윤리학은 자기의 본래적 관심사에 반해 자신의 도덕적 결정을 실제적 기준에서가 아니라 아마도 다수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에 관한 가정에서 얻어냈고, 바로 합의가 최종적인 진리 기준인 까닭에 그러한 것을 더 이상 기회주의로 전혀 느끼지 않는 유형의 사람들을 장려한다." "의식사적으로 담론 윤리학은 기껏해야 객관적 가치 질서의 사상을 자신의 자유 열정에 대한 모욕으로서 이해하는 동시에 국가사회주의의 경험 이후 윤리적 허무주의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는 시대에 적합할 뿐이다."(395-6)


15 왜 계속해서 독일 철학이 존재하리라고 생각할 수 없는가?


"이제 독일 정신의 본질적 특징─이성주의적 종교철학에서부터 출발하여 독일 관념론을 거쳐 보편적 상대주의에 이르는─가운데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아마도 독일적인 근본성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며, 그 잔여물에서는 심지어 철학적 체계학에 대한 독일적 감각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독일을 그토록 뚜렷하게 가령 미국과 구별해주었던 철학적 형식의 종교성은 사라져버렸는데, 그 까닭은 아마도 저주받은 12년에 대한 슬픔과 부끄러움이 과거의 정신적 보물을 자기 것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을 위축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파악은 다만 해석학적 유보를 하면서만, 가령 고전적 사상가들의 기념일에 즈음해서만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가 연방공화국의 극장에서 견뎌내야만 하는 독일 극작가들의 천박화는 자신의 과거에 직면한 이러한 당혹스러움의 표현이다. 우리는 그러한 곤경에 맞설 능력이 없지만, 최소한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에 대한 충성의 맹세를 통해 그것을 능가하는 존재가 되고자 한다."(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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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철학 개론 - 칸트에서 하버마스까지
앤드류 보위 지음, 김지호 옮김 / 도서출판100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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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독일 철학자들은 근대 사회의 자연 과학 중심성에 다양한 방식으로 반응한다. 철학 자체를 잘 자리 잡은 과학 이론들과 같은 수준으로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는 과학의 한 종류로 만들려는 시도에서부터, 비트겐슈타인이 1930년대에 말했듯이 〈과학적 지식과 관련하여 좋거나 바람직한 것은 없다〉는 주장, 그리고 만일 그렇다면 〈그것을 좇는 인류는 함정에 빠진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생각의 차이는 이 영역이 얼마나 문제가 될 수 있는지를 나타낸다. 그렇다면 같은 문화적 환경에서 어떻게 이렇게 상충하는 생각이 나타난 것일까? 이런 물음에 결정적인 답 같은 것을 제시한다면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사물의 새로운 질서[과학적 세계상]를 받아들여야 할 필요와 새로운 질서가 꼭 필요한 문화적 자원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느낌 사이에서 우리가 관찰한 긴장은 분명 이러한 상반된 견해의 공존과 관련된다. 이러한 대립은 '낭만주의'와 '실증주의' 사이의 대립으로 특징지어지기도 한다."(20-1)


"독일 전통이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이론적 차원에서도, 실제 역사적 사건의 차원에서도 이러한 문제의 결과에 대해 극단적인 예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인간의 자기 결정이라는 계몽주의적 발상과 주로 인종에 따라 미리 결정된 자아라는 나치적 발상 사이의 차이는 어떤 이론이 옳은지에 관한 견해차로만 끝나지 않는다." "19세기 후반 이후 과학이 점점 더 산업화되고 부를 창출하는 큰 원천이 되었고, 이에 따라 과학에 투입되는 자원이 증가함에 따라 철학은 점점 위축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실증주의'의 발전은 철학이 새로운 명확한 역할을 맡을 수 있게 했다. 이 역할은 과학으로는 오히려 가려질 수 있는 것, 따라서 예술 작품을 통해서라든지 다른 식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것에 관한 '낭만적' 관심과의 연관성을 바탕으로 한다. 과학의 성공은 과학의 이름으로 철학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또는 과학과 관련하여 잠재적으로 비판적인 역할을 하는 방향으로, 철학의 역할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22-3)


1 칸트의 혁명


"칸트는 신뢰성에 관한 이전의 가정들[선재적이고 신적인 토대]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론을 신뢰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칸트는 우리의 생각을 우주 이해의 원리로 삼았다. 인간의 마음을 모든 것의 중심에 둔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이 특정한 정신 규칙들을 사용하는 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음을 칸트가 입증했다고 볼 수 있다. 이 특정한 정신 규칙들은 인간이 이미 갖추고 있는 것이지, 세계를 관찰함으로써 도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칸트가 사유 활동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제안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유 활동은 사유의 빛이 없을 때 암흑이었던 우주를 비추는 '빛'이 된다. 영어권 세계에서는 칸트를 일반적으로 지식 이론가나 윤리 이론가로 읽어 왔지만, 칸트가 궁극적으로 이루어 내고자 한 것은 우리가 알고 행하는 것에 더 이상 신학적 근거를 상정할 수 없을 때 세계 속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 지도를 그리는 것이었다."(33-5)


"경험은 시간 안에서 일어나고, 경험을 판단하려면 우연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을 필연적 관계로 연결시켜야 한다. 지각은 틀림없이 각기 다르고, 인식 주체는 지각을 '직관'으로 수용하므로 능동적으로 생산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각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것은 그 자체가 동일하게 유지되는 것이어야 한다." "지성understanding은 경험자료만 판단할 수 있으며, 바로 이러한 접근 대상의 한계가 지성의 특징이다. 하지만 사유에는 세계 안의 구체적인 사물을 지배하는 법칙에 대한 판단 이상의 것이 포함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지성이 그러한 판단에 국한되는 것으로 기술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여기에는 사유가 지성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있다. 경험적 판단을 넘어서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유의 추가적인 능력을 칸트는 〈이성〉이라고 부른다. 지성이 경험 자료들 사이의 통일성을 창조하는 반면, 이성은 지성의 규칙들 사이의 통일성을 창조한다."(44-5, 53-4)


# 칸트에서 '직관'은 세계에 대한 구체적인 지각 경험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피히테와 같이 칸트 바로 다음에 나오는 사상가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초월적 주체'에 관한 주장들이 어떻게 입증될 수 있느냐다. 지식이 이러한 주체의 통일성에 기초하여 나온다면, 주체는 어떻게 자신에 관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는가? 인간은 언제나 공간과 시간과 범주라는 조건하에서 지식에 이르게 되고, 이러한 조건들은 바로 주체에게 의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체는 분열된다. 한편으로 주체는 세계 안에 있는 경험의 대상, 즉 자기 몸이다. 다른 한편으로 주체의 몸이 따르는 법칙은 다른 무언가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그 자체로 가능한 법칙이다. 왜냐하면 주체는 세계 안에 있지 않고 그 이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판단의 자발적 원천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나 프로이트 같은 몇몇 사상가는 자기 인식의 문제가 주체의 이성적 측면의 비이성적 기반을 드러낸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기반은 철학적 설명으로는 접근할 수 없고 예술이나 정신분석 같은 다른 수단으로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47-8)


"칸트의 도덕성의 기초에는 경험적 내용이 없고, 완전히 추상적인 명령이 있다. 〈나는 나의 준칙이 보편적인 법칙이 되기를 의욕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면 행동해서는 안 된다〉." "정언 명령의 선험적 지위는 우리가 경험 세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나 그러한 앎으로부터 타인에 관하여 도출한 정보를 도덕성의 기초로 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데서 시작된다. 정언 명령은 이런 불가능성 대신, 우리가 자신에게 부여하는 자율적 지위를 타인에게도 부여한다는 데 기초한다. 물론 우리가 이러한 자율성을 갖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칸트도 인정한다. 그러나 자율적이기를 추구한다는 관념은 이성적 존재로서 서로 공유하는 목표를 가질 가능성을 제공한다. 어떻게 우리가 타인에게 그런 지위를 부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문제에 칸트는 답하지 않는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그의 뒤를 잇는 피히테와 헤겔이 매우 중요한데, 그들이 탈신학적 도덕에 요구되는 상호 인정의 기원을 설명하려 했기 때문이다."(61-3)


