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누피란 놈은

     찰리 브라운이 점찍어 둔 예쁜 소녀를

     늘 자신이 차지한다

     차지한다고 해야 고작 그 애의 집에서 쿠키를 나눠 먹는 것뿐이지만

     그게 스누피에겐 중요한 거다

     찰리 브라운은 한이 맺혀서 나간다

     난 걔를 진짜 사랑해 넌 쿠키나 얻어먹으려고 찾아간 것뿐이잖아

     진짜 사랑을 원하는 사람에게 진짜 사랑을 주는 건

     쿠키를 나눠 먹는 것보다 힘든 일이다

     그래서 소녀들은 쿠키를 먹으러 오는 스누피가 부담 없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진짜 사랑 보다는

     쿠키를 나누며 싹트는 사랑이 더 깊어질 수 있다

     스누피는 그걸 아는 놈이다

     그래서 개집에 사는 게 아니라

     개집 지붕 꼭대기에 누워서 빈둥거리는 거다

 

                                      /성미정 詩集 <사랑은 야채 같은 것>中, -스누피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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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련과 벚꽃과 생강나무가 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봄길을 지나, 돌아왔다.

 크리스 디 버그((Chris De Burgh)의 Natasha Dance를 듣는다.

 오늘 아침엔 지속적인 관심을 보내오는 사람에게 거부의 뜻을 보냈다.

 분명 그 관심이 나쁜 지향이 아님은 잘 알지만, 때론 당황스럽게도 때론 짜증스럽게도 나의 평화를 깨곤 하는 그 관심이 너무 버겁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일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

 타인의 관심과 선의를 잘 받는 일도 참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런 부문에서 나는 잘 받는 일을 잘 못하는 사람인 듯 했다.

 잘 주고 잘 받을 수 있는 것. 오늘의 화두.

 문득 내 곁의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각나서 그래도 조금은 따뜻해졌다.

 facebook 속의 바이올렛같은 친구의 얼굴이 이 저녁, 나의 마음을 환하게 불 밝힌다.

 그래도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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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에게.

 

 청명하게 날이 맑디 고운 아침, 창밖에서는 새들이 봄을 경쾌하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목련나무 아래에는 동네 최고의 얼짱인 사랑하는 나의 어미아옹이가(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미모인줄을 모를것입니다. 거울이 없으니.) 똘똘하고, 영리한 새끼고양이들과 한가로이 비스듬이 누워, 평화로운 봄날의 햇살을 휴식처럼 즐기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길고양이들은 '도둑고양이'가 아닙니다. 자신의 주어진 삶을 불평이나 원망없이..그리고..함부로 남의 영역을 침해하지 않으며..자연의 본성(本性)대로..살며..사랑하며 새끼들을..살뜰하고,의젓하게 키우며..배우자에 대한 한결같은 信義를 지키며..주어진 자신의 환경안에서..自由롭고..새처럼 가볍게..쿨하게 살아갑니다.

 

 가끔, 새벽 두 세시에 작업을 하다 窓을 열면 문득..맞은편 담장에 앉아..그윽하고 신비롭게..저를 쳐다보고 있는 어미아옹이의 아름다운 초록빛 눈과 마주칩니다. 그러면 나도..한번..정말 기쁘게 웃습니다.

  이곳으로 와서 지난 1년간, 이 아이들과 이웃으로 살아온 결과는, '저것이 진정, 고양이의 자유로운 삶이다! '라는 '깃털처럼 가볍고, 부드럽고, 자유로운' 그들의 삶에 늘 찬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이유없이, '도둑고양이'라고 미워하고 제거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단지, 살기위하여..먹이를 구하기 위하여..쓰레기봉투를 조금 찢어 놓은 것뿐인데..그것때문에..약을 놓아서..다 몰살시켜야한다고 분분하는, 인간들의 '티끌'같은 분노를 대할때마다 우리는 과연 자연을 얼마나 잘 지키고 가꿔왔는가를 생각하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나직한 한숨만 쉴 뿐이지요.

 아아, 애제라..이런 저의 마음도 모르고..울집..밥먹고 잠자고 부비부비와 그루밍뿐이 할 줄 모르는 페르시안 '로미'와 러시안 블루 '도도'는 뒤엉켜서 잠만 자고 있네요.

 철없는것들!..그런데 어찌하겠습니까? 제가 거둔 것들이니..제가 끝까지 책임을 져야겠지요. 

 

 오늘도 바람이 찹니다.

 그래도 어제 돌아오는 차창밖의 중랑천에는 어느덧 노란 개나리들이 환하게 피어 있더군요.

 그대가 주신 홍매화, '명자'는 오늘도 활짝 피어 제 마음을 설레이게 합니다.

 '명자'의 은은한 향기를 제 마음 대신, 바람결에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날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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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이 어깨동무 합니다 -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며
김제동 지음 / 위즈덤경향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휴먼테이너인 김제동의 두번째 인터뷰집을 읽으며 행복하고 유쾌했다. 소통은 공감일 것이다. 인터뷰어로서 인터뷰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게 하는 것, 희망의 연대로서 공감. 그래서 덕분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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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덴 호수


호수는 하늘만 올려다보고
하늘은 호수만 내려다보는,
어디에도 길은 없고 길이 모두 막혀버리고
물어볼 만한 사람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그래서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단지 비 오는 날
한낮에 소방울의 무딘 소리를 따라,
소 가는 길을 따라, 소 가는 길을 밟아
호수까지 가는 방법밖에 없는
외로운 호수, 정든 호수,
나의 고향 같은 것.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섹덴 호수》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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