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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기후적응 시대가 온다 - 종말로 치닫는 인간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
김기범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4년 5월
평점 :
프롤로그: 지구는 인류가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기후위기 대응은 지구가 아닌 인류 자신을 위한 행동이자 우리를 살리기 위한 행동일 뿐 지구를 위한 것도, 지구를 구하는 것도 아니다. 인류의 기후위기 대응에는 크게 두 가지 방향이 있다. 첫째, 더 이상의 온도 상승을 막기 위한 전 세계적인 공조 체제를 마련하고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획기적인 변화를 추진하는 것. 둘째, 이미 온도가 올라간 상황에서 근미래에 닥쳐올 기후재난에 대비하기 위한 ‘적응 정책’을 펼치는 것. 이 책은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을 포함해 인류가 지금껏 노력을 기울여온 첫 번째 방향의 대응이 성공적이었는지 살펴본 뒤, 현재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두 번째 방향의 대응책을 점검한다. 폭염, 해수면 상승, 전염병 발발 등 지금껏 우리가 마주해온 각종 기후재난의 형태를 실감 나게 소개하면서도, 우리가 왜 이러한 일들을 겪게 되었는지 역사적으로 검토하고, 그동안 다른 책에서는 크게 조명받지 못했던 기후적응 정책의 실태를 우리의 현실에 맞게 풀어내고자 한다. 14-5)
1부 지금 우리는 어떤 상황인가
국제 연구 단체인 세계 탄소 프로젝트Global Carbon Project가 2023년 12월 5일 발표한 <2023년 세계 탄소 예산 보고서>에는 2023년 화석 연료 사용으로 배출된 온실가스가 2022년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화석 연료 사용으로 인한 세계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2년보다 1.1% 증가했고, 인간 활동으로 인한 총 온실가스 배출량은 409억t으로 분석됐다. 기상청이 2023년 6월에 발간한 <2022 지구 대기 감시 보고서>에 의하면 충남 태안군 안면도 기후변화감시소의 이산화탄소 배경농도는 425.0ppm을 기록했다. 2021년보다 1.9ppm 늘어난 수치다. 미국해양대기청NOAA이 측정한 2022년 전 지구 평균 이산화탄소 배경농도도 417.06ppm으로 2021년 대비 2.13ppm 증가하며 역대 최고 농도를 기록했다. 불과 10~20년 전의 지구 이산화탄소 농도가 400ppm을 넘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얼마나 빠르게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 중인지 짐작할 수 있다. 20-1)
최근 공개되는 시나리오들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예상보다 더욱 암울한 예측을 내놓고 있다. 2023년 12월 초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UN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비영리 기후단체 클라이밋 센트럴Climate Central이 공개한 전 세계 도시의 수몰 이미지가 그 사례다. 이 단체는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예측 결과와 지역별 고도 등을 종합해 지구 지표면 평균온도(이하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에 따라 달라지는 각 도시의 모습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했다. 클라이밋 센트럴은 인류가 탄소 배출량을 급격히 줄여 전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제한했을 때 각 도시의 모습은 지금과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전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이 3도에 달했을 때 상승한 해수면은 많은 도시를 집어삼킬 것으로 예상했다. 안타깝게도 3도 상승폭은 이번 세기말 인류가 맞이할 수 있는 미래 가운데 비교적 밝은 미래, 장밋빛 전망에 속하는 편이다. 23)
<호주 보고서>는 특히 ‘찜통지구 Hothouse Earth’에 진입하는 문턱이 사실 2도보다 낮은 수치일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대해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찜통지구란 인류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더라도 지구가 스스로 온실가스를 배출해 기후변화를 증폭시키는 상태를 의미한다. 특히 ‘찜통지구’ 시나리오가 현실화된 상황에서도 인류의 온실가스 배출은 중단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구는 인류가 예측했던 온난화 수준 이상의 상태를 향해 변화한다. 지구 지표면의 30% 이상에서는 극심한 건조지대화 현상이 발생한다. 남아프리카, 지중해 남부, 서아시아, 중동, 호주 내륙, 미국 남서부 전역 등에서는 극심한 사막화가 일어난다. 2도 상승폭의 온난화로도 10억 명 이상이 집을 잃고 떠돌게 되고, 인류 문명은 종말에 이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10억 명이 기후난민이 된다는 것은 인류 사회의 상당 부분이 현재와 같은 상태를 유지하기 힘들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26-8)
