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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로 온 '돌리의 어머니'라는 단편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열어보았다. 열 여섯 살 생일을 앞둔 돌리와 그녀의 완벽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신을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돌리는 그녀와 반대되는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어머니와 스스로를 자꾸 비교하게 된다. 돌리는 어머니가 자신을 이해해주기를 바라지만 햇살처럼 밝은 어머니는 그런 돌리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


보통 사춘기의 여자아이들의 이야기에서는 또래의 인기 많은 친구와 자신을 비교하곤 하는데, 이 이야기에서는 예쁘고 사교적인 역할을 어머니가 맡은 점이 신선했다. 가족이자 의지해야 할 대상인 어머니가 자신보다 또래 친구들에게 인기가 더 많은 아이러니라니... 돌리는 완벽한 어머니가 부담스럽지만, 자신에게 예쁘다고 말해주는 어머니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돌리의 마음이 소설 내내 언뜻언뜻 비추어 보였다. 돌리가 어머니가 자신의 마음에 공감해주기를 바라는 부분에서는 마음이 아팠다.


인물에 대한 섬세한 묘사도 좋았지만 이 책에 대한 기대를 높인 것은 역시 마지막 결말 부분이었다. 22쪽이라는 짧다면 짧은 분량의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은 너무 밝지도 너무 어둡지도 않았다. 섬세하고도 군더더기 없는 인물 묘사와 깔끔하고도 여운을 남기는 결말의 마무리에 얼마 전에 읽은 '올리브 키터리지(문학동네)'가 떠올랐다. 아마 나처럼 '올리브 키터리지'를 재미있게 읽었다면 이 소설도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운명과 분노(문학동네)'를 읽을 때에도 번역이 깔끔하다고 느꼈었는데, 이번 책도 정연희 님께서 번역하신 책이었다. 찾아보니 재작년과 작년에 출간 되었던 메이브 빈치의 다른 소설들도 같은 번역가께서 작업하셔서 믿음이 간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운명과 분노'의 옮긴이의 말이 좋았기에 이번 책에서도 옮긴이의 말이 붙어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도 똑같은 상황이었다. 줄곧 그래왔던 대로. - P9

돌리는 잘못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어머니는 너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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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7-01 14: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못이 자신에게 있다는 걸 인정하기란 쉽지 않아요. 대부분 상대의 탓으로 돌리기 쉽죠.

파이버 2020-07-01 19:50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에서 돌리가 돌리의 엄마보다 더 어른스럽다고 생각되었어요
 
출신
사샤 스타니시치 지음,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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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면 4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차례에 놀랐다. 책은 두꺼운 편이지만 수 많은 짧은 글들의 묶음이기 때문에 책장을 넘기는 것이 힘들지는 않았다.
각각의 짧은 글들은 주인공의 생각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마치 길을 걸으며 주변의 들꽃, 풀벌레, 돌멩이들에 잠시 시선을 빼앗기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산만한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길의 시작과 끝에 할머니라는 길잡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119쪽) 글쓴이의 '출신'에 대한 탐구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기억에 기댈 수 밖에 없다. '오스코루샤'라는 외떨어진 산속 마을에서 듣는 할머니와 노인들의 이야기는 진실과 환상이 뒤섞여 듣는 이를 갸우뚱하게 한다. 사실과 기억은 다르다. 그렇지만 '청소년 릴레이 경주 대회'(316쪽)에서 기억 속 통나무 막대가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글쓴이가 느꼈던 자긍심,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는 '나무'로 만들었든 '유리'로 만들었든 간에 변하지 않는 가치이다. 오히려 환상은 그 기억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어 줄 따름이다.

이 책의 제목인 '출신'을 이야기를 읽는 내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 내게 고향이 어떤 의미인지 묻는다면, 내게 처음으로 아말감 충전을 시술한 하이마트 박사 이야기를 해줄 것이다.'(15쪽) '출신'에 대한 물음은 '정체성'에 관한 물음으로 연결된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출신'에 대한 물음에 이어지는 책 한 권의 대답 속에서 우리는 가족과 친구, 그들과 함께했던 장소에 관한 기억을 더듬을 수 있다.

+) 동유럽과 먼 한국의 독자로서 이 책을 만나고 책에 대한 소개글을 읽었을 때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세계사에 대한 지식이 짧아 책을 읽으면서 유고슬라비아에 대하여, 요시프 브로즈 티토에 대하여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처음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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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씨 허니컷 구하기
베스 호프먼 지음, 윤미나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따뜻한 봄 향기가 느껴지는 책을 펼쳤을 때 만날 수 있는 씨씨의 이야기는 여느 소녀의 이야기라기에는 너무나 우울하다. 집에 잘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결혼 때문에 북부에 와서 외로움에 마음의 병을 앓는 어머니, 웃음거리가 되어버린 어머니를 돌보아야 했던 12살의 어린 소녀가 씨씨가 가진 과거의 모습이다.

갑작스럽게 결정된 남부 생활에서 씨씨는 새로운 가족과 친구들을 만난다. 씨씨는 오랫동안 혼자서 견디어 왔기 때문에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상처조차 깨닫지 못한다. 책의 제목인 ‘씨씨 허니컷 구하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남부 여자들의 세상에서 씨씨가 상처를 회복하는 것이 이 책의 주요 줄거리다.

