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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이야기꾼


내가 아직도 소설을 위한
권위 있고 엄숙한 정의를 못 얻어 가진 것도
"소설은 이야기다."라는 단순하고 소박한
생각이 뿌리 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뛰어난 이야기꾼이고 싶다.
남이야 소설에도 효능이 있다는 걸
의심하건 비웃건 나는 나의 이야기에
옛날 우리 어머니가 당신의 이야기에
거셨던 것 같은 다양한 효능의
꿈을 걸겠다.


- 박완서의《모든 것에 따뜻함이 숨어 있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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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연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딸기타로트와 커피 어때요?` 찻잔에는 우리의 대화와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내가 지닌 시간마다에 숨어있는 탐구라든지, 메세지라든지 아니면 성실함에 대한 강박관념이 고요한 향기처럼 무장해제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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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바로 보기의 어려움. 그것은 시력, 관찰력, 그리고 과학적 증명의 문제만은 아니다. 보는 사람의 생각, 마음, 영혼의 과제인 것이다. 옛사람은 이러한 여러 차원을 모두 고려한 끝에 '기운생동 氣韻生動'이라는 네 글자로 회화감상의 핵심 원리를 정리하였다. "자연이나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조화로운 기운, 그것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느끼라!"는 뜻이다. 어떻게 해야 바로 볼 수 있을까? 아마 경건함뿐이라라. <예기禮記.>의 첫 세 글자는 우주 삼라만상을 꿰뚫는다. '무불경 毋不敬'. 모든 사물을 대함에 '경건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초상화를 제작하는 화가에게도, 초상화를 감상하는 사람에게도 필요한 것은 오직 경건함 그것이 있을 뿐이다.(p.20~21) // 바로 보기의 어려움1.

 

 

 

 열심히 설명하는 한편 틈틈이 청중들을 엿보니 흥미롭게 듣는 기색이 역력해서 자못 흐믓한 맘으로 잠시 휴식을 가졌다. 그런데 털썩 주저앉아 담뱃불을 붙이고 이제 막 한 모금을 당기려는데 한 분이 어정쩡한 걸음걸이로 다가오며 말을 건넨다. "저, 선생님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있는데...." 그러고는 "실은 제가 양계장을 했었습니다" 한다. '이크, 이건 심상치 않다!' 움찔하면서, "아, 예! 어서 말씀하세요" 했더니, "아까 선생님이, 암탉이 병아리 중 어떤 놈에게 모이를 줄지 맘이 안쓰럽다 하셨는데, 그거 걱정하실 필요 하나도 없습니다. 닭이란 놈은 모성애가 아주 대단하거든요. 예를 들어 알곡을 하나 주웠어도 그걸 딱딱한 채로 그냥 주지 않고 반드시 부리로 일일이 바숴서 병아리 먹기 좋게 흩어줍니다. 암탉은 그림 속 벌도 아마 잘게 짜개줄 겁니다."

  우리 둘을 둘러싸고 어느샌가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여들었다. 이럴 땐 그저 눈 딱 감고 얼른 승복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렇습니까? 오늘 정말 큰 공부를 했습니다." 당황한 기색을 애써 감추고 연단에 오르자, 나는 우선 입이 마르도록 전 양계장 주인의 예리한 관찰력을 칭찬했다. 그리고 나서 <모계영자도>를 다시 화면에 비춰보았다. 과연! 병아리들은 제각기 기개에 찬 눈빛을 초롱거리면서도, 부리들은 하나같이 꼭 다물고서 얌전하게 모이 나누이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림 공부란 것이 참 할수록 어렵다. 옛 분들이 격물 格物 공부, 즉 주변의 비근한 사물부터 꼼꼼히 관찰하고 깊이 생각할 것을 애써 강조한 이유를 이처럼 절감한 적이 없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미 써두었던 작품 해설 원고를 서둘러 꺼내 고쳐 쓴 것은 물론이다.