"칸트의 도덕 철학 논증은 현상적인 자연 세계와 예지적인 인간 자유의 세계 간 분리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그럼으로써 칸트는 우리 지식의 수용적 원천과 자발적 원천 사이의 엄격한 구분을 위태롭게 한다. 칸트가 직면한 문제는 칸트 이후 많은 철학에서 다시 나타날 것이다. 자유의 영역과 완전히 결정론적인 자연을 분리해 버리면, 어떻게 우리가 법칙에 매인 자연에 대한 객관적 관점을 얻을 수 있으면서 동시에 자기 입법을 할 수 있는지를 이해할 길이 없다. 게다가 자발성이 자연과 전적으로 다른 영역에 존재한다면, 지식과 행동의 기초가 되는 자발성이 어떻게 자연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 예를 들어, 1790년대에 셸링은 정신과 자연 사이의 그럴싸하지 않은 분리를 피하려면, 자연 자체를 본래부터 주관적이고 자발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적으로 객관적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어떻게 자기 결정적인 주관성을 낳을 수 있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66-7)


"《판단력 비판》은 자연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지식의 측면이 아니라 쾌감의 측면에서 고찰한다. 자연의 몇몇 양상들에 대한 우리의 쾌감은 어떤 면에서 주관적이지만 지식이나 도덕을 판단할 때와 같은 방식으로 판단을 수반한다. 이는 부분과 전체의 관계, 특수와 일반의 관계를 다루는 것이다." "제3비판서의 핵심 측면은 바로 반성적 판단이다. 반성적 판단에서 우리는 칸트식 의미로 지식의 지위를 갖지 않는, 사물들의 체계적 정합성에 대한 가정을 통해 개별에서 일반으로 이동한다. 반성적 판단이 인지 법칙을 확립하는 과제에서 해방되면 더 이상 지시받지 않고 자유롭게 부분을 전체에 결합할 수 있다. 이는 칸트가 처음에 다양한 현상에 대한 인지적 종합에 덧붙여 있다고 생각한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동일한 쾌감은 또한 우리로 하여금 예술 작품의 부분들이 서로 연관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즐길 수 있게 해 준다. 칸트는 자연의 체계적 구성에 대한 관념을 심미적 향유 능력과 연결한다."(67-8)


2 언어의 발견: 하만과 헤르더


"우리는 낭만주의 철학에서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 사이의 대립을 만날 수 있다. 전자는 창조와 파괴의 힘이고, 후자는 형식과 질서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문제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특징지으려면 아폴론적인 것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다. 창조와 파괴의 힘에 대한 개념적 설명은 언어에 의존해야 하며, 언어는 형식적인 규칙과 구조에 의존하여 의미를 만든다. 따라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관해 무언가를 말하려는 시도에는 본유적 모순이 내재한다. 즉,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언어 안에 고정시키면 그 본질적인 성격을 놓치게 된다. 따라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불러일으키려면 '직관'에 호소해야 한다. 이는 비개념적 사유 방식으로만 접근할 수 있다. 이는 니체가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개념적 용어로는 완전히 설명될 수 없는 음악과 연결시키는 이유가 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직관(칸트의 직관 개념과는 다르다)과 개념적 사고의 긴장에 관한 문제는 근대 독일 철학사에서 시종일관 매우 중요하다."(82)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의 은유를 언어와 연결시키면 하만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합리론적 사고는 세계에 내재된 이성적 질서라는 '아폴론적' 관념에 의존하며, 참된 언어란 이러한 질서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만은 우리가 애초에 이성이라는 개념에 어떻게 도달하는지를 고찰함으로써 이러한 사고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이를 언어 습득과 분리할 수 없다고 본다. 언어는 본질적으로 창조적이며, 우리가 종종 예술과 연관시키는 실존의 새로운 측면을 드러내는 능력과 분리될 수 없다. 따라서 사물의 질서를 언어에 고정시키려는 시도는 세계가 우리에게 드러나는 방식을 언어가 끊임없이 재구성할 수 있는 언어의 '디오니소스적' 측면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이 관점은 언어에 철저하게 역사적인 차원을 도입한다." "하만의 인식론적인 주장은 우리가 세계와 일차적으로 접촉하는 일이 관념이 아니라 '느낌'/'감각'의 측면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계몽주의적 사고에 반대한 핵심 내용이다."(84-5)


"하만이 칸트에게 던진 주된 질문은 범주의 지위에 관한 것이다. 〈말들은 순수하면서도 경험적인 직관일 뿐만 아니라 순수하면서도 경험적인 개념이다. 경험적인 까닭은 시각이나 청각이 말에 영향받기 때문이며, 순수하다는 것은 말의 의미가 그러한 감각에 속한 어떤 것에 의해서도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언어는 감각적으로 나타나면서도 논리적 구조에 의존하기 때문에 칸트가 지식의 원천을 수용성과 자발성으로 나눈 것을 '해체'한다." "하만에 따르면, 우리는 경험 세계에서 반복되는 소음과 표시를 받아들임으로써만 수용적 사고의 수단을 얻을 수 있다. 그러한 소음과 표시가 의미를 담게 하는 것은 사고의 자발성이다. 따라서 두 원천은 분리될 수 없는데, 둘이 기능상 서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세계에 의존하는 것과 정신에 의존하는 것 사이의 철학적 이분법을 극복하려는 하만의 시도는 독일 관념론과 초기 낭만주의에서 매우 중요해진다. 하만의 (비의적인esoteric) 글쓰기 방식도 논증의 일부다."(89-90)


"헤르더는 《최근 독일 문학에 관한 단편들》(1766-1768)에서 〈우리가 생각 없이는 사고할 수 없고 말을 통해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게 사실이라면, 언어는 인간의 지식 전체에 한계와 윤곽을 부여한다〉라는 말로, 신기원을 이룬 그의 첫 가설을 명확히 한다. 칸트는 인간 지식의 한계가 지식 생성에 필수적인 정신의 형식들로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칸트가 주요 사상을 공식화하기도 전에 헤르더는 이러한 한계가 언어의 측면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소통할 수 있는 지식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으로 이미 제시했다. 물론 이제는 이러한 아이디어가 현대 철학의 상당 부분을 지배하고 있다. 헤르더에게 〈생각한다는 것은 말한다는 것과 거의 다름 없다.〉 그는 언어의 문화적 발전을 강조하며, 이를 한 문화의 문학과 연결한다. 그는 〈문학은 언어 속에서 성장했고, 언어는 문학 속에서 성장했다〉라는 말로, 언어를 단순히 기존 관념들의 표상으로 간주하는 계몽주의 관점과 확실하게 거리를 두었다."(93)


3 독일 관념론: 피히테에서 초기 셸링까지


"피히테는 이론 이성과 실천 이성의 공통 원천이 주체의 자발성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핵심 사상은 칸트의 주장을 발생적 측면에서 탐구한 결과다." "생명 없는 객관적인 물질은 유기체가 되지 않고 '마음 없는' 상태로 남아 있었을 수도 있다. 왜 그렇게 남아 있지 않은가를 설명할 만한 것이 물리학, 화학, 생물학의 법칙에는 없는 것 같다. 일단 자연에 유기체가 있고 난 다음에야 이러한 법칙들로 사물이 발달하는 방식이 설명될 수 있다. 물론 순전히 물질이었던 존재에서 유기적 존재가 되어 스스로에게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조건이 자연 자체에 담겨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저 법칙들은 이렇게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자연에 대해 알게 된 존재자들 자체가 자연의 일부다. 여기서 선택은 '주관적' 측면을 제거하려 하거나, 아니면 근대 과학에 관한 정당한 설명과 잘 들어맞을 수 있는 주관성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는 것인데, 이것이 독일 관념론의 목표 중 하나다."(110-1)


