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에서 니체로 - 마르크스와 키아케고어, 19세기 사상의 혁명적 결렬
카를 뢰비트 지음, 강학철 옮김 / 민음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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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19세기 독일 정신사 연구


서론 괴테와 헤겔


"헤겔도 괴테도 (셸링처럼) 칸트의 이 최후의 이념─자연 개념과 자유 개념을 매개하는 판단력─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두 사람은 논증적인 오성을 타고 넘어서 자기 존재와 세계 존재의 중간에 서는 것으로써 '이성의 모험'을 감행했다. 다만 괴테는 직관된 '자연'의 편에서 헤겔은 '역사적 정신'의 편에서 통일을 파악하는 점에 두 사람이 가진 매개의 차이가 있다. 헤겔이 '이성의 간지(奸智)'를, 괴테가 자연의 간지를 승인하는 것은 이것에 대응한다. 간지는 어느 경우에도 인간의 행위 일체를 본인이 모르는 사이에 전체를 위한 봉사에 이바지한다." "괴테가 밑바탕으로 삼았던 원근법상의 착각은 헤겔이 이해하고 있던 '이념'이 '자연의 방식'이 아니라 정신의 방식을 표명해야 하는 점에 있다. 그것을 헤겔은 자연의 이성으로 풀이하지 않고(헤겔에게 자연은 무력한 것이었지만, 괴테에게 자연은 전능한 것이었다.) 역사의 이성으로 풀이하여, 거기서 그리스도교의 정신을 헤겔은 역사에 있어서의 절대자로 보았다."(29-30, 36)


"헤겔과 마찬가지로 괴테도 종교개혁을 '정신적 고루의 질곡'에서의 해방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들도 모두 차츰 언어와 신앙의 기독교에서 나와 의향과 행위의 기독교로 점점 가까워질 것이다〉라는 괴테의 명제는 사실상 벌써 헤겔에서 포이어바흐에, 나아가서는 근본적인 결정으로 통하는 길의 단초(端初)가 되었다. 따라서 새로이 이교와 기독교의 어느 것을 채택하는가를 결정하려고 한 니체와 키아케고어의 두 개의 상반된 실험은 헤겔과 괴테에 의해서 대표된 융통성이 있는 기독교에 대한 과감한 반동이다." "괴테와 헤겔은 공통적으로 '초월하는 것'을 거부했다. 괴테의 자연은 중용 가운데서 살았고, 헤겔의 정신은 매개 가운데서 움직였으나, 이 중용과 매개는 마르크스와 키아케고어에 있어서 다시금 외면성과 내면성의 양 극단으로 서로 대결하게 되어 결국 니체는 새로운 시발로서 근대성의 무(無) 속에서 고대를 되찾으려고 이 실험을 하고 있는 동안에 정신 착란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43-4, 54)


▷ 헤겔의 정신사 철학에서 생긴 시대정신적 사상(事象)의 기원


1장 헤겔의 세계사 및 정신사의 완성이라는 종말사적 의의


"유럽 정신사의 최후의 단계에서 드디어 나타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의욕하고 또한 자기가 의욕하는 것을 알고 있는 〈순수한 자기 의지〉이다. 그것으로써 인간은 처음으로 '곤두서게' 되고, 세계의 사상(事象)은 철학의 사유와 일치하게 된다. 〈자유의 의식에서의 진보〉를 원리로 하는 역사의 철학은 이 사건으로 마감된다. 원시 기독교의(그 정신과 그 자유의) 소위 세속화는 헤겔로 보자면 그 본래의 의의에서의 비난될 이반(離反)이 아니라, 반대로 그것의 적극적 실현에 의한 그 본원의 참된 해석을 뜻한다." "그리스-로마의 세계는 기독교-게르만적 세계 속에서 '지양'되고, 따라서 헤겔의 존재론적 기초 개념은 이중으로, 즉 그리스적 로고스 및 기독교적 로고스로서 규정된다. 그에 반하여 새로이 고대 세계와 기독교와의 결합을 분리라도 해서, 그리스 정신이든지 기독교든지 '어느 한쪽을' 추상적인 본원으로 보고 그것에 다시 복귀하려 하는 것은, 그의 구체적인 역사 감각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다."(61)


"헤겔의 종말사적 구조의 궁극의 근거는 그가 기독교를 절대적으로 평가하는 데 있다. 기독교의 종말론적 신앙에서 본다면 여러 시대의 종말과 '때의 참die Fülle der Zeiten'이 그리스도와 함께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헤겔이 지상 시간의 종말의 기독교적 기대를 세계의 사상(事象)에 옮기고, 그리스도 신앙의 절대자를 역사의 이성으로 풀이하기 때문에 세계와 정신의 역사에서 최후의 대사건을 단초의 완성으로 이해하는 경우라면 이치에 맞는다. 실상 '개념'의 역사는 헤겔이 〈여기까지의 그리고 거기서부터〉의 역사 전체를 회상시키면서 여러 시대의 실현으로 이해할 때에 헤겔과 함께 마감되었다. 원리도 없고 따라서 시기도 없는 경험적 사상(事象)이 처음도 끝도 없이 경과하는 것은 그것과 모순되지 않는다. 헤겔의 후계자뿐만 아니라, 그의 논적(論敵)도 상기한 역사적 의식에 의해 양육되었다. 유럽 역사에 대한 부르크하르크의 의식의 최후의 의향은 〈낡은 유럽〉은 종말에 가깝다는 인식이었다."(61-2)


"그렇지만 새로운 분리로의 진전 가능성은 헤겔 자신의 역사적 의식 속에 이미 배태되어 예견되고 있었다. 사실 시대의 실질적인 것에 관한 철학적 인식은 물론 그가 속한 시대정신에서 발생하고 따라서 형식적이긴 하지만 관상적(觀想的) 지식으로서, 그 시대정신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유별난 관상적 지식과 함께 한층 더 발전을 촉진시킬 하나의 차이, 즉 〈지식과 현재하는 것 사이의〉 차이가 마련된 것이다. 이제 이런 차이에서 철학과 더불어 현실에서 새로운 분리로 진전할 가능성과 필연성이 생겨난다." "스스로 완성하는 이 철학은 차후에 현실적인 새로운 형성으로 몰아넣는 정신의 출생지가 된다. 그리고 실제로 헤겔이 말하는 지식의 역사의 종결은 출생지가 되어 그것에서 19세기의 사상 및 정치상의 사상(事象)이 발생했다." "즉 헤겔의 매개 대신에 결단으로의 의지가 나타나서, 헤겔이 합일한 것을, 즉 고대와 기독교, 신과 세계, 내면과 외면, 본질과 실존을 다시금 분리시켰다."(70-3)