그렇다면 과학자들이 내놓는 기후변화의 증거에는 어떤 내용이 포함돼 있을까? 가장 직접적인 증거는 생물종의 급격한 감소다. 인위적 요인으로 인해 수많은 동식물들이 멸종의 길을 걷고 있으며,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2024년 2월 12일 UN환경계획UNEP 산하 이동성야생동물보호협약(CMS)은 제14차 당사국총회를 열고 <이동성 야생동물의 세계 현황>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이동성 야생동물 중 44%가량의 개체 수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동성 야생동물이란 철새나 고래처럼 나라와 나라, 대륙과 대륙을 오가는, 이동 범위가 넓은 동물을 말한다. 보고서에는 이 협약에 등록된 1,189종 중 260종(22%)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 520종(44%)은 개체 수가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분류군별로 가장 심각한 상태에 처한 것은 어류였다. 이동성 어류의 약 97%가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이동성 파충류의 멸종위기 비율도 70%에 달한다. 49-50)
2부 지구와 인간의 병적 증상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이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텍사스A&M대학 연구진은 2020년 5월 한민족과학기술자네트워크KOSEN의 《KOSEN리포트》 에 기고한 <코로나19와 기후변화> 보고서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온실가스 배출량이 급증하는 ‘리바운드rebound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고, 이 예측은 실현되고 있다. 코로나19를 핑계로 인간 활동만을 중지함으로써 자연의 회복을 도모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뿐더러 지극히 무책임한 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멸종위기를 맞은 동식물들을 방치하는 것은 인류가 저지른 원죄에 스스로 면죄부를 주는 일일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생태계와 우리 인류의 관계를 설정하는 방향에 있어 자연의 회복력을 과신하는 태도를 지양해야 하는 이유다. 인간이 스스로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자연 훼손을 줄이는 활동을 지속하지 않으면서 자연 스스로 회복되기만을 바라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78-9)
과학자들은 인간의 무분별한 야생동물 이용이 앞으로도 더 큰 위험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바이러스의 저수지’라는 별명을 얻은 박쥐의 서식지 파괴와 교란이 인간 자신을 위협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 버클리캠퍼스(UC버클리) 연구진은 2020년 국제학술지인 《이라이프eLife》 에 박쥐가 바이러스를 지니고도 생존할 수 있는 메커니즘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 결과에는 인간의 박쥐 서식지 파괴와 교란이 박쥐에게 더 큰 스트레스를 주고, 이는 다른 동물들을 감염시킬 수 있는 분비물이나 배설물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추정도 포함돼 있다. 즉 인간이 동굴을 훼손하는 등의 교란 행위를 하면서 박쥐가 위협을 받게 되면 인간도 위험해진다는 것이다. 기존의 인수공통감염병 역시 인간이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훼손하고, 해당 동물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인간에게 전파된 사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아직까지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88-9)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미세플라스틱을 ‘크기가 100nm(나노미터, 머리카락 굵기의 500분의 1 정도) 이상, 5mm 미만인 플라스틱’으로 정의한다. 1차 미세플라스틱은 의도적으로 만든 미세플라스틱이다. 치약, 세안제, 화장품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알갱이가 대표적이다. 2차 미세플라스틱은 플라스틱 제품과 파편이 풍화·마모되며 생긴 것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미세플라스틱 대부분은 2차 미세플라스틱이다. 자연 환경에 있는 2차 미세플라스틱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형태는 미세섬유다. 해양 심층수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미세플라스틱 쓰레기 역시 미세섬유다. 북극의 한대수역 심해에서 채취한 시료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의 대부분(약 95%)은 미세섬유였다. 비닐을 뜯거나 플라스틱 병의 뚜껑을 여는 매우 사소한 행동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인류 모두는 미세플라스틱으로 오염시키는 문제에 있어 서로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셈이다. 103-6)