"피히테는 순전히 객관적인 측면만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절대적 나'가 세계의 궁극적 토대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을 어떤 유사-신학적 의미에서 '정신'이 물질세계를 창조한다고 봤다는 식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다음과 같이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즉, 객관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는 세계가 조금이라고 객관적인(대상적인) 것으로 나타나기 위해 세계에 앞선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Gegen-stand'(대상)라는 독일어를 이루는 두 부분이 내비치듯이, 무언가가 대상이 되려면 그것이 아닌 것, 즉 주체인 '나'와 '맞서'stands against 있어야만 한다. 문제는 나의 개인적인 주관적 사유가 이 본질적인 '주관적' 원리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개인이 자리한 특수하고 주관적인 위치와 '주관성'(주체성)이라는 일반 원리 사이의 관계에 관한 상당한 어려움이 여기서 발생한다. 이후 슐라이어마허와 키에르케고어는 개인을 그러한 일반 원리로 환원하는 것을 반대한다."(111-2)


"피히테는 주관적 원리에 절대적인 토대의 우선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객관적 세계의 독립성을 바랄 수 있고, 그는 그런 식의 독립성을 마법으로 사라지게 하지 않으면서도 객관적 세계의 저항을 설명해 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 피히테가 모든 것이 주체에게 종속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는 사물의 저항과 자연법칙의 객관성을 인지하지만, 또한 주관성의 원리가 없다면 이러한 저항은 전혀 저항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므로 사물을 알려고 노력할 이유도 없다고 주장하고 싶어 한다. 매우 영향력 있는 그의 발상은 주체가 자기 자신에 대해 분열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절대적 '나'는 '나'(의식)와 비아(객관적 세계)로 나뉘는데, 이것들은 서로 상대적이다. 그 결과 '나'는 '자신에 관하여 하는 행동'으로 이해되는데, 이는 우리의 사유와 행동을 반성하는 능력을 통해 이해될 수 있다. 절대적 '나'가 '무한'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자기-제한은 제한을 극복하기 위한 끊임없는 요구를 만들어 낸다."(123)


"그렇다면 나의 주관성과 다른 주체들의 주관성 사이의 관계는 무엇일까?" "피히테는 《지식론 원리에 따른 자연법의 토대》(1796-1797)에서 나 아닌 주체가 나라는 주체에게 할 수 있는 자유로운 행동 '요구' 내지 '요청'의 측면에서 이 문제를 검토한다." "'요구'는 '나'로 하여금 행동할 방식을 스스로 결정하게 만든다. '나'는 요구의 원천인 '대상', 즉 다른 주체도 〈이성과 자유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이해를 바탕으로 그렇게 한다. 이 과정은 상호적이어야 한다. 각 주체는 자기 자유에 대한 인식의 조건으로서 다른 주체를 의존한다. 여기에 관련되는 구조, 즉 반성 구조는 독일 관념론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 구조 안에서 다른 무언가에 의해 자신에게 자신이 비추어지는 반성(반영)을 통해서만 자신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요구를 통해 나의 자유를 이해하며, 이를 통해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를 모두 깨닫게 된다. 반성은 무언가가 자기 자신과, 자기와 관련된 타자로 나누어짐을 통해 일어난다."(125-6)


"셸링이 피히테에게서 본 문제는 그의 친구이자 시인이며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횔덜린에 의해 처음으로 식별되었다. 횔덜린의 생각은 같은 시기의 초기 낭만주의 철학의 여러 측면에서, 특히 노발리스의 피히테 비판에서 다시 반복된다. 무언가가 인식 가능한 의미의 '나'가 되려면 타자에 대한 의식이 있어야 하고, 따라서 그 타자와의 관계 안에 있어야 한다. 어떤 것과의 관계 안에 있다는 것은 바로 절대적이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이러한 관계의 전체적 구조는 이 관계에 있는 것 중 어느 한쪽을 바탕으로 한 관점에서만 특징지을 수 없다. 횔덜린은 결과적으로 주체와 대상의 관계 구조를 〈주체와 대상을 부분으로 하는 전체〉에 근거하여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는 이를 '존재'라 불렀다." "이러한 발상은, 주체의 사고 구조를 통해 세계가 파악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하여 그 위에 철학을 세우려는 독일 관념론의 시도 전체를 약화시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무언가를 함의하고 있다."(132-3)


"피히테식 접근은 자연을 주체의 대상으로만 환원할 위험이 있다. 셸링은 자연을 바로 '우리를 위해'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피히테를 공격하며, 이것이 단지 추상적인 철학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원시생태학적 방식으로 분명히 한 예언자적 모습을 보였다. 그는 《초월적 관념론 체계》에서, '절대적 나'가 '자기의식의 역사' 속에서 자신을 소급적으로 알게 된다는 측면으로 자연에서 사유 주체가 생겨난 것을 설명하려 한다. 자신을 인식하는 지점에 도달하면 사유는 이러한 자기 인식 이전의 무의식의 역사를 추적할 수 있다. 이러한 모델은 '나'를 기술하는 피히테의 발생론적 방식에 역사적 요소를 도입한 것으로, 헤겔의 1807년작 《정신 현상학》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체계》는 역사를 이야기하는데, 초월적 주체가 그 역사의 결과다." "그래서 셸링은 무의식의 역할을 파악하려면 개념적이고 규칙에 얽매인 측면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 즉 예술로 철학을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135-6)


4 독일 관념론: 헤겔


"헤겔의 《정신 현상학》은 역사에서 정신이 나타난 것에 관한 설명이다. 칸트의 용어로 정신은 사물이 주체에게 나타나기 위한 조건이므로 그 자체로는 나타날 수 없는 것이다. 헤겔은 이 모델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는 칸트가 범주표로 제시한 것과 같은 사고 형식들에 관한 추상적인 설명이 실제로는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생기게 하는 것임을 보임으로써 이 모델을 극복하고자 한다. 칸트는 사고 형식이 그 형식의 대상과─즉, 형식을 통해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와─분리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이런 식으로 둘 사이의 간극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가정은 우리가 현상을 인식하는 형식과 항상 분리되어 있는 '사물 자체'의 문제를 야기한다. 헤겔의 주장은 사고의 형식들이 자극에 대한 반응이라는 가장 원시적인 형식에서부터 정교한 과학 연구 및 철학에서 사용하는 발전된 개념이 이르기까지, 주체와 세계의 상호 작용을 통해 역사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고와 사고의 내용을 분리해서 생각할 이유가 없다."(143-4)


"그렇다면 헤겔은 어떻게 토대에 의존하는 또 하나의 체계 제시를 피해 가는가? 그 답은 헤겔이 '변증법'이라는 말로 의미하는 바에 있다. 헤겔의 '변증법'은 흔히 정립, 반정립, 종합이라는 삼일체의 측면에서 특징지어진다. 그러나 이는 그가 제시하는 방식이 아니다. 변증법의 핵심은 헤겔이 〈부정의 부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감각 자료는 우연적이며 또 다른 감각 자료와 결코 동일하지 않고 모두 제각기 다르므로 우리에게 어떤 진리도 제공할 수 없다. 따라서 감각 자료는 '부정적'이며, 감각 자료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개념이 요구된다. '이것', '여기', '지금'과 같은 문맥 의존적 개념도 그 자체로는 부정적이다. 이련 개념들이 보편자가 아닌 것, 즉 세계 안의 개별적인 것에 적용될 때만 진리를 산출할 수 있다. 게다가 이런 개념의 내용은 그것의 부정적 상태에 의존하여 규정된다. '이것'은 '저것'이 아니고, '여기'는 '저기'가 아니고, '지금'은 '그때'가 아니며 등등. 이런 것들은 더 넓은 맥락 안에서만 진리로 기능한다."(148-50)