"헤겔 철학의 영역에서 신앙과 이성, 뿐만 아니라 국가와 기독교와의 화해는 1840년경에 끝나고 있다. 헤겔 철학과 그 시대와의 분열은 마르크스에 있어서는 국가 철학과의 분열이며, 키아케고어에 있어서는 종교철학과의 분열이어서, 요컨대 국가, 기독교 및 철학의 합일과의 분열이다. 이 분열을 포이어바흐는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브루노 바우어도 키아케고어에 못잖게 결정적으로 실행했다. 다만 제각기 그 방법이 서로 달랐을 뿐이다. 포이어바흐는 기독교의 본질을 감각적 인간에, 마르크스는 인간 세계에 있는 모순으로 환원하고, 바우어는 기독교의 발생을 로마 세계의 몰락에서 설명하고, 키아케고어는 기독교적 국가도 기독교의 교회나 신학도, 즉 기독교의 세계사적 실재 전체를 방기하고 그 본질을 절망 끝에 결단한 신앙으로의 비약이라는 역설에 환원한다. 그들에게는 현실이 더 이상 자각적 존재의 의식이라는 자유의 빛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기 소외'라는 그림자 속에 나타난 것이었다."(79)


2장 노장 헤겔 학파, 소장 헤겔 학파, 신헤겔 학파


"(노장 헤겔 학파가 주도한) 헤겔 철학의 보존은 철학 일반이 철학사가 되는 역사화의 도상에서 행해진다. 헤겔의 정신사의 형이상학에서 발단한 역사주의는 문화와 지식을 아직도 믿고 있던 교양인의 '최후의 종교'가 되었다." "헤겔의 경우 정신은 역사의 주체 및 실체로서 절대자이며, 그의 존재론의 근본 개념이었다. 그러기에 자연철학도 국가, 예술, 종교 및 역사 등의 철학과 함께 하나의 정신의 학문이다. 기독교라는 절대적 종교와 일치하는 정신인 까닭에 이러한 절대정신은 스스로를 알고 있음으로써 존재한다. 또한 그 정신은 이미 존재했던 정신의 여러 형태들의 회상을 자기의 갈 길로 삼는 한에서 역사적 정신이다." "그러나 1850년대 이래로 유행하게 된 '정신사'의 개념, 곧 하임에서 딜타이에 이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승인되었던 다소간의 확신은 인간의 정신 그 자체가 '사회-역사적 현실'의 유한한 '표현'이기 때문에 그런 정신은 정치적, 자연적 세계에 대해서는 본질적으로 무력하다는 확신이었다."(93-4)


"소장 헤겔 학파는 청년의 당파를 대표하고 있으나, 그것은 그들이 현실의 청년이어서가 아니라 아류 의식을 극복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존하는 것의 근거가 박약함을 인식하여 '보편적인 것'과 과거에서 이반(離反)하여, 미래를 예견하고 '일정한', '개별적인' 것을 강조하여 현존하는 것을 부정하려 했다." "그들의 저서들은 선언과 강령이나 주장이긴 하지만, 그 자체로서는 실속 있는 전체가 아니고 그들의 학문적인 논증은 그들이 손질하는 동안에 대중 아니면 단독자(개인)에게 호소하기 위해 효과를 노린 설명이 된다. 그들의 저서들을 검토하는 사람이면 그들의 자극적인 어조에도 불구하고 김 빠진 듯한 뒷말을 남긴다는 점을 경험하게 된다. 그 까닭은 그들이 빈약한 수단으로 과도한 요구를 내걸고 헤겔의 개념적인 변증법을 수사적인 문체로 길게 뽑아 늘이기 때문이다." "생성과 운동의 이론가들인 그들은 헤겔의 변증법적 부정성(否定性)의 원리와 세계를 움직이는 모순에 고착(固着)되어 있다."(96-7)


"헤겔 학파의 분열은 보수적으로나 혁명적으로나 해결될 수 있는 헤겔의 변증법적 '지양Aufhebungen'의 원칙적인 애매성에 의해 가능했다. 헤겔의 방법을 '추상적'으로 일면화하기만 하면, 〈그 견해의 보수성은 상대적이고, 혁명적 성질은 절대적이다〉라고 엥겔스의 명제 즉 그것은 세계사의 과정이 진보의 움직임이며 따라서 현존하는 것의 지속적인 부정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모든 헤겔 좌파 사람들의 특징을 나타내는 명제에 도달할 수가 있다. 엥겔스는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라고 하는 헤겔의 명제에 깃든 혁명적 성격을 증명한다. 즉 헤겔이 말하는 현실적인 것은 우연히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또는 '필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 명제는 외견상 반동적이지만 실상 혁명적인 것이라 말한다." "우파는 현실적인 것만이 이성적인 것이라는 점을, 좌파는 이성적인 것만이 현실적인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였으나, 헤겔에서는 보수적 견해와 혁명적 견해가 적어도 형식상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101)


"헤겔을 단지 부분적으로 개조하려 했던 여타 소장 헤겔 학파와는 달리 마르크스는 철학 그 자체가 문제라고 하는 통찰을 역사에서 얻었다." "〈새로운 여신은 아직은 직접적으로 운명의 순연한 광명이든 순연한 칠흑이든 간에 애매모호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문장은 마무리지어진 세계의 회색의 황혼에서 철학한다고 하는 헤겔의 비유를 회상케 한다. 그 의미는 철학이 붕괴된 직후, 이 현재의 어두움이 칠흑 같은 어둠 직전의 황혼인지 아니면 새 날의 동틈 직전의 미명인지, 아직은 확실하게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헤겔에서는 현실 세계의 노쇠가 철학의 최후의 회춘(回春)과 함께 병행하나, 미래를 선취(先取)하는 마르크스에게서는 마무리지어진 철학이 현실 세계의 회춘과 함께 옛 철학에 역행한다. 철학이 현존하는 '비철학'의 실천에 몰두할 때, 즉 철학이 마르크스주의로 직접적인 실천적 이론이 되었을 때, 현실의 세계에 이성이 '실천praxis'됨으로 인하여 철학 그 자체는 지양된다."(129-30)


"키아케고어를 단지 '예외'로 보지 않고, 시대의 역사적 동향의 내부에서 생긴 현저한 현상의 하나로 본다면, 그의 '단독성'은 적어도 단독적인 일이 아니라 당시의 세계 정세에 대해 흔히 유행했던 하나의 '반동Reaktion'이었음이 명백해진다. 그는 무엇보다도 시대의 사상(事象)에 대한 비판자였다." "'단독자'에 관한 두 개의 각서에서의 서문(1847)은 〈오늘의 시대는 만사가 정치 일색이다〉라는 말로 시작하여 시대가 요구하는 것, 즉 사회적 개혁은 시대에 있어서 필요한 것, 즉 무조건으로 확정하고 있는 것의 반대물이다라는 말로 끝맺고 있다. 현대의 불행은, 현대가 더 이상 영원에 관해서 알려고 하지 않는 한낱 '시간'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키아케고어에게 헤겔 철학은 역사적 세계의 보편자 안에서의 단독적 실존의 평준화, '세계 과정' 안에서의 인간의 '산재성'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키아케고어는 헤겔의 체계적 세계사적 해석에 반대하여 자신을 결단하는 실존의 단독성, 즉 개별화된 단독자를 부각시켰다."(148-50)