미세플라스틱의 생태계 영향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미세플라스틱 입자 자체가 미치는 물리적 영향이다. 대표적으로 미세플라스틱 섭취로 인한 영양 감소, 내부 장기 손상, 염증 반응 등이 있다. 체내에 들어온 미세플라스틱은 소화기 내부에 상처를 입히고, 소화 작용을 약화시켜 질병 발생률과 사망률을 높일 우려가 있다. 플라스틱 입자가 작을수록 더 위험하다. 입자가 작을수록 생체조직의 장벽을 통과해 혈관이나 모세혈관에 침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미세플라스틱의 화학적 영향이다. 미세플라스틱에 포함된 첨가제가 침출되면서 생물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플라스틱에 포함된 첨가제 중 비스페놀A, 프탈레이트 등은 대표적인 내분비계교란물질(환경호르몬)이다. 비스페놀A는 갑상선호르몬의 작용을 방해하고, 생식 독성과 발달장애 및 심혈관계질환을 유발하며 유방암과 전립선암의 원인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프탈레이트는 생식계 발달장애, 기형 등 다양한 인체 질환을 유발한다. 107)
현재 북극권에서는 세계 평균에 비해 적어도 2배 이상 빠른 속도로 기후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해빙, 즉 바다의 얼음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로, 해빙이 줄어든 만큼 늘어난 바다의 면적은 약 260만km2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태양광을 반사하는 얼음과 눈이 감소하면서 자연스럽게 북극권의 물과 토지가 흡수하는 태양에너지는 증가하고, 이에 따라 기온이 상승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를 ‘얼음-알베도 피드백ice-albedo feedback’이라고 부른다. 알베도는 지표면에서 반사되는 태양에너지의 비율을 의미한다. 그런데 북극권에서 일어나는 변화 가운데 영구동토永久凍土가 녹아내리고 있다는 점은 간과되고 있다. 북극권 해빙이 녹고 주변 지역을 덮은 눈이 사라지면서 태양열을 흡수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것뿐 아니라, 광대한 넓이의 영구동토가 사라지면서 온실가스 중 하나인 메탄이 대기 중으로 방출되며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114-5)
3부 피할 수 없다면 적응하라
우리가 살아가는 한반도 역시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은 곳이고, 적응의 필요성 또한 높아지고 있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이 발표한 ‘주요 작물의 재배 한계선’을 살펴보면, 1980년대 대구에서 재배된 사과는 21세기 들어 경기 포천이나 강원 북부에서도 재배된다. 같은 기간 동안 녹차는 전남 보성에서 강원 고성으로, 무화과는 전남 영암에서 충북 충주로, 복숭아는 경북 청도에서 경기 파주로 재배지가 북상했다. 해수면 온도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따뜻한 바다에 살던 난류성 어류가 북상함에 따라 바다 생태계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난류성 어류인 전갱이는 월동지인 동중국해로 가지 않고 겨울에도 남해 연안에 머문다. 난류를 따라 남해에서 잡히던 멸치는 울릉도 근해에서 어획되고, 일본 혼슈 이남에 살던 다랑어는 울산 앞바다에서도 꾸준히 잡히게 됐다. 반대로 과거 서민들의 찌개거리였던 한류성 어류 명태는 1990년대 이후 남한 수역에서 ‘씨가 말라버린’ 어종이 되었다. 123-5)
유럽에서는 여름철 낮 최고기온이 35도에 이르는 이상고온을 ‘열파heat wave’라고 부른다. 영국의 비정부기구 영파운데이션Young Foundation의 보고서 <열파: 노인 복지에 있어 2003년 프랑스 열파의 영향>은 “노동인구가 휴가를 떠나고 사람이 없는 곳처럼 변한 마을에서 휴가를 갈 경제적 수단이 없는 이들, 특히 갈 곳이나 의지할 곳이 없는 노인들”을 폭염의 최대 피해자로 언급했다. 기후적응을 한답시고 무턱대고 에어컨을 사용하면 온실가스가 쏟아져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무더위쉼터’와 같은 사례는 도시의 각 가정이나 매장에서 에어컨을 사용하는 것과는 다른, 사회복지 시스템의 차원에서 농어촌 지역이나 빈민·노인 등 사회적 약자층에 집중된 정책임을 감안해야 한다. 즉 인구가 밀집된 도시 공간에서는 에어컨 사용을 적극적으로 줄이면서 폭염의 직격탄을 맞는 농어촌 지역의 노인들에게는 에어컨 사용을 권장하는 것이 보다 균형 잡힌 기후적응 정책의 방향일 것이다. 136-8)