"우리는, 사실로 여겨지는 것은 그 사실성이 다른 사실에 의존하기 때문에 부정에 열려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구체적인 주장은 모두 그것을 검증하기 위해 다른 주장에 의존하고, 모든 주장은 결국 새로운 주장과 관련되므로 수정에 열려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식을 자의적인 것으로 만들지는 않는데, 왜냐하면 부정된 것은 그 자체가 지식으로 생각되었던 구체적인 것이며, 새로운 설명을 통해 더 잘 이해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새로운 설명으로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가리키기 위해 헤겔은 '규정적 부정determinate nega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를 헤겔은 〈아우프헤붕〉Aufhebung(지양)이라 불렀다. '아우프헤붕'에는 '부정하다', '보존하다', '고양하다'라는 딱 보기에 모순되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어떤 사실에 대한 초기 지식은 새로운 설명으로 부정되는 동시에, 새로운 설명을 가능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보존되고, 새로운 설명이 이전 설명보다 우수하므로 고양되는 것이다."(150-1)


"헤겔의 《논리학》은 존재 관념에 대한 검토로 시작한다. 어떻게 우리는 다른 개념과 연관시키지 않은 채, 즉 매개함 없이, 어떤 관념을 이해할 수 있을까? 매개함이 없다면, 그 개념은 완전히 텅 비어 있고 규정되지 않아서 우리가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수 없지 않은가?" "헤겔의 논증은 어떤 개념이든 규정되기 위해서는 모두 다른 개념과의 관계에 의존한다는 것이며, 존재 개념조차도 예컨대 무 개념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 둘 사이의 모순은 생성 개념으로 이어진다. 무언가가 처음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이후 다른 어떤 것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즉 자기 자신을 '부정'하기 때문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생성 개념이다." "어떤 개념이 한계를 지니고 있음이 드러나면, 그것의 본질을 바꿔서 한계를 보완할 다른 개념이 등장하고, 사고 구조의 한계에서 나올 수 있는 또 다른 사고 구조가 없을 때까지 이 과정이 계속된다. 철학에서 모순이 소진되는 지점은 헤겔이 말한 《절대 관념》이다."(159-60)


5 관념론 비판1: 초기 낭만주의에서 포이어바흐까지


"슐레겔은 〈당신이 요구하는 대로 전 세계가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완전히 파악될 수 있게 된다면 당신은 괴로울 것이다〉라고 말한다." "예술 작품이 우리 존재의 본성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바로 우리가 예술 작품의 의미를 다 알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정말로 예술 작품을 모든 면에서 다 파악한다면, 더 이상 예술 작품에 관계할 이유가 없다. 위대한 예술은 우리가 그 작품의 위대함을 전부 알기 때문에 위대한 게 아니라, 우리가 그 작품을 계속 다시 찾게 하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다. 따라서 예술에는 '종결'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낭만주의자들은 현대의 실용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의 몇몇 발상과 가깝다. 낭만주의자들의 사유 방식에서 또 주목할 만한 측면은 그들이 직설적인 담론이 아닌 글 쓰기 형식을 취했다는 점이다. 가장 잘 알려진 그들의 몇몇 작품은 짧은 단편과 아포리즘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불완전한 감각을 표출한다."(175-6)


"(계몽주의적 구상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던) 초기 낭만주의자들은 예술이 개념적으로는 접근 불가한 것을 표현하는 방법을 제공할 수 있는 더 포괄적인 이성 개념을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헤겔의 접근 방식은 '범汎논리주의'로 불리는 것, 곧 존재 자체가 본유적으로 이성적이라는 가정 때문에 위험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낭만주의자들이 이성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예술을 사용하는 것은 중요한데, 왜냐하면 전적으로 이성을 초월하거나 이성 바깥에 있는 것에 대한 신비주의적 접근에 의존하거나 무책임하고 아이러니하게 사회와 단절하는 것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성의 한계를 고려하는 또 다른─관련된─방식은 쇼펜하우어, 니체, 하이데거 등에게 나타나는 측면인데, 이는 훨씬 더 큰 문제들을 불러온다. 이는 철학적 합리성에 한계가 있음을 제안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다른 어떤 비이성적인 방식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또 다른 세계 이해 방식이 있다는 주장으로 가는 단계다."(181-2)


"쇼펜하우어의 초기 가정은 칸트적이다. 즉, 우리는 세계가 우리에게 '표상'으로 나타난 형태로 세계를 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모든 것에 이유/원인/근거가 있다〉라는 충족이유율의 측면에서 합리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칸트와의 차이점은 쇼펜하우어의 경우 우리가 세계 자체에 '직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과학에 있는 종류의 지식 형태는 아니지만 말이다. 우리가 세계에 접근하는 방식은 '의지'다. 의지는 고통, 배고픔, 성욕처럼 최종적 통제가 우리의 의식적 의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험에 접근할 수 있다. 우리가 실제로 이러한 경험들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식에 주목해 보라. 배고픔이라는 개념이 없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배고픔의 본질, 즉 극복이 요구되는 고통스러운 결핍을 직접적으로 느낄 것이다. 우리의 존재에서 배고픔과 같은 측면들은 우리 몸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에 대한 형이상학적 근거가 비현상적으로 현시된 것이다. 따라서 '의지'가 우선적인 실재다."(188)


"쇼펜하우어는 왜 세계가 움직이지 않는, 분화되지 않은 하나의 사물이 아닌지에 대한 문제를 풀려고 했다. 존재가 본유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맞서 분열되어 있다면, 왜 계속 변하고 있는지가 이해하기 쉬워진다. 의지가 바로 존재의 한 상태를 다른 상태로 바꾸려는 동기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동기가 더 높은 상태의 실현을 향한다고 제안하려는 모든 시도가 망상이라고 생각한다. 즉, 개인의 의지가 공동의 목표에 종속되는 더 높은 상태, 관념론자들이 꿈꾸듯이 개인의 욕망과 공동체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진 더 높은 상태가 망상이라는 것이다. 헤겔에게 욕망에 관한 진리는 자아와 타자 사이의 상호 인정을 통해 직접성이 극복되어 정신이 더 높은 형태로 발전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 이 과정에서 욕망은 폐지되는 게 아니라 더 전체를 아우르는 형태의 상호 작용으로 통합된다. 쇼펜하우어는 이런 생각에 반대한다. 그가 볼때 욕망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욕망을 구원하지 못한다."(189)


"우리가 헤겔에게서 보았던 진리의 위계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 개념으로 이어진다. 즉 헤겔의 구상은 국가를 '주어'로, 개인과 가족을 주어의 '술어'로 보는 측면에서 정형화된다. 청년 헤겔주의가 관념론을 비판하는 기본 발상은 관념론으로 인해 주어와 술어가 뒤바뀌었기 때문에 올바른 관계로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존재론적인 것에서부터 정치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문제 전체와 관련하여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의 한 가지 형태는 국가가 진정한 실재이며 그 주체들이 진정한 실재의 술어들이라기보다, 실제 살아 있는 개별 주체 없이는 국가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동시에, 관념론에서 인식된 반전을 바로잡고자 하는 이러한 사상가 중 마르크스와 같은 몇몇 사상가는 개인이 주로 사회적 관계에 의해 구성된다는 헤겔 사상의 측면들도 취한다. 이 점에서 헤겔에 대한 반대는 왜곡된 사회적 맥락이 어떻게 개인을 왜곡시키는지를 헤겔이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다."(195-6)


