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 자유 시장과 복지 국가 사이에서
토니 주트 지음, 김일년 옮김 / 플래닛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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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먹고 비대해진 국가는 폭력의 한도를 넘어서 자멸하고 말았다. 그 상처를 복지로 감싼 국가는 치유의 흔적이 희미해지자 자유의 역습에 시달렸다. 누더기 국가를 복원하는 일은 공허하지 않은 차선책이다.

1장
한 세기에 걸친 자유방임이 지구촌 구석까지 닻을 내렸을 때 아무도 의식하지 못했지만 전쟁은 달갑기까지 한 손님이었다. 폐허에 직면하여 벨 에포크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위기의식은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청했고, 시민들은 전체적인 동원과 통제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상호 신뢰에 바탕을 둔 국가의 활동에 대한 긍정은 번영과 평등의 조화로운 상승 효과라는 장기간의 안정감을 풍족한 샘물처럼 공급했다.

2장
시민이라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시대가 저물고 개인의 자유에 주목하는 세대가 등장하면서, 안정은 정체와 동일시되었고 공감은 전복의 외침에 자리를 내주었다. 무엇이든 거부하고 파괴하고 일탈하는 급진주의는 자신에게 활동영역을 제공해 준 따분한 체제를 거부했고 공동체는 급속히 허물어졌다. 이 부정의 언어를 잠재우기 위해 등장한 전통 수호의 기치는 권력을 얻은 후에 국가를 해체하여 민간에게 넘겨주었다.

3장
이윤이 최고의 목표라는 민영화의 물결은 자신을 길러준 도덕의 회복이라는 함선을 난파시켜 버리고 자연질서에 오직 경제적 동기만을 아로새겨놓았다. 국가는 해체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는 듯 했지만, 자본의 질주가 야기한 금융위기는 재차 국가를 소환했다. 비록 국가의 역할이 적극적 행위자에서 수동적 체제 수호에 머무르고 있지만 역사는 합리적 이해관계보다 우둔한 정치적 합의가 낫다는 점을 증명한다.

다르게 말하지 않으면 다르게 사유하지 못한다. 이상의 현실화라는 혁명만을 쫓는 사람은 불완전한 개혁의 가치를 쉽사리 수긍하지 못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더 나은 국가의 귀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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