"세계의 평준화를 향한 발전과 하나님 앞에 '자기Selbst'로서 존재하는 기독교적 요구와의 양자가, 그에게는 재수 좋은 우연처럼 일치하는 듯이 생각되었다." "그는 1848년의 '파국'을 신호로 삼아 종교개혁의 때와는 반대로 이번의 정치적 운동은 종교적 운동으로 급변함을 예언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키아케고어의 소견으로는 전체 유럽은 세계를 매체로 해서는 해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 영원 앞에서만 해결될 문제 가운데로 끓어오르는 혈기에 휘말려 허둥지둥 끌려 들어간 것이다. 그 다음에는 얼마나 오랫동안 이 단적인 경련이 계속될지는 물론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세대가 고뇌와 출혈 때문에 온통 기진맥진했을 때, 다시금 영원이 고려되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진리를 위해서는 자기가 맞아죽어도 된다는 그런 증인에 의한 기독교의 부흥을 희구하는 이러한 예상을 가진 키아케고어는 프롤레타리아 세계 혁명을 선전하는 마르크스와 시대를 같이하는 대국자(對局者)이다."(152-4)


"헤겔 철학 부흥의 원리는 베네데토 크로체에 의해 처음으로, 또한 가장 선명하게 헤겔 철학의 '죽은' 부분과 '살아 있는' 부분의 구별에 의해 확정되었다. 죽은 것으로 여겨진 것은 무엇보다도 자연철학이지만, 논리학이나 종교철학도 여기에 해당한다. 살아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객관적 정신의 학문이며, 그 한도에서 그것의 절대적-체계적 주장이 역사적 주장 속에 해소되고 있다." "역사적 의식을 철학과 정신의 문제로 삼아 탁월한 방식으로 이해한 것은 빌헬름 딜타이였다." "딜타이는 헤겔의 현실 개념의 사변적 '파악'을 현실의 가장 일반적인 여러 구조의 분석적 '이해Verstehen'에 환원한다. 딜타이에 의하면 헤겔의 형이상학의 영속적 부분으로서는 '역사적 지향die historischen Intentione'이 존립할 따름이다. 이 경우에 바로 그 체계의 궁극적 부분이 될 형이상학적, 신학적 기초는 제외된다. 헤겔의 영속적인 의의는 그가 낱낱의 생의 현상의 본질을 역사적으로 이해할 것을 가르친 점에 있다."(162-5)


3장 마르크스와 키아케고어의 결단에 의한 헤겔 매개의 해소


"헤겔 학도로서 마르크스가 이해한 공산주의는 실체가 없는 생존 관계의 참된 해소이고, 공동체로서 생존하는 인간의 현실적 존재와 본질적 이성과의 사회적 일치이다. 헤겔은 양쪽을 단지 사상적으로 융화시켜 실제로는 사적-개별적 생존과 공적-공동적 생존 사이에서 역사적으로 제약된 모순을 그의 서술 내용으로 취급했다." "결국 현존하는 존재 관계의 급진적인 혁명만이 '세계 국가'에까지 확대된 폴리스, 계급 없는 사회의 '참된 민주 정치'를 대동해서 헤겔의 국가 철학을 근대적 사회의 요소 가운데 실현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이 철학적 공산주의와 극단적 대조를 이루는 키아케고어는 사적 인간을 철두철미하게 '단독자Einzelne'로까지 구체화시켜 대중의 상황이라 할 외면성에다 '자기 존재Selbstsein'라 할 내면성을 대치시켰다. 그에게 이 개별화된 실존의 다시없는 실례는 아테네의 폴리스에서 소크라테스와 유대인 및 이교도로 이루어진 전 세계에 대한 그리스도이다."(192-3)


"현실에 대한 헤겔의 무력의 원인을 키아케고어는 마르크스와는 달리 원리의 잘못된 귀결에서 보지 않고 헤겔이 전반적으로 본질과 실존을 일치시키려는 점에서 본다. 바로 그 까닭에 그는 '현실적' 존재의 표현에는 이르지 않고 항상 이상적 '개념 존재'에만 이를 뿐이다. 왜냐하면 어떤 것의 essentia, 즉 어떤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보편적 본질에 관계하고, existentia, 즉 어떤 것이 있다고 하는 것은 그때그때의 낱낱의 실재, 나 혹은 너 나름의 실존, 그것이 있는가 없는가의 일이 결정적인 일이 되는 그러한 실존에 관계하기 때문이다." "낱낱의 인간은 정신을 가지고 그 본질로 삼는 보편적 인간 존재의 특수한 한정성을 의미한다. 이 인간 존재의 보편성, 즉 '보편 인간성'을 키아케고어는 부정하지는 않았으나 그것을 단독자에 의해서만 실현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겼다. 이것에 반해 헤겔 정신의 보편자이든가 마르크스의 인류의 보편자이든 간에 키아케고어에게는 실존적으로 실체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194-5)


"키아케고어는 관심을 '정열Leidenschaft' 즉 '파토스Pathos'라 칭하여 그것을 사변적 이성에 대처케 한다. 정열의 본질은 그것이 헤겔의 체계의 폐쇄적 '종결'과는 달리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결정할' 결단으로 몰고 간다는 것이다. 이 비약, 즉 변증법적 반성이라는 〈방법의 역행에 대한 단호한 반항〉은 의미심장한 하나의 결정이다. 비약의 용의가 되어 있는 이 결정의 단호한 정열은 직접적인(무매개의) 단초를 설정한다. 이에 반하여 헤겔 논리학의 단초는 실제로 '직접적인 것'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극단의 반성의 산물, 즉 현실에 실존하는 현존재의 추상(무시) 가운데서 순수한 존재 일반을 가지고 시작한다. 이러한 실존 규정을 가지고 키아케고어는 자기를 아는 이성적 현실의 영역을 '하나의 실존자가 그것에 대해 단지 알고만 있지 않는 유일한 현실', 즉 '그가 바야흐로 존재한다고 하는' 현실에 환원시킨다. 스스로 실존하는 자에게 실존 그 자체는 최고의 관심사인 것이다."(196-7)