6 관념론 비판2: 마르크스


"마르크스와 니체는 19세기의 기존 철학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과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 방식이 점점 더 조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확신을 공유했다. 이를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서로 근본적 차이가 있지만, 학계 철학에 관한 그들의 신념에서 비롯된 공통된 결과도 있다. 학계 철학은 철학에 대해 급진적으로 비판하더라도 기존의 제도적 틀 안에서 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철학이 현실 세계에 아무런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것이 중요하게 떠오르는 새로운 문제라면, 빈틈없는 형이상학적 논증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상정하는 종류의 철학 활동은 세계에 무엇을 이루어 내느냐가 결정적이라는 생각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낭만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완전한 철학 체계에 도달한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사람들이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들거나 사람들이 더 합리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가? 오히려 애초부터 사태가 정해진 세계에서 사는 삶이 얼마나 허무한지 사람들이 직시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209)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가 우리가 기본적으로 고향에 있지 않다는 느낌인 '낭만주의적인' 소외감을 거부한다는 점이다." "마르크스가 일찍이 청년 헤겔주의 입장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소외 개념을 재평가했기 때문이다. 그는 포이어바흐의 입장이 추상적인 방식으로 철학과 종교에 너무 관여하고 있다고 보게 되었다. 마치 주어와 술어의 뒤바뀜에 관한 널리 퍼진 철학적 통찰이 그가 유럽 자본주의에서 본 불의를 실제로 바꿀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마르크스는 소외를, 즉 인간의 권력이 인간으로부터 분리되어 다른 무언가로 전이되는 것을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는 감각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포이어바흐의 관심을, 인간의 자연적 능력이 사회에서 전용되는 방식 때문에 인간에게서 소외된다는 생각으로 확장한다. 루소는 사회적 형태에 따른 인간 본성의 왜곡이라는 주제를 계몽주의에 도입했는데, 어떤 면에서 마르크스는 루소가 확립에 이바지한 전통에 속해 있다."(213-4)


"마르크스는 사람들이 자기 세계에 관해 어떻게 생각할지, 무엇을 할지 결정할 때, 생산과 교환이라는 사회적 형태가 이른바 순수 과학적 또는 철학적 탐구의 결과물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점점 하게 된다. 이는 철학에 대한 청년 헤겔주의적 비판이 철학의 독자적인 존재를 더 이상 지지할 수 없다는 보다 철저한 주장으로 확장된다는 의미다." "동시에 마르크스는 당대의 지배적 사유 형태에 내포된 기만들과 특정한 형태의 사회적·경제적 교환의 관계를 분석함으로써, 그러한 기만들을 드러낼 수 있다는 생각을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생각은 이론이 환상 뒤편에 있는 궁극적 실재를 드러낸다는 식의 더 실재론적인 접근 방식을 상정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이는 결국 그리스 시대부터 철학자들이 시도해 온 일이다." "이 시대와 이후 시대에 많은 사람이 과학은 단순히 실재의 본성을 추측하는 데 그치지 않고 테스트 가능한 실재상을 제공하기 때문에 결국 철학을 대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221-2)


7 관념론 비판3: 니체


"19세기 후반에는 이성적 사유가 세계의 진정한 본성을 은폐할 수 있다는 생각이 여러 다양한 형태로 되풀이된다." "그 중 하나는 사유가 우리의 의식적 의지와 독립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유를 선택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그냥 우리에게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다. 초기 셸링은 물질적 자연의 생산성과 정신의 생산성 사이의 유사성이라는 측면에서 사유에 대한 이러한 관점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종류의 사유로도 자연적 생산성 자체에 접근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데, 왜냐하면 자연적 생산성은 광기를 포함하여 모든 양상의 '생각'을 발생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사유가, 이성의 통제가 그칠 때에만 진정한 형태로 드러나는 것을 근본적으로 억압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다. 예컨대, 황홀경이나 광기의 상태에서 사물이 진정한 형태로 드러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태는 개념적 사유로 인해 억압된 사물의 본질을 접하게 해 주는 것으로 추정된다."(231-2)


"칸트의 '정언 명령'은 모든 이성적 존재의 도덕적 평등을 그러한 근거로 상정한다. 물론 문제는 이 근거가 실제로 어디까지 보편적이라 할 수 있냐는 것이다. 《도덕의 계보》에서 니체는 도덕의 기원을 살펴보는 유일한 방법은 도덕 언어의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도덕의 기원에 관한 니체의 중요한 논증은 무엇인가? 니체는 도덕 개념이 초기에는 자기주장의 한 형태라고 결정짓는다. 도덕 개념은 이를테면 권력자가 자신이 가치있게 여기는 것을, 곧 자기 자신을 도덕적으로 우월한 것으로 칭하는 형태다. 그는 도덕 개념을 이렇게 〈이름을 수여할 수 있는 주인의 권리〉이자 〈지배자의 힘을 표현한 것〉이라고 언어 자체와 연결하여 말한다." "따라서 반성 없는 자기주장이 가치의 원천이자 그 자체로 궁극의 가치 같은 것이며, 이러한 가치는 이를 위해 타인을 억압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이러한 입장이 지금까지 살펴본 독일 근대 윤리 사상의 전통적 측면과 어긋난다는 것은 분명하다."(255-7)


"니체는 근대의 도덕적 삶이 〈도덕에서 노예 반란〉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 반란은 약자가 강자에게 분노한 데서 비롯되었고, 따라서 가치를 창시한 귀족들이 '능동적'으로 가치를 명명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저 '반응적'일 뿐이다. 이 주장은 유대-그리스도교 세계관이 그리스-로마 세계관에게 승리했다는 해석이다. 강자는 자기 상태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게끔 약자에게 설득당한다. 니체의 수사는 '포식동물 인간' 길들이기인 문화라는 관념에 그가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나타낸다. 그가 반대하는 까닭은 문화가 인간의 본질적 상태를 억압하기 때문이다. 그는 현대 문화가 이러한 억압으로 오염되어 사람들이 삶에 진저리치게 한다고 주장한다. 문명을 억압으로 보는 발상은 이 시기부터 독일의 문화 비평에서 흔해졌다. 이 발상에 열광하기 전에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많은 젊은이가 (종종 니체를 읽고 나서) 전쟁이 숨 막히는 문화에서 벗어날 방법이라 생각하며 기꺼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는 사실이다."(258)


"니체에게는 (1) 힘으로서의 해석에 관한 형이상학적 주장을 강력히 옹호하는 것(그는 철학 전통을 떠나고자 했지만, 이러한 주장을 펼침으로써 떠나려 했던 전통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2) 그가 '관점주의'라고 부르는 것의 결과를 보여 주는 것 사이에서 분열이 있다. 관점주의는 객관성을 이해하기 위한 중심 위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버린 데서 비롯한다." "《즐거운 학문》을 읽다 보면 쟁점에 관한 관점이 끊임없이 변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 결과 새로운 생산적인 통찰을 얻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심지어 받아들일 수 없는 지배적 관점이 등장하거나, 관점들이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도 말이다. 이렇게 수행적으로 철학 하는 방식은 철학적 발견은 물론 일상생활에 중요한 실용적 통찰에도 원천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수행적 방식은 또한, 힘의 부과가 아닌 다른 것에서 타당성이 나올 가능성을 무시하고 수행할 때 수행적 방식이 반대하는 것만큼이나 독단적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264-5)


# 수행적遂行的, performative : 청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행위 형태로 생각되는 언어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 '설득의 기술'인 수사학은 언어의 수행적 성격과 관련된다.