   요즘 나는<모계영자도> 설명 끝에 이야기 하나를 덧붙인다. "여러분, 세계 각국의 여러 박물관을 다니시다가 혹 닭과 병아리 그림을 보시게 되면 정색을 하고 아주 찬찬히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변상벽의 이 그림처럼 도타운 정이 살갑게 드러난 그림이 있으면 곧바로 저에게 연락을 주십시오. 저는 이렇듯 정다운 암탉 그림은 세상에 달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닭 그림 한 장  정감 있게 그려내고 감상한다는 일, 그것은 비단 미술사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듯 선하고 살뜰한 그림을 그렸던 사람들, 또 그걸 벽에 걸어놓고 마냥 좋아했던 우리 조상들의 심성이 얼마나 착했던가를 웅변해주니까요. 예를 들어 같은 시기 일본 최고의 화가라고 하는 이토 자쿠추[伊藤若沖](1716~1800)의 그림, <수탉과 선인장[仙人掌郡鷄圖]>을 비교해보십시오. 정말 다르지요? 한국과 일본의 차이입니다."  (p.24~25)  // 바로 보기의 어려움2.

 

 

 

   왕王이 정좌하면 우주의 조화를 완성시키는 장엄한 참여예술이 된다. 요즘 참여예술performance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발가벗은 여인이 겹겹이 싸맨 비닐을 하나씩 둘씩 내던지는 것을 상상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참여는 그런 것이 아니다. 순간의 충격으로 세인의 이목을 끌거나 표피적 자극으로 일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예술은 평범한 삶을 북돋는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나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겸허하게 자연을 배워 우주의질서를 완성케 한다. 대지에 굳게 뿌리박고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저 붉은 우주목 宇宙木처럼... (p. 45) // 조선 국왕은 참여예술가였다.

 

 

   나는 이제 조상들이 역원근법을 쓴 까닭을 알 듯하다. 중요한 것은 보는 내가 아니라 그려진 대상이다. 상대를 존중하고 깊이 이해하기 위한 마음자리에서 역근원법이 탄생한 것이다. 그 상대가 사람이든 물건이든 자연이든 간에 정다운 마음 씀씀이는 변함없고 한결같다. 오늘 우리는 과학이니 이성이니 능률이니 하는 미명하에 너무 원근법적으로, 인간중심적으로만 살고 있지 않은가? 갑자기 새만금의 너른 갯벌이 어른거린다. ((p.49) // 역원근법에 깃든 마음.

 

 

 