"1848년 혁명 직전에 마르크스와 키아케고어는 어떤 결정의 의지를 표명했다. 시민-자본주의적 세계의 혁명을 위해 마르크스는 무신자의 대중을 발판으로 삼는 한편, 키아케고어는 시민-기독교적 세계에 대한 그의 싸움에서 만사를 개개인에게 걸고 있다. 이것에 대응하여 마르크스로 말하면 시민사회는 '개별화된 단독자'의 사회여서 거기서는 인간이 자기의 '동류적 본질'에서 소외되어 있고, 키아케고어로 말하면 기독교 세계는 대량으로 전파된 기독교이고, 거기서는 단 한 사람도 '그리스도의 순종자'가 아니다. 그러나 헤겔이 이러한 존재하는 모순을, 즉 시민사회와 국가, 국가와 기독교를 본질에 있어서 매개한 연후이기 때문에 마르크스 및 키아케고어의 결단은 바로 그러한 것들의 매개 가운데 있는 차이와 모순을 지적하는 일을 목적으로 삼는다. 마르크스가 문제 삼는 '자기 소외'는 인간 쪽에서 보면 자본주의고, 키아케고어가 문제로 삼는 '자기 소외'는 기독교 쪽에서 보면 기독교 세계이다."(198)


▷ 역사적 시대에 철학의 영원성 희구로의 급변


4장 현대 및 영원의 철학자인 니체


"괴테가 온갖 잔재주꾼보다 탁월하였던 것은 그가 단지 자유를 의욕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완전히 소유했던 점이다. 그는 이 도달된 자유에서 자기 마음에 거슬리는 것마저도 촉진하며 전체로서의 생활, 그리고 그 외관상의 진실 및 그 진실의 외관을 위한 대변자 노릇까지도 감당해낼 수 있었다. 괴테는 비현실을 의도하며 살던 시대의 한가운데서 확신에 찬 현실주의자였다. 그는 그 속에서 자기에게 연고가 있는 것을 모두 긍정했다." "그는 관용의 인간이기도 하다. 약함에서가 아니라 강함에서의 관용이다. 왜냐하면 그것 때문에 범속의 인간이면 몰락할지도 모를 것을 그는 자기에게 유리하게 사용할 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인간에게는 덕이든 악덕이든, 나약함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금지될 것이 없다." "이것은 니체의 '실재에 대한 디오니소스적 입장'을 나타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실상 『권력에의 의지』의 최후의 경구는 자연에 관한 괴테의 단편과 동일한 정신에서 발상된 것처럼 느껴진다."(231-2)


# 다만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와 괴테의 자연은 매우 상이하다. 이 차이는 기독교에 대한 두 사람의 입장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니체가 19세기의 독일인을 위한 참된 교육자는 헤겔의 문하생들이라고 했던 말은, 소장 헤겔 학파를 경유하여 헤겔에서 니체로 통하는 길은 신의 죽음이라는 이념에 관련하여 말할 때 가장 명료하게 언급되고 있다. 즉 헤겔은 기독교 신앙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 즉 '무신성(무신앙)의 진리'에서 기원함을 기초로 하여 자기의 기독교적 철학을 완성하였으나, 니체는 몰락하는 기독교를 기초로 하여 그리스 철학의 기원을 반복하는 것으로 '수천 년의 허위'를 극복하려고 했다. 헤겔에게 있어서는 '신의 성육(聖肉)'은 인간적 본성과 신적 본성의 결정적으로 완수된 화해를 뜻하고, 니체와 바우어에게 있어서는 인간의 참된 본성이 파손되었음을 의미한다. 헤겔은 신을 '영Geist'이라고 하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철학적 존재로까지 높였고, 니체는 신을 영이라고 말한 자야말로 육체를 갖춘 신의 재생에 의하지 않는 한 보상될 수 없는 그러한 불신앙에로 누구보다 큰 발걸음을 한 발짝 내딛었다고 주장한다."(243)


"허무주의 그 자체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것은 궁극적인 몰락과 생활 혐오의 징조일 수도 있고, 생활에의 새로운 의지와 강화로서의 최초의 징조일 수도 있다. 즉 약자의 허무주의와 강자의 허무주의인 것이다. 근대성의 근원인 허무주의의 이 양의성(兩義性)은 니체 자신도 본래부터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양쪽을 알고 있다. 나는 양쪽 모두인 것이다.' 니체의 철학적 실존의 이런 이중의 의미는 시대에 대한 그의 관계의 특징이기도 하다. 즉 그는 '오늘 및 지난날'의 사람이기도 하고, '내일과 모레 및 다른 훗날'의 사람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하여 그는 지난날과 훗날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현재를 철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그의 철학은 '(기독교적) 후생(後生)의 역사의 단편'이며 동시에 그리스 전생(前生)에서 남겨진 흔적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니체는 최근의 시대의 철학자일 뿐만 아니라 가장 옛 시대의 철학자이기도 하고 그런 한에 있어서 '나이 든' 시대라고 하는 것의 철학자이다."(246-7)


"니체의 본래의 사상은 처음에는 신의 죽음이, 중간에는 신의 죽음에서 생긴 허무주의가, 마지막에서는 영원 회귀를 지향한 허무주의의 자기 극복이 자리잡는 하나의 사상 체계이다. 그것에 대응하는 것이 짜라투스트라의 최초의 연설 가운데 있는 정신의 삼중 변화이다. 기독교적 신앙의 '너는 할지어다Du sollst'는 '나는 의욕한다Ich will'라는 자유화된 정신으로 변한다. 무를 지향하는 '그 자유의 사막'에 있어서 '나는 의욕한다'에서 파괴와 창조 속에서 천진스러운 유희의 실재인 영원히 회귀하는 실재로의 최후이자 가장 곤란한 변화가, 즉 '나는 의욕한다'에서 '나는 존재한다'로의, 말하자면 존재 전체에 있어서 '나는 존재한다'로의 변화가 발생한다. 무를 지향한 자유가, 동일자des Gleichen의 영원회귀라는 필연성, 자유롭게 의욕된 그 필연성으로 들어가는 그 최후의 변화와 함께 니체에게 있어서 '영원한 운명'이라 할 그의 시간적 운명이 실현된다. 그의 자아는 그에게 천운이 된다."(250-1)


"니체의 철학에 있어서 영원회귀가 의미하는 것과 같은 영원의 문제는 니체가 '인간'과 함께 '시간'을 극복한 도상(途上)에서 찾아내기 마련이다. 그 길은 기독교 역사에서의 탈출구이며 니체는 그것을 '허무주의의 자기 극복'이라고 일컬었으나, 이 허무주의는 또한 신의 죽음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짜라투스트라는 '신과 무의 정복자'이다. 영원회귀의 '예언'과 허무주의의 '예언'과의 이 본질적 관계에 근거하여 니체의 교설 전체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진다. 즉 그것은 허무주의의 자기 극복이어서, 거기서는 '극복자와 극복당하는 것'은 하나인 것이다. 그것들이 하나의 것이라는 것은 마치 짜라투스트라의 '이중의 의지', 또한 세계를 보는 디오니소스적 '이중의 눈'과 디오니소스적 '이중의 세계' 그 자체가 하나의 의지, 하나의 눈, 하나의 세계인 것과 동일하다. 허무주의와 회귀와의 이 일치는 니체의 영원을 의욕하는 의지가 니체의 무를 의욕하는 의지의 전향(轉向)이라는 사실에서 생겨난다."(251-2)