8 언어적 전환


"슐리크가 환상이 이닌 실제적 물음에는 오로지 과학적인 해결책만 있다고 가정하고 동시에 언어에 집중한 점은 일반적으로 '분석 철학'의 특징이다." "소위 '언어적 전환'은 앵글로·색슨 세계 분석 철학의 특징이다. 하지만 언어적 전환에는 언어를 철학의 중심으로 삼았다는 생각으로는 포착될 수 없는 매우 특수한 특징이 있다. 18세기 독일 전통에서 주요 사상가들은 이미 언어를 핵심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철학 전통은 지금까지 살펴본 이야기와 어떻게 관련되는가? 예컨대 《비극의 탄생》과 슐리크의 주장 사이에서 과학에 대한 견해 차이는 가장 큰 대조를 이룬다. 18세기에 언어 중심적 철학은 하만과 헤르더에게서 보았던 것처럼, 계몽주의가 감각적 인간 존재 및 역사와 언어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분석 철학은 경험적 증거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형이상학적 사변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과학적 확실성을 추구하는 계몽주의의 한 측면을 이어가고 있다."(271-2)


"이 문제─분석 전통이 언어를 철학의 중심으로 가져왔다는─가 복잡해지는 지점은 언어가 무엇인지에 따라 많은 것이 좌우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하만, 헤르더, 슐라이어마허, 훔볼트는 언어를 주로 세계 안의 사물을 표상하는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 대신 언어를 세계와 우리 안에서 사물이 드러나거나 나타나게 만드는 사회적 행동의 형태로 보았다. 하지만 과학 용례에서는 용어들을 과학 법칙이 예측하는 사물을 애매함 없이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여기서는 언어의 주된 기능이 이미 거기 있는 것을 '재-현전시킨다'는 의미에서 표상적 기능으로 보일 것이다. 분석 전통은 특정 영역에서 언어의 표상적 차원이 결정적이라는 확신이 커지면서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수학을 기반으로 한 자연 과학이 신뢰할 만한 과학 법칙을 생산하는 데 성공한 것을 고려해 볼 때, 분석 철학의 선구자들에게 철학의 과제란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언어에 대한 설명를 통해서 기술하는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274)


"빈학단의 철학은 종종 '논리 실증주의'로 불리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 명칭이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보고 '논리 경험주의'라는 말을 더 선호한다. 일부 좌파들은 여전히 실증주의를 경멸적인 용어로 여기는데, 이 용어는 너무 자주 매우 모호한 방식으로 사용된다. 이 용어는 1830년대에 프랑스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에 의해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콩트에게 과학은 '신학적' 단계, '형이상학적' 단계, '실증적' 단계라는 세 단계를 거친다. 마지막 단계는 형이상학적 사변을 거부하고 감각 증거에 기반한 지식을 고수하는 데서 비롯된다. 콩트의 개념은 빈학단의 개념과 차이가 있지만, 빈학단 구성원들도 경험 자료를 지식의 주요 원천으로 삼아 과학에서 형이상학을 배제한다는 콩트의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 실증주의에 대한 반감은 처음부터 실증주의가 철학의 영역에서 배제하고자 한 것과 많은 관련이 있다. 이러한 배제에 반대하는 것은 가톨릭교회와 여러 마르크스주의자가 실증주의를 반대하는 것과 연결된다."(289)


"마흐는 19세기 말부터 여러 과학 지향적 철학의 특징이 되는 급진적 움직임에 착수한다. 그는 자신이 실재로 여기는 것을 논리적 추론을 통해 과학적 지식을 구성하는 데 사용되는, 감각 자료에 있는 '기본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제한한다. 감각을 유발할 수 있는 주체나 실재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마흐는 이러한 구성을 사유하는 주체의 일로 보지 않는다. 예측은 논리 법칙을 따라 조직된 반복적 자료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고, 이는 이론이 현실을 '반영'한다거나 현실에 '대응'한다는 주장을 하지 않고도 과학 이론을 형성하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주체와 대상이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보일 필요가 없다." "이와 동시에 우리가 지금 우리 자신에 관해 느끼는 많은 것을 철학적 고찰에서 배제한다. 마흐식으로 보면 '자아'는 '기본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나타날 수 없기 때문에 허구가 된다." "이는 선험적인 것과 경험적인 것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는 칸트의 선험적 종합 지식 사상이 거부되었음을 의미한다."(290)


"현재 분석 전통에서 무의미를 바라보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다. 두 방식 모두 형이상학이 전적으로 논리적이거나 전적으로 경험적이지 않은 진리 주장을 포함하므로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무의미를 바라보는 첫 번째 방식에서, 형이상학에 대한 이러한 판단은 암묵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경멸적일 수 있다. 빈학단이 대체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는 비트겐슈타인이 생각했던 것처럼,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물음은 〈말할 수 없는〉 것으로 이어지므로 과학적 또는 철학적 해답을 명확하게 얻을 수 없다는 암시도 될 수 있다. 그러나 형이상학이 무의미하다는 주장 자체도 논리적 진리가 경험적 진리가 아니다. 그러한 주장은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조건이 허용하지 않는 주장이다." "그래서 초기 낭만주의는 예술에 집중하는 쪽으로 갔다. 예술 작품이 빠짐없이 완전히 해석될 수 없는 방식을 통해, 철학이 말할 수 없는 것이 나타나는 장소로서의 예술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296-8)


9 현상학


"현상학에서 출발점은 세계 자체가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현상학은 분명 '궁극적 실재'의 문제를 여전히 포함할 것이며, 일부 비평가들은 현상학이 현상론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상학은 사물, 소음, 냄새 등의 세계에 대한, 즉 직접적 의미의 세계에 대한 부인할 수 없는 일상적 경험에서 출발한다. 후설을 비롯한 사람들은 우리가 사물을 이미지로만 경험한다는 잘못된 생각이 이러한 일상적 경험을 가린다고 생각한다. 사물을 이미지로만 경험한다는 것은 경험이 '사물 자체'에 대한 경험이 아니라, 우리와 사물 사이의 매개에 대한 경험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후설은 우리가 나무를 볼 때, 나무 이미지나, 우리가 나무를 구성해 내는 재료인 한 다발의 감각 자료를 보는 게 아니라, 나무 자체를 본다고 주장한다." "후설은 주관성에 대한 강한 관심을 과학적 객관성이 중요하다는 주장과 결합한다. 이렇게 그는 근대 철학의 낭만주의적 측면과 실증주의적 측면을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한다."(319-20)


"후설이 '본래적 주어짐'이라는 측면에서 본 '거기 있는 것'에 대한 직관은 내 앞에 있는 특정한 사물에 대한 경험의 형태를 띨 수도 있지만, '본질 직관'의 형태를 띨 수도 있다." "경험론자는 사실에 관한 모든 지식은 직접적인 경험 자료로 정당화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후설도 이에 동의한다. 새로운 과학이 그저 이미 알려진 것에서 도출되는 게 아니라면, 직접 경험한 것이자 '본래적으로 주어졌다고' 여겨지는 증거에서 출발하지 않고서,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 그러나 그는 이 원리 자체가 경험의 측면에서 확립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원리 자체를 지식의 유일한 근거로 확정할 수 있는 경험 자료라는 게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상학이 극복하고자 것이 바로 이러한 경험론의 실패다. 이 실패를 극복할 원리는 그 자체로 절대적 지위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원리는 과학이 직면한 우연성에 종속될 것이다. 즉, 과학에 토대를 제공하려 하지만 과학이 직면한 우연성에 종속될 것이다."(324-5)