기후변화로 인해 전 지구의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고, 그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당장 몰려오는 바닷물을 막을 방법은 제방밖에 없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점점 상승하는 해수면이 언젠가는 제방의 높이를 넘어설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방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자연의 변화에 무리하게 맞서는 대신, 바닷물이 그대로 육지를 잠식하도록 내버려두는 역발상을 시도하기도 한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보존된 갯벌로 유명한 덴마크에서의 ‘바닷물 침수 실험’이 바로 그것이다. 연구진은 바닷물이 자연스럽게 해안 지역을 바꾸도록 두는 경우 제방을 쌓고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생물다양성이나 자연자원 측면에서 가치를 높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게다가 물에 잠긴 토양은 기후변화의 주원인인 탄소를 저장하는 기능도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현재도 해당 지역은 계속해서 자연적인 석호로 변해가고 있으며 더 많은 생물종이 나타나고 있다. 133-4)
물론 이 연구는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인간이 거주하기 힘든 환경으로 바뀔 위험이 높은 태평양이나 인도양의 섬나라들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다. 일명 ‘도서국가(모든 영토가 섬으로만 구성된 국가)’로 불리는 곳들은 UN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도 선진국에게 강도 높은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요구하는 그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해수면 상승이 빨라지고 있다는 암울한 전망을 계속해서 내놓고 있다. 태평양과 인도양의 저지대 산호초섬에 인간이 살 수 없게 되는 시점이 60~70년 뒤인 21세기 말이 아닌 20~30년 뒤인 21세기 중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 하와이대학 마노아캠퍼스 등 공동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어드밴스》 에 2018년 4월 25일 게재한 논문에서 태평양 등 저지대 산호초섬 전체가 바닷물에 잠기지 않더라도 민물인 지하수에 바닷물이 섞여 들어가면 인간의 식수원이 사라질 것이라 내다봤다. 136)
뉴욕 맨해튼의 대규모 전시장 재비츠 컨벤션센터(이하 재비츠센터) 옥상에는 7ac(2만 8,328m2)에 달하는 옥상농장이 조성돼 있었다. 옥상농장에서 재배한 농작물은 재비츠센터 직원들이 이용하는 구내식당의 식재료로 활용되고 있고, 주변 주민들에게 판매되기도 한다. 재비츠센터는 한국으로 치면 코엑스나 킨텍스 같은 전시장 역할을 하는 건물로, 뉴욕 34~40번가 허드슨강 인근 6개 블록을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이런 거대한 건물의 옥상이 농장과 태양열발전시설로 탈바꿈한 때는 2014년이다. 옥상농장을 만든 결과 재비츠센터는 여름철엔 5~6도 정도 시원해졌고, 겨울철에도 5~6도 정도 따뜻해졌다. 그만큼의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음은 물론이다. 또 옥상농장은 막대한 양의 빗물을 저장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농장의 토양과 빗물탱크 등에 저장되는 빗물의 양은 연간 700만gal(2,649만 7,882L)에 달한다. 옥상농장이 많은 양의 물이 우수관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146)
4부 이미 닥쳐온 파국 앞에서
기온이 높고 습도는 낮은 경우나 습도가 높고 기온은 낮은 경우에 비해 고온다습한 기후에서 인간의 생존률은 크게 낮아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미국 MIT 연구진은 2018년 7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에 빠르면 2070년쯤 중국 북부 화베이평원 지역의 습구온도가 인간이 생존하기 힘든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라는 내용의 논문을 게재했다. 연구진은 인류가 현재 추세대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경우를 뜻하는 ‘RCP 8.5 시나리오’를 적용할 경우 화베이평원의 평균 습구온도가 빠르면 2070년쯤 32.6도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칭타오, 상하이, 항저우 등의 습구온도는 35도까지 오를 수 있다고도 추측했다. 습구온도 35도는 건강한 사람도 야외에서 6시간 이상 버티기 힘든 수준이다. 미국 럿거스대학 연구진은 기후변화가 계속 진행된다면 2100년쯤에는 약 12억 2,000만 명이 33도 이상의 ‘습구흑구온도WBGT 지수’에 노출될 것이라는 논문을 2020년 3월 학술지 《환경연구회보》 에 게재했다. 157)