   옛사람은 대충하는 일을 일러 주마간산走馬看山, 즉 말 달리며 강산 구경한다고 하였지만, 오늘날은 고속도로를 달리며 흘낏 보고도 좋은 구경을 했다고 한다. 진득하니 찬찬히 보지 못한 것은 본 게 아니다. 과거 무인은 말을 타고 문인은 나귀를 탔으나 진정한 선비는 소를 즐겨 탔다. 세종때 어진 정승 맹사성孟思誠이  그러했으니, 하릴없이 시간이 많아서가 아니라 세상 물정과  속내가  보일 만큼 느릿느릿 다닌 것이다. 김홍도는 작품에 찍는 인장을 '기우유자驥牛遊子'라 새겼다. '소 타고 어슬렁거리는 사람.... .' 아마도 마음 한 구석에 푸른 소 타고 서쪽으로 간 노자를 모셨던가 보다.   전시실에서 감상하는 모습을 보면 바로 보는 이가 의외로 적다. 작품보다 설명을 더  오래 보는 사람, 남에게 열심히 해설하느라 정작 자신은 못 보는 사람, 감상 시간을 작품 숫자로 나누어 정확히 몇 분마다 옮아가며 보는 사람까지 참으로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단 한 점을 보더라도 마음에 와 닿는 작품과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의 격조란 정확히 감상자의 수준과 자세만큼 올라간다. 저 게으름뱅이 시인처럼 마냥 느긋해 할 수 있을 때에만 훌륭한 예술품은 그 고갱이를 드러낸다. 사실 시인은 게으른 것이 아니라 마음이 넉넉했다. 미美의 관조란 결국 마음의 관조인 것이다. (p.72) // '그대 마음' 만큼만 보이리.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와 앉으려니 이상하게도 앉아지지가 않는다. '그럼 아예 눕지 뭐' 했더니 이번에는 또 누워지지가 않는다. 어떻게든 몸을 쉬어야겠는데 허리가 통째로 거북이 등판처럼 굳어, 눕지도 앉지도 못하는 별난 신세가 된 것이다. 통증이 심해 응급실로 실려가서 어정쩡한 자세로 진료를 기다리니 의사와 간호사는 아무런 처방도 내리지 못한 채 두 세 시간을 거저 보냈다. 참다못해 무슨 조치든 취해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잠시 후 주사를 한 대 맞았는데 그것 참 묘한 것이었다. 등줄기 신경이 사르르 풀리며 눈앞이 아뜩하고 몽롱해지더니, 희부연 가운데 그야말로 수묵산수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꿈결처럼 아른거리는 것이었다. 그 말 못할 행복감이라니... .이내 잠이 들었다 한참 만에 깨니 그토록 아팠던 등은 거짓말처럼 나아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퇴원하였다. 나는 생각한다. 산 사람이 죽음을 알 수는 없지만 혹시 임종이란 이렇듯 평소 간직한 영상이 눈앞에 그대로 보이는 것이 아닐가? 그렇다면 세상을 지옥처럼 여기는 사람에게는 바로 그 지옥이  보일 것이요, 늘 남을 걱정하고 배려하는 인물에게는 자신의 내면처럼 선하고 따사로운 영상만이 눈에 가득하리라. 그림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자연이 있어야 좋은 산수화가 나오고, 존경할 만한 분들이 세상에 많아야 놀라운 인물화를 그려낼 수 있다. 뛰어난 그림은 화가 혼자서 그리는 것이 아니다. 동시대인의 총체적 삶의 결정結晶인 것이다. 다시 생각한다. 지금 우리 시대는 정말 훌륭한 예술품을 가질 만한가 하고... .(p.80) //  예술품은 시대의 '거울'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선생... .이 분들에게 공통점이 둘 있다. 하나는 존경할 만한 분이라 지폐에 초상화가 새겨졌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초상의 얼굴이 실제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다.

   훌륭한 위인의 초상화를 화폐에 담아 그 정신을 널리 선양하려는 뜻은 좋다. 하지만 화가가  상상해 그린 작품을 상상화라 밝히지 않고 진작眞作인양 오도하며 화폐에까지 싣는 것은 잘못이다. 그것은 또 초상화의 주인공인 조상에게 죄 짓는 일이다. 조선시대 초상화의 제작 정신은 한마디로 "일호불사 변시타인一毫不似便是他人"이라 했다. "터럭 한 오라기만 달라져도 곧 남이다"는뜻이다. 세상에 내  얼굴을 엉뚱하게 그려놓고 나라면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정조 때 왕명으로 그려진 좌의정 채제공蔡濟恭의 초상(129쪽 참조)을 보면 진중하고 사려 깊으며 선 굵은 얼굴이 과연 한 나라의 재상다운 품격을 지녀 가히 그 사람됨을 가늠케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왼쪽 눈동자는 바깥으로 치우친 사팔뜨기다. 하지만 여기서 주인공이 사시안斜視眼인가 아닌가 하는 점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원래의 참된 모습이며 그 안에 살아 움직이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눈동자를 슬쩍 가운데로 되돌려놓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라 안 모든 선비들이 좌의정은 제 얼굴부터 속이는 위선자라 하여 웃음거리로 삼았을 것이 분명하다. 옛 분들은 이렇게 "얼굴이란 내면의 성실함이 드러나는 것으로, 그 성실함은 자기 자신부터 속임이 없는데서 출발한다"라고 배웠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일제 강점기 이래로 겉만 아름답게 꾸미는 천박함에 물들어 있다. 그래서 남원의 춘향 초상과 진주의 논개 영정이 어이없게도 쌍둥이처럼 닮은 얼굴로 그저  곱기만 하다. 더더욱 웃지 못할 사실은 두 초상화의 원래 주인공이 화가의 부인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초상화란 인간의 영혼을 그리는 것이다. 겉모양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내면의 진실함이 문제가 된다. 지난 세월 권위주의 정권이 옛 선인들의 초상화를 멋대로 양산한 데에는 애초부터 불순한 의도가 섞여있었던 듯 하다. 즉,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등을 통해서 이를 만든 권력가의 빈약한 정통성과 무너진 권위를 치켜세우고 동일시하도록 했던 것이다.