"후설은 〈과학적 사고 활동을 포함하여 모든 실제 생활을 그 안에 담고 있는 전前과학적이고 초과학적인 생활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는 세계가 담고 있는 것에 관하여 서로 의견이 다르더라도,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세계이자 물리칠 수 없는 세계를 바라보는 데서 철학이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의 더 발전된 버전이다." "후설이 제안하는 것은 초월적 철학의 또 다른 버전이다. 생활 세계는 과학의 가능성에 대한 '주관적' 조건이기 때문이다. 사회 안의 역사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회들 간의 본질적인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생활 세계 구조는 모든 인간에게 본질적으로 동일한가? 다른 문화와 과거의 문화 유물을 이해하는 우리의 능력을 고려하면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우리의 이해가 실제로는 타자에게 우리의 관점을 부과한 것에 불과할 위험이 항상 있다. 하지만 근간이 되는 배경적 합의가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다른 언어를 배우고 문화적 차이를 가로질러 소통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 어렵다."(338-40)


10 하이데거: 존재와 해석학


"하이데거에게 '존재론'의 과제는 존재Sein와, 개별적인 존재적 과학의 탐구 대상을 구성하는 '존재자'Seiendes를 구별하는 것이다." "하이데거가 근대 철학의 전형으로 간주하는 데카르트에게서, 존재는 〈지속적 현전〉으로 이해된다. 데카르트의 세계는 탐구되기 전에 이미 그렇게 있는 대상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는 사유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이 대상들을 '재-현전시키는(표상하는)' 것이다. 세계의 새로운 측면을 열어밝히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그래서 데카르트의 존재론 개념은 근대 과학이 세계를 수학화하기 위한 기초이다. 이는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 무시간적이고 법칙 지배적으로 기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기서 존재 물음의 '망각'이라는 개념이 더 발전된 의미를 갖는다. 하이데거는 자연 과학의 물질적 대상들을 그 기반으로 상정하는 존재론은, 이것이 '현전'으로서의 존재에 대한 역사적으로 특수한 이해지, 존재 물음에 대한 궁극적인 답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356, 359-60)


"하이데거는 데카르트식으로 세계를 보는 방식, 즉 진리가 무시간적으로 현전하는 세계로 보는 방식을 거부한다. 그 대신 진리는 우리가 세계에 존재함으로써 시간 속에서 출현한다. 어떤 진리가 거기 있든 간에 그것은 우리가 서로, 그리고 세계와 상호 작용함으로써 출현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측면─진리가 이해에 의존한다면, 진리가 있음을 이해하는 존재자가 있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이지만, 문제는 하이데거가 주장하는 방식으로 진리를 시간의 측면에서 적절하게 특징지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현존재는 진리의 가능성의 조건으로서 초월적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하이데거의 입장이 작동하려면, 그러한 가능성의 조건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은 그 자체가 분석 가능성의 조건이기 때문에 더 분석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하이데거는 진리가 모든 분석에 전제되어야 하므로 분석될 수 없는 개념이라고 생각한 도널드 데이비슨 같은 의미 이론가들에게 가깝다고 볼 수 있다."(367-8, 371)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현존재가 진리의 궁극적 기반이라는 생각에서 이미 벗어나기 시작했던 측면들에 집중한다. 그는 존재 자체가 시간에 의해 이미 열어밝혀져 있지 않았다면 현존재가 진리에 접근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의 관점의 변화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항상 개별 존재보다 앞서 있으며 세계의 의미와 연결되어 있는 언어의 의미에 현존재가 의존한다는 사실의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누구도 언어나 의미를 '발명했다'고 말할 수 없으며, 후기 하이데거는 언어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존재로부터 온 일종의 '선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그가 언어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토록 반대하게 된 이유다. 과학의 가능성 자체가 존재의 선행적 계시인 언어에 의존하며, 과학적 주장은 세계에서 진리가 '일어나는'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진리는 또한 과학이 결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있는 '문학'이나 '시', 즉 '디히퉁'Dichtung의 형태로도 일어난다."(372-3)


"하이데거의 후기 저술은 평가하기도 어렵다. 나치즘과 관련하여 자신의 역할에 책임이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때 쓴 것이기 때문이다. 윤리적 결정에 직면한 개인적 상황의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는 기획인 현존재에서 벗어나서, 존재의 진리로 이행하는 것은 편리하게도 세계사적인 변화를 개별 주체를 아주 넘어서는 것으로 만들어 준다고 하버마스는 말한다. 따라서 하이데거는 그 정당성에 대해 공적으로 논할 수 없는 더 높은 진리라는 이름으로, 잘못된 편에 있었던 것을 암묵적으로 변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지만, 그 자체로 결정적 주장은 아니다." "그의 개인적 실패는 차치하더라도, 하이데거 사상의 문제 중 하나는 그의 사상에서 윤리학이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일어나는 일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다. 사태를 그렇게 만든 것은 현존재의 의도가 아니며, 다만 존재가 그런 식으로 '일어난다'면, 그는 누구를, 아니면 무엇을 비판해야 하는가?"(377-80)


11 비판 이론


"프랑크푸르트학파는 급격한 기술 발전이 양차 대전의 어마어마한 파괴와 끔찍한 인명 손실을 불러왔다고 본다(물론 어떤 분야에서는 삶을 훨씬 더 좋게 만들기도 한다). 기술 혁신의 능력은 도덕적, 사회적 진보와는 점점 더 분리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한 가지 반응은 칸트와 실러의 사상에서 비롯된 도덕 교육 개선을 바라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의 근원이, 신학이 더 이상 명확한 지침을 제시하지 못하는 세계에 사는 개인의 윤리적 실패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바로 기술의 응용 자체도 야만성이 늘어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대체로 기술 수단의 사용자들은 기술로 인해 발생한 결과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끔찍한 사건들의 뿌리를 근대 과학의 응용과 사회 조직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서도 찾아보아야 한다. 이러한 탐색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새로운 방식에 대한 요구로 이어진다. 이러한 검토의 주된 모델은 마르크스, 베버, 프로이트였다."(386-7)


"루카치는 전통적인 인식론의 문제─주체와 대상의 분열─를 극복하여 혁명적 행동이 합리적으로 성취 가능해지기를 바랐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발상은 '전체성'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전체에 접근하는 것은 사회생활의 고립된 경험 자료들을 그 의미가 분명히 드러나는 맥락에 통합시킨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이 연결 원리는 자본주의가 모든 사물을 교환 가능한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헤겔은 모든 것의 상호 연결성에서 근대성의 본질적 측면을 파악하는 철학의 능력을 보았다. 이는 절대정신에 관한 그의 설명에서 드러난다. 루카치는 이러한 상호 연결성을 근대 사회의 물질적 재생산 형태에 기반한 구체적인 역사적 발전으로 간주한다. 세계화의 영향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구상의 힘은 분명하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가져온 변화의 핵심 특징은 개인이 그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 변화에 종속된다는 점이다. 루카치는 이것이 근대 철학에서 이론과 실천이 분리된 근원이라고 주장한다."(388-9)


"발터 벤야민의 작업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열심과 유대교 신비주의에 대한 관심이 결합해 있다. 그는 특히 신이 이해 가능한 세계를 창조한 것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신비주의적 언어 개념에 관심을 두고 있다." "초기 작품부터 벤야민은 자연 과학의 도구적 언어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한 까닭에 가려질 수 있는 언어의 차원들에 관심을 가졌다." "근대 시기의 언어에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한 가지 방식은, 도구적 사용과 심미적 사용 사이의 차이에 있다. 전자는 빈학단의 논리적으로 걸러진 언어라는 발상이 제안한 것처럼, 단어 사용을 훨씬 더 정밀하게 상술하는 데 의존한다. 후자는 다른 진리로는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한 진리를 갖는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억압된 언어 자원을 이용하고자 한다. 이런 식의 진리는 언어를 새로 독특한 조합으로 구성하는 데 의존한다. 시와 같은 텍스트는 이런 식으로, 그 텍스트를 구성하는 언어적 재료의 역사적 자의성을 초월할 수 있다."(395-9)