# ‘습구온도’란 온도계를 증류수에 적신 수건으로 감싼 상태에서 측정하는 것, 일반적으로 말하는 ‘기온’은 건구온도로 마른 상태의 온도계로 측정한다.
습구흑구온도 지수는 온열질환을 유발하는 4가지 환경 요소인 기온, 습도, 복사열, 기류를 반영한 수치다. 습구흑구온도가 33도가 넘으면 건강한 사람도 온열질환 때문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연구진은 40개의 기후 시뮬레이션을 분석해 온난화된 지구에서 고온다습한 환경이 얼마나 증가할지 추정했다. 연구진의 추산에 따르면 지구 지표면 평균온도가 1.5도 상승할 경우 건강에 악영향을 받는 인구는 약 5억 800만 명, 2도 상승할 경우는 7억 8,900만 명, 3도 상승할 때는 12억 2,000만 명에 달했다. 2020년 습구흑구온도가 33도 이상까지 올라가는 환경에서 거주하는 세계 인구는 약 2억 7,500만 명이다. 고온다습한 날씨는 인간의 신체뿐 아니라 정신에도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있다. 특히 폭염은 자살률을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연구진은 2018년 7월 《네이처》 자매지인 《네이처 클라이밋체인지》 에 폭염이 자살률을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157-8)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 ‘기후악당’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쓴 것은 2016년의 일이다. 2016년, 모로코에서의 당사국총회(COP22) 개막을 하루 앞두고 국제연구기관인 기후행동추적은 한국을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기후악당Climate Villain’ 국가라고 지목했다. 여기서 기후악당 국가는 기후변화 대응에 무책임하고 게으른 국가를 의미한다.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은 ‘기후변화대응지수 CCPI’에서도 최하위권으로 평가받은 바 있다. 기후변화대응지수는 온실가스 배출, 재생에너지, 에너지 소비, 기후정책 등 4가지 부문으로 나눠 평가하고, 점수를 합산해 국가별 종합점수를 매긴다. 한국의 순위는 2016년에는 조사 대상 58개국 가운데 54위, 2020년에는 61개국 가운데 58위, 2021년에는 60위, 2022년에는 57위라는 매우 낮은 순위를 차지했다. 가장 최근 평가인 2023년에는 전체 평가 대상 67개국 중 64위로 순위가 4단계 하락했을 뿐더러 한국보다 순위가 낮은 나라는 산유국뿐이었다. 160-1)
지금의 몽골을 상징하는 드넓은 초원과 사막은 사실 과거에는 겨울철마다 많은 눈으로 뒤덮이고, 끝도 없는 설경이 펼쳐지는 곳이었다. 보통 10월 말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12월에는 초원과 사막 대부분에 눈이 쌓였다. 이 눈은 황사의 발생을 막아주고, 녹은 뒤에는 유목민과 가축의 소중한 식수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평균보다 적은 양의 눈이 내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데, 특히 고비사막이 있는 몽골 남부 지역은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눈이 쌓이지 않거나 1.0~5.0cm 정도의 적은 양만 쌓였다. 이렇게 눈이 내리지 않는 따뜻한 겨울은 다수의 몽골 유목민을 환경난민으로 만들고 있다. 눈이 내리지 않으면 가축에게 먹일 풀과 물이 부족해지기 때문에 소, 양, 말 등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잦아진다. 가축이 전 재산인 유목민들은 살 길을 찾아 도시로 갈 수밖에 없다. 전 재산을 잃은 수십만 명의 유목민이 수도 울란바토르 주변에 모여 일종의 빈민가인 게르촌을 형성해 살아가고 있다. 166-7)
몽골이 겪고 있는 기후변화는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가장 먼저 주목할 부분은 모래폭풍이다. 몽골에 거대한 모래폭풍이 일어나면 높은 확률로 황사가 한반도를 덮치게 된다. 황사는 발원지인 몽골에서 고온건조한 날씨가 이어지고, 눈 덮인 면적이 작을 때 발생한다. 여기에 저기압이라는 조건까지 갖춰지면 모래먼지가 상승기류를 타고 3~5km 상공으로 올라간 후 북서풍을 타고 한반도로 날아오게 된다. 황사 자체는 모래먼지일 뿐이지만 황사가 이동할 때 중국 북부의 공업지대를 지나면서 중금속과 미세먼지 등 오염물질을 머금게 되면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국립환경과학원 자료를 보면 2009~2011년 한국에 온 28차례의 황사 중 13차례(46.4%)는 중국 공업지대를 지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오염물질이 포함되지 않은 상태의 황사는 삼국시대의 기록에서도 확인될 만큼 오래된 자연현상이다. 황사가 불어올 때는 흔히 ‘PM10(지름 10㎛ 이하)’이라고 부르는 미세먼지 농도가 크게 상승하게 된다. 168)