"그런데 인간은 신이 그에게 무슨 일을 '해야 한다'를 이 이상 말하지 않게 된 이래 의지로 있는 것이다. 실재는 스스로 '다시금 영구히 행위와 죄'가 된다. 그것은 실재가 '현실적으로 있다Da-sein'는 우연에 대하여 자체적으로 책임을 갖지 않음에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실재는 언제나 이미 우연으로 있던 것이며 그것이 스스로를 의욕하기 전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존재하는 의지로서 그 책임을 떠맡으려 의욕하지만 아무튼 떠맡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의지는 적의가 되고, 자기에게 귀속된 실재의 부담을 향해서 '뒤에서 뒤로 돌'을 굴리어 마침내는 망상이 일체를 소멸한다. 그러므로 일체는 소멸할 값어치가 있다고 설교한다." "실상, 시간 및 존재의 영원회귀적인 순환을 의욕함에 있어서 의지 그 자체도 또한 끝없이 무한한 것 속으로 향하는 직선 운동에서 미래와 더불어 과거로 향해 의욕하는 원환이 된다. 항상 이미 할 수밖에 없는 것을 항상 의욕하는 이 이중의 의지가 니체가 의미하는 '운명애amor fati'이다."(253)


5장 시대의 정신 및 영원의 문제


"헤겔적인 구조의 요강은 대개 역사의 진행을 시간적 진보에 의해 측정한다는 점, 즉 마지막 걸음으로부터 그것에 선행된 걸음을 필연적으로 그 최후의 걸음에까지 인도된 것인 양 역진적(逆進的)으로 구성하는 점이다. 이러한 시간적 결과에 입각한 자리매김은 세계사에 있어서는 성과가 많은 것만이 인정된다고 하는 사실과, 세계적 사건의 연속은 성공의 이성에 의해 평가되어질 것임을 전제한다. 그러나 성공은 헤겔의 세계사적 견해의 최고 심급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일상생활의 부단한 척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도 역시 사람은 어떤 일의 성공은 그 일이 실패로 끝나는 것보다 고차원적인 정당성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헤겔의 사색의 통속적인 핵심은 성공에 차 있는 자만이 정당화된 것이라는 일반에게 보급된 확신에 근거하고 있다." "파괴되거나 실패로 끝나버린 것 때문에 역사적 기억에서 소실되어 버린 것은 헤겔의 처방에 의하면 '탈권당한 실존'으로 간주된다."(282-3)


"어떤 속담은 '성공은 명인(대가)에게 영광을 돌린다'고 말한다. 반면 니체는 '성공은 언제나 최대의 거짓말쟁이였다'고 말한다. 성공이란 실상 인간 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척도이긴 하나, 그것은 일체를 증명하고 또한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다. 일체를 증명한다는 것은 세계사에서나 일상생활에서나 성공하는 것만이 통용되기 때문이고,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함은 비록 최대의 대량 성공이라 할지라도 사실상 성공된 것의 참된 '역사적 위대함'이나 내면적 가치를 조금도 입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천한 것, 어리석은 것, 비겁한 것, 미친 것 등이 벌써 종종 최대의 성공을 거둔 적이 있었다." "세계사의 참된 '파토스'는 울림이 요란하고 위세 당당한 '일대 사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간들 위에 가져오는 소리 없는 고뇌에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세계사에서 감탄할 것이라도 가진다면, 그것은 인류가 온갖 손실과 파괴와 상해 속에서 항상 새롭게 갱신하는 힘이며 인내이며 끈질김인 것이다."(283-4)


"전체로서의 큰 세계사에 현혹되어 빠져 버리는 편견은 사람이 인간적 현실의 실상과 자신의 환경을 무시하고, 세계사가 마치 그것만으로 하나의 세계인 양 생각하고, 그 속에서 능동적으로나 수동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간과 관계 없이 그 세계사를 다루는 데 있다. 그와 같은 철학적 추상이라는 죄를 괴테는 스스로 범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적 '원리'의 구현으로서의 '민족 정신' 같은 것을 구성하지 않았다." "괴테가 인간의 머리 위를 건너 지나가는 세계사 자체의 위력을 관찰하는 경우, 그것은 괴테에게는 '이성'으로 보이지 않고 자연계의 한 사건처럼 보인다." "괴테는 자연 속에서, 세계사의 진행 중에는 입증할 수 없는 그러한 변화의 법칙을 인식했다. 헤겔이 원래 기독교신학 출신이었기에 역사를 '정신적'으로 파악하고 자연을 단지 이념의 '타재태Anderssein'로 본 것에 반해, 괴테는 자연 그 자체 속에서 이성과 이념을 관찰하고 자연을 출발점으로 하여 인간과 역사의 이해를 위한 하나의 통로마저 발견했다."(286-8, 291)


2부 시민적, 기독교적 세계의 역사 연구


1장 시민사회의 문제


"루소가 이해한 일반 의지란 단순히 개개의 시민의 공통된 의지에 불과하며 진정한 의미의 일반적인 의지는 아니었기 때문에 '전체 의지'와 '일반 의지'와의 모순을 실제로 지양하는 일을 루소는 할 수 없었다. 그 결과, 국가 안에서 합일한다고 하는 것은, 의연히 개개의 인간의 임의적 동의를 기초로 하는 단순한 하나의 사회 계약에 불과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헤겔은 국가를 단순한 수단으로 삼는 자유주의적 국가관을 문제 삼고 있다." "시민사회로 보자면 국가는 그저 '귀찮은 것' 또는 '분별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이다. 말하자면 그 자체의 실질적인 의의는 없고, 각 개인의 이해 거래를 초월한 '형식적' 통일성이나 일반성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는 그 개개의 목적을 위해서도 국가의 일반적 전체와의 관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가의 본질은 시민사회의 제도의 심층 구조에까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헤겔은 시민사회의 원리를 부정함 없이 그것을 '지양augheben'시켰다."(310-2)


"키아케고어의 '단독자Einzelne'라는 근본 개념은, 사회 민주주의적인 '인류'와 더불어 자유주의적인 교양을 받은 기독교 세계에 대한 일종의 교정제이다." "과거에는 승인된 권위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지만, 만인이 상호 평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시대가 되면서부터 세속적 수단으로 더욱 진정한 의미로 지배하는 일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키아케고어가 정치상 요구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절대의 권위가 지배한다는 단지 그 한 가지일 뿐이다. 그와 같은 시대에는 세계의 참된 통치는 벌써 세속적인 내각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위하여 자진하여 생명을 희생함으로써 승리를 점유하는 순교자의 손으로 행해진다. 기독교 순교자의 원형으로서 귀감이 되는 것은 민중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참으로 '단독적'인 이 '신인Gottmensch'이다. 다만 그리스도 앞에서만 인간 평등의 문제도 해결된다. 그러나 차이성의 대소를 본질로 하는 세계에서는 그것이 해결되지 않는다."(319-21)