어떻게 보면 뻔한 이 책의 재미는 각각의 개성이 뚜렷한 남부의 여성들에게 있었다. 친구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에서 과거의 상처를 추억으로 바꿀 수 있는 용기를 배울 수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씨씨를 구하는 마법이 되었듯이. 언제든 마음이 외로울 때 이 책을 펼친다면 차가운 눈이 천사들의 설탕이 되는 마법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버려진 동물을 돌보든 낡은 집을 구해내든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책을 읽어주든, 네 안에서 영원히 꺼지지 않을 불을 발견해야 해. 아가, 그 불을 찾지 못하면 결코 만족감을 느낄 수 없을 거야.

나는 로사와 루실 할머니가 뺨을 맞대고 있는 모습을 찍었다. 사진이 나오길 기다리면서, 나도 이렇게 같이 늙어갈 여자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궁금했다. 내 비밀을 알고 내가 두려워하는 것과 내 희망을 아는 친구,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사랑해줄 그런 친구 말이다. 보라색 벨벳 쇼파 같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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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노바의 귀향(아르투어 슈니츨러)
★스포일러 O



이 노벨레는 쉰세 살의 카사노바가 고향 베네치아로의 귀환을 눈앞에 두고 만토바 근교의 영지에서 보내는 2박 3일, 베네치아로 가는 이틀 밤낮의 여정, 베네치아에서 맞이하는 첫날을 그리고 있다.(해설 중에서)

이 단편은 지금까지도 화려한 여성 편력으로 유명한 카사노바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차용하였다. 다만 특이한 것은 그의 화려한 삶의 전성기가 아닌 나이 들고 빛바랜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아주 늙은 것은 아니다. 중년의 마지막일까....)

카사노바는 자신이 늙었다는 것 알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늙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마주치는 여성들이 카사노바의 남성성을 얼마나 알아봐 주는 가를 일일이 신경 쓰며 자신의 남성성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그는 초라하다. 그런 그의 눈 앞에 지혜롭고 젊은 ‘마르콜리나‘가 나타난다.

마르콜리나는 카사노바에게 관심이 없다. 이는 소설 안의 다른 사람들도 당연하게 여기는 현실이지만(어떤 어린 아가씨가 아빠뻘의 사내를 좋아하겠는가..) 카사노바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곧 카사노바의 젊은 시절에 비견될 젊고 멋진 ‘로렌치‘가 등장한다.
카사노바는 자신과 로렌치를 영혼의 닮은 꼴이라 여긴다. 왜 영혼의 닮은 꼴인가? 영혼은 늙지 않는다. 더이상 빛나지 않는 자신과 한창 때의 빛나는 로렌치는 매우 다르지만, 영혼의 차원으로 보자면 로렌치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기에 로렌치에게 열등감 대신 동질감을 느낀다.

마르콜리나를 얻기 위하여 고군분투했던 2박 3일은 카사노바의 안에서 꺼져가던 마지막 열정을 발휘하는 기회였다. 마르콜리나와 로렌치를 뒤로하고 허겁지겁 쫒기듯 귀향하는 그의 뒷모습이 처량하다. 소설 말미의 그의 모습은 언제부터 예견되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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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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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왜 서점의 표지와 다를까? 했더니 출간 25주년 기념 한정판?으로 나온 책을 구입했었던 모양이다. ^^;; 어찌되었든 표지가 마음에 들어 좋다. 역시 책은 바로 읽지 않아도 사야 한다(?)

책이 두꺼워 하루에 100쪽씩 천천히 나누어 읽었더니 모두 읽는데 약 7일 가량 걸렸다... 추리 소설의 형태를 띄고 있어 술술 넘어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덴마크와 그린란드의 관계, 선박에 대한 기술공학적인 설명, 눈과 얼음에 대한 과학적 서술은 읽는 속도를 더디게 하였다. 책을 읽기 전에 덴마크와 그린란드의 관계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고 읽는 것이 더 깊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주인공인 스밀라는 국적은 덴마크인이지만 그린란드인의 영혼을 지니고 있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녀는 같은 아파트의 그린란드인 소년 ‘이사야‘와 나이와 성별을 뛰어넘은 친구가 되지만 어느날 갑자기 이사야가 죽어버린다. 이에 의문을 가진 스밀라가 이를 파헤쳐가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사야의 죽음에 얽혀있는 사건들을 파헤쳐나가는 추리소설의 구성과 다르게 이 소설을 눈여겨 보아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야기는 덴마크와 그린란드, 문명과 자연의 대립이다. 덴마크에 살고 있지만 이누이트의 영혼을 지닌 스밀라의 눈을 통해서 우리는 문명이 침투한 그린란드의 모습으르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덴마크와 그린란드에 대하여 잘 몰라도 괜찮다. 생소한 이야기라도 주인공 스밀라는 남성과 여성을 넘나들며, 차가운 뇌와 뜨거운 심장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시선을 따라 가는 일은 무척 독특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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