에필로그: 아직 희망은 있다
오존은 산소 원자 3개로 이뤄진 기체다. 지상 20~25km 상공의 성층권에 형성돼 있는 오존층은 태양으로부터 오는 자외선을 차단해 생태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반면 지표에서 오존은 건강에 해를 끼치는 물질이 된다). 오존층이 감소하고, 지표에 도달하는 자외선이 늘어나면 피부암, 백내장 등의 발병률이 높아진다. 미국 환경보호청의 연구 결과 오존이 1% 감소하면 백내장 환자가 최대 0.6%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존층 파괴의 원인 물질로는 1985년 당시 냉장고와 에어컨, 헤어스프레이 등에 널리 사용되던 냉매인 염화불화탄소(프레온)CFC가 지목됐다. 자외선과 염화불화탄소가 만나 발생하는 광화학 반응으로 염화불화탄소가 분해되면서 염소 원자가 생기고, 이 염소 원자가 오존 분자를 분해시키면서 오존층이 파괴되는 것이다. 염소 원자 하나는 오존과 반응한 뒤 원상태로 돌아와 다른 오존 분자들을 산소 원자로 분해시킨다. 염소 원자 1개는 오존 분자 10만 개를 파괴한다. 183)
충격을 받은 국제사회는 발 빠르게 움직여 2년 뒤인 1987년 ‘몬트리올 의정서’를 채택해 염화불화탄소 생산을 금지하기에 이른다. ‘몬트리올 의정서’ 체결을 통한 오존층 회복 노력은 국제사회가 전 지구적인 환경 재앙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몬트리올 의정서’에는 세계 197개국이 가입했으며 한국은 1992년 2월 가입했다. 이처럼 전례 없는 국제사회 전체의 환경 보존을 위한, 실은 인류 생존을 위한 노력 덕분에 극지방의 오존구멍은 점진적으로 회복되고 있다. 세계기상기구 WMO는 2018년 11월 남극과 북극의 오존구멍이 2060년쯤에는 완전히 복원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오존구멍이 2000년대 들어 회복되고 있으며 속도가 느리긴 하지만 약 40년 뒤에는 완전히 회복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북반구와 중위도의 오존구멍은 이보다 빠른 2050년쯤이면 완전히 복원될 것으로 예상했다. 183-4)
오존층 회복에 대해 밝은 전망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학계에서는 염화불화탄소 외에도 오존층을 파괴하는 것으로 알려진 물질의 배출량이 빠르게 증가하고 염화불화탄소의 불법 배출도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018년 6월에는 국제사회가 꾸준히 저감 노력을 기울여온 염화불화탄소의 대기 중 농도가 크게 늘어나는 일도 발생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중국 산둥성 싱푸 지역의 공장들에서 염화불화탄소를 사용 및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세계기상기구 역시 2018년 11월 오존층 회복 전망을 내놓으면서 동아시아 지역에서 염화불화탄소 가운데 삼염화불화탄소CFC11의 불법적인 배출량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MIT 연구진은 클로로포름에 대한 연구 결과가 인류의 오존층 회복을 향한 여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는 경고라고 강조했다. 오존층 회복을 늦출 수 있는 클로로포름 같은 물질들에 대한 새로운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185-6)
오존층 파괴로 인류 일부와 생태계가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인류 전체의 노력으로 오존층이 회복되긴 했지만, 염화불화탄소와 클로로포름이 여전히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는 현실은 기후위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지구 전체에서 시기가 빠르든 늦든, 기후위기는 이전에 없었던 재난을 일으킬 것이고, 또 일으키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현재 인류의 기후위기 대응은 —‘완화’와 ‘적응’을 모두 포함해서 —너무 느리고, 부족해 보인다. 인류 전체를 위협할 재난이 더 자주 일어나고, 더 큰 피해를 입힐 때 인류는 결국 전시 동원 체제에 준하는 ‘기후위기 동원 체제’를 가동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장밋빛 전망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라도 대책이 시행됐을 때, 인류 전체의 노력은 오존층 회복 사례에서 본 바와 같이 예상보다 더 빠른 성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수십 년 후를 향한 이 작은 외침이, 조용한 경고가 오늘의 인류와 미래 세대에게 닿기를 간절히 바란다. 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