"당면한 세계의 비판자로서 니체는 18세기의 루소와 같은 생각을 19세기에 대해 가지고 있었다. 니체를 거꾸로 한 것이 루소이다. 유럽 문명에 대한 것처럼 날카로운 비판에 있어서 루소가 되고, 그 비판의 규준이 루소의 인간 이념과 정반대인 점에서 루소의 역이 된다. 이런 관계를 의식한 니체는 루소의 인간상에는 '근대에서 가장 위대한, 혁명하는 힘', 칸트나 피히테나 실러에 있어서도 독일 정신을 결정적으로 부각한 그 혁명력이 갖추어져 있음을 승인하였으나 동시에 니체는 루소를 '근대의 입구에 놓여진 기형아'라든지 '이상가와 천민'을 한몸에 갖춘 사람이라고 부른다. (니체의 말에 의하면) 루소의 평등 관념은 불평등한 것을 평등하게 하고 노예 도덕에게 주권을 주는 것이었으며 또한 루소의 민주적 인도주의적 이념은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권력에의 의지'인 인간의 참된 본성을 속이고 왜곡한 것이 된다. 시민적 민주정치에는 실체가 없다. 그것은 '국가 붕괴의 역사적 형태'에 불과한 것이다."(332)


2장 노동 문제


"헤겔은 노동의 정신적 성격을 우선 자연에 대한 '부정적 태도'로 규정한다. 노동은 본능이 아니라 일종의 '이성적인 것' 혹은' 정신의 존재 방식'이다. 동물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욕구를 자연에 의해 직접적으로 만족시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인간의 특징은 자기의 빵을 몸소 간접적으로 만들어 내어 자연을 수단 삼아 이용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욕구와 그 만족 사이에 있는 이 '매개'는 도구나 기계의 수단에 노동을 더한 것을 가리킨다. 노동은 인간과 그 세계 사이에 있는 '중간항'이다." "독립적인 도구인 기계 덕분에 비로소 완전한 노동이 이루어진다. 인간은 자기를 위하여 움직이고 자연은 기계에 의해 인간에게 속임을 당한다. 그러나 이 기만은 속이는 자 자신에게 복수한다. 그래서 인간이 자연을 압제하면 할수록 인간 자신은 비천해진다." "노동이 기계적이 되면 될수록 그 가치는 적어지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런 방법으로 노동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340-1)


"『법철학』은 노동을 '욕구 체계'의 첫 번째 계기로 다루고 있다. 복잡하게 구별된 추상적인 욕구와 동등하게 분화된 그 충족의 수단을 마련해 주는 것이 시민사회의 노동이다. 거기서는 최초부터 노동의 본질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 즉 인간은 스스로를 생산하는 데에서만 '존재한다'고 하는 것, 그의 전 존재는 온전히 매개하며 또 매개되어지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는 자기 자신과 자기 세계를 생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이 생산적 노동 관계에서 이론적이면서도 실제적 '교양Bildung'이, 즉 다양한 지식, 특정한 목적에 적합한 수단을 생각해 낼 수 있는 활기, 복잡하면서도 일반적인 관계 파악이 발전한다." "노동하는 자는 본질적으로 나태한 미개인과는 달라서 동시에 교양 있는 자이며 그의 욕구는 생산적으로 형성하는 사람이다. 노동이 인간을 형성(교양)하게 되는 것은 그것이 형식적이거나 교양적 행위로서 그 자체가 이미 정신적인 성질의 것이며 또한 추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까닭밖에는 없다."(344)


"헤겔이 노동을 파악할 때 가졌던 입장을 이해함에 있어서 중심이 되는 것은 현상론이다. 즉 의식과 자아 의식의 변증법이다. 이중 부정을 그의 운동 원리로 삼는 이 '사고의 산물'을 사용하여 헤겔은 현실적으로 인간적인 표현과 외화(양도), 대상화와 소외를 재치 있게 뛰어넘을 수 있다. 그 때문에 현상론의 운동은 절대지를 가지고 끝난다. '외화(外化)의 역사 전체와 외화가 되찾은 전체는 때문에 추상적, 즉 절대적 사유의 생산의 역사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소외는 뭐라 해도 외화와 더불어 그것의 지양이 본래 관심사이긴 하지만 그것은 '즉자(卽自)'와 '대자(對自)', 의식과 자아 의식, 객체와 주체의 구별로 이해되고 그 점에서 현실적, 감각적 대립이 소멸한다." "헤겔에게 자아 의식은 인간의 참된 본질이라 생각되어 소외된 대상적 본질을 되찾음은 자아로의 복귀로 나타나지만, 이 복귀는 대상적 세계의 '적의 있는 소외'가 '무관심한 소원'에까지 끌어내려진 후에는 비용을 크게 쓰지 않아도 행할 수가 있는 것이다."(353-5)


"헤겔의 현상론의 위대한 점은 그것이 대략 〈인간의 자기 생산〉을 하나의 과정으로서 파악하고 있는 것, 대상화를, 외화로서 획득을 그의 외화의 지양으로서 파악하고 있는 것, 요컨대 그것이 노동의 보편적 본질을 이해하여, 인간적 세계를 노동의 성과로 보고 있는 점이다. 〈헤겔은 근대적 국민 경제의 견지에 서 있다.〉 그는 외화의 긍정적 측면만을 알고, 그의 부정적 측면을 관념론적으로 지양시킴에도 불구하고, 노동을 인간의(···) 본질로서 파악한다. 그리하여 노동은 헤겔에서는 인간의 〈자립화〉로서 나타나지만 소외의 범위 내에서 나타날 뿐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되찾음은 우리들의 대상적인 세계의 소외된 제규정의 〈파기〉에 의하지 않고는 수행될 수 없다. '지양'을 파기로 고치는 이 부수적인 수정에 의해서 마르크스는 헤겔과는 방법에 구별되고, 더욱이 그가 어떻든 헤겔의 범주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감각화된 모습으로 『자본론』에 이르기까지 붙들고 있는 점에서는 원리적으로도 구별된다."(356-7)