   앞으로 만들어지는 지폐 속에서는 김구 선생이나 윤동주 시인을 비롯한 현대사의 진정한 어른들을 만나보고 싶다. 그분들의 얼굴에서 미남미녀가 무엇이랴? 높은 뜻과 깊은 인품, 그리고 평생을 겨레를 위해 풍찬노숙風餐露宿한 삶의 진실이 배어 있는 참 얼굴을 만나고 싶다. 옛 글에도 있다. "얼굴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라고... .(p.81~83) //  지폐 속 위인들의 '가면'.

 

 

   사람은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것만큼 본다. 그것이 경험이건 지식이건 추억이건 감수성이건 간에 내 안에 간직되어 있는 것과 비추어 바깥의 사물도 이해하기 마련이다. (p.91)

 

 

  " 어떤 것들은 그대로 남겨둘 때 가장 잘 간직된다. something is best left and saved" (p.108)

 

 

                                                     -오주석의 讀畵隨筆, [그림 속에 노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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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에 노닐다 - 오주석의 독화수필
오주석 지음, 오주석 선생 유고간행위원회 엮음 / 솔출판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삶에서 이것이 진짜인가, 가짜인가..혼돈이 올 때의 方法은 `진짜`를 見하면 된다. 한국 회화의 본질을 국민들에게 널리 편 미술사학자 오주석의 讀畵隨筆을 읽었다. 開眼의 밝음과 그윽함을 看書癡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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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되면 조기가 떼를 지어 올라왔다. 오죽하면 살구꽃이 피면 조기 떼가 몰려온다들 했을까. 그러니 어부들은 살구꽃이 필 즈음이면 조기 떼를 꿈꾸며 마음껏 설렐 수 있었다. 홍양 바깥 섬에서는 춘분이 지난 후에 그물로 잡을 수 있었다. 영광의 칠산 바다에서는 한식 후에 그물로 잡았고 해주 앞바다에서는 소만 후에 그물로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 흑산 바다에서는 음력 6, 7월에야 비로서 낚시에 물리어 올라 왔다. 굳이 밤에 낚시를 하는 이유는 이곳 물이 워낙에 맑기 때문에 낮에는 조기들이 낚시밥을 물지 않기 때문이었다.

 조기가 밀물을 타고 올라올 때면 만개한 꽃들에 화답하는 듯 음악소리가 났다. 조기가 부레를 수축시켰다 펴는 소리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기 울음소리를 듣기 위해 물속에 구멍 뚫린 대나무 통을 집어 넣고는 귀를 기울이곤 했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그물을 내려놓기 위함이었다.

 "가까이 가보지 않으려나?"

 약전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찾아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대나무숲을 통과하는 바람소리가 저러할까. 연꽃잎에 내리긋는 작달비 소리 같기도 한 것이. 딱히 무슨 소리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리하여 더더욱 가슴을 설레게 하는.....오래전 주어사 강학회에서 들었던 정체불명의 소리가 기억에 생생했다. 산짐승 기지개켜는 소리 같기도 한, 물고기 숨소리 같기도 한, 기어이 새벽잠을 깨우던 그 소리가 혹 조기 울음소리는 아니었을까. 이곳에 닿기 위하여 그리 오랜 세월을 돌고 돌아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뿌리라도 돋으려는지,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듯 발바닥을 간질였다. 통증인지도 몰랐다.

 "혹시 조기라도 낚으시게요?"

 "아, 아닐세. 괜한 소리였네."

 피시시 웃음이 새나왔다. (p.297~298)

 

                                               -김영주, <자산 정약전>에서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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