"벤야민은 참된 언어가 무엇인지에 관한 신학적 관점을 인류와 근대 세계의 새로운 관계를 수립할 정치적 기획과 결합하고자 한다." "벤야민의 후기 성찰은 대체로 문화 개념 자체가 역사에서 지금까지 승리한 자들의 야만성과 불가분하게 연결됨으로써 훼손되었다는 확신이 기저에 깔려 있다. 문제는 이것이 현재의 완전한 변혁을 통해 과거 전체가 구속redemption될 필요가 있다는 종말론적 의미로 그를 이끌어 간다는 점이다. 이러한 필요는 나치즘이 부상하는 절박한 상황이었기에 이해할 만하지만, 이러한 생각의 배후에서 추동하는 힘은 의문스러운 신학이다. 문화에 대한 기록이 어떤 면에서는 항상 역사의 불의에서 비롯된 억압에 대한 증언이라는 것은 비판 이론의 주요 통찰 중 하나다. 하지만 벤야민이 역사의 구속이 무엇을 수반할지를 구체적인 정치 전략의 측면에서 제시하려 한 진지한 시도는 거의 없다. 게다가 이러한 생각은 역사가 실제로 진보의 측면을 포함하는 방식을 너무 쉽게 간과할 수 있다."(400-2)


"헤겔의 변증법이 규정적 부정에서 철학의 완성인 긍정적 '절대 관념'으로 나아가는 데 반해, 아도르노의 변증법은 철학적 결론이 없기 때문에 '부정적인' 상태로 남아 있다." "근대 자본주의 세계는 많은 사람의 삶을 훨씬 안락하게 만들어 주는 동시에, 가장 급진적이고 비판적인 사유에도 완전히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깊은 상처와 폐해를 가져온다. 아도르노에게 자본주의의 본질을 드러내는 역사적 사건은 홀로코스트다. 홀로코스트의 한 가지 요인은 모든 근대 관료제에 특징적인 조직 구조를 이용해 야만적인 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개인은 자신이 전체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외면하고 자신의 개별적 역할을 변호할 수 있다." "아도르노는 그의 철학적 주저인 《부정 변증법》(1966)에서 히틀러로 인해 우리에게 생긴 새로운 '정언 명령', 즉 아우슈비츠가 결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명령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아도르노는 리처드 로티와 같은 현대 실용주의자에 가깝다."(412-5)


결론


"포이어바흐와 마르크스에서 하이데거와 빈학단에 이르는 다양한 버전의 철학의 종말 개념은 모두 철학과 자연 과학의 관계에 대한 해석에 달려 있다. '실증주의'에 대한 아도르노의 적대감은 자연 과학을 우선시하는 철학이 사회정치적, 문화적 상황에 대한 비판과 관련된 문제들을 배제하려 한다는 그의 인식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아도르노의 반대자들이 경험적 사회 탐구로 인해 비판적 관점이 배제되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해석할 필요는 없다." "아도르노는 설명적 과학 이론이 삶을 더 견딜 만하게 만드는 데 사용될 수 있는 실제적 예측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정당한 주장─이는 수많은 철학적 입장이 공유할 수 있는 주장이다─과 과학주의의 구분을 너무 자주 흐리게 한다.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은 주체가 타자를 지배하는 것이 근대성 병폐의 뿌리라는 주장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 주장은 후기 하이데거를 비롯하여 하이데거에게 영향받은 이들과 아도르노를 가장 가깝게 만드는 지점이다."(426-8)


"하이데거는 근대성이, 모든 존재와 모든 진리에 대한 확실성이 단일한 자아라는 자기의식, 즉 〈나는 생각하므로 존재한다〉에 기초한다고 본 데카르트에게서 유래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가정을 바탕으로 리오타르는 자연이 가하는 위협과 자기가 부과한 제약으로부터 자신을 해방한다는 명목하에 타자를 통제하거나 배제하려는 주체의 시도를 근대성의 일반적 특징으로 규정한다. 주체의 자기 해방의 '거대 서사'는 실패하였고, 그 결과 인종, 젠더 등 여러 문제와 관련된 다양한 형태의 억압으로 되돌아왔다. 리오타르는 이성이 자신의 틀에 맞지 않는 것을 항상 배제하기 때문에 본유적으로 테러적 요소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세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경쟁적 방식들은 더 이상 일반적인 '정당화 담론'에 대한 '근대적' 탐구에 의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도르노는 이성의 힘에 대한 믿음을 여전히 남겨 놓았다. 물론 그가 정확히 이성의 어떤 점을 옹호하는지는 간혹 불분명하다."(429)


"하이데거와 마찬가지로, 가다머도 근대가 진리를 자연 과학의 전유물로 여기며 전념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했고, 이해를 과학이 제공하는 구체적인 형태의 설명보다 더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진리와 방법》이라는 제목은 자연 과학이 세계가 어떻게 나탈 수 있을지를 미리 결정하는 규칙 지배적인 방법들에 의존한다는 점을 암시한다. 반면 에술은 개별 주체의 우연적인 반응을 초월하는 전통의 '발생'이라는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예술의 진리는, 다양한 맥락에서 전달되고 수용자와 예술 작품 사이에 '지평 융합'을 수반하는 새로운 종류의 이해를 불러일으킴으로써 드러난다." "예술에 대한 이해는 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음으로써 일어난다기보다, 작품에 영향을 받아 자기 지평이 변하는 데서 일어난다. 이는 필연적인 종착지가 없는 계속되는 과정이다. 이러한 이해는 예술작품의 '현재적' 본질로, 즉 대상이 아니라 실제 문화에서 시대마다 '발생'하는 무언가로 간주된다."(433-5)


"하버마스는 그가 〈주체 철학의 패러다임〉 또는 〈의식 철학〉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함으로써 그의 구상 중 가장 영향력 있는 구상에 도달한다. 이 패러다임은 철학의 임무가 주체 쪽에 속하는 것과 대상 쪽에 속하는 것을 규명한 다음 그것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본다. 〈다양한 현상 안의 선행적 통일성〉을 보장하는 칸트의 초월적 주체는 하버마스가 거부하는 것의 대표적인 예다." "하버마스가 볼 때, 주체성의 근간에 도달하려는 시도는 결국 주체의 본성을 신비화해 버릴 가능성이 큰 정초 원리(예컨대 의지)를 찾는 헛된 탐색으로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그는 〈주체성이라 이름할 만한 모든 것〉은 실제로 한 사회의 상호주관적인 언어와 관습으로 사회화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하버마스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칸트가 〈예지〉라고 부른 영역에 이성이 초시간적으로 존재한다는 형이상학적 가정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합리성 개념을 발전시키는 것이다."(442-3)


"하버마스는 다른 사람의 의사소통 행위를 이해하는 능력 자체가 이미 합리성의 근본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논증에 참여한다는 사실은 '합의라는 텔로스'를 수반한다." "칸트가 인식, 윤리, 미학의 세 가지 비판으로 나눈 것과 베버의 근대 합리성에 대한 견해를 따라, 하버마스는 〈각각의 고유한 논리를 따르는〉 〈과학, 도덕, 예술〉이라는 세 가지 가치 영역의 분화라는 측면에서 근대성을 본다. 이들 영역은 각각의 〈타당성에 관한 비판 가능한 주장〉, 즉 〈명제적 진리, 규범적 올바름, 주관적 진실성〉을 포함한다. 하버마스는 논리 실증주의가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명제에서 토대를 찾는 식으로 이러한 각 영역의 타당성의 토대를 찾지 않는다. 그 대신 인간 활동의 다양한 영역에서 타당성 주장이 어떻게 '유효화' 될 수 있는지에 집중한다. '의식 철학'이 추구하는 식으로 인간의 관심 영역에 직접적으로, 언어 외적으로 접근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주장의 유효화는 오직 의사소통 행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4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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