3장 교양 문제


"헤겔에게 학생의 교육 목표로 삼아야 할 세계는 개인적 세계가 아니라 공동체, 즉 국가이다. 그중에서 인간이 가치를 가지는 것은 인간의 개인적인 특성에 의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객관적인 제영역 가운데 있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그 인간이 얼마나 유용한가에 있다. 그러기에 교양은 개인이 그의 특성을 방기하도록 교육하고 '사물의 요소'에 들어맞도록 형성할 것을 지향하고 있다. '사물의 요소'란 공동의 세계에서 가정의 특수한 개인 관계와는 다르다. 학교라는 중간 영역이 (개인을) 가정에서 끌어내어(공동의 세계로 집어넣어서) 작용한다. 교양된 인간이 '일반적인 자기 존재'를 획득하는 장소인 세계를 헤겔은 그곳에 들어가면 개개인은 그것에 자기를 적응시키는 한도에서만 통용되는 것과 같은, 즉 '일반성의 체계'로 삼았다. 그래서 학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은, 개개인이 자기를 일반적(사회적) 생활에 소속시키는 능력이다. 이것이 인문주의적 교양이라 부를 때에 규범으로 삼는 인간 교육의 목표였다."(372)


"1846년에 J. 부르크하르트는 바로 이 급진적 운동에 있어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한 G. 킨켈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다음과 같이 썼다. 〈옛날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불장군이어서 세상에서는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다. 지금은 그와 반대로 누구든지 자기는 교양이 있는 자라고 생각하고, '세계관'을 모아 엮어서 타인에게 설교를 늘어놓는다. 공부는 더 이상 아무도 생각하지 않고 더 이상 침묵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렇게 철저히 보급된 교양은 매일매일 인습적 사상의, 즉 착각의 건물을 세워서 그 가운데서 사회의 전 계층이 인공적인 감격으로 움직이고 있다." "40년 후에 그는 옛날 자신이 얻은 확신, 즉 대도회식 교양은 '나사못으로 틀어 올린 범용'을 육성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확신이 그 후 점차로 보급되고 점점 낮고 천해진 교양의 일반적 상태가 보증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는 이 '강제 평준화'에 대항하여 중세가 해소된 이래로 생겨난 교양인과 무교양인의 거리감 같은 것은 비교적 적은 폐해라고 변호했다."(381-2)


"니체는 교양 문제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외관상 상반되지만 꼭같이 파괴적인 작용을 일삼고, 그 결과로 최후에 이루어지는 두 개의 흐름이 본래는 전혀 다른 기초 위에 세워진 독일 교육 기관을 현재 지배하고 있다. 하나는 교양의 확대로의 충동이며, 다른 하나의 그 교양의 감소와 약화로의 충동이다. 제1의 충동에 의하면 교양은 점점 넓은 범위로 퍼지게 마련이고, 제2의 경향에 따르면 교양은 그 최고의 자주적 주장을 방기하고 다른 생활 형태, 즉 국가의 생활 형태에 봉사하고 종속할 것을 요구한다. 확대와 감소라는 두 개의 숙명적인 경향을 생각한다면 비관이나 절망의 기분에 사로잡힐 것만 같다. 더욱이 정말로 독일적인 두 개의 상반되는······ 경향, 즉 교양의 확대의 대조로서 수축과 집중의 충동, 교양의 감소의 대조로서 강화와 자족의 충동을 도와서 승리로 인도하는 일이 가능해질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면 별문제다.〉 그리하여 현존하는 교양에 대한 그의 비판은 철두철미 현존하는 인간성에의 비판이 된다."(386)


4장 인간성의 문제


"무한자를 원리로 삼은 철학적 신학과는 반대로 포이어바흐는 미래의 철학 때문에 유한성의 '참된 정립'을 요구한다. 그러기에 참된 철학의 근본은 신이나 절대자가 아니라, 유한하며 죽어갈 인간이다. 〈권리, 의지, 자유, 인격에 관한 명상은 인간 없이, 인간 밖에서 혹은 인간을 초월하여 행해질 때믄 모두가 통일도 필연성도 실체도 실재성도 없는 명상이다. 인간은 자유의 존재, 인격의 존재, 권리의 존재다. 인간만이 피히테의 자아의 근저, 라이프니츠의 단자의 근저, 절대자의 근저다.〉" "그러나 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과 해방되고 독립된 인간주의의 내용을 참으로 형성하는 것, 이것들을 포이어바흐는 구체적 인간이라는 그의 추상적 원리를 가지고 감상적 미사여구 이상으로 발전시킬 수 없었다. 엥겔스의 말마따나 〈그는 형식상 실제적이고 인간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 인간이 생활하고 있는 세계에 대해서는 절대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인간은 의연히 『종교철학』 가운데서 행동하는 추상적 인간이다.〉"(391-2)


"마르크스가 보기에, 인간을 구체적으로 본래부터 시민(유산계급)이라고 한 헤겔의 정의는 근대의 시민-자본주의적 세계의 현존하는 존재 관계에 있는 사실상의 '비인간성'을 나타내는 적절한 이론적 표현이며, 인간의 자기 소외의 표시이다." "인간을 시민사회의 단지 결정적인 국가에서 결정적으로 해방시켜 자기의 공동체 그 자체와 다름없는 공산주의적 인간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마르크스는 무산 계급에게 말을 건넨다. 왜냐하면 무산 계급은 현행하는 것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대립함으로써 하나의 전면저 과제를 가지고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헤겔 법철학의 비판』 서문에서 이미 〈사회가 파괴되어 특별한 하나의 신분이 된 것이 무산계급이다〉라는 명제가 포함되어 있다. 무산계급만이 인간의 완전한 상실이기에 송두리째 인간 그대로의 성질을 모두 되찾는 능력을 가질 수가 있다. 마르크스는 시민사회의 이런 예외에서 오히려 새롭고도 일반적인 인간적 인간의 이념을 부각시키고 있다."(395-6)


"키아케고어의 '단독자' 개념은 그의 인간적이면서도 기독교적인 근본 개념이다. 보편적 '체계'는 그것이 정신의 체계(헤겔)이든 인간의 체계(마르크스)이든간에 세계사적인 방심 속에서 〈인간으로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인간 일반이 아니라 너와 나와 그 사람, 우리들이 제 나름으로 인간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를 잊어버렸다." "〈헤겔의 변증법에 의하면 그것(연합의 원리)은 개인을 강화시킴으로써 약화시킨다. 즉 그것은 합병에 의해 수적으로는 강화하는 것이 되지만 윤리적으로는 약체화이다.〉" "자기가 이룬 자아는 추상적으로 개별화된 자아가 아니라, 그 생활 전체에서 구체적으로 보편 인간적인 것을 표현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대번에 아주 평범한 인간, 즉 부부 생활이나 직업이나 노동에 있어서 '보편자'를 실현하는 인간으로 본다. 참으로 실존하는 인간은 '똑같지 않은 전혀 개성적인 인간임과 동시에 보편적인 인간'이다. 그는 단신으로 '홀로 배우는 자'이면서 '하나님을 배우는 자Theodidakt'이다."(400-2)


"기독교와 인간주의의 내적 관련은 니체의 경우 신이 죽었을 때에 초인이 나타난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 죽음은 자기 자신을 의욕하는 인간,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는 어떤 신으로부터도 이미 말해지지 않는 인간에게 신으로부터의 탈출과 동시에 인간의 초극까지도 요구한다. 인간은 그런 점에서 신으로 있는 것과 동물로 있는 것의 중간에 놓여진 존재로서의 인간의 전통적인 위치를 잃는다. 그는 무(無)의 심연 위에 팽팽하게 걸쳐진 줄 위에 있는 것과 같이 자기 자신 위에 놓여진다. 그의 존재는 『짜라투스트라』의 서언 가운데 나오는 줄광대의 존재같이 본질적으로 위험 속에 있고 위험이 그의 '천직'이며 위험 속에서만 문제가 된 인간 '규정'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인간주의는 버리려고 하면 버릴 수 있는 '편견'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속하는 것이다. 물론 인도주의적 '인간성'과 그 반동의 대조물인 영웅 기질의 편협도 인간의 참된 본성, 즉 그 비참과 위대, 취약함과 견고함을 한결같이 잘못 보기도 한다."(405-6)


5장 기독교성의 문제


"헤겔은 신앙과 지식의 '실증적' 대립을 보다 높이, 동시에 보다 본원적인 통일에로 지향하려고 시도했다." "헤겔은 종교적 신앙과 철학적 지식을 구별하여 분리하는 것으로 종교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헤겔이 비판하는 것은 종교가 반성 철학 내부에서도 여전히 가지는 '실증적 형식'뿐이다. 이 비판의 목표는 '실증'─기독교적 종교의 철학적 개조에 의한 실증적 형식의 원칙적 지양이다." "철학의 '내용, 요구, 관심'은 신학과 완전히 '공통'이다. 〈종교의 대상도 철학의 대상도, 영원한 진리의 객관성 그 자체의 모습, 하나님 이외의 그 무엇도 아닌 하나님, 하나님의 설명인 것이다. 철학은 종교를 설명하는 일로써 스스로를 설명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철학은 스스로를 설명함으로써 종교를 설명한다. 철학은 종교와 마찬가지로 이 대상에서 종사하는 것이고 이 대상, 즉 진리에 침투하는 사색의 정신이다. 이 종사에 있어서, 그리고 이 종사로 인한 주관적 자아 의식의 정화와 진리, 받아누림과 생동이다.〉"(412-4)


"종교의 '신학적 본질'을 그의 참된 인간학적 본질로 지양함은 포이어바흐에게는 헤겔이 단순한 '감정'이라고 냉소했던 바로 그 평범한 형식에로 후퇴하는 데서 생겨난다. 다름아닌 그 형식을 포이어바흐는 직접-감각적이기 때문에 본질적인 형식으로 재건하려고 했다. 그에게 종교의 초월성은 감정의 내재적 초월성에 기초하고 있다. 즉 감정은 당신 가운데서 당신을 넘어서 있다." "포이어바흐의 종교 비판의 가장 일반적인 원칙은 종교의 근원적인 본질이 인간적 본질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인간 원래의 본질적 욕구의 '대상화'이긴 하지만 거기에는 특별한 고유의 내용은 없다. 그러므로 바르게 이해한다면 신의 인식은 인간의 자기 인식이지만, 그것이 인간의 자기 인식이라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는 그러한 자기 인식이다. 〈종교는 인간 최초의 직접적 자아 의식이며〉 인간이 자기 자신에 이르는 도상에 있는 우회로이다. 〈신적 본질의 규정 일체가 인간적 본질의 규정이다.〉"(419-20)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종교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할 뿐만 아니라 〈더구나 종교는······ 자기 자신을 아직 획득하지 못하거나 혹은 그것을 이미 상실한 인간의 자아 의식이다〉라고 계속 말함으로써 포이어바흐를 넘어선다. '자기 자신'이라는 것은 그러나 세속적 및 사회적 관계에서의 자기 자신이다. 그러기에 종교는 마르크스에게는 인간적 본질의 단적인 '대상화'가 아니라 '자기 소외'의 의미에서의 물화Verdinglichung이다. 종교는 도착된 세계이며 이 도착은 공동체로서의 인간적 본질이 아직 참된 현실성을 가지지 않는 동안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내세적 종교에 대한 싸움은 그런 까닭에 간접적으로는 스스로의 보충과 신성화를 위해서 무릇 종교를 필요로 하는 현세의 세계에 대한 싸움이다." "마르크스주의적 무신론자는 신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믿는 것이다. 그가 정복하려 한 것은 이제는 신들이 아니라 우상이다. 근대 자본주의의 '상품' 세계가 바로 그러한 우상이다."(440-1)


"키아케고어와 포이어바흐 양자는 각자의 자기화(터득)이라는 입장에서 가톨릭적 실증성에 대한 루터의 비판으로 되돌아섰다. 포이어바흐가 기독교적 신앙의 해소를 루터로부터 찾듯이 키아케고어도 소위 '수련'과 '반복'을 루터로부터 전개한다." "루터의 '나를 위함'과 '우리들을 위함'에서 포이어바흐는 신앙의 본질이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임을 추론하지만, 키아케고어는 그것을 '자기화'와 '주체성Subjektivität'이라는 말로 번역한다." "그러나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과의 사이의 역설적인 관계에 있는 강조점은 역시 주체적 내면성의 쪽에서 보는 자기화에 있다." "지각되는 정신은 지각하는 정신과 동일한 정신이기에 신은 본질적으로 〈사유〉 가운데서만 있다고 하는 헤겔의 명제는 기독교적 진리의 인간학적 본질이라 하는 포이어바흐의 원칙을 거쳐서 키아케고어에 와서는 신은 각자의 신께 대한 관계의 주체성 안에서 그리고 그 주체성을 위해서만 거기에 존재한다고 하는 실존적 명제로 변하여 간다."(449-50)


"'독일 철학'의 '프로테스탄티즘'에 대한 니체의 통찰 이면은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철학적 무신론'에 대한 니체의 안목이다. 그것은 철학의 과학적 무신론을 용납하였으나 끝을 맺지 못하고 중단했기 때문에 절반은 아직 신학이고 절반은 철학이다. 거기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쇠퇴'가 온다." "니체는 자신의 '몰도덕주의'까지도 기독교-프로테스탄트적 전통의 연속으로 느끼고 있었다. 또한 기독교적 도덕의 나무에 맺은 최후의 과일이었다. 〈그 기독교적 도덕 자체가 도덕 부정을 성실한 것으로서 강요한다.〉 기독교 도덕의 철학적 자기 파괴는 역시 그것의 가장 고유한 힘의 한 조각이다." "니체가 어느만큼 기독교에서 졸업하고 있지 못했던가는, 그의 '반기독교'뿐만 아니라 그것 이상으로 그것과 대응하는 '영원회귀' 설이 보여 주고 있다. 이 설은 명백히 종교의 대응물이고 키아케고어의 기독교적 역설이 절망으로부터의 도피로임에 못잖게 '무'에서 나와 '유'에 들어가려고 하는 하나의 시도이다."(4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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